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해석의 바른 방법(Hermeneutics)

1.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가?

성경말씀을 근거로 한 신앙간증과 신앙고백을 공부하기 전에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지식의 토대가 어떠한지 점검해야 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지금 말하는 지식이란 학문의 경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심령이 사모하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흔히 말하는 오복[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을 주시는 하나님으로 알고 있다면 그러한 하나님에 대하여 성경은 결코 일언반구(一言半句)의 도움도 주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초자연적인 기사와 이적의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을 찾는다면 성경은 그러한 사람들의 생각을 혼돈만 시킬 것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금식하고 철야기도함으로 자기의 소원을 들어 주시는 하나님을 찾는다면 성경은 큰 도움을 주지 못할 것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내 의지로 그리스도께 도달하며, 구원을 받는다고 믿는다면 성경은 사람의 의지는 악할 뿐임을 가르칠 것입니다.

 

가장 효과적인 성경공부는 하나님을 절대자로 믿는 믿음에서 시작합니다. 절대자는 그의 계획이 완벽하고 정밀하고 또 확실하기 때문에 그 절대자의 말을 겸손한 마음으로 듣는 일만이 가장 효과적인 공부가 되는 것입니다. 듣는다는 뜻은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생각을 우선 부정하는 일입니다. 사전이 정의하는 단어들의 뜻 까지도 부정하고 오직 성경이 정의하는 단어의 뜻을 찾는 것이 절대자 앞에 나아와서 겸손하게 듣는 과정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가?' 하는 질문에 정직한 답변을 먼저 해야 합니다. 대개의 기독교인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라고 쉽게 선언합니다. 성경에 씌어진 모든 단어도 하나님께서 선정하셨기 때문에 그 단어의 정의까지도 성경에서 찾아야 한다는 신앙을 갖기 바랍니다. 성경이 우리 신앙의 참고서가 된다고 믿는 정도에 머물러서는 안되는 줄 압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말씀하시는 유일한 방법이며 완전한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믿지 않고서는 성경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성경을 깊이 공부할수록 성경만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게 되겠지만 세상에 일어나는 사건들의 통계를 가지고도 하나님의 역사(役事)의 일면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이 약 2000의 방언으로 번역된 기록이 있으며, 성경이 출판된 권수를 생각한다면 세계의 인구와 대등한 권수가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고는 이렇게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마지막 심판날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했다는 변명을 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2. 성경은 어려운 책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쉬운 책이 아닙니다. 마치 우주의 신비한 것을 수천년 동안 인간들이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 오다가 마침내 은하계(galaxy)가 엄청나게 큰 사실을 발견한 것과 같이 성경에 대해서도 수천년을 수 많은 학자들이 그들의 일생을 바쳐 공부하면서 하나님의 오묘한 구원계획을 마침내 알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십여년전 San Diego에 있는 우주 박물관을 방문한 생각이 납니다. 성좌(星座)에 대한 영화를 보면서 배운 사실이 있습니다. 20세기의 초반까지 우주의 중심이 지구가 속해 있는 태양계이며, 수억만이 되는 은하계와 성좌들이 이 태양계를 중심으로 하여 돌고 있다고 믿어 오다가, 20세기 중반에 와서 발견한 것은 이 엄청나게 큰 우주가 돌고는 있지만 그 회전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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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크고 오묘한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우리는 믿고 섬기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쓰신 글이 성경이라고 할 때 그 말씀의 오묘함과 또 하나님께서 이 책에 쓰신 계획은 너무도 넓고 깊기 때문에 다 알 수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점이 있습니다. 신명기 29장 29절 말씀이 설명하는 진리 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기 전에 인간의 구원계획을 다 말씀하신 책이 성경입니다. 그 계획을 우리가 찾을 것을 명령하셨고 또 우리에게 알게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들어도 알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유는 인간이 죄 안에서 태어났으므로 심령의 눈이 어두워졌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의의 옷을 우리에게 입히실 때(거듭날 때) 비로소 깨닫게 되며 그 깨닫는 정도도 사람들의 개성과 환경과 또 필요에 따라서 각각 다름을 성경은 우리에게 말해 줍니다(요 14:21, 빌 3:15).

