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3장, 짐승의 표 666(IV)

요한계시록 12장: (1절)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 두 별의 면류관을 썼더라

(2절)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써 부르짖더라

(3절)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는데

 

한 여자와 용: 요한계시록 12-14장은 "한 여자와 용" 사이에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용(龍)"이 상징적인 짐승임을 성경에서는 물론, 일반 사회에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동양적인 사고로 용은 권력을 상징하며, 동시에 성공적인 출세를 표시합니다. 용상(龍床)이 임금의 보좌(寶座)이며, 용꿈은 왕위를 이을 세자가 된다거나, 출세의 길이 열릴 것이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용이 권력을 상징하는 것은 동양의 사상과 일치합니다마는, 용은 반드시 사단의 권력을 상징합니다. 또한 용은 뱀과 동의어(同意語)이며, 간교한 뱀에 대한 과장된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어떻든간에, 용이 사단을 상징하였기 때문에 이 사건에서 나타나는 여인은 어떤 한 사람을 지적함이 아님을 우선 알게 됩니다. 여인이 낳은 아이는 장차 "철장(鐵杖)으로 만국을 다스릴"(5절)분인 그리스도 외에는 없습니다. 그러면 이 여인은 그리스도를 탄생케 한 "마리아"냐? 그럴 수 없습니다. 마리아가 "아파서 애써 부르짖은" 기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이냐? 이스라엘에 선지자가 없어서 그리스도의 강림을 기다리던 기록을 우리는 성경에서 읽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아닙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았고, 여인이 용을 피하여 "광야로 도망하매"라고 한 것이 또 이스라엘이 아님을 증명합니다. 이 여인은 인류역사상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여인: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그리스도의 신부(新婦)로 상징한 것을 성경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계 21:9, 22:17). 야곱의 혈통을 입은 자손들인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선민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배우자 또는, 아내로 부르셨고(호 2:2, 렘3:8).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후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범죄하고 그리스도를 거역함으로써,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이혼하신 것으로 성경은 가르칩니다(사 50:1, 렘 3:8). 그러나 아브라함의 피를 이어 받은 이스라엘 중에도 손꼽을 정도의 사람들이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임을 성경은 또한 가르칩니다.

사건의 시기: 사건의 시기는 "여자가 아이를 낳으니"라고 한 것으로 보아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신 때를 중심으로 해서 일어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아이를 배어"의 뜻은 상징적으로 그 시기를 이해하여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실 것의 약속은, 창세기 3장 15절에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라고 하심으로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계획이 인간 창조의 시초에 나타나 있음을 알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이 여인은 아담 때부터 임신되었고, 마침내 7 BC에 "아이를 낳게(그리스도의 탄생)" 하셨고, 그 아이가 하늘로 승천하기까지를 상징적으로 3년(年) 반(半)을 여인과 함께 지난 것으로 읽게 됩니다. 이 3년 반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속하시는 사역을 위하여 세례를 받으심으로 시작하여, 전도하시고,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또 승천하실 때까지의 기간임을 알게 됩니다.

놀라운 것은 6절에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1260일(3년 반)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고 하심을 읽음으로써, 그리스도의 승천 후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제자들로 시작하여 복음을 전하는 역대의 그리스도인들의 전도 사역 기간을, 같은 기간 3년 반으로 상징 하셨음을 발견합니다. 그러므로 용과 여인과의 싸움이 인간의 창조 후 즉시 시작되었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계속됨을 이 구절에서 배우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여인과 용의 얘기는, 아담에서 시작한 인류의 역사상, 그리스도의 택하심을 받은 백성과 사단 사이의 전쟁입니다.

성경은 여자를 가리켜 극히 약한 자로 거듭 표시하였고, 창조의 과정에서도 남자의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창 2:22)라 한 것은 택하심을 받은 백성이 완전히 그리스도의 보호 아래 살고 있음을 가르칩니다. 또한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에 사는 동안을 "양육을 받는 기간"으로 표시한 것은 자유의지를 주장하는 신앙이 잘못 되어 있음을 가르칩니다. 여인과 용의 싸움에서도 여인이 속수무책으로 도망을 다니는 기록도, 인간의 능력을 믿는 신앙은 구원을 받을 여지(餘地)가 없음을 또한 가르칩니다. 또한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은 어떠한 물질적 장소가 결코 아니며, 하나님의 성전(聖殿) 즉,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그리스도인의 마음입니다. 일단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 자신이 불성곽이 되시어 지키심을 약속하신 것(슥 2:5)이 바로 이 6절의 설명이 아니겠습니까?

 

1절: "하늘의 큰 이적"은 여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아담의 범죄로 인류는 다 멸망을 당할 처지에서 여자는 "하늘"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해를 입은""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롬 13:14)라고 하신 말씀과,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말 4:2)라고 하신 말씀을 주석으로 하면, 여인이 빛 되신 그리스도의 보호를 받고 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발 아래는 달이 있고""또 너희가 악인을 밟을 것이니 그들이 나의 정한 날에 너희 발바닥 밑에 재와 같으리라"(말 4;3)라고 하신 말씀으로 세상을 완전히 이기고 승리하는 상징입니다. 그러므로 "달"은 "사단의 세력"을 상징합니다.

