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4 장
세례의 성례식
우리는 율법의 완성이신 그리스도(A)를 믿으며, 그리스도께서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기 때문에, 다른 어떤 피도 흘릴 필요가 없게 된 것을 믿고, 그것을 간증합니다. 그리스도는 또한 피를 흘리는 할례를 폐기하셨고 그 대신에 세례의 성례식을 명령하셨습니다(B). 세례를 받으므로 우리를 하나님의 교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시며, 모든 세상의 다른 사람들과 거짓 종교로부터 구별하심을 상징합니다. 이 세례를 통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우리 마음속에 인치심을 바라며,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마음속에 지니게 됩니다. 이러한 세례의 성례식은 하나님께서 영원히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것을 그리스도께서 간증하시는 것의 상징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그리스도에게 속한 모든 사람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C) 물로 세례를 받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이 세례는 마치 몸에 묻은 더러운 것을 물을 부어 씻는 것 같이, 그리스도의 흘리신 피가 우리 영혼의 더러움을 성령의 역사로써 씻으심을, 몸에 물을 뿌림으로써 상징합니다(D). 하나님의 세례는 우리 영혼의 죄를 씻으시고(E), 진노의 자식들이었던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로서 거듭나게 하십니다(F). 이렇게 거듭나는 것은 물을 뿌림으로써 되는 것이 아니고(G), 그리스도께서 보혈을 뿌리심으로 되는 것이며(H), 이것은 우리가 홍해를 건너는 것이며, 사악한 바로 왕의 폭정으로부터 빠져 도망쳐 나오고(I), 영혼의 본향,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과정으로 상징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세례식은 목사들이 시행하는 것뿐이며, 우리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우리 주님의 선물과 은혜를 성례식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것을 상징합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의 더럽고 불의한 모든 것을 씻어 정결케 하시며(J), 우리 마음을 새롭게 하시며, 모든 위로를 주시며(K), 그를 아버지와 같이 신뢰하는 믿음을 주시며, 우리의 영혼으로 하여금 새로운 성품을 입게 하시고(L), 우리의 옛 성품이 활동하는 모든 역사를 제거하십니다.
그러므로 영생을 얻은 상징으로, 한번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믿습니다(M). 우리가 모태에서 두 번 다시 나지 않는 것 같이 우리는 세례를 한번 이상 받지 않는 것을 믿습니다(N). 더욱이 세례를 받아 물이 우리 몸 위에 있는 순간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는 것을 생각할 뿐 아니라, 그 은혜가 평생을 통하여 우리에게 있기를 또한 원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재침례를 주장하고, 유아의 세례를 부정하는 잘못된 Anabaptist를 배척합니다. 우리는 유아들도 세례를 받고 언약의 자손으로서 인치심을 받을 수 있는 것을 믿으며, 구약 이스라엘에게 언약으로 유아에게도 시행하도록 한 할례와 같은 약속을 상징함을 믿습니다. 사실상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보혈의 피는 성숙한 성도들을 위할 뿐 아니라, 유아들도 위하심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마치 구약 율법에 유아가 탄생한 후 얼마 안되어 어린양을 바치도록 명하신 것 같이(O), 그리스도께서 유아를 포함한 인류를 위하여 행하신 죄 사하심의 상징인 세례를 유아들에게도 베풀어야 합니다(P, Q). 세례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의 상징입니다. 할례가 이스라엘 온 백성에게 적용이 되었음으로, 사도 바울은 세례를 그리스도의 할례라고 했습니다.
주(주) : 벨직 신앙고백 뿐 아니라 모든 개혁주의 신앙고백이 물로 받는 세례가 구원을 받는데 필수적인 과정인 듯 말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하는 어떠한 일도 우리 구원의 원인이 될 수 없음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개정했습니다.
A. 율법의 완성이신 그리스도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롬 10:4).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며, 완성하시기 위하여 오셨음을 마태복음 5:17절에 말씀하셨고, 사도 바울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라고 한 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율법과 밀접한 관계를 아직도 가지고 있음을 말합니다. '율법의 마침'은 구약의 규례와 제사법의 폐기를 말하는 동시에, 인간이 하나님께 불복종함으로 율법을 주셨지만,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그 율법대로 심판하실 하나님의 진노가 택하신 백성에게는 없을 것을 가르칩니다. '의를 이루기 위하여'는 하나님의 백성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게 됨을 말합니다.
