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성경의 아주 놀라운 한가지 특성은 그 말씀이 완전히 지속적이라는 점입. 그것은 바로 성경 전체가 다 완전한 진리라는 점입. 그러므로 성경 어떤 구절에서 진리를 바르게 배웠을 때, 성경의 다른 구절이 내포한 내용이 그 진리를 부정하거나 타협하지 않습니.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이러한 완전한 지속성을 기대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비로 지난해에 우리는 큰 환난과 교회시대의 마지막이 동시에 일어났음을 알게 되었습니. 교회시대가 끝이 되었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지역교회의 회중을 세계선교를 위하여 더 이상 사용하시지 않는다는 것입. 사실에 있어 성령께서 교회에 속한 사람들을 더 이상 구원하시지 않으십니다. 더욱이 하나님께서 지역 교회와 회중을 포기 하셨기 때문에 죄의 사람, 사단이 광명의 천사로 나타나 지역교회의 회중을 다스립니다. 참으로 믿는자들은 이와는 반대로 교회에서 이미 출회를 당했거나, 교회에서 나오도록 명령을 받습니.

이 같은 극적인 슬픈 사건을 지금까지 공부해왔습니. 이 장은 지금까지 지적한 사실에다 성경에서 발견한 추가적인 정보를 제공합니다.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라고 하신 말씀을 살펴 볼 것니다.

이 책의 내용이 극도로 슬픈 사실에 대한 공부이기는 하지만, 모든 내용이 완전히 성경에서 온 진리입. 바라건대 여러분이 이 책을 읽은 후 성경을 이전보다도 더 열심히 그리고 깊이 더 공부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1. 곡식과 가라지

 

 

A. 곡식과 가라지

 

곡식과 가라지의 비유는 복음의 골자를 설명합니다. 이 말씀은 마태복음 1324-30절에서 다음과 같이 읽을 수 있습니.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면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주인이 가로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숫군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이 비유의 영적인 뜻을 마태복음 1337- 43절에서 읽을 수 있습니.

 

대답하여 가라사대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추수때는 세상 끝이요 추숫군은 천사들이니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것 같이 세상끝에도 그러하리라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이 비유의 말씀에서 우리가 배우는 것은 세상 종말에 참 믿는자와, 즉 구원받은 자와, 구원받지 못한 가짜 신자를 구별하여 갈라놓으실 것을 가르칩니다. 여기에서 구원받은 자를 곡식이라고 부르며, 그리스도인 이라고 자칭하나 구원받지 못한 자들을 가라지라고 부릅니다.

다음과 같이 세 가지를 직각으로 생각하게됩니다.

 

젨젨 1). 밭은 세상입. 지금 지역교회가 온 세상에 퍼져있기 때문에 곡식과 가라지를 이 교회에서 찾게됩니다.

젨젨 2). 좋은 씨는 하나님의 백성들이며, 이들은 구원받은 자들입. 신약시대를 통하여 큰 환난이 시작되기 직전까지 지역교회는 세계선교의 사명을 받고, 이 사명을 시행해 왔습니. 더욱이 믿는자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지역교회의 교인이 되었습니. 그러므로 교회시대가 끝날 때까지 구원받은 참 믿는자들이 온 세상에 퍼져 있는 것을 위에서 읽은 비유에서 알 수 있습니. 즉 씨가 뿌려진 밭은 온 세상임을 지적합니다.

젨젨 3). 가라지는 잡초이며 자랄 때 곡식과 흡사합니다. 이들은 사단의 왕국에 속해 있으며, 구원받지 못한 자들입. 그러나 교회시대 동안에는 그들이 구원받은 자들과 같이 같은 교회에 속해있습니. 그 가라지는 참 믿는자들과 섞여있을 때, 사람의 눈으로는 도무지 분간할 수 없게 비슷합니다. 마태복음 1329-30절에 가라지들이 곡식과 함께 교회시대의 끝날 까지 남아 있을 것을 지적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가라지를 뽑아 버리려고 하면 곡식이 상하게될(뽑힐)것이라고 합니다.

 

B. 교회의 회원

 

제일 먼저 질문하게 되는 것은, 누가 지역교회의 회원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입. 이러한 질문을 해야만 하는 이유는, 이 비유에서 곡식과 가라지가 다 교회의 회원이 되어있음을 지적하고, 곡식은 참 믿는자들을 지적합니다. 각 교회마다 그들의 교회는 구원받은 사람들만으로 구성되었다고 주장한다는 사실입. 말하자면 성찬식에 참석할 수 있는 교인들을 지적하고 있습니. 이러한 교인은 물로 세례를 받은 자들이며, 이들은 신앙을 고백한 자들이며, 교회가 제정한 교리에 동의한자들이며, 정규적으로 교회에 출석하는 자들이며, 또 도덕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바로 구원받은 참 믿는자들이라고 인정합니다. 사실상, 만일 어떤 한 회원이 대립적이거나, 도덕적이 아닐 때 그는 회원직을 빼앗기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의 영적 지도자들은 교회의 정회원들이 구원받은 자들이라고 믿습니.

이와 같은 커다란 의문에 대하여 그 해답을 찾아야합니다. 어떤 개인이 그리스도가 자신의 구주이심을 고백했을 때, 그가 교회의 회원이 되는 것을 누가 결정을 합니까? 그 결정은 목사와 장로와 그리고 집사들은, 그 개인의 행동을 조심스럽게 살펴보고, 또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을 가졌다고 고백하는 것으로 그가 구원을 받았다고 결정을 하기 때문에, 그는 교회의 정회원이 될 자격이 있다고 결정합니다. 다시 말하면 이 회원이 된 신자가, 곡식으로 자라난다는 결정을 교회가 하는 것입.

그러나 여기에 큰 문제점이 있습니. 목사나 장로나 집사가 이 개인이 새로 부활된 영혼을 받았다는 분명한 증거를 가질 수 있습니까? 그 대답은 명백합니다. 말할 것도 없이, 그들이 결정할 수 없고 하나님께서만 하실 수 있습니.

그렇다면 그들이 어떤 개인이 구원받은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지 않았으면서도 구원받은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이 일에 대하여 히브리서 64-6절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 이 구절을 읽어봅시다.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이 구절을 살펴보면 마치 구원받은 교회교인들을 지적하여 말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라고 한 구절은 참으로 구원받은 자를 지적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구절에서 어떤 교회의 회중이 하나님왕국에 매우 가까이 접근해 있을 때에도, 그 회중 안에는 구원을 받지 못한 자들로서 구성되어 있음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 사실은 같은 구절에서 타락한 자들을 지적하시기 때문입. 구원받은 자들에게는 영생이 주어졌으며, 그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끊을 수 없기 때문입.

 

 

C.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사실상 마태복음 720에 다음과 같이 선언하셨습니.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참 믿는자들은 그들이 맺는 영적인 열매를 보고 알 수 있다고 이 구절이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성경의 원리를 말한다면, 그것이 사실이지만, 어느 누가 다른 사람이 맺은 영적인 열매를 볼 수 있다는 말입니까? 대중 앞에서 경건하게 보일지라도, 그 사생활(私生活)은 참 믿는자가 아닐 수도 있습니.

질문할 여지가 없이 그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고 하신 것은 어떤 개인이 하나님과의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를 짐작하는데 도움을 주기는 합니다. 그의 생활이 성경이 정의하신 대로 열매를 맺는 것인지는 오직 하나님께서 만 알고 계십니다. 궁극적으로 참 믿는자가 가져야 할 열매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 그러므로 지금 지역교회를 떠나라고 하신 명령에 순종하는 것은 참 믿는자임을 증명하는 것입.

