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상토론 천년왕국의 평가, (3), (4), (5)

1. 로마제국(帝國)

세번째 지상토론에서 최목사님의 무(無)천년 론설에 대하여 계속 찬성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유대교 종말론"이라던가 "2-3세기의 극심한 기독교 박해시기에 발달된 지상적 천년왕국설" 등의 표현이 내 신앙으로는 못마땅하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표현은 성경을 사람이 쓴 글로 판정하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이 자아낸 역사적(歷史的) 환경(環境)이 계시록을 쓰도록 만들었다는 논설이다. 반면에 내가 믿는 성경은 하나님께서 필요하다고 생각하실 때 사람의 손만 빌려서 쓰셨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으로 말한다면 계시록이 기록된 이유도 오래 전의 하나님의 계획이 때가 되어 이루어진 것이며, 역사적 환경과 배경을 계시록에서 읽을 수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설명하는 상징일 뿐, 하나님께서 성경을 쓰도록 만드는 원인이 될 수는 결코 없다.

특히 로마제국(帝國)의 핍박을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믿는 자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요한에게 계시를 보이셨다는 의견에 대하여 동의할 수 없으며, 그 동의하지 않는 이유를 성경의 기록을 살펴 보면서 설명하려고 한다.

신약성경의 모든 책의 저자(著者)가 다 로마제국하에 살면서 핍박을 받은 사람들이지만 신약성경에는 로마제국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성경에 나타나는 지명(地名)과 국가명(國家名)은 역사적인 기록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것을 상징으로 쓰시고 있다. 가령 "애굽"하면 세상을 상징하며, 믿는 자들이 이 세상에서 나와야만 그리스도의 나라로 갈 수 있음을 상징으로써 가르친다. 이것은 우리가 지금도 주일 예배(禮拜)때 랑송(朗頌)하는 십계명(十誡命)에서 알 수 있다. 네째 계명에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신 5:15-한국 찬송가에는 출애굽기 20장을 인용)고

하신 것은 실제로 애굽에서 나온 사람들을 가리키기보다는 거듭나서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을 가리킨다. 또 예를 들면 바벨론은 멸망 받을 세상을 상징하며, 헬라인은 이방인을(롬 1:16, 2:9,10, 3:9, 고전 1:24, 골 3:11), 가나안은 천국의 상징이다.

만일 두 목사님들의 논조대로 계시록이 로마제국을 배경으로 해서 씌어졌다면 장차 망하고 없어질 로마를 세상으로 상징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계시록은 사단의 나라를 바벨론으로 거듭 상징하고 있음을(계 14:8, 16:19, 17:5, 18:2,10,15,21) 깨닫게 된다. 이 사실만 가지고도 두 목사님들이 계속하여 언급하고 있는 로마제국과 당시 믿는 자들의 관계를 배경으로 하여 계시록이 씌어졌다는 논조(論調)를 부정할 수 있다.

장로교 목사인 이광복 목사님이 천년왕국을 믿는다는 사실은 장로교단의 부끄러움이다. 이목사님 자신이 이 토론에서 고백한 바와 같이 칼빈은 "천년왕국론을 주장하는 자들의 조작은 너무도 유치해서 논박할 가치가 없다"고 하였다면, 그렇게 언급한 근거를 충분하게 우리는 제시(提示)할 수 있다. 장로교의 교리만 가지고도 천년왕국이 진리가 아님을 설명할 수 있다.

계속하여 이목사님은 다시 "여섯번이나 언급한" 것과 "천년이 상징적이 아닌 이유"를 "알포드"라는 학자를 내 세우고 있다.

천년왕국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인격적으로 누리며 살게되는"은 지상에서 잘 살아 보겠다는 간절한 소원을 보여 주고 있으며, 성경 전체가 우리의 장래를 위하여 기록된 점을 잊어버리고 있다. 사람의 생각대로 구원을 받겠다는 생각이다.

