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3장, 짐승의 표 666(IX)

요한계시록 12장-14장의 공부를 마감하면서 왜 하나님께서 요한계시록을 성경 마지막에 두셨을까? 하는 생각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성경이 무엇이냐? 하는 정의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그 중에 하나는 "피조물의 영장(靈長)인 인간이 하나님을 거역한 역사(歷史)"입니다. 그러나 또 성경은 "다 멸망할 수 밖에 없는 인류 중에서 몇몇을 선택하여 구원하시는 계획과, 나머지 인류가 자멸(自滅)에 이르는 역사적 기록"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자멸은 하나님을 거역하는데서 오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며, 또한 하나님의 진노입니다. 이상에 정의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마지막 때에 일어날 사건들을 기록한 것이 요한계시록 14장입니다. 하나님의 이 마지막 심판이 왜 있어야 하는지를 여러번 친구들과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미리 하시고, 완벽하시고, 정확하시고, 또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왜 인류를 멸망에 이르게 하시는가? 라는 질문이 모든 인간들에게는 당연히 있게 마련입니다. 그 해답을 말씀에서 오는 믿음으로 찾아 낼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완벽함: 창조의 기록을 창세기에서 공부하면서, 아담의 배반을 왜 하나님께서 미리 예방하시고, 금하시지 않았는가? 만일 인간 창조가 완벽하신 작품이라면 왜 실패 작품을 만드셨는가? 라는 의문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시기로 창세 전에 예정하신 뜻을 알게됨으로(고전 2:7), 저는 다음과 같이 답변합니다.

첫째, 완벽하신 하나님에게 실패작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인류의 역사, 약 13,000년은 피조물을 시험하시고 단련하시는 기간입니다. 그러므로 인류의 역사는 창조의 계속입니다. 마지막 환난은 창조의 마무리이며,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심으로 그리스도의 창조는 완성이 됩니다.

둘째로, 아담이 하나님을 거역할 것을 아셨기 때문에 법을 만드셔야 했고, 일단 법을 만드신 후는 그 법을 지키시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은 인간의 모든 죄악을 다 무조건 용서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요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시행한 도토리만한 선행(善行)이 구원을 받는데 역할을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유의지를 믿는 신앙은 이방(異邦) 종교와 동일합니다. 이방 종교는 종교의 규율을 세우고, 그것을 시행하는 자만이 성공하는 자이며, 또 그 성공한 자들에게 영원한 장래가 주어진다는, 근거 없는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들은 콩알만한 지혜를 과대평가하고, 기대하는 불쌍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수 밖에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14장 11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고난의 연기: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은 무시무시한 경고입니다. "연기"는 불이 타면 나는 것이며, 불에 타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와 멸망의 상징입니다. 이러한 무서운 마지막 심판의 표현은 성경 여러 곳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강조하시는 경고는 "세세토록"에 있습니다. "저희는 영벌(永罰)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마 25:46)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창세 전에 예정하신 하나님의 백성을 제외한 모든 인류임을 앞에서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죽는 것이 짐승처럼 흙에 묻혀 한줌의 흙으로 돌아갈 것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님을 이 구절은 가르칩니다.

"경배하고"는 주인으로 인정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지난 젊은 시절에 인생관에 대하여 밤늦도록 친구들과 토론하던 날들을 생각합니다. 젊은이들의 인생관은 "남을 돕고, 열심히 살면서 성공한다"는 것이며, 그 성공의 목표는 높은 관료가 되거나, 사업에서 치부(致富)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인간은 이 세상 삶에 "경배하고" 있습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남에게 존경을 받으며, 그렇게 존경을 받을수록 세상을 우상으로 섬기는 것이며, 또 자신이 우상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쉼을 얻지 못하리라"는 그 형벌이 영원함을 말합니다마는, 성경에서 쉬는 것은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것이며, 이 세상에 사는 동안 구원 받지 못할 때, 영원히 하나님과 격리되는 것을 가르칩니다.

