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선교사님과의 대화(對話)(II)

요한계시록 13장을 한 구절씩 읽어가며 공부하기 전에, 선교사님께서 지적한 몇 가지의견이 제 생각과 다른 점을 말하고자 합니다.

666은 한 사람의 숫자: 한글판 KJV를 사용해야 요한계시록 13장 16-18절을 바로 이해할 것이라고 했지만, 저는 그것과 정반대되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KJV의 번역이 잘못된 또 한가지 예를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13장 마지막 절에 "한 사람의 숫자이니"(KJV) 라고 번역한 "한 사람"에 대한 것입니다.

"사람"의 희랍어는 ԼՍՈՑՙՐՏՒ(anthropos:man)이며, Strong's 성구(聖句)사전(KJV)에 442와 444번으로 등록이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는 이 단어가 543번이 씌어졌으며, 예외 없이 "anthropos"의 뜻은 단수로 표시하면서도 복수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man"의 뜻이 "인류"라든가 "인간"의 뜻이지 어떠한 한 사람을 지적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 12장 35절에 "선한 사람(anthropos)은 마음에 쌓은 선한 보화에서 선한 것들을 내고, 악한 사람(anthropos)은 쌓은 악한 보화에서 악한 것들을 내느니라"(KJV)고 한 말씀에서 "선한 사람", "악한 사람"은 세상의 인류를 둘로 나누어서 말씀하신 것을 누가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희랍어 성경사전(Greek-English Lexicon)을 보더라도 성경에서 543번 사용된 'anthropos'의 뜻을 네 가지로 구분해서 다음과 같이 정의했습니다.

1. 복수형(複數形)으로 인류(人類)를 말함.

그 한 예로서 사도행전 17장 24절에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주이시니, 그 분은 사람(anthropos)의 손으로 만든 성전들에는 계시지 아니하시며"(KJV)

2. 성(性)의 구별 없이 인간(anthropos)을 지적함.

그 한 예로서 요한복음 16:21절에 "여인이 해산할 때면 그 때가 다가오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고 나면 사람(anthropos)이 세상에 태어난 기쁨 때문에 더 이상 그 고통을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KJV)

3. 부정관사를 쓰지 않고 어떠한 사람을 지적하며, 그 사람이 누구인가는 밝히려고 하는 것이 아닌 경우.

그 한 예로서 누가복음 10장 30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어떤 사람(anthropos)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KJV)

4. 가장 많이 사용된 경우로, 복수의 뜻 즉 사람들.

그 한 예로서는 요한복음 4장 28절에 "그러자 그 여인이 물동이를 버려 두고 성읍으로 들어가서 사람들(anthropos)에게 말하기를"(KJV)

요한계시록 13장 18절의 여러가지 번역을 비교한다면 KJV의 번역이 가장 미약함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for it is the number of a man"(KJV)

"---그것은 한 사람의 숫자이니---- (KJV)

"---for it is man's number(NIV)

"---그 수는 사람의 수니---"(한글 개역)

상식적으로 성경을 생각해 보더라도, 하나님께서 역사에 나타나는 어떠한 한 사람이나, 한 컴퓨터를 지적하여 짐승이라고 하신 것이 아니며, 인류 전체를 가리켜 짐승이라고 하신 것이 너무나도 명백합니다.

천정용교수의 죽음: 둘째로 선교사님과 저의 의견이 다른 점은, "천정용 교수의 죽음"에 대한 것입니다.

현대 교회와 교역자들이 여러 가지 양(量)을 가지고 복음전도의 성과를 과시(誇示)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몇 사람에게 내가 세례를 주었다"는 것으로 교역자의 관록(貫祿)을 과시하거나, 몇 천명(千名)이 모이는 교회의 담임 목사라는 것을 암암리에 자랑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러나 성경 말씀에 비추어 보면,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하나님의 뜻은 다른 것을 발견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달란트의 비유(마 25:14-30)에서 저는 배웁니다. 이 비유에서 달란트를 많이 받고 적게 받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다만 문제는 하나님의 재산(14절)인 달란트를 "땅을 파고 자기 주인의 돈을 숨겨 놓았더라"(18절,KJV)가 문제가 되어 있습니다. 많은 설교자들이 달란트를 "인간이 타고난 재주"라고 합니다마는 그것은 성경적이 아니며, 바른 해석은 "우리가 값 없이 받은 구원의 복음" 입니다. 땅을 파고 숨기는 행동은 복음을 지상에서 일어나는 일과 연결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짐승의 표인 666 컴퓨터 칩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것과, "컴퓨터 칩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이니 복음과는 상관이 없으니 받아도 좋다" 라고 한 것을 비교한다면 어느 편이 달란트를 땅에 숨기는 것이겠습니까? 많은 설교자들이 30절에 "너희는 그 쓸모 없는 종을 바깥 흑암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울며 이를 갈고 있으리라"(KJV)고 하신 말씀을 이해치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거짓 선지자들이 갈 지옥의 멸망이 아니겠습니까?

