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주의(Dispensationalism)-2

말세에 속지 않고 성경 말씀을 지켜 나갈 열두 가지 요법(療法)

지난번 편지에 약속한대로 오늘은 세대주의에 속지 않기 위하여 그들이 믿는 열 두가지 잘못된 생각을 공부한 다음, 현재 많은 기독교인들이 걸어가고 있는 열 두가지 잘못된 길을 지적하고 거기에 속지 않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기로 하겠습니다.

 

I. 세대주의가 잘못 믿는 성경 말씀 열두(12)가지

1. 한 가지 밖에 없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

이스라엘의 구원 계획과 교회의 구원 계획이 따로 있다고 믿게 되는 이유는 성경에 나타나는 이스라엘에 대한 이해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 이해는 창세기 17장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명하여 남자는 다 할례(割禮)를 받게 하셨으며(창 17:10), 아내 사라를 통하여 이삭을 낳을 것이며, 이삭의 후손들이 "중다(衆多)하여 그로 크게 번성케할지라"(창 17:20)고 하신 것을 공부함으로써 얻을 수 있습니다. 물론 창세기 17장은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의 장래가 어떻게 될 것을 말씀하셨지만, 이스라엘의 역사는 복음을 통하여 천국에 들어가는 상징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분(區分)하기 위하여 할례를 받게 하셨지만, 그 할례의 더 깊은 뜻이 우리의 구원을 설명하는 것임을 또 분명히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빌 3:3)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골 2:11)

그러므로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은" 모든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이스라엘임을 성경은 가르칩니다.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지어 주시고, 야곱에게 장래를 약속하신 창세기 35장의 기록도 자세히 살펴 볼 때, 그 약속은 모든 믿는 자에게 주신 것임을 알게 됩니다.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니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국민과 많은 국민이 네게서 나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창 35:11)

"많은 국민"이라든가 "왕들"은 야곱의 혈통을 받은 사람들이 아니라 택하심을 입은 모든 사람들을 지적함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전도 사역(使役)을 하신 삼년 반 동안에도 이 이스라엘에 대하여 우리가 이해를 할 수 있도록 이방인들을 선택하여 여러가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0장 5절에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하신 것도 "이스라엘 집"이 야곱의 혈통을 이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지적하심이 아닌 것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생수(生水)를 네게 주었으리라"고 하신 때에도(요 4:10) 사마리아 여인이 이방인이지만, 이 얘기는 그 여인이 구원을 받은 기록이며, 이방인들도 이스라엘로 간주하신 것을 알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서신중 여러 곳에 이스라엘의 뜻이 택하심을 받은 자들임을 분명하게 가르칩니다.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裏面的:inwardly)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儀文:letter)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롬 2:28-29)

 

여러 성경 구절들을 종합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여러분은 유대인이며, 이스라엘 사람들이라고 부르시는 것이 분명합니다.

택하신 자들을 "참 이스라엘"이라고 정의합시다. 야곱의 혈통(血統)을 받은 이스라엘의 역사(歷史)는 참 이스라엘의 그림자이며,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이 이스라엘을 위한다는 표현은 구원을 받을 자들을 지적함을 가르칩니다. 히브리서 9장 25- 26절은 이 참 이스라엘을 위한 창세로부터 시작한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가르칩니다.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 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이 말씀은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살던 모든 믿는 자들이 단번에 드린 그리스도 자신의 회생 제물로 말미암아 속량되었음을 가르칩니다.

2. 메시야로 이미 오신 그리스도

세대주의자들이 기다리는 구세주는 2,000천년 전에 이미 오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을 마감하면서 성경을 쓰는 이유를 말하며,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요 20:31)라고 하였습니다. 메시야는 히브리어로 그리스도이며(요 1:41), 다니엘 9장 25-26절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로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이 그리스도께서 이미 오신 기록은 복음서와 사도들의 편지에서 수 없이 많이 읽을 수 있습니다.

3. 이스라엘의 구주로 오신 그리스도

그리스도께서 지상(地上)에 다시 오시어 예루살렘을 수도(首都)로 하고 이스라엘 왕국의 왕이 되실 것이라는 세대주의의 가르침은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스라엘의 구주로 오셨음을 부인합니다. 마태복음 2장 6절은 아기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셨음을 분명히 말해 줍니다.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4. 이스라엘과 세상의 구세주로 이미 오신 그리스도는 임무를 완성하셨음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다시 오시어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이라는 생각은 그리스도께서 구세주(救世主)로 세상에 오신 사역(使役)을 부인하는 것이며,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2,000년전의 이스라엘이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지 못하던 것과 동일합니다. 이러한 생각은 아직도 그들에게는 구세주가 없음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위에서 읽은 바 마태복음 2장 6절과 또 많은 성경말씀이 그리스도는 현재 우리의(이스라엘을 포함) 구세주이심을 가르칩니다.

