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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시대의 종말 

 

1. 교회시대의 끝장()이 왔다

 

이른 비가 내리고 처음 익은 열매를 거두어들이는 오순절의 계절(교회시대)이 끝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근이 있을 것입니다. 이 시기는 또한 교회에 심판을 내리시는 시기이며, 상징적으로 이 기간은 3년 반으로 표시됩니다. 이 시기를 큰 환난의 시기라고 하며, 이 큰 환난이 끝나자마자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고, 세상의 종말이 옵니다.

마태복음 2421절과 29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이 큰 환난 기간은 70년으로 상징되었으며, 70년은 유다 왕 요시야가 609 BC에 죽임을 당한 후, 539 BC에 바벨론이 바사와 메대에 의하여 점령당할 때까지입니다.

이 시기는 유다가 잡신을 섬기던 산당을 제거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한 이유로 심판을 받던 기간입니다. 하나님께서 레위기 2630절과, 에스겔 63-4절에 다음과 같이 경고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의 산당을 헐며 너희의 태양 주상을 찍어 넘기며 너희 시체를 파상한 우상 위에 던지고 내 마음이 너희를 싫어할 것이며 (26:30)

이르기를 이스라엘 산들아 주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주 여호와께서 산과 작은 산과 시내와 골짜기를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나 곧 내가 칼로 너희에게 임하게 하여 너희 산당을 멸하리니 너희 제단이 황무하고 태양상이 훼파될 것이며 내가 또 너희 중에서 살륙을 당하여 너희 우상 앞에 엎드러지게 할 것이라(6:3-4)

 

609 BC에서 539 BC까지 이 70년 동안 이스라엘을 바벨론이 완전히 통치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으로 잡혀간 후로는 성전이 없었고, 거룩한 성읍(城邑)과 제사장의 직분이 없었습니다. 모든 이스라엘은 예루살렘과, 거기서 거행되던 거룩한 예식들로부터 완전히 격리되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마태복음 24장에서 말하는 큰 환난의 성격은, 사단이 교회를 점령하고 성도들을 눌러 승리한 것으로 의기양양한 때입니다. 요한계시록 137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또한 다니엘 725절과 811-12절은 다음과 같이 예언하였습니다.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7:25)

또 스스로 높아져서 군대의 주재를 대적하며 그에게 매일 드리는 제사를 제하여 버렸고 그의 성소를 헐었으며 범죄함을 인하여 백성과 매일 드리는 제사가 그것에게 붙인바 되었고 그것이 또 진리를 땅에 던지며 자의로 행하여 형통하였더라(8:11-12)

 

이러한 구절들은 사단이 승리하고 교회와 교인들의 마음을 점령하고 다스리는 것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셨음을 보여줍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시대의 끝장을 말하며, 사단이 교회를 완전히 점령하고 승리함을 가르칩니다.

지금의 모든 지교회를 사단이 점령하고 승리하였다는 사실이 어떻게 가능한 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합니다. 요한계시록 202-3절을 다시 읽어봅시다.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간 놓이리라

 

교회시대에는 사단이 결박되었기 때문에 복음전파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사단이 방해하지 못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후 일곱이레가 지난 후 3,000명이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은, 사단이 결박을 당했다는 사건을 설명하는 중요한 기록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승리는 사단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것이며, 또 그를 결박하여 만국을 더 이상 현혹하지 못하게 만드신 것입니다. 사단이 결박을 당한 후 전 교회시대에 걸쳐 온 세계의 사람들이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단이 어떻게 큰 환난 기간에 교회를 점령하고 승리하였습니까? 하나님께서 교회를 심판하실 계획으로 사단을 잠깐 놓아두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91-4에 사단이 놓임을 받는 일에 대하여 읽습니다.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보니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가 있는데 저가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더라 저가 무저갱을 여니 그 구멍에서 큰 풀무의 연기 같은 연기가 올라오매 해와 공기가 그 구멍의 연기로 인하여 어두워지며 또 황충이 연기 가운데로부터 땅 위에 나오매 저희가 땅에 있는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를 받았더라 저희에게 이르시되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 맞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 하시더라

 

하늘에서 떨어지는 별은 그리스도이며, 그리스도만이 열고 닫는 열쇠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일부러 사단을 놓아, 사람들이 구원받지 못하도록 복음전도를 방해하도록 허락하신 것입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께서 성령을 교회로부터 거두시는 때와 동시에 일어납니다. 그리스도의 원수인 사단이 일단 놓임을 받음으로, 그 즉시 전 세계 각 지방에 설립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공격한 것입니다.

이 큰 환난 시기에 사단이 승리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며, 큰 환난과 세상종말의 모든 자세한 계획을 세우시고 진행하시기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A. 두 증인

 

요한계시록 11장에서 말하는 두 증인은 참 믿는자들이며, 즉 교회시대에 교회 안에 있던 참 믿는자들 임을 알게 됩니다. 온 세계에 나가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심으로 교회시대가 처음 시작되었고, 이 명령을 수행하는 사람들을 두 증인으로 상징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113절과 4절에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 이백 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이는 이 땅의 주 앞에 섰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요한계시록 114절에서 지적한 이 두 증인은 두 감람나무, 또 두 촛대라고 하였습니다. 이 두 감람나무는 로마서 1116-24절에서 말하는 두 감람나무와 같습니다. 두 증인은 참 믿는자들의 상징임을 강조합니다.

두 증인은 두 촛대로도 표현되었고, 이 촛대는 곧 교회시대를 지적합니다. 요한계시록 120절과 21절에 각 교회가 촛대로 상징되었고, 그리스도께서 그 촛대 사이를 걸어다니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촛대는 말할 것도 없이 교회시대에 교회가 세상에 빛을 전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늦은 비의 계절에는 교회 밖에 있는 참 믿는자들에 의하여 온 세상에 복음의 빛이 전해집니다.

숫자 2(두 증인, 두 감람나무, 두 촛대 등)는 복음을 충실하게 세상에 전하는 참 믿는자들을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과 또 70명을 보내셨을 때 둘씩 둘씩 짝 지어 보내신 것을 기억하는 줄 압니다(6: 7, 10:1).

