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3장, 짐승의 표 666 (III)

성경 말씀을 공부할 때 다섯 가지 원리를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함을 지난번 편지에 설명했습니다. 이 원리를 염두에 두는 한가지 방법은, 성경 66권을 한권의 책으로 보고, 성경에서 읽는 사건이나 단어의 뜻을 책 전체에서 찾아보는 것입니다. 그 예로, 성경 말씀에 대하서 생소한 사람이 "어린양" 이라는 단어를 읽을 때 그 뜻을 한글 사전에서 찾아 본다면 "① 인류의 죄를 대신한 구세주로서의 예수, ② 사나운 것에 대한 유순함(이희승편 국어 대사전)" 정도의 뜻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어린양"의 뜻은 창세기에서 시작하여 요한계시록까지 성경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러 나오실 때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말하기를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 1:29)라고 한 말씀을 읽을 때, 우선 "어린양"은 예수님의 또 다른 한 이름임을 알게됩니다. 그러나 이 어린양의 참 뜻은 성경을 여러 곳에서 찾아보기 전에는 알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이러므로 구약의 제사법을 배우게 될 것이며,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에게 약속하신 이스라엘의 구주에 대한 것을 예언서에서 배울 것이며,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을 배우게 되며, 또한 인간이 돌이킬 수 없는 죄에 대하여 창세기의 얘기와, 또 여러 곳에서 죄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배울 것이며,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시기 위하여 다시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성경 구절을 공부하는데 이를 것입니다. 그러나, 역대의 성경학자들의 연구 결과로, 성경에 나타나 있는 "어린양"의 뜻이 잘 해석되었고, 또 설교자들의 설교 내용에서도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계 13:1)라는 말씀에 대해서는 "어린양"에 대하여 공부한 것과 같은 과정을 거처 공부한 결과가 없기 때문에 성경학자들의 해석에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

특히 숫자를 성경에서 공부할 때 "어린양"을 공부하는 것과 같은 과정을 따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성경 말씀은 어느 구절이 어느 구절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한 획도 빠짐없이 하나님께서 직접 쓰신 글이기 때문입니다. 성경말씀에 모든 단어가 하나님의 입김으로 생명이 부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나오는 숫자는 다른 단어들과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이며, 숫자 공부도 "어린양"을 배우는 태도로서 해야 합니다.

지상의 피조물을 보거나, 우리 일상생활의 경험을 배경으로 말하면, 숫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한없이 큽니다. 숫자 없이 사회생활을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가령 아침에 집을 나가 출근길에 오를 때도 숫자가 우리의 수족(手足)을 지배합니다. '내가 일곱 까지 사무실에 가야 하고, 가지 공문을 처리해야 하고, 친구와 12시에 만나 점심을 먹을 것이며, 다섯시에는 퇴근할 것이다'라는 숫자의 개념이 사실상 우리의 생활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숫자도 동일합니다. 우리의 영적인 생활에도 또한 숫자가 여러 가지 지침이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 체이신 하나님, 12사도, 등을 가진 10처녀, 집에 남아 있는 내 형제 다섯, 물고기 마리, 등등 한이 없습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숫자의 뜻을 분명하게 알지 못하고는 성경을 분명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특히 특수한 숫자를 읽을 때 "어린양"에 대해 공부를 하는 과정을 밟지 않고는 그 뜻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우리 육신의 생활에서 숫자가 십중팔구(十中八九)는 실질적인 수를 지적하기 때문에, 성경공부에서도 그렇게 생각해 버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 말씀은 비유이며, 여기에 나오는 숫자도 또한 비유입니다. 물론 사건이 실제적인 숫자로 기록되었으나, 그 숫자가 상징적인 뜻을 가지고 있음을 늘 명심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그물에 걸린 물고기의 수 153(요 21:11), 사도 바울이 탄 배가 파산되었을 때 살아 남은 사람들의 수 276(행 27:37)등의 숫자'를 그냥 읽고만 지나갈 수 없고, 그 뜻을 짐작할 수도 없고, 물론 사전에서 찾을 수도 없을 것입니다. 다만, 성경 전체에 씌어진 숫자에 대한 사용법을 알아낼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깊은 뜻도 찾아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2-14장에서 "붉은 용,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인 짐승, 어린양의 이름과 아버지의 이름을 이마에 쓴 14만 4천명, 등등의 표현이 모두 비유로 쓰신 것들인데, 그 비유의 말씀과 함께 사용한 숫자들은 사실 그대로 해석을 해야 된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 숫자들이 비유로 반드시 해석된다고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그 예로,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할 때 20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만한 각 남자를 계수하여 603,550명으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민 1:45-46). 다만 이 숫자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의 수가 부녀자와 아이들과 노인들을 다 합하면 200만이 좀 넘었을 것이라는 짐작을 하게 할 뿐입니다.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숫자는 몇 가지 숫자를 곱하거나 나누어서 만들고, 기본적인 작은 숫자로 하나님의 뜻을 표시합니다. 그 중에는 144,000이 12X12X1000으로 된 것과(계 7:5-8), 12문(門)을 3x4로 표시한 것 등입니다(계 21:12-13). 그런가 하면 민수기 31장에는 하나님께서 숫자를 승(乘)하고 제(除)하여 백성들이 전쟁에서 탈취한 물건들을 나누어 갖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성경에서 우리가 큰 숫자를 대할 때, 그 숫자가 작은 숫자로 나눌 수 있고, 작은 숫자의 뜻을 알 때 큰 숫자의 뜻도 알게 된다는 가르침입니다.