5. 우리의 왕이신 그리스도

세대주의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왕으로 이미 오셨음을 부인합니다. 왕으로 오신 아기 예수님을 박사들이 만나러 왔었고(마 2:2), 나다나엘이 예수님을 왕으로 시인(是認)하였고(요1:49), 예수님 자신이 왕으로 오셨음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셨고(마 21:3-5),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도 자신이 왕이심을 선언하셨고(요 18:37), 사도들이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의 왕이심을 전도하였습니다(행 5:31).

6. 정치적 왕국의 왕이 아니신 그리스도

2,000년전 그리스도께서 처음 세상에 오셨을 때 이스라엘은 그리스도께서 자기들의 왕이 되어 로마 통치하(統治下)에서 해방되기를 기대했습니다. 제자들도 그렇게 알고 있었고, 가룟 유다가 그리스도를 판 것도 그러한 기대에 대한 실망에서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이 가르치는 분명한 사실은, 그리스도께서 영원히 누릴 천국의 왕이시며, 우리는 거듭나는 순간 그 왕국의 시민이 되며, 왕이신 그리스도는 지금 우리를 다스리시는 왕이십니다.

7. 성경이 정의하는 교회의 뜻

세대주의자들은 교회시대라는 새로운 세대를 정의함으로써 성경이 가르치는 교회의 뜻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의 사역을 보면 구약시대를 "광야교회"라고 불렀고(행 7:38), 사도 바울이 아그립바왕 앞에서 복음의 행적(行蹟)을 변명한 내용을 보더라도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 한 것 밖에 없으니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선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행 26:22-23)라고 한 것은 하나님의 교회는 선지자들과 모세를 통하여 이미 설립되어 있었음을 가르칩니다.

8. 세상 종말에 올 휴거

세대주의자들은 교회의 휴거가 칠(7)년 환난 전에 있을 것이며, 그 후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실 때 그 교회가 함께 지상에 내려 온다고 믿습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며, 요한복음 6장은 믿는 자들의 휴거가 세상 마지막날에 있을 것을 예수님께서 직접 네(4)번을 말씀하셨습니다(요 6:39, 40, 44, 54).

9. 창세기 17장의 언약(言約)

창세기 17장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로마서 4장은 잘 설명합니다. 로마서 4장 11절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祖上)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2,000년 전에 오신 것은 이 창세기 17장의 언약이 이루어진 것이며, 사도행전 5장 31절에는 "이스라엘로 회개(悔改)케 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창세기 17장의 언약을 아직도 기다린다는 세대주의자들의 생각은 그 근거를 성경에서 찾을 수가 없습니다.

10. 영광은 오로지 그리스도께로만 돌려야 함

세대주의자들은 아직도 야곱의 혈통을 받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선민임을 믿으며, 그들에게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그(그리스도)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 3:30)고 함으로써 영광은 사람들이 받을 것이 아니며 오로지 하나님의 것임을 가르칩니다.

11. 천국에 있는 구원 받은 자들

세대주의자들은 과거에 죽은 모든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의 재림시 그와 함께 이 세상에 살아 내려올 것을 가르칩니다. 그러한 가르침은 성경에 없는 얘기이며, 아담이 범죄한 후 이 세상이 저주를 받은 사실(창 3:18)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이 세상은 점차 낡아지고 있으며(시:102:26), 불의 심판을 기다릴 수 밖에 없게 되어 있습니다(히 10:27).

12. 모든 인간에게 차별 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

성경 역사를 보면 하나님을 거역한 이스라엘을 그 당장에 멸하실 수 있었지만 그리스도께서 오시기까지 기다려야 했으며, 그리스도께서 만민(萬民)의 구주가 되심으로써 성경의 언약이 이루어졌으며, 세상의 모든 국가가 차별 없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 아래 복음을 받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를 받고, 예루살렘에 수도(首都)를 세우고 이스라엘 왕국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하나님의 구 원 계획을 충분히 공부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II. 교회가 가르치는 속기 쉬운 교리(敎理) 열 두(12)가지

두 사람이 성경 얘기를 하는 동안 그 해석의 차이가 있을 때 타협적으로 결론을 짓고 대화를 끝내는 경우를 가끔 봅니다. 두 가지 해석이 다 진리를 말할 수도 있겠지만, 대개의 경우 그중 하나는 근본적인 성경 해석의 원리를 염두에 두지 않으므로 사사로운 성경 해석(解釋)을 하는 결과입니다. 사단은 그 사사로운 성경 해석을 장려(奬勵)함으로써 인간들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진리와 멀어지게 합니다. 그러나 보다 더 큰 문제는 성경 해석이 어떤 교리에서 시작하여 많은 독자들의 긍정을 얻고 있을 때입니다.