 

12절,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이 구절은 구원 받은 성도들의 생활은 핍박 받는 생활이며, 특히 하나님의 말씀을 고집하고 사는 것에는 인내가 필요함을 가르칩니다. 그런가 하면 우리는 자신이 아직도 육신이 범죄하지 않고 살려고 노력하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인내가 영원히 당할 무서운 지옥의 형벌과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께서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십니까? 어떻게 여러분의 힘으로 된다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믿음은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며, 그리스도의 믿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마음에 주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열심은,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시고 인도하시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며, 마치 갓난아이가 나서 부모를 닮아 자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스도께 우리의 삶을 부탁하고 의지하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13절,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는 이 세상에 살다가 죽는 날이,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영생의 복락(福樂)이 시작되는 순간이 됩니다마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백년대계(百年大計)가 수포로 돌아가는 순간이 아니겠습니까? 우리에게 죽는 날처럼 복된 날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 날은 주님의 얼굴을 뵙는 날이며, 세상의 고생과 수고가 끝나는 날입니다.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고후 5:8)고 사도 바울이 죽는 날을 고대하면서 복음을 전하던 기록을 읽을 수 있습니다.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마치 구약시대의 믿는 자들이 우리가 누리는 복음과 다른 방법으로 구원을 받는 것처럼 들립니다마는, 구약시대에 믿는 자들은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을 이 구절은 지적합니다. 세대주의(世代主義)자들은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의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다르다고 믿습니다마는, 성경은 인류의 구원 계획이 시대에 관계 없이 동일함을 가르칩니다. 그리스도께서 창세 이전에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수고를 그치고"는 우리의 복음사업이 그 종결을 봄을 가르칩니다. 우리가 거듭나는 순간 복음전도를 위하여 수고하는 자들이 되며, 우리의 생활 전체가 말씀을 가르치는 선지자가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물론, 복음사업은 마음만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성경은 또한 가르칩니다. "네 보물(寶物)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21)고 하셨고, 누가복음 16장 9절에는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고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불의의 재물"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이 땅에 속한 재물이며, 천국은 의인(義人)만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재물을 이용하여 "친구를 사귀었고", 그 친구가 택하심을 입은 사람이라면, 그는 잃어버린 양입니다. 이 구절은, 나와 여러분이 그리스도께서 잃은 양을 찾으실 때 큰 즐거움을 함께 누리게 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복음사업을 위하여 바치는 재물이 보물이 될 정도로 바쳐 본 적이 있었겠습니까? 또 다른 생각은, 만일 우리가 복음사업을 한다고 쓴 재물이 사단의 거짓 복음을 위하여 씌어졌다면, 오히려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할" 친구가 아니었다는 사실인 것입니다.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을 영적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롬 6:11)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구원을 받고 살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엡 2:8). 나의 신앙과, 또 나에게 사람됨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하나님의 만드신 바(workmanship)라고 하셨습니다(엡 2:10). 우리의 선한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14절,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사람의 아들과 같은 이가 앉았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이(利)한 낫을 가졌더라"

"사람의 아들"은 그리스도의 한 별명입니다. 이 구절은 14장에 나타난 천사들이, 천사가 아니라 사자(使者)이며, 그리스도를 가리킴을 알게 됩니다. 더욱이나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는 그리스도께서 만왕의 왕으로 강림하심을 가리킵니다.

추수 때: 그리스도께서 휜 구름 위에 앉아 계십니다. 구름을 타고 오심은 영광으로 오시는 것이며(출 16:10), 심판관으로 오시는 것을 말합니다(단 7:13). 또 심판관으로 오시는 것을 "손에는 이한 낫을 가졌더라"고 읽음으로써 알 수 있습니다. "이한 낫"은 추수를 말하며, 이 추수에 대해서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비유로 여러번 말씀하셨습니다.

