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해에도 주님의 축복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사랑, 사랑, 사랑이 무엇입니까?

소싯적에 교회에서 아주 좋아하던 감리교 찬송가 중에 다음과 같은 찬송이 있습니다.

세상 모두 사랑 없어 냉랭함을 아느냐

곳곳마다 사랑 없어 탄식소리 뿐일세

악을 선케 만들고 모든 소망 채우는

사랑 얻기 위하여 저들 오래 참았네

사랑 없는 연고로, 사랑 없는 연고로

사랑 위해 저희들 오래 참고 있었네

이 찬송은 우리 내외가 결혼 후에도 여러 번 모임에서 병창(竝唱)을 할 정도로 좋아하는 찬송입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가사를 읽어보니 무엇인가 잘못된 점이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사랑 얻기 위하여 오래 참고 있었네"는 인간의 노력을 암시하며, 어떠한 참는 과정에서 사랑을 알게되거나 얻게된다는 저자의 간증입니다. 이절(二節)에는 "축은 하게 손을 펴고 사랑 받기 원하네", 또 사절(四節)에는 "기갈 중에 사는 영혼 사랑 받기 원하며, 아이들도 소리 질러 사랑 받기 원하네" 등의 표현은 인간이 갈망하는 사랑을 애절하게 부른 노래입니다.

이 찬송의 저자는, 말할 나위 없이, 인간의 자유의지를 믿는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의 뜻을 한글사전에서는 "애틋이 아끼고 위하는 마음, 동정하여 친절히 대하고 너그럽게 베푸는 마음"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위의 찬송은 이 사랑의 뜻과 잘 결합이 되며 찬송이 품고 있는 뜻을 또 분석해 본다면, "세상이 서로가 아끼고, 위하며, 동정하고, 친절하고,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면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것이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아무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사실은 모든 종교의 종파들이 이 사랑의 구현(具現)을 위하여 세기(世紀)를 두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은 사랑이다!"라는 성경 구절을 구호(口號)로 삼고, 사람들을 만나 인사할 때마다 이 구절을 암송도 합니다. 이러한 기독교인들이 믿는 하나님은 한글사전이 정의한 사랑의 하나님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믿는 것이 논리적이고, 탓할 것이 없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면, "성경이 정의하는 사랑이 무엇일까?"하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은 성경이 가르치는 "사랑"에 대하여 공부를 해 보겠습니다. 신약성경에는 "사랑:Love"이라고 번역된 희랍어 원어가 몇까지 있습니다. 처음으로 성경 학도들의 관심을 끄는 성경말씀이 요한복음 제 21장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 직전에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물으셨을 때에 쓰셨고, 또 베드로가 답변으로 사용한 "사랑"이라는 단어가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 보다 나를 더 사랑(Agape)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Phileo)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양을 먹이라 하시고"(요 21:15,16)

"---세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Phileo)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Phileo)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Phileo)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요 21:27)

이 성경 기록에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나를 Agape의 사랑으로 사랑하느냐"라고 두 번을 물으셨고, 베드로는 한번도 "나는 당신을 Agape의 사랑으로 사랑합니다"라고 대답을 못한 점입니다. 이 Agape의 사랑에 대해서는 예수님께서 여러 번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Agape)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Agape)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요 10:17)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Agape)하시되 끝까지 사랑(Agape)하시니라"(요 13:1)

"오직 내가 아버지를 사랑(Agape)하는 것과 아버지의 명하신 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요 14:31)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Agape)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롬 9:1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Agape)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 13:3)

반면에 Phileo의 사랑을 성경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Phileo)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마 10:37)

"형제 사랑(Philadelphia)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이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히 13:1)

"돈을 사랑(Philarguriz)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10)

"저희들 젊은 여자들을 교훈하되 그 남편과 자녀를 사랑(Phileo)하며"(딛 2:4)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Philanthropia)을 나타내실 때에"(딛 3:4)

이상에 인용된 몇까지 성경구절만 가지고도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말씀하시고 져 하신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Agape의 사랑과 Phileo의 사랑이 구분 되어야하며, 예수님께서 구분하여 사용하셨고, 또 제자들이 이 두 단어를 구분하여 사용 할 줄 알았습니다. 성경을 번역하면서 그 차이점을 나타내지 못한 것은 번역자들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잘못된 것도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숨기시고져 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 차이점을 알아야합니다. 그 차이가 어디에 있습니까?

둘째로 아가페의 사랑은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계획하신 구원계획을 말하며, 즉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오신 사실 그 자체입니다. 이 사랑은 일방적이며, 우리가 그의 백성이 될 때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며, 서로 주고받는 사랑이 아닙니다. 인간에게는 그 사랑이 없습니다.

반면에, Phileo의 사랑은 인간이 타고난 아름다운 본성입니다. 이 사랑은 누구에게나 있으며, 인간이 이것을 잘 구사(驅使)할 때 지상천국을 이룰 것이라고 합니다. 많은 종교 단체들이 구제사업을 하는 것은 이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크나큰 문제점은 모든 종교인이 이 차이점을 모르고, 이러한 사랑을 베푸는 일로 구원에 이른다고 믿고 있는 점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자기의 몸과 마음을 다하여 남을 사랑(Phileo)하고 구제사업을 한다 할지라도, 아가페의 사랑은 아닙니다.

세째로 이 아가페의 사랑은 영적이며, Phileo의 사랑은 육적입니다. 아가페의 사랑은 장래를 바라보는 소망이며, Phileo의 사랑은 당장에 육신을 기쁘게 하는 일입니다. Phileo의 사랑은 육신의 행동을 주장합니다마는, 아가페의 사랑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찾게됩니다. 아가페의 사랑은 하나님의 약속이며, Phileo의 사랑은 인간의 노력으로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삭과 야곱을 사랑하신 이유는, 그가 잉태되기도 전에 약속하신 것 때문 이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마엘과 에서도 사랑하셨습니다. 디도서 3장 4절에는 이것을 "사람 사랑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은 이 세상에서 살 수 있는 특권이었으며, 그것은 또한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것이지만, 영원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위에 적은 사랑의 찬송이 아가페의 사랑이 될 수가 없습니다. 찬송을 부를 바에야 아가페의 사랑을 노래하는 것이 하나님 백성에게는 당연합니다. 이렇게 알고 보니, 어느 교회는 더 화기애애(和氣靄靄)하고, 어느 교회는 서로 미워하고 싸운다는 말에 신경을 쓸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완벽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힘으로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성취하겠다는 어리석은 생각은 하지망아야 합니다. 문제는 내가 하나님께서 이미 예정하신 자녀인가를 알아보는 일입니다. 아가페의 사랑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는 카톨릭교리를 믿는 사람을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라고 가정이라도 하겠습니까?

 

오늘은 Jessica의 편지를 소개합니다.

Jessica는 제 아내의 친구의 동생이며, 국민학교 때 잠깐 담임을 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분은 미국에 와서 고등교육을 받고 지금은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고 있으며, 또 복음회를 같이 하겠다고 까지 했으니 저희들의 친근한 생각을 짐작하시겠지요. 그런데 그분이 카톨릭 교인이 된 것을 최근에 카톨릭 신문을 보내 주심으로 알게된 것입니다. 물론 제가 보내는 카톨릭에 대한 비평이 듣기 좋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수 많은 신부(神父)들도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데 하나님의 뜻이 있으면 Jessica도 이 진리를 깨닫게 되리라 믿고 기도하면서 계속하여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이대우 드림, 1/17/98

* 1997년도 복음회의 연말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보고서를 읽기 원하시면 보내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