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 장우리의 죄 값을 만족하게 갚으신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는 여호와께서 맹세하신 바 멜기세덱의 반차에 속하신 우리의 대제사장이심을(A) 믿습니다. 선지자들이 미리 예언한 바와 같이, 우리의 죄를 씻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자신이 나무로 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귀한 피를 쏟으시고(B),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나타나심으로써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케 하시고, 그의 진노를 멈추게 하셨습니다. 기록된 바와 같이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고 하셨고(C), 마치 도수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과 같다고 하셨습니다(D). 그는 죄인들 대열에 자리 잡고(E), 그가 죄 없으심을 선언하셨지만 본디오 빌라도로부터 정죄함을 받았습니다(F). 그는 훔치지 않은 것을 물어주게 되었다고 하셨고(G), 불의한 자들을 위하여 죽으신 의인입니다(H). 그의 육신과 영혼은 우리의 죄 때문에 무서운 고난을 당하셨으며(I),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J). 마지막으로 그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K)라고 하셨으며, 이러한 모든 것을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하여 참아야 되었습니다.
마치 사도 바울이 말한 것 같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일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고 하겠습니다(L).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입니다(M). 그리스도께서 상하심으로 우리가 위로를 받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희생하신 것 외의 어떠한 딴 것으로는 하나님과 화해하는 방법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거룩하게 한 자들을 영원히 완전케 하심을 믿고 감사합니다(N). 하나님의 천사가 그를 예수님, 즉 구세주라고 부른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그의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때문입니다(O).
A.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치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시 110:4)..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히 5:10).
맹세를 할 때 우리는 높은 직위에 있는 분 앞에 나아가서 합니다. 인간이 '하늘을 두고 맹세하노니'라고 할 때는 자기가 말하는 바가 절대적으로 진실임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치 아니하시리라'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가 '영원한 제사장'이 되실 것이 절대적으로 진실함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멜기세덱의 반차'는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바쳤던 제사장 멜기세덱을 지적하며, 그는 '의의 왕이요 평강의 왕이요…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히 7:2-3)고 한 것으로 보아 그리스도 자신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신 것은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달리게 하심으로 누구든지 그를 믿는 사람은 하나님과 화해할 수 있음을 가리키며, 하나님의 자녀가 됨을 또한 말합니다.
히브리서 5:10절에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멜기세댁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고 부르신 것은 하나님만이 우리의 죄를 사하실 수 있음을 가르칩니다.
B.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로써만 죄 사함을 받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롬 5:8-9).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박으시고(골 2:14).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히 2:17).
로마서 5:29절은, 그리스도의 피로써 우리가 구원받는 것이 하나님의 크신 사랑임을 설명합니다.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은 의롭지 못한 인간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택하여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운 모세가 의로우신 하나님을 직접 눈을 들어 대면할 수 없었고,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를 본 후 산에서 내려온 모세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쳐다 볼 수 없었던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죄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영원히 상실하도록 만들었지만,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을 의롭다고 간주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불순종하며 범죄하는 인간에게 내리시기로 작정하신 하나님의 공의이십니다. 그 하나님의 진노를 세상 마지막에 세상의 모든 눈이 볼 것입니다(롬 2:5).
골로새서 2:14절은 범죄한 자를 멸하시기로 결정하신 공의의 약속이며, '행한 대로 갚으리라'고 하신 약속에 따라 인간의 행함(범죄함)을 책에 기록하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계 20:12). 생명책에 기록된 택하심을 받은 백성은 이 행함에 따라 기록하는 책에서 '도말'되었음을 지적합니다. '십자가에 못박으시고'는 우리의 죄를 더 이상 생각지 않으실 것의 약속입니다.
히브리서 2:17절은 제 18장에서 공부한 바가 있습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 9:12).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 4:25).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 15:13).
하나님께서 짐승을 잡아 속죄의 제사를 드리도록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것은, 구원을 받을 모든 믿는 자들을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속죄물로 오시어 죽으심을 당할 것을 상징으로 가르치신 것입니다. '염소와 송아지'들은 죽임을 당하고, 그 흘린 피를 가지고서야만 백성들과 제사장들이 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고, 성소는 하나님께서 계신 곳을 상징합니다. 이스라엘의 제사법은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속죄를 이루시는' 그림자이며, 그리스도의 속죄로 우리가 하나님 앞(성소)에 적접 나아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로마서 4:25절은 제 20장에서 공부한 바 있습니다.
