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토론 천년왕국의 평가(두번째)

6. 유대교 묵시문학

최갑종 목사님의 무천년설(無千年說) 일반적으로 당연(當然)하다고 동의하는 것이 나의 입장이다. 말할 것도 없이 이유는 최목사님께서 적절하게 성경 구절을 인용하였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항상 차이점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최목사님은 성경을 신학으로 보는데 비하여, 나는 성경적으로 보는데 있다고 믿는다. 2 12 날자의 토론에도 "천년이란 말이 이미 예수님 당대 이전부터 유대교 묵시문학의 종말론에서 도래할 메시아왕국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사고방식을 신앙으로는 용남(容納) 없기 때문이다. "유대교 묵시문학" 무엇을 지적(指摘)하는지는 몰라도 만일 그것이 구약성경을 지적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의 말씀을 "묵시문학"으로 부르는 것을 하나님께서 용납하시겠는지 묵상(默想) 본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딤후 3:16) 성경에서 읽을 있다. 그러므로 성경의 기록이 역사에 대한 얘기이든, 꿈을 얘기이든, 또는 환상(幻想) 얘기이든 하나님께서 뜻이 있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찾고 깨닫는 방법은 유일하게 그의 말씀으로부터 옴을 우리는 경험하고 믿게 된다. 성경 말씀을 문학으로 하나님께서 열어 놓으신 인간과의 대화의 문을 닫아 버리는 것이며, 그럴때 성경 학도는 혼자서 눈도 감고 귀도 닫아 버리고 상상(想像) 세계를 헤매게 것이다.

"영적 세계에서 일어난 영적 실제" 사도 요한에게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환상(幻想) 속에서 세계를 지적하는 모양인데 이것을 우리의 신앙생활과 조화시키면서 이해할 수가 없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영적 세계"에서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거듭난 것이 영적 세계에 신생아(新生兒) 태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앙은 실제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요한이 환상을 "영적 세계"에서 것으로 분류(分類)하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말씀하시는 가지 방법" 써서 사도 요한에게 말씀하셨다고 이해할 뿐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모든 방법이 영적이기 때문이다.

7. 왕으로 오신 예수님

"예수님은 이미 이 세상을 통치하시는 왕이라는 사실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는 것과 같이"라고 하신 최목사님의 말씀에 동의하면서, 예수님께서 왕으로 오셨고 지금도 왕으로 계시는 데도 불구하고 많은 지상에 왕국을 세우시고 왕이 되실 것을 기대하는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첫째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의 신앙이 영적인 것을 잠재적으로 부인하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고린도후서 5 7절에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 하였다. 이것은 바로 예수님 당시에 모든 군중이 메시야를 기다리던 상태였다. 기사와 이적을 보기 위하여 4,000명씩 혹은 5,000명이 모였고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누차 예수님께 기사와 이적을 보여 달라고 요구하였다. 군중들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높여 호산나라고 환성(歡聲) 올렸지만, 예수님은 그들이 찾는 왕이 아니었기 때문에 바로 무리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밖고 말았다.

지금도 같은 현상을 본다. 세상에서 우리가 만나는 예수님은 너무나 초라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화려(華麗)하고, 찬란(燦爛)하고, 세상에서 능력 있는 예수님을 왕으로 삼기를 원하고 있다. 저주 받은 ( 3:17)에서 살아 보자는 소망이기도 하다. 하기야 사도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도 찬란한 왕국이 예수님 다음에 가는 높은 자리를 자기 아들들에게 주기를 원했던 기록( 20:20, 10:25) 있다.

 

8. ()이라는 숫자

이라는 숫자에 대해서 다시 살펴 본다면, 동서(東西) 막론하고 천이라는자가 "아주 많다" 뜻이거나 "완전함" 가리킴을 있다. 우리 속담에 "천량빚을 갚는다"라든가, "그의 말은 근의 무게가 있다", "천금"(a thousand pieces of Gold:천금을 주고도 못사는 물건), "수천명"(많은 사람), "천리"(먼길), "천사만고(千思萬考:Mature Consideration:완전한 숙고[熟考]), 이름을 천세에 남긴다, 천세 만세 사십시오, 천신만고(千辛萬苦:all sorts of hardship) , 이와같이 동서 풍습(風習) 문화(文化) 막론(莫論)하고 천이라는 숫자는 아주 풍족하다든가 완성된 것을 상징(象徵)하여 사용이 되어 왔다.