이 두 증인이 죽임을 당함으로 교회시대가 끝장에 이른 것을 요한계시록 117절을 읽음으로써 알 수 있습니다.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저희를 이기고 저희를 죽일터인즉

 

두 증인이 죽임을 당하는 일은 교회의 멸망을 지적합니다. 사단은 큰 환난이 시작되면서 놓였고, 교회를 파괴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허락을 받은 것입니다.

 

 

B. 교회가 심판을 받을 것이다

 

산당을 제거하지 않았기 때문에, 587 BC에 하나님께서 유다와 예루살렘을 마침내 멸망시킨 것 같이, 교회도 역시 그들의 산당을 제거하지 않았기 때문에 멸하실 것을 하나님께서 명시하셨습니다. 고린도후서 104-6절을 기억하는 줄 압니다.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너희의 복종이 온전히 될 때에 모든 복종치 않는 것을 벌하려고 예비하는 중에 있노라

 

이스라엘이 산당을 제거하는 것을 거절한 것 같이, 오늘날 교회는 성경에 위반되는 잘못된 교리를 제거하고, 성경의 진리만을 가르칠 것을 거절하고 있습니다. 잘못된 교리를 가르치고, 그것을 신앙고백에서 제거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교회를 진리의 기둥과 기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이 진리의 기둥이며 토대이십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11장과, 고린도후서 104-6절이 가르치는 바는, 어떤 시기에 교회가 맡은 사명을 끝마치고(11:2), 순종하는 일이 완성되었을 때(고후 10:6), 교회에 심판이 내려지는 사건이 뒤를 따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구약시대에 이스라엘과 유다에게 내려진 것과 같습니다.

신약시대에 걸쳐, 교회 안에 있는 산당을 하나님께서 묵과하시고 참아오셨습니다. 많은 교회와 교단들이 성경은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면서도, 그들은 성경진리에 의뢰하지 않고, 사람의 생각으로 된 교리를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의 생각으로 된 교리는, 고대 유다의 산당과 일치된다는 것을 우리가 배웠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과 유다가 그들의 산당을 제거하지 못한 이유로 멸망을 당한 것 같이, 신약시대의 이스라엘도 역시 온 세계에 흩어져있는 교회 안에 산당을 만들었기 때문에, 큰 환난기간에 그 교회가 멸망을 당할 것입니다.

교회의 멸망은, 587 BC에 내려진 예루살렘의 멸망과 같이 물질적인 파괴의 현상이 아닙니다. 신약교회의 멸망은 참 믿는자들이 교회에서 출회당하는 일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심으로 시작됩니다. 교회 안에서는 더 이상 성령께서 역사하지 아니하시며, 사단이 그들을 지배함으로 교회는 영적으로 폐허(廢墟)되어 있습니다.

이 교회가 파괴된 사실은 요한계시록 117절에 선언하신 것을 읽음으로서 알 수 있습니다.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저희를 이기고 저희를 죽일터인즉

데살로니가후서 23-4절과고린도후서 106절에서도 같은 방법으로 말씀하십니다.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살후 2:3-4)

너희의 복종이 온전히 될 때에 모든 복종치 않는 것을 벌하려고 예비하는 중에 있노라(고후 10:6)

 

하나님께서 교회의 사역이 끝난 후에 교회가 불복종한 행위에 대한 징벌을 하실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17절에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라고 한 것은, 고린도후서 106절에서 너희의 복종이 온전히 될 때에라고 한 것과 일치합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말씀에는 사단이 교회를 지배함으로써, 교회의 죽음이 온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상의 모든 구절이 다 같이 동일한 사건을 지적하며, 그 요점은 어느 시기에 교회시대의 마지막이 온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합니다. 앞으로 그 시기가 바로 지금이라는 것을 볼 것입니다.

 

 

C. 바다에서 나오는 짐승

 

큰 환난 시기와 교회시대의 마지막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하여 요한계시록 13장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31-3절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된 이름들이 있더라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르고

 

여기에서 짐승은 사단을 대표합니다. 그러나 특별히 이 구절은 오늘날 큰 환난 기간에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을 사단이 지배함을 지적합니다. 이 사실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이유는, 짐승이 바다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바다는 지옥을 상징하며,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순간 사단이 지옥에 던져졌음을 기억하기 바랍니다(그가 영원한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게 되었음). 그러나 또 기억해야 할 것은 요한계시록 20장에서 사단이 옥에서 놓여, 땅의 사방 백성을 미혹하고라고 한 말씀입니다(2:7-8). 이 사실은 바로 요한계시록 133절에서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라고 한 이유가 됩니다.

이 짐승은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고, 그 열 뿔에 면류관이 씌워져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큰 환난기간 동안에 사단이 지배함을 지적합니다. 요한계시록 1712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네가 보던 열 뿔은 열 왕이니 아직 나라를 얻지 못하였으나 다만 짐승으로 더불어 임금처럼 권세를 일시 동안 받으리라"

 

요한계시록 132절에서, 큰 환난기간에 사단의 통치를 가리키는 짐승을 표범, , 사자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바로 사단이 잔인한 짐승처럼 나타나 파괴를 일삼는다는 뜻입니다. 요한계시록 134-5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가로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또 짐승이 큰 말과 참람된 말 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 두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큰 환난 기간에 온 세상의 구원받지 못한 자들은 사단을 숭배합니다.

요한계시록 136-7절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훼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훼방하더라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만국을 유혹할 수 있게 하나님께서 사단을 놓으셨기 때문에, 사단이 그리스도안에 있는 믿는자들에게 집중적인 공격을 합니다. 믿는자들은 그리스도의 몸이며, 그리스도께서 사단을 멸하실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에 세상을 심판하실 준비를 하기 위하여 사단을 놓으신 것입니다. 심판이 하나님의 집에서 시작하게 됩니다(벧전 4:17). 그러므로 6절에 사단이 하나님을 훼방하고, 조롱하며, 성도들(참 믿는자들)과 싸워 이기게 됩니다.

