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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짓 범하는 죄

 

 

 

1. 다시 그들을 새롭게 하심

 

 

많은 사람들에게 성경구절 중에서 이해하기가 가장 어렵다고 생각하는 두 구절이 히브리서에 있습니다. 그들은 이 구절의 가르침이 무엇인가를 알려고 부단히 노력해 왔습니다. 이 두 구절은 히브리서 64--9절과 1026-31절입니다. 이 구절들을 이해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이유는 교회시대 마지막 시기에 적용이 되며, 우리가 바로 그 시기에 살고 있음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이 구절들을 이해하게되면, 지금까지 배운 교회시대의 마지막에 대한 것과, 곡식과 가라지에 대한 비유가 조화를 이룬다는 것을 발견하게될 것입니다.

처음 구절, 히브리서 64-9절에 하나님께서 선언하신 바를 읽어봅시다.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의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와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나은 것과 구원에 가까운 것을 확신하노라

 

 

A. 다시 그들을 새롭게 하심

 

이 구절을 이해하는데 열쇠가 되는 어구는 6절에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라고 하신 것이며, 이 말씀이 개인을 지적하여 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 이유는 새롭게 하여라는 뜻이 구원을 받는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3:5, 12:2).

구원을 받은 사람은 두 번 회개를 하고 새롭게 되는 일이 없습니다. 처음 구원을 받는 순간, 이미 그에게는 영원히 부활된 생명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구원받은 후 타락할 수 없다는, 성경이 가르치는 구원의 본질과 일치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한편, 이 구절이 구원받은 자들을 지적한 것이 아님은, 구원받지 못한 자들은 새롭게되는 경험을 아직 갖지 못했기 때문에 이 구절의 뜻은 해결하기가 불가능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지만, 이 구절이 지교회나, 어떤 회중을 지적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때 그 뜻을 이해하게됩니다. 요한계시록 2장의 기록이 바로 이 구절을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지극히 사랑하시던 에베소 교회에 대하여 읽을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2-3절에 에베소 교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이 구절은 에베소 교회를 칭찬하는 아주 훌륭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계속하여 말씀하시기를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라고 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24-5절을 읽어봅시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이 구절이 분명하게 가르치는 것은 교회가 처음 사랑을 버렸고 떨어져 나간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교회가 처음 사랑을 되찾고 회개할 것을 명령하신 것이며, 하나님 말씀에 더욱 순종해야함을 지적하셨습니다. 이로서 교회 회중에게 경고하신 바는 그들이 회개하지 못하면 촛대를 그 회중에서 옮기리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 교회가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지 않을 때, 죽은 교회가 된다고 하신 경고입니다.

이 구절은 히브리서 6장과 연결되며 말씀에 충실하던 교회가 타락하면, 다시 새롭게 될 수 없음을 지적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일단 교회가 타락하면 새롭게 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요한계시록 2장에서 에베소 교회를 극진히 사랑하셨다는 말씀과는 상반되는 것이 아닙니까? 만일 그들이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신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성경에 상반되는 기록이 없음을 우리는 잘 알고있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이 상반되는 것 같은 기록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습니까?

 

 

B. 순종을 하나님께서 기대하신다

 

히브리서 6장의 문맥은 사실상 59절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앞의 구절에는 그리스도에 대한 아주 중요한 정보를 믿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59절은 그리스도께서 순종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을 읽어봅시다.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이 구절은 구원받은 자는 그리스도께 복종하게 되어있음을 말합니다. 말할 것도 없이 그들에게 부활된 새로운 영을 주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만을 순종하기를 원하게 됩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5장을 계속하여 공부하면, 그리스도에게 순종하지 않는 자들을 지적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511절을 읽어봅시다.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의 듣는 것이 둔하므로 해석하기 어려우니라

 

이 구절은 영적으로 귀가 멀어서 듣지 못하는 사람들을 지적합니다. 듣지 못하는 자들에 대한 다른 구절을 우리는 즉시 생각하게 됩니다. 그 처음은 아모스 811절이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찌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또한 예레미야 521절을 읽어봅시다.

