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3장, 짐승의 표 666(VIII)

 

요한계시록 14장의 개요

요한계시록 14장을 읽는 즐거움은, 타고 가던 기차가 길고 긴 터널을 지나자 마침내 찬란한 밝은 햇빛을 즐기는 기분입니다. 그리스도에게 속한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 영광을 누리며, 또한 그들의 영원한 구원이 절대적으로 보장되어 있음을 발견하는 놀라운 순간입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진하여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시고, 우리의 죄값을 치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12-13장에서 배운바와 같이 그리스도를 대적한 사단과, 그에게 속한 인류가 마지막 심판을 받는 때입니다.

1-5절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충성을 다하여 살아 온 14만 4천의 성도들과 함께 영원한 천국이 시작되는 광경(光景)입니다.

6-13절은 차례로 세번 사자(使者)를 보내어 영원한 복음을 선포하고, 바벨론과 그 곳에 사는 인간들 즉, 이마에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이 하나님의 심판 받을 것을 선언합니다. 마지막 환난이 지나고 영원한 멸망이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14-20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심판의 광경입니다. 이 땅, 추수마당에 마지막으로 내려질 하나님의 끔찍한 진노를 알게 되는 순간입니다.

14장 1절,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144,000)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144,000: 숫자 14만 4천의 뜻이 요한계시록 7장 5-8절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144,000은 12X12000이며, 12는 이스라엘의 지파의 수이며, 12,000은 각 지파중 이마에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표를 받은 자들의 숫자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뜻 야곱의 혈통을 받은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것인가? 라고 질문할 것입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성경에는 여러번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으로 상징합니다. 요한계시록 7장에 이스라엘의 12지파중 단지파가 빠져있음은 이 12지파가 상징임을 암시하는 한가지 기록입니다. 14장의 144,000은 12X12X1000으로 보며, 구약시대에 구원을 받은 자들과, 신약시대에 구원을 받은, 역대에 구원 받은 모든 믿는 자들(1,000)을 상징함이 틀림 없습니다.

그들은 다 "어린양의 이름과 아버지의 이름"이 그들 "이마"에 씌어져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마는, 요한계시록에 여러번 "어린양"을 선택하였고, 그 뜻을 찾아 깨닫고 음미할 것을 암시합니다. 그 "어린양"은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어린양"이십니다. 그 "어린양"은 십자가를 홀로 지신 주님, 우리를 만드신 창조주, 우리의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이사야 63장 1-6절에는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홀로 당하셨음을 미리 예언했습니다. 십자가를 홀로 지셨다는 뜻은 인간이 구원을 받는 과정에 사람의 행위가 조금도 관여되지 못함을 가르칩니다.

그리스도의 또 다른 이름은 "알파와 오메가"이며, 그 뜻은 우리의 구원을 창세 전에 계획하시고 끝까지 홀로 시행하심을 가르칩니다. 여러분께서 그리스도의 구원 계획 속에 있음을 발견하십니까?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시온산에 나란히 서 있는 144,000중에 한 사람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신약성경에 "이마"라는 단어가 요한계시록에만 8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7장 3절에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seal)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고 하신 말씀이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이 "이마"에 씌어지는 뜻을 잘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과정입니다. 마치 농장에서 쇠등에 화인(火印)을 찍어 주인에게 속한 것을 분명하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원을 보장하시고 사단이 손을 대지 못하게 하시는 과정입니다. 다른 한편 사단은 사단대로 자기에게 속한 인간들의 이마에 인(印)을 치는 것을 지난번 공부에서 배운 적이 있습니다.

