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3장, 짐승의 표 666(VI)

요한계시록 13장 개요(槪要):

요한계시록 13장의 구절을 자세히 공부하기 전에 먼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짐승의 표 666'의 기사를 한가지 소개합니다.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예언이 이루어졌다는 주장은 수세기를 내려오면서 여러번 선포되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예언이 이루어지는 것을 참으로 믿게 된다. 만일 요한계시록의 저자, 사도 요한이 지금의 세계 정세(政勢)를 볼 수 있다면, 깜짝 놀랄만큼 예언들이 들어맞아 가고 있는 것을 볼 것이다.

성경의 마지막 책 요한계시록이 비유적인 기록임을 염두에 두고 그 내용을 살펴 보자. 사도 요한은 아주 끔찍한 적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을 제 13장에 기록하였다. 이 적그리스도가 잠시동안 행패를 부리는 것이라고 하겠지만, 그는 짐승을 이용하여 모든 인류, 즉 작고 또 큰 사람, 부자이거나 가난한 사람, 자유인이나 노예나 할 것 없이 "짐승의 표"를 그들 오른 손이나, 이마에 받도록 강요할 것이다. 그 짐승의 표가 없이는 아무도 사고 파는 일을 못하게 된다.

이 짐승의 표는 "짐승"이 세상을 통치하고 있다는 것을 기본적으로 과시하는 것이며, 특히 확고한 경제적인 체제(體制)가 장악(掌握)되어 있는 독재(獨裁)를 말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요한계시록이 성경의 일부라는 점을 떠나서, 그 예언의 내용을 분석해 본다면, 이것은 세계 단일(單一) 경제체제(經濟體制)를 말하는 것이며, 이러한 통제는 어떠한 개인이 어떻게 해볼 여지가 없는 확고한 실제적인 현상이다. 사실상 적그리스도는 한 전체주의(全體主義) 통치자의 상징적인 이름이 아니겠는가?

요한계시록에는 "표"는 "찍어 박는 영상(image)"이라고 한다. 이 기록을 추상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역사상 처음으로 정보통신과학(情報通信科學)이 상상할 수 없이 발전하였고, 그 발전의 속도는 지수함수(指數函數)적인 발전을 했다. 이것이야말로 서기 2000년에 가서 실제화되는 것이다. 전자정보통신망의 발전은 역사상 생각해 보지도 못했던 엄청난 양의 정보를 지구상에서 수집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기술의 발전은 사물을 탐지하고, 종류를 가려내고, 수집한 데이터를 통할(統轄)하는 중앙집계(中央集計) 관리소가 설치됨으로, 시민의 사생활(私生活)을 샅샅이 알아 볼 수 있게 만든 것이다. 그 뿐 아니라 새로 발명된 이 장비는 사람 몸 속에 장치할 수 있는 컴퓨터 칩(chip)이며, 또 그것이 쉽게 '짐승의 표'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지금은 "종말이 왔으니 회개하라"고 쓴 큼직한 기치(旗幟)를 들고 가두에서 외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지금 개발하고 있는 기술 자체가 종말이 가까왔음을 실제로 보여 주기 때문이다. 성경에 기록된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들이 이 사실을 해석하는데 문제점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체에 집어 넣는 컴퓨터 칩이나, 전자정보망 기술의 발달은, 개인의 사생활을 쉽게 박탈하게 되며, 이러한 가능성은 온 지구상에 사는 모든 인간에게 적용이 된다. 요한계시록의 기록은 믿는 자들이 로마 네로왕 폭정(暴政)을 견딜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씌어진 글로 신학자들이 보고 있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오늘날 당신이 읽고 있는 바로 이 글이, 지금 동일한 폭정을 견디기 위한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요한계시록이 종말을 예언하는 책이든, 폭정자를 지적하는 상징적인 글이든간에, 이 계시는 인도적인 문제를 당면하는 실제적인 사건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한 개인의 권리를 완전히 박탈하는 것이며, 털레미터(telemetry:원격[遠隔]) 측정법을 사용하는 권력자들의 전체국가(全體國家)의 통치체제의 건립을 말한다."