 

우준하여 지각이 없으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이여 이를 들을찌어다

 

위의 예레미야서의 말씀과 병행해서, 진리에 대하여 사도바울과 논쟁한 유대인에게 전달된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게 합니다. 사도행전 2826-27절을 읽어봅시다.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을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와 나의 고침을 받을까 함이라 하였으니

 

위에서 읽는 바와 같이, 세 가지 현상들이 오늘날 지교회와 회중 속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하나님께서 더 이상 지교회와 회중을 도우시지 않으심을 알게됩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56절의 말씀이 교회시대의 마지막 때 지교회 회중을 지적하는 말씀이 확실하다.

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하여 이 구절들을 더 자세히 살펴 봐야합니다. 히브리서 59절에 그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들이라고 한 것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치 않는 자들이 있음을 지적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교회들은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게됩니다.

곡식과 가라지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가라지와 곡식을 나누시며, 가라지를 불사르기 위하여 단으로 묶는다고 배웠습니다. 단으로 묶는 분명한 한가지 방법은, 교회에서 성경 말씀의 진리를 이해하는 능력을 하나님께서 제거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이 히브리서 511절에 이어서 기록되어있습니다. 히브리서 512-14절을 읽어봅시다.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이 구절이 강조하는 바는, 만일 우리가 참 믿는자라면, 성경말씀을 이해하는 능력이 꾸준히 증진된다는 뜻입니다. 교회에게 주어졌던 한가지 중요한 사명은 하나님의 말씀을 관리하는 일이었습니다(6:4). 하나님의 말씀을 잘 관리한다는 것은,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며, 교회의 지도자들은 점차적으로 성경말씀을 이해하게 되어야합니다. 그러나 이 구절이 지적하는 바는,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더 많이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그들에게 없음을 지적합니다. 교회가 설립된 때에 세운 기본 교리를 교회는 아직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 속에 막대한 진리가 담겨져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정하신 시기가 되면, 이러한 막대한 진리가 드러나게 된다는 것을 교회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가 가지고 있는 신앙고백이나, 그들이 주장하는 조직신학은 지교회가 새로이 알아야할 진리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교회는 처음 제정 된 교리가 최대한 성경적인지 살펴보고, 새로 발견하는 진리를 신앙고백에 보충하려는 노력이 전혀 없습니다.

 

 

C. 새로 태어난 갓난아이는 자라야한다

 

히브리서 5장은, 신자들이 갓난아이의 상태에서 더 이상 자라지 못하고 있음을 하나님께서 지적하신 비유입니다. 베드로전서 22절에 새로 거듭난 믿는자들이 말씀의 젖을 사모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믿는자들은 결코 자라지 않고 갓난아이로 남아 있어서는 안 됩니다. 만일 갓난아이가 자라지 못하고 있다면, 그 아이는 건강상태에 아주 큰 문제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512절은, 교회가 가지고 있는 교리는 너무도 미약하기 때문에, 계속하여 교사들이 회중을 가르치는데 도움을 주지 못함을 지적합니다. 또한 이 구절은 어린아이가 자라야하는 것같이, 회중을 성장시키는 교리를 가르칠 수 있는 교사가 필요함을 지적합니다.

베드로후서 318절의 말씀은 믿는자들이 은혜 안에서 자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대하십니다. 이와 같이, 교회의 회중도 영적인 지도자들이 성경을 가르침으로 성장하여야합니다. 그들이 말씀을 이해하고 자라날 때에 그들은 교리의 잘 잘못을 분간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514절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그들은 교리에 예민해지며 교회가 가르치는 잘못된 교리를 배척할 수 있어야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가 바로 성장하게 되면, 그들이 성경에 더욱 더 충실하게 될 것이며, 교회의 창시자(創始者)들이 만든 교리 중 잘못된 것을 지적하고, 그 내용을 수정하는 사역이 있어야할 것입니다.

