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오류가 없는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 성경 

 

예술품의 대작(大作)을 감상할 때, 그 위대함에 놀라 작품 앞에 서서 경탄할 뿐입니다. 그러나, 세상에 숨겨진 창조주의 진리인 성경의 진리를 발견할 때는, 그 위대함에 경탄하며 내 이웃에게 알려야 하겠다는 간절한 마음은 모든 믿는자들에게 있는 줄 압니다.

이와 같은 뜻에서, 캠핑씨(Mr. Harold Camping)의 저술은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깨닫기 위하여 여러 해 동안 밤낮 성경과 씨름을 한 내용이기 때문에, 예술품과도 비교 할 수 없을 만큼 더 오묘합니다. 그의 글을 읽을 때 저로서는 놀랄 뿐이며, 그의 작품을 평가할 자격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여러분께 드린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서 캠핑씨의 책 교회시대의 끝과---그리고 그 이후(The End of the Church Age---and After"곡식과 가라지(Wheat and Tare)를 요약해 보겠습니다. 제가 쓴 글 중에서 관련된 내용을 책의 일부분으로 첨가합니다.

제 경험을 말하면, 캠핑씨의 저서는 한결같이 성경 구절을 또 다른 성경 구절과 비교하여, 원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참 뜻을 찾아낸 책입니다. 캠핑씨의 저서가 처음 읽는 사람들에게는 좀 불편한 감을 주기도 하지만, 그래도 성경 말씀을 깊이 공부하게 되는 길잡이가 되기 때문에, 읽어 갈수록 그 글을 통하여 하나님 말씀에 접근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인이 원하는 것은 하나님을 알게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지혜가 있다고 되는 일이 아니고, 캠핑씨가 자기의 지혜를 독자들에게 나누어주는 것도 아니며,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성경은 결코 쉬운 책이 아닙니다. 읽고 공부하고, 또 읽어도 그 뜻을 알 수 없는 책이 성경입니다. 더욱이 서점에 나와 있는 허다한 기독교 저서들이 우리가 그리스도께로 접근하는 길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특히 유명지사들의 Best Seller들은 우리의 영혼을 미혹하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서슴지 않고 캠핑씨의 책을 소개할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라기 45절에서 약속하신 엘리야가 어디에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캠핑씨의 탁월한 성경지식에 대하여 존경심을 갖게 됩니다.

성경에 기록된 선지자들과 사도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 계시가 음성, 환상, 꿈 그리고 기사와 이적을 통하여 전해졌으며, 이와 같은 계시의 방법이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지적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사실이 있습니다. 구약시대에도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바알의 거짓 선지자들 450명을 대항한 것은 엘리야선지자 단 한사람 이였습니다. 엘리야가 450명의 거짓 선지자들을 쳐죽인 성경 기록을 통하여 볼 때, 하나님께서 선지자 엘리야의 기도는 기적으로 응답하셨지만, 거짓 선지자들은 그들이 온종일 부르짖어도 응답이 없었다는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참 선지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셨다는 점입니다. 그러면, 말라기 45절에 약속하신 말세에 있을 선지자 엘리야도 하나님께서 직접 나타나 말씀하실 그 어떤 사람이 아닌가? 라고 할 것입니다. 그 해답은 물론입니다. 그러나 말씀하시는 그 방법이 다릅니다. 그것은 그 말씀의 참뜻을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운행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인간 역사의 달력을 세우셨고, 그가 정하신 달력의 계절에 따라 그의 말씀을 나타내시는 방법이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에게 나타나시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 유일한 이유는 인간의 구원계획을 성취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의 측면에서 무엇이 성경이냐라는 정의를 내린다면, 성경은 하나님의 인간구원 계획을 쓴 책이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구원계획의 주인공이 육신으로 세상에 오셨던, 하나님 자신이신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성경의 창세기에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어느 장에서든, 그리스도의 인간 구원의 계획을 읽을 수 있어야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구원계획을 몇몇 사람들에게만 나타나 말씀하신 기록이 성경이며, 이 성경을 완성하시면서 한 권의 책으로 일괄 하셨습니다. 이 책을 마감하시면서, 하나님 자신의 말씀이 꿈과 환상으로 나타내시는 일이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성경 마지막 장인 요한계시록 2218-19절에 선언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인간 구원계획을 설명하는 완성품입니다. 그리고 이 성경은 곧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인간이 자기 자신의 마음도 분명하게 알지 못하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시는 성경말씀을 다 알 수 가 있겠습니까? 더욱이 이 성경은 때가 될 때까지 숨겨 두신다고 하셨습니다(12:2). 말씀을 숨겨두셨다는 사실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예외가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존경하는 역대의 개혁주의자나, 신학자들이 많이 있지만, 그 분들에게 다니엘 129절의 말씀이 예외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시절이 지나가면서 점차적으로 하나님께서 자기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 것을 믿습니다.

다시 말하면, 말세에 와서는 성경 외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고, 그 성경말씀의 뜻을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이 시절에 따라 점차적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제가 아무리 성경공부를 열심히 거듭하고 또 노력해도, 캠핑씨가 발견하는 깊은 진리를 깨닫게 하시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캠핑씨는 저에게 큰 선생이십니다. 내가 수많은 날들을 밤새워서 공부해야만 할 성경의 진리를 짧은 시간에 알도록 도와줍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은 누구나 다 주인에게서 장사하도록 달란트를 받은 종들입니다(25:14-16). 하나님께서 저에게는 적은 양의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캠핑씨에게는 엄청난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캠핑씨는 하나님께 받은 달란트로 크게 장사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저도 이 주신 달란트를 땅에 묻지 않고 장사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교회시대의 끝 --- 그리고 그 이후를 요약하기 전에 서문으로써, 성경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발전되었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성경사본과, 그 사본을 번역한 사역을 살펴보고, 둘째로는 성경은 믿을 수 있는가?라는 캠핑씨의 글을 소개하고, 셋째 번에는 세상에 널리 알려진 천년왕국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1.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쓰신 성경을 어떻게 보전하셨는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무오(無誤)하며 절대적이라는 신앙을 우리가 가져야만 성경의 참 뜻을 배울 수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소유한 성경이 사람의 손으로 번역되었다는 사실 또한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성서보전학회(聖書保全學會)에 속한 어떤 사람은 번역한 영문 성경 킹 제임스 역(The King James Version: KJV)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는 주장을 합니다. 그러한 주장을 성경 말씀으로 뒷받침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이 어떻게 번역되었는지, 번역된 성경이 원문과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은 불가피한 일입니다.

성경 번역에 대하여 몇 가지 얘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한글 성경 개역판이 어떤 경과로 번역이 되었는지 공부하겠습니다. 또한 세계 복음 전파에 있어 절대적인 역할을 한 영문 성경 번역에 대한 역사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가장 오래된 영문 성경은 KJV임이 잘 알려지고 있습니다. KJV1611년에 처음 번역이 되었고, 250년 동안 영어를 말하는 국가에서 유일하게 사용된 성경이었으며, 1881-1885, 4년 동안에 이 성경을 개정한 것으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 말씀의 절대적인 바른 뜻을 찾는 개혁주의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이 KJV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번역자들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성경을 번역한 것은 아니며, 그들의 신앙이 번역 사역(使役)에 반영되어 있음을 번역된 성경을 비교함으로써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KJV 번역자들이 여호와:LORD로 번역한 것은, 여호와의 이름이 너무도 거룩하여 부르기에 황송하므로 비등한 뜻을 가진 lord를 선택하였고, 일상으로 사용되는 lord와 분간하기 위하여 대문자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새 안식일인 일요일안식일로 번역하지 못하고 ()의 첫날로 번역한 것도 그들 신앙의 반영입니다(28:1).