더욱이 고린도후서 11장의 말씀에서 사단이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여 목자로서 나타날 것입. 이 고린도후서 11장의 문맥은 사단이 ()의 사자(使者)처럼 나타난다는 것입. 이 말씀은 어떤 사람이 참으로 구원을 받았는지 우리가 알아내는 일은 아주 힘든 일임을 깨닫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처음에 공부한 바와 같이, 곡식과 가라지를 가려내는 일이 세상종말에 일어나야만 함을 알게됩니다.

어떤 목사, 장로 혹은 집사들이, 어떤 교인이 참으로 구원을 받았는지를 안다는 것은 결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하나님께서 사데교회에게 하신 말씀이 이상하다고 생각되지 않습니. 하나님께서 요한계시록 31-4절에 다음과 같이 선언하셨습니.

사데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워 그 남은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 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말할 것도 없이, 사데교회 안에는 매우 적은 수의 교인들이 구원을 받았으며 거의 나머지 교인이 가라지였음을 알게됩니다. 하나님께서 사데교회 교인들의 마음을 뚫어 보셨고, 오직 몇몇 사람만이 구원받은 자들임을 선언하셨습니.

 

 

D. 곡식과 가라지로 구성된 교인을 우리가 분간할 수 없다

 

우리는 비로소 곡식과 가라지의 비유를 이해하기 시작했습니.

곡식과 가라지를 우리가 가려낼 좋은 방법이 없습니. 교회시대를 통하여 곡식과 가라지는 함께 자라게 되어있습니. 어떤 교회에서도 외면적으로 성경말씀에 충실할 때 그는 구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들은 다 곡식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누가 구원을 받았는지 알 수 없습니. 그러므로 결코 그가 가라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는 없습니.

 

그리고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에 사르게 단으로 묶고라고 하셨습니. 어떻게 이 일이 시행될 것입니까? 마태복음 1339-41절을 읽어봅시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답이 여기에 있습니.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추수때는 세상 끝이요 추숫군은 천사들이니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것 같이 세상끝에도 그러하리라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다시 질문을 하게됩니다. 세상종말은 인류역사상 어느 때를 지적합니까? 누가 천사들입니까? 사실에 있어 가라지를 어떻게 거두게됩니까? 어떻게 곡식과 가라지가 분리되는 과정이 이루어집니까? 마지막 날에 그리스도께서 돌연히 나타나신다고 하지 않습니까? 마지막 날에 모든 믿는자들의 육신은 영원한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되고, 즉시로 휴거를 받고, 그리스도를 공중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 아닙니까? (살전 4:17, 고전 15:51-52을 볼 것) 그 마지막 날에 모든 구원받지 못한 자들의 육신도 부활을 당하며, 심판대 앞에 서게 되는 것이 아닙니까?(요한복음 528-29) 바로 그 마지막 날에 아직도 살고 있는, 바로 구원받지 못한 그들은 즉시 심판대 앞에 서게되지 않습니까?(12:48을 볼 것)

그러므로 마태복음 1340-43절에서 말하는 바 곡식과 가라지의 비유는 위에서 말한바, 세상종말에 대한 질문과 일치합니다.

이 사실을 이해하기 위하여는 몇 가지 중요한 다른 구절들을 살펴 보아야합니다. 처음에 살펴 볼 단어는 추수. 하나님께서 이 단어를 복음을 세상에 가져오는 일에 사용하시고, 그 복음이 결실을 맺고 추수하게 되는 것을 말하며, 그들이 곧 구원을 받는 것이며, 그들이 천국에 들어옴을 말합니다. 마태복음 936-38절에서 다음과 같이 읽을 수 있습니.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은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위의 구절에서 우리가 배우는 것은 추수는 사람들이 구원을 받는 것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

그렇다면 누가 구원받을 사람들을 추수할 일군들입니까? 마태복음 1339절에서 세상종말에 추수하는 일군을 천사라고 했으며, 천사가 복음을 세상에 전파함으로써 사람들이 구원을 받게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음을 전하는 일에 천사를 사용한다고 성경은 가르칩니까? 말 할 것도 없이 천사라는 단어의 뜻을 살펴 보아야합니다.

 

 

E. 천사 혹은 사자(使者)

 

구약성경에 나오는 단어 malak"는 여러 번 천사로 번역이 되었고, 또한 "사자: messenger로 번역 되어있습니. 또 희랍어aggelos"는 여러 번 천사로 번역이 되었습니. 그러나 많은 경우 사자로 정확하게 번역이 되어있습니. 우리가 원어, malakaggelos의 단어가 씌어진 구절을 공부하면, 이 단어들은 하나님께서 주로 사자(使者)를 지적하심을 발견합니다.

원어가 하나님자신을 지적하거나, 천사를 말하는 경우가 있지만, 소식(복음)을 가져오는 사자는 인간을 지적할 수 있습니. 그러므로 성경 구절의 문맥을 보고 적합한 번역을 해야합니다. 예를 들면, 말라기 31절을 다음과 같이 읽습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

 

이 구절에는 사자라는 단어가 두 번 씌어졌습니. 처음 사자는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소개한 세례요한을 지적합니다. 그 다음 두 번째 사자는 분명하게 그리스도를 지적하며, 그가 바로 주님이시며, 약속의 사자이십니다.

사실상 구약성경에서 malak"에 대한 번역을 보면 4번을 사신(ambassador), 111번을 천사로 또 98번을 사자로 번역하였습니다. 이 단어가 사자로 번역된 대개의 경우, 소식을 가지고 온 사람을 지적합니다. 그러나 말라기 31절에서 본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자라고 부르셨습니.

 

신약성경에서 aggelos"181번을 천사로 번역하였고, 단지 7번을 사자로 번역했습니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 1110-11절에서 세례요한을 사자라고 하였습니다. 이 구절을 읽어보면 다음과 같습니.

기록된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네 앞에 예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분명히 볼 수 있는 것은 구약성경 히브리어의 malak와 신약성경 희랍어 aggelos의 번역을 매번 조심 있게 살펴보고, 그 단어들이 하나님자신을 가리키는지, 또는 천사를 가리키는지, 그렇지 않으면 인간을 가리키는지 알아 보아야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마태복음 1339절을 다시 살펴보게 합니다. 이 구절에서 추수하는 일군이 천사라고 하셨습니. 우리가 믿을만한 KJV 번역이, 이 구절에 와서 aggelos를 천사라고 번역한 것이,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들이 구원받은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분명하게 천사를 지적하겠습니까? 이에 대한 해답으로서 요한복음 435-38절의 말씀을 살펴보면 됩니다. 이 구절을 읽어봅시다.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내가 너희로 노력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의 노력한 것에 참예하였느니라

 

이 구절에서는 추수하는 일군들이 구원받은 사람들임을 명확하게 제시하십니다. 말할 것도 없이 이들이 바로, 복음을 세상에 전하도록 명령받은 하나님의 사자들입.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구원받게 되는, 선택받은 자들 마음속에 그 말씀을 적용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자들입. 그러므로 구원받은 자들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믿는자들이 일꾼이 되어 추수한 결과입.

마태복음 1337-43절로 다시 돌아가서 희랍어 aggelos(39절과 41절에 있음)를 살펴보면, 그 번역이 사자라고 되어야함이 분명합니다. 천사들이 추수를 할 수 없습니. 추수는 참 믿는자들이 복음을 세상에 전함으로써 추수가 되는 것이며, 그 때에 사람들이 구원을 받으며, 곡식의 곡간인, 하나님 왕국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곡식과 가라지에 대한 처음 비유에서 곡식과 가라지를 말할 때, 참 믿는자들이 곡식으로 불리고, 그 씨가 곡식으로 자라고, 추수하게 되는 것을 알게됩니다. 그러나 계속하여 비유를 읽어 가면, 참 믿는자들을 사자라고 부르며, 그들을 추수의 일꾼이라고 불렀습니다.