가톨릭교의 교리가 그렇고, 또 이와 같이 유명한 신학자들이 전개한 교리들이며, 또 그 중에는 천년왕국이라든가 인간이 자유의지로 그리스도를 선택한다는 가르침입니다. 이러한 가르침이 허다하지만 그 중에서 열 두가지를 선정하고, 택하심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꼭 배워야 할 하나님의 말씀들을 공부 하고자 합니다.

1. 황금시대인 천년왕국(千年王國)은 오지 않는다

지상(紙上) 토론(討論)의 비평과 또 열 두가지 세대주의에 대한 잘못된 점을 여러분께 말씀 드림으로써 충분한 성경 공부의 자료를 제시(提示)한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께서 종말론(終末論)의 책을 서점에서 찾으신다면, 열권중 아홉권은 천년왕국을 가르칩니다. 속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의 권능을 입어 기사와 이적을 행한다는 교역자들과 신자들

약 일년 전에 드린 편지 중에서 "가장 현저한 말세의 징조, 기사와 이적"이라는 제목으로 성경 공부를 한 적이 있으며, 말세에 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에 대한 상당한 양의 성경 구절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그 편지에 발췌(拔萃)한 성경구절을 다시 한번 찾아 보는 것은 우리 신앙 생활에 이득이 될 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감사할 것은 말세에 하나님의 백성이 혼돈을 피하도록 "기록된 성경 말씀 만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가르침으로써 성경을 마감하셨습니다.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계 22:18-19)

이 구절에서 "이것들 외에 더하면"은 "하나님의 계시가 성경 외에도 있다고 믿으면"이라고 대처할 수 있습니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마 24:24)고 예언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보증하시기 위하여 위의 구절을 우리에게 주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께서 택하심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까? 기사와 이적을 과시하는 모든 얘기를 들을 때 귀를 막아야 합니다.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이 무엇입니까? 지옥에서 받을 형벌입니다. 왜 그 무서운 형벌을 자청(自請)하겠습니까?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고후 5:7)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믿음은 그리스도의 믿음이며, 믿음은 말씀에서만 옵니다.

3. 안수(按手) 기도를 받고 병을 고치고자 하는 사람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특정한 사람들을 선정하여 특수한 직책을 주셨습니다. 그 특수한 직책은 왕들이며, 선지자들이며, 제사장들입니다. 이 직책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머리 위에 기름을 부어서 구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 가지 특수한 직분을 위하여 기름 부음을 받으셨습니다. 그리스도는 만왕의 왕이시며(계 19:16), 우리의 대제사장이시며(히 2:17), 선지자이십니다(히 3:1, 신 18:15, 행 3:22).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에게도 이와 같은 귀한 직분을 다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왕이며(계 1:6, 벧전 2:9), 제사장이며(계 1:6, 벧전 2:9, 사 61:6), 또 선지자들 입니다(행 2:17, 막 16:17-18).

우리가 남의 어려움을 보고 그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자연적인 행동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병을 고치기 위하여 어떤 사람의 안수 기도를 받는 것은, 가톨릭 신부(神父)에게 가서 죄를 고백하고, 용서함을 받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제사장이 된 우리는 거리낌 없이 그리스도 앞에 내 자신이 나아가서,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문제를 직접 아뢰고, 해결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자녀입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사정을 여러분 자신보다도 더 잘 알고 계실 뿐 아니라, 여러분께서 구하기 전에 해결책을 마련하고 계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한 말로 말해서, 병을 고치기 위하여 모이는 집회는 무당을 둘러싸고 모인 무지(無知)한 무리들과 조금도 다른 점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내가 하나님의 자녀인지, 아닌지"를 먼저 알아 보시기 바랍니다.