New International Version(NIV) 번역자들이 그리스도:he로 번역했고, 그리스도를 여러 번 문장에서 삭제해 버린 사실은 NIV 번역자 중에 자유주의(自由主義) 신학(神學)을 믿는자들이 있었다는 증거이며, 그들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못하고 하나의 고전(古典)으로 보았다는 사실입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새로운 성경 번역이 쏟아져 나왔으며, 한결같이 새 번역의 이유를 KJV가 부족한 것을 구실로 삼고 있습니다.

이러한 새로 번역된 성경들은 미국 표준역(American Standard Version: ASV,1901), 개역 표준역(Revised Standard Version:1951), 예루살렘 성경(Jerusalem Bible:1966), 새 영어 성경(New English Bible:1970), 현대 성경(Living Bible:1971), NIV(1973) 등이 있으며, 최근에는 해괴망측(駭怪罔測)한 번역들이 책방에 나돌고 있습니다.

사실 KJV100년이 훨씬 넘는 구식 영어가 되고 보니 동사 끝에 th를 단 다거나, youthou(당신)ye(당신들)를 쓰는 것 등이 젊은 세대에 맞을 리가 없습니다마는, 영어의 고어(古語)를 따로 공부해야만 성경을 읽을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성경에 씌어진 단어가 고어가 되어 그 뜻이 달라진 경우는 극히 드물고, 오히려 현대 영어에 you가 단수와 복수를 분간 못하는 것을, thou(당신)ye(당신들)로 구분한 KJV를 높이 평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 번역의 잘못은 번역자들을 탓하기 이전에 문제점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성경의 사본(寫本)들입니다. 구약에 대한 사본은 별로 논할 여지가 없는 것이, 히브리어의 Masoretic Text는 유일하며,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사본(자음만으로 된)을 기독교도 사용한다고 합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떠한 모음과, 표기(標記)를 어떻게 붙이느냐에 따라서 그 뜻이 달라지며, NIV는 이것들을 부정확하게 사용했다는 성경학자의 글(What today's Christian needs to know about NIV; G.W.Anderson)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반면에 신약 성경의 사본은 5,000권이 넘기 때문에, 어떠한 사본을 사용하여 신약 성경을 번역하였는가는 극히 중요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5,225권의 사본 중 80-90%가 서로 같기 때문에 이 80-90%를 대다수 사본(Majority Text), 비잔틴 사본(Byzantine Text), 또는 전통 사본(Traditional Text:TT)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TT 중의 하나인 표준 원문(Textus Receptus:TR)KJV의 사본이며, 이 사본을 종교 개혁 당시 선택하여 19세기 말까지 변동 없이 사용해 왔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19세기에 와서 근간에 발견한 사본, 바티칸 사본(Codex Vaticanus), 시내 사본(Codex Sinaiticus)을 성경 번역에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이것을 알렉산드리안(Alexandrian) 사본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NIV, SRV, ASV 개역 한글판 성경이 알렉산드리안을 사용하였고, 개혁 교회 학자 중에도 알렉산드리안이 더 잘된 사본이라고 한 사람이 있었고, 수많은 학자들이 KJV의 사본인 TR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많은 학회와, 성경 말씀에 충실한 교단들이 이 알렉산드리안이 잘못된 사본임을 지적하며, 이 사본이 잘못된 경우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이 알렉산드리안 사본들은 모두가 애굽에서 발견되었으며, 4복음서에서 만도 3,000 군데 이상이 TT와 그 차이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TT와 알렉산드리안은 서로 그 족보를 달리하며, 전 사본(5,225) 중 소수가 되는 이 사본들은 그 원산지가 애굽에 있음을 지적할 수 있다. 다른 한편 80-90%TT 사본은 그 발견지가 더 넓은 지역을 차지한다.

 

이 새로 발견한 알렉산드리안을 W-H 사본이라고도 부르는 이유는 이 사본을 처음 발견했을 때 TT보다도 월등하다고 주장하고 번역한 두 학자 웨스트카트(B. Westcott)와 호우트(F.Hort)의 이름을 딴 것입니다. 다른 한편 TT, TR를 위클리프(Wycliff)편이라고 부르는 것은 위클리프 신약 성경을 처음으로 번역한 사람의 이름을 딴 것입니다.

한글 성경 개역판이 출판된 경우(境遇)에 대하여는 자세한 내용을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1881년 출판된 영어 개역 성경의 영향을 받아 중국어(中國語) 성경이 번역되었고, 한글 개역 성경은 이 중국어 성경의 영향을 받아 번역되었다고 합니다. 분명한 것은, 한글 개역 성경 번역이 알렉산드리안 사본을 사용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제가 한글 성경의 잘못 번역된 구절을 여러 번 지적한 적이 있기는 합니다마는, 그것은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KJV를 사용하도록 권장(勸奬)하고, 현대의 성경 번역이 잘못된 것을 지적하는 여러 권의 글이 있습니다. 한글 개역 성경의 잘못 번역된 구절들을 일일이 찾아보며 공부하기로 하겠습니다.

알렉산드리안을 사용한 현대 번역이 잘못된 점을 요약하면,

① 삭제된 구절이 많으며, ② 성경 구절 중 삭제된 단어는 더욱 많으며, ③ 특히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에 대하여 부정적인 변질(變質)을 가져왔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KJV가 완전한 번역은 아닙니다. 립링거(Riplinger)의 저서 새 세대의 성경 번역(New Age Version) 서문에, 로긋든(Logsdon) 박사는 당신은 긊JV가 절대적으로 정확하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 정확합니까? 100% 정확합니다.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KJVNIV나 개역 성경에 비하면 그 번역이 월등(越等)하게 원문(原文)에 충실하고, 정확한 것을 발견하지만, KJV도 완전무결한 번역은 아닙니다.

특히 현재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NIV는 그 번역이 놀랄 정도로 잘못되었고, 립링거는 NIV를 대표적인 새 세대 루시퍼(Lucifer:사단)의 성경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다음에는 가장 잘 번역된 KJV와 개역 성경의 차이가 어디에 있는지 성경 구절을 일일이 비교하며 공부하겠습니다.

 

KJV를 권장하고, 최근에 나온 성경 번역이 잘못된 것을 지적한 글을 쓴 사람들과 모임: Trinitarian Bible Society Sovereign Grace Trust The Evangelism Committee, Protestant Reformed Church G. Riplinger, New Age Versions ⑤ 한종수 저, 개역 성경과 헬라어 표준 원문 비교 연구 ⑥ Dr.David Fuller Dr.Dell Johnsen

 

 

A. 사본(寫本) 문제

 

TR(표준)W-H(알렉산드리안) 두 사본 사이의 차이점이 약 8,000 곳이나 있다고 합니다. 8,000 곳이나 다른 점은 NIV 번역이 그리스도의 신성(神性)과 그리스도의 구원 계획을 고의적으로 감소해 보겠다고 한 결과라고 합니다.