사단이 어떻게 성도들과 싸워 이길 수 있습니까? 참 믿는자들은 그리스도안에 있기 때문에 영원히 안전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단이 성도들과 싸워 이기는 것은, 성도들을 교회와 회중으로부터 출회함을 가르칩니다. 요한복음 162절을 기억하는 줄 압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출회할 뿐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하리라

 

이와 같이 큰 환난기간에 사단이 교회를 다스릴 것이며, 참 믿는자들은 죽임을 당합니다(교회에서 출회). 이 사실을 요한계시록 117절에서 다음과 같이 읽을 수 있습니다.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저희를 이기고 저희를 죽일터인즉

 

그러므로 이 큰 환난기간에는 참 믿는자들이 교회에 속해있지 않으며, 사단이 교회 안과 교회 밖을 다 통치합니다. 사단이 교회를 통치한다는 것은 교회시대의 마지막을 말하며, 하나님께서 더 이상 교회를 통하여 세계선교를 하시지 않음을 말합니다.

계속하여 요한계시록 1311-12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저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하나님께서 땅에서 나오는 짐승 즉 사단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단이 적그리스도임을 말하며, 그는 보기에도 그리스도와 같고 행동도 그리스도와 흡사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어린양과 같이 두 개의 뿔이 있습니다. 그러나 믿는자들이 속지 않는 이유가 그는 용처럼 말하기 때문입니다. 큰 환난기간에 사단은 그리스도와 같이 가장하여, 교회의 지도자가 됩니다. 이러한 사실은 데살로니가후서 23-4절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이 구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여기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성전은 교회와, 회중들입니다. 그러나 큰 환난동안에 사단은 성전에 앉은 자며, 교회를 다스리는 자입니다.

하나님이신 성령께서 더 이상 교회 회중과 함께 하시지 않습니다. 사단이 참 믿는자들을 교회에서 출회(죽임)함으로써 승리하고, 그가 마음대로, 또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교회를 운영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 남아 있는 자들이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들은 사단을 숭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나오는 짐승은 사단입니다. 요한계시록 192절에서 이 사단을 거짓선지자라고 부릅니다. 그 이유는 그가 교회를 다스리기 때문입니다.

 

 

D. 짐승의 표

 

형상을 만든다는 것은 어떤 대상과 같은 모양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참 믿는자들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게 됩니다. 이 현상에 대하여 성경 몇 구절을 읽어봅시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고후 3:18)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3:10)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1:23)

 

사단의 형상이란 모든 믿지 않는 자들을 지적합니다. 이것은 바로 그리스도께서 세상에서 복음사역을 하시던 동안에 이스라엘에 대하여 하신 말씀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요한복음 844절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그러므로 짐승의 표에 대한 말씀은 교회 안에서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생명이 주어졌다는 표현은, 그들이 초자연적으로 방언을 하고, 음성이나 환상을 통하여 메시지를 받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뒤로 넘어짐으로써 초자연적인 능력을 경험합니다. 말 할 것도 없이 그들은 거짓 생명을 받은 것이며, 이러한 경험이 그리스도안에서 살아났다고 잘못 믿게 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짐승의 형상에 경배한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권위를 가진 주님을 예배합니다. 경배한다는 것은 우리의 의지를 포기하고, 허리를 굽혀 권위자의 뜻을 따른다는 표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의지를 그리스도 앞에 포기하고, 우리의 구주이시며 하나님이신 그에게 경배하는 것입니다.

어떤 교회나 교인들의 삶을 주관하는 권위가 어디에 있습니까? 성경전체와 그리고 성경만이 그들의 권위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속해있는 교회의 신학자들과, 성경 교사들이 권위가 됩니까?

오늘날 특히 보수적인 교단이, 성경만이 우리의 권위다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구원받기 위해여 그리스도를 영접해야한다는 교리를 세웠고, 우리의 믿음은 구원을 받기 위한 도구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고, 물로 세례를 받음으로 우리의 구원이 인봉(印封)되며, 간음한 배우자는 이혼을 할 수 있다는 등의 교리를 세운 자들입니다. 이러한 교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며, 사람의 생각에서 온 것입니다.

사실상 이러한 교리를 진리로 따른다는 것은 그들의 거짓말을 진리로 믿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그들은 결과적으로 거짓의 아버지를 믿는 것이며, 그는 바로 사단입니다. 그리고 그들 자신이 사단의 형상입니다.

사실상 세상에 있는 모든 교회가 짐승의 형상을 숭배하고 있음이 현저합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의 생각으로 만든 교리들을 하나님의 진리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로 신학자들의 생각으로 생긴 교리를 하나님의 진리로 삼는 것은, 지역교회가 성경을 마음대로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교(新敎)의 신자들은 로마 카톨릭의 잘못된 교리를 따라가고 있으며, 로마 카톨릭교회는 성경을 지배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부패된 인간의 마음, 즉 사단의 형상에게 경배하고 있음을 말합니다.

 

 

E. 짐승의 형상에 경배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죽임을 당한다

 

요한계시록 1316-17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위의 구절은 더 많은 의문을 제기합니다. 짐승의 표가 무엇을 상징합니까? 사고 판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큰 환난기간에 사단이 성전 안에서 다스린다는 것은, 사단이 교회와 신도들을 다스린다는 것이며, 거기에 참석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마에 사단의 표를 받게 만듭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구원받지 못한 자는 사단이 소유권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요한계시록 141절에 144,000이 교회시대에 구원을 받은, 상징적인 완전히 충만된 수의 무리들이며, 이들도 구별되기 위하여 이마에 아버지의 이름이 씌어진다고 하였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아버지의 이름이 실제적으로 믿는자들 이마에 새겨지는 것은 아닙니다.

 

 

F. 사고 판다는 뜻이 무엇인가?

 

그렇지만 사고 판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이 질문은 매우 심각합니다. 그 이유는 17절에 짐승의 표가 없으면 아무도 사고 팔 수가 없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살펴보면 사고 판다는 문구의 뜻을 알 수 있고,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한 상인(商人)으로 비유하신 것을 발견합니다. 마태복음 1345-46절에 다음과 같이 읽을 수 있습니다.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

 

이 비유에서 상인은 예수님일 수밖에 없습니다. 진주는 하나님의 왕국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팔아 하늘의 영광을 버리시고 하나님의 왕국을 얻기 위하여 고난을 받으시는 종이 되셨습니다. 이사야 551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이 구절은 복음을 파는 사람들을 지적합니다. 복음이야말로 돈 없이 값없이 살수 있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상선(商船)으로 비유하였고, 이 상선은 예루살렘에 금과, , 그리고 많은 귀한 보석들을 싣고 들어옵니다.

