제 9 장

삼위일체의 교리를 증명하는 성경말씀들

삼위일체 교리의 모든 진상을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증거하심과, 또 유일하신 하나님께서 세 분의 각각 다른 신격으로 역사하시는 것을 이해함으로써 알게 됩니다. 구약성경 여러 곳에 기록된 이 삼위일체의 교리를 우리가 믿을 수 있도록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성경 구절을 다 공부할 수는 없고 몇 구절만 선택하여 공부하기로 합니다.

창세기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A)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습니다. 또한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라고 하셨습니다.(B)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의 속성이 한 분이 아닌 몇 분의 신격으로 되어 있음을 말하며, 그러나 하나님께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 라고 하신 것은 한 하나님이 계심을 말합니다. 위에서 말한 성경 구절은, 하나님이 몇 분으로 되어 있는지 말씀하시지 않았으며,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이 몇 분인지를 분명하게 알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에는 더 확실하게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주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셨을 때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을 들으셨고, 그 음성은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아들이 물에 서 계실 때 그에게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이더니라고 읽을 수 있습니다. 모든 믿는 자들에게 세례를 줄 때도 이와 같이 세 분의 이름으로 줄 것을 예수님께서 명령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장에서 천사 가브리엘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C)에게 나타났을 때에도 성령이 네게 임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D)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께서 교제하심이 여러분과 늘 함께 하십니다. 또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세 분의 속성을 가지고 계심을 성경 여러 곳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물론 이 교리는 인간의 이해력으로는 깨닫기가 대단히 어렵지만, 우리가 지상에서 사는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하여 이 진리를 믿으며, 천국에 가서는 이 진리를 완전히 깨닫게 될 것을 또 기대하고 있습니다(E).

우리는 이 세 분인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각각의 특성을 자세히 공부하여야 합니다. 아버지는 그의 능력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라고 부르며, 아들은 그의 피로써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구주라고 하며, 성령은 우리 마음속에 거하시면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분이라고 합니다. 이 거룩한 삼위일체의 교리는 사도시대에서 시작하여 오늘날까지 참 진리를 믿는 교회에서 간직해 왔습니다. 물론 전통적인 교회의 설립자들이 이단이라고 판정한 유대교나, 회교도, *Mani, Praxeas, Sabellius, Paul of Samosata, Arius, 또 이와 같은 집단은 이 삼위일체의 교리를 믿지 않습니다. 이 교리를 믿음으로 우리는 세 가지의 신경, 즉 Nicca, Athanasius, 그리고 초기의 교회 설립자들의 신경(Creeds)을 받아들입니다.

*Mani, Praxeas, Sabellius, Paul of Samosata, Arius, Nicca, Athanasius는 3, 4세기의 종교 지도자들.

A. 하나님 자신이 우리라고 부르셨음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 1:26-27).

우리의 모양대로라고 복수로 하나님 자신을 부르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모양으로 나타나실 것을 창세 전에 계획하신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형상과 모양은 같은 뜻이며 골로새서 3:10절에 이 뜻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구절에서 인간 창조의 목적을 읽을 수 있고, 또 남자와 여자가 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음을 배웁니다.

B. 우리 중 하나같이 라고 하셨음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창 3:22).

아담과 하와가 범죄함으로 처음 배운 죄가 자존심입니다. 잠재적인 인간의 생각은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죄로 인하여 그리스도께서 인간이 되어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나님께 복종한 이유가 되었습니다. '생명나무 실과'는 영생을 말하며 아담과 하와는 이 실과를 따 먹을 수 있는 특권을 상실했음을 이 구절은 말합니다.

'우리 중 하나'는 그리스도를 가리키며 이 구절에서 이미 그리스도께서 인간이 되어 세상에 오실 계획을 엿볼 수 있습니다.

C.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천사의 답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눅 1:35).

'네게 임하시고'는 동정녀의 잉태를 가리킵니다. 이 구절에서도 세 분인 하나님께서 함께 역사하심을 알 수 있으며, '하나님의 아들'이 거룩한 자라고 한 것은 탄생하는 아이가 하나님 자신임을 가르칩니다.

D. 사도 바울이 깨달은 삼위일체의 하나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후 13:13).

'그리스도의 은혜'는 그가 우리에게 주시는 십자가의 구원을 말하며, 로마서 5:11절에는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구원의 뜻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즉 우리가 영원히 잃었던 하나님 자녀의 신분이 그리스도께서 죽기까지 고난을 당하셨기 때문에 회복이 되는 것입니다. 부흥회에 참석하고 얻은 감정을 '은혜를 받았다'고 하는 고백이, 사도 바울이 얘기한 은혜가 아닌 경우를 흔히 듣습니다. 사도 바울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이라고 부르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각기 세 분의 본성을 따라 역사하심을 설명하였습니다.