3. 성경의 역사적 배경

이러한 인간의 개성과 시대의 환경을 이용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책이 성경이라고 믿을 때, 성경에 씌어진 역사적인 배경을 이해하는 것은 성경을 바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가령, 우리가 즐겨 읽는 시편 23편을 사무엘 상하에서 다윗의 일생을 배운 다음에 다시 읽으면,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구원의 길로 인도되는 과정을 더 분명하게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신 후 사도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던 때까지의 역사적인 기록을 우선 읽어 보는 것도 매우 유익한 것입니다.

4. 기독교 역사와 성경해석

기독교역사를 읽으면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이 수 없이 많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방법을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성경을 철학, 종교, 문학 혹은 역사학의 자료로만 보는 방법이며, 또 다른 방법은 하나님께서 직접 쓰신 글이라고 믿기 때문에 그 영적인 뜻을 찾는 방법입니다. 종교개혁의 선두자 였던 루터는 "성경을 읽을 때 어떠한 구절에서도 그리스도를 찾기를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성경 해석을 이방의 종교와 철학과 비교하여 해석하려는 경향이 많이 있었습니다. 소위 유신(有神)철학의 근원도 성경이 나오기 전에 있던 철학에 근원을 두며 성경을 근거로 한 유신철학자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가톨릭교리가 복잡하게 나열한 일곱가지 예식(Sacraments)을 보더라도, 성경을 토대로 했다기보다는 이방종교의 예식을 따랐다고 보게 됩니다. 가톨릭교리가 성경에 근거되어 있다는 주장이 근본적으로 거짓말임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은 트리엔트 공의회(the Council of Trent)가 선언하기를 "성경해석은 교회의 유례(tradition)와 조화가 되어야 한다"라고 했으며, 그 설명을 (1) 교회유례의 권위는 유지되어야 하며, (2) 교회가 번역한 불가타(Vulgate) 성경에 권위를 두며, (3) 교회(교황)에게 권한이 있음을 재확인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은 가톨릭교회에 국한된 것이 아니며, 개신교의 역사를 더듬어 올라갈 때 수 많은 성경 해석법을 읽을 수 있는 것이 바로 그 진상입니다. 그들 중에는 성경 해석에 인간의 이성(理性:Rationalism)을 주장하기도 하며, 자유주의(自由主義) 신학자들은 성경의 신비성을 부정함으로 "성경의 저자가 하나님 자신이다"라는 근본적인 진리를 보는데는 소경이 되고 말았습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 성경학자라 할지라도 성경 해석을 인간의 이성과 학문으로 치중할 때 하나님께서 목적하신 결론적인 해석을 할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5. 성경의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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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할 사실은 역대의 신학자와 교회 지도자들 중에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씌어졌음"을 믿고 전해 왔다는 사실입니다. 지금에 와서도 우리가 겸손한 신앙으로 성경을 대할 때 이러한 신학자나 지도자들의 같은 결론으로 도달한다는 사실입니다.

a. 하나님의 감동으로 말하는 성경 구절들

성경은 직접적이고 단순한 말로 선지자들이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음을 말합니다(신 18:18, 출 7:1-2, 렘 1:9, 벧후 1:21).

또한 하나님의 영이 선지자들에게 임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사 8:11, 렘 15:17, 겔 1:3, 3:27, 37:1).

그리고 선지자들이 그 말씀을 전할 때 그 선지자들의 양심이 하나님의 말씀을 말함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사 10:24),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왕하 7:1), "이스라엘 산들아 주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겔 36:4)

그런가 하면 누차에 걸쳐 여러 성경 구절에서 선지자들 자신이 하나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사 3:1-4, 렘 5:7, 호 6:4 욜 2:25, 암 5:21).

신약성경에는 그리스도께서 직접 말씀하시기를 성령께서 모든 것을 가르치신다(요 14:26)고 말씀하셨고, 사도 바울의 간증도 자기가 말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말했고(살전 2:13), 요한도 사도들이 전하는 말들이 "하나님의 증거"임을 말했습니다(요일 5:9-12).

b. 성경은 감동으로 씌어졌음

신약성경의 저자들은 구약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씌어졌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롬 9:17, 눅 24:27). 또한 어떤 말씀이 성경에 기록되었음을 지적한 것은 (롬 1:2, 딤후 3:15, 롬 3:2) 구약성경의 모든 기록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강조하는 신앙고백이라고 믿게 됩니다.

