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이행자들:Promise Keepers(PK)

성실한 남성들의 '봄철에 경종을 울리는' 집회

-모순된 점에 대한 조사-

글쓴이: Richard Knolls, 옮긴이: 이대우

봄철에 경종을 울리는 집회

최근에 나는 어떤 행사에 참석을 격려하는 광고 쪽지를 받은 적이 있다. 그 행사는 약속 이행자들이 주최하는 '봄철에 경종을 울리는' 집회였다. 이 행사는 우리 집 근처인, 오레곤주 Lake Oswego에 있는 성모 마리아 성당에서 있었다. 그 프로그램을 보면 토요일 조찬 제공, 찬양예배, 예배시간, 비디오 상영, 그리고 선교활동의 요지 등이 적혀 있었다. 초빙 연사는 그 행사를 주최하는 카톨릭교회의 담당 교역자인 신부(神父)였다.

나는 카톨릭교회에서 자랐으며, 내가 30세가 되던 해에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그 카톨릭 교회를 나왔고, 성경을 믿는 모임에 들어와 우리 주님이시며,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지식으로 구원을 받고, 자라나고 있기 때문에 나는 이 광고 쪽지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제 약 26년이 지난 후, '근본적인 교리는 같고, 중요치 않은 것의 차이를 인정하지만, 카톨릭교회가 지금은 성경적이다'라고 하며, 또 '카톨릭교회와 신교는 사실상 그리스도 안에서 한 교회다'라는 얘기를 들었다. 이것이야말로 깜짝 놀라게 하는 얘기가 아닌가! 그 광고 쪽지에는 왜 경종을 울려야 하는지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봄철은 우리 나라 땅의 모든 것이 새롭게 되는 때이며, '남성들의 활동(the Movement of Men)'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지역사회의 인도자가 되며, 그리고 동료 남성들을 위하여 기도를 계속할 것이다. 하나님에게 속한 그리스도인인 약속 이행자들의 남성들이, 가족을 보살피는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또한 지역사회의 지도자로서, 서로 서로가 도와야 할 필요성을 지금처럼 느껴 본적이 없었다."

PK(약속 이행자) 선교의 실상

광고 쪽지는 계속하여 PK에 대하여 설명을 했다. 선교 목적에 대하여 말하기를 남성들이 그들이 사는 지역사회에 경건한 영향력을 주기 위하여 상호관계를 유대(紐帶)하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선교라고 했다. 그 광고에는 PK의 창시자(創始者)인 빌 맥카트니(Bill McCartney)가 대학의 풋볼 코우치(Football coach)였으며, 로마 카톨릭교회 출신이라는 얘기는 기록되지 않았다. 그는 그후 '포도원 활동(Vineyard Movement)'과 동맹을 맺었고, 그 결과 그는 PK 선교 방침에 대하여 암시를 받은 것이다. 사실 역사상 기독교의 복음주의파와 카리스메틱파와, 그리고 신교(新敎)와 카톨릭교 사이의 깊이 갈라진 사이에 다리를 놓은 기관이 바로 PK인 것이다. 심지어 몰몬교도들도 가담하도록 격려를 받고 있다.

그 PK 선전 쪽지는 또 말하기를 '기독교인은 우리가 약속을 이행할 결심을 가지고 그것을 이행할 때 성장한다. 그러한 약속들을 지킴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인도되며,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철저하게 변화시키실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우리의 힘으로 되는 어떠한 과정이 있어야함을 믿는다'라고 했다.

일곱 가지, PK의 약속들

그 쪽지는 약속 이행자들의 일곱 가지 약속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1. 약속 이행자는 예배에 참석하며 기도하며, 그리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기를 약속함.

2. 약속 이행자는 몇 사람의 다른 남성들과 절대로 필요한 관계를 맺으며, 그들이 형제로서 내가 약속을 지키는데 도움이 되도록 인도할 것을 약속함.

3. 약속 이행자는 영적이며, 도덕적이며, 윤리적이며, 또한 성 문제에 있어 결백한 생활을 약속함.

4. 약속 이행자는 결혼생활과 가정생활에 있어서, 가족을 사랑하고 보호하는 것을 성경적으로 든든하게 세울 것을 약속함.