B. 세례를 주라고 명하심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마 28:19).
'너희는 가서'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택하심을 받은 사람들을 보내심으로 이루어지며, '제자를 삼아'는 그리스도의 가르치심을 그대로 가르쳐야함을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순종할 때 우리는 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는 깊이 묵상해야 할 뜻이 있습니다. 세례의 한 방법을 가지고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 교파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는 것이며, 우리가 거듭날 때 삼위일체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그의 백성이 되게 하신다는 근본적인 교리를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C. 성령과 불의 세례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 12:13).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마 3:11).
고린도전서 12:13절에 '한 성령으로'라고 한 것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 아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세례를 주시는 것의 설명이며, '한 몸이 되었고'라고 한 것은, 그 세례를 받는 결과로 하나님께서 구성하신 한 교회의 일원이 되는 것을 가르칩니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주관하시게 됨을 가르칩니다.
마태복음 3:11절은 세례 요한의 간증이며, 세례 요한의 세례가 회개하는 세례임을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성령과 불의 세례는 구원을 받는 세례입니다. 세례 요한의 세례는 외형적인 상징의 예식이며, 성령과 불의 세례는 우리를 천국의 백성으로 다시 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입니다. 세례 요한의 세례는 그리스도께로 우리를 인도하는 세례이며, 성령과 불의 세례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하나님께 바치는 세례입니다. 어떠한 교파는 세례를 받을 때 물 속에 들어가는 것은 '우리가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는 것의 상징'이라고 합니다. 마치 '그리스도를 위하여 내가 죽는 생활이 내가 구원을 받는 길이다'라고 생각하기 쉬운 주장입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세례를 사례라고 번역했을 텐데, 우리의 죄를 씻는 상징임으로 세례라고 번역한 것은 바른 번역입니다. 어떤 성경은 'Baptism'을 침례라고 번역하였는데 이것은 불행한 일이며, 성경을 억지로 이해하려는 노력입니다. 물로 받는 우리의 세례가 어떠한 방법으로 행해지든지, 그것은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의 죄를 씻는 상징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성령과 불의 세례를 받은 것을 믿고, 기억하기 위하여 순종하는 마음으로, 물의 세례를 받습니다.
D. 물과 피로 임하신 그리스도
그 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요 19:34).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요일 5:6).
요한복음 19:34절에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라고 한 것은 예수님께서 숨진 것을 확인한 것이며, '피와 물이 나오더라'는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그 피가 우리를 속죄하심과 그의 생명의 말씀(물)으로 우리를 영원히 살게 하시는 것의 설명입니다.
요한일서 5:6절은 우리가 구원을 받을 때 '물과 피'로 되며, 그 물은 생명의 말씀이며, 그 피는 그리스도의 보혈, 즉 유월절의 어린양이 되신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 임을 가르칩니다. 이 구절은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것이 이 생명의 말씀과 우리의 죄를 대신하시는 속죄물로 오셨음을 가르칩니다. '물로만 아니요'라고 한 것은 그 흘리신 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과 화해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의 설명이기도 합니다.
E. 우리 영혼의 죄를 씻으시는 성령의 세례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히 9:14).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7).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계 1:5).
이제는 왜 주저하느뇨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행 22:16).
히브리서 9:14절은 우리가 성령의 세례를 받는 과정을 설명합니다. 우리가 성령의 세례를 받게 되는 특권은 그리스도께서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피로써 시작이 되며, 이로 인하여 우리의 죽은 양심이 살아나게 하시고, 깨끗하게 되며, 하나님을 섬기게 됩니다.
요한일서 1:7절에서 '빛 가운데 행하면'은 우리가 성경의 바른 교리를 받아 그대로 따라감을 말하며, '서로 사귐이 있고'는 믿는 자들이 같은 신앙을 가지고 서로 지내게 될 것의 약속입니다. '행하면'은 우리가 '선택하여 그렇게 하면'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우리가 빛 가운데서 행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죽었던 우리를 살리시고 우리를 빛 가운데서 살게 하시며, 그것이 바로 우리가 성령의 세례를 받는 과정이며 결과입니다.
요한계시록 1:5절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정녕 죽으리라'고 선언하신 하나님의 사형 선고에서 우리가 해방되는 것을 가르칩니다.