"---주여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면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주인이 가로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秋收)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숫군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마 13:27-30)

이 비유에서 가라지를 뽑아 단으로 묶어 불사르는 추수 때가 된 것을 요한계시록 14장 14절은 말하고 있습니다. 무서운 마지막 심판의 경고입니다. 이 마지막 심판이 눈앞에 닥아왔습니다. 아직도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만 가르치며, 기독교적 자녀교육에 관심이 많으며, 사회봉사와, 교회봉사에 대한 철저한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것들이 다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을 모른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15-16절,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네 낫을 휘둘러 거두라 거둘 때가 이르러 땅에 곡식이 다 익었음이로다 하니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 곡식이 거두어지니라"

"또 다른 천사(사자)"가 누구이겠습니까? 말 할 것도 없이 그리스도 자신이십니다. "네 낫을 휘둘러 거두라"고 명령하실 분이 어떻게 천사일 수가 있겠습니까? 마치 두 천사가 대화하는 것처럼 성경이 씌어졌습니다마는, 마지막 심판을 진행하실 분은 그리스도 외에는 있을 수 없습니다. 다만 마지막 심판의 과정을 순서적으로 시행하심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큰 음성"은 큰 사건에 대한 발표입니다. 무덤 속에 죽어 누어 있는 나사로에게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고 부르신 기록(요 11:43)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제 9시 즈음에 "큰 소리"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영원토록 받아야 할 하나님의 진노를 대신 받으시는 큰 사건의 발표였습니다. 다른 한편 죽은 나사로가 살아 무덤에서 나오는 것 같이, 하나님의 백성이 암흑 세상에서 천국으로 옮겨지는 큰 사건의 발표입니다. 위에서 읽은 "곡식과 가라지"의 비유로 다시 돌아가 보면, 구원 받지 못한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라고 하셨습니다.

왜 그리스도께서 "성전으로부터" 나오십니까? 신약성경에서 "성전"은 그리스도의 택하신 백성임을 배운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성전이 17절에 읽는 성전과 대조가 됩니다. 17절의 성전은 하늘에 있고, 15절의 성전은 땅에 있습니다. 하늘에 있는 성전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기 이전에 죽어 천국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이며, 지상에 있는 성전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아직도 세상에 남아 있는 택하심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이 구절이야말로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백성들과 항상 함께 계심을 가르칩니다.

"거둘 때"는 추수 때이며, 이 추수 때는 "구원 받을 마지막 잃은 양을 찾으실 때", 즉 세상에 더 이상 구원 받을 택하신 백성이 없을 때입니다. 그런가 하면 세상이 극도로 악하게 되어 인류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되는 때입니다.

"낫을 땅에 휘두르매 곡식이 거두어지니라"는 세상의 종말을 추수 때로 비유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에 대하여 말씀하신 때(요 4:1-26), 그 기쁨을 숨기시지 못하고 제자들에게 추수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요 4:35-36)

마지막 심판날은 그리스도와 그에게 속한 자들이 그 즐거움을 숨기지 못할 날이며, 사단과 그에게 속한 자들을 심판하는 날입니다. "천사"는 "곡식을 거두는 자" 즉 심판하는 자가 될 수 없습니다. 천사는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히 1:14)이라 하셨고, 또 성도들이 세상과 천사들을 심판할 것이라고(고전 6:2-3) 성경은 가르칩니다.

 

17절,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데 또한 이한 낫을 가졌더라"

이한 낫: "이한 낫을 가졌더라"는 14절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한 낫"에 대해 강조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창세기 41장에 애굽 왕 바로가 흉년이 올 것에 대하여 같은 꿈을 두번 계속하여 꾼 것과 같으며, 32절에는 "바로께서 꿈을 두번 겹쳐 꾸신 것은 하나님이 이 일을 정하셨음이라 속히 행하시리니"라고 요셉이 답변한 것은 "이한 낫"을 반복하신 것의 주석이 되겠습니다. "이한 낫을 가졌더라"는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이 "속히 행하시기로 정하신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성경 말씀은 하나님께서 직접 쓰신 사실이므로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하나님의 백성은 믿고 소망을 그 말씀에 두게 됩니다. 더욱이나, 마지막 심판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두번을 반복하여 말씀하신 것은 그리스도께서 세상 끝에 심판주로 오실 것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의 기사는 미가서 1장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백성들아 너희는 다 들을지어다 땅과 거기 있는 모든 것들아 자세히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증거하시되 곧 주께서 성전에서 그리하실 것이니라 여호와께서 그 처소에서 나오시고 강림하사 땅의 높은 곳을 밟으실 것이라 그 아래서 산들이 녹고 골짜기들이 갈라지기를 불 앞의 밀 같고 비탈로 쏟아지는 물 같을 것이니"(미 1:2-4)

