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리교 교리와 알미니안 주의(세 번째)

직장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한 젊은 Engineer와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분은 직장에서도 틈만 있으면 성경을 읽는 독실한 기독교인입니다. 이 분에게 두 아들이 있고, 지난달에는 맏아들을 기독교단이 경영하는 대학에 입학을 시키고 돌아온 것을 자랑했고, 그것이 오랫동안 하나님께 기도한 것의 응답이라고 말했습니다. 가끔 같이 차를 타고 식당에 가서 점심 식사를 하면서 적지 않은 시간을 신앙에 대하여 토론했습니다. 그러나 이분은 철저하게 인간의 자유의지도 믿고 지상의 천년왕국도 믿는 분이니 저와의 신앙토론이 적지 않는 난관(難關)을 겪고 있음을 여러분은 짐작하실 줄 믿습니다.

저는 그분에게 여러 가지로 인간의 자유의지와, 지상 천년 왕국이 성경 적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또 그에 대한 글을 소개했습니다. 며칠 전에는 마침내 점심시간에 집에서 가져온 도시락을 먹으면서 성경을 공부했습니다. 그분의 성경은 NIV이며, 저는 KJV Literal Translation Bible을 가져왔습니다. 이렇게 성경공부가 시작 된 것은 제가 그분에게 권하기를 "조용히 앉아서 요한계시록 20장을 몇 번만 읽으면 지상의 천년왕국은 허무맹랑한 얘기인 것을 알게 된다" 라고 강조한 대서 온 것입니다.

1. 첫째 부활

"또 내가 보죄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하니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하리라( 20:4-6).

이 구절에는 "지상의 천년왕국"을 부정(否定)하는 두 가지의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처음은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동안 왕노릇"하는 자들의 신분(身分)이며, 그들은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몸은 아직도 땅속에 파 묻혀 있고, 그 영혼만이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노릇 합니다. 두 번째 신분은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입니다. 이 첫째 부활에 참여가 이 천년동안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분은 드디어 "목 베임을 받은 자들의 영혼들"을 이해하지만, "부활"의 뜻이 죽은 몸이 사는 것이 아닌가? 라고 주장하여, 다음 점심시간에 "첫째 부활"에 대하여 공부하기로 하고 해어졌습니다. 그 시간을 위하여 준비한 성경구절을 공부하겠습니다.

"첫째 부활"은 둘째 부활이 있음을 암시하며, 둘째 부활을 이해 할 때 첫째 부활도 쉽게 이해하게 됩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려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살전 4:16-18)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變化)하리라"(고전 15:52)

잘 알려진 위의 두 구절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과거에 죽은 모든 믿는 자들이 무덤에서 살아나 영원에 들어갈 새 몸을 입고 그리스도와 연합될 것을 가르칩니다. 그렇다면, 또 어떤 다른 부활이 이 마지막 부활 이전에 있을 것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만일 그 부활이 있다면 그 부활이 첫째 부활이겠으며, 마지막 부활은 둘째 부활이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 첫째 부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성경을 읽을 수 있습니다. 2:1, 5, 2:13, 살전 5:2, 6:4-7, 10-11, 고후 5:17, 6:15, 4:23-24, 3:10, 7:4-6절 들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 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6:4)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자로 여길지어다"( 6:10-11)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할례(割禮)나 무할례(無割禮)가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 뿐이니라"( 6:15)

이상의 성경구절에서 배우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새롭게되며", "새로 지은 자가 되며", "새 사람"이 되는 것이며, 이 새로운 것은 우리의 육신을 가리킴이 아니며, 우리의 영을 가리킵니다( 7:4-6). 물론 이 변화를 육신을 통해서 부분적으로 볼 수는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이 과정을 거듭나는 것이라고 하셨고, 거듭나는 것은 우리의 생활태도가 변한다는 뜻이 아니며 새로 출생함을 가르칩니다. 이 새 출생과 새 출발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기 때문에 가능하게 된 것이며, 우리의 죄가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은혜로서 죽었든 우리가 산다고 했습니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1)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 2:13)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살전 5:6)

죽었든 우리가 사는 것은 부활이며, 이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는 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다고 했습니다( 6:14-15, 6:23).