5. 약속 이행자는 교회와 교역자의 사명을 존중하고 그것을 위하여 기도하며, 자신의 시간과 물질을 바쳐 협조할 것을 약속함.

6. 약속 이행자는 인종차별과 교파를 초월하여 성경적으로 통합하는 능력을 과시할 것을 약속함.

7. 약속 이행자는 크나 큰 계명과(막 12:30-31을 볼 것), 임무(마 28:14-20을 볼 것)에 복종하여 그가 약속한 지역사회에 영향을 줄 것을 약속함.

많은 진지한 그리스도인들은 약속 이행자들이 나타난 것과, 그들이 제시한 안건(案件)에 대하여 기뻐하고 있다. 이 일곱 가지 약속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으로 인정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나는 로마 카톨릭교회의 경험자로서, 약속 이행자들에게 아주 중요한 문제가 있음을 발견하였고, 그런 문제는 진지한 성경학도들이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이며, 그것이 우리에게 즉각적인 경종이 된다. 하나님의 사랑과, 그 사랑에 대한 진리와, 또한 로마 카톨릭의 내막을 잘 알고 있는 자신은 무엇인가 말을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입장에 서게 되었다.

PK의 일곱 가지 모순

약속 이행자들의 약속에 대한 간단한 제안이,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는 것과 상반되는 최소한 일곱 가지 경우를 나는 발견했다. 만일 이러한 모순들을 모든 약속 이행자들이 신실하게 생각한다면, 스치고 지나가거나, 숨겨 둘 수 없는 것들이다. 이러한 모순들은 다음과 같다;

1. 첫째 로마 카톨릭 교인이나 약속 이행자들을 '하나님의 사람들'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모순된 것이다. 성경이 정의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약속 이행자들이 제시하고 사용하는 것과 현저한 차이가 있다.

2. 성경이 가르치는 교리로써 통합을 바라본다는 말에는 모순이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교회의 교리가 사람들을 갈라놓고, 경험이나 감정에 의하여 사람들을 통합시켰다. 성경은 거짓 가르침에서 떠나고, 또 거짓을 가르치는 자들로부터 멀리하라고 하셨다.

3. 교회가 당면하는 사회적, 그리고 도덕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약속 이행자들이 중매(仲媒) 역할을 한다고 하지만, 그와는 상반(相反)되게 교회의 사명은 하나님께서 임명한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을 양성하는 기관으로 정하셨음을 하나님께서 선언하셨다.

4.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을 아무렇게나 해석하고 적용해도 되는 줄 알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아주 정밀하게 그 뜻을 정의한다.

5. 그리스도인이 성장하는 것이 약속을 만들고, 그 약속을 시행함으로써 이루어진다는 생각은 전혀 성경적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성장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보다 더 깨닫는 것이며, 그러므로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며, 그의 말씀을 습관적으로 순종하게 되는 것이다.

6. 약속 이행자들은, 마치 로마 카톨릭의 가르침과 같이, 구원에 도달하는데는 어떤 사람이 만든 과정이 있는 것으로 말을 하지만, 이것은 성경말씀과 모순이 된다.

7. 약속 이행자들이 '그리스도를 중심으로'라고 했지만, 성경이 가르치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는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것에 실패

여러 가지 모순된 점을 더 많이 지적할 수 있으나 이상의 일곱 가지 모순들만 가지고 내 비판을 제시하겠다. 우선 두 가지 사실을 염두에 두기 바란다. 정직하게 말해서 현대 교회의 아주 비참한 상태를 우리는 다 인정한다. 오늘날 교회의 남성들을 사랑 받을 만한 남편이며, 아이들을 잘 보호하는 아버지이며, 책임감 있는 시민이 되도록 양성하는 일에 교회는 무참히 실패를 한 것이다. 더욱 교회는 모든 회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다루는 일을 가르치지 못했다. 그러한 결과로 그리스도인들은 성숙해지지 못했으며, 갈 바를 모르고 이리저리 헤매며, 교회가 진리를 오류(誤謬)와 분간을 못하기 때문에, 새로운 것이 나올 때마다 그 뒤를 따라 다니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상태는 교회가 사단의 공격을 받을 때, 지극히 위험하며, 파수군으로서 경종을 울릴 수 있는 교인들을 찾기가 어렵게 된다.