성경에서 비단 천이라는 숫자가 실제적인 수자를 지적할 때라 할지라도 풍족하다 혹은 완성되었다는 상징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엘리야가 이스라엘 왕후 이세벨에게 쫓겨서 죽기를 원했을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보인 숫자 7,000 있다. 숫자 7 1,000 영적인 뜻이 있다. 성경에는 천이라는 숫자가 병력을 계수하는데 많이 씌어졌지만, 위에 나열한 것처럼 "많은 " "완전함" 말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24:60, 20:6, 34:7, 5:10, 23;10, 9:3, 91:7, 119:72, 32:18, 14:31, 5:11, 벧후 3:8). 중에도 베드로후서 3 8절의 말씀은 계시록 20장에서 말하는 천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된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가지를 잊지 말라"

그리스도께서 기다리고 기다리시는 천년(완성된 기간) 말하고 있다. 계시록 20장의 천년과 벧후 3장의 천년의 뜻이 다른 점이 있다면, 계시록 20장은 분명히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신 시점(時點: 사단을 옥에 가둔 시점: 십자가의 승리)에서 완성된 때를 말하는데 반하여, 베드로후서의 천년은 아담을 창조하신 때를 시점으로 완성된 기간( 13,000?) 말씀하신다고 있다. 우주 창조의 중심이 되는 피조물, 인간의 (택함을 받은 ) 완전하게 때까지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심정(心情) 베드로는 말한 것이다.

9. 인간의 수명

하나님께서 천이라는 숫자를 성경에 쓰시면서 실제적인 숫자와 연결하여 생각하도록 하신다. 그것은 성경에서 읽을 있는 인간들의 수명이다. 창세기 5장의 기록을 보면 가장 오랫 동안 향수한 무두셀라를 생각해 보게된다. 그는 969세를 향수했다.

사실은 첫째 하나님께서 인간이 영원히(성경에는 영원(永遠) 천대(千代)로써 상징)살도록 창조하셨다. 그러나 이것이 지상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임을 암시한다. 둘째로 세상(지구) 점차적으로 쇠퇴(衰退)해지고 있음을 암시한다. 창조후 천년간, 노아 때까지, 인간이 900년이 넘도록 있었다는 사실은 지구상에는 공해도 없었고, 해아릴 없이 많은 종류의 병균(病菌) 없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인간의 수년(壽年) 노아 때의 홍수후 점차로 감해지고 지금은 인간의 수명을 70세로 성경은 우리에게 암시 한다( 90:10). 짧아진 인간의 수명은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선언하신 말씀,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현재동사)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경퀴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3:17-18) 기억나게 한다.

노아의 때까지 채소를 먹게 하신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육식을 하도록( 9:3) 허락 하신 사실도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조화 있게 생각할 있는 단서가 된다.

천년왕국을 믿는 사람들이 잘못 알고 착각하는 이사야 65 17-25절의 말씀은 바로 앞서 말한 "저주된 " "인간의 수명" 설명한다. "백세에 죽는 자가 아이겠고",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라고 하신 말씀이 천년왕국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문장의 구조로 보아서 문장의 전체를 배경으로 하는 첫번째 구절(17) 말씀을 없는 것으로 간주(看做)하는 것이 천년왕국을 믿는 사람들의 해석이다.

"보라 내가 하늘과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65:17)

18 이하 마지막 절까지는 " 하늘과 " 설명하는 뿐이다. 이미 저주를 받은 세상이 갑자기 낙원으로 변하여, 공해나 오염물이 없어저 하늘과 바다와 땅은 아름다워지며, 사람은 천년을 향수(享壽)하며, 세상의 정치(政治) 경제(經濟) 그리고 사회질서(社會秩序)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주관(主管)하게 것이라는 천년왕국설은 백주(白晝) 꿈을 꾸는 망각(妄覺)이라고 밖에 없다.

성경의 문법과 논조는 극히 타당하며, 초신자(初信者) 읽을 때에도 논리정연한 하나님의 설명을 들을 있게 되어 있다.

성경 여러 곳에서 천이라는 숫자가 "많은 것과 완전함" 상징한다고 해서 계시록 20장에서도 그것을 상징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성경 말씀의 바른 이해는 본문(本文)에서 우선 얻게 되는 것이 보통의 경우가 되며, 계시록 20장의 이해도 계시록 20장에서 찾는 것이 타당(妥當)하다.

10. 뜻을 설명하는 본문

계시록 20장에 돌아와서 가지 어휘(語彙) 생각해 보자.