종교 개혁(宗敎改革) 이전에 TR 사본이 천년 이상(AD 312-1453)을 유일하게 성경 사본으로 사용되어 왔고, 종교 개혁 후에도 수백 년 동안을 TR 사본만이 성경의 역할을 해 오다가, 20세기에 접어들면서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 알렉산드리안 사본을 TR보다 나은 사본으로 주장을 하는가 하면, 대부분의 현대 성경 번역이 알렉산드리안 사본을 사용하게 된 것은 말세를 준비하는 사단의 역할임을 짐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B. 말씀의 보존

 

성경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씌어진 것이 분명합니다(17:14, 24:4, 34:27, 33:1-2, 31:9, 24-26). 그 후 그 원본을 언약궤(言約櫃) 옆에 간직하였고(31:25, 26), 사무엘은 나라의 제도(制度)를 백성에게 선포한 후, 그것을 기록하여 여호와 앞에 두었습니다(삼상 10:25).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온 후 성경을 늘 성전에 보관하였음을 또한 알 수 있습니다(왕하 22:8). 성경에는 원본을 하나님도 복사(複寫)하여 쓰신 기록을 읽을 수 있습니다(10:4). 솔로몬 시대에 성전에 보존되었던 성경을 적국(敵國)인 바벨론으로 가져갔음을(대하 36:17-19) 짐작할 수 있으며, 그 성경이 하나님의 섭리로 보존된 기록을(6:18) 또한 읽을 수 있습니다.

파란곡절을 당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신약 시대에까지 잘 보존되어 회당에서 예수님께서 친히 사용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4:16). 제자들도 성경 말씀을 인용치 않고는 복음을 전하지 않았습니다(1:16, 4:25, 28:25, 1:1,6,7 ).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씀을 보존하는 데 극진한 노력을 하였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구약 성경의 보존은 하나님의 섭리와 기적으로 된 것임을 성경을 읽음으로 알 수 있습니다.

신약 성경 보존이 구약의 경우와 다른 방법으로 되었다고 생각합니까? 신약 성경의 보존도 하나님께서 직접 하심을 우리는 성경을 읽음으로써 알 수 있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一點一劃)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5:18, 16:17).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24:35).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내가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이 이러하니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신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영(永永)토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59:21).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10:35).

 

이상과 같은 성경 구절을 읽음으로써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대대를 거처 우리에게 그의 말씀을 보존하여 두셨음을 믿게 됩니다. 그러면 그 보존하신 성경 번역이 KJV이냐? 하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KJV 번역이 수백 년을 두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순종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보존되었음을 여러 가지 문헌을 통하여 읽을 수 있습니다. 한글 개역 성경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천만 다행히도 지금까지 많은 성경학자들이 잘못된 번역과, 본래의 말씀의 뜻을 찾아내고 있습니다. 한글 개역 성경이 그 번역에 있어 사본을 잘못 선택한 데 큰 잘못이 있지만, NIV처럼 왜곡(歪曲)된 번역이 많이 없음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C.결론

 

부정한 손에 수난 받는 하나님의 말씀, 성경의 공부를 마감하면서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습니다.

 

젨젨젨 1). 세상에 나와 있는 번역된 성경은 그 번역이 다 불완전하나, KJV가 월등하게 원문에 충실한 번역입니다. **성경에 씌어진 모든 단어의 수를 KJV=790,685, RSV(영문 개역)=760,151, NIV=726,109로 계수(計數)를 했습니다.

(**(): King James Bible Baptist Church의 통계)

이상의 통계는 NIVRSV가 수많은 성경 구절과 단어를 제()하여 버렸음을 나타냅니다. 번역자들은 요한계시록 2218-19절의 무서운 경고를 기억하여야 할 것입니다.

 

젨젨 2). KKJV의 번역이 개역 성경에 빠져 있는 구절과 단어들을 첨가한데 대하여 찬사를 보낼 만하나, 번역자들의 잘못된 신앙 고백이 번역한 성경 말씀을 누비고 있습니다. 번역자들이 요한계시록 2218-19절의 무서운 경고를 깨닫기를 바랄 뿐입니다.

 

젨젨 3). 성경의 완전한 번역이 없는 것은 인간의 생각이 완전할 수 없음을 지적하며, 나의 신앙이 내가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며, 나의 신앙이 그리스도의 신앙일 (2:16,20, 3:22)에 우리의 구원을 이해하게 됩니다. 개역 성경이나, KKJV의 번역자들이 faith of Christ"그리스도를 믿음으로(2:16, 20, 3:22)라고 번역한 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구원을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바른 번역은 그리스도의 믿음으로입니다.

우리는 계속하여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공부해야 할 따름입니다.

 

***잘못된 번역의 예를 여러 가지 들어 만든 소책자 부정한 손에 수난 받는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주문하시기 바랍니다. 

 

2. 성경은 믿을 수 있는 책인가?

 

세상 종말의 시기와, 세상 역사의 시간표와, 인류가 시작한 연대를 이해하기 위해 성경상의 자료를 분석하기 전에, 성경 말씀의 신빙성을 먼저 검토해 보아야 합니다. 모든 크리스천들은 성경이 구원에 관한 문제를 말할 때는 믿을 수 있다고 동의하나, 과학이나, 역사적 사실을 성경 말씀으로 논의할 때는, 대개의 경우 회의를 나타냅니다. 특별히 창세기 1장에서 11장까지의 말씀에 대하여 그 역사적이고 과학적인 정확성에 대하여 많은 질문이 제기되어 왔으며, 만일 성경에 기록된 세상 역사의 시작에 대한 사건들이 믿을 수 없다면, 결코 마지막 때에 관련된 시간표를 성경이 제시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A. 과학은 성경보다 열등하다

 

지구의 기원에 대한 의견이 양극화된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목사, 신학자 그리고 평신도들 중에서 과학분야에 고등교육을 받은 물리학자, 지질학자 그리고 다른 과학자들과 동등한 수준에서 대화할 수 있게 과학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거의 없기 때문에, 과학분야와 신학분야 사이의 대화가 충분히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창세기의 첫 11장을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과학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크리스천이라 하더라도, 그들이 받은 성경에 관한 교육은 일반 평신도와 마찬가지이고, 그들의 전공 분야에서 성경 상의 진리를 추구하는데는 많은 제한을 받고 있습니다.

 

창세기를 문자 그대로 읽지 않으면 성경에 위배된다고 믿는 사람들과, 과학적 발견과 조화를 이루게 하기 위하여 창세기 기사를 해석하는데 폭넓은 자유를 허락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간에, 대립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베드로후서 3장에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나와, 노아 시대에 세상이 물로 멸망한 성경의 가르침을 부인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크리스천 과학자들이 이러한 성경구절을 믿지 않는 이유는,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며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이 세상에 수 백 만년 동안 존재해 왔다는 생각은, 지구의 종말이 우리 평생에 온다는 개념을 전혀 지지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립니다. 만일 창세기 6-9장에 말씀하시는 노아 때에 세상에 임한 심판이 확실하지 않다면, 세상에 심판이 임한다는 성경 말씀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데 회의를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만일 노아 시대에 온 세상을 뒤덮는 문자 그대로의 홍수가 참으로 있지 않았다면, 창세기 6장과 9장의 표현은 상징적일 수 밖에 없으며, 베드로후서 3장에 기록된 말씀도 역시 상징이며, 비유라고 주장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계된 성경의 모든 말씀도 역시 상징적으로만 생각하게 됩니다. 궁극적으로 예수님의 재림과, 또 교회를 심판하신다는 진리를 완전히 부인하는 방향으로 교회는 이끌어 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질문에 답변하면서, 관찰한 몇 가지 일반적인 견해는 다음과 같습니다.

