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3 장
거룩한 예식(성례식)
연약하고 지각이 부족한 인간의 본성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그의 선하시고 자비로우신 은혜로써 그의 약속을 분명하게 하시기 위하여, 거룩한 예식을 지키도록 명령하신 것을 우리는 믿습니다(A).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신앙이 성장하고 견고하게 되도록 하십니다(B). 하나님께서 이러한 성례식에 대한 명령을 복음 말씀에 더하심으로(C) 우리가 느끼는 감정으로나, 우리 마음속으로 더 잘 깨닫게 인도하십니다(D). 성례식은 눈에 보이는 표적이며(E)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 마음을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역사의 상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례식은 우리가 속을지도 모르는 어떠한 종교 의식과 같이 허망한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성례식의 표적은 진리 자체가 되시는 그리스도의 상징이며, 우리가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성례식의 뜻이 전혀 없게 됩니다. 더욱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지키도록 명령하신 두 가지의 성례식, 즉 세례식과 (F) 예수 그리스도의 성찬식을 지키는 것으로 우리는 만족합니다(G).
A. 아브라함에게 할례로써 언약을 인치심
저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저희로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롬 4:11).
'할례의 표'라고 한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인봉하는 것을 뜻하며, 아브라함의 행위에서 온 것이 아님을 설명합니다. 로마서 4장은 이 사실을 처음 두 절에서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설명합니다.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된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롬 4:1-2).
'인친 것이니'는 영원히 변함없는 약속을 말하며, 그 인치심이 아브라함의 후손 중에 할례 없이 거듭난 사람들을 지적합니다.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는 신약시대의 택하심을 받은 모든 백성을 지적합니다. 이 구절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언약을 할례로써 인봉하시고, 그 인봉은 신약시대에 구원을 받는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이 됨을 말합니다. 결론적으로 아브라함에게 명령하신 할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우리 구원의 상징임을 설명합니다. '믿음의 조상'은 우리의 믿음과 같은 믿음의 소유자를 말하며, 그 믿음은 말할 것도 없이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명하신 세례의 성례식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의 상징이며, 할례와 같은 뜻이 있습니다.
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창 17:11).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출 12:13).
여호수아 5:2-3절에 할례를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설명합니다.
창세기 17:11절에, '나와 너희 사이'에서 '너희'는 그리스도의 택하심을 받은 모든 사람들입니다. '언약의 표징'은 로마서 4:11절에서 설명한 바가 있습니다.
출애굽기 12장에, '내가 피를 볼 때'는 이스라엘이 양을 잡아 문설주에 바른 피며, 문이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동시에, 피는 그리스도의 희생의 피를 상징합니다. '너희를 위한 표적'은 구원하실 약속에 대한 '인치심'을 말합니다. 마치 이스라엘이 피를 (유월절에 도살된 양을) 생각할 때 애굽에서 멸망의 재앙을 피하고 애굽에서 나온 것을 기억하듯이, 우리는 세례 예식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는 것을 기억하게 됩니다.
B. 우리의 믿음이 자라게 하시고 굳게 하심
그 영광의 힘을 좇아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골 1:11).
이 구절은 우리의 믿음이 자라는 것이 우리의 열심에서 오는 것이 아니며, 능력이신 그리스도의 역사이심을 설명합니다. 사도 바울이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고후 12:9)라고 한 것은 우리의 신앙이 그리스도의 신앙일 때에 비로소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됨을 간증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을 생각하게 하는 성례식은 우리 믿음의 근원이신 그리스도를 의지하게 합니다.
C. 세례를 베풀고, 받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9-20).
이 구절은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하신 명령입니다. '모든 족속으로'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온 세계적임을 말씀하셨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라고 하신 것은, 우리가 그의 명령을 준행할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의 약속입니다. 그 하나님은 삼위일체이신 성부, 성자, 성령 곧 한 분이신 하나님이십니다.