잠언 3118절에서 말하는 정숙한 여인은 자기의 무역(장사)하는 것이 이로운 줄을 깨닫고, 잠언 3114절에서는 상매(商買)의 배와 같아서 먼데서 곡식(穀食)을 가져오며, 24절에는 그는 베로 옷을 지어 팔며 띠를 만들어 상매에게 맡기며라고 하였습니다. 그녀는(베는) 믿는자의 상징이며, 우리는 값없이 복음을 사며, 또 팝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사고 판다는 것은 복음을 세상에 전파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317절로 돌아가서, 교회와 회중이 사단의 지배하에 있으며, 이마에 짐승의 표가 없이는 아무도 그들의 복음을 사고 팔 수 없다고 했습니다.

참으로 무서운 말입니다. 사실 오늘날 사단이 지배하고 있는 교회와 신도들에게 설교할 수 있는 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 만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목사나, 교인이 요한계시록 1317절의 경고에 대하여 어떻게 답변을 할 것입니까? 이 구절은 극히 심각한 구절입니다. 이와 같은 경고가 너무도 심각하기 때문에, 요한계시록 149-11절은 이 경고에 대하여 다시 강조하십니다. 이 구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또 다른 천사 곧 세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위의 구절은 설명이 필요 없이 명백합니다. 우리가 요한계시록 13장을 공부하였을 때 마태복음 24장이 말하는 큰 환난의 시작이 교회시대의 끝과 연결이 되어 있는 많은 증거를 보았습니다. 큰 환난 기간동안에 교회는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고, 또 하나님께서 교회를 사단에게 내어 주신 것을 요한계시록 13장에서 읽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진노 아래 처해 있고, 또 사단의 지배아래 있기 때문에, 큰 환난이 이미 시작된 것이며, 우리가 교회시대의 마지막 시기에 살고 있음을 분명하게 봅니다.  

 

2. 큰 환난시기가 왔다

 

 

A.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근

 

하나님께서 미리 예정하신 큰 환난의 때가 세상에 이미 도달했음을 우리는 배웠습니다.

이제 교회 시대가 그 마지막에 도달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른 조직을 통하여 세계선교의 사역을 완성하시는 시기에 이른 것입니다. 교회시대가 그 종말에 이른 동시에, 하나님께서 교회에 대한 심판을 가져오셨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께서 사단을 옥에서 놓으시고 또, 그 사단이 기만함으로 인하여, 온 세상의 교회가 하나님을 배도하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뜻보다는 사람의 욕망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사단이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파괴할 수 있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만일 교회가 그들의 모든 잘못된 교리(영적인 산당)를 버리기 원하며, 그 교회 안에 아직도 참 믿는자들이 남아있다면, 왜 그 교회가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고 인정하시는 회중으로 남아있을 수 없다는 말입니까?

그러나 아모스 811절은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습니까?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아모스 선지서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 시기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위의 아모스 811절의 구절은 다가올 기근을 말합니다. 이 기근은 떡과 물이 없어 오는 기근이 아니라, 생명의 양식이신 예수님을 지적하며, 물은 진실한 복음을 말합니다.

그러나 위 구절의 마지막 부분에 말씀하신바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갈이라고 하신 것에는 참으로 무서운 뜻이 있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구원하시는데 있어 두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습니다. 그 첫째 요소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만 하며,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에서 옵니다.(8:17)

두 번째로는, 하나님께서 자기가 구원하시기로 계획하신 그 사람 마음속에 그의 말씀을 적용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구원하시고자 할 때, 그에게 영적인 귀를 열어 듣게 하십니다. 이 사실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313-14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예수님께서 가장 신실하고 분명한 설교를 3년 반 동안 하셨지만, 그 말씀을 듣는 자들의 마음을 감동시켜 적용하시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순절 날 베드로가 설교하였을 때, 3000명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구원받기로 결정된 사람 마음속에 성령께서 그 말씀을 적용하셔야만 합니다.

 

 

B. 교회 회중과 함께 계셨던 성령께서 떠나셨다

 

위에서 말한 질문에 대하여 데살로니가후서 23-12절은 다른 각도에서 답변을 줍니다. 이 구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시기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즉 불법의 사람이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처럼 숭배하도록 하는 때입니다. 불법의 사람은 사단 이외에 다른 사람을 지적할 수 없습니다. 그를 사람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를 바벨론의 왕으로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14장의 예언에 의하면, 바벨론 왕을 루시퍼라고 불렀고, 그는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고 하였습니다(14:14). 이사야 1413절에서 말하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고 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7절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길 때까지 하리라

 

많은 성경학자들이 이 구절에서 말하는 막는 자가 성령임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니라고 한 것은 죄와, 불법이 성전(지금의 교회)안에 늘 있었음을 말합니다. 그러나 불법의 비밀은 사단을 결박하심으로써 그의 행동을 제재(制裁)하신 것입니다(20:2).

마태복음 1820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이 구절은 교회시대에 하나님께서 믿는자들과 함께 하신다는 말씀이지만, 유의할 것은 아주 적은 수의 사람들을 지적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현상을 요한복음 1417절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사실은 성령께서 믿는자들과 평생을 함께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로마서 89절에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시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구원받는 순간 성령께서 그들 속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위에서 읽은바 요한복음 1417절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전도사역을 하시던 때의 상황을 지적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에 성전을 짓는 일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그 성전을 짓는 자료들이 금, 은과 귀한 보석들(참 믿는자들)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성전 자료 중에는 나무와 풀이나 짚으로 된 자료들(자신이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나 결국 구원받지 못한 자들)도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316절은 성전이 많은 믿는자들로 구성되었음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이 구절에서 너희라는 단어가 복수(複數)입니다. 이에 대한 설명은 많은 개인들이 합쳐서 성전을 구성함을 지적합니다. 더 나아가서 이 구절에서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신다고 선언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성령께서 회중에 계심으로 하나님께서 세계선교에 있어 그들을 사용하셨음을 말합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후서 2장에서는 어떤 시기에 도달하면, 성령을 회중으로부터 거두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때에 바로 성령께서 성전을 떠나실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성령께서 자기 성전의 일부였던 교회로부터 떠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성령께서 계신다는 것은 교회가 할 사역을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신실하게 선포될 때에, 택하심을 입은 자들의 마음속에 성령께서 그 말씀을 적용하십니다.