 

 

F. 세상의 끝

 

그렇지만 마태복음 1339-40절에서 말하는 추수 때가 세상 끝이라고 하셨습니. 이 구절을 읽어봅시다.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추수때는 세상 끝이요 추숫군은 천사들이니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것 같이 세상끝에도 그러하리라

 

이 구절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얻기 위하여는, 성경에서 세상 끝이라는 어휘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쓰셨는지 자세히 살펴 보아야합니다.

 

히브리서 926절에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한편으로 세상 끝이라는 어휘는, 그리스도께서 AD 33년 십자가에 달리시던 때를 지적합니다. 그러므로 세상 끝은 전 신약시대를 포함할 수 있습니. 세상이 창조된 후 13,000 동안에서, 마지막 2000년이 세상 끝이 됩니다. 같은 식으로 세상 끝이라는 말을 사도행전 217절에 하나님께서 사용하십니다. 여기 사도행전 2장에서 말하는 세상 끝, 신약시대 전체를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

그러나 히브리서 926절로 돌아가서, 세상 끝이라고 한 문맥은 예수님께서 구원하시고자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심판을 받으신 사건에 그 초점을 둔다고 볼 수 있습니. 그리고 이 심판은 모든 믿지 않는 자들이 받을 마지막날의 심판과 연관이 됩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926절은 세상 끝에 대하여 결정적인 정보를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세상 끝에 대하여 마태복음 243절에서 같은 문맥을 읽을 수 있습니. 이 구절을 읽어봅시다.

 

예수께서 감람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가로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이 구절은 큰 환난의 시기와 그 성격에 대하여 가르치는, 마태복음 24장 전체의 머리말의 역할을 합니다. 이 장은 또한 큰 환난이 끝난 직후에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다시 오실 것을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 끝이라는 어휘가 큰 환난의 시기를 지적함을 분명히 알게 됩니다. 분명한 것은, 큰 환난 마지막 때에, 믿는자들이 마지막 추수를 하게됩니다.

그러므로 세상 끝이라는 어휘가 큰 환난 동안에 적용됨이 분명하며, 이 시기에 세상이 존재하는 마지막날에 곧,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

곡식과 가라지의 비유는 큰 환난 기간에 그 초점을 가지고 있음을 우리는 배웠습니다. 다음으로, 하나님께서 어떻게 지역교회에서 가라지를 자라게 하셨는지를 살펴보겠습.

그리고 또한 가라지의 씨를 뿌린 것이 원수들임을 우리가 배울 것입.

 

 

 

 

 

 

 

 

 

 

 

 

 

 

2. 원수 마귀는 가라지를 심는다

 

 

A. 원수 마귀는 가라지를 심는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339절에 아주 중요한 사실을 선언하셨습니다.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라고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공부한 바에 의하면, 곡식(교회 교인 중에 참 믿는자들)과 가라지(교인 중에 구원받지 못한 자들)가 교회시대에 같이 자라게됩니. 마태복음 1339절이 말하는 바는 지교회 안에 사단이 관여해 있음을 지적합니.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승리하셨기 때문에, 또 우리가 요한계시록 20장이 말하는 것을 읽었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 사단이 그리스도와 싸우는 영적인 전쟁에서 제외되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 전 교회시대를 통하여 이러한 아이디어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기 때문에, 교회가 아주 안전하게 존재한다고 믿었고, 그들은 사단이 교회에 관여하고 있다는 걱정을 전혀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이 말하는 바를 살펴볼 때, 신약시대에 사단의 활동과 그의 조직과, 또 사단의 궤휼을 발견하고, 사단에 대하여 알지 못했던 전혀 다른 사실을 발견하게 합니.

 

 

B. 사단이 결박을 당함

 

우선 요한계시록 202-3절에서 사단이 결박을 당하는 것을 살펴봅시다.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읽습니다.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간 놓이리라 (20:2-3)

 

사단의 결박에 대한 성경 구절을 여러 번 읽었지만, 그 뜻을 알지 못했을 것니다. 언제 사단이 결박되었고, 또 언제 사단이 놓임을 받았습니까? 히브리서 214절에서 읽는 바에 의하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는 순간 사단이 어떤 의미에서 파멸을 당한 것을 읽어봅시다.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2:14)

 

요한계시록 13장에서 읽는 바는, 사단이 치명상을 입은 것을 알게됩니. 요한계시록 133절에서 사단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르고 (13:3)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승리하셨기 때문에 사단이 천국에서 쫓겨났음을 요한계시록 129절에서 다음과 같이 읽을 수 있습니.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 (12:9)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승리에 대하여 누가복음 1018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10:18)

 

위의 구절들을 살펴볼 때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던 순간, 사단이 치명적인 형벌을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바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받으시고, 또 세상종말에 사단을 지옥에 영원히 던지실 것을 가르칩니. 이와 같은 사실로 성경을 정확하게 이해하게 괴는 것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2010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크고 흰 보좌에서 심판을 내리시다 (20:10)

 

 

C. 만국을 더 이상 미혹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20장에서 우리의 생각을 정돈하게 하는 아주 중요한 기사를 읽습니다. 요한계시록 203절을 읽어봅시다.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간 놓이리라 (20:3)

위에서 읽는바 만국을 미혹한다는 것은 지금 우리가 그 큰 환난 시기에 처해 있으며, 사단이 만국을 미혹하고 있음을 알게됩니. 그 이유는 사단이 결박당해 있던 천년이 끝나는 동시에, 사단이 놓이고, 큰 환난이 시작되기 때문니다.

 

만국을 더 이상 미혹하지 못하며라고 한 말씀을 우선 살펴보기로 합시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이전에 완벽한 설교자로써 설교하셨지만, 사실상 그 설교를 듣고 구원받은 사람들이 거의 없습니다. 극소수 외에는 아무도 구원을 받지 못했다는 증거를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배운 바에 의하면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설교자였었으나, 그가 설교를 할 때에 사단이 사람들의 마음에 그 말씀을 적용하지 못하도록 한 것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이루어지는데는 두 가지의 일이 있어야할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 첫째 는 설교하고, 전달되는 말씀이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합니. 로마서 1017절에서 다음과 같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10:17)

두 번째로는 설교된 그 말씀을 성령께서 듣는 사람들 마음속에 적용하고, 또 그 마음속에 살아 있도록 하셔야 합니. 우리가 누가복음 8장에 있는 씨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배운바와 같이, 사단이 이 말씀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길 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와서 그들로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8:12)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이전에는, 사단이 그리스도의 구원계획을 성공적으로 방해할 수 있었음을 알게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될 때마다, 사단이 그 자리에 있다가 그 말씀을 빼앗아 버리고 그 말씀이 듣는 자들 마음속에서 자리잡고 자라는 것을 방해하였다. 사단은 만국을 기만할 수 있었고, 우리가 놀라게 되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께서 직접 설교하시면서 선교하시던 때에 방해하는 일이 일어났던 것니다. 이 사실은 성전에서 일어났었고, 회당에서 일어났었고, 또 해변에서도 일어났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설교하실 때 완벽한 설교자였지만 아주 적은 수만이 구원을 받은 이유니다.

 

D. 사단이 결박을 당하고 성령께서 지배하신다

위에서 말한바 사단의 활동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는 순간 정지되었습니다. 신약교회가 설립되고, 말하자면, 그 교회의 복음선교를 방해 할 수 없게, 즉 사단이 하나님께서 구원 하시고자하는 자들로부터 그 말씀을 빼앗아 가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사단을 결박 한 것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사단이 할 수 있는 방해는 끝을 본 것니다. 어떤 의미에서 사단이 교회시대가 존재하는 동안에 결박을 당한 것니다.