사도행전 22:16절에서 사도 바울이 '너의 죄를 씻으라'고 한 것이 사도들이 세례를 베푸는 순간 그것으로 죄 씻음을 받는 것 같이 생각되기가 쉬우나, 참 세례를 주시는 분은 하나님 자신이심을 반드시 기억해야 하며, '이름을 불러'라고 한 것은 복음을 듣고 깨닫는 귀를 가진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는' 과정입니다.
F. 중생의 씻음으로 되는 우리의 구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딛 3:5).
디도서 3:5절은 제 9장에서 공부한 바가 있습니다.
G.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 뿐이니라(고전 3:7).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벧전 3:21).
고린도전서 3:7절은 인간이 하는 일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과 구별이 되어 있으며, 인간의 어떠한 노력도 성령의 역사가 없이는 그 성과가 없음을 가르칩니다. 성경에서 나무는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하는 경우가 많이 있으며, 그 나무는 하나님의 말씀인 물, 즉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자라게 됩니다.
베드로전서 3:21절에서 '물'은 우리의 '선한 양심' 즉 영혼이 지은 죄를 씻는 상징이며, 아무리 많은 물을 가지고도 우리의 영혼을 씻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참 세례는 하나님께서 직접 베푸심을 가르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는 우리가 거듭나는 순간 성령의 세례를 받음을 가르치는 동시에 세례의 뜻이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는 것'을 가르칩니다.
H.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음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벧전 1:2).
베드로전서 1:2절에서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는 우리가 성령의 세례를 받는 것을 지적하며, 그 성령의 세례는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대로 되는 것을 가르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것을 가리키며, 그 사실이 바로 우리의 세례를 가능하게 하신 것입니다. 물을 뿌려 세례를 주는 것은 '피 뿌림을 얻는' 상징이며,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으심을 기억나게 하는 것입니다.
I.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억함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롬 6:3).
이 구절도 침례를 받는 이유를 설명하는데 사용할 수 있습니다. 즉 우리가 세례를 받는 것은 세상에 속한 우리의 정욕이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함께 장사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거듭난 자들의 생활의 변화를 가리키며, 사도 바울은 우리의 삶이 매일같이 죽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할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신 죽으신 것이며, 매일같이 정욕을 죽이는 우리의 생활을 기억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J. 세례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기억나게 하심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엡 5:25-26).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전 6:11).
에베소서 5:25-26절은 우리의 세례가 그리스도의 크신 사랑을 기억나게 하심을 가르칩니다.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라고 하신 것은 거듭나서 성령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계속하여 말씀으로 자라게 될 것을 가르치며, 이러한 성령의 역사는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백성을 신부로 맞아들이는 과정임을 가르칩니다.
고린도전서 6:11절은 제11장에서 공부한 바가 있습니다.
K. 우리 마음을 새롭게 하시는 성령의 세례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딛 3:5).
디도서 3:5절은 제 9장에서 공부한 바가 있습니다.
L. 세례는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게 되는 것의 상징임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입었느니라(갈 3:27).
물로 세례를 받고도 구원을 받지 못한 기록이 성경에 있습니다(행 8:13-21). 구원을 받을 하나님의 백성은 구원을 받는 순간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으므로, 벌거벗은 영혼을 가릴 수 있게 됩니다.
M. 하나 밖에 없는 성령의 세례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마 28:19).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엡 4:5).
마태복음 28:19절은 제 8장에서 공부한 바가 있습니다.
에베소서 4:5절은 제 7장에서 공부한 바가 있습니다.
N. 한번만 받는 성령의 세례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데 나아갈지니라(히 6:1-2).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러라 이에 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행 8:16-17).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는 우리가 거듭난 후 성장해야 함을 말하며, 히브리서 5:12절에는 '젖이나 먹고 단단한 음식을 못 먹는 자가 되었도다'라고 함으로써 신앙이 자라지 않는 사람을 가리켜 말했습니다. 신앙이 자라지 않는 사람은 '젖을 먹는 자'이며 남이 주는 것만을 받아먹는 유아를 가리킵니다. 신앙은 오로지 우리 영혼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라게 됩니다. '완전한데 나아갈지니라'고 한 것도 성경말씀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구원 계획을 배우게 됨을 지적합니다. '죽은 행실'은 거듭나기 이전에 행하던 세상 사람들의 행실입니다. '세례들과 안수와 …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는 우리의 영혼이 성령과 불로 세례를 받는 구원에 대한 가르침이며, 이 가르침을 '초보'라고 한 것은 세례를 받은 후 신앙이 자람을 가르칩니다.