위의 글은 인터넷 Web site에서 "짐승의 표 666"을 방문했을 때 나타난 수많은 글 중의 하나입니다. 아마도 이 글의 저자(著者)는 기독교계의 한 지도자이며 지성적이며, 이성적인 사람으로 추측이 됩니다. 그 내용이 그럴듯하며, 잘못된 점을 찾을 수 없는 것 같이 생각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잘못된 성경 해석이며, 그 잘못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살펴 보겠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예수님께서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막 4:34)라 하신 말씀을 알지 못하거나, 믿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짐승의 표"라고 하신 말씀 중에 "짐승"과 ""라는 단어가 성경에 어떻게 씌어졌는지를 우선 찾아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개발되고 있는 기술"이 짐승이 될 수 있다면 최소한 한 마디라도 성경말씀으로 뒷받침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다음, 요한계시록이 "로마 네로왕 폭정을 견디기 위하여"라는 신학적(神學的) 견해가 잘못되었다는 점입니다. 신앙인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쓴 성경이지만, 그 뜻을 알기가 어려워 내용을 신학적인 견해로 답을 얻겠다는 가엾은 생각입니다. 성경 말씀을 깨닫게 되는 유일한 길은 예수님께서 직접 "알아들을 수 있는대로 말씀을 가르치셔"(막 4:33)야 비로소 알게 됩니다. 신학(神學)이 "하나님을 배우는 학문"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마는,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을 책상 위에 놓고 서로의 의견을 왈가왈부(曰可曰否)하는 것이 신학이 아닙니까?

신학적 견해가 아니라 할지라도 성경말씀을 사람의 생각대로 해석하려는 것이 기독교인들의 본성입니다. 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성경에서 "금식(禁食)"이 무슨 뜻이냐 하는 얘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금식"이 "음식을 폐하는 것"으로 한문(漢文) 자체가 설명을 하니, 아마도 대개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만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정의하는 금식은 다릅니다.

"이것이 어찌 나의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그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悅納)될 날이라 하겠느냐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壓制)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주며 유리(流離)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骨肉)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사 58:5-7)

바리새인들이 이 금식의 뜻을 알았던들(마 9:15, 눅18:12), 한국 교회의 금식가(禁食家)들이 이 구절을 읽고 공부하였던들, 금식병(禁食病)이 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경이 정의하는 금식을 위의 말씀에서 배우시기를 바랍니다.

요한계시록 13장도 그 참 뜻을 성경에서 찾아 보아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13장: (1절)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僭濫)된 이름들이 있더라"

바다에서 나오는 짐승이 12장에서 배운 적이 있는 용의 모습과 같이 뿔이 열이며, 머리가 일곱입니다. 그러나 다른 점은 용은 머리에 면류관이 있으나, 짐승은 뿔에 면류관이 있습니다. 우리는 요한계시록 17장의 설명을 통해서 "용의 일곱 머리"가 인류역사와 함께 존재한 사단의 사역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열 뿔에 대해서도 요한계시록 17장 12절이 설명을 합니다.

"---열 뿔은 열 왕이니 아직 나라를 얻지 못하였으나 다만 짐승으로 더불어 임금처럼 권세를 일시 동안 받으리라"

그러므로 12장에서 배운 바 있는 용의 활동은 여인이 아이를 낳던 때 이전과 또 그 후, 즉 전 인류역사에 존재하는 사단의 활동을 말하며, 뿔에 면류관을 쓴 짐승은 인류 마지막 때에 나타날 현상임을 요한계시록 17장은 설명합니다.

"바다에서 나오는 짐승": 성경에서 바다는 인류를 가리키거나, 지옥을 가리킴을 알 수 있습니다. 이사야서 57장 20절은 구원 받지 못한 악인(惡人)을 바다와 같다고 했으며, 선지자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지낸 경험은 "주께서 나를 깊은 바다 가운데 던지셨으므로"(욘 2:3)라고 함으로써 바다는 지옥을 상징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가 당할 사흘 동안의 고난을 요나가 사흘을 바다 속,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과 비교하여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고 하심으로 "바다"나 "속"이 지옥을 상징함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므로 "바다에서 나오는 짐승"은 모든 인류와 사단이 합작이 되어 있음을 가르치며, 인간 없이는 사단의 사역(使役)이 있을 수 없으며, 인간이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지 않는 한 영원히 사단과 함께 지옥에서 보내게 될 것을 가르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뿔에 면류관을 쓴 짐승은 말세에 나타날 사단의 모습이며,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 3:18)고 하신 말씀이 모든 인류가 사단의 통치 아래 있으며, 또한 영원히 사단과 같이 형벌을 받게 되어 있음을 설명합니다.