사단은 이러한 교회의 상태를 보고 기뻐하고 있다. 사단은 속임수를 써서 교인들을 유혹하는 일을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결국은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마치 하와가 사단에게 속은 것처럼, 특히 반(半)쭘밖에 안되는 진리를 거짓과 섞었을 때 그럴 듯하여, 그 약속을 받아들일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단의 일군들도 자기를 의의 일군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다"(고후 11:14-15)라고 하셨다.

내가 제일 먼저 강조하고 싶은 것은 PK가 사용하는 '이름과 제목들이 기만적이다'라는 것이다. 두 가지의 예 만으로도 이 사실을 충분히 증명한다. 미국 민권 자유협회(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 ACLU)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여러분들 중 누가 인권자유에 대하여 이들과 상담할 가치가 있다고 믿겠는가? 그들이 말하는 인공적 가족계획(Planned Parenthood)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당신의 가족계획을 이러한 기관과 상담하겠는가? 독자의 대부분이 내가 지적하려는 요점을 쉽게 이해할 줄 안다. 이 협회는 안건을 은밀하게 사용하기 위하여 잘 알려진 단어들의 뜻을 교활하게 변경시켜 사용한다. 그렇다면 우리 영혼의 삶과 죽엄을 말하는 논쟁이라면 그 논쟁이 우리에게 얼마나 더 중대한 일이겠는가?

다음으로 강조할 것은, 우리에게는 성경만이 신앙의 지침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 자신의 생각으로는 사단의 교활함에 대항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잠언 3장 4-5절이 항상 그리스도인들이 걸어가는 길의 길잡이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옛날 사도시대의 베뢰아(Bereans)의 본을 (행 17:10-11) 따를 필요가 있다. 여러분에게 간곡히 부탁하는 것은 성경에 기록된 베뢰아와 같이 어디에 진리가 있는지를 분별하라는 것이다.

Lake Oswego에 있는 로마 카톨릭 성당에서 열린 '경종을 울리는' 집회

5월 18일 나는 그 '경종을 울리는' 집회에 참석했다. 이 행사를 주최한 카톨릭교회는 그 예배형식이 내가 알고 있던 그 이상으로 이교적(異敎的)인 우상숭배였다. 나는 어떤 이교도 신전(神殿)에 와 있는 것으로 느껴졌다. 헌금을 거둘 때, 소위 성인(聖人:saint)들의 동상들이, 교구(敎區) 카톨릭 신도들에 의하여 수많은 봉헌의 촛불을 켜서 조명되었다. 신도들의 좌석에는 예비된 인쇄물들이 사단의 속임수를 계속하여 선전하고 있었다. 개혁이라는 역사가 한가지 신화(神話)로써 존재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되었다. 어떻게 된 일로 그 많은 성도들이 생명을 바쳐야 했던 진리에 대한 논쟁들을 이렇게나 터무니없이, 그리고 재빨리 잊어버릴 수 있다는 말인가? 나를 더욱 당황하게 만든 것은, 이 '경종을 울리는' 집회에 신교(新敎) 목사들이 참석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슨 경종이 울렸겠는가? 이 사건이야말로 사단이 사람들을 끌어다 모은 집회가 아닌가!(살후 2:9-10)

내가 다시 한번 강조하는 것은, 로마 카톨릭의 내막을 속속들이 알고 있고, 전에 카톨릭교인이던 내가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는 말이다. 또한 로마 카톨릭주의의 가르침이, 신교인 기독교가 가르치는 성경적인 복음과 같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교역자들은 교역자로서의 자질이 없다는 것을, 사과할 필요도 없이 나는 말한다. 그럼에도 불고하고, 그 진지한 차이를 알기 원한다거나, 영적인 통합을 격려(激勵)한다거나, 혹은 두려워서 자신의 입장을 표시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의 성실함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약속 이행자들은 자칭 '성실한 남성들'이라고 한다.

첫번째 모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논쟁의 중심이 된다. 마틴 루터는 '교회가 흥하느냐 망하느냐 하는 것은 바로 이 논쟁에 달려 있다'라고 하였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강조하여 여러 번 말했다.