그런가 하면 신약성경에서 구약성경의 구절들을 인용했다는 사실은 하나님과 성경을 대변자로 내 세우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대속자 구주가 되심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또 믿게 됩니다(히 1:5-13, 롬 9:17).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인용된 부분만을 말한것은 아니며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음"(딤후 3:16)을 우리는 배우게 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감동은 인간인 성경 저자가 연구하고 생각했던 것이 아님을 강조하며(벧후 1:19-21), 성령께서 하나님의 지혜를 주셨기 때문에 성경이 씌어졌음을(고전 2:7-13) 또한 강조합니다.

c. 성경의 통일성과 다양성 (Diversity)

이와같이 성경을 쓰고 편집하는 과정을 하나님께서 직접 하셨다는 증거를 성경구절에서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약 1600년간에 걸쳐 40여 저자로 씌어진 성경이 한가지의 결론 즉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구속하시는 역사(役事)"를 설명하고 있음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성경의 유일한 저자 성령께서 성경을 완성하는 역사에 있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주관하셨음을 믿게 합니다.

이 말씀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방법은 첫째, 기존하는 성경 해석에 의존하지 않는 일입니다. 반면 독자 자신이 그 문장의 문맥을 통하여 성경에 기록된 목적을 묵상하며, 영적인 뜻을 발견하고자 노력해야 할 것이며, 또 예언하신 말씀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찾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우리가 시인해야 할 사실은 성경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번역자의 의견이 개재(介在)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가지 번역을 비교해 보는 것도 좋은 일이며, - 3 -

콘코단스(Concordance)와 인터리니야(행간:Interlinear) 성경을 성경공부에 사용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로 되어 있습니다. 성경의 영문번역을 잘 비교한 *책이 나와 있습니다. ( *Unholy Hands on the Bible, by Jay P. Green, Sr., Sovereign Grace Trust Fund.)

성경의 다양성에 대하여 생각한다면, 구약에서도 그리스도의 오심과 우리의 죄사하심을 약속하고 예언하였고, 신약은 그 약속의 성취됨과,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또 부활하심이 우리에게 은혜로 주시는 영원한 소망인 것을 배우게 됩니다.

이러한 결론적인 목적과 사실이 역사적인 기록과, 잠언과, 예언서와, 시편과, 편지를 통하여 일괄적으로 제시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6. 성경의 특성

성경은 범인(凡人)을 위하여 씌어졌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선 성경의 저자들이 어부(漁夫)나 농부(農夫)로부터 시작하여, 대 학자였던 사도 바울이나, 애굽의 왕실에서 자라난 귀족인 모세와 같이 특수한 사람들로 구성되었지만, 독자의 대상이 이스라엘의 백성이며, 신약시대의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점은 성경이 아주 쉽게 씌어졌음(문법과 문맥상)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호소하는 간절한 기도이며(시 9:13, 4:6, 44:24), 자연을 노래하며 하나님께 찬양하는 시편이며(시 19:2-3, 96:12, 98:8, 사 55:12, 롬 8:19-22), 우리 구원의 여행길을 비유로 설명하는 이스라엘의 역사인 재미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책이므로 중요한 말씀들은 반복함으로써 그 뜻을 분명하게 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으며(사 28:13), 수 많은 이야기들이 비유로 되어 있음을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칩니다(시 78:2, 겔 17:2, 막 4:34). 이 비유들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설명한다고 믿을 수 있습니다.

7. 교리를 배경으로 한 성경 해석

성경을 역사적인 고찰과 심리학적인 배경으로 해석하려고 할 때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중요한 요소들을 상실할 염려가 있습니다.

(가).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나). 성경책들이 각각의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성경 전체에 융합된 한 지체이다.

(다). 구약과 신약 성경은 철저한 상호간의 유대와 조화를 가지고 있다.

(라).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학문이나 사람의 감정으로 표현할 수 없는 특이한 기록이 있다.

바른 성경 해석을 위해서는 학문과 심리학적인 생각에서 멀리 떠나야 하며, 모든 성경책들은 각각의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유일한 저자이신 하나님의 성령이 쓰시고 편집한 책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읽어야 합니다.

a. 성경의 통일성

구약을 저술하신 하나님께서 신약도 저술하셨으며, 그 목적이 동일함을 알게 됩니다. 구약과 신약이 다 같이 우리를 죄에서 구속하는 교리를 가르치며, 또한 같은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구약은 신약에서 일어날 일을 미리 암시하며, 신약은 구약의 예언을 설명하며,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과정을 분명하게 합니다.