'우리의 범죄함'은 아담이 범죄함으로 죄가 인간의 속성이 된 것이며, '내어줌이 되고'는 그리스도께서 자진하여 십자가에 달리셨으며,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는 우리가 받는 구원은 우리의 의로운 행동에는 상관이 없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지적합니다.
요한복음 15:13절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설명하셨습니다. 창조주이시며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영혼은 죽어 있고, 그들의 육신은 범죄하여 소망이 없는 것을 살리시기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버리시고, 인간을 친구라고 부르시는 그 크신 자비를 어떻게 다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박아 죽였으나(행 2:23).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 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롬 8:32).
사도행전 2:23절은 제 13장에서 공부한 바 있습니다.
요한복음 3:16절은 아마도 성경 구절 중에서 가장 많이 읽고 암송되는 구절일 것입니다.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민으로 택하신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기 위함이었으며,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그의 택한 백성이 온 세상에 흩어져 있음을 가르칩니다. '저를 믿는 자마다'라고 한 것은 인간의 의지를 가지고 그리스도를 믿게 되는 것처럼 생각되기 쉬우나, 세례 요한이 같은 장에서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리라'고 하였고, 믿음은 받는 것이지 인간이 생각해 내는 것이 아님을 여러 번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사랑하사'라고 하신 크나 큰 사랑에 대한 설명을 로마서 5:8절에서 읽은 바 있습니다.
로마서 8:32절은 제 20장에서 공부한 바 있습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8).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히 9:14).
디모데전서 1:15절은 사도 바울이 자기가 죄인이었음을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한 신앙의 간증입니다. 이 고백은 사도 바울이 자기를 가리켜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고전 15:8)라고 한 것과 대조가 됩니다. 모든 믿는 자들이 거듭날 때 한결같이 경험하는 것은, 하잘 것 없는 자신을 구원하시는 이유를 알 수 없어 눈물로써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거듭난 사람의 한 가지 증거는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빌립보 2:8절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진하여 인간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자원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음을 가르칩니다. '죽기까지'의 뜻은, 하나님의 속성을 가지신 그리스도는 영원한 하나님이시며(딤전 1:17), 죄가 없으시면서(요일 3:5) 우리 죄를 대신하셨기 때문에 우리 죄의 삯을 죽음으로 갚으시고, 하나님의 속성을 따라 우리도 영생을 얻을 수 있게 하셨음을 가르칩니다. '십자가에 죽으심'은 인간이 받을 수 있는 가장 가혹한 형벌이었습니다.
히브리서 9:14절은 '창조주이신 하나님 자신의 역사가 심령이 죽은 우리를 살리시고, 우리가 다시 하나님을 영원히 섬기게 되었노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인간에게 두 가지 영이 있음을 가르치며(고전 2:12), 세상의 영을 가진 사람들은 그 행실이 하나님 앞에서 죽어 있음을 가르칩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벧전 1:18-1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요 10:9).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요일 5:10).
이스라엘 역사에 조상들의 유전 중에는 망령된 것이 있었으며(겔 20:18, 행 7:51), 이러한 행실에서 돌이켜 구원을 받는 것은 세상의 어떠한 것(없어질 은이나 금)으로 된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의 피로 되었음을 베드로전서 1:18-19절은 가리킵니다. '점 없는 어린양 같은'은 하나님 자신이신 그리스도께서 죄 없으시면서 백성을 위하여 유월절에 도살되신 것은 오로지 '점 없는 어린양'이심을 말합니다. 이 구원의 값이 얼마나 크고 귀한지는 사람들이 거듭난 후 조금씩 알게 됩니다.
요한복음 10:9절에 예수님께서 자기를 문이라고 하신 것은 그리스도를 통하여서만 구원이 있음을 가르치며, 그 '문을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고 하신 것은 거듭난 영혼을 하나님께서 책임을 지고 기르실 것의 약속입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은 우리 구원이 보장되고 분명한 것의 상징이며, 문에서 나오는 것은 우리가 세상에서 살아야 되는 상징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살지라도 목자 그리스도의 보호 아래 있음을 이 구절은 가르칩니다.
요한일서 5:10절에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는 거듭난 자들의 구원의 확신이며,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한 것은 인간이 죄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들이 죄 없다고 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정죄하시는 것을 부정함을 말합니다. 우리가 거듭나지 않고서는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깨닫지 못합니다.
