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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인류 역사의

시기와 계절을 가르친다 

 

이 세상이 창조된 지 약 13,000년이 된 것을 성경은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의하여 존재하는 이 세상이 마지막 때에 이르렀음을 우리는 분명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세상이 종말에 접근해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인봉(印封)해 두셨던 성경의 진리를 점차로 알게 하십니다. 특히 종말에 나타날 계시에 대

하여 그 내용을 알게 하십니다. 다니엘 129절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예언을 기억하는 줄 압니다.

"그가 가로되 다니엘아 갈지어다 대저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할 것임이니라"

 

그러므로 성경에서 지금까지 신비로 남아있던 구절들을 차츰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어 사도행전 17절의 기록을 보면, 제자들이 이스라엘 왕국이 회복될 시기를 예수님께 물어 보았습니다. 그들은 생각하기를 메시아가 오시면, 로마의 지배하에서 벗어나고, 메시아가 예루살렘의 왕으로 군림하실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입니다(6:15를 볼 것).

우리가 성경에서 배우는 하나님의 나라는 영적인 나라입니다. 이 왕국은 구원받기로 예정된 마지막 사람이 구원받을 때에 완성됩니다. 이 사실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사도행전 17-8절에서 답변하셨습니다.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그러나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대답하실 때, 아주 신비로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라고 하신 점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사실은 하나님의 구원계획에는 때와 기한이 나누어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2절을 다시 읽어보면, 이 구절에서도 때와 기한에 대하여 읽을 수 있습니다.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이 구절의 뜻을 성경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도움을 주는 구절이 야고보서 57절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농부는 하나님 자신이시며, 하나님께서 강조하시는 것은 이른 비와 늦은 비입니다. 신명기 322절에서 비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복음을 말합니다. 이 구절을 읽어봅시다.

 

나의 교훈은 내리는 비요 나의 말은 맺히는 이슬이요 연한 풀 위에 가는 비요 채소 위에 단 비로다

 

그러므로 야고보서 57절에 근거를 두면, 복음을 세상에 전하는 사역이 최소한 두 계절로 나누어짐을 알 수 있습니다.

 

 

A. 비로 상징한 세 가지 특수한 계절들

 

성경이 가르치는 이른 비와 늦은 비에 대하여 더 조사해보면,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아름다운 계획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에 대한 설명이 요엘 223절에 있고, 또 다른 여러 곳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선 요엘 223절을 읽어봅시다.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전과 같을 것이라

 

첫째, 히브리어의 적당하게()롭게라고 번역되었어야 합니다. 둘째, 비가 지금 현재 내리고 있음을 말합니다. 세째로 늦은 비가 첫째 달에(the latter rain in the first month)는 또 다른 오역이며, 이것은 첫째 후에라고 번역이 되어야합니다.(한글 개역에는 전과 같을 것이라로 되었음) 이상을 고려하여 요엘 223절을 다시 써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의롭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첫 번째 비 이후에 내리시리라

이 구절에서 세 가지 비에 대하여 읽을 수 있습니다. 처음의 비를 이른 비 혹은 이전 비라고 하셨고, 이른 비를 뒤따르는 또 다른 한 비가 다시 이른 비와 늦은 비로 나누어 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두 번째의 이른 비늦은 비는 모두 첫 번째 이른 비 후에 따라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 가지 계절이 있음을 배웠습니다. 처음은 의로운 이른 비를 가져오는 계절이며, 그 첫 번째 비를 뒤따르는 또 다른 이른 비와, 늦은 비는 첫 번째 이른 비 다음에 오는 비입니다. 이와 같이 영적인 비는 영적인 추수를 얻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이것을 요엘 224-26절에서 선포하셨습니다. 이 구절을 읽어봅시다.

 

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리로다 내가 전에 너희에게 보낸 큰 군대 곧 메뚜기와 늣과 황충과 팟종이의 먹은 햇수대로 너희에게 갚아 주리니 너희는 먹되 풍족히 먹고 너희를 기이히 대접한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 것이라 내 백성이 영영히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B. 계절에 따르는 세 가지의 비와 다른 추수

 

계속해서 성경말씀을 보면, 세 가지 각기 다른 추수의 내용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세 가지 다른 추수는 세 가지 다른 계절에 오는 비에서 얻는 것을 요엘 223절에서 발견합니다.

레위기 2310-11절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위선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너희를 위하여 그 단을 여호와 앞에 열납되도록 흔들되 안식일 이튿날에 흔들 것이며

 

이 구절에서 처음 익은 열매를 제사장에게 가져왔을 때 여호와 앞에서 그것을 흔들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이 처음 익은 열매는 유월절부터 50일 후인 오순절에 있던 처음 익은 열매들과 구별되며, 이 첫 번째 열매를 히브리어로 긮eshith 라고 합니다. 오순절에 바치는 처음 익은 열매들을 히브리어로 긞ikkur라고 합니다. 위에서 말한 reshith(first fruits)라고 한 처음 익은 열매를 바친 것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처음 들어왔을 때 일어난 일입니다. 그리고 이 때에 바친 열매는 이스라엘이 추수한 열매가 아니며,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 왔을 때 이미 그 땅에 추수되어 있던 열매들입니다. 여호수아 419절에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 온 것이 정월 10일이었으며, 나흘 후 정월 14일에 가나안 땅에서 첫 번째 유월절을 지켰습니다(5:10). 그러므로 이때에 바친 추수가 첫 열매였음이 틀림이 없습니다. 이 오순절의 열매는 처음 익은 열매들 중의 첫 번째 열매(reshith: first of first fruits)가 제단에 바쳐진 후 50일 만에 일어난 일입니다. 레위기 2315-17절이 오순절의 처음 익은 열매를 말합니다.

 

안식일 이튿날 곧 너희가 요제로 단을 가져온 날부터 세어서 칠 안식일의 수효를 채우고 제 칠 안식일 이튿날까지 합 오십 일을 계수하여 새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되 너희 처소에서 에바 십분 이로 만든 떡 두개를 가져다가 흔들지니 이는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어서 구운 것이요 이는 첫 요제로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며

이상의 구절은 유월절에서부터 50일이 지난 후에 오는 오순절을 말합니다. 이 오순절은 추수를 감사하여 드리는 절기이며, 너희들의 수고로 얻은 처음 익은 열매(bikkur)를 맞이하는 날(23:16)이라고 하신 점에 유의합니다. 여러분이 또한 유의할 점은 오순절에 바치는 처음 익은 열매라는 히브리어 단어가 레위기 2310-11절에서 유월절에 바치는 처음 익은 열매와 구분된 점입니다.

세 번째 추수는 수장절(收藏節:feast of ingathering)이라고 불리며, 이 절기는 연말에 오게 됩니다(23:16). 이 절기는 장막절이라고도 불리어지며, 모든 추수를 마치면서 지키는 절기입니다. 이때에 추수를 처음 익은 열매 라고 부른 일은 없습니다. 성경은 이 절기를 일년 마지막에 오는 수장절이라고 말합니다.