 

 

B. 성경은 최종적인 권위이다

 

젨젨 1).성경 말씀은 정확하며 권위를 가지고 있음:. 쉽게 말하면, 성경은 역사나 과학 그리고 심리학을 가르치려고 씌어진 책이 아니라, 타락한 인간을 위한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드러내려는 중요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러한 주장은, 성경이 과학이나 역사의 분야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는 정확하지 않다는 인상을 줍니다.

젨젨젨젨젨젨젨젨젨젨젨젨젨젨젨젨젨젨젨젨젨젨젨

그러나 성경이 과학이나 역사나 어떤 분야에 대하여 우리에게 가르칠 때 세심하고, 정확하게, 그리고 권위를 가지고 말씀하신다는 점을, 다음 세 가지 이유를 들어 말할 수 있습니다.

젨젨젨 a). 성경의 주제는 오로지 한가지 구원 계획이며,

젨젨젨 b).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메시지의 일부분이며,.

젨젨젨 c). 성경이 정확하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성경 전체가 그리고 또 성경의 세밀한 부분까지도 권위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신뢰할 수 있다는 믿음을 방해하는 두 가지 중요한 사건이 역사상에 있었습니다.

그 첫째는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의 진화론과, 라이엘(Lyell)의 균일 설(均一 說;지질의 변화가 균일하게 부단히 작용한다는 설) , 과학적 이론의 전개였습니다. 다윈과 라이엘의 학설은, 과학적 연구에서 얻어진 많은 증거에 의하여 뒷받침되는 것처럼 보이는 기원의 체계(Systems of Origins)를 제시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이론이 성경의 가르침과 역행하는 것들이었기 때문에, 성경이 과연 믿을 수 있는 책인가 하는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었습니다.

둘째 사건은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와 애굽의 고대 유적의 발굴이었습니다. 첫 번째 고고학적 발굴은, 1798년 나폴레온의 원정에서 시작되었지만, 이러한 유적의 본격적 발굴은 다윈과 라이엘의 이론이 제시될 때와 거의 동시에 일어났습니다. 고대 도시의 면모가 밝혀졌을 뿐만 아니라, 그 당시 원시적인 도서관들도 발굴되었습니다. 이러한 고대 문명의 언어들이 해독(解讀)할 수 있게 된 후, 진흙 서판(書板)에 기록된 내용들을 판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신학자로서 훈련을 받은 고고학자들은 이러한 서판에 기록된 내용들이 성경의 내용과 다른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성경의 내용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거의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고대 문헌과 성경이 같은 수준의 책으로 놓여지게 된 것입니다. 성경은 인간이 전개한 이야기의 하나로 간주되게 되었고, 다른 고대 문헌보다 더 높은 권위가 인정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출애굽기를 전설로 간주하는, 국제적으로 저명한 고고학자, 알렌 가디너(Alan Gardiner)경은 매우 간결하게 그의 의견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를 훌륭한 역사적 자료로 다루려는 사람들의 논리의 결여와 사실에 대한 둔감성은 나로 하여금 다른 쪽 논리로 기울게 한다.

비록 부분적 홍수의 아이디어를 성경이 명령으로 금하는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과학은 부분적 홍수의 아이디어를 보여준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리고 세계 전면적 홍수가 있었다는 것에 과학적 반대의견이 아니라도, 노아의 대홍수 이전의 사람들을 휩쓴 mabbul", 그들이 거주했던 지역에 국한되었다는 것을 믿게 만드는 적지 않은 이유가 확인되고 있다.

 

성경의 기록이 세속적 기록에 의하여 그 권위가 위협을 받게 되던 때에, 인류는 현대 과학의 시대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지난 수십 년간 과학자들은 의학, 물리학, 화학 그리고 생물학 분야의 연구업적에서 그들은 많은 찬사를 받아 왔습니다. 이러한 과학자들의 발견 중에는 지구를 구성하는 요소들의 연대를 유기 또는 무기적으로 측정하는 방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내리는 결론은 지구가 적어도 수 십억 년 동안 존재했었다는 것이며, 이러한 결론은 다윈, 라이엘, 또 다른 과학자들의 발견과 조화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성경은 수 천년 전에 지구가 6일만에 창조되었다고 말하기 때문에, 대개의 현대 과학자들도 수많은 고고학자들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즉 과학분야에서는 성경의 기록을 신뢰할 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크리스천들은 성경의 기사를 과학적인 증거와 연관시켜 조화 있게 설명하려고 시도하였고, 일부 과학을 연구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역사나 과학분야에서는 성경이 전혀 의미 있는 내용을 제시하지 못하며, 성경은 단지 신학자들을 위한 책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과학의 배경을 가지고 있는 많은 크리스천들의 입장을 반영하는 글들이 기독교와 과학의 만남(The Encounter Between Christianity and Science)이라는 잡지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크리스천으로서 과학계를 이끌고 있는 자들이 집필하고 편집한 이 책들에는 성경이 하나님, 예수님 그리고 구원의 문제를 말씀하실 때에는 신뢰 할만하다는 가설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런 주제들이 성경이 가르치는 중요한 내용이기 때문에, 이를 지원하는 역사적 또는 과학적 자료들은 반드시 정확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 결과로 진화론이나 균일설 등의 과학적 이론들은 성경의 관점으로는 연구될 수가 없고, 하나님의 자연계시의 관점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한 가설들은 그들을 신 정통주의(Neo-orthodoxy)와 같은 철학으로 유도하였고, 그것은 바르트(Barth)와 부르너(Brunner)의 이론을 생각나게 합니다. 바르트와 같은 신학자들은 철학적 배경을 가지고 성경에 접근하였으며, 반면에 과학자들은 과학이 그 스스로의 영역에서는 최종 권위가 된다는 관점을 가지고 성경에 접근하였기 때문에, 두 경우가 모두 성경이 가르치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성경이 제시하는 하나님, 예수님, 또한 구원의 진리를 지원하는 역사 및 과학적 자료들이 반드시 정확할 필요가 없다고 하며, 믿는자들은 성경이 가르치는 영적 진리 자체에 회의를 품게 됩니다.

기독교와 과학의 만남을 집필한 사람들의 결론에서도 이러한 경향을 보이고 있으며, 결론적으로 저자들은 다음과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생물의 진화는 과학적으로 인정될 수 있도록 충분한 증거가 있음이 입증되어 왔다.

생물의 진화를 받아들인다고 하여, 창조나 초자연적인 것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생물의 진화는 초자연적 목적을 완성해 가는 당연한 과정이다.

젨젨젨젨젨

이러한 결론은 성경이 씌어진 전체적인 목적을 사실상 부인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담과 사단의 역사적 대면이 없었다면, 그리스도께서 오신 전체 목적이 의문으로 남게 됩니다. 더구나 부베(Bube)박사의 결론을 뒷받침할만한 성경 구절을 누가 제시할 수 있습니까? 이러한 결론에 따라 과학자들이 최대한 과학적 증거를 제시할는지는 몰라도, 어떤 의미에서도 이러한 결론은 사실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류의 연대를 이해하도록 도우실 것이며, 성경이 제시하는 연대는 세속적으로 유도된 결론과 정면으로 대립합니다.