 

 

D. 자라게 하시는 첫 번째 원리

 

하나님께서 계속하여 이 자라게 하시는 원리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히브리서 61-2절을 읽어봅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데 나아갈찌니라(6:1-2)

 

위의 두 구절은 성경 진리의 원칙을 가르칩니다. 사실상 이러한 원칙은, 교회의 신앙고백과 조직신학의 줄거리가 됩니다. 이 여섯 가지 원리는 참으로 복음의 기초가 됩니다.

이 구절에서, 하나님은 교회가 완전하게 되도록 지시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성경말씀을 더 알게되기를 항상 갈망해야한다는 것입니다. 교회시대에 성경학도는 성경의 많은 구절들을 이해하지 못하고있었습니다. 시시로 성경구절을 조심 있게 비교해가면서, 성령께서 자신을 진리로 인도해 주실 것을 기도하면, 알지 못했던 성경 구절들을 조금씩 더 알게되었을 것입니다. 사실상 이에 대하여 이사야 289-10절에서 다음과 같이 읽을 수 있습니다.

 

그들이 이르기를 그가 뉘게 지식을 가르치며 뉘게 도를 전하여 깨닫게 하려는가 젖 떨어져 품을 떠난 자들에게 하려는가 대저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되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는구나 하는도다

 

이사야 28장은, 히브리서 5장과 6장에서 가르치는 진리를 강조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기 시작하는 것은 마치, 우유를 먹는 갓난아이와 같습니다. 얼마 후에 우리는 그 아이가 딱딱한 음식을 먹는 것을 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자라는 과정은 점차적입니다. 이사야 289-10절에서 갓난아이가 자라는 것을 영적인 진리에서 자라나는 것으로 비교하셨습니다. 갓난아이는 순간적으로 자라고 뛰어다니지 못합니다. 행동도 갑자기 달라지는 것이 아니며, 음식도 부모가 먹는 것을 당장에 같이 먹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점차적으로 조금씩 도움을 받아서 강하게 되며, 비로소 장성한 성인이 됩니다. 성인이 되는 것은 점차적이며, 몇 년이 걸려서 되는 것입니다.

 

 

E. 완전하게 자라게 되는 과정

이것은 바로 교회시대를 통하여 지교회가 성장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대하신 것입니다.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이라는 것은 성경말씀의 지식으로 그들은 자라야한다는 뜻입니다. 그 자라는 과정이 상당히 더딜지라도 바로 갓난아이는 자라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성경학자들은 교회역사에 있었던 신학자들이 발견한 진리를 이해하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거스틴, 칼빈, 그리고 루터의 가르침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성장에 있어, 그들은 성경교리에 대하여서도 점차적으로 자세하고 정확하게 알아야합니다. 그러므로 시간이 갈수록 아주 중요한 교리에 대하여는 각각 다른 교파의 신학자간에도, 하나의 진리로 그 교리가 이해되어야합니다.

왜 그렇게 못하게 됩니까? 모든 교파가 성경말씀을 무오(無誤)하며, 분명한 것을 믿고 있지 않습니까? 어느 교파나 할 것 없이 교회목사들이 희랍어와 히브리어를 알고 있으며, 그 희랍어와 히브리어가 성경을 처음에 쓴 언어임을 알고있지 않습니까? 신학교육을 받은 목사들은 성경이 희랍어, 히브리어에서 잘못 번역된 것을 찾아낼 지식이 충분하게 있다고 보지 않습니까?

히브리서 61-2절의 경고는 참으로 이 시기에 적용이 됩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 구절이 시기에 맞추어진 경고라는 사실을 히브리서 6장에서 계속하여 배우게 될 것입니다.

 

 

F. 하나님께서 허용하심으로

 

히브리서 63절에서 이와 같은 경고를 시작하십니다. 이 구절을 읽어봅시다.

 

하나남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

 

성경의 어떤 진리를 깨닫게되는 것은 하나님이신 성령께서 우리의 삶 속에 함께 계시고 역사 하심으로 되는 것입니다. 잘못된 교리는 인간의 의지로 진리에 도달 하고자 하는 결과이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한 경우입니다.

