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책이란 서점에 전시되고 독자들에게 읽혀져야 의미가 있는 줄 압니다. 요즈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독자들의 구미에 맞추어 쓴 사이비(似而非)한 책들이 얼마나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본서와 같이 딱딱한 신앙고백을 공부해 보겠다는 독자들은 극소수일 것입니다. 벨직 신앙고백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만한 내용이 아니며, 시장성은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리를 근본적으로 드러낸 책이니 만큼,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배우고자 하는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벨직 신앙고백이 아주 좋은 교과서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

과거에 한동안 교회를 찾아다니던 때를 생각합니다. 당시 많은 한국 교회들이 교리가 무슨 필요가 있는가? 성경만 믿으면 되지 하는 식으로 답변을 하고, 교리도 없이 교회를 운영하는 것을 무슨 자랑처럼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교리가 없는 교회는 사실상 성경을 적당히 알면 된다는 식의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생각은 성도들을 어리석게 만들고, 성경이 요구하는 교회를 변질시키게 됩니다.

성경을 믿는다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을 내 생활의 근본으로 하는 것이며, 그 가르침을 바로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경 구절의 뜻을 다른 성경 구절에서 찾아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성경은 존엄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성령의 도우심을 입어 그 뜻을 알려고 할 때 반드시 진리의 지식을 성경에서 얻게 될 것입니다. 성경을 전체적으로 보면 교회는 교리를 제정하여야 할 것을 가르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때에 교회가 세우는 교리는, 마치 베뢰아 사람들과 같이 성경 말씀을 충분히 상고하여 이루어진 것임을 증거해야 할 것입니다(행 17:10-14).

오늘날 개신교(Protestant)는 불행하게도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각각 다른 교리를 주장하면서 다른 교파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위기에서 성경적 바른 교리를 찾을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 우리가 속한 교회가 주장하고 가르치는 교리가 올바르다는 것을 성경 말씀으로써 증명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교회가 주장하는 교리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강조하는 '은혜의 교리'로 '개혁주의 교리'라고 합니다. 이것을 '칼빈주의 교리'라고도 하며, 이는 개혁자 칼빈이 은혜의 교리를 잘 정립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하나는 '자유의지 교리'라고 하며, 이것을 주장한 신학자 야곱 알미니우스의 이름을 따서 '알미니안(Arminian)교리'라고 합니다. 자유의지 교리의 특징은, 말 그대로 인간의 자유 의지를 강조합니다. 이 두 교리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비교할 수 있습니다.

먼저 전통적인 개혁 교회의 교리에 반론을 제기했던 알미니안 교리를 다음과 같이 요약해 봅니다.

1. 하나님께서 인간의 구원을 예정하신 것은, 인간이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할 것을 미리 아셨기 때문이다.

2. 그리스도께서 만민을 위하여 죽으셨지만, 오직 이 사실을 믿는 자들만이 구원을 받는다.

3. 사람은 자기의 의지로써 선을 행할 수 없고, 성령의 인도로 선을 행한다.

4, 거듭난 사람의 선행은 하나님의 은혜로써 이루어지기는 하나,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할 수 있다.

5. 믿는 자들이 성령의 도움으로 믿음을 보전하지만, 그 은혜에서 떠날 수 있다.

반면, 위 알미니안주의자들의 항론에 응답한 칼빈교리의 5개조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인간은 완전히 타락하여 하나님을 영접할 의지가 없다.(Total depravity)

2.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사람만이 아무런 조건 없이 구원을 받으며, 믿음도 은혜로 얻는다.(Unconditional election)

3. 구원 받기로 예정된 사람들만을 거듭나게 하신다. (Limited atonement)

4. 하나님의 은혜의 구원은 인간이 거절할 수가 없다.(Irresistible grace)

5. 성도가 받은 구원은 상실될 수가 없다.(Perseverance of the saint)