이 사실을 33AD에 오순절 다락방에서 극적으로 일어난 사건을 봄으로써 증명할 수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설교할 때에, 단 한번에 3,000명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말 할 것도 없이 사도 베드로는 그리스도와 같이 완전한 설교자가 아니었지만, 그의 설교를 듣고 3,000명이 구원을 받은 것니다. 이 사건은 사단이 결박을 당했다는 극적인 증거이며, 바로 사단이 만국을 기만하지 못한 것이며, 성령께서 행하시는 구원 사역을 방해하지 못한다는 증거인 것니다.

그렇지만 곡식과 가라지의 비유에서, 교회시대 동안에 사단이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뿌린다는 비유를 어떻게 이해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성경은 이 비유에 대하여 더 많은 설명을 하며, 신약성경 전체를 통하여 이에 대한 얘기를 하고있습니다.

 

 

E. 사단은 그리스도에게 전쟁을 걸고있다

 

우선, 요한계시록 1217절에서 사단을 독사라고 부르며, 믿는자들을 대표한 여인이 광야에 쫓겨가 있음을 읽습니다. 광야에 가 있는 여인은 신약시대의 믿는자들을 대표함이 분명합니다. 이와 같은 비유에서 아주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12:17)

 

위에 선언하신 바에 의하면, 사단과의 전쟁이 신약시대를 통하여 계속된 것을 말합니. 이것은 엄연한 사실니다. 어떤 의미에서 사단이 결박을 당했고, 하나님의 인간 구원계획을 방해하지 못하며,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기로 예정하신 자들을 구원하시는 사역을 방해하지 못합니. 동시에 성령께서는 구원받기로 결정된 자들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하시는 사역에 바쁩니다. 그러나 사단은 아직도 전쟁을 하고있습니다.

이 사실은 에베소서 6장의 말씀을 기억하게 합니. 일반적으로 우리가 이 심각한 내용을 알고 있지만, 이 구절의 중요성을 감지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611-12절을 읽어봅시다.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6:11-12)

 

이 구절에서도 전쟁이 계속되고 있음을 말합니. 이 구절이 설명하는 바는 사단이 믿는자들을 공격할 수 없도록 보호하심을 말합니. 또한 히브리서 613-17절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이가 없음으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주고 복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 저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맹세는 저희 모든 다투는 일에 최후 확정이니라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6:13-17)

 

하나님께서 진리의 띠를 띠고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자신이 진리이시다. 그는 또한 의의 방패를 가지라고 하셨고, 평안의 복음의 신을 신고라고 하셨고, 구원의 투구를 쓰고라고 하셨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령의 검을 또 말씀하십니. 이러한 모든 표현은 결국 그리스도 자신을 지적하는 것니다. 그리스도는 믿는자들을 보호하시는 방패이시며, 사단은 지교회의 회중을 부단히 공격하는 전쟁을 계속하여 벌리고 있습니다. 사단은 지교회의 교인들이 올무에 걸리도록 노력하고 있는 것니다.

사단은 계속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대항하여 전면적인, 무서운 싸움을 내겁니다.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를 사단이 대항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몸인 지교회 안에 사단은 존재합니. 그러므로 바로 거기서 그리스도를 대항하는 것니다.

이외에도 다른 많은 구절에서 이러한 사단의 공격에 대하여 읽을 수 있습니다. 그 한 예를 들면 야고보서 47절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찌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4:7)

 

에베소서 427절에서도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읽습니다.

이와 같은 구절들은 사단이 지교회 안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음을 지적합니. 고린도후서 113-4절에서도 다음과 같이 읽을 수 있습니다.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고후11:3-4)

 

이 구절에 하나님께서 경고하시는 바는, 만일 누가 거짓교리나 거짓복음을 가지고 회중을 가르치려고 할 때에, 사단이 가지고 오는 올무에 걸릴 것니다. 디모데전서 36절에서는 교회 장로 자격에 대하여 말씀하십니.

 

새로 입교한 자도 말찌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딤전 3:6)

 

이와 같은 장로의 자격은 아주 심각한 문제니다. 이 구절이 암시하는 바는, 구원받지 못한 자가 장로로 임명 될 수 있고, 그가 구원을 못 받은 경우 사단에게 속해 있음을 말합니. 더욱이 요한 138절에는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가르치십니.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요일 3:8)

 

위의 문맥은 하나님께서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범죄 하는 모든 경우를 지적합니. 그들은 언제나 마귀에게 속해있습니다. 이 사실은 디모데전서 515절에서도 강조하셨고, 이 구절에서도 신약시대의 교인들에게 경고하시는 것니다. 이 구절을 읽어봅시다.

 

이미 사단에게 돌아간 자들도 있도다 (딤전 5:15)

 

사도행전 2616-18절에는 사단이 구원받지 못한 자들을 다스릴 권한이 주어졌음을 확실하게 말씀하십니. 이 문맥에서 하나님은 바울을 복음선교를 위하여 세상에 보내시면서 지시하신 내용니다. 이 구절을 읽어보면,

 

일어나 네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사환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저희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26:16-18)

 

이와 같이 아주 중요한 구절에 사단의 권세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은 사단의 능력을 말씀하신 것니다. 이 구절에서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사단과 함께 있으며, 또한 아직도 사단의 지배하에 있음을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니다. 이 사실은 우리가 계속 공부해 나갈 때 상당히 중요한 자료가 될 것니다.

고린도후서 11장에서 사단의 사역에 대하여 말씀하십니. 만일 사단이 빨간 옷을 입고 또 창을 들고 자신이 사단임을 자칭한다면, 우리에게 얼마나 편리한 일이 되겠습니까? 그러나 사단은 거짓의 아버지이며, 속이는 데에 있어서는 그가 곧 주인니다. 그는 거짓말쟁이며, 그의 사역자체가 속임수로 되어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114절에서 다음과 같이 우리는 읽습니다.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고후 11:14)

 

위의 구절도 아주 중요한 기록이며, 사단이 거짓을 하기 위하여 어떻게 행동하는 지를 가르칩니. 예를 들면, 세상에서 복음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또는 교회도 없는 마약 굴이라던가 사창가에서도 사단은 일을 하고있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은 사단이 지교회 안에서 일하고 있음을 지적합니. 그는 광명의 천사로 나타나며, 그것은 마치 복음(福音)의 사자(使者)처럼 나타나는 것니다. 그리스도는 세상의 빛이시며, 그리스도는 빛의 사자이시다. 그러나 사단은 교묘하게 위장한 빛의 사자가되어, 광명의 천사로 나타나며, 믿지 않는 자들은 그가 사단임을 알지 못합니. 그는 언뜻 보기에 그리스도와 같이 보입니다.

이 구절은 사단이 교회 교인들을 어떻게 다루는가를 말합니. 이러한 사단의 교묘한 사역이 전 교회시대를 통하여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그들의 전략이며, 그리스도를 대항하는 전술니다. 그러나 택하신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을 사단이 방해하지 못하는 대신, 교회 안에 구원받은 자와 받지 못한 자를 구별하지 못하도록 하신 것니다. 교회시대에 지교회가 그리스도 왕국을 대표하고 있음을 사단이 알고 있기 때문니다. 이것이 바로, 광명의 천사로서 회중 앞에 나타나는 이유니다.