D. 구원을 얻는 과정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롬 10:9).
이 구절은 각별히 조심하여 그 뜻을 찾아야 하며, '입으로'라고 한 것이 우리의 육신의 입이 아니고 '영적인 입'임을 깨달아야 됩니다. 예수님께서 누차에 걸쳐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라고 하실 때, 그 귀를 가진 사람들만이 '예수를 주로 시인하는' 입이 있습니다. 사도신경을 줄줄이 암송한다고 해서 그리스도를 구주로 시인하는 것이겠습니까?
E. 눈에 보이는 하나님의 약속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창 9:13).
이 구절은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무지개가,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시는 물로 심판하시지 않을 것의(15절) 약속이며, 그 약속은 진실합니다. 우리는 성례식이 행해지는 것을 볼 때마다 하나님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구원계획이 진실함을 믿게 됩니다.
F. 그리스도의 할례와 그리스도의 세례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골 2:11-12).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 뿐이니 겨우 여덟명이라(벧전 3:20).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고전 10:2).
골로새서 2:11-12절은 우선 할례와 세례가 다 그리스도의 명령으로 시행되었고, 또 같은 뜻이 있음을 설명합니다. 그 같은 뜻은 우리가 '장사한 바 되고' 또 '그와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고 한 우리의 구원에 대한 설명입니다. 몇몇 교파는 이 구절을 인용하여 세례의 방법을 일정한 형태로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세례의 방법에 대하여는 다음 장에서 공부하겠습니다.
베드로전서 3:20절에서 노아의 홍수는 세상의 마지막날을 상징합니다. 노아의 식구가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것은 그들도 멸망에서 제외될만한 아무런 조건이 없음을 말하며, 그들의 구원이 은혜로 된 것을 설명합니다. 노아의 홍수는 또한 물로 받는 세례와 연결이 되며, 세례를 받을 때나 세례 받는 것을 볼 때마다 노아의 홍수를 기억나게 합니다.
고린도전서 10:2절에서 '모세의 세례'는 모세가 시행한 세례이며, 하나님의 명령대로 율법을 시행한 것을 지적합니다. 율법은 제사법과 절기를 지키는 것을 우선 지적하지만, 성경에서 읽는 모든 하나님의 명령은 율법입니다. '구름과 바다'는 멸망의 상징이며, 홍해를 건넘으로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해방되었고, 광야에서 구름 기둥은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상징하나, 그 하나님을 볼 수 없게 가린 것입니다.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출 33:20)고 하신 것은 진노의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진노를 은혜로 면했습니다.
G. 성찬식의 뜻, 그리스도의 희생을 기억하는 것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전 5:7).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 26:26-28).
고린도전서 5:7절에 '누룩 없는 자'는,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은 자'이며, 이것을 누룩 없는 떡을 먹던 이스라엘과 비교하고 있습니다. 유월절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일의 상징임을 이 구절은 가르칩니다.
마태복음 26:26-28절은 예수님의 마지막 성찬식의 장면이며, 성찬식의 뜻을 가르칩니다.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는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눅 22:19)라고 하신 것과 같으며, 이 축복은 안식일을 축복하신 것(창 2:3)과 같은 뜻이 있습니다. 즉 성찬식의 떡이 그리스도의 희생을 지적하는 것은, 창조주이신 그리스도를 지적하는 것과 동일합니다. 그리스도의 희생은 창조의 완성을 가리킵니다. '이것이 내 몸이니라'고 하신 것을, '성찬식에서 떼는 떡이 실제로 변하여 살이 된다'는 것을 가르치는 교파가 있습니다. 성경이 영적인 책임을 깨닫지 못한 까닭입니다. '잔을 가지사'는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를 상징하며,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명을 따라 유월절에 양을 잡아 제사할 때 그 피를 받아 성전에 뿌림으로써 죄 사하심을 상징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은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셨으며, 이 언약은 일방적인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마치 이 언약은 상속의 유언을 쓴 것과 같이, 유언을 하는 자가 유서를 일방적으로 쓰고, 또 그 유언자가 죽음으로써만 상속이 성립되는 것과 같음을 히브리서 9:11-20절은 설명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일방적인 하나님의 사역이며, 우리가 하는 아무 일도 구원을 받는 일에 보탬이 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