열 두 별의 면류관: "머리에는 열 두 별의 면류관"은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별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자들을 지적합니다(계 1:20, 단 12:3). "면류관"은 생명의 면류관이며, 택하심을 받은 자들이 동일하게 받을 상(賞)이며, 이 상은 우리가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기 때문에 받는 것이 아니며,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형벌을 받으심으로 거저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은 "면류관"은 왕이 쓰는 권력의 상징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지금 우리의 왕으로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인류와 우주를 다스리시고 계심을 믿어야하며(벧전 3:22, 롬 8:34, 엡 1:20-22, 골 3:1, 히 1:3), 우리에게도 면류관을 씌워 주심을(벧전 5:4, 2:9, 계 2:10, 1:6, 5:10) 또한 믿어야 합니다.

숫자 12: 숫자 12는 택한 백성의 수를 총 망라하는 상징적인 숫자입니다. 이 "열 두 별의 면류관"을 쓴 여인의 모습이야말로 하나님의 택한 백성의 영광스러운 상태를 상징한 것입니다.

2절: "여자가 해산하게 되매"는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시기 이전의 상태이며, "구원의 보장이 없었던 인류"를 상징합니다. 이 상태는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 이스라엘이 극도로 타락했었고 근 400년간 선지자(先知者) 없이(하나님과의 교통의 단절) 지나던 때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3절: "또 다른 이적"은 1절에서 보는 이적과 대조가 되는 이적이며, 사단의 극단적인 활동의 상징입니다. "붉은 용"은 "악한, 혹은 죄 많은" 사단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 받기 이전의 상태를 "진홍 같이 붉은 죄"(사 1:18)로 표현하셨습니다. 숫자 7과 10은 완전수이며, "일곱 머리와 열 뿔" 의 기록은 계시록 13장 1절과, 17장에 다시 등장합니다. 계시록 17장 9-10절에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요 또 일곱 왕이라"고 한 것을 읽음으로써 일곱 머리는 인류역사에 존재하는 왕국이며 이 왕국을 사단이 다스리게 됨을 이 구절은 가르칩니다. 즉 "일곱 면류관이 있는데"는 아담 후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사단에게 통치권을 허락하셨음을 설명합니다. 열 뿔에 대해서는 계시록 17장 12절에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네가 보던 열 뿔은 열 왕이니 아직 나라를 얻지 못하였으나 다만 짐승으로 더불어 임금처럼 권세를 일시 동안 받으리라"고 한 것은 마지막 때에 이르러 사단의 통치를 상징하며, 계시록 13장 1절에 "뿔에 면류관이 있고"라 한 것으로도 마지막 때에 있을 일로 설명이 됩니다. 짐승이 나면서부터 머리가 있지만, 뿔은 나중에 자라면서 생기게 됩니다.

숫자 7과 10: 숫자 7과 10을 실제적으로 역사상에 있던 왕국을 지적해 보려고 노력하는 성경학자들이 많이 있습니다마는, 그것은 성경적이 아니며, 7과 10은 완전한 수를 지적함을 알게 될 때 성경 말씀이 잘 조화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성경에서 7은 완전함의 표시이며, 어린양이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다(계 5:6)는 표시와 성령을 가리켜 "일곱 영"(계 5:6)이라고 상징한 것이 이것을 설명합니다.

반면에 숫자 10은 숫자 100과 1000의 기본이며, 또 완성을 표시합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절에서 5절의 천년왕국이나, 마태복음 25장의 열 처녀의 비유는 대표적입니다.

요한계시록 12장: (4절) 그 꼬리가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5절)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6절)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1260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4절: "하늘 별 3분의 1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의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1/3이 하나님에게 속한 자들을 상징함을 배운 바 있고, 별은 하나님의 백성의 상징이며, "땅에 던지더라"는 구원을 상실(喪失)하는 상징이 아니겠습니까? 말할 것도 없이 선민으로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던 이스라엘이, 더욱이 하나님께서 배우자(配偶者)라고 부르던 이스라엘이, 그 선민(選民)의 역할을 더 이상 못하게 되는 때의 상징입니다. 그 중의 한 주석으로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롬 11:25)고 하신 것이며, 야곱의 혈통을 받은 이스라엘이 선민으로서의 특별한 취급을 더 이상 받지 못할 것의 기록입니다.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실제로 서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서서 기다린 것은 아니며, 그리스도를 해(害)하려 하던 것의 상징적인 표시이며, 마태복음 2장에 헤롯왕이 아기 예수를 찾아 죽이려 하던 기록을 기억하게 됩니다.

5절: 여자가 낳은 아이가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고 하신 것은 그리스도의 또 한가지 사역(使役)으로 말세에 심판주(審判主)로 오실 것의 상징입니다. 이러한 표현은 요한계시록 2장과 19장에도 기록이 있으며,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리는 결과가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다"는 표현은 심판을 당한 사단과 인류가 더 이상 소망이 없이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을 일의 상징입니다.