그러면 우리의 영이 언제 죽었는가 라고 질문할 것입니다. 아담이 하나님 명령에 불순종하여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기록( 3:22-24)"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2:17)고 하신 하나님의 심판이 내려진 것이며, 그 후 아담의 자손들은 그 영혼들이 죽어서 태어나고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 영혼을 부활시키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고, 이 영혼이 부활된 사람들만이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다"( 20:6)고 했습니다.

이렇게 이해할 때 우리가 거듭나는 순간이 첫째 부활이며, 그리스도 재림시의 부활은 두 번째 부활임을 알게됩니다. 이와 같이 둘째 사망은 영원한 죽음, 지옥에 가는 멸망이며, 우리의 육신이 죽는 것은 첫째 사망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감사한 것은 그분으로부터 "성경을 바로 깨닫게 나를 위하여 기도해 달라"는 요청을 받은 일입니다.

2. 자유의지를 믿는 사람들의 성화(聖畵)

한번은 그가 "하나님은 자기의 뜻을 변하시는가?"라는 전도지를 자기고 왔습니다. 예수님이 양을 오른손에 안고, 왼 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있는 그림으로 시작해서, 하나님께서 세상의 사정이 변화되었을 때 그의 뜻을 변하신다는 내용입니다. 이 전도지야말로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는 종교의 믿음이며, 성경의 믿음이 아닙니다. 이 전도지에 있는 그림은 아주 흔한 그림, 소이 성화(聖畵)입니다. 저는 이 친구에게 "십계명이 하나님의 계명인 것을 믿는가?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고 하신 계명을 순종할 의향이 없는가? 예수님은 하나님 자신 이신 대 어떻게 그 그림을 보고 하나님이라 하겠는가? 그분의 답인즉 "예수님은 사람으로 세상에 오시지 않았는가? 인간으로서의 예수님을 생각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위험천만의 교리입니다. 인간을 구속하시기 위하여 잠시동안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의 뜻을 충분히 이해치 못한 결과입니다. 비단 인신(人身)으로 오셨든 예수님은 창조주(創造主) 자신이십니다. 그렇게 위대한 하나님을 어떻게 감히 그림으로 표현한다는 말입니까? 하나님을 인간과 같은 자리에 내려 안치고 "사랑의 하나님"을 강조합니다. 사랑의 하나님의 참 뜻은 "진노의 하나님"의 뜻을 알기 전에는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재미있는 얘기 한 토막이 있습니다. 저희들이 다니는 교회 건물은 지은 지 106년이 되었다고 합니다. 한동안 이 지방에 감리교회가 왕성할 때 300명을 수용할 수 있게 지은 큰 교회입니다. 강단 뒤 배경은 아주 아름다운 파이프 올간으로 장식되었고, 건물 옆과 정면(正面)의 창문들은 몹시 아름다운 공예품(工藝品)입니다. 여러 가지 색깔의 유리 조각을 이리저리 붙여서 꽂을 그리고 또 성화를 그렸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가장 유명한 성화 "오른손에 양을 안고 왼쪽에는 지팡이를 집고 있는 목자의 그림"입니다. 목자 머리 둘레에는 화환이 있으니 예수님의 사진임이 틀림없습니다. 처음 교회를 방문했을 때 저는 좀 놀란 뜻으로 목사님께 물었습니다. "어떻게 저런 그림이 개혁 장로교회 안에 있을 수 있습니까?" 목사님의 답인즉, "옛날 감리교회당을 물려받았지요. 저 그림을 예수님이라고 그렸겠지만 우리가 이사온 후로는 저 그림은 양을 치는 베드로의 그림입니다."

3. 자유의지를 말한다는 성경 구절들

또 한번은 "성경에는 하나님의 예정도 말씀하시지만 인간의 자유의지도 말하고 있다"라는 글을 가지고 왔습니다. 성경을 상당히 공부해야할 기회를 가져왔기 때문에 여러분과 함께 이 글을 살펴보겠습니다. 글의 재목인 즉 "특수한 차원(次元)과 자유의지의 싸움터(Extra-Dimensionality and the Battle of wills)입니다. 이 글에는 131곳의 성경구절을 나열했으며, 그중 58개의 구절이 예정을 가르치며, 38개 구절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가르치며, 나머지 35개의 구절은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예정을 동시에 가르친다고 했습니다.

