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께 드립니다 (순교자들)

한 자매님이 보내주신 책 "우리아버지 손양원 목사"를 읽고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라, 이번 편지에는 순서 없이 이 얘기 저 얘기를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1. 순교의 뜻

성경에는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낳은 둘째 아들인 아벨이 가인에게 죽임을 당하는 일로 순교의 역사가 시작되었고, 그후 인류의역사적인 여러 가지 사건들이 이 순교의 막을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역대에 기록된 순교는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사람들 사이에 일어난 전쟁이며, 그 본질에 있어 아벨의 순교는 반복이 되고 있음을 알게됩니다. 순교가 죽음으로써 만 이루어진다면, 성경에서 읽을 수 있는 순교자의 수는 손꼽을 정도밖에 안될 것입니다.

한국 기독교 역사를 읽으면, 70명의 한국 그리스도인들이 천황(天皇) 숭배와 신사참배(神社參拜)를 생명을 내걸고 반대하여, 투옥 당했고, 비참한 고문을 견디지 못하여 그중 50명이 옥사(獄死)한 기록이 있습니다. 나머지 20명도 일본정부가 8월 18일로 날을 정하고 그들을 처형하기로 계획한 것이 8월 15일의 해방으로 그 계획이 집행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20명은 옥사한 50명과 동일한 수난을 받은 순교자들이었으며, 단지 그들은 해방이라는 기적 때문에 얼마간의 생을 연장한 것 뿐 이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그 20명중의 한사람이었으며, 그분은 5년 이상을 옥중 생활에서 비참한 심문을 받으면서도 일본인들과 간수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그 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창 4:3-8)

 

순교가 선을 행하는 것과 관련이 있음을 이 구절에서 알게되며, 이 선에 대한 성경말씀의 정의를 배우면 순교에 대한 정의도 정확하게 내릴 수 있게 됩니다.

어떤 관원이 예수님을 선한 선생님이라고 불렀을 때 예수님께서 선한 분은 하나님밖에 없다고 하셨습니다(눅 18:18). 이 예수님의 말씀을 뒷받침하는 여러 성경구절이 또 있으며, 인간 중에는 선한 사람이 하나도 없음을 지적합니다.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無益)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 3:10-12, 시 134:1-3 참조)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롬 2:6-8)

성경이 인간에게 "선을 행하라" "의롭게 되라"고 수없이 가르칩니다마는, 인간의 본질이 불의하고 악하기 때문에 선을 행할 수 도 없고 의로워 질 수도 없다는 것을 또한 성경은 가르칩니다. 그렇게 알고 보면 아벨이라고 선한 사람은 아니었고, 형 가인과 동일한 인간의 본성을 가진 악인이었음이 논리적으로 증명이 됩니다. 같은 사실로 성경에 나타나는 모든 역대의 의인들이 누구나 할 것 없이 인간은 혈통을 이어 받아 세상에 나온 악인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의인으로 간주하신 것으로 믿게됩니다.

 

세상의 의(義와) 세상의 선(善): 가장 큰 문제가 되는 성경학도들의 오류가 선과 의에 대한 정의를 인간의 기준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점입니다. 지난 몇 개월 동안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유명한 두 사람의 죽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영국의 왕후가 될 번한 Diana와, 노벨 평화상을 탄 츄리샤 수녀(修女)가 의인으로 세상에 부각(浮刻)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한 의인은 세상이 인정하고, 추모하고, 역사에 기록으로 남는다 하지만, 성경이 정의하는 선과 의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건입니다. 그 사람들의 영혼이 몹시 불쌍하며, 가련하게 만 보입니다. 이 사건으로 사단은 승리의 개가를 부를지도 모릅니다. 세상이 사람에게 영광을 돌릴 때마다,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잊어버리고, 점점 하나님과 멀어지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순교를 요구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제사로 드리라"(롬 12:1)고 하였습니다. 그 산 제사는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이 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리라"(히 13:16)고 하셨습니다.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선과 의는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은혜로 값없이 얻는 그리스도의 의와 하나님의 선입니다. 무엇을 서로 나누어주겠습니까? 나누어 줄 것은 하나님의 구원이며, 하나님의 의이며,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것만이 복음입니다. 복음은 죽어 썩어 없어질 인간들을 위한 구호물자가 아닙니다.