구약에는 이 구속의 교리를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의식을 통하여 설명하며, 또 그러한 의식이 영적인 뜻을 가지고 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레 20:25-26, 시 51:16-17, 사 1:16).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 하나님께서 가죽옷을 만들어 입히신 기록(창 - 4 -

3:21)과, 아담의 둘째 아들 아벨이 양을 잡아 제물을 드린 기록은 말할 것도 없이 인간은 그리스도의 피로써만 구원 받게 된다는 것의 암시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후로 이스라엘이 수없이 많은 짐승을 잡아 피를 흘리게 하고, 제사를 드린 기록은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피를 흘림으로 인간의 죄 사함이 있을 일에 대하여 알게하는 상징이었습니다.

구약성경은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이며,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지만, 그 약속이 이스라엘만을 두고 하신 것이 아니라 온 인류를 두고 하신 약속임을 쉽게 우리는 읽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에도(창 17:4) 그 뜻이 분명하며, 솔로몬왕의 성전 봉헌식에서도 (왕상 8:41) 이 사실을 읽을 수 있습니다. 또 신약에서는 이 사실을 누차에 걸쳐 설명했습니다.(행 11:1,롬 3:29)

이러한 약속은, 이스라엘이 계속하여 하나님을 거역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질것을 성경에 거듭 기록하고 있습니다(렘 50:19-20). 그러므로 아담 후에 태어난 모든 인간이, 구약이나 신약이나 할 것 없이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로써만 구원 받을 것을 가르치며, 굳이 구약과 신약의 차이점을 찾는다면, 마치 구약시대에 진 꽃의 망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활짝 피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세대에 따라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다르다는 세대주의의 주장은 성경을 피상적으로 공부하고, 그리스도의 피로 인하여만 인간이 속죄를 받는다는데 대한 신앙의 뿌리가 없음을 스스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b. 구약과 신약성경의 관계

성경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신약과 구약은 상호간 주석의 역활을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께서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4-15)고 하신 것이나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히 13:10-13)하신 말씀은 구약시대의 역사가 역사로서만 기록된 것이 아니고, 역사적인 사건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고난과 우리의 구원을 상징함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예로, 갈라디아서 4장 후반의 기록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의 뜻을 잘 설명합니다(갈 4:21-31).

사도행전 2장 29-31절은 그리스도를 상징한 다윗의 시, 16편을 잘 설명합니다.

구약 마지막 책인 말라기 3장에 "여호와가 보낼 사자"에 대한 기록을 마태복음 11장 9-20절에 예수님께서 설명하셨습니다.

c. 각 성경책의 특성

예를 들어서 신약성경의 바울의 서신과 야고보의 서신 사이에는 문장의 묘사법과 가르치는 교리가 다르게 보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진리에 대한 관점을 달리할 뿐이지 궁극적으로 다 같이 우리의 속죄의 교리를 가르치는대는 차이가 없습니다. 20세기 초에 한 개혁주의 성경학자였던 버코후(Berkhof)는 다음과 같이 각 성경의 특성을 공부할 때 생각하고 읽으면 도움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1). 창세기는 모든 세대에게 주는 (종말이 올 때까지) 가르침이며 그것은,

(a).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됨과,

(b). 죄가 세상에 들어 옴과,

(c).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은혜의 약속이 있다는 가르침이 있으며,

(2). 출애굽기는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는 상징이며,

(3). 레위기는 죄로 가득찬 인간이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가의 가르침과 상징이며,

(4). 민수기는 하나님의 백성이 이 세상에서 걸어갈 여행길을 상징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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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신명기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백성에게 내릴 은혜와, 불순종하고 믿지 않는 백성에게 대한 심판을 말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합니다.

(6). 욥기는 하나님의 백성이 어려움을 당할 때 그 해결책을 말해 주며,

(7). 시편은 하나님 백성들의 깊은 영적 생활의 기쁨과, 서러움과, 실패와, 승리와 그리고 신앙생활의 온갓 노력을 묘사했다고 합니다.

(8). 그런가 하면, 이사야서는 하나님의 자기 백성에 대한 사랑을 묘사 하였고,

(9). 예레미야서는 하나님의 의의가 무엇인지 생각나게 한다고 합니다.

(10).에스겔서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강조하며, 그 이름이 열국으로부터 영광을 받을 것이며,

(11). 다니엘서는 주님의 영광이 열국 위에 나타나며, 뛰어날 것이라 합니다.