1.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 1:16)

2.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롬 3:21-22)

3.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 2:16)

4.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 2:8-9)

로마 카톨릭은 어떻게 대답을 하고 있는가? 그들이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으로써만 이루어진다고 믿고 있는가? 그들의 복음이 사도 바울이 말하는 복음과 같은 것인가? 그 복음에 대해서는 모든 사도들이 동일하게 가르치고 있다. 여러분과 같이 로마 카톨릭교회가 직접 말하는 것을 들어보자.

 

A. 제 7회 Trent협의회(Council of Trent, 1547)

# 1314 "만일 누구든지 말하기를 성례(聖禮)의 새로 된 법이 구원에 필요한 것이 아니며, 성례나 또 그 성례를 원하는 마음이 없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로만 의롭다 함을 받고 또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는 각 사람은 아나테마(anathema:파문)를 당할 것이다".

# 1318 "만일 누구든지 말하기를 성례의 새로 된 법을 따라 이 성례를 시행함으로써 하나님의 은혜가 부여되지 않는다고 하며, 하나님의 약속으로 얻는 믿음만으로 은혜를 얻는데 충분하다고 하는 자는 아나테마를 당할 것이다".

B. 카톨릭교회의 교리문답(1994)

# 1257 "로마 카톨릭교회는 영세를 받음으로써 영원한 복지에 들어간다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을 알지 못한다".

# 1263 "영세를 받음으로 모든 죄 즉 원죄와 개인이 범한 모든 죄의 사(赦)함을 받으며, 죄에 대한 형벌의 사함을 밭는다"

# 1477 "주님이신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간 모든 성인들의 기도와 선한 행실은 보화(寶貨)로서 간직되었고, 하나님의 은혜로 성인들의 일생은 거룩하게 만들어졌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 성인들은 그들 자신의 구원과 동시에 신비하게 육체가 통합이 될, 그들 형제의 구원을 이루는 데 협조한 것이다."

# 2021 "은혜라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양자가 되기 위하여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도록 도움을 주시는 것이다."

밤과 낮이 다른 것처럼, 로마교의 복음은 성경의 가르침과 분명하게 다르다. 한쪽은 사람을 종으로 만들고, 다른 한쪽은 사람에게 자 유함을 준다.

만일 로마교의 복음이 거짓 복음이면, 그들의 행사가 다 잘못되어 있는 것인데, 로마 카톨릭주의자들을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비참할 정도로 성경을 이해하지 못하고 잘못 해석하는 로마 카톨릭을 '하나님의 사람들'로 부른다는 것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쓴 편지에서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도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 3:16)고 하였다. '하나님의 사람'은 성경 말씀을 깨닫는 사람이며, 또한 거짓 복음에 대하여 논박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또한 순종하는 사람이다.

카톨릭교도들에게 로마 카톨릭의 전통은 성경과 동등한 권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가 쓰는 이 메시지를 받아 들이기가 참으로 힘들 것이다. 그러나 성경을 제쳐놓고 사람의 생각을 가르치는 일은 이단(異端)들에게 흔히 있는 일이다. 성경은 이같은 가르침이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다고 할 뿐 아니라, 제한된 사람의 경험이나 감정으로 가르치는 것을 성경말씀과 대처할 수 없음을 또한 가르친다. 사도 바울은 이 일에 대하여 단도직입(單刀直入)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8). 로마 카톨릭은 성경을 믿는 신도를 파문에 처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로마 카톨릭을 저주하신다.

두번째 모순: 약속 이행자들은 성경적이 아닌 것의 통합을 강조한다.

약속 이행자들은 로마 카톨릭과 몰몬교와 또한 누구라도 그들이 섬기는 신의 이름이 '그리스도'로 되어 있으면 함께 통합할 의향이 있다고 한다. 약속 이행자들이 로마 카톨릭과 몰몬교를 받아들이는 것이 잘못된 것과 같이, 그들의 복음도 잘못되어 있으니, 또 그들이 무엇을 바로 생각할 수 있겠는가? 혹 어떤 사람이 참으로 착한 남편이며, 아이들을 잘 돌보는 아버지이며, 또 지역사회의 지도자가 된다 하더라도, 그가 거듭난 사람이 아니면, 어떤 훌륭한 행동도 영생을 얻는데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것을 종합해 보면, 결국 사람들의 노력은 지역사회에서 좀 잘 살아 보자는 계획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은 그러한 믿음의 결말이 어떠한 것인지 잘 알고 있다.