미가서 1장의 말씀이야말로 요한계시록 14장의 주석이 아니겠습니까? 이 주석은 그리스도의 마지막 심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18절, "또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이한 낫 가진 자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불러 가로되 네 이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느니라 하더라"

"제단으로부터 나와"는 우리를 살리시기 위하여 희생의 제물이 되신 그리스도를 생각나게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제물이 되셨고, 심판을 받으셨습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심판을 받으셨습니다. 그렇게 하심으로만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내시며, 우리는 영원한 "불과 유황"의 심판을 면하게 된 것입니다. "불을 다스리는 천사(사자)"는 심판주로 오시는 그리스도이시며, 그는 인간들의 죄를 심판하십니다.

"이한 낫"은 "예리한 심판"이며, 인간이 행한대로 갚으시는 심판입니다. 그 심판의 재판장(裁判長)이신 그리스도만이 그 심판날을 아시며, 또 그 날을 정하십니다. 그 날이 되었습니다. "이한 낫을 휘둘러"는 하나님의 공의가 비로소 모든 인간에게 나타나는 날이며, 더 이상 구원의 기회가 없어지는 날임을 가르칩니다.

포도송이: "포도송이를 거두라"는 포도가 다 익어 추수할 것을 명하신 것이며, 이 심판날을 포도송이로 비유한 광경을 이사야서 65장이 설명을 합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포도송이에는 즙(汁)이 있으므로 혹이 말하기를 그것을 상하지 말라 거기 복이 있느니라 하나니 나도 내 종들을 위하여 그같이 행하여 다 멸하지 아니하고"(사 65:8)

"내가 너희를 칼에 붙인 것인즉 다 구푸리고 살륙(殺戮)을 당하리니 이는 내가 불러도 너희가 대답지 아니하며 내가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고 나의 눈에 악을 행하였으며 나의 즐겨하지 아니하는 일을 택하였음이니라"(사 65:12)

위의 구절들이야말로 인류가 하나님께 순종치 않음으로 심판 받게 됨을 가르치며,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 좀 남아 있음을 또한 가르칩니다.

19절,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포도주 틀"은 "하나님의 진노"를 상징함을 이 구절에서 배웁니다. 이사야서 63장 1-6절은 이 상징에 대하여 더 자세히 설명합니다.

"에돔에서 오며 홍의(紅衣)를 입고 보스라에서 오는 자가 누구뇨 그 화려한 의복, 큰 능력으로 걷는 자가 누구뇨 그는 내니 의를 말하는 자요 구원하기에 능한 자니라 어찌하여 네 의복이 붉으며 네 옷이 포도즙 틀을 밟는 자 같으뇨"(사 63:1-2)

"만민 중에 나와 함께 한 자가 없이 내가 홀로 포도즙 틀을 밟았는데 내가 노함을 인하여 무리를 밟았고 분함을 인하여 짓밟았으므로 그들의 선혈(鮮血)이 내 옷에 뛰어 내 의복을 다 더럽혔음이니 이는 내 원수 갚는 날이 내 마음에 있고 내 구속할 해가 왔으나 내가 본즉 도와 주는 자도 없고 붙들어 주는 자도 없으므로 이상히 여겨 내 팔이 나를 구원하며 내 분이 나를 붙들었음이라"(사 63:3-5)

"내가 노함을 인하여 만민을 밟았으며 내가 분함을 인하여 그들을 취케 하고 그들의 선혈로 땅에 쏟아지게 하였느니라"(사 63:6)