이와 같은 의와 선을 행하는 사람만이 순교의 자격이 있으며, 비단 죽지 아니하고 산다고 할지라도 그의 일생은 순교의 생활입니다. 이와 같이 순교의 정의는 예수님께서 "너희는 회당에서 출회를 당하리라"(요 16:2)고 하신 말씀과 "두 증인이 죽임을 당하고 거리에 버리움을 당하리라"(계 11:)고 한 말씀으로 증명이 됩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자는 순교자다: 여러분께서 하나님 말씀에는 한치의 양보도 없이 지키려고 노력하십니까? 여러분은 순교자입니다. 성경 역사에나 기독교 역사에는 순교자가 흔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믿는 종교 때문에 죽임을 당합니다마는 그것은 순교가 아닙니다. 그러한 자들은 바알 제단에 제물이 되어 죽는 갓난아이와 다른 점이 없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믿는 기독교가 성경의 기독교가 아닐 때에는 여러분의 삶이 바알 제단의 제물과 또 다른 점이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 3절에 "네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라고 하신 말씀은 믿는다고 하면서 열성을 가진 모든 종교적 행사를 지적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이 사랑이 없으면 무익하다고 하셨습니다. 이 "사랑"은 세상이 정의하는 사랑이 아니며, "하나님의 구원"의 동의어입니다. 세상은 참 순교자를 비웃으며 멀리합니다. 1945년 해방 직전의 한국 교회를 생각해보십시오. 예배시간에 신사 참배를 먼저하고, 이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예배가 순교자들을 멸시 한 것이며, 그들의 변명을 들으면 "교회를 살려 나가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하면서, 투옥된 순교자들을 미련한 자들로 지적했습니다. 해방 직전의 순교자들과 순교자들을 비웃는 자들의 수는 70명 대 70만 명의 비율이 아니겠습니까?

 

2.역사는 반복된다

한국에서 신사참배와 천황 숭배를 거절한 순교가 한때의 역사로만 남은 사건이라고 대개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역사를 아벨과 가인의 경우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사람들과, 불순종하는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이라고 정의 할 때, 아벨의 순교는 반복되고 있음을 봅니다. 이 갈등은 성경 역사에 반복되었고, 기독교역사에서도 반복되다가, 말세에는 요한계시록 11장 1-13절의 상황으로 전개됩니다.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 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저희를 이기고 저희를 죽일터인즉 저희 시체가 큰 성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니라"(계 11:7-8)

적은 수의 순교자들: 말 할 것도 없이 "저희 시체"는 순교자들을 말하며, 순교자들의 숫자 비율을 생각할 때 요한계시록 9장 16절에서 "이만만"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해방 직전의 순교자와 신사 참배한 목사들의 비율 즉, 70명 대 70만 명의 비율을 생각나게 합니다. 숫자가 많은 곳은 사단이 지배하는 곳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하나님의 계명을 받으러 올라갔을 때, 산 아래서는 이스라엘 백성 전부가 금송아지를 만드는데 참가했고, 또 그 금송아지를 숭배했습니다. 세상에서 순교자들의 시체가 거리에 내어 버리움을 받을 때의 세상은, 모세가 시내산에 가 있을 때와 동일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참 백성은 세상에 나타나는 큰 숫자를 보고 바알의 신을 섬기는 자들을 쉽게 구분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10월 21일 새벽, 출장 중 여관방에 배달된 신문의 기사가 위에서 말한 사실의 일부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몰몬교에 대한 기사입니다.

1980년, 사회학자 Rodney Stark는 앞으로 100년간에 몰몬교의 교세가 40%는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겨우 16년 후인 1996년에 그의 예상이 틀렸음을 인정했고, 교세의 증가가, 16년만에, 50%가 넘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 기사는 1997년 11월 현재에 몰몬교의 교세는 1,000만이 될 것이라 합니다. 1830년 교파의 창설 후 117년이 걸려 100만의 교세를 얻기에 이르렀으나,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지수함수(指數函數)적 증가로 이 전통적인 교파의 교세는 지난 11년간의 열 배가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사람의 생각을 강조하는 교파만이 그 교세가 증가하는 때입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의 교세를 여러 가지 기록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한국 교포 천주교회에서 발간한 소책자 "천주교를 알려 드립니다"에는 세계인구의 약 17.49%인 956,381,100명이 천주교인이라고 과시하고 있습니다.

여러분께서 큰 숫자를 보십니까? 특히 그 숫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내 세운 집단이면 그것이 바로 말세에 적그리스도로 등장함을 성경은 가르칩니다.