이목사님의 "악의 삼위일체"는 듣기에 그럴듯하나, 사실상 우스운 일이며, "에덴동산에서 주어진 축복이 회복되는 것이 천년왕국의 목적임을"이라고 한 것도 성경이 뒷받침할 수 없는 억측(臆測)에 지나지 않는다. "전천년설을 위하는 학파의 신앙관을 오해하고 있는"은 신앙을 학설로서 질서 정연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이다. 참 믿음은 위에서 주시는 것(약 1:17)이라고 하셨다. 내가 어떠한 학설을 통해서 계산하고 판정한 결과에서 오는 신앙은 사람들이 성경 없이 들을 때 그럴듯하지만, 반석이신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뒷받침하지 못할 때 무너지고 말 것이다. 우리는 그 무너짐을 지금 볼 수 있어야 한다. 비가 오고 홍수가 날 때(마 7:24-29, 눅 7:48-49)를 기다릴 수는 없다.

"에덴동산의 회복"에 대하여 성경 말씀을 몇 구절 생각해 보기로 한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요 18:36)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2-3)

이 외에도 성경에는 우리가 다음 세대(世代)에 살 곳이 지상(地上)이 아님을 여러 곳에서 읽을 수 있다.

"계시록 본문의 우월성을 훼손시키는 것인가?"라는 표현은 성경 말씀을 무엇과 비교하는 모양인데, 성경 말씀은 우뚝하게 홀로 존재하는 하나님의 말씀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 목사님은 거듭 "계시록 필자의 의도"를 말하고 있지만, 모든 성경의 필자가 하나님 자신임을 늘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성경 전체가 우리의 복음임을 또한 늘 기억해야 한다. 두 목사님의 논쟁은 마치 "계시록은 사도 시대 때 핍박을 받던 성도들을 위하여 씌어졌지만 우리도 그 내용에서 좀 덕을 본다"라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성경의 모든 구절이 하나님께서 내게 직접 말씀하신다고 깨달을 때 성경을 읽는 독자들의 수확(收穫)은 엄청나게 많아진다.

최목사님의 "헬라어 원문에 대한 정확한 번역"은 독자들이 성경을 읽는데 큰 도움을 준다고 믿는다.

2. 천상(天上)과 지상(地上)의 무대(舞臺)

최목사님이 계시록 20장 1-6절을 둘로 구분하여, "1-3절의 비젼이 지상을 무대로 하여 일어난 비젼", "4-5절의 비젼은 천상, 보좌를 무대로 하여 일어난 비젼"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그러한 구분은 불가능하다. 1절에 "천사가 무저갱 열쇠",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한 표현이 지상에서 일어난 일의 상징이라고 하겠지만, 3절에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동안 다스린 것"은 지상의 얘기가 아니며 오히려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서 온 천하를 다스리신다"(벧전 3:22, 엡 1:20-21)는 천상의 얘기이다. 4절의 사망과 부활을 얘기할 때도 그 무대가 천상이라기 보다는, 지상과 천상이 하나의 무대로 등장함을 볼 수 있다.

나는 무대라는 용어가 듣기에 거북하다. 무대는 꾸며서 만드는 장치이지만, 계시록 20장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창조 과정을 보여 주시는 장면이다. 하나님의 세계는 지상과 천상을 나눌 수도 없고, 나누어서는 이해할 수가 없다. 지상을 가리켜 "하나님의 발등상"(사 66:1)이라고 하셨고, 또 그리스도께서 지금 천상 보좌에서 지상의 모든 것을 다스리고 계시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하나님 창조의 중심이 되어 있는 인간이 지상에 살고 있고, 그 분의 뜻이 지상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구태여 이 장면을 무대라고 부른다면 천상과 지상 사이에 아무런 칸막이도 없는 연결된 한 무대라고 하겠다.

"큰 용 곧 옛 뱀이 땅으로 내 쫓겼다"에 대해서 성경 구절을 살펴 보고자 한다. "땅으로 쫓겼다"의 설명은 우선 사단이 천상에 있었음을 말하며, 성경에서 욥기 1장 6-12절과 시편 109편 6절(대적:Satan)의 기록이 이를 설명한다. 사단이 지상에 떨어진 순간을,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죽으신 순간이라고 보는 것이 성경적이다. 이 관점에 대한 성경 구절의 뒷받침은 다음과 같다.