이와 같이 세 가지 추수가 매우 중요한 것을 하나님께서 신명기 1616절에 선언하셨습니다.

 

너의 중 모든 남자는 일년 삼차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은 추수는 비가 내린 결과라는 점입니다. 이와 같이 요엘 223절에서 말씀하신 비가, 세 가지 추수와 서로 아름답게 조화가 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C. 그리스도 - 의로운 이른 비에서 얻은 첫 열매

 

요엘 223절에 의하면 의로운 이른 비가 처음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의로운 비는 이스라엘에게 내리신 하나님의 복음임을 말하며, 이 복음은 아브라함에서 시작하여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발표한 때까지를 말합니다. 그 복음의 의로운 이른 비가 추수한 결실이 바로 주 예수님 자신이었습니다. 세례요한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고 말한 것은 바로 그리스도께서 유월절의 어린양이 되신 것을 선포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처음 익은 열매의 처음 것입니다.

예수님을 유월절의 어린양으로 선포한 사실은, 의로운 이른 비가 해야 할 일을 완수하셨음을 가리킨 것입니다. 이른 비는 주 예수님을 유월절의 어린양으로써 세상에 가져왔습니다. 그리스도는 다음에 있을 이른 비와 늦은 비에 앞서 있어야 할 추수인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23절에서 읽는 것 같이, 그리스도는 처음 익은 열매이십니다.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그리스도는 구약시대에 첫 번째 열매(reshith)로 상징되었습니다. 그는 또한 로마서 823절에서 말하는 바 처음 익은 열매이십니다.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유월절이시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의로운 이른 비로써 얻는 첫 번째 열매로 지적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처음 익은 열매의 첫 번째이십니다.

 

 

D. 교회시대 - 이른 비에서 얻은 오순절의 열매

 

그리스도자신이 처음 익은 열매의 첫 번째 열매(reshith)가 되셨기 때문에, 그 다음 추수가 계속하여 나오게 됩니다. 이 계속되는 추수도 역시 처음 익은 열매(bikkur)로 불려집니다. 구약성경에서 배운 바와 같이, 히브리어에서 그리스도를 지적하는 처음의 열매는 오순절에서 추수하는 처음 익은 열매와 구별이 되어있습니다.

이와 같이 오순절에서 지적된 처음 익은 열매는 신약시대 즉 교회시대 전체를 지적합니다. 이 열매는 33 AD에서 시작되었으며, 이 때 그날 오후에 3000명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 열매야말로 유월절의 어린양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처음 익은 열매의 첫 번째 열매로 오심으로써 의로운 이른 비의 결실을 맺으신 결과입니다. 이 오순절에 시작한 복음의 비는 1900년 이상을 계속하여 온 세상에 내려진 것입니다. 이 이른 비는 하나님의 왕국이 존재함을 외형적으로 나타내기 위하여 온 세계의 교회와 교인들을 만드셨습니다. 그 중에 구원을 받은 모든 믿는자들이 이 교회가 전하는 복음을 듣고 처음 익은 열매가 된 것입니다. 사실상 야고보서 118절에 믿는자들을 처음 익은 열매로 부르신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야고보서 118절에서 말하는 처음 익은 열매는 믿는자를 지적합니다. 두 종류의 처음 익은 열매, 즉 처음 익은 열매의 첫 번째 열매와, 오순절이 가져오는 처음 익은 열매로 나누어짐을 다시 상기합니다. 교회는 바로 오순절의 처음 익은 열매, bikkur입니다. 요한계시록 141절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144,000명은 바로 이 교회시대에 구원받은 모든 자들을 상징합니다. 여기에서도 4절에 이들을 처음 익은 열매라고 불렀습니다. 요한계시록 144절은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이상과 같은 바로 이 두 계절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바 사도행전 17절에 나와 있습니다.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

 

 

E. 늦은 비가 내리는 계절

 

그러나 또 다른 계절을 고려에 두어야 합니다. 이 계절은 늦은 비의 계절입니다.

그리스도 왕국에 들어온 오순절의 처음 익은 열매는 오순절 이른 비의 결과이며, 교회시대의 시작입니다. 이 오순절의 이른 비의 계절에 이어서 늦은 비의 계절이 옵니다.

이 늦은 비는 한 해의 마지막에 거두는 추수인 수장절과 연결됩니다. 출애굽기 2314-16절에 기록되어있습니다.

 

너는 매년 삼차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한대로 아빕월의 정한 때에 칠일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이는 그 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 빈 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찌니라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年終)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이 구절은 연말에 오는 수장절을 말합니다. 처음 익은 열매라는 어구가 이 수장절기에는 사용되지 않습니다. 이 절기를 마지막으로 추수를 끝내기 때문에 처음 익은 열매라는 말을 쓸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절기는 믿는자들을 마지막으로 거두시는 것을 지적하심이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믿는자들을 마지막으로 거두시는 것을 늦은 비로써 지적하셨습니다. 늦은 비는 큰 무리와 연결되며, 이 마지막 큰 환난기간에 구원받은 사람들을 셀 수 없는 큰 무리라고 하셨습니다(7:9-14).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세 가지 계절에 대하여 사도행전 17절에 말씀하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가 내리는 각 계절들 사이에 극심한 영적인 기근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기근은 진실한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되지 못해서 오는 기근이 아닙니다. 이 기근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근입니다.  

 

계절 1: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열매를 맺게 하는 비: 처음의 의로운 이른 비

열매: 그 결실로 오신 예수님이 유월절 어린 양으로 선포됨. 그는 처음 익은 열매의 첫 번째 열매가 되심.

 

계절 2: 33 AD 오순절에서 시작된 교회시대

열매를 맺게 하는 비: 이른 비

열매: 교회시대에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 그들은 처음 익은 열매라고 불린다.

 

계절 3: 교회시대가 끝난 후 들어오는 큰 무리

열매를 맺게 하는 비: 늦은 비

열매: 이 결실은 큰 환난기간에 구원받는 자들이다.

 

 

F. 엘리야 시대의 기근

엘리야 때에 있던 실제적인 기근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영적인 기근을 상징하셨습니다. 열왕기상 171절을 다시 읽어봅시다.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고하되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雨露)가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이 기근은 극도로 사악한 이사벨과 결혼한 왕 아합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에 일어났다. 야고보서 517-18절에 의하면 이 기근이 36개월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년 육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

신명기 1113-17절에 의하면, 극도로 사악하기 때문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신 것을 영적 기근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신명기 1113-17절을 읽어봅시다.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나의 명령을 너희가 만일 청종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섬기면 여호와께서 너희 땅에 이른비, 늦은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또 육축을 위하여 들에 풀이 나게 하시리니 네가 먹고 배부를 것이라 너희는 스스로 삼가라 두렵건대 마음에 미혹하여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그것에게 절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하늘을 닫아 비를 내리지 아니하여 땅으로 소산을 내지 않게 하시므로 너희가 여호와의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속히 멸망할까 하노라

 

엘리야 시절에 있었던, 비가 오지 않는 기근이 엘리야가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게 함으로써 끝이 났으며, 그 하늘에서 내린 불은 제단에 드린 소를 완전히 태웠습니다. 이 후 바알의 선지자 450명을 살해한 사건이 뒤를 따랐으며, 그 후에 큰비가 내림으로써 기근이 끝났습니다.