약속 이행자들의 생각과는 정반대로, 성경은 '거짓 가르침에서 떠나며 또 그러한 무리들과는 가까이 하지 말라고 한다(고후 6:14-18, 요이 9-11, 엡 5:6-11).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살후 1:7-8)라고 하셨다. 로마 카톨릭과 약속 이행자들은 복음의 진리는 제쳐놓고, 눈에 보이는 통합을 원한다. 교회가 가르치는 복음이 그리스도의 복음일 때, 그 교회들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으로 통합이 되어 있음을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가르친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이 통합이 되어 있는 교회를 계속하여 유지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며, 우리의 힘으로 새로운 통합을 이루는 것이 아니다.

세번째 모순: 약속 이행자들이 병들어 있는 교회의 만병통치약의 역할을 하는 줄 알고 있다.

약속 이행자들이 선언한 바 그 내용을 다시 한번 적어보자.

"약속 이행자들의 남성들이 가족들을 보살피는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또한 지역사회 지도자로서, 도와야 할 필요성을 지금처럼 느껴 본 적이 없었다."

약속 이행자들은 하나님께서 지역 교회에 주신 사명과 상반되는 것을 구상(構想)하며, 특히 안수를 받은 교회의 장로직을 알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건설하시기 위하여 교회의 장로와 집사들을 임명하셨다. 약속 이행자들은 제 5항에서, 교회를 생각하고 각자가 교회 교역자를 돕는다고 한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교회를 돕는다기보다는, 교회를 사실상 지배한다는 것이다. 마치 카리스마파가 그러한 것 같이, 비 성경적인 자료들을 사용하여 주제넘게 나서며, 지방 교회에 해(害)가 되는 일을 한다. 사실상 먼지가 가라앉은 후에 그 실상을 내려다본다면, 결국은 신교(新敎) 교회를 카톨릭의 악수(惡手) 속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만일 사실을 여러분이 의심한다면 제 2회 교황청 협의회(Vatican Council II)의 '범 종교에 대한 교령' (Decree of Ecumenism)을 읽어 보라.

'범 종교적 활동을 통하여 점차적으로 교회 조직상 다른 교우간의 교제(交際)의 장애를 극복하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모일 것이며, 성체성사(聖體聖事)를 함께 거행할 것이며, 이렇게 함으로써 처음부터 세워진 하나밖에 없는 그리스도의 교회로 통합할 것이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이러한 통합만이 카톨릭교회가 존속하는 길이며, 또한 교회가 상실할 수 없는 견해이며, 마지막 때가 올 때까지 우리가 믿는 것은 계속될 것이다.'

약속 이행자들은 이와 같은 로마 카톨릭이 목적을 달성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는 것으로 본다. 놀라운 것은 이 카톨릭의 협의회가 근 100년을 통하여 회의 때마다, 앞으로 올 사단이 조정할 세계적인 교회에 대하여 예언적으로 가르친 것을, 지금에 와서 적극적으로 통합을 시키겠다고 나오는 것이다. 무엇이 180도 전환을 가져왔다는 말인가? 하나님의 말씀이 변했을 이가 없고, 하나님께서 변하실 수는 없다. 약속 이행자들과 로마 카톨릭이 그들의 안건(案件)인 '통합'을 가르치겠다고 나서는 것은, 우리 모두를 옛적 로마 카톨릭으로 돌아가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권력자가 부패되는 것이며, 절대적으로 타락하는 것이다. 교회 역사는 이러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의 명령은 지방 교회가 '가르치는 책임을 가진 장로'와 '시무 하는 장로'로써 교인을 보살펴 주도록 되어 있다. 약속 이행자들의 입장은 성경 말씀과 상반이 된다.

네번째 모순; 성경이 자주 사용하는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이 성경에는 믿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을 분간하기 위하여 사용되었으나, 로마 카톨릭교는 이것을 같은 뜻으로 해석하고 있지 않다.