 

 

F. 사단이 어떻게 싸우는가? (사단의 전술이 무엇인가?)

 

또 의문이 되는 것은 사단이 어떠한 방법으로 싸움을 걸겠습니까? 사단은 영적 존재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단이 어떻게 전쟁을 거는지, 그의 궤휼을 말씀하십니. 고린도후서 1113에 다음과 같이 선언하십니.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고후 11:13)

 

이 구절에서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것은 목사나, 장로나, 집사들이 아주 거룩하게 보이고, 신사적이며, 도덕적이고, 참으로 주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들 자신의 생각에 그들은 완전히 주 예수님을 섬긴다고 자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서 고린도후서 1115절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

그러므로 사단의 일군들도 자기를 의()의 일군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고후 11:15)

 

사단을 섬기고 있는 지교회의 목사들은 의()의 사자(使者)로 나타나는 것니다.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비로소 우리는, 에베소서 6장에서 하나님의 전신 갑주(甲胄)를 입어야만 마귀를 대항할 수 있다는 것을, 왜 말씀하시는지 알 수 있게됩니. 우리는 복음의 보호를 받아야되며, 바로 그리스도의 보호를 받아야합니. 언제나 우리가 성경의 권위에서 멀리 떠나고 사람을 믿게될 때에, 사단이 우리를 올무에 빠질 수 있게 만드는 것니다.

이와 같이 사단의 올무에 빠진 자들에 대하여 디모데후서 226절에 말씀 하셨습니다.

 

저희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바 되어 그 뜻을 좇게 하실까 함이라 (딤후 2:26)

 

그러나 이 구절은 또한 사단의 올무에 빠진 사람들이 그 올무에서 빠져 나올 가능성에 대하여 말합니. 사단의 올무에서 빠져 나오는 유일한 길은, 참으로 구원을 받는 일니다.

이러한 사역에 대하여 디모데전서 41절에 다음과 같이 읽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딤전 4:1)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하여 이 사실을 경고하시며, 사단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들을 구원받지 못하도록 하지 못하며, 하나님께서 자기의 계획을 방해하지 못하게 하십니. 하나님의 신성(神聖)한 계획에 의하여, 세계에 복음을 선포하는 역할을 지교회가 하도록 관리하셨습니다. 사단은 계속 지교회 안에서 자기에게 속한, 의의 사자들을 파송(派送)하고 또 관리하도록 노력해온 것니다.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이와 같은 의의 사자에 대한 사실과 또 여러 가지 정보를 본다면, 많은 회중이 사단의 올무에 빠져있지만, 그들은 보기에 참 믿는자들과 같고, 우리의 눈으로는 이 회중 속에서 누가 곡식이고 또 누가 가라지인지를 가려낼 수가 없습니다. 사실상 이러한 이유 때문에 창설 후 약 20년 정도 밖에 되지 않던 사데(Sardis)교회를 이미 죽은 교회라고 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31절을 읽어봅시다.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3:1)

 

이 구절이 설명하는 것은 대개의 회중이 이미 사단의 통치아래 놓여져 있었음을 강조합니. 요한계시록 33-4절에서 더 자세한 설명을 하십니. 이 구절을 읽어봅시다.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 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3:3-4)

 

이 구절이 지적하는 것은 참으로 믿는자들 몇몇이 그 사데교회 안에 있었습니다. 비로써 우리는 사단이 어떻게 가라지를 심고 있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사단은 의()의 사자 같이 보이는 지도자들을 회중 안에 들어오게 하고, 그를 하나님의 말씀만이 아닌 사람의 교리를 가지고 회중을 가르치게 합니. 그러므로 그들은 그리스도의 주권이 아닌 사단의 주권을 가지고 교역자들을 회중에 들어오게 한 것니다.

서머나(Smyrna) 교회는 창설 후 겨우 몇십 년이 된 교회였었지만, 그들의 회당(집회 장소)은 사단이 소유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9절을 읽어봅시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2:9)

 

같은 방법으로 버가모(Pergamos) 교회에도 발람(구약시대에 한 사악한 거짓 선지자) 의 교리를 가지고 있었고, 또 니골라당의 교훈을 가르치고 있었으며, 그 교리를 하나님께서 극히 증오(憎惡)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요한계시록 213절에 다음과 같이 선언하셨습니다.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2:13)

 

버가모교회 회중은 사단이 통치하는 교회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아직도 개척 교회였던 젊은 교회를 사단이 이미 지배하고 있었던 것니다. 또한 요한계시록 224절에는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이 없노라 (2:24)

 

이 구절에서도 어떤 회중이 이미 사단의 올무에 빠져있었음을 말씀하십니.

이상과 같이 요한계시록 2장을 살펴본 결과는, 교회시대가 시작되고 20년도 되지 못 했을 때 사단이 이미 가라지를 심고 있었음을 우리는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데살로니가후서 2장에서 불법의 사람이 사단이며, 왜 그는 큰 환난기간에 성전 안 높은 자리에 앉아 있게 되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기록은 바로 사단이 지교회 회중을 지배한다는 사실니다. 큰 환난이 시작되면서 지교회의 회중을 그리스도께서 포기하신 것니다. 이 변화에 대하여 성경 여러 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중 한 예가 데살로니가후서 27절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길 때까지 하리라 (살후 2:7)

 

이 구절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사단을 제재(制裁)하시는 분은 바로 성령이시며, 그 중에서 옮길 때까지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교회시대를 통하여 성령께서 사단을 제재하시고, 성경의 말씀을 듣는 구원받을 자들이 복음을 듣는 일을 보장하십니. 사단은 이 계획을 방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큰 환난 초기에 성령을 교회로부터 옮기셨기 때문에, 사단을 제재하실 분이 아무도 없게되었습니다. 만일 참 믿는자들이 교회로부터 아직 출회를 당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더욱 그 교회에서 나오라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십니. 그렇기 때문에 사단은 전적으로 교회 안에서 자유롭게, 그의 마음대로 회중을 다스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G. 사단이 지역교회에서 왕 노릇 한다

 

지금 우리는 불법의 사람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 성전에 자리잡고 있는 것에 대하여 이해 할 수 있게되었습니다. 그들은 성경 전체가 그리고 성경만이 하나님의 말씀이다라는 하나님의 근본적인 교리가 아닌 다른 교리를 전개한 것니다. 그렇기도 하지만, 교회시대 동안에, 성경말씀이 회중 안에서 사용되었기 때문에, 어떤 회중의 회원이 구원을 받을 가능성이 있었던 것니다. 만일 회중을 사단이 다스리고 있었다 하더라도, 이 일은 가능하였습니. 그러나 일단 성령께서 회중으로부터 나오신 후에는 온 세상에 있는 모든 교회가 사단의 지배하에 있습니다. 교회 목사가 진실로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하게 설교한다고 할지라도 교회는 완전히 사단의 지배하에 있는 것니다.

우리가 지금 알게된 것은, 사단이 지교회에서 아주 활발하게 하나님을 대적하여 궤휼을 꾸미고 있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시대 전체를 통하여 사단은 지교회에서 크게 활동하면서 하나님을 대적하여 왔음을 비로써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감히 짐작을 하게됩니. 세상종말 심판날까지 하나님께서 곡식과 가라지를 가려내시는 사역의 결과로서, 오로지 가라지만을 교회 회중 속에 남게 하십니.

앞으로 이에 대한 매우 중요한 비유를 공부하기 위해서, 곡식과 가라지의 비유 속에 나오는 다른 여러 구절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3. 사람들이 잠잘 때에

 

 

A. 사람들이 잘 때에

 

곡식과 가라지의 비유 속에 우리가 매우 신중을 기하여 살펴 보아야할 구절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325절을 읽어봅시다.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13:25)

 

잘 때라고 한 시기는, 신약 교회시대에 사단이 곡식가운데 가라지 씨를 뿌리는 때를 하나님께서 지적하십니. 그렇다면 사람들이 잘 때를 어떻게 이해하여야 합니까?

성경 여러 곳에 잠자다라는 뜻이 죽음과 관련이 되어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나 위의 구절에서는 잘 때에 뜻이 죽음과 관계되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시기와 관련하여 쓰셨고, 사람들이 아직도 영적인 눈이 열리지 않은 상태를 말씀하십니. 이사야 2910-12절에 이에 대한 예가 있습니다.