이상의 비교에서 잘 나타나듯이 두개의 교리는 서로 완전히 상반됩니다. 그런데 최근에 이르러 알미니안 교리를 믿는 교파와 교인들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바른 교리를 찾는 것은 성경을 바로 깨닫고자 하는 노력이며, 이것은 자신이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서,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도움을 간구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이제 생명을 내걸고 성경의 바른 가르침을 찾아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狹窄)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 7:14)고 말씀하신 것은, 말세에 인본주의 교리가 범람할 것을 미리 경고하신 것입니다. 사단이 교회를 대항하는 이 말세의 전쟁은, 한마디로 말하여 말씀을 거짓되게 속이는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마 24:24). 이러한 때에 결코 사단에게 속지 않고, 성도에게 주어진 선한 싸움을 승리로 이끌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배울 수 있는 참고서로서, '벨직 신앙고백과 성경이 뒷받침하는 해설'이 잘 사용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두말할 것도 없이, 벨직 신앙고백은 개혁 교회의 교리를 대표합니다. 그러나 좀 더 엄밀히 말하자면 교리를 위한 공부이기보다는, 나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자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이 교리를 배척하며 무시합니다. 이러한 때에 이 교리를 배우고 인정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좁은 문으로 들어가고 협착한 길을 택하는 힘든 일입니다.

필자는 이 좁은 문과 협착한 길을 생각할 때면, 과거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전전하던 때를 상상합니다. 그가 한 때 거느리던 용감한 병사들은 이제 사울의 지휘를 받아 다윗의 목숨을 노리는 군대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다윗은 거듭 쫓겨다니다가 결국에는 적국(敵國)에까지 들어가 피신하게 됩니다. 여기서 저에게 크게 위로를 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윗과 생사를 같이 한 400명 신하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 형제와 아비의 온 집이 듣고는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환난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 장관이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400명 가량이었더라(삼상 22:1-2).

여기 다윗과 함께 한 400명은 그야말로 세상에 발붙일 곳도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렇게 쓸모 없이 버림을 받은 사람들이 그 후에 다윗 왕국의 기초석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한편 이러한 역사적인 기록은 말세를 당한 하나님의 백성들의 처지를 잘 상징합니다. 즉 다윗이 왕위에 오르기 직전에 겪었던 이 이야기는, 말세와 그 말세에 일어날 대환난 때에 성도들의 처지가 어떠할 것인가를 충분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경 말씀을 배우면 배울수록,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서 미리 정해두시고 계획하신 시간표 안에 살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이 사실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줍니다. 이러한 기록은, 야곱의 출생이 그리스도의 탄생으로부터 2, 000년 전에, 다윗이 왕위에 오른 해가 정확하게 그리스도 탄생 1, 000년 전이었다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40년을 바로의 왕자로, 40년을 양치는 목자로, 또 나머지 40년을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살았다는 기록도 보면,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시간표를 따라 살았다는 사실이 잘 드러납니다.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성경에 나타나는 모든 인물들의 일생을 배울 때, 하나님께서 정하신 대로 그들의 생애가 이루어졌음을 알게 됩니다. 이처럼 여러분의 일생도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뜻대로 진행되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벨직 신앙고백과 성경이 뒷받침하는 해설'을 출판하는 일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인간 구원 계획과 어떠한 관계가 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이 책이 하나님의 말씀만을 공부해 보겠다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좋은 친구가 될 것을 기대합니다. 필자는 벨직 신앙고백이 여러 신앙고백 중에서 성경을 가장 바르게 배울 수 있는 신앙고백이라는 것을 늘 기억합니다. 현재 출판되어 있는 기독교 서적들과는 달리 벨직 신앙고백서는 항상 성경 전체의 뜻을 가르쳐 줍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계절을 따라 진행될 것을 가르칩니다. 농부들은 밭을 갈고 씨를 뿌릴 때, 또한 추수할 때를 위하여 각각 농기구를 준비합니다. 본 벨직 신앙고백서가 곡식을 추수하시기 위하여 준비하는 농부의 농기구 중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는 터무니없는 생각이 결코 아닙니다. 말세에 심판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말세에 이르러 믿는 자들이 극도로 진리를 떠나게 될 것을 경고하며, 믿는 자들이 속기 쉬운 때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선지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 상태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셨습니다.

그 날에 일곱 여자가 한 남자를 붙잡고 말하기를 우리가 우리 떡을 먹으며 우리 옷을 입으리니 오직 당신의 이름으로 우리를 칭하게 하여 우리로 수치를 면케 하라 하리라(사 4:1)

이 구절은 말세에 가서 교회들이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을 원하지 않을 것이며, 인간의 생각으로 가르치게 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또 다른 표현으로 본다면,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飢渴)이라(암 8:11)고 한 바와 같습니다. 오늘날 많은 기독교 서적들이 범람해 있습니다. 기독교 출판인들은 대중에게 인기를 끌 수 있는 원고들을 찾고 있습니다. 홍수 중에 정말 마실 물이 없다고 했듯이, 많은 기독교 서적들이 나와 있습니다마는, 정말 내 영혼의 갈급함을 시원하게 하는 책은 없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말씀이 이렇게 흉년이 든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택하신 백성을 기르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야고보서 5:7절이 바로 그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을 마치 추수하여 곡간에 넣을 곡식으로 비유하신 말씀입니다(마 13:30). 지금 농부이신 하나님께서 오래 참고 계시며, 곡식이 비를 받아 싹이 나고 자라서 결실하면, 마침내 추수를 시작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습니까? 과연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친히 기르시는 천국에 들어갈 곡식입니까? 다 한결 같이 하나님의 추수를 기다리시는 줄 압니다.