 

 

C. 성령께서 사단의 행동을 제재(制裁)하신다

 

왜 성령께서 사단이 교회와 회중을 다스리지 못하게 하시던 일을 이제 하나님께서 거두셨습니까?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씨 뿌리는 비유에서 알 수 있습니다.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씨가 길가에 떨어졌을 때 공중의 새가(8:5)집어 먹었습니다. 누가복음 812절에 다음과 같이 예수님께서 설명하셨습니다.

 

길 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와서 그들로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사단이 성전 안에서 지배자가 될 때(앉아), 성령께서 성전 안에(교회와 회중) 더 이상 함께 계시지 않으십니다. 비록 성경말씀이 신실하게 선포된다 하더라도, 사단이 듣는 사람의 마음으로부터 그 말씀을 빼앗지 못하도록 막을 자(성령)가 없어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께서 교회 안에서 더 이상 일하시지 않는다고 함은, 교회에서는 아무도 복음사역의 결과인 구원을 더 이상 받을 수 없음을 지적합니다. 실제적으로 교회 안에서 촛대가 옮겨진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나오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비단 교회 안에 영적인 떡과 물이 있고 신실한 설교를 듣는다고 할지라도 더 이상 교회는 복음사역에 쓰시지 않으십니다.

이 사실을 예레미야애가 211-12절을 읽으면 분명해집니다.

 

내 눈이 눈물에 상하며 내 창자가 끓으며 내 간이 땅에 쏟아졌으니 이는 처녀 내 백성이 패망하여 어린 자녀와 젖먹는 아이들이 성읍 길거리에 혼미함이로다 저희가 성읍 길거리에서 상한 자처럼 혼미하여 그 어미의 품에서 혼이 떠날 때에 어미에게 이르기를 곡식과 포도주가 어디 있느뇨 하도다

 

이 애곡(哀哭)의 말씀은 609 BC에 요시아 왕이 죽임을 당한 후 유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당할 때, 성령께서 예레미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슬픈 이야기입니다. 곡식과 포도주가 어디 있느뇨 라는 말씀은 복음을 지적합니다. 예수님께서 곧 생명의 떡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그의 피(포도주)를 마련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떡과 포도주가 더 이상 교회에 없기 때문에 구원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근이 왔기 때문이며, 성령께서 더 이상 회중과 함께 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D. 예레미야는 오늘날 우리가 속한 교회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예레미야서가 세상에 나온 지 2,000년이 훨씬 넘었습니다. 그러나 이 책에 대하여는 목사들이나 성경교사들이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이 책에 대하여 관심이 없는 이유는 예레미야서가 부정적이고, 너무도 어렵고 또 세상 종말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서의 거의 전체가 큰 환난을 당면한 오늘날의 형편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서에서 현세에 일어나는 사건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사실은, 최소한 세 가지로 증명됩니다.

 

1) 첫 번째 증명

첫 번째로 예레미야 22절이 오늘날 일어나는 사건에 초점을 두고 있음을 증명합니다. 이 구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가서 예루살렘 거민의 귀에 외쳐 말할찌니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네 소년 때의 우의와 네 결혼 때의 사랑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광야에서 어떻게 나를 좇았음을 내가 너를 위하여 기억하노라

 

이 구절은 예루살렘을 씨 뿌리지 못한 땅, 광야로 지적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을 나온 직후부터 40년 동안 광야에서 있었고, 그 동안에 이스라엘에게 영적으로 좋은 일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 것을 하나님께서 소년 때에 우의와 네 결혼 때의 사랑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구절에서 소년이라고 하신 것은 이스라엘의 광야시절을 지적합니다. 그 때가 바로 처음으로 회중을 설립했던 때이며, 말하자면 결혼생활의 시작을 지적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영적으로 결혼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사실상 성경에는 이스라엘이 끊임없이 하나님께 불평하고 반역하던 기록밖에 없습니다. 히브리서 317-19절에 이스라엘이 광야에 있었을 때의 상태를 잘 요약합니다. 이 구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또 하나님이 사십년 동안에 누구에게 노하셨느뇨 범죄하여 그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자에게가 아니냐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뇨 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냐 이로 보건대 저희가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민수기 1429-30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전체가 이러한 상태에 있었음을 확인시키십니다. 이 구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이십세 이상으로 계수함을 받은 자 곧 나를 원망한 자의 전부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로 거하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렇다면 예레미야 22절에 소년 때의 우의와라고 하신 뜻에 대하여 의문이 생깁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40년 동안 광야에 있었던 시기를 지적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결혼 때의 사랑이라고 하신 문구에도 같은 의문이 있습니다. 성경 어느 곳에도 광야생활 40년과 연결하여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사랑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교회가 예루살렘이다

그렇다면 또 다른 예루살렘이 어디에 있으며, 외쳐 말할지니라고한 예루살렘은 누구입니까? 갈라디아서 4장에 그 예루살렘 안에 참 믿는자들을 지적하여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라고 하였고, 그들을 지적하여 고린도전서 3장에서는 또한 금과 은과 보석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는 줄 압니다. 이 교회 안에는 지금 있는 예루살렘이 있고, 아직도 이들은 죄에 종노릇하고 있으며, 그들을 나무와 짚과 풀로 지적하였습니다.

교회시대의 시작이 바로 그 예루살렘의 시작입니다. 이 예루살렘을 요한계시록 126절에는 여자(女子)로 상징하셨습니다.

