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 장
하나님의 선택
처음 창조된 아담이 지은 죄로 인하여 아담의 모든 후손들이 다 걷잡을 수 없이 죄로 타락하였으나(A), 하나님께서 그의 본성을 따라 자비로우시며 공의로우심을 나타내심을 우리는 믿습니다. 하나님의 자비는 죄로 타락한 흉악한 인간 중에서 몇몇을, 그들의 행실과는 관계없이(F), 그들을 멸망에서 구출하시고 구원하실 것을(B) 가리킵니다. 이 하나님의 자비는 진실하시며(E), 우리를 선택하시는 사역으로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D) 영원하고, 변함이 없는 계획을 세우셨음을 믿습니다(C). 인류가 비참한 타락의 길을 자발적으로 걸어감으로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입니다.(G).
A. 인간의 가치를 완전히 상실한 만물의 영: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 3:12).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는 완전히 타락한 인간의 상태를 설명하며, 선을 행할만한 능력이 없어졌음을 설명합니다. 완전히 썩어버린 과일은 버릴 수밖에 없는 것 같이,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만물의 영장의 가치를 완전히 상실하였음을 지적합니다. 자유의지를 믿는 교인들은 이 구절을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은혜의 교리를 믿을 때 이 구절은 은혜의 뜻을 설명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됩니다.
B. 하나님께서 단독으로 계획하시고, 역사하시고, 완성하실 우리의 구원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쫓지 아니하리라(요 6:37).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요 6:44).
'내게 주시는'은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선택하신 자들을 말하며, '내어쫓지 아니하리라'는 영원히 누릴 구원에서 누락되지 않음을 말하며,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철두철미함을 또한 지적합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을 자연인의 속성으로는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자연인의 잠재의식은 인간에게 아직도 선이 남아 있으며, 그 선을 행함으로써 하나님께 도달한다고 믿습니다. 이 현상은 예외 없이 세상의 종교가 가르치는 근본 원리가 되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수많은 교파가 세상 종교와 같은 길을 걷고 있습니다. 가톨릭교가 연옥을 믿는 것이 그것이며, 신교도들이 인간의 자유의지를 믿는 것도 또한 같은 길입니다. 요한복음 10:28절에도 예수님께서 양의 비유를 써서,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고 하신 것도 인간의 어떠한 노력이 구원에 이르도록 돕는다는 생각을 부인합니다.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이라고 하신 것도 하나님께서 원래의 구원 계획을 진행하심을 말하며, 사람의 행위가 전혀 개입되지 않음을 지적합니다.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는 우리의 구원 계획이 '마지막 날'(말세)에 초점을 두고 있음을 가르치며, 모든 구원받은 백성이 부활하는 이 '마지막 날'이 세상의 종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천년왕국의 허망한 학설을 부정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C. 하나님의 역사로써만 되는 인간의 구원
지극히 높으신 자가 열국의 기업을 주실 때, 인종을 분정하실 때에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대로 민족들의 경계를 정하셨도다(신 32:8).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롬 11:34-35).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 10:29).
신명기 32:8절은 역사적인 사실로서 장래에 올 천국에 대한 상징입니다. 모세가 운명하기 직전에 '이스라엘 총회에게 이 노래의 말씀을'(신 31:30) 읽은 것의 일부입니다. 이 모세의 노래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있을 일의 예언이었으며, 모세는 이스라엘이 부패 할 것과, 말세에 재앙 받을 것을 예언했습니다(신 31:29). 그러므로 가나안은 영원한 천국을 상징한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간 후에 모세가 미리 정해 둔 대로 땅을 분배한 기록을 읽을 수 있습니다(수 13:15). 이 구절은 또한 구원받은 자들이 신천지의 상속자임을 말하며(골 3:24), '이스라엘 자손'은 택하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로마서 11:34-35절은 어떤 사람이 감히 자기의 행위를 내세우면서 주님께 나아가 구원을 요청하겠느냐는 질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마음을 알 수 없으며,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청종할 따름이며,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은혜를 얼마만이라도 갚겠다는 생각은 사람의 생각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0:29절은 하나님께서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보다 더 크심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절대로 확실하며 완전함을 또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요 18:9).
내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와 지키었나이다 그 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고 오직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요 17:12).