다니엘 129절의 말씀을 기억하는 줄 압니다. 다니엘 12장은 세상종말에 일어날 일에 대하여 말씀하셨고, 9절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가로되 다니엘아 갈찌어다 대저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할 것임이니라

 

이 말씀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계획 중 어떤 진리는 세상의 종말이 가까이 올 때까지 우리가 깨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선언하신 바를 패기 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정하신 시기가 될 때까지 이 구절의 뜻을 알게 하시지 않습니다.

물론 성경의 어려운 구절을 바로 이해하기 위하여 애쓰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큰 축복이 있을 것입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히브리서 61-2절에서 정하신 자라야한다는 원리에 대하여, 모든 교단이 열심을 다하여 연구할 때 같은 진리를 찾게 될 것입니다.

히브리서 63절이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이라고 하신 것이며, 특히 이 구절이 교회 마지막 때를 지적하며, 정하신 시기에 적용이 되도록 하신 것입니다. 다니엘 129절에서 배운 바와 같이, 세상종말에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기 직전에, 이 말씀의 뜻을 깨닫게 하십니다. 교회 역사상 세상종말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연구한 바가 있기 때문에, 세상에 퍼져있는 신학자들이나, 성경학자들이 이 사건에 대한 성경의 진리를 찾아 낼 것이라고 기대할지도 모릅니다.

점차적으로 성경진리를 때에 따라 우리에게 알게 하신다는 것이, 성경에 기록된 말씀 외에 추가적으로 알게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 점차적인 계시는 때에 따라 이루어지며, 성경에 기록된 그의 말씀을 이해하도록 우리의 눈을 밝게 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신학자들은 이것을 어떤 해명(illumination)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갓난아이는 자라야합니다. 만일 그 아이가 자라지 않으면 그는 큰 문제에 봉착하고 있습니다. 자라지 못하면 마태복음 2장에서 달란트의 비유로 말씀하신 것 같이,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까지도 빼앗으십니다. 동시에 이와 같은 기본적인 진리와, 또 점차적으로 다른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만 합니다. 만일 어떤 신자가 성장하지 않는다면, 그는 하나님과의 사이에 아주 큰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커다란 문제에 대하여 이어서 히브리서 63절에 말씀하셨습니다.

 

 

G. 이상 구원이 불가능하다

 

다음 구절, 히브리서 64-6절을 살펴봅시다.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이 구절은 히브리서 61-2절에 제정하신 기본적 교리를 어느 교회가 가르쳐 왔기 때문에, 그 교회에 큰 축복이 있을 것을 강조합니다. 12절에서 지적한 진리를 이 교회는 가르치며, 회중은 말씀을 들음으로써 감명을 받게됩니다. 어떤 믿는자는 그 교회에서 말씀과 하늘의 은사를 받고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교회시대가 마지막이 될 때 교회에는 배도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사단은 계속하여 교회에 가라지의 씨를 뿌려왔던 것입니다. 이 가라지들 중의 많은 사람들이 목사, 장로, 그리고 집사들입니다. 그들은 점차적으로 회중을 잘못된 길로 끌고 갈 것입니다. 그 후 성령께서 그 회중을 떠나시며, 그 회중에게는 큰 환난의 시기가 온 것이며, 회중은 완전히 말씀을 배도 하게됩니다. 이것이 바로 사단이 다스리는 죽은 교회입니다.

 

 

H. 회개할 수 없다

 

위에서 살펴본 바는 히브리서 66절에 말씀하시는 무서운 사건에 대한 서론입니다. 4절과 6절을 동시에 읽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은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교회시대의 마지막을 지적하며, 그 때에 하나님의 심판을 모든 지교회에 빠짐없이 내리십니다. 이 심판은 하나님께서 교회를 복음선교에 사용하신 사역이 완료되었으며, 또한 교회가 영적으로 모두 죽었기 때문에, 그들이 회개하기에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그 지교회를 완전히 포기 하셨기 때문에, 그 회중이 회개하고 새롭게 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더 이상 이들의 회중에 계시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회중이 회개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과의 관계를 단절하셨고, 그들을 방치하셨습니다.