"머리에는 참람된 이름들이 있더라"에서 참람(僭濫)된 이름은 하나님의 역할을 모방(模倣)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남용(濫用)하는 것입니다. 왜 그 이름이 머리에 있겠습니까? 사단은 그리스도를 모방하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28장에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대제사장(大祭司長)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입을 옷과, 또 그 옷에 장식품과, 보석들과, 에봇 등을 만들어 입고, 붙이도록 자세한 명령을 하셨습니다. 이러한 옷과 장식품은 아론이 성소에 나아갈 때 입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그런가 하면 36-39절에는 머리에 쓸 관(冠)위에 "여호와께 성결(聖潔)"이라고 새긴 패(牌)를 관 위에 달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야하는 이유를 38절에 설명하셨습니다.

"이 패가 아론의 이마에 있어서 그로 이스라엘 자손의 거룩하게 드리는 성물의 죄건(罪愆)을 담당하게 하라 그 패가 아론의 이마에 늘 있으므로 그 성물을 여호와께서 받으시게 되리라"(출 28:38).

위의 구절에서 이마에 붙이는 패는 아론이 누구인가를 표시하셨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자손의 거룩하게 드리는 성물의 죄건을 담당하게 하라"고 하심으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심을 상징하였고, 그렇게 함으로써만 아론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었습니다.

이 구절이 어떻게 "참람된 이름"을 설명하는가 라고 질문하실 것입니다. 참람(blasphemy)의 기록을 성경 몇 구절에서 찾아봄으로 그 뜻을 이해하게 됩니다. 이사야서 37장 3절에 이 참람이라는 단어가 한국 성경에는 "능욕(blasphemy)"으로 번역이 되었고, 바로 유대 나라가 앞으로 당할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했습니다. 그 하나님의 심판이 어떠한 연유(緣由)로 오게 되는가를 우리는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짐승의 머리에 씌어진 "참람"은 하나님을 거역한 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사단의 본성을 이해함으로써 "참람"의 뜻이 더욱 분명해집니다. 다시 말하면 사단은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려고 시도(試圖)한(사 14:) 천사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말세에 나타날 사단의 사역은 "어떻게 하면 내가 그리스도인양 보일까"하는 작전을 쓰는 것이며,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아론과 같이 이마에 패를 "거룩하게 드리는 성물"로 과시하는 것입니다. 수많은 군중 앞에서 성경을 손에 들고 휘둘러 가며,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인양, 군중의 높임을 받는 전도자들을 생각해 보십니까? 사단은 적그리스도입니다.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요일 4:3)고 하셨습니다. 성경말씀을 사람의 생각대로 가르치는 모든 교역자들입니다. 자기도 알지 못하고 가르치니, 이것이 또한 짐승의 표시입니다. 하나님에게는 가짜 사신들이며, 이들이 "광명의 천사"(고후 11:14-15)들입니다.

(2절):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獅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이 구절은 짐승에 대한 설명을 잘 하고 있습니다. 짐승은 사단이며, 사단을 상징하는 짐승 중에 뱀이 항상 많이 씌어지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죄수가 되어 로마로 가던 중 배가 파산되어 멜리데 섬에 착륙하고, 거기서 불을 피웠을 때 독사가 나와 바울의 손을 물은 적이 있습니다(행 28:1-6). 그 때에 그 독사를 짐승이라고 불렀습니다(5절). 사단은 독사입니다. 사단의 사역은 독소(毒素)를 인간에게 집어넣는 것이지만,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막 16:18)라고 하심으로써 자기의 택하신 백성이 사단의 해를 결코 받지 않을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은 사단의 또 다른 성질을 가리킵니다. 그것은 표범과, 곰의 발과, 사자의 입입니다.

표범: 표범에 대한 성경의 기록은 여덟번이 있으며, 모든 경우가 미끼를 기다리는 맹수(猛獸)를 가리키며, 하박국 1장 8절에는 "그 말(馬)은 표범보다 빠르고"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사단을 표범으로 한 상징은, 사단이 인간을 신속하게 복종시켜 노예로 만드는 것을 상징합니다.