이 경우는 진지한 그리스도인들간에도 논의가 될 것이다. 이 논제가 '기본적인 교리에 대한 것이 아니다'라고 할 수 없는 이유가, '그리스도 밖에'라는 뜻이 성경에서 '구원을 잃은 상태'를 가리키기 때문이다(롬 8:9).

이 일에 대하여 성경의 진리는 에베소서 제 1장과 2장에 상세한 설명이 되어 있다. 제 1장 3-12절에는 우리의 영혼이 천국을 바라보게 하며, 하나님께서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에 우리를 미리 예정하셨고, 선택하셨으며, 우리를 양자로 삼으신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어 있다. 이 구절들은 피를 흘려 우리의 죄를 구속하신 성자(聖子) 예수님께 계속하여 영광을 돌릴 것을 가르치며, 우리의 모든 죄를 완전히 용서하실 뿐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창조에 대한 그의 뜻을 알게 하신다고 약속하셨다.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께서 사랑으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리고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것이라고 하셨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홀로 하시는 것이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1:13-14)고 하셨다. 그와는 반대로 로마 카톨릭은 영세를 받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친다. 또 로마 카톨릭은 신부가 영아에게 영세를 베풀음으로써 기적이 일어나게 한다는 것을 주저함 없이 가르친다. 즉 말하기를, 영세를 주는 물 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채워져 그것으로 아이에게 기적을 이루도록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아이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신앙을 행사하지 못하고, 나이가 들어야 비로소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러므로 로마 카톨릭은 구원의 역사(役事)를 하나님의 손에서 빼앗아 버리려 하며, 그 구원의 역사를 신부(神父)의 손에 넘겨주려고 한다. 그러한 가르침은 결국 카톨릭 교도들이 구원을 받는데는 신부들이 기본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이 구원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완전히 정반대가 된다. 성경은 인간의 구원은 언제나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열어 복음을 듣게 하시고,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이게 되어 있다(행 16:14).

다섯번째 모순; 약속 이행자들은 '그리스도인의 성장'이 내가 약속을 맺음으로 시작한다고 하나, 성경은 우리에게 주신 그리스도의 약속을 믿고 의지함으로써 우리가 자란다고 가르친다.

만일 약속 이행자들의 말대로 "우리가 지키기로 결심하고---약속을 시행함으로 우리가 자란다면 우리는 다 그 약속을 지키는데 실패할 경향이 있지 않은가? 로마서 제 7장 14절-25절은 약속 이행자들의 방법을 완전히 전복시키고 부정한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께서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1-32)고 하셨다. 또한 사도 베드로는 말하기를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 2:2)고 하였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하기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 3:16-17)고 하였다. 이러한 가르침은 또한 구약의 가르침이다. 시편 19편의 다윗의 말을 들어보자.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蘇醒)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7절)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8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9절)

금 곧 많은 정금(精金)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10절)

또 주의 종이 이로 경계를 받고 이를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11절)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12절)

또 주의 종으로 고범죄(故犯罪)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13절)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悅納)되기를 원하나이다(14절)

카톨릭교회 협의회는 약속 이행자들에게 그리스도인의 성장이 성경의 가르침과는 다르다는 것을 믿게하는 것이다. 여러분은 누구를 믿겠는가?

골로새서 2장 8절에 우리에게 주시는 분명한 명령이 있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擄掠)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遺傳)과 세상의 초등 학문(初等學問)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고 하셨다.

여섯번째 모순; 약속 이행자들은 사람이 구원을 이루게 한다는, 로마 카톨릭이 믿고 있는 구원의 교리를 받아들이고 있으나, 성경 말씀과는 상반(相反)된다.

약속 이행자들은 "그리스도인의 성장이 어떠한 약속을 만듦으로써 시작되며, 그것을 시행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인도된다"고 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구원을 이루게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약속 이행자들은 로마 카톨릭의 구원 계획을 받아 들임으로, 사실상 그들은 평생을 통하여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로마교의 구원 계획은 일곱 가지 성례를 통하여 단계적으로, 또한 사람의 노력으로 성취한다고 믿는고로, 하나님께서 제공하시는 확실한 구원에 대한 은혜의 기쁜 소식을 신도들에게 말하지 않는다.