너무나 오랜 기간 동안 진실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여러 학문 분야에서 성경이 적절한 지혜를 제공해 주는 것을 부인하는 유혹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의 모든 말씀이 전체적으로 정확하고 권위가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C.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하라

 

젨젨젨 1). 우리가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성경이 말하는 바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할 때, 그 해답을 우리의 아이디어에 부합시키려고 애를 쓸 때, 매우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성경을 해석하는 가장 기본적인 원리 중의 하나는, 성경 스스로가 주석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주제는 성경에 여러 번 언급되어 있기 때문에, 문맥에 따라서 여러 방법으로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성경을 해석할 수 있는 다른 길이 없을 때는, 다른 어떠한 해석 방법을 선택해서는 안 됩니다. 즉 성경 자체로 그 해석의 한계를 세워야만 합니다. 해석하려 하는 구절과 유사한 성경 내용을 통해서 분명히 해석해야 하며, 어떠한 구절도 자유로이 해석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믿음으로 받아 들여야 합니다.

예를 들어 저명한 고고학자, 레오나드 울리(Leonard Wooly)경의 노아의 홍수에 대한 발견을 생각하여 보겠습니다. 갈대아 우르(Ur of the Chaldees)의 옛 지역을 12년에 걸쳐 발굴해 낸 자료들을 검토한 후, 레오나드경은 노아시대의 홍수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한정되어 있었다는 설을 발표했습니다.

이 고고학자는 굉장한 홍수가 있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증거를 찾아냈고, 최대 깊이가 11피트나 되는 침전물(silt), 그 침의선(沈毅線) 아래쪽에 인간이 살았었다는 증거와 함께 발견되었습니다. 레오나드경은 그의 연구에서 창세기에 기록된 홍수는 평평하고 낮게 위치한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25피트 깊이와 300마일 폭과 100마일 넓이 지역에 일어났을 것이라는 주장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경에 말씀하신 것을 보면, 노아 시대의 홍수는 온 세상에 걸친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 사실은 성경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으며, 홍수에 관련된 성경 말씀을 살펴 볼 때 하나님께서 이 홍수가 온 세상에 걸쳐 일어났다는 것을 분명히 반복하여 강조하심에 놀라게됩니다.

이 홍수를 말하는 성경 몇 군데를 살펴보겠습니다.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6:7)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6:13)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식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자가 다 죽으리라(6:17)

지금부터 칠일이면 내가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나의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7:4)

물이 땅에 더욱 창일하매 천하에 높은 산이 다 덮혔더니 물이 불어서 십 오 규빗이 오르매 산들이 덮인지라 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육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 육지에 있어 코로 생물의 기식을 호흡하는 것이 다 죽었더라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홀로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만 남았더라(7:18-23)

물이 점점 감하여 시월 곧 그 달 일 일에 산들의 봉우리가 보였더라(8:5)

그가 또 비둘기를 내어놓아 지면에 물이 감한 여부를 알고자 하매 온 지면에 물이 있으므로 비둘기가 접촉할 곳을 찾지 못하고 방주로 돌아와 그에게로 오는지라 그가 손을 내밀어 방주 속 자기에게로 받아들이고(8:8-9)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니(8:21)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침몰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9:11)

---다시는 물이 모든 혈기 있는 자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9:15)

지면의 모든 생물을 멸하셨고, 또 노아의 홍수가 온 세상에 걸쳐 일어났었다는 것을 창세기에 씌어진 말씀보다 더 뚜렷하고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단호하고 분명한 말씀을 의심하는 것은 하나님 말씀의 권위에 반박하는 것이 됩니다. 역사상 온 세상에 범람했던, 노아 시대의 홍수를 성경에서 묘사하신 것 같이, 분명하게 기록된 사건은 없으며, 이것이 문자 그대로 일어났었다는 것과 다른 결론을 가정하여서는 안 됩니다. 더욱이, 성경 다른 곳의 유사한 구절들도 창세기에 기록된 구절들을 다른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구절들은 실제로 홍수의 성격과 범위에 대하여 창세기의 설명을 강조하여 말해 주고 있습니다(벧후 3:5-7, 104:6-9).

이러한 지구 지각(地殼)의 대 변동을 초래한 홍수에 대한 성경상의 기록에서 오늘날 지질학자, 인류학자, 그리고 고생물학자들이 가지는 결론을 주의 깊게 재평가해야 합니다. 그러나 과학자들이 내리는 결론은, 태초로부터 이 세상의 변화는 균일하고, 급격한 지각 변동이 없었다는 가정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크리스천은 이러한 과학의 가정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왜냐 하면, 모든 고고학

d적 발견은 역사상 한 시기에 세상이 홍수로 멸해졌었다는, 하나님의 분명한 말씀에 의하여 검토되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진리를 베드로후서 33-6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이로 말미암아 그 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D. 창조

 

젨젨젨 1). 지구의 기원에 대한 과학적 결론은, 사실보다는 가설에 그 근거를 두었다: 많은 과학자들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여러 가지 자료를 제시하고, 세상의 기원이 오래 전에 있었다는 결론을 내리며, 많은 경우 그 결론은 타당성이 있어 보입니다. 또 이러한 주제로 많은 인기 있는 논문들이 같은 결론을 내리기 위하여 사용되었으며, 그러한 결론만이 최선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과학자들이 American Journal of Science와 같은 과학 잡지에 의견을 기고한 것을 우리가 읽어 볼 때, 제시되는 자료들의 상당한 부분이 단편적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어떤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채택한 가설(假說)과 전제(前提)를 피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의 결론을 흔들리게 할 수 있는 논문은, 아직 해결되지 못한 문제와 예외적인 사항들을 진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과학자들은 그들이 내린 결론이 잠정적인 것이며 또 이용할 수 있는 자료들의 희소성, 기본 가설들의 불확실성 때문에, 경우에 따라, 그들이 내린 결론의 근본적 수정이 있어야함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불행히도, 일반 대중에게는 이러한 많은 결론의 빈약한 근거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고 있으며, 더욱이 창조에 관하여 연구되어야 할 근본적인 자료로써 하나님께서 주신 성경 말씀은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창조의 날자들을 기록한 성경은 지구의 기원에 관련된 과학적 증거를 평가하기 이전에 반드시 고려되어야 합니다. 창조 첫날에 대하여 기록된 성경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1:3-5)

 

첫째 날은 하나님이 가라사대라는 말씀으로 시작됨에 유의해야하며, 다음의 다른 다섯 날도 같은 말씀으로 시작하셨습니다. 만일 이 첫째 날이 긴 기간, 예를 들어, 백 만년을 의미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러한 가정은 성경에서 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태양력의 하루보다도 긴 기간을 설명하는 구절들이 있기 때문에 타당해 보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창세기 24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에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 이러하니라라고 하셨고, 이 곳의 (히브리어로는긛om이며, 다른 곳에서 로 번역됨)는 창세기 1장에서 말하는 모든 사건을 포함하거나, 최소한 둘째 날과 셋째 날을 포함함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첫째 날이 하루 이상의 긴 기간일 수 있다는 가정이, 성경의 뒷받침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에서 저녁과 아침을 말씀하시기 때문에, 첫째 날은 100만년의 반인, 50만년의 저녁과 아침의 두 기간으로 나뉘어져야 합니다. 대개 하루를 밤과 낮으로 나눌 때는 50 50의 비율로 나뉘어집니다. 그렇다면, 이 가상적인 백 만년은 어떠한 기준을 근거로 나뉘어질 수 있었음을 인정해야 하며, 그 때 비로써 우리는 논쟁을 계속해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고려된 첫째는 낮으로 불리는 빛의 기간이며, 둘째는 밤으로 불리는 어두움의 기간입니다. 따라서 저녁과 아침은 같은 구절에서 표현된 낮, 그리고 밤과 반드시 직접 연관이 되어야 하며, 이러한 점은 우리가 창세기 15절을 이해하는데 있어 당연하고 논리적인 방법이 됩니다.