시온산: 시온산이 어디겠습니까? 천국의 한 동의어(同義語)입니다. 시온산은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다윗왕의 성읍(城邑)이며, 이 성읍을 예루살렘이라고도 합니다. 천국의 묘사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성경에 기록하였습니다마는, 세상 풍습 밖에 알지 못하는 우리의 지성으로 어떻게 천국을 다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나를 구원하신 그리스도께서 영원히 나와 함께 계실 것이라는 분명한 표현보다 더 영광스럽고 마음 든든한 묘사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2절,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은데 내게 들리는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의 그 거문고 타는 것 같더라"

"하늘에서 나는 소리"가 누구의 음성이겠습니까? "많은 물소리"가 그리스도의 음성임을 요한계시록 1장 15절에 이미 기록하였습니다. "많은 물소리"는 말할 것도 없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하신 강같이 흘러 나오는 생명수(生命水),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그런가 하면 그 음성은 뇌성(雷聲)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 6장 1절, 10장 3-4절, 11장 19절에 그 설명이 있습니다. "어린양이 일곱 인 중에 하나를 떼시는 그 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우뢰 소리같이 말하되"라고 하심으로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합니다.

"거문고 타는 자"는 시편 33편에 설명이 있으며, 그들은 의인들이며, 정직한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거문고는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씌어졌습니다(시 98:5, 149:3).

이 광경은 또한 마지막 심판날의 광경이며, 짐승의 표를 이마에 받은 모든 인류가 그리스도의 무서운 심판을 비로소 알게 되는 날이며, 그리스도의 택하심을 받은 144,000은 감사와 찬송을 금하지 못하게 되는 날입니다.

3절,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 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144,000)인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천국의 합창, 새 노래: "저희"는 어린양과 함께 서 있는 구원을 받은 자들이며, 새 노래는 그리스도와 구원 받은 자들의 합창(合唱)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날을 기뻐하시는 이유를 스바나 3장 17절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마지막 심판날은 하나님께서 그의 천지 창조를 완성하시는 날이며, 창조의 목적이 결실을 보는 날입니다. 그의 피조물 중에 택하심을 입은 백성들보다 더 귀한 피조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날을 기뻐하시고 노래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알듯도 합니다.

새 노래는 시편 98편에 그 가사가 있습니다.

"---오른 손과 거룩한 팔로 자기를 위하여 구원을 베푸셨도다 여호와께서 그 구원을 알게 하시며 그 의를 열방의 목전에 명백히 나타내셧도다"라고 시작하여 "저가 땅을 판단하려 임하실 것임이로다 저가 의로 세계를 판단하시며 공평으로 그 백성을 판단 하시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40편에도 "새 노래"에 대하여 기록이 있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堅固)케 하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모두가 하나님의 구원 받은 백성들이 마침내 구원의 결실을 보고 경험하는 놀라운 순간을 묘사한 노래가 아니겠습니까?

새 노래를 배울 자들은 144,000밖에 없다고 하신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말 할 것도 없이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을 감사하고 찬양할 사람들은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 외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 천국에서의 합창이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불려진다고 했습니다. "네 생물"은 "사자와 같고, 송아지 같고, 얼굴이 사람 같고, 날아가는 독수리 같다"고 하심으로(계 4:7) 하나님 자신의 성품을 설명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장로"들은 "24 장로"들이며, 이들은 "흰 옷을 입고 머리에 생명의 면류관을 쓴"(계 2:10, 3:4) 자들이며, 이들은 모든 믿는 자들을 상징함을 요한계기록 2-5장을 공부함으로써 알게됩니다.

이 마지막 심판날의 광경을 공부하면서 깨닫는 것은, 이 날이 오면 더 이상 구원을 받을 기회가 없어지는 때입니다. 내가 144,000에 속한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인가를 지금 알아보아야 할 때입니다. 특히 참복음이 아닌 것을 믿고 따라가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경고이며, 열심을 다하여 내가 믿는 복음이 하나님의 말씀만 믿는 참 복음인가를 알아 보아야 할 때입니다.