(12). 바울의 서신인 갈라디아서는 구약시대의 의식에 매이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유함을 누릴 것을 말하며,

(13). 에베소서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으로써 융합할 것과,

(14). 골로새서는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심을 강조한다고 합니다.

8. 성경은 상징과 비유로 되어 있음.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인 성경을 통하여 자기를 나타내셨을 뿐 만 아니라, 성경역사의 실재적인 사건을 통하여 또한 진리를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사건들은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속죄하시는 긍극적인 목적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해석하면서 항상 마음에 가져야 할 질문은, "이러한 역사적인 사건이 어떤 방법으로 나에게 하나님의 구속하심을 설명하는가?"하는 의문을 가져야 된다고 믿습니다.

a. 성경에 기록된 사건은 우리의 신앙을 명상하게 하는 상징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을 한 역사적인 기록은(창 32:24-32) 호세아 12장 2-6절에 그 뜻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약속으로 기업을 받을 것을 알고, 또 믿고 있었지만, 그의 일생은 계속하여 하나님과 씨름을 하는 삶이었으며, 그 삶은 곧 "내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것을 확인하지 않고서는 마음을 놓지 않겠다"는 신앙의 고백임을 배우게 됩니다. 이러한 야곱의 역사적 기록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며, 내가 나의 구원을 확신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과 씨름을 해야 된다는 상징적인 교훈임을 알게 됩니다.

또 다른 사건을 예로 든다면, 예수님께서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으로 5000명을 먹이신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이 기사의 이면에는 나에게 직접 말씀하시는 아주 중요한 몇 가지 상징적인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며, 내 구원을 위하여 충분한 복의 근원이 되신다는 사실이며, 내가 영적인 주림이 있을 때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떡으로 먹이신다는 상징입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건을 통한 상징은 현재 우리의 믿음을 살펴 보게 할 뿐만 아니라, 장래에 완성될 우리 구원에 대하여 충분히 말해 주고 있습니다.

b. 상징으로 볼 때 유의(留意)할 점.

성경의 사건들을 읽을 때 빈번히 당면하는 일이 있습니다. 우리의 도덕률로서는 이해하기가 어려운 경우를 만나는 것입니다. 가령, 야곱의 사건을 생각한다면, 야곱이 아버지를 속이기 위하여 양털 옷을 만들어 입고 아버지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야곱이 아버지를 속인 사실에 생각을 머물러 있을 것이 아니라, 이 기록은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택한 백성에게 의의 옷을 입히심으로만 구원을 받는다는 영적인 가르침을 받아야 됩니다. 이 사건을 이해하는데는 이삭을 약속의 자녀로 삼으셨다는 갈라디아서 4장 21-31절의 설명이 도움을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상징적인 사건을 이해하려고 할때는, 이 사건이 어떠한 도덕적인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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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이나, 영적인 뜻이나, 구원에 대한 가르침이 있는지를 관찰해야 할 줄 압니다.

그러나 성경 해석에 있어서 해석자 자신이 사건의 뜻을 과장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합니다. 성경은 그 자체에 해석하는 범위가 있다는 사실을 늘 머리에 두고, 해석의 결론이 성경에서 나왔음을 증명해야 됩니다. 그리고 성경속의 사건들이 여러가지의 상징을 내포하고 있음을 또 잊어서는 안됩니다.

예를 든다면,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너간 다음 광야에서 40년을 생활한 역사적인 사건은 여러가지 영적인 뜻을 성경이 설명합니다.

(1). 이 사건을 이스라엘이 세례를 받았다고 지적했음으로(고전 10:1-2), 그리스도의 피로써 속죄함을 받음으로써만 영원한 가나안 땅,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영적인 뜻을 우선 생각합니다.

(2). 둘째로 생각하는 상징은 홍해를 건넌 다음의 광야의 생활이며, 이 생활은 그리스도께서 택한 백성을 영원한 안식처로 인도하심과,

(3). 셋째로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택한 백성의 회중에 늘 함께 하신다는 신약교회의 근본적인 교리를 가르친다고 믿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해석입니다.

9. 예언에 대한 성경 해석

성경의 많은 부분이 세상의 종말과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예언입니다. "예언은 장차 일어날 사건을 미리 알게 하는 계시이다"라고 단순하게 정의가 될지는 모르지만, 성경의 예언은 예외 없이 그 목적과 내용이 "하나님의 왕국"이나 "그리스도를 통한 인간의 속죄"와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a. 예언의 특징

(1). 예언은 독립하여 존재하는 일이 없으며, 역사적으로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예언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것은 그 예언 전후에 일어나는 역사적인 사건을 공부하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2). 또한 예언은 큰 사건을 아주 짧고 간략하게 말한 것임으로 어떠한 영적인 뜻이 함축되어 있는가를 찾도록 노력해야 됩니다.