요한복음 18:9절은 예수님께서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보낸 군대에게 잡히실 때, 무리들에게 명령하여 자기의 제자들을 다 떠나가도록 하신 것의 이유를 설명합니다. 이 구절을 통하여 우리가 배우는 것은 첫째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원을 계획하신 대로 진행하신다는 사실과, 또 우리의 구원을 보장하신다는 가르침입니다. 육신이 죽는 것과, 또 육신이 보호함을 받아 생존하는 것을 들어, 구원을 비유로써 설명합니다. 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생명을 보호하심으로 인류 구원의 전도사역을 계속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배울 수 있는 다른 가르침은 요한복음 6:37절에서 배운 바와 같이,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쫓지 아니하리라'고 하신 말씀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보전하와 지키었나이다'는 예수님께서 3년 반 동안 전도하실 때 열두 제자들의 신변을 보호하셨음을 말할 뿐만 아니라, '하나도 멸망치 않고'는 유다를 제외한 모든 제자들의 구원을 보장하셨음을 가르칩니다. '아버지의 이름으로'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대로 이루어졌음을 가르칩니다. '멸망의 자식'은 가룟유다를 가리키며, 또 적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살후 2:3). 가룟유다와 같은 행위는 적그리스도의 행위이며, 말씀을 부정하고, 믿음이 변질된 행위입니다. 수다한 적그리스도들이 나와 있음을 우리는 쉽게 살펴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응하게'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의 예언이 성경에 이미 기록되어 있었음을 말하며, 또한 구원 계획이 오래전에 이루어지고 진행됨을 말합니다.
D.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역하시는 하나님의 선택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29).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 1:4-5).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행 13:48).
로마서 8장에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은 창세 전에 그 이름을 생명책에(계 21:27) 기록하신 자들이며, 우리의 구원을 '미리 정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선하심을 본 받을 뿐만 아니라, 영원하신 삶을 선물로 받게 됨을 가르칩니다.
에베소서는 우리의 구원을 미리 예정하신 것에 대하여,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가장 분명하게 기록한 책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우리의 구원 계획의 주인공이며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여 구원계획이 이루어짐을 가르칩니다. 소위 기독교인들이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신 이유는, 우리가 그리스도 앞에 나아와 그를 우리가 선택할 것을 미리 아셨기 때문이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가르침은, 구원받을 모든 자들의 영혼은 죽어 있고 부패하여 전혀 소망이 없는 상태에서, 새 생명을 주심으로 시작된다고 합니다. 죽은 나사로가 나흘이 되어 썩어 냄새가 나던 현상은(요 11장) 바로 우리의 영혼이 구원받기 이전의 상태입니다. '거룩하고'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가는 것이며, 참 믿음이 거룩함 없이 있을 수 없고, 참 믿음은 또한 참 사랑의 결정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우리의 마음을 정결케 하며, 이 믿음이야말로 내 믿음이 아니며 그리스도의 믿음이라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흠이 없게 하시려고'는 우리의 거룩함과, 믿음과, 또 사랑이 그리스도의 것과 같이 완전하게 됨을 말하며, 새로 거듭난 믿는 자들은 이 완전한 상태를 향하여 매일 같이 변화되어 감을 또한 가리킵니다. 거듭난 인간도 완전하게 될 수는 없지만, 이 완전을 바라보고 사는 자기의 백성을 기뻐하시며, 또 우리를 완전하다고 간주하십니다(히 13:21).
'우리를 사랑 안에서'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계획 안에서'라고 할 수 있으며, 인간 사회가 정의하는 사랑은 그리스도의 사랑과 구분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사랑은 세상의 물질과 인간의 감정만으로 정의되지만, 그리스도의 사랑은 궁극적으로 우리가 구원에 이르는 것을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는 것도 물질과 감정에서 끝난다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에 미치지 못한 것이며, 형제의 구원을 위하여 염려하고 노력하는 것이 최고의 사랑입니다. 고린도전서 13:3절은 이것을 잘 설명합니다.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는 세상에서 볼 수 있는 지상의 사랑을 정의하며, 그 사랑으로 하나님께서 정의하는 사랑을 대처할 수 없음을 가르칩니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가르치며, 우리를 예정하신 이유는 그의 기쁘신 뜻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예정에 의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전능하시고 완벽하신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고 오차없이 진행하시고 계심을 우리는 믿게 됩니다.
사도행전 13:48절은 인간의 구원 계획이 모든 이방인에게도 미침을 가르칩니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벧전 1:2).
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요 17:9).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요 15:16).
'미리 아심을 따라'를 '우리가 그리스도를 영접할 것을 미리 아시고'라고 믿는 사람들을 흔히 만나게 됩니다. 이 구절에서 읽는 '미리 아심'은 '창세 전에 계획하신 것을 기억하시고'라고 할 수 있으며, 우리가 기억할 것은 구원받기 이전의 상태가 '죽은 사람의 송장이 냄새를 피우는 상태'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7:9절에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세상의 모든 인간의 죄를 대속하신다'는 가르침을 부정합니다. 이 구절이야말로 믿는 자들이 성령의 인도하심이 없이는 그리스도께로 나아올 수 없으며, 이 나아오는 자들은 창세 전에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임을 가르칩니다.
요한복음 15:16절도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께서 예정하신대로 이루어짐을 가르칩니다.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는 거듭난 자들의 성령의 열매를 가리킬 뿐만 아니라 구원의 역사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대로 이루어짐을 말합니다.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는 우리가 육신을 위하여 구하는 것이 아니며, 택하신 백성의 구원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입니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 15:19).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 곧 나의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 …(딛 1:1-2).