이 극적인 사건은 갈멜산에서 일어났으며, 엘리야는 450명의 바알의 거짓선지자들과 대결하여 불이 하늘에서 내려오도록 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불이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내려짐을 상징합니다. 사단의 지배 아래 있는 바알의 선지자 450명은 심판을 가져올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오로지 하나님께서만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제단에 올려놓은 송아지()는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그는 우리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었음을 나타낸 것입니다. 이 사건은 실질적으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 이루어질 일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소는 그리스도를 상징한 것이며, 제단은 하나님의 진노를 상징하며,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께서 구원하시고자 계획하신 모든 자들의 죄를 지시고 형벌을 받으신 대속(代贖)을 상징합니다. 바알의 선지자 450명은 엘리야에게 죽임을 당했으며(왕상 18:40),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을 때 사단이 그리스도 앞에 굴복되었음을 상징합니다. 사단에게 심판을 내리신 시기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 달리신 순간입니다. 갈멜산에서 기적이 일어나기 전, 36개월 동안 기근이 있었던 사실은, 그리스도께서 3년 반 동안 복음을 선포하신 것을 상징합니다.

 

 

G. 예수님 당시의 기근

 

예수님께서 복음을 직접 전하시던 때에 구원받은 사람의 수가 극히 적었습니다. 그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 영적 기근이 있었던 것입니다. 36개월 동안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어린양이라는 세례요한의 선포를 받은 후 십자가에 달리신 때까지임을 우리는 배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복음사역을 하신 3년 반은, 엘리야 때에 실제적으로 기근이 있었던 사실과 병행됩니다.

의로운 이른 비가 예수님께서 유월절 어린양으로서 선포되던 날 까지 계속하여 내렸음을 배운 바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후 몇 주 동안의 영적인 기근은, 영적인 비가 내려서 오순절 날에 3,000명이 구원받는 것으로 극적으로 끝나게 됩니다. 이것은 신명기 11장의 예언의 말씀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시던 시기에 영적인 기근이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근이었습니다. 예수님 말씀이 구원에 대한 것임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이었습니다. 이 기근 후에 교회시대가 시작됨으로써 이른 비의 계절이 뒤따르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오순절에서 시작한 이른 비의 교회시대는 근 1900년 이상 계속되었으며, 이 계절은 큰 환난의 시기가 시작함으로써 끝이 나게 됩니다.

 

 

H. 큰 환난으로 시작하는 기근

 

큰 환난의 시작은 또 다른 영적인 기근이 올 것을 암시합니다. 이 영적 기근의 시기도 3년 반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유의할 점은 엘리야 때에 있었던 36개월 동안의 기근과 예수님 때에 영적인 기근이 실제적으로 3년 반인데 반하여, 큰 환난 기간이 3년 반으로 명시된 것은 상징적인 숫자입니다. 요한계시록 112절에서 명시한 바 42개월 동안 거룩한 성이 짓밟히게 되는 것에 유의하기를 바랍니다.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달 동안 짓밟으리라

 

요한계시록 119절과 11절에도 3일 반에 대한 기록을 읽을 수 있습니다.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목도하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9)

삼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가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11)

 

성경 여러 곳에서 하루를 일년으로 지적하며, 3일 반은 3년 반으로 볼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감안할 때, 이 구절은 다니엘 8장에서 말하는 실제적인 2300주야를 (큰 환난의 전반) 지적하는 것입니다.

이 시기에는 영적 기근 후에, 큰 환난을 완성시키는 늦은 비가 뒤따라오며, 그 후 그리스도의 재림과 동시에 세상의 종말이 옵니다.

사도행전 17절에서 예수님께서 시기와 계절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은, 그의 복음전파의 시기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위에서 배운 것을 요약하면,

 

젨젨 1). 의로운 이른 비가 내리는 계절 - 구약시대가 아브라함에서 시작하여,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어린양이심을 선포한 날까지입니다.

젨젨 2). 영적인 기근의 시기 - 예수님께서 선교하신 3년 반 동안입니다.

젨젨 3). 이른 비가 내리는 계절 -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33 AD에서 시작하여 큰 환난이 시작되는 때까지의 교회시대로서 1950년이 조금 넘는 기간입니다.

젨젨 4). 영적 기근의 시기 - 큰 환난의 첫 부분(반시간) (삼일 반, 혹은 42 개월로 표시됨)

젨젨 5). 늦은 비가 오는 계절 - 아무도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구원을 받는 큰 환난의 시기입니다.

젨젨 6). 심판 날 -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세상의 종말

 

하나님께서 심으신 포도원의 비유로 세 가지 계절에 일어나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설명합니다.

 

 

I. 한 포도원 - 두 포도원의 관리인

 

하나님께서 세계선교를 위하여 그 시기와 계절을 정하시고, 그 시기를 따라 우리에게 가르치신다는 것을 성경에는 여러 방법으로 표시가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포도원을 비유로 사용하신 내용을 살펴봄으로써, 하나님의 복음전파의 계획이 계절로 나누어지는 것을 검토해 볼 것입니다. 성경에는 포도원에 대한 기록이 여러 곳에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포도원을 비유로 하신 기록 중에, 특별히 두 개의 기록이 눈에 뜨입니다. 그 기록은 마태복음 21장과 이사야서 5장입니다. 이 두 기록을 비교하여 같은 점과 또 상반되는 내용을 검토해 볼 것입니다. 마태복음 21장의 내용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의 왕국을 말씀하시며, 외형적인 국가 이스라엘이 그 하나님의 왕국을 대표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들은 특별한 하나님의 선민이었으나, 주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리게 함으로써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가 끝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이사야서 5장은 마태복음 21장에서 말씀하신 포도원과 같은 포도원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이사야서 5장은 교회시대에 구성된 지역교회와 여기에 속한 교인들을 하나님의 왕국으로 지적합니다. 이 교회시대는 오순절 날 3000명이 구원을 받은 역사적 사건이 명확한 증거로 나타납니다.

그 한 포도원이 어떤 사람들을 대표하고 있음을 다음과 같은 성경구절에서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51: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이사야 57: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의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공평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의로움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마태복음 2145: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의 비유를 듣고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줄 알고

 

위의 구절들은 포도원이 사람들을 지적할 뿐만 아니라, 이 포도원이 그리스도 자신과 연관(聯關)이 된 특정한 사람들을 지적합니다.