E. 하나님의 본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행 2:32-33).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벧전 1:2).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거하노니(요일 4:13-14).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갈 4:6).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 구원에 대한 보증이며, 하나님의 구원 계획 과정에서 가장 찬란하고 뜻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우리는 성령을 받게(행 10:45)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도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라고 하신 것을,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가 믿음을 가지게 되고 선한 그리스도인이 될 것을 미리 아셨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흔히 있습니다. 그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것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고'하신 것과 같이, 구원을 받을 사람들도 한결 같이 흉악한 죄인인 것을 미리 아셨고, 그러나 그 죄인들 중에서 자기가 선택하신 사람들을 또한 미리 아셨습니다. 로마서 8:29절과 고린도전서 1:26-31절이 이것을 잘 설명합니다. 또한 베드로전서 1장의 말씀은 택함을 받은 자들이 성령의 역사로 정결하게 됨을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정도는, 우리의 신앙의 척도가 됩니다. '피 뿌림'은 구약의 이스라엘이 수 없이 많이 뿌린 짐승의 피를 생각나게 하며, 히브리서 9:12절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피 흘리는 제사를 단번에 완전히 드리셨음을 말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의 증거는, 말씀에 순종하려는 노력이 내 생활 속에 있는 것을 보이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고 방언 은사를 받았다는 값싼 속임수에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 성령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운영하시는 하나님 자신입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아들이라 하셨고, 우리는 하나님을 가장 친근한 아버지의 호칭 '아바 아버지'로 부를 수 있습니다. 이 호칭은 작은 어린아이가 아버지를 '아빠'라고 부르는 호칭이며,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를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셨습니다(막 14:36, 롬 8:15 참조).

이러하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엡 3:14-16).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을 나타내실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사(딛 3:4-6).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유 1:20-21).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할 것을 가르치실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요 16:23-24). 사도 바울도 에베소서 3장에서 이것을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Family, 가족이 더 잘 된 번역)은 영적인 식구를 말하며,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들 즉 부르심을 입은 자들(롬 8:28, 1:6, 고전 1:9)을 말합니다. '속 사람'은 거듭난 영혼이며 이 영혼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한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이 속 사람은 날이 갈수록 새롭게 됨을 (고후 4:16) 사도 바울은 간증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는 우리를 거듭나게 하심을 말하며, 그를 믿는 자에게만 적용이 되는(요 3:16)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사랑하심을 나타내실 때'는 물론 복음을 전하고 들을 때에 나타납니다.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는 우리의 구원을 깨닫는데 적지 않은 장애가 되는 인간의 생각입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가 선하게 살아야만 성공한다고 가르칩니다. 특히 한국사람의 골수에 젖은 불교사상과 유교의 가르침은 '착한 일을 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와 목적'으로 되어 있습니다.

디도서 3장의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은 우리의 행위와 전혀 상관이 없음을 말합니다. 물론 믿는 자들은 선해야 하지만, 선행은 거듭난 사람들의 결과적인 성품이며, 구원의 조건이 될 수는 없습니다. '중생의 씻음'은 우리가 거듭나는 것이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을 받는 것이며, 우리가 세례를 받는 것은 이 중생의 상징입니다. 침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다거나, 침례만이 참 세례라고 믿는 신앙은, 우리의 구원이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또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사'라고 하신 말씀으로 설명됨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고 하면서 사람이 생각해 낸 결과에 몰두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를 거부하는 것이며, 우리의 영혼이 자라는데 큰 지장이 됩니다.

유다서 1:20절에서 말하는 '지극히 거룩한 믿음'은 그리스도의 믿음을 말합니다. 그 믿음은 그리스도께서 인간이 되어 죽기까지 하나님께 복종하신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그 믿음을 주십니다. 우리가 바로 그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는 말씀에 순종함으로써만 나타나게 됩니다. '자기를 지키며'하신 말씀이 영생에 이르는 조건을 말하는 것 같이 보이지만, 그렇지 않음이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고 하신 말씀으로 설명이 잘 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공부한 모든 성경구절이 삼위일체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동시에 역사하시고 계심을 배우게 됩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9).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행 10:38).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요 14:1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요 15:26).

로마서 8:9절에서 처음에 성령을 '하나님의 영'으로 불렀으며, 다시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한 것은 성령께서 하나님 자신임을 알게 됩니다. 그 성령께서 우리 마음 속에 역사하실 때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가르침은 '내가 결심하여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생각이며, 이러한 믿음은 성경말씀이 뒷받침하고 인정하는 믿음일 수 없습니다.

사도행전 10장의 말씀도 삼위일체이신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과정입니다.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언제나 함께 계심을 알게 되며,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는 모든 인류를 찾아다니시며 잃은 양을 찾으시는 과정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착한 일이란, 소망이 없는 인간을 구원하시는 일입니다. '기름붓듯'은 하나님께서 임명하심을 말하며, 구약 시대에 기름부음을 받던 직분이 대제사장, 왕, 그리고 선지자였음을 생각나게 합니다.

'보혜사'는 성령의 다른 이름이며, 하나님의 백성을 돕는 분이십니다. 우리를 보호하시는 보혜사의 역할은 하나님의 속성 중에서 아주 현저한 것이며, 우리가 어려움을 당하거나 박해를 받을 때 도와주시며(눅 12:11-12), 우리를 위하여 기도해 주십니다(롬 8:15, 26).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는 우리가 거듭나는 순간 영원히 태어남을 가르칩니다.

요한복음 15장에는, 성령께서 오시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주가 되심을 가르치심으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게 됨을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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