그러나 만일 교회시대에 존재하던 교회가 예레미야 22절에서 말하는 예루살렘이라면 소년 때의 우의와 네 결혼 때의 사랑을 적합하게 연결시키는 어떠한 다른 말씀이 있어야하지 않습니까?

사실상 예레미야 22절이야말로 정확하게 교회시대의 예루살렘을 지적합니다.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서 지적한 일곱 교회의 상태를 보면, 그들의 영적인 상태가 아직도 교회시대의 소년 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2-3절은 다음과 같이 읽습니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요한계시록 24절은 초대교회가 하나님을 사랑했던 기록을 읽습니다. 이 구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요한계시록 29절과 19절 그리고 3810절에도 초대교회가 참으로 하나님께 신실했던 것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2:9)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것보다 많도다(2:19)

볼찌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3:8)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3:10)

 

그렇다면 초대교회가 그리스도와 결혼한 사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까? 그들이 하나님의 왕국을 대표하는 외형적인 지역교회로서 그리스도와 결혼한 것은 아닙니다. 참 믿는자들이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와 결혼한 것입니다. 그들이 바로 우의와 사랑으로 지적될 수 있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레미야서가 신약교회와 그 교회의 마지막 시기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는 불가분한 결론에 도달한 것입니다. 예레미야 22절에서 고대 이스라엘이 광야에 살던 때를 지적한다는 가능성은 있을 수 없습니다.

 

젨젨젨 2) 두 번째 증명

예레미야서가 교회에 초점을 두고, 교회시대의 마지막을 지적하는 또 다른 증거가 있습니다. 예레미야 33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단 비가 그쳐졌고 늦은 비가 없어졌느니라 그럴지라도 네가 창녀의 낯을 가졌으므로 수치를 알지 못하느니라

 

이 구절의 뜻을 이해하는 열쇠는 늦은 비입니다. 위 구절에서 늦은 비가 없어졌느니라고 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영적인 기근을 지적하며, 이 시기가 바로 교회시대의 마지막에 사단이 놓였고, 아직은 늦은 비가 내리지 않던 시기를 지적합니다. 늦은 비는 큰 환난 마지막 부분에 복음을 온 세계에 전파하는 시기를 지적합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 33절에 사용된 언어는 예레미야서가 신약교회시대의 마지막에 대하여 말씀하심을 확인합니다.

 

젨젨 3) 세 번째 증명

또 다른 중요한 사실은 유다 왕국이 격은 70년의 환난에 대하여 공부한 것을 제 검토해야 될 것입니다. 유다왕국의 70년 환난이 세상의 종말을 지적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레미야서가 오늘날 우리시대에 겪는 큰 환난에 초점을 두고 있음을 세 번째로 증명합니다.

예레미야 25장이 바로 이 사실을 나타냅니다. 예레미야 25장을 살펴보면, 세계에 복음을 전파하도록 임명된 교회와 회중들 위에 하나님의 심판이 내려지는 것과, 세상 종말에 인류에게 심판이 내려질 시기와, 또 그 이유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할 것입니다.

예레미야 253-7절에서는 하나님께서 경고와 함께, 다가올 사건을 단계적으로 설정하십니다. 이 구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유다 왕 아몬의 아들 요시야의 십 삼년부터 오늘까지 이십 삼년 동안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기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되 부지런히 일렀으나 너희가 듣지 아니 하였으며 여호와께서 그 모든 종 선지자를 너희에게 보내시되 부지런히 보내셨으나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으며 귀를 기울여 들으려고도 아니하였도다 이르시기를 너희는 각기 악한 길과 너희 악행에서 돌이키라 그리하면 나 여호와가 너희와 너희 열조에게 옛적에 주어 영원히 있게 한 그 땅에 거하리니 너희는 다른 신을 좇아 섬기거나 숭배하지 말며 너희 손으로 만든 것을 인하여 나의 노를 격동치 말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해치 아니하리라 하였으나 너희가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너희 손으로 만든 것으로 나의 노를 격동하여 스스로 해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예레미야 2515-17절에는 하나님께서 이 심판이 모든 나라 위에 내려질 것이라고 다짐하여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이 구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손에서 이 진노의 잔을 받아가지고 내가 너를 보내는바 그 모든 나라로 마시게 하라 그들이 마시고 비틀거리며 미치리니 이는 내가 그들 중에 칼을 보냄을 인함이니라 하시기로 내가 여호와의 손에서 그 잔을 받아서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신바 그 모든 나라로 마시게 하되

 

이 구절에서 모든 나라라고 하신 점에 유의하기 바랍니다. 이 기록은 아주 중요하며, 확고한 진리입니다. 모든 나라가 심판을 받는 것은 세상의 종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 25장은 특별히 세상 종말의 시기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E. 세상의 종말

 

다른 관점에서 보면, 예레미야가 말한 70년은 609 BC에서 539 BC까지를 가리키지만, 사실상 예레미야서는, 세상 종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유대와, 예루살렘과 바벨론의 경험을 사용하여, 우리로 하여금 세상종말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이해하도록 하십니다.

예레미야 25장을 공부하면서 보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예루살렘과 유다에서 시작된다는 점입니다. 18절에 예언하신 것을 읽어보겠습니다.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과 그 왕들과 그 방백들로 마시게 하였더니 그들이 멸망과 놀램과 치소와 저주를 당함이 오늘날과 같으니라

예레미야 2518-26절에서 예루살렘과 유다의 심판으로 시작한다는 하나님의 계획을 자세히 보게 될 것입니다. 예레미야 2518절은 베드로전서 417절이 제시하는 것과 같은 진리이며, 다음과 같이 읽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교회에 대한 심판이 내려지면, 그 심판이 전 세계의 심판으로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2518절에는 예루살렘과 유다가 황무(荒蕪)하게 될 것이며,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바로 데살로니가후서 2장에 하나님께서 지적하신 것과 같이 불법의 사람(사단)이 거룩한 성전(교회와 회중)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과 일치됩니다. 동시에 데살로니가후서 2장은 막는 자(성령께서 죄를 제재하심)를 회중으로부터 옮기실 것을 가르칩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교회 안에 모이는 회중들과 함께 계시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회중들 마음속에 말씀을 적용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근이 온 것입니다.