 

사실상 마태복음 21장과 이사야서 5장이 같은 포도원을 말하고 있지만, 포도원이 존재하는 두 가지 다른 시기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 두 포도원은 그리스도께서 만드셨고, 또 그리스도께서 소유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이사야 51: 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나의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마태복음 2133: 다시 한 비유를 들으라 한 집주인이 포도원을 만들고 산울로 두르고 거기 즙 짜는 구유를 파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위의 두 포도원이 모두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이사야 52: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그 안에 술틀을 팠었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혔도다

마태복음 2133: 다시 한 비유를 들으라 한 집주인이 포도원을 만들고 산울로 두르고 거기 즙 짜는 구유를 파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위에서 읽는 두 포도원에는 각각 다 관리인이 임명되었고, 그들에게 포도원의 과실을 추수할 책임이 주어졌습니다. 그들은 다 포도원 주인에게 답변해야할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이사야 57: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의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공평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의로움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마태복음 2133: 다시 한 비유를 들으라 한 집주인이 포도원을 만들고 산울로 두르고 거기 즙 짜는 구유를 파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두 포도원의 관리인들이 다 자신들의 책임을 수행하지 않았습니다. 마태복음 2134-35절은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실과 때가 가까우매 그 실과를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들을 잡아 하나는 심히 때리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쳤거늘

 

이사야서 52절에도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그 안에 술틀을 팠었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 포도를 맺혔도다

 

그러나 포도원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포도원을 관리하지 못한데 대하여 아주 특이한 방법으로 포도원 관리인들을 벌하심을 읽을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1장에서 비유로 말씀하신 포도원은 하나님께서 그 포도원을 멸하시지 않으셨다는 점입니다. 단순히 다른 농부들에게 넘겨졌을 뿐입니다. 마태복음 2141절을 읽어봅시다.

저희가 말하되 이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때에 실과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지니이다

이와 반면에 이사야서 5장에 비유하신 포도원은, 포도원 주인에 의하여 사정없이 파멸을 당한다는 사실입니다. 이사야서 55-6절에 다음과 같이 선언하셨습니다.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 것을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케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 내가 그것으로 황무케 하리니 다시는 가지를 자름이나 북을 돋우지 못하여 질려와 형극이 날 것이며 내가 또 구름을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말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와 같이 말씀하신 것은 포도원이 완전히 멸망을 당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선언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이 포도원과는 영원히 관계를 끊으신 것입니다. 그렇지만 왜 하나님께서 이토록 잔인하게 포도원을 처리하시는 것일까요?

왜 하나님께서 이사야서 5장에서 포도원을 멸하시고, 마태복음 21장에서는 포도원은 멸하시지 않으셨는지요? 우선 기억해야할 일은, 포도원은 과실을 얻기 위하여 만드신 것입니다. 이사야서 5장에서의 포도원은 포도를 재배(栽培)한 것이 아니고 들 포도를 수확하였다고 하셨습니다. 히브리어에서 들 포도로 번역된 단어가 다른 곳에서는 악취라고 번역이 되었습니다(34:3과 욜 2:20). 그러므로 이 포도원이 수확한 포도에서 악취가 난다고 하신 것은, 사악한 것을 생산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포도원의 주인은 이 포도원을 완전히 파괴한 것입니다.

그와 반면에 마태복음 21장에서는 하나님께서 포도를 생산하지 못한 일에 대하여 언급하시지 않고, 그가 포도원 관리인을 어떻게 했는가에 대해서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2137-39절에 다음과 같이 읽을 수 있습니다.

 

후에 자기 아들을 보내며 가로되 저희가 내 아들은 공경하리라 하였더니 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업을 차지하자 하고 이에 잡아 포도원 밖에 내어좇아 죽였느니라

 

그들이 포도원 주인의 아들을 죽이는 가공할 행동을 했기 때문에, 포도원 주인은 그 포도원을 빼앗아 다른 관리인에게 주었습니다.

우리는 즉각적으로 포도원주인의 아들을 죽인 포도원 관리인이 이스라엘임을 알 수 있으며,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리기를 원했던 것을 영적으로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용하셨지만, 국가로서 그들은 복음을 원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111절에서 선언하신 바를 기억하기 바랍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마태복음 21장은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신 바이며,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그들을 지적하심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마태복음 2145절에 다음과 같이 읽을 수 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의 비유를 듣고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J. 포도원의 열매

 

왜 하나님께서 마태복음 21장의 포도원을 파괴하시지 않았는가? 하는 것은 큰 의문입니다. 그러나 그 해답은 명백합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왕국을 대표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대로 좋은 한가지 과실을 맺은 것입니다. 그 과실은 그리스도 자신이었으며, 복음이 그를 통하여 흘러나온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포도원의 주인을 죽이는 일은 있어야만 했던 사건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임을 당하시지 않으면 인간의 구원이 없으며, 또한 복음도 없고, 구세주가 없기 때문에 포도원에 과실도 없다는 뜻이 됩니다.

 

포도원의 과실은 복음과 함께 오신 그리스도이십니다. 계획하신 대로 그리스도자신과 복음의 수확(收穫)을 가지고 온 포도원이야말로, 그 목적을 달성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죽임을 당하심으로, 하나님의 왕국을 상징한 포도원을 유대 국으로부터 신약 교회시대로 옮기신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의례적인 율법이던 성전, 회당, 그리고 모든 의례적인 율법과, 대제사장과 또 다른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왕국을 상징하고 있었지만, 그 역할이 그 순간에 종결을 짓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왕국은 교회시대의 목사들, 장로들, 집사들, 그리고 신약시대에 주어진 의례적인 율법인 세례식과 성찬식 등으로 전환되어, 신약시대의 교회가 이 포도원의 관리인으로 임명된 것입니다. 동시에 그들에게는 복음을 세상에 전파하는 임무가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사야서 5장에서 말씀하신 포도원은, 마태복음 21장에서 말씀하신 포도원과 동일한 포도원입니다. 그 차이를 말한다면, 포도원의 관리인이 성전과 회당을 가지고 있던 이스라엘 왕국으로부터 신약 시대의 교회로 관리의 사명이 옮겨진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이 새로 임명된 포도원 관리인은 사역의 시초부터 선한 과실의 수확(收穫)을 얻지 못했으며, 오히려 하나님 취각(臭覺)에 악취(惡臭)를 맡도록 한 것입니다. 교회시대가 아직도 유아기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에베소 교회에게 말씀하시기를 만일 그들이 처음 사랑을 찾지 못하면 그들의 촛대를 옮기실 것이라는 경고를 하셨습니다(2:5). 또한 다른 예로서 사데교회는 참 믿는자들의 수가 몇몇 밖에 없는 죽은 교회라고 지적하셨습니다(3:5).

이와 같은 사실을 볼 때에 구약시대를 지적하신 산당은 신약시대에 교회를 지적한 악취와 같은 뜻이 있음을 쉽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산당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사람의 생각을 가르치는 것이며, 포도원에서 좋지 못한 과실을 내는 것과 같습니다. 이사야서 5장의 말씀을 인용한다면 이것은 악취가 나는 과실입니다. 사실을 말한다면, 하나님께서 1950년 이상을 이 악취가 나는 과실을 참아 오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내는 그 한계가 있습니다. 이사야서 55-6절에는 포도원의 마지막을 설명하십니다. 하나님 자신이 이 포도원을 멸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시대 마지막에 사단을 이용하여 모든 교회를 멸하십니다.