처음으로 살펴 볼 단어는 "큰 쇠사슬 :a great chain"이다. 사단은 영적인 피조물(被造物)이므로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쇠사슬로 결박(結縛)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쇠사슬로 결박하는 것은 상징이다. 이 사건의 설명을 유다서에서 읽는다.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處所)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結縛)으로 흑암(黑暗)에 가두셨으며"(유 1:5-6)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姦淫)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유 1:7)

위의 유다서의 세 구절은 세 가지 심판 즉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심과, 천사를 심판하심과,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의 기록이다. 그 중 천사에 대한 심판도 과거에 있었던 일임을 문장의 시제(時制)로서 알게 된다. 또한 그 시제가 계시록 20장 1-3절에서 사단이 결박되는 시제와 다를 수가 없다. 이 사실을 베드로후서 2장 4절을 읽으므로서 더 확실하게 된다.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이 구절에서도 과거에 일어난 일의 기록임을 알게 된다. 성경이 역사책 모양으로 사건이 연대순으로 기록된 책이 아님을 우선 유다서 1장 5-7절의 사건의 순서가 연대순으로 기록된 것이 아닌데서 알 수 있다. 그렇지만, 베드로후서 2장 4-5절에서 큰 의문이 생기는 것은 사단이 이미 지옥에 던지움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결박을 당한 것"에 대하여 성경 구절을 몇 군데 찾아 보자.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늑탈(勒奪)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늑탈하리라"(마 12:28-29)

이 구절은 이사야 49장 24-25절의 말씀을 그리스도께서 반복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용사(勇士)의 빼앗은 것을 어떻게 도로 빼앗으며 승리자에게 사로잡힌 자를 어떻게 건져낼 수 있으랴마는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용사의 포로도 빼앗을 것이요 강포자(强暴者)의 빼앗은 것도 건져낼 것이니 이는 내가 너를 대적하는 자를 대적하고 네 자녀를 구원할 것임이라"

이 구절에서 "승리자", "용사", "강포자"는 사단을 가리키며,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이 바로 이 예언을 이루신 것이다. 골로새서 1장 13-14절은 이 사실을 다짐한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3. 사단이 결박(結縛)된 시기(時期)

그렇지만 사단을 결박한 순간이 어느 때 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에베소서 4장 8절을 읽어 보자.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이 구절은 시편 68편 18절의 인용이다. "사로잡힌 자"는 우리가 구원을 받기 이전의 상태이며, 우리가 거듭날 때 받는 "선물"이 사단의 포로(捕虜) 생활에서 해방되어 그리스도의 왕국으로 옮겨지는 것이다. 다음절, 에베소서 4장 9절이 이 사건의 시기를 설명한다. "올라가셨다 하였은 즉 땅 아랫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아랫곳으로 내리셨던"은 말할 것도 없이 우리의 죗과를 대신하는 엄청나게 큰 형벌, 십자가의 고난을 말한다. 지옥의 형벌을 받으신 것이다.

이상 몇 구절의 성경말씀이 유다서와 베드로후서 2장에서 읽는 결박의 시기를 잘 설명한다. 우리가 십자가의 승리를 찬송가에서도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박"에 대하여 그 뜻을 좀 더 생각해 보자.

"자녀들은 혈육(血肉)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히 2:14-15)

이 구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 사단의 멸망을 가리킴을 알게 된다.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塗抹)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박으시고 정사와 권세를 벗어 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골 2:14-15)

여기에서 "정사와 권세"는 사단을 지적하며,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2장에서 말씀사신대로 "강한 자를 결박"하시는 것이다. 이 결박에 대하여 "완전히 사단의 거동(擧動)을 폐쇄(閉鎖)한다"고 생각한다면 그 뜻을 이해하기가 곤란하다. 말하자면 사형 언도를 받은 사형수가 사형 집행시까지 기동(起動)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또 다른 비유로, 미국 역사에 보면 아프리카에서 잡아온 흑인을 쇠살슬을 달아 놓고 부려 먹던 일을 생각나게 한다. 그 후 흑인 노예(奴隸)들의 쇠사슬이 없어룶다 할지라도 "그들이 쇠사슬에 매여 있었다"는 표현은 노예 생활을 잘 설명한다. 이러한 생각은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벧전 5:8)라고 하신 말씀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결론적으로 얻는 결박의 뜻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승리하시는 순간 사단은 땅에 떨어졌고,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구원 계획이 구체적으로 시작되어, 사단은 그 계획을 절대로 방해하지 못하도록 인봉(印封)하신 것이다. 사단은 이 시기를 알고 있었다(마 8:29).