 

우리가 둘째 및 셋째 날을 검토할 때, 그 날이 의미하는 기간은 첫째 날과 같은 기간이라고 결론을 내려야 합니다.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는 말씀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셋째 날이니라는 말씀은 5절에 기록된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는 말씀과 동일한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첫째 날이 가졌던 기간이 둘째 날과 셋째 날에도 같이 적용된다고 가정하여야 하며, 둘째 날과 셋째 날도 역시 저녁과 아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두 날도 각각 약 50만년간 계속된 빛의 기간과 또 약 50만년간 계속된 어두움의 기간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큰 문제가 있습니다. 셋째 날에 창조된 초목들에게 50만년이 계속되는 긴 밤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났겠습니까? 아직 별이나 달이 없었기 때문에, 어두움은 절대적이었을 것이며, 분명히 이러한 긴 기간의 밤에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초목은 없습니다.

넷째 날 하나님께서는 해와 달과 별들을 창조하셨고,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셨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셨습니다. 이것 역시 저녁과 아침의 기간이기 때문에, 이 넷째 날도 우리가 처음 가정한대로 백 만년의 기간 동안 계속되었다면, 그 기간은 또한 50만년의 빛의 기간과, 50만년의 어두움의 기간으로 나뉘어졌어야 합니다. 그러면 태양은 어떻게 운영되었겠습니까? 이러한 긴 기간의 밤 동안 태양이 어떻게 계속 비추고 있었을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것을 고려할 때, 우리가 내릴 수 있는 분명한 결론은, 이 저녁과 아침은 태양력의 하루 동안의 기간일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15절을 다시 검토하면, 창조의 매일은 24시간이며, 창조의 각 이 첫날에 창조된 의 빛이 비추인 기간이라는 것을 이해하면, 위에서 제기되었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가 있습니다.

처음 삼일은 태양이 없이 24시간씩 계속되었으나, 넷째 날은 태양과 함께 같은 리듬으로 계속되었습니다. 비록 첫째 날의 빛이, 넷째 날 태양 빛으로 대체 되었지만, 지구는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첫째 날에도 매 24시간마다 지축을 회전시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24시간의 리듬은, 12시간씩 번갈아 일어나는 빛과 어두움의 기간으로 나타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이해할 때에 우리는 창세기 1장 내용의 조화를 찾을 수 있습니다. 히브리어의 긛om은 성경에서 약 1,480번 사용되었으며, 그 압도적인 용도는 위에서 설명된 바와 같이 태양이 비취고 있는 기간이라든가, 24시간의 하루를 가리키는데 사용되었습니다. 이것은 또한 이라는 단어를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창세기 1장을 태양력(太陽曆)의 하루로 이해하는 것은 창세기 1장에서 사용된 긛om을 가장 분명하게 이해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전체 성경과 완전한 조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안식하신 일곱째 날을 살펴봅시다. 흔히 말하기를 성경의 일곱째 날이 긴 기간이라는 개념을 돕고 있지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창조 사역을 중지하신 것이, 창조의 여섯째 날의 끝에서 시작하여, 시대의 마지막이 되는 때까지라면, 이것 역시 6일 동안이 긴 기간이라고 암시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여섯째 날 마지막에 하나님께서 그의 사역으로부터 쉬시고, 그의 처음 창조를 계속하지 않으셨다는 것이 과연 사실일까요? 하나님께서 참으로 더 이상 창조를 하시지 않으셨는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517절에 예수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구절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쉬고 계시지 않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곱째 날이 다른 6일 동안의 기간보다 긴 어떤 기간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없습니다. 또 출애굽기 2011절과, 출애굽기 3117절에서와 같이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다는 말씀이 성경에 표현될 때마다, 그 문맥은 태양력에 의한 하루를 말씀하시는 것에 유의합시다. 비록 하나님께서 그의 태초의 창조를 완료하셨지만(1:), 과연 하나님께서 창조 사역을 계속하시지 않으신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예를 들면, 시편 10430절에서 주의 영을 보내어 저희를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라고 기록된 말씀을 읽을 수 있습니다. 또 시편 10218절에는 이 일이 장래 세대를 위하여 기록되리니 창조함을 받을 백성이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이 구절에서 King James 번역은 창조하다 또는 창조되었음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긞ara를 가장 정확히 번역했다). 이 두 경우에서, 하나님은 새 생명을 창조하심으로 그의 사역이 계속되고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을 베푸신 것도, 하나님의 극적인 창조 활동임을 알아야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사역은 가인의 출생과 함께 계속되었으며, 첫 창조 후 새로운 식물들이 수년에 걸쳐 성장하는 것과 더불어 계속되었고, 하나님께서 제 7일에 안식하신 것은 매우 짧은 기간이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제 7일을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고, 조화가 되는 기간은 태양력의 하루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창조의 6일이 태양력의 6일이라는 해석을 또한 강조하고 보충해 줍니다.

젨젨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과학적 증거가 이러한 원칙에서 관찰되어져야 함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주를 처음 창조하셨을 때 우주는 마치 창조 된지 오래된 것처럼 완전히 운영되었고, , 짐승, 초목과 같이 우주의 부분들은 창조된 순간 이미 어떤 나이가 들어 보이도록 된 것입니다.

 

E. 믿음: 과학자들이 잃어버린 중요한 요소

 

시편 104편과 다른 곳에 기록된 홍수에 관련된 성경 말씀을 다시 읽어보고, 히브리서 113절을 읽어봅시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과학자들에게서 결여되어있는 과학적 연구의 바탕의 요소는, 성경이 분명히 가르치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우리가 진리를 찾고자 할 때, 모든 과학 연구의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아들 이삭을 희생 제물로 바치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 명령은 어리석은 것으로 보였습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을 죽였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모든 약속, 즉 그가 열국의 아비가 될 것이며, 그의 후손으로 열국이 복을 받게 되리라는 약속들을 무효화시키게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러한 모든 모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순종해야 한다고 믿었고,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대한 맹목적인 신뢰를 가졌기 때문에 순종하였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성경 모든 분야에 걸친 내용에 골고루 퍼져 있는 기본 요소입니다. 믿음은 인간이 만든 사실처럼 보이는 이론과,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진리 그 자체인 하나님의 말씀 사이에, 차이를 낳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비유로 가르치는 이유를 강조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42절에 이에 예수께서 여러 가지를 비유로 가르치시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복음의 말씀을 보다 쉽게 이해시키기 위하여 우리에게 비유로 가르치셨다고 추측할지도 모르나, 사실은 그 정반대입니다. 마가복음 411-12절에 기록된 말씀을 읽어봅시다.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이는 저희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시고

 

유대인들의 문제는 그들이 논리적인 메시아를 기다렸다는 것입니다. 메시아이신 그리스도께서 논리적으로 어떻다 하는 그들의 생각을 만족시키지 못하였고, 그렇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배척하였습니다. 그들이 참회하는 믿음으로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에, 복음이 제시하는 가장 미미한 진리조차도 그들이 깨닫지 못하도록 예수님께서 비유로 가르치셨습니다. 반면에 베드로, 마리아, 마르다 및 몇몇 사람들은 믿음으로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 들였으며, 그들은 하나님 말씀의 놀라운 지혜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경은 절대 오류(誤謬)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먼저 겸손히 신뢰하지 않으면, 진리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도 숨겨지게 됩니다.