 

 

K. 지상의 조직체인 교회는 더 이상 불필요하다

 

교회시대의 마지막에 이르러 있을 현저한 사건은 하나님께서 그의 왕국을 대표하는 포도원을 더 이상 다른 외형적인 기관에게 관리인으로 넘겨주지 않으십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이나, 신약시대의 교회와 교인들을 사용하신 하나님의 섭리에는 아주 중요한 변화가 있습니다. 사실상 하나님의 왕국은 계속하여 번영하고 있지만, 지상의 외형적인 기관은 더 이상 하나님이 보살피지 아니합니다. 더 이상 지상의 외형적인 기관은 하나님의 왕국을 대표하는 임무도 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세계선교 계획에 있어 커다란 변화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서 5장에서 말씀하신 포도원을 멸하신 후, 또 다른 포도원을 만드신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외형적으로 조직된 기관의 목사, 장로, 그리고 집사들이 교인들을 영적으로 감독하는 일을 하도록 하나님께서 사용하시지 않습니다.

이사야서 5장에서 말하는 포도원이 멸망을 당한 후에 늦은 비가 내리는 계절에는, 복음을 세계에 전하는 사역에 믿는자 각 개인을 임명하십니다. 믿는자 각 개인을 이용하심으로 세계선교의 사역을 마감하십니다. 한동안 이스라엘이나, 현대 지역교회가 하나님의 왕국을 대표하셨지만, 세계역사가 시작한 처음 9500년 동안에도 어떠한 신성한 기관도 선정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 때에 존재하던 가장 큰 기관은 가족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 약 3500년 동안 하나님께서 지상의 조직화된 기관이 하나님의 왕국을 대표하게 하셨습니다. 1447 BC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온 해부터, 33 AD 오순절까지 지상에서 하나님의 왕국을 대표한 것은 이스라엘입니다. 그 후 33 AD에 이 하나님의 왕국을 대표하는 기관을 하나님께서 안수하신 지교회로 옮기시고, 그 교회는 지금까지 존재해왔습니다.

그러나 교회시대의 마지막이 되면서 포도원은 완전히 멸망을 당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왕국을 대표하는 외부적인 조직체를 더 이상 사용하시지 않으십니다. 구원받은 자들을 마지막으로 하나님 왕국에 들어오게 하시는 이 마지막 추수하는 계절에는, 하나님께서 믿는자들 각 개인을 사용하십니다.

 

 

L. 우리들끼리 서로 모이다

 

위에서 배운 바에 의하면, 히브리서 1025절에 명령하신바 모이기를 게을리 하지 말도록 하신 것과 일치합니다. 이 구절이 우리 스스로가라고 시작한 것에 놀라게 됩니다. 교회시대 동안에는 우리 보다는 교회라든지 회중이라는 단어가 씌어졌으리라고 기대할 것입니다. 그러나 늦은 비가 내리는 기간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국가나 지방 교회와 같은 지상의 외형적인 조직체를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그는 개인적인 믿는자들을 사용하십니다.

늦은 비가 내리는 계절에는 믿는자들 각 개인에 의하여 복음이 선포된다는 것이 사실임으로, 그 날이 가까울수록 모이기를 힘쓰라고 하신 히브리서 1025절이 이 사실을 확증합니다. 그러므로 늦은 비가 내리는 계절에는,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국가를 이용하시고, 교회시대인 신약시대에는 외형적으로 조직화된 교회를 복음 선교에 사용하신 원칙을 사용하시지 아니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포도원을 만드시고, 과실을 맺게 하시고 추수할 관리인을 처음에는 이스라엘 왕국으로 삼으셨으며, 그 다음 신약시대 교회에게 관리를 맡기셨지만, 지금은 그 포도원은 파괴되고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M. 몇 가지 계절

 

마태복음 2141절에 기록된 성경말씀에 유의합시다.젨젨

 

저희가 말하되 이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때에 실과를 바칠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찌니이다

 

위의 구절에서 제때:seasons라는 단어가 원문에 복수로 되어있는 사실은, 이스라엘이 관리하던 포도원의 계절이후에 몇 가지 계절이 따라 올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공부한 바와 같이, 그 처음계절은 오순절에서 첫 열매를 바치며 시작한 교회시대입니다. 이 계절 마지막에 가서 요한계시록 11장에 두 증인으로 상징된 진실로 믿는자들이 출회(黜會)를 당하거나, 교회에서 나올 것을 명령하십니다. 요한복음 162절에서 씌어진 용어를 사용한다면, 두 증인이 죽임을 당했다 함은 이들이 교회에서 출회를 당했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출회(黜會)할 뿐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하리라

 

그러나 한 가지 또 다른 계절이 남아있습니다. 이 계절은 마지막 추수를 거두어들이는 늦은 비가 내리는 기간입니다. 이 계절에 마지막으로 수확되는 열매를 두 증인으로 상징하였고,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심으로 살아나고 일어서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1111절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삼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가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여기에서 사용된 용어와 병행되는 용어가 에스겔서에 있습니다. 에스겔서 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그의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하도록 명령하십니다. 에스겔서 21-2절과 4절을 읽어봅시다.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일어서라 내가 네게 말하리라 하시며 말씀하실 때에 그 신이 내게 임하사 나를 일으켜 세우시기로 내가 그 말씀하시는 자의 소리를 들으니(2:1-2)

이 자손은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강퍅한 자니라 내가 너를 그들에게 보내노니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2:4)

 

이와 같은 명령은 바로 하나님께서 교회시대 초기에 사도 바울에게 명령하신 내용과 병행됩니다. 사도행전 2616절을 읽어봅시다.

 

일어나 네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사환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그러므로 생기가 저희에게 들어가 발로 일어서게 된 두 증인들은, 교회에서 출회 당한 진실로 믿는자들임이 분명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복음을 세상에 전하는 일에 교회 밖에서 그들은 계속하여 쓰임을 받습니다.

 

 

N. 복음을 영적으로 듣는 자는 하나님을 경외한다

 

요한계시록 1111절에는 두 증인에게 생기가 들어가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두 증인이 교회에서 출회 당한 진실로 믿는 자들이거나, 교회를 나오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사람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 개인은 구약시대 이스라엘 나라의 국민도 아니고 신약시대에 성직의 직명(職名)을 가진 목사, 장로, 집사도 아닌 사람들로서, 마지막 늦은 비가 내리는 계절에, 하나님의 복음을 세계에 전파하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이 늦은 비가 내리는 계절에 구원을 받은 사람들도 그리스도의 사신이 되어, 세상에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 포도원을 만드시고 이스라엘이 포도원의 관리인이 되었음을 배웠습니다. 그들의 시대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이 처음 익은 열매가 되시고, 복음의 열매를 가져옴으로 종결을 지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나라를 대표하는 외형적인 집합체인 이스라엘에게서 이 포도원을 빼앗은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한 외형적인 집합체로부터 또 다른 집합체에게 그 포도원 관리의 책임을 옮기셨습니다. 이 포도원 관리의 책임을 맡은 집단은 신약 교회이며, 이들의 사역은 온 세계에 나가서 하나님 나라를 대표하는 일로 확장되었습니다.