4-5절,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貞節)이 있는 자라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정절이 있는 자: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는 구원 받은 사람들을 가리킴이 틀림 없습니다마는, 이것이 육신의 생활이 정결하고 음행하는 일이 없는 사람들을 지적하는 것으로 알기 쉽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영적인 음행(淫行)을 지적하십니다. 우리가 세상과 벗이 되는 것을 음행하는 것으로 성경은 가르칩니다. 야고보서 4장 4절은,

"간음하는 [남자들과]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고 함으로써 세상과 벗이 되는 것을 간음하는 것으로 가르칩니다.

(♣ 개역 성경에 "남자들과"가 빠져 있습니다.)

영적 생활에서 그리스도인들은 거듭나는 순간 세상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고 사는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하셨습니다(고후 5:17). 그렇다고 해서 절간에서 수도(修道)하는 중과 같은 생활을 한다는 것은 아니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은" 사람들이며,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볼 때에 완전히 정결함을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의의 옷을 입히시기 때문입니다(계 6:11, 7:9). 또한 예수님께서 친히 거듭난 사람들의 동반자가 되심으로 사단이 손을 대지 못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요 10:28). 이 말씀은 거듭난 자들은 절대로 거짓 가르침에 속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여러분께서 세상에 흔한 잘못된 교리를 배척할 수 있는 용기는, 자신의 힘이 아니며,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지키고 계시는 증거입니다.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삶을 완전히 주관하심을 가르칩니다. 그리스도만을 의지할 때 우리 일생이 잘못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은 말씀의 뜻을 정확하게 알기 위하여 말씀만을 의지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이 144,000입니다. 이 144,000은 하나님께서 창세 이전에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자들이며,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이유는 이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어린양을 따르는 자들은 그리스도께서 구원하시기로 예정하신 사람들입니다. 여러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예정하신 것에 대하여 반의(反意)를 제의합니다. 특히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고 하신 말씀을 바로 깨달아야 하며, 지금까지 아직도 예수님께서 오시지 않은 것은 예정하신 대로 "잃은 양"들을 찾고 계심을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아무도"는 "택하신 백성중에 아무도"라는 뜻입니다.

처음 익은 열매: "처음 익은 열매"는, 구약의 율법 중에 처음 추수한 곡식을 성전에 드리는 칠칠절(七七節:맥추절)을 지키도록 명령하심으로(출 34:22), 택하심을 입은 하나님의 백성이 천국에 들어갈 것을 상징했습니다. 또한 그것을 설명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첫 열매가 되셨고, 그에게 붙은 자들이 또한 첫 열매라고(고전 15:22-23) 성경은 가르칩니다. 우리가 또 기억할 것은 하나님께 바치는 처음 익은 열매가 거룩하다(롬 11:16, 민 18:13)는 점입니다.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는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요 8:44)라고 하신 것을 설명합니다. 사단은 거짓의 아비이며, 또한 그에게 속한 인류가 거짓의 아들들임을 가르칩니다. 거듭난 자들이라고 해서 거짓말을 해 본 일이 없는 사람을 지적하는 것은 아니며, 생의 모든 것을 그리스도에게만 의지하는 것을 가르칩니다. 성경은 또한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흠이 없는 백성으로 만드는 과정이라고 했습니다.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5:25-27)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교회에 속한 거룩하고 흠이 없는 그리스도의 백성입니다. 그 교회는 건물과 교인의 명단으로 된 것이 아니며, 보이지 않는 천국의 교회입니다.

6절,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천사와 사자(使者): "천사"가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천사가 누구인지 알아보기 전에 천사의 원어, 희랍어 aggelos에 대하여 살펴 보겠습니다. aggelos를 "천사"로 잘못 번역한 탓으로 말씀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히 있습니다. 신약 성경에 aggelos가 188번이나 씌어진 것은 그 뜻이 구원 계획에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가리키며, 그 번역은 천사(天使:angels:181번)와 사자(使者:messenger:7번)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aggelos의 번역을 모두 사자로 하는 것이 바른 번역이라고 믿게 됩니다. 특히 요한계시록에 천사에 대한 기록이 68번이나 나오며, 사자로 번역하는 것이 계시록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KJV가 aggelos를 천사로 번역한 것을, 개역 성경은 최소한 30번 이상을 사자로 번역했습니다. 개역 성경이 KJV보다 잘 번역된 점을 몇 가지 들 수 있다면, "사자"라고 번역한 것이 그 중에 하나가 되겠습니다.