6절은 계속하여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구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께서 고난 당하신 때를 상기해야합니다.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기를 원하던 자들이 누구였습니까? 십자가에 달리신 일은, 참으로 유대인들이 행한 비천한 일이었고, 극도로 흉악한 일이었고, 야비한 일이었습니다. 이 십자가의 형은, 곧 극심한 고문을 받으면서 서서히 죽게 될 뿐만 아니라, 그 사형수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다는 것을 공중에게 완전히 공개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갈라디아서 313절에 다음과 같이 읽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물론 유대 지도자들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법이 신명기 2123절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의 소원은 그리스도를 죽일 뿐 아니라, 공중 앞에서 최대한으로 그리스도의 수치를 전시하려든 것이었습니다.젨젨젨젨젨젨

그러나 이것이 어떻게 교회의 마지막 때에 관련이 됩니까? 히브리서 66절은 다음과 같이 선언하십니다.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이 구절이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하나님의 뜻을 비로소 알게됩니다. 하나님을 배도한 교회에 속해 있는 자들이 새롭게되고 회개할 기회가 없다고 한 것은 유대의 지도자들이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한 것과 같은 일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배반한 지교회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바라보도록 푯말을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께서 유대인들과 그들의 지도자들의 영적 상태를 여러 번 말씀하신 이유를 비로소 우리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교회시대 마지막에 와서 지교회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저버린 상태를 알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교회를 버리실 것을 보여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듭 마태복음 1323, 그리고 요한복음 8장에 유대인 지도자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격심한 견책을 배우게됩니다. 하나님께서 무서운 얘기를 성경에 자세히 기록해 놓으신 이유는, 우리가 하는 행동에 대하여 훈계하시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66절의 격심한 말씀은 하나님께서 왜 교회와 회중을 심판하셔야 하는가를 깨닫는데 도움을 줍니다. 그들의 영적 상태는 외면적으로 보는 것 보다 갈수록 더 심각합니다. 만일 우리에게 성경이 없었더라면, 교회의 영적 상태가 죽어 있지만, 그것이 어떻게 사실인가를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상태가 아주 악화되어 있는 것을 짐작은 하지만, 그것을 믿으려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성경 구절을 읽어보지 않았더라면, 하는 기대를 할 수 있습니다.

놀랍게도, 지금은 아직도 구원의 날입니다. 아직도 교회 밖에서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구원을 받고 있습니다. 또 놀랍게도 그리스도께서 계속하여 그의 교회를 건립하시고 있습니다. 이 교회는 영원한 교회이며, 또 이 교회는 영원히 있을 교회입니다.

우리가 살펴본 성경말씀을 더 알 수 있게 도와주는 구절들이 히브리서 67-8절에 있습니다. 이 구절을 읽어봅시다.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의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와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이 말씀과 병행하는 구절이 교회를 포도원에 비유하여 말씀하신 이사야 5장입니다. 이 포도원은 전 교회시대를 통하여 지교회와 회중을 비유한 것입니다. 이 포도원이 마지막에 가서 질려와 형극이 날것이라고 한 것은 히브리서 68절에서 가시와 엉겅퀴라고 하신 것과 일치합니다. 이사야 56-7절을 읽어봅시다.

 

내가 그것으로 황무케 하리니 다시는 가지를 자름이나 북을 돋우지 못하여 질려와 형극이 날 것이며 내가 또 구름을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말라 하리라 하셨으니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의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공평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의로움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얼마나 무서운 말씀입니까? 이 상태가 지교회의 마지막 현상인 것에 놀라지 않습니까? 히브리서 59절과 68절의 말씀은 분명한 예언의 말씀이며,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에 따라오는 다음구절들은 아주 상쾌한 생각을 우리에게 가져다줍니다. 히브리서 69-10절을 읽어봅시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나은 것과 구원에 가까운 것을 확신하노라 하나님이 불의치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위의 구절에서 처음부분은 교회시대의 마지막을 말하지만, 참 믿는자들을 격려하고, 구원의 원칙과 참 믿는자들의 행실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5장과 6장은 구원의 큰 교리의 한 부분을 명백히 제시하십니다.

