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3장, 짐승의 표 666 (V)

요한계시록 12장: (10절)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가로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었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讒訴)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인간의 구원이 완성되었으며, 창조후 약속으로만 알고 있던 구원이 실제화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구원이 역사상의 사실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능력'으로 나타나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그리스도의 능력을 믿을 뿐 아니라, 그 능력을 우리가 받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딤후 1:7, 엡 3:16). 이 능력은 그리스도께서 우주를 권한으로 다스리시는 능력입니다.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정사(政事)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엡 1:20-22)

위에서 읽는 사건은 과거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지금 우주와 그 우주의 중심인 지구(地球)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능력으로 다스리시는 분임을 우리는 믿지 않습니까?

'짐승의 표 666'을 받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그리스도의 능력을 믿는 믿음이 없는 탓이며, '지상에 천년왕국이 온다'고 믿고 기다리는 사람들도 우리가 지금 받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알지 못하고, 받지 못한 탓입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그리스도께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은 사도들이 받은 권능은 제한된 어떠한 능력이 아니라, 세상을 철장으로 다스리시는 그리스도의 능력입니다. 우리가 거듭난 후 받는 그리스도의 능력은 우주를 다스리시는 권력자의 능력입니다. 그러나 인간들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인간이 알고 있는 능력이라는 것이 정치적 권력 밖에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권력은 잠시적이며, 결국은 망하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능력은 말할 수 없이 큰 능력이며, 이 능력으로 우리는 거듭나게 되며, 또 남을 거듭나게 하는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이 권능의 시작이 AD 33년 오순절 예루살렘에서 3,000명이 성령을 받고, 거듭난 후 세례를 받은 것으로 시작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왕국이며, 예수님께서 복음전파를 하실 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고 하신 그 천국이 건립(建立)되었고,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왕국에서 그 능력을 행사(行事)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상징적으로만 믿고 바라보는 기독교인이 태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의 눈을 여실 때 우리는 실상(實狀)을 보게 됩니다.

"참소하던 자(accuser): 우리는 사단이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 욥을 참소한 사건을 욥기 1장에서 공부한 바 있습니다. 사단은 욥이 선(善)한 사람인 것이 "주께서 그와 그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울로 두루심이 아니니이까"라고 함으로써 욥이 위선자(僞善者)임을 말했습니다. 위선은 욥을 거짓말쟁이라고 한 것이며, 사단의 거짓말은 그 논리가 정연합니다. 세상이 사단을 잘못 알고 있습니다. 세상은 사단이 마귀이며, 머리에 두 뿔을 단 짐승과 같은 폭력자로만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가르치는 사단은 거짓말하는 자(계 21:8)로 되어있습니다. 또한 유다서 9절의, 모세의 시체에 대한 사단의 논쟁(論爭)을 생각한다면, 사단은 상당한 신학적(神學的) 논쟁을 할 수 있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말세에 가장 현저한 사단의 세력이 거짓말로 인간에게 다가오는 것이며, 특히 그들의 신학적 논쟁은 만국(萬國)을 어지럽게 하는 속임수입니다.

그러한 사단이 하늘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리고 사단은 그 영원한 멸망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확정된 것을 알고 있으며, 영원한 멸망의 심판이 그리스도의 재림으로써 이루어짐을 또한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12장 10절의 말씀은 사단의 참소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 즉 거듭난 자들을 이길 수 없게 되었음을 가르칩니다. "우는 사자(獅子)와 같이 두루 다니는 사단"이라 할지라도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은 어떻게 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요한계시록 20장 2절에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1000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라고 하신 말씀이 "쫓겨났고"라 하신 말씀과 일치됩니다.

(11절):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어린 양의 피"는 죽었던 우리를 살리시는 그리스도의 희생이며, "자기의 증거하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 말씀입니다. "그들"이 누구이겠습니까? 거듭난 성도 모두를 가리킵니다.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라고 하셨기 때문에, 순교자들을 생각하고, 나는 거기에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전체를 내 신앙의 원천(源泉)으로 삼는 여러분은 순교자입니다. 캘리포니아의 어떤 교회 목사님이 바른 설교를 하기 때문에 청중의 배척을 받고 교회를 떠나야 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분이야말로 죽기까지 충성을 하신 분이 아니겠습니까?

또한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육신의 삶, 즉 몸의 행실을 죽이고, 영(靈)으로써 사는 것(롬 8:13)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영의 생활은 방언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기사와 이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생활은 하나님의 말씀에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순종하는 생활입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은 다 죽임을 당하게 되어 있으며(계 11:7), 예수님께서 죽어서 열매를 맺음(요 12:24)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죽어 열매를 맺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얘기입니다.