또한 다음과 같은 호세아와 요엘 선지자의 말을 보면, 여기서 야고보서에서 말한 '이른 비와 늦은 비'는 성령의 강림을 말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때 성령의 강림은 구원에 이르는 복음이며, 복음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성경이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호 6:3).

시온의 자녀들아 비를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전과 같을 것이라(욜 2:23).

성도가 성령을 받는 과정, 즉 복음을 받는 과정은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에서 오며(롬 10:17), 오순절 다락방에서 바로 이 이른 비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오순절에 성령을 받고, 구원받은 3, 000명이 복음 전파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이들에 의하여 성경이 기록되었고, 교회가 세워졌으며, 신앙고백들이 발간되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이른 비'의 결실인 것입니다.

또한 '늦은 비'는 곡식을 여물게 하는 비입니다. 가뭄 때문에 결실을 보지 못할 경우 농부들의 마음은 한없이 애타게 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늦은 비를 이제 천국에 들어갈 곡식으로 자라고 있는 여러분에게 틀림없이 내리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이 비는 우리에게 반드시 말씀으로 나타납니다. 이제 이 약속을 믿으며, 이 책이 여러분에게 '늦은 비'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본서 벨직 신앙고백의 번역과 해설을 쓴 저를 소개합니다. 약 7년 전에 필자를 비롯한 몇몇이 모여서 'A little maid'(작은 계집아이; 참고, 왕하 5:2)라는 이름의 복음회를 시작했습니다. '계집아이'는 잘못된 번역이기 때문에 에이 리틀 메이드로 복음회 이름을 정했습니다. 첫째, 라만 장군의 여종이었던 이 메이드(종)는 알고 있는 사실이 제한되어 있었으며, 그는 이스라엘 백성으로서 알고 있는 사실을 그대로 얘기할 따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은 병을 고치는 이가 누구인지를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7년 동안 매월 뉴스레터(Newsletter)를 쓰면서, 저희가 쓰는 글은 반드시 성경 말씀으로 증명되어야 한다는 간절한 신앙을 지키도록 나름대로 노력했습니다. 본서도 2년 동안 독자들에게 보낸 글 중에서 엮은 것입니다. 번역에는, 영문 The Belgic Confession, Lepusculus Vallensis, Inheritance Publications를 주로 사용하였고, Alameda 개혁교회의 영어 번역과 Baker 출판사의 것을 참고로 하여 몇 군데 내용을 개정하였습니다.

감사드릴 분들이 여러분 계십니다. 사실 필자가 엮은 글을 책으로 출판한다는 것은 꿈과 같은 희망이었지만, 때마침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교제하게 된 장수민 목사님이 본서의 출판을 제안하였습니다. 참으로 사람들이 서로 만나는 것이 우연하게 되는 일이 아닙니다. 더욱 그리스도인들이 만나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시고 진행하시는 과정임을 믿게 됩니다. 목사님은 자신이 섬기는 복음사역 반열(班列)에 필자와 동역하기를 원했습니다. 이 복음사역이, 과거 다윗왕이 전장에서 목이 말랐을 때, 생명을 내 걸고 적진에 들어가 물을 길어온 용사들을 생각게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용사가 되기를 원합니다.

뉴스레터를 보내는 일에 많은 몫을 담당해 주는 숨은 동역자인 제 아내에게 항상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교정을 맡아 수고해 주시는, 버지니아 세계선교교회의 채효성 장로님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수시로 복음사역을 도와주시는 뉴욕의 윤희철 장로님 내외분께서 크게 도와 주셨음에 감사드립니다. 물론 우리 복음회를 위해 용기를 주시는 여러 목사님들과 아울러 복음회 독자 여러분들과도 본서 출판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아무쪼록 본서가 독자들이 하나님의 참 뜻을 깨닫는데 유익한 책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감사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이대우 드림, 2000년 2월 4일

www.alittlemaid.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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