그러나 교회시대를 통하여 결국 교회는 악취가나고, 사악하고, 산당이며, 또 잘못된 교리가 계속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포도원을 멸망시키십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심판이 온 세계에 퍼져있는 교회에 내려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를 대표하도록 세워진 교회 시대의 외형적 집합체를 어떠한 다른 집합체로 대신하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가 아니었습니다. 이 하나님이 심으신 포도원이 완전히 멸망을 당한 후에 또 다른 포도원을 만드신다는 기록을 성경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임명한 외형 교회를 사용하시지 않으시고 그 대신에, 믿는자들 각 개인을 사용하여 세계 선교를 성취하십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늦은 비가 내리는 마지막 계절에 믿는자들을 추수하시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20장의 처음 몇 구절도 늦은 비의 주제와 현저하게 연관이 되어있습니다.

 

 

O. 짧은 계절

 

온 교회시대를 걸쳐, 요한계시록 20장은 그 문장의 시작이 우리에게 매우 큰 호기심을 가지게 하며, 또 흥미로운 내용입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세상 종말에 매우 가까이 와 있으며, 하나님께서 진실로 믿는자들로 하여금 이 구절이 가르치는 뜻을 알게 하십니다.

처음 일곱 구절을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사단을 결박하심으로 교회시대가 존재하게 됨을 알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잠시라는 단어를 쓰심으로 늦은 비의 계절을 지적하십니다. 사실은 교회시대라든지 늦은 비라는 용어를 이 구절들에서는 사용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들을 조심해서 살펴보면, 교회시대와 늦은 비에 대하여 절대적으로 연관이 되어있음을 발견할 것입니다.

이 구절들에서 천년이라는 용어를 세 번이나 발견하게되며, 천년을 사건이 완성되었다거나, 끝에 도달했다는 뜻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반면에, 천년이라는 용어는 두 번에 걸쳐, 끝이 있다는 뜻으로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이 구절들을 공부를 하면서 이 사실을 발견할 것이며, 동시에 교회시대와 늦은 비에 대한 가르침이 숨겨져 있음을 발견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0장의 시작을 1-3절에서 다음과 같이 읽을 수 있습니다.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간 놓이리라

 

즉각적으로 질문이 생기는 것은, 언제 사단이 무저갱에 던짐을 받았으며, 어떻게 사단이 만국을 유혹하지 못하도록 1000년을 무저갱에 갇히게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희랍어 abussos가 요한계시록 20장에서 무저갱으로 번역이 되었으며, 누가복음 831절에는 음부, 그리고 로마서 107절에는 지옥이라고 번역된 것이 우리에게 참조가 됩니다. 로마서 107절에 다음과 같이 선언하셨습니다.

 

혹 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이 구절에서 음부(희랍어: abussos)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말합니다. 우리가 이미 아는 바는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가 당하여야할 지옥의 영원한 형벌을, 그가 구원하시고자 한 사람들을 위하여 당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사단이 음부에 던져졌음을 우리가 알게 됩니다.

그렇지만 과거나 장래 어떤 시기에, 사단이 지옥에 던져질 것을 말하는 내용이 또 성경 어디에 있는가 살펴보도록 합시다. 사실은 성경에는 사단이 지옥에 던져질 것이며, 그 후 다시 지옥에서 놓일 것이라는, 장래 일에 대하여 말한 곳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완성되기 이전에 사단이 지옥에 던져졌음을 뚜렷하게 지적한 구절이, 성경의 두 곳에 있습니다. 처음 기록은 베드로후서 24절이며, 하나님께서 여기에 다음과 같이 선언하십니다.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뎡이에 두어 심판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이 구절은 과거 시제를 사용하였습니다. 베드로후서 2장에서 이어지는 두 구절 5-6절에서도, 마찬가지로, 노아의 홍수 때, 그리고 아브라함 시절에 멸망당한 소돔과 고모라는 역사적으로 있었던 하나님의 심판이었음을 말합니다.

둘째 번 구절은 유다서 16절이며,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여기서의 심판도 과거 시제를 사용하였습니다. 이 구절도 역시 두 가지의 역사적인 심판을 지적합니다. 처음 것은 유다서 15절에서 말한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멸망당했음을 지적합니다. 두 번째는, 유다서 7절에 역사적인 심판의 사건, 소돔과 고모라를 지적합니다.

베드로후서 2장과 유다서에서 읽는 이러한 심판에 대한 기록은 사도 베드로와, 사도 유다가 성경을 쓰던 그 시기 이전에 시행하신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심판과 노아의 날 심판은, 이 사실을 기록하던 때의 역사적인 사건을 말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천사에게 내리는 심판도 이 사건을 기록하던 때에 일어난 과거의 일을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에 대한 심판이 이루어졌다고 단정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어떻게 사실이 될 수 있겠습니까? 베드로전서 58절을 보면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닌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에베소서 6장에는 마귀가 우리의 대적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이에 대한 답은 우리가 지옥의 뜻을 이해함으로서 알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48-9절을 읽어봅시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랫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땅 아랫곳이라는 구절은 땅 속이라고 한 마태복음 1240절의 용어와 그 뜻이 동일하며, 이들은 지옥을 지적합니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48-9절은 그리스도께서 지옥에 가서 그 지옥에 있는 자들을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는 자들)구원하셨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아무도 실질적인 지옥에 가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것이 사실인 이유는, 아직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재판을 받은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믿지 않는 자들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심판을 받을 것이며, 그 때에 실제적인 지옥이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 때가 우주에 신천지가 창조되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새로 생길 신천지는 아무도 하나님의 진노를 받지 않는 아주 놀라운 곳입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20장 처음 3절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던 때를 지적하며, 이 때에 사단이 하나님의 진노 아래 놓여졌음을 알게 됩니다(무저갱은 지옥과 동의어이다). 구약 시대 동안에 사단이 천국을 드나들 수 있었던 것을 욥기를 읽음으로써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12장의 기록은 이 사단이 천국에서 완전히 쫓겨났음을 지적합니다. 어린양의 피로 인하여 사단이 패배하였음을 요한계시록 129절에서 11절을 읽음으로써 알 수 있습니다.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가로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었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요한계시록 201-3절로 되돌아와서, 우리는 사단을 무저갱에 갇혀 놓고 다시는 만국을 기만하지 못하게 하셨음을 다시 읽어봅시다.

 

 

P. 사단은 만국을 더 이상 기만하지 못한다

 

사단은 만국을 더 이상 기만하지 못한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배운 바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시던 시기에는 매우 적은 수의 무리들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동시에 사단은 매우 활동적이었습니다. 아주 적은 무리가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이 사단이 매우 활동적이었다는 것과 상관이 되겠습니까? 이에 대하여 누가복음 811-12절이 도움을 줍니다. 이 구절을 읽어봅시다.