C. 그리스도께서 상하심은 우리의 죄로 인함이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 53:5).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벧전 2:24).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는 범죄하여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던 인간이 하나님과 화해하고, 친구가 된 것을 가르칩니다. '나음을 입었도다'는 우리가 받을 영원한 지옥의 형벌이 면제되었음을 말합니다. 나를 살리기 위하여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자신이 인간이 되어 고난을 당하신 것을 어떻게 다 우리가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친히 나무에 달려'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세상의 한 사람으로부터도 위로를 받지 못하셨음을 암시합니다. 세상에서 믿고 가르쳐 놓은 모든 제자들도 한 사람도 남지 않고 도망하였습니다. '의에 대하여'는 그리스도의 의를 말하며, 우리의 구원은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음으로써만 받게 됩니다.
D.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 53:7).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는 그리스도께서 자발적으로 고난을 당하셨음을 말하며, 억울한 죄과를 변론하지 않으셨음을 말합니다. 어린양의 본성은 그를 죽이는 자라 할지라도 다른 짐승들처럼 물고 대들지 않으며, 곤욕을 당할지라도 말없이 당하셨음을 가르칩니다.
E. 죄인들의 대열에 서신 그리스도
이것은 '그가 범죄자들과 더불어 헤아림을 받았다'고 말한 성경을 이룬 것이라(막 15:28).
본문은 한글 킹 제임스 성경에서 인용한 것으로 개역판에는 이 구절이 없습니다. 이 말씀은 죄 없는 그리스도를 죄수들과 일반으로 취급하였음을 말하며, 이사야 53:11-12절은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실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사 53:11-12).
F. 빌라도에게 심판을 받으신 그리스도
빌라도가 가로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노라(요 18:38).
빌라도가 '진리가 무엇이냐'라고 한 것은 그리스도를 업신여긴 것이며, '유대인들에게 나가서'는 빌라도가 심판하는 권한을 가지고 정치적인 이득을 얻기 위하여 유대인들과 타협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G. 훔치지 않은 것을 갚으신 그리스도
무고히 나를 미워하는 자가 내 머리털보다 많고 무리히 내 원수가 되어 나를 끊으려 하는 자가 강하였으니 내가 취치 아니한 것도 물어 주게 되었나이다(시 69:4).
'머리털보다 많고'는 온 인류가 하나님을 대적하였음을 말하며, '나를 끊으려 하는 자'는 사단의 역사이며,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는 구원 계획을 실패하도록 방해함을 말합니다. '내가 취치 아니한 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선언하신데 대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참을 수 없었음을 말하며(요 10:36),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시라면 우리에게 영생을 줄 수 없습니다.
H. 불의한 자를 위하여 죽으신 의인, 예수님
그리스도께서도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벧전 3:18).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롬 5:6).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은 착한 사람들을 구원하시려는 계획이 아니며, 소망이 없는 불의한 자들을 살리고자 하심입니다. 우리의 죽었던 영혼을 살리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고, 우리의 영혼이 거듭남으로써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는 순간 예루살렘 성전 지성소의 휘장이 갈라진 기록에서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지성소에는 대제사장이 일년에 단 한번, 도살된 어린 양의 피를 제단에 뿌림으로써 백성의 속죄제를 드렸으며,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던 곳이며, 모든 딴 사람들은 지성소 안을 보기만 하여도 죽게 마련이었습니다. 이제는 그 지성소를 가리는 휘장이 없으므로 하나님께서 계시는 지성소(상징의)는 우리에게 개방이 된 것입니다.
로마서 5:6절에 '연약할 때'는 '공중의 권세 잡은 자'의 통치 아래 있을 때를 말하며, '경건치 않은 자'는 모든 인간들이며 거듭나기 이전의 우리의 상태입니다. '기약대로'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철두철미하게 구성되어 있으며, 때가 될 때 그 계획하신 내용이 이루어짐을 가르칩니다.
I. 우리가 다 상상할 수 없는 무서운 고난을 당하신 그리스도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잇틀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사망의 진토에 두셨나이다(시 22:15).
육십 이 이레 후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하려니와 그의 종말은 홍수에 엄몰됨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단 9:26)
시편 22편은 다윗 왕의 시로서 그리스도의 고난 당하심을 그리스도의 입장에서 예언한 메시야적인 시편(Messianic Psalm)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고난은 우리 인간이 당하는 죽음의 고통이 아닙니다. 내가 지옥에 가서 영원히 받아야 할 고난과 똑 같은 고난을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택하신 백성의 수는 엄청나게 많은 것으로 성경은 가르치며, 그 모든 백성이 영원히 받았어야 할 고난을 다 한꺼번에 우리 주 그리스도께서 받으셨습니다. 시편 22:은 이 고난의 어려움을 어느 정도 우리에게 설명합니다.