이 구절은 물로 세례를 받는 일이 우리의 구원과는 상관이 없음을 가르칩니다. 성령을 받는 것은 우리가 거듭나는 것을 지적하며, 그리스도인의 생활이 비로소 시작되며 매일같이 자라나게 됩니다. 성경의 다른 기록에 성령을 받은 후 물의 세례를 받았음을 이 구절과 비교하면, 물로 세례를 받은 것은 우리가 말씀에 순종하는 표시이며, 우리의 구원은 완전히 하나님의 역사임을 알게 됩니다.
Q. 할례와 대조가 되는 세례
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대대로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혹 너희 자손이 아니요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무론하고 난 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창 17:11-12).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 하시고(마 19:14).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행 2:39).
창세기 18장에서 '언약의 표증'이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약속하신 것을 이스라엘이 보고 기억하도록 하신 은혜입니다. 이 구절은 우리의 구원이 세계적임을, '너희 자손이 아니요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무론하고'라고 하심으로 알게 됩니다.
마태복음 19:14절에서 어린아이들을 지적하여,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고 하신 것을 잘못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경 말씀의 바른 이해는, 읽는 구절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를 찾는 것이며, 그 말씀의 해석이 기본적인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교리를 부정하는 일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가령 이 구절의 해석은 '모든 유아들은 구원을 받았다'라고 한다면, 어머니의 모태에 있던 쌍둥이 중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한다'고 하신 말씀을 부정하게 됩니다. 이 구절에서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요 6:39)라고 하신 말씀이 주석이 되겠습니다. 이 말씀에서 어린아이들이 예수님께 나오는 것은, 모든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 앞에 나올 것의 상징이며, 이렇게 나오는 자는 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임을 가리킵니다. 다음절(마 19:15)에 '예수님께서 아이들에게 안수하시고'라고 읽음으로써 거듭난 자들이 그리스도께로 나아옴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에서 우리가 배우는 교리는, 어린아이들의 구원이 성인들과 차별 없이 이루어짐으로, 우리의 구원을 상징하는 세례가 어린아이들에게도 베풀어질 수 있다는, 기본적인 구원 계획의 가르침을 배우게 됩니다.
사도행전 2:39절은 38절에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라고 한 것이 유아들과 아이들에게도 적용이 됨을 말하며,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라고 함으로써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만이 성령의 세례를 받게 되는 것을 가르칩니다.
P. 믿지 않는 배우자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고전 7:14).
이 구절은 거듭난 자의 거룩하게 되는 생활이, 믿지 않는 배우자로 말미암아 좌절되지 않는 것을 가르칩니다. 많은 경우 믿지 않은 자가 믿는 배우자의 거룩한 생활에 감명되어 하나님께 돌아오는 경우를 듣게 됩니다. 또 많은 경우, 믿는 부모의 자녀들이 건실한 믿는 자들이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인간들의 결혼이 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임을 믿으며, 믿는 자들의 결혼 생활을 하나님께서 축복하심을 알게 됩니다.
Q. 유아의 세례를 당연한 것으로 가르치는 말씀
자녀간 정결케 되는 기한이 차거든 그 여인은 번제를 위하여 일 년 된 어린 양을 취하고 속죄제를 위하여 집비둘기 새끼나 산비둘기를 취하여 회막 문 제사장에게로 가져 갈 것이요(레 12:6).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골 2:1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지키도록 명하신 율법 중에, 유아들을 위하여 세우신 것을 레위기 12:6절에서 읽게 됩니다. 만일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성인들에게만 있는 것이라면 8일만에 받는 할례의 율법은 없었을 것이며, 세례도 성인들만이 받게 될 것입니다. 또한 성경에 세례를 성인들에게만 주도록 하신 명령도 그 어느 구절에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골로새서 2:11절에 '그리스도의 할례'는 성령의 세례를 말하며, 이 할례는 '손으로 하지 아니한' 것이라고 함으로, 할례나 세례가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지나,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의 상징에 지나지 않는 것을 가르칩니다.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라고 한 것은 우리의 흉악한 모든 죄가 사함을 받는다는 성령의 세례의 결과를 가리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