 

이 비유는 이러하니라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길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와서 그들로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이 구절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사단이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가장 현저한 방법은 하나님의 왕국이 번창해 가는 것을 방해하는 일입니다. 사단은 거짓말쟁이며, 성경은 그를 거짓의 아버지라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34절에서 "사람은 다 거짓되되 하나님은 참되시다"라고 하나님께서 선언하신 바와 같이 인류는 그 간교함이 이미 알려진 바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후 7주만에 아주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오순절 날 사도 베드로가 단 한번 한 설교로써 3000명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바로 하루 3000명이 사단의 권력과 기만에서 벗어났음을 말합니다. 사단이 만국을 더 이상 기만하지 못하도록 결박된 것입니다. 그 후 교회시대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온 세계에서 복음을 듣고 하나님 나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단이 결박되었던 시간은 바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에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후서 24절과 유다서 6절과 그리고 요한계시록 201-3절에 사용된 용어들이 서로 잘 병행되어 있음을 발견합니다.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에서 읽는 천년이라는 단어가 실제적인 천년이 아니고 상징적임을 알게됩니다. 사단은 큰 환난이 시작될 때 무저갱에서 놓였음을 알게 됩니다. 그 시기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후 약 2000년이 되는 때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천년이라고 한 것이 영적으로 완성된 시간이라는 것을 이해하여야합니다. 교회시대는 사단이 결박을 당할 때 즉,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셨던 때부터 시작하여 1950년 이상 계속되었습니다.

 

 

Q. 사단이 무저갱에서 잠깐 풀려 나오다

 

한 계절의 시기가 사단을 옥에서 풀어놓음으로 종결이 되었습니다. 이 사단이 놓인 때가 바로 큰 환난이 시작되는 때입니다. 사실은 사단은 결박되었던 동안에도 믿는자들을 협박하고, 또 죽이기를 시도해왔습니다. 이 기간에 사단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녔습니다. 그러나 사단은 하나님의 나라가 번성하는 것을 방해 할 수 없었습니다. 사단에게 믿는자들이 죽임을 당했지만 사단이 승리한 것은 아닙니다. 요한계시록 204절이 이에 대하여 선언하십니다.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 하니

 

순교를 당한 사람들은 단순히 그들의 거처를 옮긴 것뿐입니다. 그들의 영혼이 육체를 떠난 후, 천년을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린다고 우리는 성경에서 배웁니다. 내가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을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이 구절이 내가 목 베임을 받은 자들을 보았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 구절은 목 베임을 받은 그들의 영혼을 보았다라는 뜻입니다. 이와 병행하는 같은 문장을 예를 든다면, 내가 죽은 사람의 손을 보았다고 하는 것은, 내가 죽은 사람의 손만을 보았음을 말합니다. 오직 만을 본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들이 죽는 순간 영혼은 육체를 떠나, 그 육체를 뒤에 두고 천국에 가서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게 됩니다. 고린도후서 58절은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20장은 믿는자들이 죽임을 당한 후에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는 광경을 우리에게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배운 바는 천년이라는 단어가 이 구절에서는 어떤 시기에 완전히 도달하였다는 뜻입니다. 앞에서 찾아본 바와 같이 세 번 천년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시작과 마지막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천년이라는 용어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사단을 결박한 사건에서 시작하여, 사단을 놓아주는 큰 환난의 시작까지를 말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이 기간은 바로 신약시대의 교회가 번창하는 시기입니다. 그러나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이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는 천년은 끝이 없는 영원함을 가르칩니다. 이 사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진실로 믿는자가 구원을 받는 순간 영원한 생명을 받고 거듭나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는자들이 구원을 받는 순간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게 되며(2:5), 또한 그 상태가 영원히 계속됩니다. 그들의 경우 천년은 끝이 있을 수 없고 영원히 계속됩니다.

 

 

R. 나머지 죽은 자들

 

요한계시록 205절을 읽어봅시다.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이 구절에서 천년이 차기까지 살아나지 못하고 있는 나머지 죽은 자들이 누구이겠습니까? 천년이 끝에 이르는 때를 사단이 옥에서 놓이는 때라고 하였고, 죽은 자들이 살아나는 때는 교회시대가 끝나고, 큰 환난이 시작된 후가 됩니다. 죽은 자가 다시 산다는 말의 뜻은, 그들이 이전에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그전에 살았던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마지막 심판을 받기 위하여 살아 나오는 자들을 말하는 것일까요? 이 구절의 문맥으로 보아서 이러한 결론은 조화를 이루지 못합니다. 나머지 구절들이 다 구원받은 자들에 대한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는 성경이 산다거나 생명을 말할 때는 영생이라든가 구원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마지막 날에 부활하는 불신자들은 영생을 위하여 부활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부활되는 이유는 그들이 영원한 멸망을 받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에는 제 2의 사망이라고 부릅니다. 참으로 요한계시록 205절의 말씀은, 고린도전서 1522절의 진리의 말씀을 우리에게 상기시킵니다. 고린도전서 1522절을 읽어보면,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모든 인간, 각 개인은 아담 안에서 죄로 인하여 죽게 되었습니다. 영적으로 말하면, 우리가 구원을 받기 이전에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은 영적으로 살게 되는 어떤 시점이 있습니다.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그들이 죽어 있었으나, 그들은 다시 살게 된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다 처음 창조된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205절로 돌아가서, 천년이 완성되고 지나간 후에, 사단이 놓이고 아담 안에서 죽고 그리스도안에서 살아날 자들이 다시 살게 될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들이 큰 환난 기간에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203절이 말하는 바를 알 수 있습니다.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간 놓이리라

 

교회 밖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사단이 놓이고, 하나님께서 사단을 사용하여 교회 안에서 사람들을 지배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짧은 계절은 늦은 비가 내리는 계절입니다. 이 계절은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구원을 받는 계절입니다(1:9-14).

이것이 바로 요한계시록 205절에서 첫 번째 부활을 말하는 이유이며, 6절에 가서 구원받은 자들의 성품을 설명합니다. 첫 번째 부활은 우리가 영원히 살 새로운 영을 받는 구원을 경험하는 순간입니다. 이것은 또한 믿는자들에게 제 2의 부활이 있음을 암시합니다. 2의 부활은 바로 우리가 영원한 부활된 육신을 받는 마지막 날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요한계시록 201-7절에서 명확하게 배운 것은, 교회시대는 사단이 결박되어 무저갱에 갇혀진 시기임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늦은 비가 내리는 계절은 사단이 잠깐 동안 놓이는 때이며, 이 때에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자 하신 나머지 사람들을 구원하십니다(아무도 셀 수 없는 큰 무리).