과학을 탐구한 대다수의 학도들이 믿음에 대하여는 전혀 아는 바 없는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들임을 우리가 잊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에 잘못된 것이 없다는 믿음으로 시작할 때 비로써 성경의 아름다운 논리가 우리들에게 드러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성경의 모든 자료를 가지고 과학적 탐구를 시작해야 하며, 우리는 믿음으로, 세속적인 자료가 제시하는 증거를 이해하려면 성경 말씀이 근거로 사용되어야 합니다.

 

젨젨젨 1). 과학을 말할 때, 우리가 성경 말씀을 믿을 수 있는가? 이전 크리스천들도, 지구가 평평하다는 잘못 된 결론을 믿지 않았던가? 1000년 전에, 지구 일부의 평평한 작은 지역에서 살면서, 그들이 살고 있는 지역을 유일한 세상으로 생각했던 우리 조상들은, 태양이 하늘을 가로질러 땅 끝 이쪽에서 저쪽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지구가 평평한 테이블과 같은 모양이라고 굳게 믿었고, 공과 같은 불덩어리인 태양은 평평한 지구 주위를 돌고 있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러한 결론을 내린 오래 전 시대의 크리스천들은, 지구가 평평하고 태양이 공과 같은 불덩어리라는 아이디어를 성경이 뒷받침한다고 수긍했습니다. 사실 성경 말씀에 그러한 결론을 뒷받침하는 많은 구절들을 찾아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말씀은 땅 끝(59:13), 땅 사방(11:12), 그리고 해 돋는 데서부터 지는 데까지(50: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보다 폭넓게 성경을 공부해 보면, 그들이 내렸던 결론이 잘못 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전에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던 몇 가지의 진리가 있습니다. 성경 어느 곳에서도 지구의 모양이 평평하다고 확실히 말씀하시는 곳은 없습니다. 이와 반대로, 지구가 오히려 둥근 모양이라는 것이 암시되는 말씀을 이사야서 4022절의 그는 땅 위 궁창(circle of the earth)에 앉으시나니라고 한 것에서 볼 수 있습니다. 욥기에는 지구를 언급하는 비유를 다음과 같이 사용하셨습니다.

 

수면에 경계를 그으셨으되 빛과 어두움의 지경까지 한정을 세우셨느니라(26:10)

 

궁창이나 경계(circle)에서 사용된 표현은 모두 원형(circle)을 묘사하며, 표면 위의 어떤 지점에서 볼 때 원형으로 보임은, 지구가 둥근 모양임에 틀림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합니다. 여러 곳에서 찾아 볼 수 있는 다른 성경 구절은 불타는 공이 천천히 하늘을 가로질러, 네 모가 난 테이블 이쪽 끝으로부터 저쪽 끝으로 움직이는 평평한 지구라는 개념을 암시합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이 분명히 다르게 말씀하시는 구절에 유의하십시오.

 

그가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으로 해면에 두르실 때에 내가 거기 있었고 (8:27)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1:6)

그는 북편 하늘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공간에 다시며(26:7)

그러므로 지구 모양에 대한 모든 성경 말씀을 고려해 볼 때, 지구의 형태가 결정적으로 어떠하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평평한 지구의 모양을 강조하고 있지는 않으며, 오히려 지구의 모양이 둥글다는 점을 가리키는 많은 구절들이 있습니다. 세상의 과학적인 자료들은 지구가 우주 공간에 구형으로 있다는 증거를 제시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와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이러한 개념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께서 인간을 인도하시기 위하여, 성경 안에 정확하고 믿을 만한 말씀을 기록하셨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젨젨젨 2). 최근에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의심할 바 없다는 많은 글들이 씌어졌습니다. 저자들은 학문적 설득력을 가지고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성경이 말하는 것은 모두 진리이고, 믿을만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또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으며, 최종 권위이며, 신빙성이 있고, 정확하다고 하였습니다.

어떤 신자들은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씌어진 책 임을 진정으로 믿는지 의심하게 되며, 행위가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가지고 있는 놀라운 믿음에 대한 행위를 끊임없이 표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의 행위가 믿음의 증거를 보이지 않는다면, 그의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성경이 오류가 없음을 받아들인다고 하면서도, 성경을 해석할 때, 명확하게 해설하지 않는 한,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합니다.

성경은 그 자체가 주석이라고 하셨으며, 이 근거가 어디 있겠습니까? 성경에서 인용된 말씀이 실제로 있던 사실이 아니라는 생각을, 어떻게 가질 수 있습니까? 이러한 생각을 어떻게 수긍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 성경의 저자들은, 성령의 감동으로 된 말씀의 낱말을 변경시킨 적도 있었습니다. 이것은 특별히 구약의 예언이 신약에서 인용될 때 보여졌으며, 이러한 경우, 성경은 이런 일들이 확실하게 발생했었다는 암시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비슷한 말씀이, 네 복음서에서 약간 다르게 기록되었을 때, 성경은 한 복음서의 기사가 다른 복음서의 인용이라고 말씀하시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각 복음서에 기록된 내용들은 실제로 된 정확한 말씀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이것은 복음서에 기록된 내용이, 전체의 말씀 중에서 단편적인 한 부분임을 깨달을 때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21:25 참조). 예수님은 씨뿌리는 자의 비유를 여러 번 반복하여 말씀하셨고, 매번 말씀하실 때 다른 내용이 포함되었으며, 따라서 각 복음서에 기록된 말씀은 다른 복음서에 기록된 것과 다른 형태를 취합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묘사하실 때, 이와 같이 여러 가지 방법을 써서 설명하십니다.

인간과 세상의 기원에 대하여 세속적인 과학의 결론을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있는 것에 놀라지 않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성경 말씀의 권위를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20:11)라고 말씀하실 때, 이것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손을 흔들면서 부인합니다. 창세기 1장에 자세히 기록된 진리의 말씀은 많은 과학자들에게 아무런 감명을 주지 못합니다. 그들은 오히려 딴 과학자들이 내리는 비 성경적인 결론에는 아무런 비판 없이 받아들입니다.

성경에는 그 뜻을 풀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구절들도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이며, 또 하나님은 무한하시며, 하나님은 영원에서 영원까지 존재하십니다. 따라서 우리의 유한한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에 속한 모든 진리를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진리를 드러내시는 시간표를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말씀의 명확한 이해를 위하여 묵묵히 기다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상징적으로 혹은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그 구절을 성경 전체의 문맥에서 주의 깊게 분석해 보면,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 것인가를 틀림없이 보여 주십니다. 우리는 결코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의심하거나 그 품위를 경감시켜서는 안됩니다.