4. 철야기도와 금식기도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예수님의 명령이며(눅 21:36),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구하는 것을 이루어 주신다고 약속 하셨습니다(요 11:42, 사 58:9). 그러나 예수님께서 "구하라 주실 것이요"(마 7:7)라고 하신 것이 무엇이든 청구(請求)하는대로 다 주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마 7:10)고 하신 말씀은, 믿는 자들의 참 기도가 "생선을 달라"는 기도이며, 그렇지 않은 기도는 "뱀을 달라"는 기도임을 상징(象徵)합니다. 생선은 복음을 말하며, 뱀은 세상의 복지(福祉)를 위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복지는 하나님의 뜻과 항상 상반이 되는(갈 5:17) 이유는 사단(뱀)이 세상을 통치(統治)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경우, 기도의 뜻이 한국 사람들에게는 냉수를 떠 놓고 알지 못하는 신에게 소원을 하소연하는 것과 같습니다. 소원하는 것이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심령을 만족케 하는 흡족한 은혜를 받는다"고 합니다. "은혜를 받는다"는 표현이 감정적으로 또는 심리적으로 흡족한 생각이 든다는 것이지만 성경이 정의하는 은혜는 아닙니다. 성경이 정의하는 은혜는 값 없이 받는 구원을 말하며, 이 구원이 철야 기도, 또는 금식 기도를 통해서 오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놀라운 것은 성경이 정의하는 금식(Fast)은 복음을 전함을 말합니다(사 58:6). 한국 기독교인들의 일화(逸話)에서, 철야기도의 경험은 신령(神靈)한 것을 체험(體驗)한다고 합니다. 신령한 것이 하나님께서 오는 것이라고 믿는다면, "하나님의 계시(啓示)는 성경 외에는 없다"는 기본적인 가르침을 벗어나며, 철야기도 또는 금식기도의 행동은 사단의 사역을 돕는 일 밖에 되지 않음을 증명합니다. 금식을 적당히 함으로써 위장병을 고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사실일 수가 있습니다.

5. 성령을 내리게 하는 기도

성령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한 이름입니다. 장난감을 선물로 받는 것처럼 "성령을 주시옵소서"하면 받고, 얼마 후에 그 성령이 떠나가고 없기 때문에 "다시 오십시오"하면 또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성경에 근거가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에게 약속하시기를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고 하신 것은, 우리가 일단 거듭나면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영원히 사시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께서 그 믿음이 없으면 아직도 거듭나지 못한 증거이며, 성령을 받겠다고 집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광명의 천사"로 온 사단의 속임 수에 농간(弄奸)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거듭나는 것은 전적으로 말씀으로 되기 때문입니다.

6. 유명(有名) 지사(志士)

우리가 말세의 징조를 알려고 할 때 교회의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把握)해야 하는 이유는, 성경이 정의하는 말세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교회를 두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말세에 세상의 죄악이 관영할 것을 성경은 말하지만, 그 죄악을 교회가 타협을 하는 때가 말세입니다. 그러한 현상이 사단의 역사라고 하지만, 사단은 거짓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모든 인간들을 속이며, 광명의 천사로 오기 때문에 광명의 근본이신(요 8:12) 그리스도인 줄 알고 따라가는 때입니다. 수십 만명이 모이는 집회에 가서 듣는 설교가 그릇되고, 악하다는 얘기를 들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진리와는 관계가 없는,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하는 얘기들임을 알게 됩니다. 그러한 많은 집회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이고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7. 구원 받는 일이 그리스도를 내 마음 속에 "내가" 영접한다고 믿는 사람들

구원을 내가 자청(自請)해서 받았을 때, 쉽게 상실할 수가 있습니다. 인간의 능력은 제한되어 있을 뿐 아니라 변질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빈번한 부흥회가 필요하며, 매 부흥회 때마다 새로 거듭나기로 작정을 합니다. 전에 회개를 하기는 했지만, 그 회개한 결과로 지은 죄의 용서함을 받은 것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 유명한 빌리 그레함(Billy Graham)의 집회를 보면 수 천명의 신자들이 강대상 앞에 나와 무릎을 꿇고 그리스도를 영접합니다.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죽어 있던 영혼을 살리시는 순간입니다. 죽어서 나흘이 된 나사로를 살리신 것은 우리가 구원을 받는 과정을 상징합니다. 죽은 송장이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하는 일이 구원을 받는데 필요하다고 가르치는 모든 가르침은 거짓말입니다. 물론 부흥 강사들은 자기도 알지 못하면서 청중을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짓말 하는 자가 천국을 기업으로 받을 수 없는 것(계 21:27)을 기억하시고, 내가 받은 구원은 영원한 것이며, 내가 지은 죄는 다 용서함을 이미 받았고, 육신이 약하여 짓게 될 앞으로 범할 죄까지도 용서하심을 받을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은혜의 복음은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역사이며, 내가 선을 행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된 결과입니다.