 

 

F. 모든 나라가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마셔야한다

 

예레미야서 25장에 당시에 있던 모든 나라를 들어냄으로써 세상종말에 있을 나라들을 상징합니다. 26절은 너무도 분명하게 이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북방 원근의 모든 왕과 지면에 있는 세상의 모든 나라로 마시게 하니라 세삭 왕은 그 후에 마시리라

 

위의 구절에서 지면에 있는 세상의 모든 나라로라고 말한 것에 대하여 논의할 여지가 없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이 구절은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때에 오시어 세상을 심판하실 것을 지적합니다.

이 구절에 세삭 왕은 그 후에 마시리라고 했다. 세삭은 바벨론의 다른 이름입니다. 우리가 배운 바에 의하면 바벨론은 세상종말에 하나님께서 잠깐 동안 놓으신 사단이며, 이는 교회와 세상에 대한 심판을 준비하시기 위한 수단임을 배웠습니다. 심판 날 사단은 구원받지 못한 자들, 즉 유죄의 선고를 받은 자들과 함께 지옥 불 못에 던져질 것입니다.

이 심판에 대하여 예레미야 2527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마시라 취하라 토하라 엎드러지고 다시는 일어나지 말라 이는 내가 너희 중에 칼을 보냄을 인함이니라 하셨다 하라

 

이와 같은 말씀은 인간의 영원한 멸망에 대한 선언입니다.

 

 

G. 심판은 하나님의 집에서 시작하신다

 

예레미야 25장을 계속하여 공부해 나가면, 매우 심각한 두 구절을 읽게됩니다. 이 구절은 28절과 29절이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만일 네 손에서 잔을 받아 마시기를 거절하거든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가 반드시 마시리라 보라 내가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성에서부터 재앙 내리기를 시작하였은즉 너희가 어찌 능히 형벌을 면할 수 있느냐 면치 못하리니 이는 내가 칼을 불러 세상의 모든 거민을 칠 것임이니라 하셨다 하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구절에서 왜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이 시작되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완벽하신 공의 때문에, 그의 이름을 부르는 성읍(城邑)을 먼저 심판하실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그의 이름을 부르는 성읍은 교회와 회중이며, 이들은 1950년 이상을 지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대표하는 기관이었습니다. 이 장소를 거룩한 곳이라고 부르며, 성령께서 함께 하시던 거룩한 곳입니다.

하나님의 집에 심판을 내리심으로써 그의 완벽한 의로우심을 나타내 보이시며, 그 후 계속하여, 온 세상에 심판을 내리심으로 그의 절대적이며 완벽한 공의를 나타내십니다.

예레미야 25장과, 70년의 큰 환난은 오늘날의 사건에만 전적으로 초점을 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사실임은, 539 BC가 바로 70년이 끝난 해가 되나, 세상종말이 오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70년이란 말을 발견할 때는 그것이 우선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큰 환난시기에 초점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서가 오늘날에 있을 사건에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세 가지 경우를 들어 증명했습니다. 이렇게 증명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또한 하나님께서 세상의 심판을 오늘날의 교회와 회중에서 시작하심을 배웠습니다. 우리는 심판에 대하여 더 많은 것을 공부할 것입니다.

예레미야서를 구절, 구절 공부하면서 발견하는 것은 여러 장의 내용들이 마치 오늘날의 사건을 강력히 보도하는 신문기사와 같은 내용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우리가 세 가지 증명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예레미야서는 오늘날의 교회와 회중을 지적하는 뚜렷한 기사입니다.

 

 

H. 하나님께서 다니엘서를 살펴보도록 지시하신다.

 

성경은 큰 환난과, 그 환난이 마지막 때의 교회와 회중에게 끼치는 무서운 충격에 대하여 계속 가르치고 있는 사실을 증명해 주십니다. 마태복음 2415-16절의 말씀이 이러한 증명의 시작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선언하십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읽는 자는 깨달을찐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찌어다

 

말할 것도 없이 이 구절은, 우리의 큰 환난에 대한 말씀입니다. 21절에 가 보면 이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 구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그런데, 마태복음 24장의 말씀은 우리에게 다니엘서를 다시 보도록 지시하십니다. 15절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찐저)

 

이 구절은 우리가 다니엘서에 가서 큰 환난에 대하여 배우도록 지시하신 것입니다. 다니엘서에 보면 큰 환난이 세상 마지막에 일어날 사건임을 증명합니다. 다니엘 128-10절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내가 듣고도 깨닫지 못한지라 내가 가로되 내 주여 이 모든 일의 결국이 어떠하겠삽나이까 그가 가로되 다니엘아 갈찌어다 대저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할 것임이니라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케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

 

 

I. 멸망의 가증한 것

 

다니엘서를 공부하면서 마태복음 2415절과 관련이 되어있는 구절들을 발견해야합니다. 그 열쇠가 되는 어휘는 멸망의 가증한 것거룩한 곳에 선 것이라고 한 말씀입니다. 두 구절이 다 다니엘서에 명시되어있습니다. 다니엘 1131절을 다음과 같이 또 읽을 수 있습니다.

 

군대는 그의 편에 서서 성소 곧 견고한 곳을 더럽히며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케 하는 미운 물건을 세울 것이며

 