우리가 숫자 666에 대하여 공부를 한다면, 우선 성경 본문이 "그 수는 사람의 수니"라고 하신 것을 믿어야 하며, 바 코드(Bar code)가 666이다, 무슨 컴퓨터가 666이다 하는 생각이 성경적이 아님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짐승의 수를 세어 보아라"고 하셨으니 이 숫자 666이 한 개인을 지적함이 아님을 또한 믿어야 합니다. 그 다음으로 성경 말씀이 "두개의 국가"간의 얘기임을 믿을 때 "짐승의 수"는 "믿지 않는 자", "구원을 받지 못한 자"의 수임이 분명합니다. 이러한 결론은 본문의 내용만으로 된 것이지만, 성경 다른 곳에서 이러한 이해를 뒷받침하는 구절을 찾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숫자를 승하고 제하는 것을 허락하며, 그 계산에 사용한 작은 숫자의 뜻은 큰 숫자의 뜻을 가리킵니다. 이 원리에서 666은 ⅔x1000이 됩니다. 스가랴 13장에는 말세에 대한 예언을 ⅔를 사용하여 설명하셨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된 자를 치라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려니와 작은 자들 위에는 내가 내 손을 드리우리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온 땅에서 ⅔는 멸절하고 은 거기 남으리니 내가 그 ⅓을 불 가운데 던져 은(銀) 같이 연단하며 금(金) 같이 시험할 것이라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들을 것이며 나는 말하기를 이는 내 백성이라 할 것이요 그들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슥 13:7-9)

위의 성경말씀 중에서 "내 목자"는 그리스도를 지적하심을 쉽게 알 수 있고, "작은 자들"이 그리스도의 백성임을 알 수 있습니다. ⅓을 "남은 자"들로 부르셨고, 그들이 세상에 사는 동안 환난을 당할 것을 가르칩니다.

이 외에도 ⅓을 지적하여 택하신 백성의 숫자로 쓰신 기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열왕기하 1장에, 엘리야를 잡으러 갔다 살아 남은 50부장과 그의 병사 50명은 구원 받은 인류, ⅓을 상징합니다.

숫자 666을 단순히 인류를 지적한 것으로 말할 수도 있습니다. 숫자 6은 인간이 창조된 날(금요일)이며, 인류를 대표합니다. 6을 세 번 반복한 것은 하나님의 섭리로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방법으로 666을 숫자 3과 6으로 나누어 볼 때 3x6x37=666의 결과를 얻습니다. 숫자 37은 소수(素數)로서 그 뜻을 사무엘하 23장 34-39절에 기록된 다윗의 용사들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왕국을 적(敵)의 손에서 성공적으로 보호한 다윗왕이 사랑하는 장군들입니다. 그러나 6x37의 뜻은, 사람의 생각으로 용사가 된 자들(구원을 사람의 생각으로 정의하는 자들)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한편, '적의 공격'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정의합니다. 그것은 마치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망하고, 유다가 바벨론에게 망한 역사적인 사건은, 말세에 올 심판이 어떻게 진행될 것에 대한 상징입니다.

창세기 7-8장에는 노아의 식구가 방주 안에 살던 날짜가 370일임을 읽을 수 있습니다. 10x37의 뜻이 하나님의 심판을 견디고 살아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의 상징적인 숫자는 이 되기도 하며, 1/10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144,000은 12x12x1000으로 되었으며, 이스라엘의 12지파와, 신약의 열두 사도들을 대표하며, 택하심을 받은 백성의 상징적인 수를 가리킵니다. 1000이라는 숫자는 일반 사회에서 완성된 것을 가리킴과 같이 성경에서도 그러합니다.

결론적으로 숫자 666=3X6X37은 사람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뜻을 찾는 인류 전체이며, ⅔X1000=666은 구원을 받지 못한 인류 전체를 가리키는 숫자입니다. 언제 어떻게 이 표를 받는가 하는 공부는 성경 구절을 일일이 읽어 가면서 공부하기로 하고, 이번 달에는 여기서 펜을 놓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