이 책도 역시 여호수아 24 14-2절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외친 고별(告別)연설에서 "택하라"고 한 것이 인간의 자유의지를 가르치는 가장 현저한 구절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敬畏)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길 것이라 너희의 열조가 강 저편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마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24:14-15)

이 구절만 가지고도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교리는 인간의 욕망(慾望)을 표시한 인본주의(人本主義)의 그림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날 택하라"고 한 여호수아의 외침이 "너희들 마음대로 하라"는 연설이겠습니까? 이것은 마치 도둑질하다 잡혀가는 죄수를 구경하고 있는 아들에게 "이놈 도둑질을 하고 감옥에 가거라"고 하는 것과 다른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에게 택하라고 한 것은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너희 열조가 걸어가고 있던 멸망의 길을 다시 갈 수 는 없노라"고 외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직도 이스라엘에게는 광야 생활의 기억이 생생한 때였고, 하나님 말씀의 불순종한 고라의 무리가 땅 속으로 들어가 멸망 당하는 것을 본 사람들이 아닙니까? 매일 같이 만나를 거두어 먹던 사람들이 아닙니까?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에게 다른 신을 섬기라고 한 것은 "멸망의 길로 가라"고 한 것이며, 어떻게 이 구절이 인간의 자유의지를 가르치는 것이겠습니까? 이스라엘의 역사는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없음을 가르칩니다. 그들에게 자유의지가 있었다면 이방 신을 선택하는 의지밖에 없었습니다. 지금도 인간들에게서 자유의지을 찾는다면 성경의 길을 저버리는 의지밖에 없다는 것을 이스라엘의 역사는 암시합니다. 여호수아 24장도 이 사실을 혼돈치 않기 위하여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길 것이라"라고 우선 명령한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 "선을 행하라", "하나님을 믿어라"고 하신 말씀을 여러 번 발견하는 것은 모든 인간이 (즉 구원을 받을 자와 멸망을 받을 자를 구분할 필요가 없이) 다 말씀에 순종할 것을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선을 행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선을 행한다고 해서 그것이 칭찬을 받을 것이 아니며 오히려 당연한 것입니다. 인간이 자유의지를 주장합니까? 다음 편지에는 그 자유의지를 믿는 결과에서 오는 사이비(似而非)한 기독교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여러분의 성경공부에 도움이 될 것 같아 글에서 제시한 성경구절들을 적어 보냅니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말한다는 성경 구절들

13:11, 30:19, 24:14,27, 5:8, 21:25, 7:15, 34:4, 36:21, 14:1-3, 119:30, 137, 1:29-30, 8:10-19, 21:3, 1:29, 7:15-16, 40:20, 55:3, 56:4, 8:4-12, 18:1-32, 4:4-9, 21:21-22, 10:42, 7:17, 2:21, 딤전 6:19, 3:12-14, 4:11, 6:4-12, 11:25, 4:7, 벧전 2:21, 요일 2:5-6, 20:11-15, 22:11-17.

하나님의 예정을 말한다는 성경 구절들

9:16, 33:19, 30:19, 10:20, 왕상 12:15, 대하 6:3-6, 31:15, 58:3, 110:1, 115:3, 16:4, 21:1, 9:1, 40:23, 41:24, 46:10, 61:10-62:2, 1:4-10, 4:4-37, 11:4, 10:28-30, 11:25, 24:24-25, 36, 13:20-22, 8:10, 12:4-5, 18:27, 22:31, 15:5, 16, 4:28, 4:11, 8:19-33, 9:10-26, 11:7-8, 고전 1:2, 26-29, 4:7, 고후 3:4-6, 13:9, 1:1, 1:4-5, 11, 2:11, 살후 3:3, 딤후 1:9, 1:1-3, 2:11-14, 3:4, 10:14, 13:21, 4:13-17, 벧전 1:4-5, 요일 3:9, 5:18-20, 13:8-10.

이대우 드림, 1997 9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