KJV에서 "사자"라고 번역한 곳을 찾아 보면, 천사라는 번역이 잘못된 점을 알게 됩니다.

처음 예는, 세례 요한을 가리켜 사자(aggelos)라고 한 점입니다(마 11:10, 막 1:2, 눅 7:27). 번역자들이 이 구절들에서 aggelos가 세례 요한을 지적함이 분명했기 때문에 "천사"로 번역할 수 없었습니다. 그 다음 예는 야고보서 2장 25절입니다.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aggelos)를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라고 했으며, 기생 라합의 얘기에는 분명히 여호수아가 정탐꾼(偵探軍)으로 보낸 두 사람을 사자(aggelos)라고 불렀습니다. 이상 두 가지 예로서는 aggelos는 "소식을 전하는 사람"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름을 가진 천사, 영으로 지으신 하나님의 피조물, 가브리엘도 천사(aggelos)입니다.

또 한편 요한계시록에서 미가엘이 천사가 아니며 그리스도 자신임을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천사장 미가엘"은 오역(誤譯)이며 "사자(使者) 중 사자(使者)이신 미가엘"이 바른 번역임을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이상의 사실만 가지고도 aggelos를 번역할 때는 가브리엘과 같은, 영의 피조물인 천사인 경우를 제하고는 반드시 사자(messanger:aggelos)로 번역하고 이해해야 된다는 결론을 얻게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기쁜 복음의 소식을 가지고 오신 사자 중의 사자이십니다. 세상에 이 기쁜 소식을 가지고 나가 전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또한 사자(aggelos)들입니다. 이러한 결론에서 6절의 말씀을 다시 읽으면, "공중에 날아가는 천사"는 "천사"가 아니며 "사자"이며, 그 사자는 그리스도 자신이심을 알게 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영원한 복음을 가진 분"은 천사일 수 없고, 그리스도일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6절에서 "다른 천사(사자)"라고 한 것은 144,000이 또한 사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은 온 세상에 사는 인간들을 지적한 것이며, 복음이 인종의 차별 없이 만방에 전해짐을 가르칩니다.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는 잘못된 번역이며, "천국 하늘을 날아가는데:fly in the midst of heaven" 라고 번역해야 될 것입니다.

7절,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심판하실 시간: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고 하신 이유를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완성되었으며, 하나님의 잃은 양들이 남김 없이 구원을 받는 때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가르치지 못하고, 하나님의 사랑만 운운하던 교회가 하나님의 진노를 눈앞에 보는 때입니다. 이 심판날을 성경말씀에서 공부하였던들 이날을 위하여 준비하였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이날을 위하여 준비를 해야 합니까? 우리의 구원을 확인하는 일 밖에 없습니다. 성경말씀 외에는 우리의 구원을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우리가 아직도 구원 받지 못했다면, 심판날의 무서움을 피부에 느껴야 할 것이며, 하나님께 호소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라고 하신 말씀은 우리가 죽기 전에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심판을 면해야 된다는 경고가 아니겠습니까?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생전에 창조주를 예배한 적이 없고,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모든 인류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인류가 비로소 창조주가 계심을 알게 되고, 또 경배하게 됩니다. 이 심판날에 대하여는 빌립보서 2장 10-11절에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끓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심판날이 된 후에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시인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미 늦습니다.