6절: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는, 믿는 자들이 이 세상에서 사는 기간을 상징합니다. 고초 많은 이 세상에서의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이스라엘이 출애굽한 후 40년을 광야에서 생활한 역사(歷史)로서 상징한다는 것은 우리가 빈번히 듣는 해석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거듭날 때 세상에서 잘 살고 싶은 욕망은 없어집니다. 그 후 하나님의 백성으로 의롭게 살고자 하는 노력은 세상에서 핍박을 받는 원인이 됩니다. 세상이 광야와 같은 줄 알지 못하고 사는 그리스도인이 있다면, 그는 아직도 하나임의 말씀을 깨닫지 못한 점이 있다는 증거이며, 꽃방석에 앉아서 복음을 전한다는 교역자들이야말로 무엇인가 잘못 되어 있음을 이 구절은 지적합니다.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조용하게 숨어서 살며,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기다렸다가, 마침내 반가운 소식을 받을 것이라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과는 정반대로 하나님의 백성은 거듭난 즉시로 그리스도께서 분부(分付)하신 사명을 가지고 세상에 나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고 하셨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고 하셨습니다. 이 두 가지 상반된 사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습니까? 이 말씀은 세상이 말세에 이르러 극도로 하나님의 도를 떠날 것이며, 그 혼란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들의 신앙이 간직되어 있을 것의 상징입니다.

요한계시록 12장: (7절)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使者)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8절)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9절) 큰 용이 내어쫓기니 옛 뱀 곧 마귀(魔鬼)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쫓기니라

7절: 많은 교회들이 "미가엘"에 대하여 잘못 이해하고, 또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의 번역이 잘못된 것을 깨닫지 못하고, 미가엘은 "천사"라는 이해만 머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희랍어의 "aggelos"는 그 본래의 뜻이 사자(使者)이며, 영문 성경(KJV)에서 188번의 경우 181번을 천사라고 번역에서 오해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자(aggelos)는 천사가 될 수 있지만 그리스도를 사자로 부르셨고(단 3:28), 또한 그의 백성들을 사자로 부르셨습니다(고후 8:23).

천사장 미가엘이 누구냐? 성경에서 미가엘의 기록은 다른 두 곳, 유다서 1장 9절과 다니엘서 10장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유다서 1장 9절에는 "천사장(天使長) 미가엘"로 되어 있어 마치 "하나님께서 보낸 천사 중 우두머리 되는 자"로 이해하기 쉽습니다마는, 다니엘서 10장을 공부함으로써 천사가 아님이 분명해집니다.

다니엘서 10장을 열기 전에, 말라기 3장 1절을 읽으면 우선 그리스도를 "언약의 사자"(aggelos)라고 부르신 것을 발견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aggelos)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 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aggelos)가 임할 것이라"

다니엘 10장 13절에 "군장(君長)중 하나 미가엘"은 유다서의 "천사장 미가엘"이며, 유다서에도 "군장 중 하나 미가엘"로 번역이 되었어야 합니다. 다니엘 10장 마지막 절에는 "그들을 대적하는 자는 너희 군(君) 미가엘 뿐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에서 군(prince)은 통치자를 말하며, 특히 세상의 마지막 전쟁 때 그의 백성을 사단의 손에서 구하시는 통치자이심을 다니엘서 10장은 가르칩니다.

8절: 사단에게 잠시동안 지상에서 인간을 통치하는 권력을 주신 것을 우리가 성경에서 배웠습니다마는(엡 2:2), 사단은 원래 하나님의 백성을 섬기도록 창조된 피조물임을 히브리서 1장 14절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을 다스리며, 그 믿는 자들을 사단의 손에서 지키시는 미가엘은 우리를 섬기는 천사가 아니고, "언약의 사자" 그리스도이심이 분명합니다. 우리가 공부하는 요한계시록 12장에서도 그리스도께서 사단과 싸워 승리하신 기록이 12절에 나오지 않습니까?

"하늘의 전쟁"은, 욥기 1장 6절을 보면 사단이 천국에서 하나님과도 대화를 할 수 있었던 기록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세상에서 전도하실 무렵에 말씀하시기를,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눅 10:18)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전쟁"은 그리스도께서 전도사역을 하시던 기간에 일어난 것임을 알며,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 죽으신 순간이, 완전한 승리로 용을 결박하여 무저갱(無底坑)에 가두신 것(계 20:)을 배우게 됩니다.

또한 9절은 사단의 다른 이름이 용 뿐 아니라, 옛 뱀(아담을 속인), 마귀로 되어 있음을 가르칩니다.

9절: "하늘에서 쫓기어"는 사단이 더 이상 천상에서 하나님과 대화를 할 수 없게 되고, 심판을 받은 것과, 지상에는 소망이 없음을 또한 가르칩니다.

"온 천하를 꾀는 자"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 그리스도인을 제외한 모든 인간이 사단의 통치하에 있으며, 또 사단이 그리스도인에게 거짓을 가지고 유혹하고 있음을 가르칩니다.

 

이대우 드림, 7/12/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