4절에 "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 하니" 설명을, 세계에서 일인자(一人者) 알려진 천년왕국설의 제창자(齊唱者) Dr.John walvoord( Dallas 신학대학 총장; 신학대학은 20세기 후반에 들어와 천년왕국설의 고장이 되었다) " 베임을 당한 자들" 순교자들을 말하며, 사람들은 시점(時點)에서 한꺼번에 죽은 사람들이라고 지적하였다. 성경은 특수한 사람들을 위하여 책이 아니며, 언제나 대중(大衆),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나, 받지못한 사람들을 위하고 있다. 어느모로 보든지 Dr. Walvoord 주장은 억측(臆測) 지나지 않는다.

계시록 20 본문 속에 가지 설명이 있습니다. 첫째, "첫째 부활" 대한 이해와, 둘째는 " 베임을 당한"(순교)일과, 세째는 순교자의 "영혼이 천년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노릇 한다" 점이다. 세째 경우에 대하여는 지난번 편지에 언급하였음으로 처음 가지 경우를 생각해 보겠다.

"첫째 부활" 첫째 죽음에서 옵니다. 그리고 둘째 사망은 둘째 부활과 동시에 있음은 논리적(論理的)이다.

"첫째 부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성경구절은 없이 많이 있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2:4-5)

"육으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3:6-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2:17)

이상 구절만 가지고도 첫째 부활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할 수가 있다.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으로 영원히 인류의 영혼이 사형집행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거듭날 죽은 영혼이 새로 부활함을 수가 있다. 또한 계시록 20 6절은 이해를 돕는다.

"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노릇 하리라"( 20:6-7)

성경의 "" 구원을 가리키며, "거듭남" "구원을 받는 "으로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설명하신 ( 3:) 우리는 알고 있다.

"거룩하도다" 뜻은 구별됨을 말하며, 예수님께서 천국을 비유로 말씀하실 양과 염소를 구분하심을 말씀( 25:32-33)하셨다. 둘째 사망은 말할 것도 없이, 마지막날에 영원히 지옥불에 들어가는 사형집행을 말하며 거듭난 자들(택함을 받은 자들) 은혜로 사형선고에서 면죄(免罪)되었음을 있다. 모든 믿는 자들이 제사장이 됨은 베드로전서 2 9절이 설명한다. 이와같이 조화된 설명을 천넌왕국설을 가지고는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다.

"목베임을 당함"(순교) 대하여 생각하기 전에 성경에 대하여 말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

오묘(奧妙) 삼라만상(森羅萬象) 천지와, 운영(運營) 법칙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직접 쓰신 글이 성경이며, 하나님께서 인간과 대화하시는 유일한 방법이 성경이라고 알게 가지 성경을 이해하는데 원칙(原則) 생각하게 된다.

첫째 성경을 내가 읽도록 쓰신 글이며, 내가 필요할 (시기) 이해하도록 설명을 성경 속에 준비해 두셨다. 설명은 가정(假定) 아니며, 질서(秩序) 정연(整然) 논리(論理)이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필요 이상의 말씀을 하시지 않으시며, 말씀의 중심은 인간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역사(役事)이다.

" 베임을 당한 " 어떠한 시점에 순교당한 사람들이 아니라, 말세(末世:그리스도의 세대) 순교당한 모든 믿는 자를 말하며, 어떤 의미에서 모든 택함을 받는 자들은 순교자가 된다( 16:2, 11:7-9). "천년이 차도록" "하나님께서 택한 사람들의 수가 계획하신 수에 도달하는 " "구원 받을 마지막 인간이 거듭나는 순간"이다. 그러므로 2000 전에 순교 당한 사람과, 작년에 순교 당한 사람이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기간은 동일하게 천년(완성된)이다( 20:1-16 참조).

11. 여섯번씩이나 나오는 천년

이광복 목사님의 논조(論調) 자기의 생각을 지나치게 강조(强調)함으로 논리성을 상실(喪失)하는 경우를 가끔 발견한다. 예를 들면 "천년"이라는 단어를 여섯번이나 반복하여 때문에 실제적 천년으로 해석한다고 한다. 논리적 타당성이 없다.

"계시록은 사도 요한이 주휴 95년 이후의 "장차 될 일"을 염두에 두고 기록한 것으로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라는 생각에는 동의할 없다. 이유는 계시록이 씌어진 이유는 "속히 일을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1:1) 蝁정의하셨기 때문이다. 모든 성경의 기록은 인간 저자(著者) 보고 들은 것을 명령에 따라 기록한 뿐이다. 사도 요한이 염두에 것을 생각해야 이유가 없다. 사도 요한에게 보여 주신 것을 사도 요한 자신은 뜻을 알지 못했을 가능성도 생각할 있다.

이대우 드림, 4/2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