약속 이행자들이 로마 카톨릭의 구원에 대한 개념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들의 구원의 개념은 약속을 만듦으로써 시작이 되고, 인간의 노력으로 구원을 성취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으로 신도들이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인도된다고 한다. 로마교의 가르침과 조금도 다른 점이 없지 않는가! 두 가지 교리가 다 같이 사람이 시작을 하고, 또한 그들은 이 세상에서 영혼의 순례(巡禮)길을 홀로 걸어가야 한다. 물론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이 자신들을 쓸모 있게 해 주시는 것이라고는 한다. 이 생각도 카톨릭의 것이며, 새로 만든 카톨릭의 신앙문답을 보면 분명하다. 하나님의 역할을 전적으로 수동적으로 되어 있다. 그러한 생각은 성경적이 아니다. 우리를 의롭다고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며, 우리가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되기 이전에 반드시 그렇게 하신다고 성경은 가르친다.

로마교의 복음이 잘못되어 있는 것처럼, 약속 이행자들의 복음이 잘못되어 있다. 우리가 공의로우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서 복음을 받아들인다면, 이것이 우리가 약속을 지키기 때문에 받는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그 약속이 지금 살아 계시는 우리의 주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아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가? 로마 카톨릭은 아직도 한 십자가가 있기는 하나, 그것은 Lake Oswego의 성모 마리아 카톨릭교 성당과, 또한 온 세상에 퍼져 있는 카톨릭교 성당을 묘사한 것이다. 고린도전서 15장은 이러한 일치하지 않는 이유를 직접적으로 말씀하시며, 진리에서 떠나가고 있는 사람들의 심각한 문제에 대한 경고를 하신다.

"형제들이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고전 15:1-4)

또한 갈라디아서 3장 2-5절에 이 논제(論題)에 대한 적절한 기록이 있다.

일곱번째 모순; 약속 이행자들은 일반적인 교회 조직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를 중심으로'라는 고백을 사용한다. 그러나 진리는 우리가 고백함으로써 찾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순종하는 행동에서 그 진리를 발견하게 된다.

예수님께서 지상에 계실 때 그를 따라 다니던 사람들에게 질문을 하신 적이 있다.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나의 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냐"(눅 6:46), 그리고,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 14:15)고 말씀하셨다.

다시 한번 약속 이행자들의 일곱 가지 모순된 점을 그들이 배포한 쪽지 속에서 살펴보자.

1. 참 복음을 거절하는 '하나님의 남성들'을 모집한다.

2. 참 교리에서 떠난 거짓된 가르침을 옹호한다.

3. 지방교회의 가르치고, 시무하는 장로들의 역할을 빼앗는다.

4. 성경의 말씀, 즉 참 뜻을 왜곡하여 잘못 사용한다.

5. 그리스도인의 성장을 비성경적으로 가르친다.

6. 거짓 구원 계획에 밀접한 관계를 맺고, 교제를 나누고 있다.

7. 아주 분명하게 되어 있는 그리스도의 명령에는 불복종하면서,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선교를 한다고 고백한다.

예수님께서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따른다"(요 10:11-18)고 하셨고, 그는 또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漲水)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柱礎)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마 7:15-27)

이 말씀보다 더 이상 무서운 경고는 없을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생각할 수는 없다. 우리의 선택은 분명하다. 영생에 이르는 길을 찾는 것 밖에 없을 것이다.

이 글을 시작하면서 '약속 이행자들'의 창시자(創始者)가 로마 카톨릭 신도라는 얘기를 했다. 제 2회 교황청 공의회는 '교회에 대한 법령 (Decree on the Church)'을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이 유일하고 거룩한 공의회는 공의회 자체가 성경과 교회 전통에 기초를 두고 있음을 선언하며, 공의회는 교회가 세상에서 순례하는 중 얻게 될 구원에 필요한 것을 가르친다. 구원의 길은 중매자이신 그리스도 한 분에게만 있다. 그는 그의 몸인 로마 카톨릭교회에 자신을 나타내시고 있다. 그리스도 자신이 우리에게 필요한 믿음과 영세를 특별하게 명령하셨다(막 16:16, 요 3:5참조). 그러므로 영세를 받음으로 사람들이 문을 거쳐 들어올 교회가 필요함을 분명히 하였다.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께서 필요로 하신 카톨릭교회를 알지 못하고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 그들이 들어올 것을 거절하거나, 들어와 교인으로 남아 있는 것이 구원을 받고, 못 받는 것을 결정하는 것이다."