The Anti-Christ냐, An Anti-Christ냐: 우리 목사님과 나눈 대화의 한 토막을 소개하겠습니다. 우리 목사님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어느 신앙고백보다도 우리의 신앙을 잘 설명한다고 믿는 분이며, 저는 거듭 그 신앙고백에 몇 가지 잘못된 점을 수정해야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 제정(制定)된 후에, 한번 개정(改訂)된 것에 대한 얘기입니다. 그 개정은 한 조항을 삭제 한 것이며, 그 삭제된 조항은 로마 카톨릭 교회를 "The Anti Christ"라고 지적한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그 조항이 삭제되지 않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아직도 교리로 삼고 있는 장로교회가 미국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교파의 한 목사님이 우리 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어 그 교리에 대한 얘기가 벌어 졌습니다. 물론 성경이 정의하는 적그리스도는 사단이며(요일4:3), 하나님의 백성이 아닐 때 모두가 그 적그리스도의 지배를 받고 산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우리 목사님은 현재의 교리(로마 카톨릭에 대한 언급이 없는 교리)에 대하여 만족하는 분이며, 저는 그 조항을 뺀 것은 비겁한 처사였으며, "카톨릭 교황이 적그리스도가 아니라"는 서명(誓命)한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방문한 목사님과 제가 가진 같은 결론은 (1). 그 당시 종교개혁자들이 교황을 유일한 적그리스도(The Anti Christ)로 보고, 신앙고백 속에까지 한 조항으로 선택한 경우를 이해하고도 남는다. (2).그러나 성경적으로 볼 때 그리스도의 계명에 불순종하는 자들은 다 적그리스도니, The Anti-Christ를 An Anti-Christ로 수정하여, 하나의 적그리스도임을 믿어야하며, (3). 계속하여 교리의 한 조항으로 고수(固守)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로마 카톨릭 교황이 유일한 적그리스도라는 신앙고백의 조항을 삭제하도록 만든 것은 역사상 사단의 승리 중에 가장 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성경말씀을 앞으로부터 보나 뒤로부터 보나, 어떤 구절을 가지고도 로마 카톨릭교리가 이단 종교의 교리가 아님을 증명하는 구절이 없습니다. 무슨 소리로 세상이 아우성을 쳐도 이단 중의 이단이 카톨릭교리 임을 성경말씀은 증명합니다. 알라신을 믿는 아랍 사람들이나 불교신자들을 볼 때 불쌍한 생각이 듭니다마는, 카톨릭교인을 생각할 때는 가련하기가 짝이 없어 눈물겹도록 불쌍해집니다. 그들은 크게 속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속임수가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 혹은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가지고 속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속는 일을 단순히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잊어버릴 수 있습니까? 아담의 후예인 인간은 속고 또 속이고 사는 것이 성경이 정의하는 인간의 본성이지만, 속는 사람이 그 책임을 지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을 속이는 수작이 사단의 최악의 전술임을 알 수 있습니다.

군주(君主)시대의 사단: 사단이 아담과 하와를 속여 승리한 후 세상을 잠시동안 (그리스도의 재림시까지) 다스리는 권세를 얻었고 그 권세를 가지고 어떻게 하면 인간을, 특히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과 격리하여,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방해하는가 하는 노력이 인간 역사(歷史)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을 때 아기 예수를 죽일 계획을 하였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리게 함으로써 그리스도의 구원계획이 좌절되기를 바랐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사람들이 믿지 못하도록 노력했습니다. 그러한 노력은 그리스도의 승천 후 약 2000년간 계속되고 있습니다. 군주시대에는 많은 믿는 자들을 사자 굴에 잡아넣었고, 화형에 처하였지만 승리를 못했습니다.

공산주의와 사단: 20세기초에 이르러 그 사단은 그리스도의 인간 구속 계획을 방해하는 양상(樣相)을, 공산주의라는 무신론자(無神論者)의 권력을 이용하여 수많은 기독교의 지도자들과 신도들을 처형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방책이 다 실패한 것을 사단은 알게되었고, 마지막으로 택한 방법이, 성경이 예언한 바, 속이는 술책(術策)입니다.

 

20세기 후반과 사단: 그 술책의 선두에 스는 집단들을 사단은 택하였으며, 그 집단 하나가 바로 로마 카톨릭이라는, 성경 말씀에 반역하는 적그리스도의 집단입니다. 사단은 이 적그리스도의 집단을 몇 세기 동안 잘 은닉하여 두었다가 마침내 최후의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로마 카톨릭교회가 무참하게 그리스도인들을 학살(虐殺)한 역사가 우연히 있던 일로 생각 할 수 없는 줄 압니다마는, 은연중에 사단은 더 큰 일을 합니다.