요한계시록 20장을 마치기 전에 한 가지 질문을 해야 합니다. 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사단을 지옥에 가두고, 얼마 후에 그를 놓아줄 뿐 아니라, 또 그가 교회를 다스리게 된다는 말인가? 요한계시록 91-3절을 읽어봅시다.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보니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가 있는데 저가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더라 저가 무저갱을 여니 그 구멍에서 큰 풀무의 연기 같은 연기가 올라오매 해와 공기가 그 구멍의 연기로 인하여 어두워지며 또 황충이 연기 가운데로부터 땅 위에 나오매 저희가 땅에 있는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를 받았더라

 

무저갱을 열기 위하여 내려 온 하늘의 별은, 오직 그리스도를 가리킬 수밖에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118절을 읽어봅시다.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우리는 요한계시록 133절에서 사단을 상징한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짐승에 대하여 읽을 수 있습니다.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르고

 

물론 어떤 죄수가 일단 재판을 거쳐서 유죄가 판결되고 선고가 내려지면, 우리는 그 선고를 전환 할 수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택하심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십자가상에 죽으심으로 승리하신 결과 때문에, 사단에게는 죽음의 결과가 온 것입니다. 그는 영원히 지옥에 가도록 선고를 받게 되었습니다. 더욱이나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횐 보좌에 앉아 불신자들을 심판하실 때 사단이 동시에 심판을 받는다는 기록은 읽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바로 사단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승리하셨을 때에 이미 심판을 받고, 영원히 지옥에 갈 선고를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한계시록 2010-12절에서 일어난 사건을 다음과 같이 읽을 수 있습니다.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으니

 

큰 환난기간에 교회들을 다스리게 되는 짐승과 거짓 선지자들은 바로 이 사단의 상징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한편으로 볼 때, 사단은 임시로 지옥에서 놓임을 받고 세상의 종말이 오기 전에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목적을 달성하시기 위하여 쓰시는 것이며, 사실상 사단은 하나님의 진노에 의하여 영원히 지옥에 던져질 선고를 받은 것입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목적은, 바로 큰 환난 기간에 사단으로 하여금 교회 안에서 일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교회 위에 내려지는 동안, 사단이 그 교회를 지배하도록 허락을 받았습니다.

 

 

S. 제단 아래 있는 영혼들

 

지금까지 우리가 배운 바는 요한계시록 20장에서 읽는 것과 같이 잠깐(Little Season: 짧은 계절)이라고 한 것은, 늦은 비가 내리는 계절을 지적하며, 이 때는 마지막 추수를 거두어들이는 시기입니다. 이와 같은 용어는 요한계시록 6장에서도 다섯째 인을 뗄 때에 사용되었습니다. 요한계시록 69-11절에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선언하십니다.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 각각 저희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쉬되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이제 우리가 이러한 구절들의 뜻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요한계시록 6장의 처음 부분은 교회시대에 복음을 세계에 선포하게 되는 사역을 자세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흰말을 탄 사람이 이기고 또 이긴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교회시대를 통하여 복음을 세계에 선포하시는 일 이외에 다른 것을 가리킬 수가 없습니다. 붉은 말을 탄 자가 땅에서 평화를 제하여 버린다고 한 것은, 사단이 우는 사자와 같이 돌아다닌다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그는 믿는자들을 핍박하고, 실제로 믿는자들을 죽임으로써 하나님의 복음 전파의 계획을 방해하려고 합니다.

검정말을 탄 자가 교회에게 경고하기를, 만일 교회가 복음에 충실하지 못하는 경우 하나님께서 복음을 빼앗아 가실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이 일에 대하여는 레위기 2623-26절의 말씀이 잘 설명해 줍니다.

 

이런 일을 당하여도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를 대항할진대 나 곧 나도 너희에게 대항하여 너희 죄를 인하여 너희를 칠배나 더 칠찌라 내가 칼을 너희에게로 가져다가 너희의 배약한 원수를 갚을 것이며 너희가 성읍에 모일찌라도 너희 중에 염병을 보내고 너희를 대적의 손에 붙일 것이며 내가 너희 의뢰하는 양식을 끊을 때에 열 여인이 한 화덕에서 너희 떡을 구워 저울에 달아 주리니 너희가 먹어도 배부르지 아니하리라

 

이 구절은 또한 이사야서 31절과도 병행합니다.

 

보라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의 의뢰하며 의지하는 것을 제하여 버리시되 곧 그 의뢰하는 모든 양식과 그 의뢰하는 모든 물과

 

청황색 말을 탄자는 심판이 올 것이라는 교회에 대한 경고를 마지막으로 한 것입니다. 이 구절은 또한 레위기 2627-30절의 말씀과 병행합니다.

 

너희가 이같이 될찌라도 내게 청종치 아니하고 내게 대항할진대 내가 진노로 너희에게 대항하되 너희 죄를 인하여 칠배나 더 징책하리니 너희가 아들의 고기를 먹을 것이요 딸의 고기를 먹을 것이며 내가 너희의 산당을 헐며 너희의 태양 주상을 찍어 넘기며 너희 시체를 파상한 우상 위에 던지고 내 마음이 너희를 싫어할 것이며

 

그러므로 이상과 같이 네 가지 말 탄 자들은 교회시대에 교회들에게 경고하시는 말씀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젨젨 1). 복음은 승리를 가져올 것입니다.

젨젨 2). 사단은 이 복음전파를 방해할 것입니다.

젨젨 3). 만일 교회가 복음에 충실하지 못하는 경우, 교회 안에서의 참 복음은 비참하게 방해를 받을 것입니다.

젨젨 4). 마침내 교회는 멸망을 받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69절은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

 

이 구절에서 죽임을 당하는 자들은 교회시대에 구원받은 믿는자들을 가리키며, 로마서 836절이 이 구절의 뜻과 같습니다.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이 구절은 또한 우는 사자와 같이 돌아다니는 사단을 지적하며(벧전 5:8), 마태복음 1028절에서 말씀하신 내용을 이해할 수 있게 합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요한계시록 610절에서 읽는바 영혼들의 소원은, 하나님의 온전한 공의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들은 제단 아래 있습니다. 제단 아래 있다는 뜻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흘리신 보혈로 구원받은 자들임을 지적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공의는 이미 그들의 구주 그리스도로 인하여 성취된 것입니다. 그러면 계속하여 그리스도를 거역하는 구원받지 못한 자들에 대하여 하나님의 공의가 어떻게 이루어질 것이겠습니까? 마지막 날에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기까지, 하나님의 공의는 집행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 날은 하나님께서 세계복음화의 계획을 완성하실 때까지 오지 않을 것입니다. 아직도 잠시의 계절이 남아있고, 이 짧은 계절에 믿는자들이 죽임을 당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들은 마치 교회시대에 믿는자들이 죽임을 당하는 것과 같이, 같은 이유의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늦은 비가 내리는 이 짧은 계절이 하나님의 완전한 공의가 집행됨으로써 끝을 맺게 됩니다. 그 다음에 구원받지 못한 자들은 하나님의 크고 흰 보좌 앞에 서서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까지 배운 것은 짧은 계절이라는 말의 뜻이 마지막 추수의 계절, 혹은 늦은 비가 내리는 계절과 같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요한계시록 6장과 요한계시록 20장이 다 같이 이 짧은 계절에 대하여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