가라사대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마 20:2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무케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시랑에게 붙였느니라(말 1:2-3).
'세상에 속한'은 사람들의 소망이 이 세상에 국한이 되어 있음을 말합니다. 세상에서 번영하고 성공하는 소망입니다. 지금의 교회는 번영과 성공을 가르치며, 그렇게 함으로써 기독교인들이 세상을 살만한 곳으로 만든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영생을 바라보는 자기의 백성들이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께서 받은 그러한 핍박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5:20).
사도 바울이 자기를 '하나님의 종'이라고 한 것은 자기의 일생은 자유가 없으며, 모든 것을 하나님의 지시에 의하여 행함을 말합니다. '택하신 자들'이 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을 성경은 가르칩니다.
마태복음 20:23절은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난이 아주 천하고 어려웠음을 말하며, 요한계시록 3:21절에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고 하신 것과 잘 대조가 됩니다. 이 구절도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미리 정하시고 진행하심을 가르칩니다.
말라기 1장의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은 야곱(택하신 자)을 향하신 것이며, 그 사랑이 에서(택하심을 받지 못한 자)에게는 없었음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선택'과 동의어가 됩니다.
E.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으로 행사하시는 우리의 구원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롬 9:16).
여호와께서는 너희로 자기 백성 삼으신 것을 기뻐하신 고로 그 크신 이름을 인하여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요(삼상 12:22).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거하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시 65:4).
로마서 9:16절은 우리가 구원을 원함으로 얻는 것이 아니며, 노력해서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기로 창세 전에 계획하신 사람들만이 얻을 것을 가르칩니다.
사무엘상 12:22절은, 사무엘이 사울을 이스라엘 왕으로 세울 때에 백성에게 말한 내용의 일부입니다. '백성을 삼으신 것'이 이스라엘이 원해서 된 것이 아니고, 여호와의 뜻임을 가르치며, 하나님의 '크신 이름을 인하여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요'라고 한 것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절대적으로 완전함을 가르칩니다. 이 구절에서도 자기 백성이라고 한 것을 택하심을 받은 자들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시편 65:4도 복 있는 자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를 가리킵니다. '가까이 오게 하사'도 우리의 구원이 인간의 의지로 되지 않음을 가르칩니다. 주의 성전은 그리스도를 가리키며, 그 아름다움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시는 모든 일이 세상에서는 얻을 수 없는 것으로, 우리에게 만족을 주심을 가르칩니다.
F.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님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딤후 1:9).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을 나타내실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딛 3:4-5).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롬 11:5).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롬 9:11).
디모데후서 1:9절은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께서 영원 전에 예정하신 대로 되며, 그 구원은 은혜이며,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임을 가르칩니다. 또한 우리를 부르심이 우리의 행위대로 되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뜻으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짐을 배우게 됩니다.
디도서 3:4-5절에는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으로 이루어지며, 우리의 어떠한 행위와는 아무 상관이 없음을 가르칩니다.
로마서 11:5절의 '남은 자'는 택하심을 받은 몇몇 적은 수를 말하며, '남은 자'의 또 다른 뜻은 이 세상에서는 쓸모가 없어 천대를 받음을 가르칩니다. 그러나 택하심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 눈에 아주 보배로운 금과 은이며, 또 귀중한 보석입니다(계 21).
로마서 9:11절은 야곱의 구원을 말하며, 에서와 야곱이 쌍둥이며, 어머니 리브가의 태중에 있을 때부터 하나님께서 '야곱은 사랑하시고 에서는 미워하였다'(롬 9:13)고 하셨습니다. 항간에 '하나님께서 죄는 미워하시나 죄인은 사랑하신다'는 엉뚱한 가르침에 많은 사람들이 속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악인을 미워하십니다(시 45:7).
G. 나머지 인간은 멸망의 길로 가도록 내어버려 두심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딤후 2:20).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롬 9:20-21).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신대(마 15:24).
디모데후서 2:20절에 '큰 집'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을 말하며, '귀히 쓰는 것'은 천국에서 쓸 그릇이며, '천히 쓰는 것'은 영원한 멸망을 가리킵니다. 그릇의 용도가 전적으로 토기장이로 묘사된 하나님의 뜻대로 정해짐을 가르칩니다.
로마서 9:20-21절의 말씀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가르치며,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대로 이루어짐을 강조하십니다.
마가복음 15:24-28절에는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이 자기의 잃은 양을 찾으러 오셨음을 밝히시며,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은 이방인을 합한 택하심을 받은 사람들임을 가르칩니다.
이와 같이 성경의 모든 가르침은, 인간의 한 사람도 구원을 받을 자격이 없고, 하나님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모두가 멸망에 이를 것이나, 인간 중에 몇몇을 창세 전에 구원하시기로 계획하시고 역사하심을 가르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