(3). 많은 예언의 기록은 알기 힘든 용어들로 되어 있으므로, 용어들을 정의하는데 특히 유의하며, 다른 성경 구절과 비교하여야 할 것이며, 그 답이 분명하지 않을 때는 그 예언의 뜻을 알지 못한다는 정직한 고백이 절대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b. 예언에 대한 성경 해석

예언은 장래에 일어날 역사를 하나님께서 미리 보이시는 것이므로 우리는 그 예언이 반드시 이루어 질 것을 믿고 기대함으로써만이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1). 예언은 상징적인 해석을 시도하기 전에 우선 그 직접적인 뜻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하며, 또한 근본적인 예언의 목적을 알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가령 이사야서 11장 6-10절을 공부한다면

"그 때에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읽을 때 우선 기록된 일들이 실제로 있을 일로 가정하고 공부를 시작해야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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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는 이 예언의 목적이 무엇인지 이사야 11장 전체를 공부함으로써 알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나서, 이 예언이 상징임을 확신하게 될 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내 구원"과 어떻게 연관이 되며, 실제로 닥아올 사건과도 연결을 시킬 수 있어야 됩니다.

10. 시편 공부

시편은 이스라엘 백성의 성가(聖歌)이지만, 또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 내용은 다양(多樣)합니다. 시편은 깊은 신앙간증과, 인생의 고락과, 소망과, 감사와, 혹은 서러움과,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애걸하는 것 같은 간절한 호소이기도 합니다. 모든 시편에는 역사적인 배경이 있기 때문에 그 배경을 공부하는 것은 절대로 필요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시편 51편, 다윗의 회개하는 시는 사무엘하 11장과 12장을 읽은 후에 공부하면 다윗의 심령을 더 잘 이해하게 됩니다. 다윗의 심령은 믿는 자의 심령을 대표하며,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의 심령을 아울러 대표합니다. 이와같이 모든 시편은 우리 믿는 자들의 신앙고백을 대표하는 아름다운 찬송이라고 믿습니다. 불러도 불러도 거증나지 않는 사랑의 노래이기도 합니다.

시편 저자의 생활을 공부하는 것도 덕이 되는 일이며, 이러한 공부는 우리의 신앙생활의 역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찬란하고 영광스럽게 장식할 수 있는 기회로 만들게 됩니다.

시편중에 제 2, 22, 45, 110편 등은 메시야이신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을 예언하고 노래한 특수한 시편들입니다.

11. 결론으로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들과 대화하시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을 때 그 말씀이 정확하고 분명함을 알게 됩니다. 지구의 공전과 자전을 정확하게 만드시고, 한 여름이 가면 또 다른 여름이 정확하게 365.242199일만에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이보다 더 정확하고 분명한 성경의 기록을 참고서로만 주신 것이 아니고, 우리 인간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성공적으로 살아 가는데 등불이 되도록 주셨습니다(시 119:105).

성경은 아름다운 책입니다. 정원에서 아름다운 장미꽃을 감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장미꽃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그 장미꽃보다 더 아름다운 이야기 만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과 우리의 영혼이 함께 만나게 하시며, 우리의 장래를 위하여 계획하신 천국을 보이시며, 감사의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정원의 현장 입니다.

이 모든 이득을 성경에서 얻을 수 있는 단 한 가지의 방법은, 성경 전체가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는 일입니다. 이 말씀을 읽을 때 우리는 절대자 앞에 서 있음을 감지해야 됩니다. 떨며 복종하는 신앙만이 있기를 바랍니다.

글을 마감하면서 캠핑씨가 저술한 "성경 공부를 할 때 명심할 첫째 원리"를 소개합니다.

(1). 성경만이 그리고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말슴이다.

(2). 성경은 성경 자체가 주석이다.

(3). 성경은 대개의 경우 몇 단계의 뜻을 가지고 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삼단계의 뜻이 있다.

첫 단계: 역사적인 기록

둘째 단계: 도덕적 혹은 영적인 가르침

셋째 단계: 구원에 대한 설명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과 늘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이대우 드림, 1995년 2월 11일 - 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