다니엘 1131절에 성소 곧 견고한 곳이 더럽힘을 당하며, 매일 드리는 제사가 폐지되며, 멸망케 하는 미운 물건이 설 때에 대한 예언을 하셨습니다. 성소 곧 견고한 곳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입니다. 이곳이 바로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하여 매일 드리는 제사와, 촛대의 불이 꺼지지 않고 항상 켜 있는 곳입니다. 이러한 장소는 오직 성전뿐입니다. 그러나 위에서 읽은 구절에 의하면 어느 때가 되면, 그 장소를 멸망케 하는 미운 물건이 차지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2415절에는 이와 같은 무서운 일이 일어나는 시기가 큰 환난기간이 될 것이며, 또 그 시기는 세상 종말 직전에 온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왜 성경에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에 관련하여, 다니엘서에 가서 보라고 하셨습니까? 지금 얻은 결론에서 보면, 거룩한 곳이란 바로, 매일 제사를 드리고 또 촛대의 불이 꺼지지 않고 항상 켜져 있는 성소, 곧 견고한 곳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배운 대로, 거룩한 곳은 곧 성전이며, 참 믿는자들이 있는 곳입니다. 그곳이 바로 성령께서 계시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정의하신 성전은 믿는자들의 집단인 외형적인 교회와 회중이라고 하셨습니다.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이 매일 드리던 제사는 오늘날 교회에서 드리는 것이 아니므로, 그들의 매일 드리는 제사나 꺼지지 않는 등불은, 복음의 빛이 전 세계에 전파되는 것을 지적합니다. 거룩한 곳은 바로 교회입니다. 이 교회에 성경을 주셨고, 또 온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다니엘 1131절에서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한다고 하셨고, 멸망케 하는 미운 물건이 그 성전의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말씀은 앞서 배운바와 같이 성령께서 교회와 회중들로부터 떠나시는 사건이 마지막 큰 환난시기에 일어날 일들과 일치됩니다. 그것은 바로 촛대가 교회와 회중으로부터 옮겨질 것을 말씀하십니다. 사단이 교회를 다스릴 것이며, 사단은 바로 멸망의 근본입니다.

다니엘서에,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에 대하여 말하는 두 번째 설명이 있습니다. 다니엘 1211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케 할 미운 물건을 세울 때부터 일천 이백 구십일을 지낼 것이요

 

이 구절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시기에 관한 것입니다. 그 시기는 1290일입니다. 이 시기가 언제를 지적합니까?

 

 

J. 다니엘의 예언은 마지막 때가 되기까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하셨다

우선, 마지막 때가 될 때까지는, 이 시기에 관한 것은 이해되지 못할 것입니다. 다니엘 1211절의 문맥이 지적하는 것을 볼 때, 이 사실을 알게 됩니다. 다니엘 118-10절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듣고도 깨닫지 못한지라 내가 가로되 내 주여 이 모든 일의 결국이 어떠하겠삽나이까 그가 가로되 다니엘아 갈찌어다 대저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할 것임이니라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케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

 

성경에 기록된 진리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시기가 되어야만 이해되도록 하셨습니다. 세상 종말이 오기 전에 모든 인류가 배워야할 것을 성경에 기록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적인 눈을 뜨게 하시기 이전에는, 그 성경의 뜻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가 죽임을 당할 것이며, 또 부활하실 것을 누차에 걸쳐 말씀하셨지만, 예수님께서 부활하실 때까지 제자들은 그 말씀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19:31-34를 볼 것).

세상 종말에 대한 성경 말씀도 같은 뜻이 적용됩니다. 다니엘 128-10절이 세상종말에 일어날 사건의 성격을 말하지만, 세상의 종말이 아주 가까이 올 때까지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때는 세상종말에 일어날 사건에 대한 지식이 크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K. 하루가 일년과 같다

 

두 번째로, 다니엘 1211절에서 1290이라고 한 것이 실제적인 날수를 말하지 않는다는 결론입니다. 성경을 아무리 자세히 살펴보아도, 어떠한 사건의 시기가 실제적인 1290일을 지적하는 경우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1290일이 1290년을 지적함을 우리는 발견합니다. 그렇지만 하루를 일년으로 계산할 수 있는 결론의 근거를 성경이 제시하여야합니다. 이러한 근거는 성경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에스겔 4장에서 에스겔은 어떤 행동을 며칠 동안에 취할 것을 명령받았으나. 실제적으로 그것이 몇 년 이였습니다. 에스겔 46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그 수가 차거든 너는 우편으로 누워 유다 족속의 죄악을 담당하라 내가 네게 사십일로 정하였나니 일일이 일년이니라

 

민수기 1434절에도 일년을 하루로 대처한 경우가 있습니다. 다음과 같이 선언하신 바를 읽어보겠습니다.

 

너희가 그 땅을 탐지한 날수 사십일의 하루를 일년으로 환산하여 그 사십년간 너희가 너희의 죄악을 질찌니 너희가 나의 싫어 버림을 알리라 하셨다 하라

 

요한계시록 11장에 두 증인이 사흘 반 동안 죽임을 당한 기록이 있습니다(11:9,11). 이 기간은 요한계시록 112절에서 거룩한 성읍이 42개월 동안 짓밟힌다는 기록과 동일한 기간입니다. 42개월은 3년 반이 됩니다. 사흘 반은 42개월과 같은 시기를 지적하며, 그러므로 사흘 반은 42개월의 기간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하루를 일년으로 대처하셨습니다.

더욱이 우리가 성경에 기록된 사건의 기간을 1290년으로 연관시킬 때, 하루를 일년으로 대처할 수 있는 경우를 배우게 될 것입니다.

 

L. 지나간 사건

 

공부를 계속하기 전에, 마태복음 24장에서 말하는 성전의 파괴는 70 AD에 완전히 이루어졌다고 사람들이 가르치고 주장하는 것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보기로 합니다. 70 AD에 로마 왕 티도스(Titus)가 예루살렘을 완전히 파괴하였습니다. 마태복음 24장을 주의 깊게 공부해 보면 지나간 사건이 되는 것은 불가능함을 알게 됩니다. 마태복음 241-2절에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70 AD에 성전이 파괴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 될 수 없습니다. 현재 성전의 서쪽 벽이 성전 기초 위에 돌들이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남아 있는 구조는 성전 건물의 기초로서 필요한 부분입니다.

둘째로 마태복음 243절에 예수님께서 이 예언이 이루어지는 시기를 가리키실 때, 제자의 질문을 기록하셨다는 점입니다. 마태복음 243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감람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와서 가로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이 구절은 이 예언이 이루어질 세상 종말의 시기를 가리킴이 틀림없습니다.

더욱이 15절에 가서 멸망의 가증한 것에 대하여 유의하여, 다니엘서의 예언을 지적하신 것은 우리의 특별한 주의를 집중시키신 것입니다. 공부를 계속하다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는다고 하신 말씀이, 세상의 마지막 때를 지적함을 배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