히브리서 1025절에, 우리가 막 공부한 내용과 같으며, 아주 감탄하게되는 진리가 있습니다.

 

 

 

 

2. 짐짓 범하는 죄

 

 

A. 짐짓 범하는 죄

 

히브리서 1026절을 읽어봅시다.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이 구절은 짐짓 범하는 죄를 말하며, 그러한 죄는 사하심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죄는 짐짓 범하는 죄입니다. 다윗 왕이 밧세바와 동침함으로 간음한 것은 짐짓 지은 죄였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짐짓 죄를 범했을 때 속죄하는 제사가 없다고한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습니까?

마가복음 3장에서 서기관들이 말하기를, 예수님께서 성령과 함께 계시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사단의 권세 아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들의 죄는 사함을 받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성령을 모독하는 죄만이 속죄함을 받지 못하는 유일한 죄입니다.

그렇지만 히브리서 1026절은 죄의 용서를 받지 못하는 짐짓 죄를 범하는 자를 말합니다. 이것 또한 성령을 훼방하는 것이 아닙니까? 문맥으로 봐서는 그러한 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떠한 죄를 말하는 것입니까?

히브리서 10장의 구절들을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는, 히브리서 6장에서 살펴본 것과 같은 교회시대 마지막에 있어 지교회에 있는 각 개인들에게 적용이 됨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이해할 때에, 모든 구절이 한가지 사건에 초점을 두고 있음을 알게될 것입니다.

 

 

B. 우리들끼리 모임을 갖는다

 

히브리서 1024-25절을 살펴보겠습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이 구절에서 즉각적으로 발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시기에 대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25절에 그 날이 가까이 오고있다는 시기를 말씀하시며, 그 날이 마지막 심판날을 지적한 것을 배웠습니다. 또 히브리서 1030-31절의 말씀도 심판날을 지적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구절을 읽어봅시다.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심판날은 이 교회시대가 끝난 다음에 오기 때문에, 이 구절은 교회시대의 끝을 의미합니다. 더 자세히 살펴보면, 이러한 진리를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024-25절을 다시 살펴보면, 아주 신기한 말씀을 발견하게 됩니다. 25절을 다시 읽어봅시다.

 

(우리가)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이 구절이야말로 신기한 말씀입니다. 혹 생각하기를, 회중이 모이는 것을 게을리 하지 말라고 한 것이 타당하다거나, 교회가 모이는 것을 게을리 하지 말라고 했어야한다고 말 할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라는 단어를 쓰셨습니까? (개역성경번역에는 우리가 빠져 있음) 하나님께서 심판날에 초점을 두고 그 날이 가까이 왔음을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까? 이 사실을 그날이 가까움을 볼 수록 더욱 모이기에 힘써라고 하신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신기한 말씀은 희랍어 "episynagogen"이며, 이 단어는 서로 모이라고 번역되었습니다. 성경에서 이와 같이 서로 모인다는 단어를 사용한 곳은 히브리서 10장외에 단 한번 밖에 없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1절이 바로 이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이 구절을 읽어봅시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이 구절에서 그 앞에 모임은 앞서 말한 희랍어 episynagogen와 같은 단어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1절의 문맥을 보면 누가 서로 모이는 가를 알 수 있습니다. 여기 모이는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는 개인들을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만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은 오로지 참 믿는자들입니다. 지금의 교회는 그리스도를 만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회중 모두가 그리스도를 만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휴거를 받는 것은 개인적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있는 줄 압니다. 누가복음 1734-37절에서 한 사람은 데려가고 또 다른 한 사람은 남겨둔다고 거듭 강조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히브리서 1025절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지교회의 회중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개인을 지적함을 알게됩니다.