곰의 발: 잠언 28장 15절에 "가난한 백성을 압제하는 악한 관원은 부르짖는 사자와 주린 곰 같으니라"고 하였고, 다니엘서 7장에는 바다에서 나오는 짐승의 모습이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 짐승과 대등합니다. 다니엘서 7장 5절에 "다른 짐승 곧 둘째는 곰과 같은데 그것이 몸 한편을 들었고 그 입의 잇사이에는 세 갈빗대가 물렸는데"라고 함으로써, 아담의 갈빗대로 하와를 만드신 인간 창조의 말씀을 기억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하와는 인류의 어머니라고 하신 것을 생각하면, 다니엘서 7장 5절이 구원 받지 못한 인류가 사단에게 먹힘을 당하고 있음을 가르칩니다.

"발은 곰의 발"이라고 한 것을,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엡 6:15)라고 하신 것과 비교하면, 사단이 전하는 것을 평화의 복음이라고 주장하지만, "가난한 백성", 즉 인간을 압제하는 사역임을 가르칩니다.

사자(獅子)의 입: 성경에서 사자는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야곱이 임종시(臨終時) 자기의 열두 아들을 축복하였을 때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비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 갔도다 그의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창 49:8-9)고 함으로써 그리스도께서 구주이시며, 심판주로 오실 것을 상징했습니다. 그러나 사단은 그 사자의 입을 흉내냅니다. 우리 구원의 원천(源泉)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모방(模倣)하여 가르치는 거짓선지자의 상징입니다.

이러한 세 가지 사단의 성질(性質)은 "거짓의 아버지", "광명의 천사"로 나타날 것의 상징이며,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고 함으로써 인간을 이용하여 세상을 다스리고 있음을 또한 가르칩니다.

(3-4절):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르고 용이 짐승에게 권세(權勢)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가로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머리 하나가 상하여"는, 에덴 동산에서 하와를 속인 사단에게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라고 하신 예언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이루어졌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승리로, 사단의 노예였던 그리스도의 백성을 해방하고, 죽음에서 살리신 것(히 2:14-15)은 사단의 머리가 상하여 죽게 된 것과 잘 대조가 됩니다. "상처가 나으매"는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가 되었음의 암시이며, 그 때에 사단의 상태를 말하며, 이것은 "무저갱(無底坑)에 던져 잠근 사단을 잠시 놓은"(계 20:3) 상태를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말세에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눈을 멀게 하시는 때 입니다(습 1:17, 사 59: 10). 사단의 상처를 못 보는 것이 말세의 기독교인들의 상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사단을 경배하는 것이 말세입니다. 군중을 미혹하는 집회가 사단의 집회임에도 불고하고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는 때가 말세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르고"라고 하신 것의 설명입니다.

"용에게 경배"는 실제로 머리를 숙여 경배하는 것이 아니며, 인간들이 사단의 가르침을 마음에 받아들이는 상태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마 6:24)고 하신 것은 우리의 마음과 행동이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아닐 때에는 사단을 섬기는 것임을 가르칩니다. 쉬운 예로, 수 만명이 광장에 모여서 교황의 축복을 받는다고 기다리는 무리들이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겠습니까? 그들은 다른 주인을 섬기는 것이며, 그 다른 주인은 사단 밖에 없습니다.

"권세를 주므로"는 설명할 필요도 없이, 세상의 악이 번창하고, 거짓 가르침이 교회를 독점하는 상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기록된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고전 1:18-19)고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때를 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5-6절): "또 짐승이 큰 말과 참람된 말(blasphemy)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 두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훼방(毁謗)하되(blaspheme)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훼방하더라"

참람된 말: "참람된 말"은 사단이 에덴동산에서 처음 시작했습니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 3:4-5)고 했습니다. "참람된 말"은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입니다.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17)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도록 한 것이 사단의 수작입니다. 사단이 "참람된 말"을 계속하여 인간을 하나님과 격리시키는 것이 인류의 역사(歷史)입니다. 근래에 와서 가장 큰 "참람된 말"은 "진화론(進化論)"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진화론의 현상을 미리 아시고 히브리서 11장에 우리 믿음의 조상들을 소개하면서, 그 믿음의 첫 디딤돌이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히 11:3)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이 24시간을 하루로 한 6일 동안에 창조된 것이 아니라, 6000년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신앙고백을 여러분들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참람된 말"을 하는 자들입니다.