 

(12절):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된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

하나님의 즐거움은 잃은 양을 찾으실 때입니다(마 18:13, 눅 15:10). 세상 사람들은 인간의 공적(功績)을 찬양하며, 노벨상을 주고 그 사람들을 흠모(欽慕)합니다마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입니다.

언제나 우리가 하나님의 참 복음을 전할 때는, 사단에게 갇혀있는 자를 해방하기 위하여 그 감옥을 향해 공격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복음을 듣고, 죄인이 회개하고, 구원을 받을 때, 성령의 검(劒)이 사단에게 매인바 된 쇠사슬을 끊는 것이며(엡 6:17), 우리는 또한 말씀의 검을 사용하는 "증거하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바로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임을 어떻게 압니까?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빌 3:20)라고 하셨습니다. 이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나그네에게 천국의 즐거움이 항상 있을 것입니다 마는, 세상에 소망을 둔 세상 사람들은 머지 않아 슬픔과 화가 있을 것입니다.

땅과 바다의 화: 이사야서 24장 20절에 "땅이 취한 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바다도 온 세상 사람을 말하며 "악인은 능히 안정치 못하고 그 물이 진흙과 더러운 것을 늘 솟쳐내는 요동하는 바다와 같으니라"(사 57: 20-21)고 하심으로써, "땅과 바다"는 전인류를 지적합니다.

사단에 대한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사단은 타락한 천사이며, 타락한 이유를 이사야서 14장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즉 천사는 부리는 영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을 섬기도록 창조되었는데(히 1:14),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어 천하를 다스려 보겠다는 야심을 품었던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 창조의 중심인 인간을 속여, 잠시 지상을 다스리는 권한을 얻었습니다마는, 머지 않아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사단에게 순종한 전인류와 함께 받을 것을 사단은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다른 중요한 사실은 사단이 사람을 통해서 일을 한다는 것이며, 사단은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잘 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약 2:19).

"분 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은, 사단이 남은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그리스도인들에게 도전(挑戰)할 것을 암시합니다.

(13절):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는지라"

(14절):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半) 때를 양육 받으매"

사단이 그리스도를 해(害)하려 하던 일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더 이상 그리스도에게 대항하지 못함을 아는 고로 그리스도에게 속한 교회(여자)를 핍박합니다. 역사상 많은 그리스인들이 피 흘린 기록이 있습니다. 지금도 세계 여러 곳에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한다는 뉴스를 듣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육체적인 핍박은 오히려 복음이 더 전파되게 합니다. 사단의 가장 교활한 핍박은 교회 안에 거짓 복음을 가지고 들어오는 것이며, 참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이 교회 회중에 앉아 있을 수 없게 하는 것이 가장 현저한 사단의 공세(攻勢)입니다. 교회 안에서 기사와 이적을 행하며, 방언을 말하며, 천년왕국을 바라보며, 자유의지를 가르치는 것이 다 사단의 효과적인 공세이며, 이러한 자들이 세계의 기독교 인구를 다 점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기 전에는 이러한 속임수에 다 속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모든 속는 자들이 다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받을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독수리의 두 날개"는 신명기 32장 11-12절에 설명이 있습니다. 독수리의 두 날개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보호 아래 있음을 상징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능력을 받을 때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다"고(사 40: 31) 하셨습니다.

"광야 자기 곳"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계시어 우리를 보호하시는 그리스도의 신앙입니다. "낯을 피하여"는 하나님의 진리가 세상에서 유명한 인생관이나, 철학과는 비교할 수 없이 숨겨져 있음을 가르칩니다.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3년 6개월, 42개월, 1260일 등, 성경 여러 곳에서 읽을 수 있는 기간이며, 3,000명이 구원 받은 오순절에서 시작하여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를 상징합니다. 이 기간 동안 하나님의 백성은 천국에 대한 공부와, 또한 천국 백성이 되는 과정을 실습(實習)합니다.

(15절):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 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 가게 하려 하되"

(16절):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

 

"강 같이"는 사단의 복음이 그리스도의 참 복음과 비슷하다는 것이며,"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요 7:38)고 하신 하나님의 복음도 아니고 "시냇가에 심은 나무"를 자라게 하는 (시 1:3) 물도 아님을 말합니다.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은 "입으로 강 같이 토하여"입니다. 입으로 강을 만들려는 사단의 전략입니다. 이것은 유창한 설교와 그럴듯한 교리입니다. 그러한 교리의 예를 든다면 천년왕국이며, 7년 대환란(大患亂)과 휴거의 교리이며, 그리스도를 내가 영접하여 구원을 얻는다는 자유의지의 교리이며, 방언을 말하고 안수기도 하는 것이 마치 성경의 복음인양 가르치는 현대교회를 말합니다. 서점을 방문하면, 눈을 감고 집어도 이러한 가짜 교리가 손에 잡힙니다. 문제는 기독교의 대부분 인구가 속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같이 강처럼 흘러나오는 속임수, 가짜 복음에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 여인은 그러한 강물에 휩쓸리지 안토록 하나님께서 방도를 마련하십니다.