 

대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신을 너희에게 부어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눈은 선지자요 너희 머리를 덮으셨음이니 머리는 선견자라 그러므로 모든 묵시가 너희에게는 마치 봉한 책의 말이라 그것을 유식한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대답하기를 봉하였으니 못하겠노라 할 것이요 또 무식한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대답하기를 나는 무식하다 할 것이니라 (29:10-12)

 

이 구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적 눈을 열어 주시지 않는 한 성경이 제시하는 계시를 볼 수 없음을 말하며, 책이 아직도 인봉(印封)이 되었다는 것은, 우리가 잠자고 있는 상태를 말씀하십니.

다니엘 818-19절을 읽어보면, 이 뜻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내게 말할 때에 내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어 깊이 잠들매 그가 나를 어루 만져서 일으켜 세우며 가로되 진노하시는 때가 마친 후에 될 일을 내가 네게 알게 하리니 이 이상은 정한 때 끝에 관한 일임이니라 (8: 18-19)

 

여기서도 다니엘에게 계시를 주시기 전에 다니엘이 깊이 잠이 들어 있었음을 말합니.

다니엘 129절에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는 줄 압니다.

 

그가 가로되 다니엘아 갈찌어다 대저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할 것임이니라 (12:9)

 

다른 말로 하면, 인봉 한다고 하신 뜻은, 성경에 진리가 씌어져 있지만, 때가 되어야만 하나님께서 쓰신 그 뜻을 읽는 자들이 깨닫게 된다는 뜻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진리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시기에 가서 우리가 알도록 하십니.

잠잔다는 형용(形容)은 하나님 자신의 신성한 프로그램을 가리키실 때에도 사용하셨습니다. 시편 7865-66절을 읽어봅시다.

 

때에 주께서 자다가 깬자 같이, 포도주로 인하여 외치는 용사같이 일어나사 그 대적을 쳐 물리쳐서 길이 욕되게 하시고 (78:65-66)

 

그러므로 성경말씀 중에, 잠에서 깨어난다는 표현은, 여러 곳에서 하나님의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시기를 지적하여 말합니. 하나님께서 전체적인 프로그램을 성경 여러 곳에 기록해 놓으셨지만, 우리는 그 내용을 알 수가 없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잠을 깨우시고,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그 때까지 기다려야합니. 그 때에 비로소 우리의 영적인 눈이 열리고 하나님의 계획을 깨닫게 됩니.

그리고, 마태복음 25장에 신랑을 기다리는 열 처녀의 비유에서도 사용하셨습니다. 모두가 잠자고 있을 때 신랑이 온다는 호령이 들렸고, 그들은 모두 잠에서 깨어났습니. 이 비유에는 그들이 잠에서 깨어난 후에 발생한 사건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경우도 역시 교회시대를 지적하며, 열 처녀는 교회시대의 지교회를 대표하는 것이 분명하나, 그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때가 되면 우리의 영적 눈을 열어주시고, 하나님의 계획을 이해하도록 하십니.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많은 비유가 예수님의 재림과 세상의 마지막을 가르칩니.

그러므로 우리는 위에서 말한 열 처녀의 비유에서 놀라운 진리를 발견하게됩니. 전 교회시대를 통하여 교회 안에서 사단과 회중 사이에, 혹은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에,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음을 깨닫게 하지 않으셨으며, 사단이 지교회 회중을 대표하고 있었음을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니다. 그리스도의 사역을 생각할 때, 전 교회시대 동안에는 사단이 완전히 패배(敗北)를 당한 적()이었습니다.

 

 

B. 우리는 잠에서 깨어났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종말에 이르렀기 때문에 잠에서 깨어난 것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적인 눈을 열어, 지금까지 인봉 되어있던 일에 대하여 알도록 가르쳐주십니. 우리는 아주 거대한 진리를 알게되며, 그것은 바로 사단이 전 교회시대를 통하여 교회 회중 안에서 큰 전쟁을 버리고 있음을 발견한 것니다.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서 배운 것 같이 사단의 공격은 치열하며, 그는 가라지 씨를 교회마다 뿌려온 것니다. 사단은 광명의 천사로 혹은, 의의 사자로 군림했기 때문에, 점차적으로 온 교회를 점령할 수 있게되었든 것입니다.

교회는 이 사단의 활동을 알아보지 못했으며, 이 같은 치열한 사단의 공격도 알아보지를 못했습니다. 그들은 사단을 단순한 대적으로만 생각해 왔던 것니다. 사실상 마틴 루터는 사단이 강력한 힘을 가지고 참 믿는자들을 공격하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마틴 루터나 또 어떤 신학자들도 지금 우리가 보는 것은 보지 못했던 것니다.

사실상, 신학자들이 사단의 교회에 대한 이 치열한 공격을 볼 수 있었다면, 굉장한 수라장을 자아냈을 것니다. 만일, 사단이 회중 속에 의()의 사자(使者)인 거짓 지도자들을 끌어드리는 것을 누구인가 보고 감독할 수 있었다면, 교회는 그 목사들과 장로들을 의심하고 신중하게 지켜보았을 것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실한 종들(곡식)이 이 무당들과 동시에 출회를 당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마태복음 1329절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13:29)

 

그렇기 때문에 곡식과 가라지는 교회시대의 종말까지 함께 남아 있게됩니. 이 사실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적인 눈을 뜨게 하시고 진리를 볼 수 있게 하심을 배웁니다.

우리가 기억해야할 한가지 사실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지 않은 사람은 결코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니다. 그러나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신사적이고, 도덕적이 아니라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성경이 아닌 또 다른 권위를 따르기 때문에, 그들이 거짓 복음을 믿는 것이지만, 그들 역시 아주 신사적인 사람들니다. 대개의 경우 거짓 교리를 믿는 교인들은 신사적이고, 도덕적이고, 정의를 따라가기 때문에, 그들의 외모로는 모두 하나님 왕국에 속한 것 같이 보입니다.

이 세상에는 오로지 두 가지의 영적 왕국이 존재합니. 그 하나는 하나님의 왕국이며, 이 왕국의 시민들은 참으로 구원받은 자들니다. 누구나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사단의 왕국에 속해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개인이 하나님의 구원을 받으면, 그 사람을 사단의 왕국으로부터 나오게 하시며, 또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되게 하십니.

 

 

C. 사단은 가라지 씨를 뿌리고 떠난다

 

교회시대를 통하여 사단이 가라지 씨를 온 지교회에 뿌렸음을 우리는 배워왔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즉각적으로 또 다른 질문이 생깁니다. 사단에게 가라지 씨를 뿌리는 자유가 주어졌다고 하지만, 그 심는 방법이 어떤 것인지 분명히 알 수 있습니까?

우선 인간의 본질과 욕망에 대하여 살펴봅시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자기의 형상을 닮아 창조하셨습니다. 성경이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의 법이 인간의 마음속에 새겨졌다고 가르칩니. 이것이 바로 모든 인간이 살인하는 것과, 도둑질하는 것과, 간음하는 것이 잘못된 것임을 본능적으로 아는 이유니다. 또한 인간은 결과적으로, 각자가 세상에 사는 동안 살아온 행실에 대하여, 언젠가는 하나님 앞에서 답변을 해야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본능적으로 인식하는 결과에서, 인간은 어떤 종교 활동을 할 욕망이 생기고, 그 활동을 통하여 신의 존재를 알고, 또 예배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역사를 통하여, 인류는 어떤 방법으로 신을 예배하는 의식(儀式)이 발전해 왔습니다. 어떤 경우 이 의식은 마치 불교와 같이 나무나 돌로 우상을 만들었고, 이슬람교나 또 다른 종교와 같이 인생문제의 해결책을 찾는다고 믿었으며, 몰몬교나 여호와의 증인 들은 성경을 지적하면서 자신들의 종교를 정의하였다. 더욱이 많은 사람들은 기독교인이 되면서 그들은 성경만이, 그리고 성경전체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어왔습니다.