이목사님이 계시록을 가리켜 "장차 일이지만 어느 시대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것이지"라고 한 얘기는 성경적인 진리이지만, 쳔년왕국을 믿는다는 사실은 이 진리와는 이율배반(二律背反)의 논쟁이다. 왜 그런가 하면 천년왕국을 믿는 생각은 특정(特定)한 시대, 특정한 장소, 특정한 사람들을 염두에서 버리지 못하는 망각에서 오기 때문이다. 성경이 실제적이냐 상징적(象徵的)이냐 하는 논쟁을 생각할 여지가 없다. 성경은 영적인 교훈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이고 실제적인 사건들이 다 한결같이 영적인 우리 구원(복음)의 설명이라고 할 수 있다.

가령 "이스라엘"이나 "예루살렘"에 대하여 성경에서 읽을 때 그 뜻이 실제적이어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설명하지만, 현재 우리 믿는 자에게 제시(提示)되는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은 영적인 뜻 외에는 아무런 뜻도 없다는 점이다. 천년왕국을 믿는 자들은 아직도 이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이 실질적인 사실로서 등장한다고 큰 오해를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의 뜻이 반드시 20세기에 사는 우리에게는 영적인 뜻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옛 성전 자리에 회교도의 사원을 짓도록 허락하신 것과, 현재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계의 어떠한 국민보다도 자기들의 피를 이은 그리스도를 미워하게 되도록 내버려 두신 사실이다. 이러한 형편에서도 이스라엘이 다 그리스도께로 돌아올 것이라는(사 27:13, 렘 3:14) 것과, 성전을 다시 예루살렘에 건축하리라는 주장은, 기사와 이적이 아직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타난다고 믿는 사람들의 신앙이다. 그 신앙은 천년왕국이 시작되는 순간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그리스도를 구주로 섬기게 된다는 것이다. 어처구니 없는 생각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순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목적이 다 달성되었다는 사실을 성경은 가르친다. 세상의 어떠한 국가도 다른 국가보다 특수하게 하나님의 총애(寵愛)를 받을 수는 없다. 어떤 국가의 국민이든 상관없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창세전에 계획하신대로 이루어지고 있다.

4. 두 개의 왕국(王國)

이목사님은 다시 학자 "에베렛 카버"의 견해를 소개하지만, 하나님께서 세상의 역사는 자기의 구원 계획 속에 전혀 참고하시지 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계 11:2). 성경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의 수가 차는데만 관심이 있음을 우리에게 가르친다(계 6:11, 롬 11:25).

적그리스도에 대한 정확한 이해로도 이 지상에 천년왕국이 올 것이라는 그릇된 이해를 해소(解消)할 수 있다. 이목사님은 "이교가 결박을 당하는 "을 "용이 결박을 당한 것"으로 "에베렛 카버"의 학설을 동의하지만, 그럴 수가 없다. 성경에는 전혀 근거가 없는 얘기이다.

첫째 세상에는 두 개의 영적 왕국이 있으며, 온 인류가 이 두 왕국에 속해 있음을 성경을 통해서 알게 된다. 어떤 한 사람이 두 왕국에 동시에 적을 둘 수도 없고, 또 아무 왕국에도 적을 두지 않을 수도 없다. 그 왕국들은 사단의 왕국과 그리스도의 왕국이다. 일단 그리스도의 왕국에 들어온 사람은 영원한 입적(入籍)을 하는 것이며, 사단의 왕국으로의 이적(移籍)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사단의 왕국으로부터 그리스도의 왕국으로 이적을 한다. 이 이적의 과정은 완전히 하나님의 역사(役事)이다.

이 사실을 통해서 분명해지는 진상이 있다. 그 진상은 성경이 이 두 왕국을 설명한다는 사실이다. 어떠한 특정한 집단을 말할 때도 이 두 왕국을, 또는 두 왕국의 백성을 말하는 것이며, 모든 비유가 예외 없이 이 두 가지를 가리킨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역사상의 어떠한 저명인사(독일의 히틀러 같은)를 가리켜 적그리스도라고 생각한 판정은 다 잘못된 것임을 알게 된다. 용과 뱀은 사단의 다른 이름이며, 사단은 하늘에서 쫓겨난 천사(겔 28:12-16)이며, 그는 하나님과 사람의 원수가 되었다(창 3:15, 고후 11:3). 그렇기 때문에 사단을 적그리스도라 부르며, 이 적그리스도는 사도시대부터 일하고 있음을 요한1서 2장 18절에서 읽을 수 있다.

이대우, 6/6/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