8. 그리스도께서 세상 만인의 속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셨는가?

그리스도께서 세상 만인을 위하여 오셨다는 가르침은 그리스도를 마음에 영접함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사람들의 계속되는 오해(誤解)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예정하셨다"는 성경 말씀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말하기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우리의 구원을 가능하게 만들어 놓으시고, 그를 믿고 마음에 영접하는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사람의 생각으로 말하면 그럴듯한 얘기이며, 공평하시고, 사랑에 넘치는 하나님의 뜻임을 설명하는 듯 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이러한 생각을 뒷받침하지 못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을 성경은 여러가지로 설명을 하셨으며, 그 중에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마 5:45)고 하셨고, 아브라함의 첩 하갈이 자기의 아들 이스마엘과 같이 광야에 쫓겨났을 때 "두려워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하시며 이스마엘의 자손이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신 것"(창 21:17-18) 등의 기록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선택하신 계획과, 그 선택의 과정, 즉 거듭나는 과정을 성경에서 배울 때 조금은 알게 됩니다. 이 사랑을 이해하는 처음 단계는, 모든 인간은 타락하고 범죄하여 그 영혼이 죽어 있음을(롬 3:10-18, 엡 2:1) 알게 되는 것입니다. 구약에 기록된 인물 중에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 받는 과정에서 예외로 되는 것 같이 생각되지만, 예외가 없음을 성경은 가르치며, 하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것 같이 우리의 죽은 영혼을 살리지 아니하시면 한 사람도 구원 받을 사람이 없음을 가르칩니다.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가리켜 "알파와 오메가"(계1:8)라고 하신 것은 그가 우 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또 그 거듭난 우리를 천국에까지 들어가게, 끝까지 인도하심을 가르칩니다.

9. 남자와 여자는 동등한가?

20세기에 들어서 남녀 동등(男女 同等) 문제는 사회의 가장 큰 논쟁을 일으켰습니다. 50년전의 사회와 지금의 사회를 비교하여 여성들의 입장과 그들의 활동을 살펴본다면 엄청난 차이를 통계적으로 제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편지에 사회상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며, 교회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살펴 보자는 것입니다. 교회가 사회와 동조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가족제도가 돌이킬 수 없이 붕괴(崩壞)된 사회와 국가는, 인체의 어떤 기관이 세포로부터 썩어가는 암과도 비교가 됩니다. 그러한 세포가 썩어가는 암이 교회에 침투되어 있음을 누가 부인하겠습니까?

이러한 암은 교회가 이혼을 허락하는 것이며, 교회가 여자 교역자를 받아 들이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대로 한다면 간음한 아내를 버릴 수도 있고, 강폭한 남편을 떠나서 평안한 생활을 시도할 수도 있고, 성경의 지식과 사회에서 선망이 높은 여성이 교회를 지도할 수도 있겠지만, 성경에는 이러한 일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남녀를 구분하시는 첫 번째 이유는 창조하신 목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너(여자)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창 3:16)고 하신 것은 명령 계통을 하나님께서 세우셨음을 말하며, 신약 시대에 사는 우리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고전 11:3)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믿는 자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또 이해하려고 노력도 하지 않는 이유는 "남편이 아내를 다스리는 법" 즉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엡 5:22)는 명령을 완전히 망각(妄覺)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법은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전 14:34)고 하셨고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딤전 2:12)라고 하셨습니다.

이혼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직접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마 19:6)고 하심으로 한번 결혼을 하면 죽는 날까지 이혼할 수 없음을 성경은 가르칩니다.

10.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연령(年齡)의 제한이 있는가?

"그리스도를 마음에 영접함으로 구원에 이른다"는 신자들에게는 "나이가 얼마나 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하는 해결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가 있습니다. 이 문제는 로마서 10장 9절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신 말씀에서 옵니다. 사물을 판단하지 못하는 유아들이 어떻게 "그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겠는가?"하는 질문을 합니다. 그 답변으로 "어느 정도 철이 나야지만 예수님을 구주로 시인할 수 있다"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성경이 이 구절 밖에 없다고 가정하거나, 이 구절을 사람의 이성(理性)과 육감(肉感)으로만 생각한다면 철이 나야지만 예수님을 구주로 시인한다는 답변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결론이 성경에 있는 딴 구절을 부정하게 된다면 이것은 잘못된 결론임을 알게 됩니다.