사실 성경이 주는 정보는, 모든 기록이 진리를 포괄하며, 성경이 하나님에 의해서만 기록되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발견한 정보는 통일성, 결합력, 일관성 등이 창조로부터 마지막 때까지 인간의 전체 역사를 말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에 의해 저술된 어떤 책도 성경연구에서 보여 주는 엄청난 진리를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손에 들고 있는 성경은 하나님이 아니며, 이것은 단지 종이 위에 인쇄된 글일 뿐이지만,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과 인간은 밀접한 관계를 가지게 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음성이며, 하나님의 완전한 뜻의 성명서입니다. 성경은 왕의 명령이며, 성경이 하나님의 음성이기 때문에, 그 정확성이 의심되거나 변경되어서는 안 됩니다. 원본의 모든 단어는 비록 그것이 인간 저자의 인격과 처한 환경에 따라 기록되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것입니다. 어떤 단어도 우연히 또는 부수적으로 기록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육신의 눈으로는 그를 볼 수 없지만,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사역을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 안에서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그의 말씀도 거룩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 자신을 대할 때와 같은 경외심, 존경심, 두려움을 갖고 대하여야 합니다. 거룩한 성경이라고 불리는 훌륭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완전 무결함을 의심하는 죄는 간단히 넘겨버릴 죄가 아니며 중대한 죄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 출애굽기 203-5절에 말씀하신 것을 읽어보겠습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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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성경의 권위 위에 놓을 때, 우리는 과학을 경배하기 시작하는 것이며, 신학자의 권위를 성경 위에 놓을 때, 우리는 하나님보다 인간의 마음을 경배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죄는 하나님의 진노를 가져오게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라고 하신 가혹한 말씀은, 본질적으로 심각한 영원한 멸망에 대한 암시입니다. 우리의 자손이 끊어진다고 선언하신 말씀은 지옥의 멸망을 내포합니다. 이 말씀은 신명기 425-26절에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합니다.

 

네가 그 땅에서 아들을 낳고 손자를 얻으며 오래 살 때에 만일 스스로 부패하여 무슨 형상의 우상이든지 조각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악을 행함으로 그의 노를 격발(激發)하면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 증거를 삼노니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얻는 땅에서 속히 망할 것이라 너희가 거기서 너희 날이 길지 못하고 전멸될 것이니라

 

과학자들의 학설이 우리가 성경을 공부할 때 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그들이 발견한 증거가 성경 진리를 반박하는 것이어서는 안됩니다. 과학자들이 스스로 만든 가정에서 증거를 얻은 결론은, 성경 진리와 일치하지 않는 한, 결코 받아 들여서는 안됩니다.

신학자들의 견해도 연구할 수 있고, 우리에게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그들의 학설이 성경 권위를 약화시키는 것일 때는, 그것을 받아 들여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성경에 절대적으로 진실한 신학을 세워야 하며, 성경이 절대적인 진리에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은, 비록 그러한 아이디어를 시사하는 신학자가 상당히 유명하다 하더라도, 그것은 배척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교회가 위험한 상황에까지 이르렀고, 하나님의 진노가 교회에게 임할 것입니다. 우리는 바람을 심었고 광풍을 거두려 하고 있습니다(8:7).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우리 자녀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하며, 그들의 대다수는 우리 조상들의 믿음을 따르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큰 곤경에 처해 있으며, 매우 중한 죄를 범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죄를 범했을 때는, 그 뒤에 취할 수 있는 행동은 하나 뿐입니다. 우리가 범한 죄로부터 돌아서며, 하나님의 자비를 간절히 부르짖는 것입니다.

지금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변론하기 위하여 경건한 논쟁을 할 때가 아니라, 우리의 죄를 인정할 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비난했고, 과학을 숭배하기 시작했고, 바르트나 브르너의 이론에 너무나 많은 시간을 소비했습니다. 우리는 레버(Lever)나 다른 비 성경적 이단을 용납하였고, 올바르게 성경을 이해하는 신학이, 오늘날 거의 정지 상태에 있는 것이 우연이 아닙니다.

우리는 굵은 베옷을 입고 재 위에 앉아 하나님의 긍휼(矜恤)을 부르짖어야 합니다. 알지 못하는 사이에, 다른 신을 경배하도록 인도하는 교사들의 가르침을 거부하고 떠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F. 성취된 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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젨젨젨 1). 성경이 정확하다는 것은 성취된 예언을 통하여 입증합니다.

성경의 놀라운 특징은, 예언된 말씀이 성취된 것을 반복하여 발견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창세기 67절에서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예언하셨습니다.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노아 시대에 세상을 완전히 멸하셨을 때 예언하신 대로 성취하신 기록입니다.

창세기 18장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소돔과 고모라의 사악(邪惡)함이 극심하므로, 그 도시를 멸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 있고, 하나님의 진노에 대하여 창세기 1924-25절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에게로서 유황과 불을 비같이 소돔과 고모라에 내리사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하나님께서 여호수아 2장에, 옛 도시 여리고가 멸망할 것이라는 정보를 주시고, 여호수아 6장에서는 여리고성의 멸망한 기사를 보여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 626절에, 여리고 성을 다시 건축하는 자에 대한 저주를 선언하셨습니다.

여호수아 626절에 기록된 말씀을 읽어봅시다.

 

여호수아가 그 때에 맹세로 무리를 경계하여 가로되 이 여리고 성을 누구든지 일어나서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장자를 잃을 것이요 문을 세울 때에 계자를 잃으리라 하였더라

 

5백년 이상의 세월이 흐른 뒤, 어떤 사람이 여리고를 건축하였고, 이때에 일어날 일에 대하여 열왕기상 1634절에 다음과 같이 기록이 있습니다.

 

그 시대에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였는데 저가 그 터를 쌓을 때에 맏아들 아비람을 잃었고 그 문을 세울 때에 말째 아들 스굽을 잃었으니 여호와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로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하나님께서 신명기 2847절에서 옛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에, 하나님께 반역할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그들이 언어를 알지 못하는 민족에 의하여 멸망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수 백년 후 그들은 먼저 앗수르에 의하여 멸망당하고, 드디어 587 BC에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되었습니다.

우리는 반복하여 성경의 놀라운 결합성과 일관성을 발견하게 될 것이며, 하나님께서 기록하신 책만이 그러한 진리를 담을 수 있습니다. 참으로 성경은 엄청난 심혈을 기울여서 우리는 읽어야 합니다.

 

 

G. 요약

 

젨젨 1). 성경의 모든 말씀은 정확하고 권위가 있으며, 성경에서 배울 수 있는 내용이 무엇이든 간에, 말씀하시는 모든 내용이 진리이고 신뢰할 수 있습니다.

젨젨 2). 성경은 성경 스스로의 해석이 됩니다. 즉 성경은 성경에 의해서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억지로 성경 말씀을 해석하려고 함으로, 성경이 말하지 않은 것을 가지고 성경을 잘못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젨젨 3). 지구의 기원에 관한 과학적 결론은, 사실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가설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성경만이 지구의 기원에 관한 진리를 세울 수 있는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젨젨 4). 만일 과학의 권위를 성경의 권위 위에 놓는다면, 우리는 과학을 숭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나 신학자의 권위를 성경의 권위 위에 놓는다면 하나님보다 인간의 마음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젨젨 5). 성경은 예언한 말씀이 성취된 사실로 그 권위와 진실성을 입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