교회시대가 끝난 다음에 마지막 추수가 이루어짐을 배운바가 있습니다. 이 시기에는 추수의 사역이 지교회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교회 밖에 있는 어떤 개인에게 맡겨졌습니다. 우리에게 각자들이 모이기를 힘쓰라고 한 것은 그 모임에 회원권을 받는 다는 것이 아니고, 영적인 지도자들이 있어야 된다는 것도 아닙니다. 이 때에는 외부적인 어떤 행사도 요구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물로 주는 세례가 없고, 신앙을 고백 해야하는 일이 없고, 성찬식을 거행하는 일도 없고, 교회의 회원증도 없고, 또 지교회가 제정한 교리를 지켜야한다는 것도 요구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모임은 순전히 개인적인 모임이며, 서로가 권면(勸勉)하는 모임입니다. (권한다는 단어가 서로 위로한다고 번역되는 것이 더 바른 번역이다.)

모이는 사람들의 수를 말한다면, 어떤 한 사람이 하나님과 사귀는 모임, 훼로쉽(Fellowship)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요한일서 13절에서 다음과 같이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이 훼로쉽은, 같은 마음을 가진 몇몇 사람들로 모임을 가질 수 있습니다. 열쇠가 되는 단어는 우리 자신들이라는 점입니다. 즉 초점은 개인에게 있으며, 교회시대에 교회를 형성한 집단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다음 구절, 히브리서 1026절과 어떤 관련이 있습니까? 이 구절을 읽어봅시다.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그러나 짐짓 죄를 범한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일찍 배운 바에 의하면, 모든 죄는 짐짓 범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짐짓 죄를 범하는 사람들을 구원하시려 오셨습니까? 분명한 것은, 그가 아주 선한 사람들을 구원하시려 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구절은 짐짓 죄를 범하는 사람들 중에서 그 죄의 용서함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우리는 이미 성령을 훼방하는 죄는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성령 훼방 죄를 범한 사람들은 예수님을 살해하려는 서기관들이었고, 히브리서 10장은 결코 서기관들을 지적해서 말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C. 지역교회에서 나오기를 거절하는, 짐짓 범하는 죄

하나님께서 이제는 교회를 저버리셨고, 사단이 교회를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함과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교회에서 아직도 출회 되지 않은 참 믿는자들을 그 교회에서 나오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영적으로 바벨론이 된 교회는 사단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그곳에서 나와야합니다.

이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야합니다. 만일 어떤 개인이 지교회를 나오라는 명령을 일부러 잊으려하고, 또 계속하여 지교회 교인으로 남아 있으면서, 하나님의 용서하심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히브리서 1026절에서는, 이런 개인이 진리를 깨달을 것을 지적한 것은, 바로 그들이 성경을 소유하고 있으며, 그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많은 가르침을 성경에서 얻고, 또한 성경을 안다는 것이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님도 알고 있습니다. 또 그들이 많은 진리를 성경을 통하여 알고 있지만, 구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 사실은 26절의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라고 하신 말씀과 일치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개인이 회중에서 나오라고 하신 명령을 짐짓 거역한다면, 그는 더 이상 구원을 받을 수 있는 환경에 처하지 못하게 됩니다.

말할 것도 없이, 구원을 받지 못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또한 히브리서 1028-29절에 집중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028-29절을 읽어봅시다.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 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이 두 구절은 교회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놀라게 해야합니다. 이는 결코 교회 밖의 세상에 있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모르는 사악한 사람들을 지적한 것이 아닙니다. 아주 착하고, 도덕적이고, 보기에 경건하고 책임감 있는 남녀와, 목사, 장로, 집사들을 말합니다.

 

 

D. 곡식과 가라지를 구별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제도)

 

위에서 배운바와 같이, 교회를 나오라고 하신 명령은 하나님께서 곡식과 가라지를 갈라내시는 방법입니다. 위의 구절 속에 교회를 나오지 않아도 되는 어떤 절충적인 방법은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교회를 나오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짐짓 불순종한다면, 하나님의 자비에서 떠나며, 영원한 멸망으로 버림을 받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나오라는 명령에 짐짓 불순종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더 이상 자비를 베푸시지 않을 것입니다. 히브리서 1029절에 하나님 명령에 불순종하는 자들에 대하여 경고하십니다.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위의 구절에서 아주 무서운 세 가지 사실을 지적하셨습니다.