한동안 세상에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하는 공산당의 세력이 세상을 한꺼번에 집어 삼키려던 때가 있었습니다. "참람된 말"을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참람된 말"을 하는 자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범종교(凡宗敎)의 주장이 그것이며, 세계 단일(單一) 정부(政府)를 주장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참람된 말"은 위의 예와 같이 천하가 잘 아는 활동들만을 지적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슨 행사나 그 언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부정하거나, 하나님께서 성경에 정의해 놓으신 말씀 이상의 것을 운운할 때 "참람된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내 걸고 사람의 생각을 가르치는 모든 교역자들이 "참람된 말"을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인간의 생각으로 꾸며낸 천년왕국, 7년 대환란, 휴거, 짐승의 표 666 등등이 어떻게 "참람된 말"이 아니라고 증명하겠습니까?

만일 "성경이 그렇게 말했노라"고 하면서 그 말을 성경 말씀으로 뒷받침하지 못할 때는 "참람된 말"을 하는 것입니다.

훼방하다: 한국 성경이 "참람된 말을 하는 것"을 "훼방하다"라고 번역했습니다. 훼방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이름과 그의 장막"을 훼방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그 "장막"이란 뜻이 "하늘에 거하는 자"라고 하심으로 사단의 대상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 장막에 대하여 설명한 고린도전서 3장 16-17절은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聖殿)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聖靈)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고 하셨습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의 성전인 하나님의 백성을 "훼방하는 자들"을, "더럽히는 자들"이라 하셨고, 그 훼방하는 결과로 멸망을 받을 것을 가르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이라는 말씀은 구원을 받은 자들이 온전히 보호되어 있음을 또한 가르칩니다..

(7-8절):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錄名)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敬拜:warship)하리라"

"권세를 받아"는 말세에 하나님께서 사단을 잠깐동안 놓아두는 상태입니다. "성도들과 싸워"는 주먹질을 하면서 싸우는 것이 아니며, 말씀을 두고 견제(牽制)하는 것이며, 사단이 이기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 사람들이 더 이상 교회에서 견딜 수 없게 됨을 가르칩니다. 그들이 대항하여 싸우는 성도들이 누구입니까? 에베소서 2장 10절에 그 설명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선한 일"은 하나님의 일이며, "지으심을 받은 자"는 새로 거듭난 자들이며, 이들은 항상 사단의 대적이 되고 있습니다.

생명책에 녹명: 생명책에 대하여는 여러번 성경에 기록되어 있으며, 두 가지 관점에서 보고 있습니다. 시편 69편은 창조(創造)에서 본 관점이며, 다윗은 "저희를 생명책에서 도말하사 의인과 함께 기록되게 마소서"(28절)라고 함으로써, 인간이 영생하도록 창조를 받아 생명책에 모두가 기록되었었으나, 아담 후 그 책에서 제(除)하여 버림을 가르칩니다. 다른 한편, 하나님의 생명책이 있어 인간이 구원을 받을 때마다 그 사람의 이름을 생명책에 기록하시는 것으로 계시록 13장 8절은, 구속(救贖)으로 본 관점에서 가르칩니다. 여하튼 간에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생명책에 기록되었으며, 구원 받지 못한 자들의 이름이 기록된 책이 또 따로 있음을 요한계시록 20장 12절은 가르칩니다.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고 하신 것은 인간이 창조주와 완전히 격리되는 상태입니다. 세상에 "경배를 받을 분"은 하나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두루 살펴 보십시오. 물질문명(物質文明)을 경배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컴퓨터가 짐승이라고 하는 말이 결코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가 하면 세상에 하나님을 믿는 종교(宗敎)라고 하는 것이, 원수를 갚는 것과 살상(殺傷)하는 것으로 정의하는가 하면, 사람에게 휘황찬란(輝煌燦爛)한 옷을 입혀 놓고, 신인양 그에게 경배하고 있습니다. 그 뿐입니까? 하나님의 참 모습을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 기독교를 보십시오. 모두가 사람의 생각을 믿는 때 이니, 사단이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고 있음이 현저하게 눈에 보이며, 극소수의 하나님의 백성을 제외하고는 누구나 다 사단에게 경배하고 있음을 쉽게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요한계시록 13장의 사건이 장래에 있을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지금 되어지고 있는 현상입니다.

다음달에 공부를 계속하겠습니다.

이대우 드림

노동절 (9/7/98)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