로마교회는, 빌 매카티니가 거룩한 그의 모(母)교회에 대하여 통회(痛悔)를 하지 않는 한 그에게 절망적인 영원한 파문을 선언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로마의 교령(敎令)에 의하면 그는 어떠한 카톨릭교도와의 친교를 가지지 못하게 되어 있고, 파문을 받아야 한다. 어떻게 약속 이행자들과 로마 교회가 화합이 되어 일을 같이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들의 성실함이 이 통합에서 제시되었다는 말인가?

경종을 울리는 성경의 말씀

나는 이 글의 매듭을 성경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경종의 말로 맺기로 한다.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나나니 나타나지는 것마다 빛이니라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하셨느니라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엡 5:13-17)

부록: 'Take Heed' 복음 선교회 News Letter의 기사, '일선에서 온 소식',

1997년 10월호

약속 이행자들은 이전에 로마와 연결이 되어 있었다.

1997년 7월 20일자 발행 '미국 로마 카톨릭' 일간지(日刊紙)는 '우리의 일요일 방문객'이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기사를 보도했다.

3월 '약속 이행자 이사회' 새로 이사회 회원이 된 마이크 티미스(Mike Timmis)를 환영하였다. Detroit지방의 법률가이며 실업인(實業人)인 티미스씨는 '카톨릭 카리스마 재생회(再生會)'의 오래 전 지도자였다. 금년에 개최된 여러 번의 PK 부흥회 집회에서 카톨릭교회의 이름난 부흥사(復興士) 짐 버루치(Jim Berlucchi)에게 청중의 관심을 집중시킨 적이 있다. 금년 초 PK는 그들의 신앙 고백서에, 카톨릭 신앙에 대하여 공격적이라고 생각되는 점들을 다 교정했다고 발표하였다. 우리 신문사를 방문한 PK창시자 빌 매카티니(Bill Mc- Cartney)는 말하기를, 그의 PK 시작이 로마 카톨릭의 전적 참가를 목적한 것이라고 하였다. 작년에 PK는 신앙고백서를 발표했으나 그 내용이 카톨릭을 제외한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창조되었지만 죄 때문에 하나님을 멀리 떠나게 되었다. 하나님과 멀리 떨어진 사이는, 오로지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가능하게 하시는 것을 믿는 믿음으로써만 우리를 하나님과 가깝게 하며,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어 있다. (신교의 신앙)

'믿음으로써만'이라는 신교의 개혁 교리를 금년 초에 PK는 개정하여, 카톨릭 교리에 위반이 되지 않도록 검열하였다. 그 개정의 내용인즉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은 인간이 하나님과 멀어지게 된 사이를 없게 하였다'라고 한 것이다.

이러한 PK 신앙 고백의 개정은, 구원 = 믿음+행동이라는 로마 카톨릭 복음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 신문 보도는 1995년 PK 상임 의원들이 '카톨릭 스투벤빌(Steubenville) 대학'의 총장과 부총장, 데일 쉘퍼(Dale Schlafer)와 글렌 와그너(Glenn Wagner)를 방문한 기록을 발표하였다. 그 방문을 주선한 카톨릭교인 죤 센전버거(John Sengenberger)는 '우리는 그분들을 초빙(招聘)하였고, 그들에게 우리 서점에 있는 어떤 책이라도 원하는 대로 가져가도록 권하였고, 총장 데일은 전권(set)의 '전례의식(典禮儀式)의 시간(the Liturgy of the Hour)'을 제공했다. 다음 해 그는 부총장 글렌의 의견대로 일상 기도문 속에 전례의식의 내용을 편집하였다고 나에게 전했다. 1996 성체성사(聖體聖事) 시간에 센전버거는 보고하기를 '내가 무릎을 꿇고, 엎드렸을 때, 내 옆에 부총장 글렌 와그너도 같은 것을 하고 있었다'라고 했다.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고후 6:15)

'Take Heed' 복음 선교회: Cecil Andrews, 11 Ballynahinch, Carryduff, Belfast 8DN, Northern Ireland Tel/Fax (01232) 813450

이대우 번역, 4/2/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