사실상 많은 기도교인이 지교회의 교인이 된 이유는, 그들이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하심을 얻었기 때문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지교회의 교인이 된 것니다. 그것이 성경적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상적으로 말한다면, 구원받은 자들만이 교회의 교인이 되어야만 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각각 다른 이유로, (위에서 지적한 종파를 포함함)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기독교의 종교인이 되기를 선택합니.

그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가 아니라면, 그는 구원을 받지 못할 것니다. 그가 교회가 제정한 법을 잘 지키고, 세례를 받고, 신앙고백을 할 때, 그는 그 지교회에서 정의하는 구원받은 교인이 됩니.

더 나아가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각 개인에게 사회에서 특별한 능력을 주신 것을 봅니다. 어떤 개인은 음악적 재능을 또 어떤 이는 공학사가 될만한 자질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이러한 각 개인은 그들의 재능을 사용하여 자신의 큰 복지를 찾기 위해 노력할 것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종교에 가담하는 사람들 중에도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자질과 또 욕망이 있을 것니다. 그러므로 그는 신학자, 목사, 신부, 혹은 어떤 종교기관의 감독자가 되기를 바랄 것니다. 또한 성경만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 지교회 교인들 중에도 이러한 현상이 있고, 이와 같이 교회에 들어오는 남녀들은 권위 있는 지도자가 되기를 노력할 것니다.

하지만 이들이 구원받지 못한 경우, 교회의 지도자가 됨으로써 회중에게 이단의 교리를 가르치게됩니. 이러한 현상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에 이미 일어났던 일니다. 니골라당은 구원받지 못한 자이었음이 틀림없으며, 그는 이미 교회의 지도자로서 군림해 있었습니다. 이세벨은 구원받지 못한 여인으로 두아디라 교회의 지도자였습니. 인간의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이러한 자들의 상태를 발표한 것니다.

대개의 경우, 교회의 지도자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그들이 악한 마음을 가지고 나오지는 않습니다. 반면에 그들은 소유하고 있는 재능을 살려 볼 수 있는 장소가 바로 지교회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러한 목사나, 신학자들이 반드시 성경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직업이라기보다는 세상에서 말하는 직업을 말하기 쉽습니. 목사는 그리스도의 아주 겸손한 종이 되어 회중이 필요로 하는 영적인 양식을 겸손하게 제공할 수 있어야합니.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회중을 위하여 기도하는데 있어 그는 경건하고 겸손한 본을 회중에게 보여야합니.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지교회를 설립하실 때 그 교회가 하나님의 왕국을 대표하도록 세운 것니다.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거짓 종교인이 되는 것과 같이,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지교회에 들어와 설교를 하고, 또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키우고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찾을 것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지교회에 와서 교회가 세워놓은 법에 위배되는 교리를 가지고 회중을 설득하고, 변경시키려고 노력한다면, 그는 그 교회에서 출회(黜會)를 당 할 것이 명백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재능을 발휘시켜 보겠다고 교회에 들어온 사람과, 구원받지 못했으면서 교회의 교리를 충실하게 가르쳐 보겠다는 사람들에게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들은 다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며, 사단의 권력 아래 있기 때문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린도후서 1114-15절에서 읽는 바와 같이, 사단의 사자들이 의의 사자로 회중 속에 나타나는 것니다. 사단은 거짓의 아버지임을 기억하십시오. 그는 지교회에 머물기를 원하는, 구원받지 못한 자를 돕는 일에 최선을 다 할 것니다. 이 사람은 자기 생각에 그리스도를 섬기고 있다는 자신을 가지고 있을 것니다. 우리가 배운바, 곡식과 가라지를 분간할 수 없다는 점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교인은 이 사람이 구원받지 못한 것을 알 수 없습니다. 더욱이 그는 신사적이고, 도덕적인 사람으로 교회에서 사역하는데 있어 여러 가지 뛰어난 재능을 나타내기 때문에, 중요한 인물로 등장합니. 그러나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원받지 못한 이 사람은 이미 사단의 사자가 된 것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통치하에 있다 할지라도, 그가 구원받지 못한 자이기 때문에 그는 사단의 권력 아래 있는 것니다.

말할 것도 없이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사단의 사자(使者)들로서 지배를 받고 있는 것니다. 다시 말하면, 사단에게 통치하는 권력을 준 것니다.

 

 

D. 사단이 떠나다

 

마태복음 1325절에는, 사단이 가라지 씨를 뿌리고 나서 떠난다고 읽었습니다. 그가 떠나버린 것은 하나님께서 그 회중을 다스리시기 때문니다. 그러나 사단은 그리스도께 대항하는 그의 전략을 세웠습니. 그는 의의 사자를 회중 안에 들어오게 하는 일에 성공한 것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실은 이처럼 회중의 회원이 된 의의 사자(고후 11:13-15)는 구원의 참 뜻을 알지 못하고 있다는 점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 한 적이 없습니다. 그는 성경이 하나님의 권위이며, 교회에서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를 성경이 결정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성경에 위배되는 즉, 하나님의 말씀에 반대되는 교리를 쉽게 받아들이게 되며, 또 실천하게 됩니.

더욱이 목사나, 집사, 그리고 장로는 영적인 감독자로서 임명된 것니다. 영적으로 회중을 감독하는데 있어서 성경이 요구하는 바, 신경을 쓰지 않을 지도 모릅니. 그가 교회에서 받은 직책은, 지도자로서 자격을 말하며, 그가 동료 지도자들, 즉 장로와 집사를 선택하는 일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것니다. 이렇게 하여 시간이 경과되면서 더 많은 가라지가 회중 속에 지도자로서 등장하게 됩니.

동시에 교회교인이 되게 하는 과정도 이 지도자들의 영적인 상태가 반영됩니. 구원에 대하여 경험이 없는 많은 교인들이 교회가 정한 기본적인 규칙을 따라가는 한 그들은 진실로 가라지들을 구원을 받은 자들로 알게 됩니. 교회가 생각하는 구원을 받는 자들의 기본적인 규칙을 생각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젨젨 1). 깨끗한, 도덕적인 생활을 하며,

젨젨 2). 세례를 받아야하며,

젨젨 3). 신앙을 간증한 사람이며,

젨젨 4). 교회가 제정한 교리에 복종할 것을 약속한 자이며,

젨젨 5). 교회 출석을 잘해야한다.

 

위에서 말하는 어느 것도, 비록 이러한 교리가 성경적으로 지켜나간다 할 지라도, 어느 교인이 구원을 받은 것인지는 증명하지 못합니.

그러나 만일, 지도자가 구원을 받지 못한 자라면, 참으로 구원받은 자들을 교인으로 만들기는 힘들 것니다. 지도자 자신이 구원받은 경험이 없기 때문니다. 그러므로 위에 나열한 규칙이 회원 자격의 유일한 조건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폐단은, 참으로 겸손하게 성경진리에 대하여 관심을 가진 자들을 교회교인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할 것입.

지금 우리는 지교회가 겪어온 비참한 현상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한편, 참으로 구원을 받고 주님을 사랑하는 진정한 목사들은 하나님 앞에서 떨며 그를 경외하기 때문에, 각각의 교리에 대하여 깊이 살펴보고, 성경에 비추어 점검합니.

