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말씀을 잘못 나누는 교리 -요약-

얼마 전에 스퍼어젼(Spurgeon) 목사가 "진리의 말씀을 잘못 나누는 교리"(Wrongly Divideding Word of Truth) -세대주의 비판- (A Critique of Dispensationalism) "죤 거스너"(John H.Gerstner, PhD)가 쓴 책을 저에게 우편으로 보내 왔습니다. 이 목사님이 주일학교에서 책 "1994?"를 6주간 우리에게 가르친 일이 있습니다. 그 후 4개월이 지나서 그 분이 나에게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책을 사서 보낸 것입니다. 제가 이 책을 읽고 캠핑씨의 성경해석 방법이 세대주의자(Dispensationalist)와 같다는 것을 믿게 하려던 것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의외로 좋은 책을 읽었고 오히려 스퍼어젼 목사의 판단이 잘못이라는 반증을 할 수 있는 자료가 생기지 않았는가 생각합니다. 말세를 눈 앞에 둔 우리는 어떤 책을 읽을 시간이 없음을 이구동성으로 말하며, 아주 효과적으로 전도할 계획을 함께 해야 할 때에 내가 시간을 낭비하지나 않나 생각도 했습니다.

저의 독후감은 사단의 역사를 생각하게 됩니다. 현명한 사단이 제일 먼저 선수를 친 곳이 성경번역이며, 그 다음에 일을 시작한 곳이 신학교라고 깨닫습니다. 말하자면 생명수가 흘러 나와야 할 원천을 흐리게 한 것이지요. 사실은 세상의 신학교가 무엇을 가르치는가를 알게 되면 세상의 기독교가 무엇을 믿고 있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런데 이 신학교들이 16세기에 문을 열면서 다 개혁주의 신앙을 가지고 시작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개혁주의 신앙의 등불이 막 꺼지고 있는 때라고 믿게 됩니다.

이러한 신학의 발전상을 보게 되는 것은 교회가 어떻게 배도하는데 이르게 되었는지를 깨닫게 되며, 말세의 징조를 신학의 동향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대우, 5/23/94

진리의 말씀을 잘못 나누는 교리 -세대주의에 대한 비평- (요약)

제 1장 세대주의에 대한 역사적 고찰

2세기: 저스틴 마티일(Justin Martyl)이 전천년설을 믿었다는 라이리(Ryrie)의 주장은 근거가 없다.

3세기 후: 어거스틴(Augustine)은 한 때 천년왕국설(Chilliasm)을 믿었으나 얼마 후 천년왕국설이 육신적이라는 이유로 거절하였다.















2 진리의 말씀을 잘못 나누는 교리

중세기: 토마스 아퀴노스(Thomas Aquinas)는 교회가 영적인 천년왕국의 영광을 누린다고 믿었다.

종교개혁기간: 모든 교회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며 동시에 산 사람과 죽은 사람들을 심판하신다고 믿었다. 이 사실은 다음과 같은 신앙고백에서 읽을 수 있다. (a) Tetrapolitan (b) Basle (c) Second Helvetic (d) Heidelberg (e) Belgic (f) The Canons of Trent (g) Orthodox 1642 (h) Westminster (i) 영국교회의 39개 조항 등이며, Lutheran Augsburg 신앙고백은 유대교와 First Helvetid 신앙고백이 지상에 황금시대가 1000년이 계속된다는 믿음을 비난하기까지 하였다. 특히 칼빈(Calvin)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숫자 14만 4천(계 7:4,14:1), 666(계 13:18), 그리고 1000(계 20:2)을 실제적인 숫자로 보는 것은 어린아이들이 꿈을 꾸는 것과 같다고 지적하였다.

종교개혁 후: 근대에 와서 전천년설의 꽃이 피기 시작하여 심지어 개혁교회에도 침투하였다.

제 2장 영국의 현대 세대주의

영국에서 현대 세대주의는 성공회(Anglican 교회)를 나와 설립한 형제(Brotheren) 교회가 시작하였다. 형제 교회의 창시자 중의 하나인 다아비(Darby)의 설교와 출판물을 통하여 세대주의는 전파되었다.

제 3장 미국의 세대주의

프리머스(Plymouth) 형제 교회에서 세대주의는 시작되었다. 법관으로 있던 스코휠드(Scofield:1843-19??)는 부루크스(Brookes)의 영향을 받아 조합(Congregational) 교회의 목사가 되고 통신 성경 강좌를 통하여 세대주의를 가르쳤고, 유명한 스코휠드 주석성경을 발간하였다.

무디(Moody)는 다아비의 영향을 받고 세대주의를 가르치는 무디 성경학교를 세우게 되었다. 최이훠(Chafer)는 세대주의 신학으로 유명한 달라스(Dallas) 신학교를 설립하고 PC USA의 목사가 되었다. 달라스 신학교는 스코휠드 성경을 쓰며 또 장려한다. 달라스 신학교는 세대주의의 주류가 되는 다아비, 스코휠드 그리고 최이훠의 신학을 가르친다. 달라스 신학을 졸업하기 위하여는 세대주의를 인정하는 고백이 있어야 한다.

Dr. 월보오드(Walvoord)(캠핑씨와 6신간에 걸쳐, 전천년설 대 무천년설의 논쟁을 한 일이 있음. Family Radio에서 Tape를 얻을 수 있음)와 라이리는 동일한 세대주의를 달라스 신학교(1925 A.D. 설립)에서 가르친다.