 

이단의 정의: 서점에 들려 이단적 기독교(Cult)를 해명하는 책을 찾으면 상당히 많이 찾을 수 있습니다. 그 책들이 예외 없이 이단 교파들은 몰몬교, 칠일안식교, 여호와의 증인 등을 말합니다마는, 그 10중 8,9의 경우 로마 카톨릭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참 그리스도의 교리를 이해한다면. 그리스도의 이름을 내 세운 종교 중에 로마 카톨릭교리 보다도 더 흉측(凶測)한 이단의 교리가 세상에 없음을 알게될 것입니다. 사단의 승리를 여기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3. 범(凡) 종교 활동

사단의 속임수의 전쟁을 성경은 여러 구절을 통하여 예언했습니다. 믿는 자들을 현혹하는 큰 전쟁, 아마겟돈의 전쟁이 범 종교활동(凡 宗敎活動:Ecumenical Movement)이라는 군대를 사단은 동원하고 있습니다. 그 군대를 지휘하는 지휘관이 누구입니까? 로마 카톨릭교회의 교황이 아닙니까? 물론 여러 가지 이름으로 세상에 나오는 범 종교 활동의 지도자들이 각기 다른 종파에서 나옵니다마는 그 활동의 근본 교리가 로마 카톨릭 교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활동이 전개되는 즉시 로마 카톨릭 교회는 그 주동력(主動力)에 가담하고 있습니다. 범종교 활동은 사람의 생각으로 말하면 아주 그럴듯한 의논입니다. 우리가 다 같은 하나님을 믿으니 다 같이 잘 살자는 것입니다. 그 집단에 가담한 자들은 제 각기 자기가 정의하는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같은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같은 하나님이 되는 이유를 보면 하나님은 무조건 회개하는 자를 용서하시고 사랑하시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넓은 범위의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하나가되어 한 교회를 세우자는 것이며, 그 교회에는 이슬람교도 들어오고, 불교도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이며, 바로 로마 카톨릭 교회가 그 교회라는 것입니다.

 

빌리 그래함 (Billy Graham): 여러분께서 깜짝 놀랄 사실이 또 있습니다. 집회 때마다 수 만 명 군중에게 설교하는 빌리 그레함이라는 유명한 인사는 이전에 우리 내외도 존경하던 강사이며, 천하가 다 아는 부흥사입니다. 그는 로마 카톨릭이 믿는 하나님과 같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선언했고, 최근에 망령된 말로, 범 종교적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면서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이슬람교도나 불교신자도 구원을 받는다"는 어처구니없는 공개 발언을 했습니다. 무서운 사단의 역사입니다. 수만의 무지한 영혼들이 속고있습니다. 성경 말씀을 유창하게 설교하면서 거짓말을 가르치는 말세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크나큰 세력입니다. 이 세력과 합세한 또 한 세력이 있습니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수정 성당을 가지고 있는 Schuler목사입니다. 이들의 집회와 상호간의 대화를 들으면 성경이 말하는 아마겟돈 전쟁을 상상하고도 남습니다. 세상의 전 기독교인이라는 인구가 이러한 지도자들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세상 종말에는 그리스도께서 사단의 큰 세력을 다 물리치고 승리하신다고 했습니다. 성경을 바로 이해할 때, 큰 전쟁과 또 따라 올 우리의 승리가 눈앞에 보이는 듯 합니다.

약속 이행자들: 약속 이행자들(Promise Keepers{PK})의 활동이 보도되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속임수를 쓰는 사단의 활동입니다. 예외 없이 로마 카톨릭은 PK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약속의 첫 조항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이라고 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는 자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겠습니까? 이들은 세상에 있는 어떠한 종교이든 하나가 되어 하나님께 나아가 함께 기도할 수 있다는 엄청난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믿는 하나님은 성경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동성애자들이 상관없다고 하는, 성경 말씀을 무시하는 집단입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동성애자들의 행동을 음란의 극단을 걸어가는 자들로써, 세상의 음란을 측정하는데 사용하고 있습니다.