또 다른 한편, 구원받지는 못하고 직업적으로 설교하는 목사들은 그들의 설교가 그들 동료들로부터, 혹은 그가 속한 교단으로부터 얼마나 인정을 받는가 하는 것에 신경을 쓰기 때문에 그들은 교단이 제정(制定)한 신앙고백을 따릅니.

양떼를 거느리는 목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무서운 견책에 대하여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 견책은 바로, 이 시대에 내리시는 것니다. 에스겔 34장에 이 견책에 대하여 읽습니다. 너무도 무서운 어조로 하나님께서 견책하십니. 에스겔 342-6절을 읽어봅시다.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목자들을 쳐서 예언하라 그들 곧 목자들에게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자기만 먹이는 이스라엘 목자들은 화 있을찐저 목자들이 양의 무리를 먹이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냐 너희가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의 무리는 먹이지 아니하는도다 너희가 그 연약한 자를 강하게 아니하며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어 주지 아니하며 쫓긴 자를 돌아오게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고 다만 강포로 그것들을 다스렸도다 목자가 없으므로 그것들이 흩어지며 흩어져서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되었도다 내 양의 무리가 모든 산과 높은 멧부리에마다 유리되었고 내 양의 무리가 온 지면에 흩어졌으되 찾고 찾는 자가 없었도다 (34:2-6)

 

이 구절들이야말로 얼마나 무섭게 말씀하신 것입니까?

계속하여 사단이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계획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만일 구원받지 못한 자들(그들 자신이 구원받았다고 믿을지도 모른다)이 교회의 영적 지도자들로 임명된다면, 사단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왕국에 이르려는 사역을 효과적으로 방해할 수 있는 것니다.

 

 

E. 불법(不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다

 

비로소 우리는 데살로니가후서 27절을 이해하게 됩니. 이 구절을 읽어봅시다.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길 때까지 하리라 (살후 2:7)

 

교회시대에 사단이 교회 안에 가라지 씨를 뿌려 놓음으로 지교회를 공격한다는 가르침을, 참 믿는자들이나 혹은 어떤 사람들도 알지 못하던 일니다. 사실은 성경에 나타나는 어떤 진리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게 하실 때까지 신기한 비밀로 남아있게 됩니. 우리가 계속하여 배우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진리를 알게 하시는 시기는 하나님 자신의 시간표에 잘 정해져있습니다.

사단이 상징적으로 1,000(전 교회시대) 동안 결박을 당함에도 불구하고, 그가 곡식 속에 가라지의 씨를 뿌리면서, 교회에 도전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신기한 비밀로 남아있었습니다. 이 것을 교회들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7절에는 이러한 현상이 교회시대가 시작되면서 일어난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전 교회시대를 통하여 역대의 교회 지도자들이나, 또 다른 어떤 사람들도 이 사실을 깨닫지 못했던 것은, 하나님께서 비밀로 정하여 두셨기 때문니다.

 

교회 교인 중에서 사단의 통치아래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하여 아주 둔감합니다. 그들이 교회 교인이 될 때 교단이 요구하는 대로 따라가겠다고 선서한 것을 바로 실행하기 위하여 열심을 다하고 있을 것니다. 그러나 성경의 가르침을 살펴보겠다는, 마음속에서 울어나는 절박한 열심이 없습니다. 진리가 성경에 있다는 것을 알아 볼 관심이 전혀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을 받지 못한 상태이며, 이와 만찬가지로, 그들이 교회시대가 끝나고, 참 믿는자들은 지교회를 저버려야 한다는 가르침을 들을 때 그들의 반응은 여러 가지이며, 아주 무관심한 사람들로 시작하여, 분노를 참을 수 없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아직도 사단의 권위 아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정보를 듣고도 그들의 영혼이 불안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들의 영은 아직도 죽어 있기 때문에, 그들의 인격 속에는 하나님의 모든 계명에 순종하겠다는 욕구가 없습니다.

그러나, 회중 안에 있는 참 믿는자들은 교회와 또 많은 교파가 점점 변해 가는 것을 보고 마음을 불편해 합. 그들은 이러한 변화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게 될 것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 해답을 성경에서 찾아보기 시작합니. 많은 경우에 그들은 교회 회중을 떠나야하겠다는 결심이 생기거나, 그렇지 않으면, 난처한 질문을 너무도 많이 하기 때문에 교회에서 출회를 당할 것니다. 불행하게도, 가라지의 수는 곡식의 수를 월등하게 능가하기 때문에, 영적으로 이러한 변화를 걱정하고 염려하는 자들의 수는, 눈에 뜨이지 않을 정도로 너무도 적습니.

 

 

F. 현재 교회는 이스라엘과 병행된다

 

이러한 비참한 소식을 들을 때에 우리는 아주 우울해 질 것니다. 그러나 이 사건을 통하여 배우는 것은, 오늘날 지교회의 현상이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에서 일어났던 일과 병행함을 알게됩니. 이스라엘이 1,500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관리하도록 임명을 받았던 것니다. 세상의 어떤 민족도 이스라엘처럼,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일이 없습니다. 사실상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거룩한 사람들을 사용하시어 성령의 감동으로 성경을 쓰셨습니다. 그 다음에 메시아이신 우리 주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에서 탄생하셨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정하신 시간이 되면서, 성경의 관리자의 역할을 이스라엘 왕국으로부터 교회로 옮긴 것니다. 이 일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셨고 그 말은 대단히 듣기에 끔찍한 말씀니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 2327-29절과 33절에서 당시 종교적 지도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가로되 양을 채우라 (23:27-29)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23:33)

 

또 요한복음 843-45절에는 유대인에 대하여 가공할 말씀을 하신 것을 읽어봅시다.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줄 알지 못함이로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8:43-45)

 

우리는 바리세인들이 성전과 회당에서 성경을 가르치는 교사였음을 기억해야합니. 그리고 서기관들은 신학자들이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이스라엘 회중의 영적인 지도자들이었습니다. 바리세인들과 서기관들은 이스라엘회중의 대다수와 마찬가지로, 겉으로는 아주 거룩하고, 헌신적이고, 신사적이고, 도덕적이고, 의로운 하나님 왕국의 시민들로 보여졌습니다. 예수님을 배반한 유다도 다른 제자들과 똑 같이 보였지만, 예수님께서 그를 마귀(6:70)라고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의 나머지 11제자들이 가룟유다가 구원받지 못한 자 이었음을 알고 있었다는 기록을 찾을 수 없습니다.

불행하게도 오늘날도 지교회에서 이와 같은 현상이 재연되고 있습니다. 아주 의젓하고, 신사적이고, 도덕적이고, 정직한 사람들이 교회 회중의 목사이며, 장로이며, 또 집사들니다.

이 회중의 각 개인이 곡식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가라지입니까? 하는 아주 심각한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에 대하여 공부를 하고 있지만, 우리가 그것을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공부를 진행하면서 배우게 되는 것은, 신성한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지금 하나님께서 곡식과 가라지를 갈라놓으시고 있다는 것니다.

마침내 우리는 데살로니가후서 23절에서 말씀하신 바, 불법의 사람(사단)하나님의 성전에(교회)에 앉은것을 쉽게 깨닫게 됩니. 오랜 시일을 통하여 사단은 교회 안에 의의 일꾼(고후 11:15)이라고 불리는 사단 자신의 종들로 계속하여 채워왔기 때문에, 참으로 믿는자들은 출회를 당하고 있으며, 또 하나님께서 교회를 나오라고 명령하시기 때문에 회중에는 사단의 종들만 남아있게 됩니. 그리고 성령께서 더 이상 사단을 제재(制裁)하시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사단은 광명의 천사로서 회중을 다스리고 있는 것니다. 교회는 사데교회와 같이 되었으며, 몇몇 의 참 믿는자조차도 교회에서 발견할 수 없게될 것니다. 교회가 죽게된 것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