"물들의 근원"을 피조물인 "하늘과 땅과 바다"와 함께 기록하셨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하나님께서 피조물과 함께 복음을 주셨습니다. 이 복음은 창조와 동시에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다 예외 없이 이 복음을 거절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미리 예정하신 뜻을 따라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8절,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무너진 바벨론: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는 사단의 성읍, 인류가 사는 지상이 끝을 보는 광경입니다마는, 그 멸망이 집들과 산들이 무너지는 것만 말하겠습니까? 이 멸망이야말로 하나님을 거역하면서 세워진 문화, 문명의 바벨탑, 하늘을 치솟는 인간들의 지혜가 아니겠습니까? 요한계시록 18장은 이 바벨론에 대하여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장의 바벨론에 대한 몇가지 설명을 적어 보겠습니다.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2절)은 구원 받지 못한 인간의 모이는 곳 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순간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음을 받는다고 했으며, 그 후 곧 천국의 삶이 시작됩니다.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은 송장을 파먹는 까마귀 류(類)의 새가 모이는 곳이며, 멸망이 다가오는 곳입니다. 그 멸망의 원인이 "음행"한 탓(3절)이라고 했으며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다"고 하셨습니다. "진노의 포도주"는 포도를 밟아 짜는 광경으로, 하나님의 크나큰 진노를 가르칩니다(사 63:2-6)

"음행"은 사단과 짝이 되는 것이며, 이것은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이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는 것과 대조가 됩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인류의 음행을 참지 못하시는 공의의 심판이 십니다. 하나님은 인류를 자기의 동반자, 친구로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또 바벨론은 "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바벨론은 인류 모두가 장사하는 곳입니다. 인류는 사고, 팔고, 사치하고, 먹고 마시면서 백년대계를 땅에 세우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는 땅을 어미(mother)라고 부릅니다.

9절-10절, "또 다른 천사 곧 세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불과 유황: 하나님께서 9-10절에 와서 마지막 심판날에 대하여 다시 경고하십니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는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는 모든 인류의 행실입니다. 하나님과 멀리 떠날 때, 인류는 그 이마에 사단의 표를 받게 마련입니다. 이마는 인격을 표시하며, 손은 그의 행동 또는 의지을 표시합니다.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고 하신 말씀은 하나님의 진노가 사정없이 혹은 그의 노하심이 감(減)함이 없으리라고 하신 말씀이며, 마지막 심판의 진노가 상상할 수 없이 무서운 것임을 가르칩니다. "진노의 잔"을 어떻게 상상하겠습니까? 우리 주님께서 이 잔을 마신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마 26:39)라고 하신 것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미 우리가 당할 영원한 형벌과 같은 형벌을 받으신 것이며, 그리스도께서 그 형벌을 우리가 면하게 하기 위하여 끝까지 견디셨습니다. 그러나 구원 받지 못한 모든 인류는 이 하나님의 엄청난 진노를 영원히 경험할 것입니다.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는 무서운 지옥의 상징입니다. 불에 타서 없어지면 그만이겠지만, 그 유황불은 꺼지지 않고 벌레도 죽지 않는다고(막 9:48)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슨 이유로 지옥의 무서움을 거듭 거듭 성경에 쓰셨겠습니까? 우리가 무엇에서 구원을 받는 것이며, 인류의 심판이 공의로움을 마지막날이 오기 전에 배우라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거룩한 천사"는 "거룩한 사자(使者)"이며, 거룩한 사자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백성입니다. 이들이 마지막 심판 때에 배심원(陪審員)이 되어, 인류가 행한대로 심판을 받을 때,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만방(萬邦)에 전한 사실을 세상은 기억할 것입니다. 우리의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이 구원 받지 못하고 지옥의 고난을 받는 것을 어떻게 보고, 우리가 그 심판의 배심원이 되겠습니까? 지금의 인정(人情)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그 때에 믿는 자들이 새 몸으로 변화된 후가 되니, 우리는 다만 하나님께서 완전하시고 절대로 공평하심을 믿고, 또 우리가 그의 구원 계획 속에 있음을 감사하고 기다리는 수 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