 

동성애자들: 오늘 10월 24일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읽은 심문기사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가사의 제목은 "동성애자들이 권리를 찾는 행사가 절정에 이르고 있다"입니다. 워싱톤주 Tocoma에서 선거자금을 모금하기 위하여 300명이 모인, $35짜리 조찬(朝餐)에 참석한 시장(市長)과 전 주지사(州知事)가 동성애자들의 권리를 인정하는 선거조항(Proposition I-677)을 환영한다는 연설로 시작하여, 동성애자 반대파는 선거자금을 $45,000 모금한대 비하여 지지자들은 $600,000을 모금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동성애자들을 극진히 반대해 오던 기독교 교파들은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말문이 막혔다고 합니다. 동성애자들의 권리 주장을 주제로 제작된 "In and Out"라는 영화가 상당한 인기를 가지고 (5번째) 있다고 합니다. 또 놀라운 기사의 하나는, 2,000년도에 대통령으로 출마하게 되어있는 Gore 부통령이, 공석에서 희극 여배우 Ellen 이 말한 "지금은 동성애자들이 벽장에서 나와 있다"라고 한 용기를 찬양하고 동성애자들을 지지했다는 사실입니다. 저도 TV에서 여러 번 방송된 것을 기억합니다마는, 글을 쓴 정치기자(政治記者) Walter Shapiro의 결론이야말로,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한 말세가 눈에 보이는 듯 합니다.

 

부통령 (Gore): "부통령 고아는 매일 아침식사를 하기 전에 신문, 잡지 기사로부터 통계 수집에 열중이며, 그 통계가 2000년에 가서 자기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데 어떻게 영향을 끼칠 것인가를 연구중이다. 그러나 그 통계에는 동성애자들이 벽장에서 나왔다는 사실보다는, 동성애자들이 앞으로 정치적인 승부를 결정하게 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판단은 정치인들이 눈치를 보아가며 말못하던 동성애자들에 대한 건(件)을 Gore가 입을 크게 연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2000년 대통령 선거시 동성애자들을 인정하는 국민의 수가 50%가 넘을 것이니 대통령에 당선되려면 일찌감치 동성애자들의 친구가 되자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로 보아서 Washington 주에서 국회의원 출마를 선언한 여인 Cammermeyer라는 동성애자는 2대를 연임하고 있는 국회의원을 물리치고 이길 것이다라는 예상입니다.

 

동성애자와 카톨릭교회: 약 이주 전에 로마 카톨릭 감독(Bishop)들이 동성애자들이 보통 사람과 다른 점이 없다는 선언을 TV를 통해 거듭 방송했습니다. 저는 Internet을 통해서 이러한 동성애자들의 활동을 찾아보려고 "Lesbian" 이라고 탐색(Search)을 명령했을 때 수천의 Lesbian에 대한 기사 중 처음으로 스크린에 나타난 열 가지의 기사가 다 X를 세 번씩 달은 XXX의 음화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동성애자들이 음란의 상징임을 증명한 것입니다.

많은 교회가 동성애자들을 인정하고 있습니다마는 그러한 교회는 말씀 없이 세워진 교회이며, 성경을 마음대로 해석하는 자유주의 교회요, 오래된 적그리스도의 교회입니다. 바른 교리를 가진 교회가 급속도로 물들어 가고 있습니다.

한국 기독교사에서 또 한가지 놀란 것은 조선신학교가 칼빈주의를 제창하고 인정하면서 동시에 고등비판(신 신학)을 가르쳤다는 점입니다. 바른 교리를 가지고 있는 교회도 하나님의 말씀을 한가지씩 흔 신짝처럼 버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요구하십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롬 12:1)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순교를 요구하십니다. 그 순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순종하는 생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언제나 "예"라고 할 수 있고, 사단의 속임수에는 "아니오"라고 할 수 있는 신앙을 요구하십니다. 때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실 수 있는 모든 여건(與件)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저희들에게는 참으로 사랑하는 친구들과 친지 중에 로마 카톨릭 신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 보내드리는 편지가 그분들에게 좀 과격할지도 모릅니다마는 지옥을 향해 달리고 있는 것을 보면서 입을 다물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잠에서 깨어나 하나님의 참 사랑을 배우고, 영원한 영혼의 구원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친구중 한 자매는 카톨릭 교인이 읽는 신문을 몇 번 보내 주셨습니다. 그 기사(記事)야말로 만화만도 못하고, 마치 천한 세계에서 사는 사람들이 즐기는 음화와도 같습니다. 내용인즉 어떤 마을의 마리아 동상이 눈물을 흘린다던가, 향기가 난다던가, 피가 흐른 흔적이 있다던 가, 마리아의 상이 보인다는 것인데, 그래도 좀 교육을 받았다는 사람이 그것을 글이라고 읽고 있으니 한심합니다. 솔직한 권유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죽고 사는 일 입니다. 말씀의 지혜를 얻어 세상을 판단할 수 있는 하나님의 지혜가 여러분께 있기를 기도합니다. 집으로 가는 비행기 속에서,

이대우 드림, 1997년 10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