선교사님은 천교수의 죽은 원인을 "666이 어떠냐?" 라고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생명을 거두어 가셨다고 했는데, 저는 선교사님의 생각을 이해할 도리가 없습니다. 세상에 누가 하나님의 마음을 알겠습니까? 특히 "생명을 거두어 간 것이 거짓 복음을 전했기 때문이다" 라고 하신 것으로 들리니, 선교사님의 생각을 성경의 어느 구절로 설명하시겠습니까? 특히 예수님께서 누가 구원을 받았느니, 안 받았느니 하는 판단을 하지 말도록 경고하시지 않았습니까?

"판단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도 판단을 받지 않을 것이다. 너희가 판단하는 그 판단으로 너희도 판단 받을 것이며,---"(마 7:11-2,KJV). 이 말씀이야말로 우리의 구원이 그리스도에게서만 오는 것이니 "너희들은 내 복음을 전할 따름이니라"고 하신 뜻이 내포(內包)되어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 선교사님은 천교수가 죽었을 때 나이를 "젊은 40대 나이에"라고 하셨는데, 그 말이 "오래 살면서 복음을 전하는 교역자들이 하나님께서 귀히 쓰시는 사람들이라는 말입니까? 하나님의 백성이 이 세상에서 얼마 동안 살았는가 하는 것은 중요치 않다는 것이 성경적이라고 믿습니다. 예수님의 12 제자 중에도 야고보가 일직 순교를 당했고, 스데반도 순교를 당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으나, 그 분들의 이름이야말로 근 2000년간 빛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천교수가 순교를 당한 것이 아니지 않는가?" 라고 하실 것입니다. 저는 천교수를 순교자라고 믿습니다. 성경이 정의하는 순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믿는 자라고 할 수 있으니 "컴퓨터로 된 666의 표가 성경이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라고 믿고 세상을 떠난 그 분이 순교자가 아니겠습니까?

 

사도신경과 칼빈 중독자: 오늘은 마지막으로 "사도신경"과 "칼빈 중독증"에 대하여 저의 소관(所觀)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도신경을 외우거나 얘기할 때는 민수기 22, 23장의 미디안의 거짓 선지자 발라암(KJV)을 생각합니다. 이스라엘을 저주하려던 발라암이 이스라엘을 축복한 사실입니다. 사도신경이 저주를 받을 카톨릭에서 나왔으나, "사도신경"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자기의 백성을 축복하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도신경이 성경적이 아니다" 라고는 선교사님도 말하지 못하는 줄 압니다. 사도신경의 출처가 이단 교파라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까지 이단으로 취급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칼빈 중독"에 대해서는 우선 제 자신이 칼빈 중독에 걸리지 않은 것에 대하여 감사합니다. 그러나 만일 세상에 두 가지 중독이 있으며, 그 하나는 "칼빈 중독"이고 다른 하나는 "짐승의 표 666" 중독이라, 그 중 하나를 꼭 택해야 한다면 저는 칼빈 중독자가 되기를 자원(自願)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짐승의 표 666"에 중독된다는 것은, 그 복음사업이 알곡이 없는 쭉정이만 거두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한편, 칼빈의 가르침은 "천국에 영원히 가지고 갈 진리"가 넘쳐 흐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왜 숱한 사람들이 짐승의 표 666에 대하여 신경을 쓰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내 마음을 나 자신보다도 더 잘 아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를 끝까지 지키시고 인도하신다"는 신앙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너희는 몸은 죽일 수 있으나 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차라리 혼과 몸을 모두 지옥에서 멸하실 수 있는 그 분을 두려워하라"(마 10:28,KJV)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 나타날 어떠한 짐승이라도 하나님의 백성은 해(害)하지 못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스카랴(KJV) 2장 5절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주가 말하노니, 내가 예루살렘에게 사면에서 불의 성벽이 될 것이요, 그 성읍 가운데서 영광이 될 것이기 때문이라"(KJV)

세상에 어떤 짐승이, 하나님께서 직접 불의 성벽이 되시어 지키시는데, 나를 해(害)할 수 있겠습니까?

이대우 드림, 6/7/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