가령 로마서 9장 11-13절에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고 하신 것은 야곱이 태중에 있을때 구원을 받은 기록입니다. 시편 71편 6절에 "내가 모태에서부터 주의 붙드신바 되었으며"라고 한 것이나, 세례 요한이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눅 1:15)라고 우리가 읽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이(거듭나는 것이) 입으로 시인(是認)해서 받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로마서 10장 9절을 어떻게 이해하는가?"라고 반문(反問)할 것입니다. 이 구절의 바른 이해는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시인한다"라는 뜻이 며, 성경에는 이와 비슷하게 우리의 행동이 우리를 의롭게 만드는 것처럼 표현이 되

어 있습니다. 성경의 가르침은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결과로 선하게 되며, 그리스도를 구주로 시인하며, 의롭게 됨을 가르칩니다. 우리가 행하는 아무 것도 구원의 조건이 될 수는 없습니다.

11. 큰 교회(敎會)와 작은 교회

어떤 목사님이 자기를 소개하면서 미국에서 가장 큰 교파의 목사임을 자랑하는 것을 들은 바 있습니다. 또 제 극친한 친구 목사가 자기의 큰 교파의 잘 되어 있는 퇴직(退職) 제도(制度)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큰 교회에서 시무하시던 존경 받는 원로(元老) 목사님의 자식들을 다 성공 시킨 얘기를 듣습니다. 이러한 것이 그리스도의 복음과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거의 예외 없이 교회가 영업(營業)을 하는 단체로 발전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인의 숫자가 중요하며, 그 큰 숫자를 유지하기 위하여 교회는 사업 계획을 하며, 그 사업을 집행합니다. 말할 것도 없이 그 사업들은 사회 복지(福祉)를 위한 것입니다. 복음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이 사회 복지를 위한 것이라면 이러한 큰 교회가 큰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이겠지만, 복음은 사회 복지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참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며 배우는 곳이며,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宣布)되는 곳입니다. 교회는 거듭난 자들이 서로 교제하는 곳이며,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배에 참여하는 곳입니다. 말씀을 우리가 선포한 후 사람들이 말씀을 믿게 되는 것은 인간들이 계획하고 실행하기 때문에 되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계획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교회의 크기도 아니며, 교인의 수(數)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그 배운 진리를 그대로 선포하는 것입다.

12. 과학자들의 말을 성경보다 더 정확학하다고 믿는 신앙

성경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라고(요일 2:22) 정의했으며, 성경의 가르침을 부인하는 모든 자들은 적그리스도입니다. 영적인 뜻을 강조하여 적그리스도를 말한다면 택하심을 받지 못한 인간들은 다 적그리스도입니다. 택하심을 받은 모든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함으로써 그리스도인임을 증명합니다.

몇개월전, 2,000명의 신도를 가진 교회에 시무하는, 성경말씀으로만 설교하고 가르친다는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깜짝 놀란 일이 있습니다. 세상의 창조가 과학자들이 말하는바 수백 만년이 된 것을 믿고, 창세기 일장을 설명하려는 것입니다. 인류역사에서 가장 흉악한 적그리스도를 촬스 다아윈(Charles Darwin)이라고 믿는 신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도 그 생각에 동감입니다. 그러나 수다하게 많은 교역자들과 신자들이 다아윈의 학설을 성경말씀보다 더 정확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한줌 밖에 되지 못할 다아윈의 지혜를 하나님의 지혜와 비교하려고 하는 어리석은 신앙이 여러분에게는 없기를 바랍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교회가 박사들이 수 십명나오는 지성인의 교회임을 소개한 일이 생각납니다. 만일 그 교회의 목사님의 설교가 말씀은 외면하고, 인간의 지식이나, 인간의 이성(理性)을 설명하는 연설(演說)이라면, 그 교회의 교인이 되는 이득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상과 같이 교회가 잘못 믿고 있는 열 두가지 경우를 선택하고 성경 말씀을 찾아 보았습니다. 현대 교회는 이 외에도 수 없이 많은 성경 말씀을 왜곡하여 믿고 있습니다. 믿는 자들에게 성경 말씀은 영의 양식이며, 우리가 성경을 잘못 깨달을 때 우리의 영혼은 독을 마시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살고 성장(成長)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뜻을 바로 깨달아야 하며, 그러한 능력은 하나님께서 주셔야만 우리는 소유하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애원(哀願)하며 기도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대우 드림, 1/21/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