이사야서 63장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고난 받으신 것을 "포도즙 틀을 밟는 자"로 비유하셨습니다. "에돔"은 구원 받지 못한 자들의 땅이며, "보스라"는 그들의 성읍입니다. 3-5절은 그리스도께서 그 고난을 홀로 받으셨으며, 그 고난이 하나님의 크신 진노임을 설명합니다. 6절은 하나님의 진노와,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심판하시는 말세를 상징하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4장 19절은 하나님께서 포도송이를 낫으로 따서 포도즙 틀에 넣고, 짓밟는 것으로, 하나님의 크신 진노를 상징하였습니다.

20절,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馬)굴레까지 닿았고 일천 육백(1,600) 스다디온에 퍼졌더라"

 

성 밖에서 당하신 고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곳을 "성 밖"으로 성경은 지적하였습니다(히 13:12). 그리고 "성 밖"에서 고난 당하신 것을, 구약 율법에서 대제사장이 도살한 번제(燔祭)물을 성 밖에서 불사름(히 13:11)으로 상징했음을 가르칩니다. 영적인 뜻은, 그리스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시기 위하여, 그의 성전인 자기의 백성을 잠시 동안 떠나야 했음을 가르치며, 성 밖은 또한 구원 받은 자가 없는 세상이며, 천국 밖임을 가르칩니다.

"그 틀이 밟히니"는 심판의 진행을 말하며, "피가 나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흘리신 피가 우리의 죄를 대신하신 것이며, 피를 흘리는 것은 형벌을 받는 한 가지의 표현입니다.

"말굴레까지 닿았고"에서 성경에 ""은 큰 힘을 지적합니다. 시편 33편 17절은 "구원함에 말(馬)은 헛 것임이여 그 큰 힘으로 구하지 못하는도다"라고 함으로써, 말은 인간이 의지하는 세상적인 능력임을 가르칩니다(시 20:7, 147:10). 그러므로 "말굴레까지 닿았고"는 말 입에서 피를 흘리는 것이며, 심판 날에 구원 받지 못한 자들의 힘은 더 이상 그 효력이 없게 됨을 말합니다.

""은 요한계시록에 여러번 힘을 상징하는 것으로 사용되었고, 흰말(白馬)을 탄 자는(계 6:2, 19:11) 그리스도와 그의 백성을 가리키며, 세상의 마지막 전쟁이 이 흰말 탄 자들의 승리가 될 것을 요한계시록은 가르칩니다.

"1,600 스다디온에 퍼졌더라"는 하나님의 심판날이 상상할 수 없이 무서움을 상징합니다. 성경 사전에 한 스다디온이 10리 정도라고 했습니다마는 그 거리가 어떠한 상징의 뜻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숫자 1,600에 그 큰 뜻이 있습니다. 1,600은 4X4X100이며, 성경에 숫자 4는 온 세상을 지적합니다. 그러므로 4X4의 뜻은 하나님의 심판이 온 세계적이며, 한 사람도 남김 없이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할 것을 가르칩니다. 성경에서 숫자 100은 완성을 가르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심판은 온 세계적임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마 24:30).

공부를 마침: "요한계시록 13장, 짐승의 표 666"의 공부를 마친 소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심판날이 문 앞에 닥아와 있음이 너무도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 사실을 누가 알겠습니까?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 외에는 아무도 알 수가 없습니다. 요한계시록은 말세를 당면한 자기의 백성이 읽도록 주셨습니다. 어렵다는 핑계로 요한계시록 공부를 등한히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의 말씀은 다른 성경책과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방법으로 공부할 때, 그 뜻을 분명하게 말씀해 주십니다. 요한계시록의 주제는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입니다. 그러나 택하신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의 크나큰 사랑, 우리의 영원한 구원에 대하여 분명한 말씀을 배우게 되는 기회입니다.

 

"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7-29)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오실 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이대우 가족 드림, 11/21/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