땅이 갈라져 고라와 그를 따르던 250명을 삼켜 버린 민수기 16장의 기록은 "땅이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땅이 삼키는 것"을 설명합니다. 즉 모세의 지도(指導)를 불만히 여기고 자기가 지도자가 되겠다던 고라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승천 후 약 2,000년간을 사단은 거짓 복음을 가지고 도전해 왔습니다마는, 시기를 따라 그 거짓복음이 더 이상 발전을 못하게 하셨고, 특히 말세에 가서 번창하는 거짓 복음을 또한 땅이 입을 열어 삼키게 하실 것입니다.

"입으로 토한 물"을 다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물이 어디에서 솟아난 것이 아니고 용의 입에서 나온 것입니다. 용의 입에서 나오는 물이 독(毒) 이외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의 걱정을 제(除)하여 주는 것은 사단의 일거일동(一擧一動)이 하나님의 제지(制止) 아래 있다는 사실입니다.

(17절):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여자의 남은 자손""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로 구절 자체에서 설명이 되었고, "남은 자"(remnant)는 아주 적은 숫자를 말하며, 성경 여러 곳에서(사 10:21, 37:31, 46:3 등)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사야서에서 남은 자들을 "야곱의 남은 자", "유다 족속중 남은 자"라고 한 것은 이스라엘을 지적함이 아니요,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구원 받은 자들을 가리킵니다.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호(旗號)로 설 것이요 열방(列邦)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그 날에 주께서 다시 손을 펴사 그 남은 백성을 앗수르와 애굽과 바드로스와 구스와 엘람과 시날과 하맛과 바다 섬들에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사 11:10-11)

위의 구절에서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은 그리스도를 가리키며, 11절에 기록된 나라들의 이름은 온 세계를 대표합니다. 그러므로 "여자의 남은 자손"은 이사야서 11장 11절에서 지적한 온 세계에 흩어져 있는 자들이며, 마치 이 남은 자들이 한 곳에 모인 것 같은 인상을 줍니다마는, 그리스도인들의 영혼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용이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는 이 구절이 KJV에는 없고, NIV를 비롯해서 몇 가지 다른 번역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여하튼간에 이 표현은 용이 실제로 해변에 선 것이 아니며, 사단이 전쟁을 걸 때 반드시 인간(바다)을 통하여야 하며, 또 인간들 속에 하나님의 백성(모래)들이 살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예수님께서 "모래 위에 지은 집"의 비유를 생각한다면, 이 구절은 사단이 멸망을 자처하며 전쟁을 걸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전쟁이 칼과 무기(武器)를 가지고 싸우는 전쟁이 아니며, 사단이 그리스도의 구원 계획을 방해하려는 시도입니다. 그리고 그 복음 전도의 방해를 사단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시도해 왔습니다. 사단은 군왕(君王)들을 이용하여 그리스도인들을 살해했고, 공산당(共産黨)을 이용하여 수 없는 그리스도인을 박해하고 학살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사단의 실패로 돌아갔고, 하나님의 복음은 계획하신대로 전파되었습니다.

말세, 즉 마지막 환난 기간에 있어 사단의 전략은 "거짓의 아버지, 광명의 천사"로 나타나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집회에 나타납니다.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迷惑:deceive)하게 하리라"(마 24:23-24)

위의 말씀은 바로 요한계시록 12장에서 읽는 용의 도전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앞으로 다가올 사건이라기보다는 그리스도의 나심과, 또 마지막 환난 직전까지의 하나님의 교회 즉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경험하는 상태입니다. 마지막 환난을 아마겟돈 전쟁이라고 하며, 이 전쟁이 실재적으로 하나님의 백성과 사단이 이끄는 병사가 칼을 휘두르며 싸울 것이라는 허망한 성경 해석은 사단의 속임수에 넘어간 상태이며, 그러한 성경 해석으로는 요한계시록의 뜻을 알 도리가 없습니다. 요한계시록을 이해하는데 중심이 되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고 하신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이며, 이 명령에 순종하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요한계시록의 뜻을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활 자체가 복음을 전하는 일이며, 참 복음을 전할 때 사단과 대적하고 있음을 말씀을 통하여 알게 됩니다.

이대우 드림, 8/15/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