'왕의 백성'은 선민이던 이스라엘이며, '성읍과 성소'는 그리스도이며 훼파한 자들은 바리새인들과 대제사장입니다. '홍수에 엄몰됨 같을 것'은 노아 홍수 때에 인간의 멸망을 가리키며,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는 사단이 무저갱에 영원토록 결박되는 순간, 즉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승리하시는 순간을 말합니다.
해롤드 캠핑 저, '다니엘 9장의 70이레'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실 것을 예언한 다니엘 9장의 내용을 자세히 설명합니다.
J.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은 땀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 방울같이 되더라(눅 22:44).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는 그리스도께서 당하시는 고난이 너무도 큰 것을 암시하며, 밤낮 사흘을 당하시는 고난(마 12:40)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 하실 때부터 시작되었음을 이 구절에서 알 수가 있습니다.
K.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제 구(9)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마 27:46).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는 시편 22:2절의 인용입니다.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받고 계시는 그리스도의 입장을 사람의 생각으로는 다 짐작할 수가 없지만, 이 구절은 우리를 대신하여 큰 형벌을 받으시는 괴로움이 절정에 도달한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L. 십자가만을 바라보는 신앙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2).
사도 바울은 당시에 높은 학문과 지식을 소유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 없는 자 였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그러한 모든 것을 '똥'으로 여긴다고 한 것은(빌 3:8), 십자가를 통하여 오는 구원에 대한 기쁨과 소망이 세상의 무엇보다도 귀한 것을 깨달았다는 간증입니다. 구원의 귀중한 것을 알게 되는 모든 구원받은 자들은 동일한 간증을 할 것입니다.
M. 가장 고상한 지식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빌 3:8).
'해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더 아는데 방해가 될 것을 버린다는 뜻이며,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은 말할 것도 없이 우리가 구원을 얻는 과정입니다. 천국에 가는 것을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과 별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아직도 모르고 있는 사람입니다. '배설물'은 잘못된 번역이며 '똥'이 바른 번역입니다. 하나님께서 심상치 않은 단어를 성경에 쓰실 때는 깊은 뜻이 숨어 있습니다. 성경을 번역하는 성경학자들이 자기들의 작은 지혜로 하나님을 돕는 줄 알고 듣기 좋은 대치어로 바꾸었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N. 한번 드린 제사로 우리를 대속하심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히 9:25-28).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히 10:14).
세대주의자들이 말하는 바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세대에 따라 다르다고 주장합니다. 히브리서 9장은 그들의 주장이 잘못임을 우리에게 가르치며, 만일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드린 제사가 신약시대의 믿는 자들만을 위한 것이라면 구약 시대에도 예수님께서 오시어 십자가에 달렸어야 된다는 논증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는 인간이 태어나야만 구원받을 기회가 있음을 가르치며, 그 기회를 놓친 사람들에게는 영원한 멸망에 이르는 심판이 남아 있음을 가르칩니다. 또한 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세상 끝'에 오셨음을 말하며, 이 마지막 시대가 2, 000년이 계속되었음을 가르칩니다. '죄와 상관없이'는 택하신 백성이 받는 특권이며, 우리가 용서받은 죄를 하나님께서 기억치 않으시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 동일합니다.
인간이 아무리 노력을 한다 할지라도 거룩하고 온전하게 될 수 없지만, 그리스도께서 희생의 제물이 되신 그 공로로 우리에게 의의 옷을 입히시고, 다시 오실 때 우리를 영원히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는 거룩하고 온전한 몸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O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는 그리스도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 1:21).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행 4:12).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눅 1:31).
마태복음 1:21절에 '자기 백성'은 아브라함의 혈통을 받은 이스라엘이 아니라, 영적인 이스라엘, 즉 택하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구원은 우리의 죄를 없게 하시는 것이므로, 거듭난 자들의 생활이 죄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이 당연함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사도행전 4:12절은 인류 역사에서 인간의 구원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써만 이루어짐을 가르치며,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그 때 이전에 살던 모든 사람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써만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 때에 그리스도의 이름을 알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에게 미안한 얘기이지만, 20세기에 살면서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 분을 알 수 있도록 모든 편리함을 주시는 하나님께 우리는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누가복음 1:31절에 '이름을 예수라 하라'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주이심을 가르칩니다. '예수'는 히브리어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영원한 천국의 백성이 된 기쁨을 어떻게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