젨젨 1). 누가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다 합니까?

젨젨 2).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는 자가 누구입니까?

젨젨 3).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누구입니까?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 한가지 짐짓 범하는 죄를 그토록 심하게 견책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인간의 죄가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불순종은 구원받지 못한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마치 고린도전서 714절에서 읽는 것과 같이,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않는 아내가 남편을 인하여 거룩하게 되나니라고 하신 말씀과 동일한 경우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신성한 집합체인 교회의 교인이었기 때문에, 세상과 구별되었었고, 또 복음을 들을 수 있었고, 참 믿는자들이 함께 속해 있는 교회의 교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교회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많은 축복을 즐겨왔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명령을 짐짓 불복종함으로써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들을 밟고라는 말씀은, 싸워서 승리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들이 교회를 떠나라는 말씀에 불복종하는 것은, 말하자면, 그들의 승리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내 자신이 잘 알아서 한다는 복음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이 주장하는 구원은 그들 자신을 즐겁게 하는 일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아울러, 그들에게 성경이 필요한 이유는, 교회가 설립하고 지키는 교리를 성경에서 배우는데 있다고 합니다.

마태복음 513절에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는 줄 압니다. 이 구절을 읽어봅시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하나님 아들을 밟는 다는 것은 그리스도가 아무 쓸때 없어 버림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무서운 고발입니까? 언약의 피라는 뜻은 그리스도께서 바로 하나님의 언약이심을 말합니다. 그러나 교회 교인들은, 그리스도의 은혜의 언약이 거룩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 세운 복음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잘못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며, 사람들에게 교회를 떠나라고 전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라는 뜻은 성령을 거슬리고, 대적하고, 욕되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29절에서 말씀하신 뜻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건방지게 굴며,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떨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께서 교회에서 나오라고 하신 명령은, 모든 교회 교인이 다 시험에 빠져 있다는 뜻입니다. 이 시험에서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 앞에 굴복한 일이 없는 사람들을 구별하십니다. 그들은 상하고 애통하는 마음을 가져본 적이 없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교회에서 목사들과, 교회가 세운 교리를 믿는자들입니다. 그러나 사실상 그들은 복음을 경멸하고, 하나님의 진실한 복음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구원이 있을 수 없는 환경에 처해져 있습니다. 그들은 가라지들이며, 불에 사르기 위하여 묶어 준비되는 과정에 있습니다.

 

E.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신다

히브리서 1030절에 기록된 말씀에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고 하신 것을 지금에 와서 이해할 수 있게되었습니다. 평소에 이 구절을 읽으면서 어떻게 하나님이 자기의 백성을 심판하십니까? 라고 반문합니다. 여기에서 자기 백성이 구원받은 자들을 말하십니까?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다시 심판을 받지 않는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성경에 그의 백성이라고 할 때에 일반적으로 구원받은 자들을 지적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또한 하나님의 왕국을 대표하는 거룩한 외형적 기관과, 거기에 속해 있는 구원받지 못한 자들을 지적합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왕국을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역사상 어떤 시점에서도 이스라엘 왕국의 대개의 개인들은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교회 역사에, 신앙을 고백한 지교회의 교인들이 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간주되어 있으나, 지금까지의 공부에서 알게된 것과 같이, 태반의 교인들이 구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엄숙한 경고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백성을 심판하신다는 선언입니다.

이 경고는 이사야 525절에서 하신 말씀을 기억나게 하십니다. 이 구절을 읽어봅시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노를 발하시고 손을 들어 그들을 치신지라 산들은 진동하며 그들의 시체는 거리 가운데 분토 같이 되었으나 그 노가 돌아서지 아니하였고 그 손이 오히려 펴졌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