이 세대주의 세력은 성경학교를 통하여 전파되었고, 유명한 무디 성경학교와 장로교 출신인 씸슨(Simpson)이 설립한 선교사 훈련소(Missionary Trainning Institute, Nyack, NY)를 통하여 큰 영향을 끼쳤다. 씸슨은 "The Chrstian and Missinary Alliance 교파를 설립하게 되었다.















진리의 말씀을 잘못 나누는 교리 3

신학교들은 달라스 신학교에 이어서 James대학, Weaton대학, Grace신학교, 서부 보수 침례신학, Capital 성경신학교 등이 세대주의를 가르쳤다.

세대주의 신봉자들의 대회(Conference)가 열을 띄우기 시작(1800년대 후반)했고, 그 중에서 나이아가라(Niagara) 사경회는 대표적이며, 이 대회의 연사들을 보면 Moorehead, Garrett, Gaebelein, Whittle, Needham, Gordon 그리고 Pierson 등이다. 세대주의자들의 선교활동은 너무나도 현저하며 천하에 이름을 날리는 명사들을 다음과 같이 열거할 수 있다. Rex Humbard, Jerry Falwell, Jim Bakker, Jimmy Swaggart, James Robison,그리고 Billy Graham이다.

제 4장 세대주의와 개혁주의 교회

세대주의가 북방 장로교회에 들어온 것은 1878년 프린스톤에서 시작한 정통파(Princeton-oriented Fundamentalism)의 선구자 쌘딘(Sandeen)이 나이아가라 사경회에 가담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이 초기에는 세대주의 신학자들과 프린스톤 신학자들이 적 그리스도의 요소를 가진 자유주의 신학과 대결하기 위하여 연맹하였다. 이 연맹은 지금까지 존재하며, 저자도 그 연맹의 일원이다.

세대주의는 19세기에 새로운 현상으로 신학을 조성하였으며 프린스톤 신학과는 정반대의 학설을 주장하였다.

1930년대에 이르러 이미 세대주의는 장로교회에서 극도로 왕성했고 1936년 세대주의 신봉자인 Machen을 중심으로 PCA가 갈려 나왔다. UPC USA(United Presbyterian Church in the USA)의 Xenia신학교 교장인 모아헤드(Moorehead)는 장로교 세대주의의 일인자이며, 스코휠드 주석성경(1909 A.D.)의 편집자 중 한 사람이다.

화란(Dutch) 개혁교회의 저명한 신학자 피터스(Pieters)는 "스코휠드 관주성경은 시장에서 구입할 수 있는 책 중에서 가장 위험한 책"이라고 선언하였다.(1938)

전천년설의 문제점

모든 세대주의자들은 전천년설을 믿는다. 이 두 가지를 논리상 분리할 수 있으나 역사적으로 볼 때 전천년설은 세대주의의 일부이다. 이 두 학설은 근본적으로 동일하며 동일한 결론을 가지고 온다. 성경을 상고할 때 전천년설을 가르치는 구절을 찾을 수 없고, 또 전천년설을 해석할만한 구절을 찾기도 불가능하다. (The Millennium: Boetter 1958 A.D.)

전천년설은 종말론이고, 세대주의는 신학으로서 전 천년설을 포함한다.

세대주의는 종말론과 신학 전면에 있어 역사상 기독교의 근본적인 신앙에서 멀어져 가고 있다. 세대주의는 도덕률 폐기론주의자(Antinomian)이며, 동시에 기독교의 신학을 말하지 못하고 있다.















4 진리의 말씀을 잘못 나누는 교리

하나님의 백성을 말할 때 구약의 이스라엘과 현대교회를 분리하는 것은 원래의 기독교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이다.

여호와의 증인들이나 몰몬교도들이 이 전천년설의 신봉자이지만 다른 교파의 전천년설의 신봉자들이 그들과는 다른 것을 믿는 줄 알고 있다.

성경은 예수님의 재림이 단 한 번 있을 것을 가르치고 있으나, 전천년설의 신봉자들은 그리스도께서 믿는 자들을 휴거하기 위하여 재림하시고 세상 마지막에 그 믿는 자들과 같이 세 번째로 오신다는 신기한 생각을 하고 있다.

칠년 환난은 유대의 남은 자들을 정결하게 하는 때라고 말한다.

제 6장 세대주의의 성경해석법(Hermeneutics)의 문제점

세대주의는 성경의 직역을 보장하는 것 같이 말하나 사실은 그 신학의 학설이 직역의 방향을 말하는 것 뿐이다.

세대주의는 성경이 성령의 감동으로 씌어졌음을 고백한다. 세대주의자들은 성경 무오류(無誤謬)를 주장하는 세계 심의회(審議會:International Council on Biblical Inerrancy)의 회원이다. 성경해석은 누구에게나 다 어느 점까지 직역을 할 수 있으나 결국은 영적인 뜻을 배우게 된다.

세대주의는 성경의 통일성을 부정하며, 성경의 분리성을 조장한다. 세대주의는 성경을 시대적으로 분리함으로써 상반이 되는 뜻을 조성하며, 상호간의 연결을 가져오지 못한다.

성경의 계시는 사건을 통하여 점차적으로 전개되며 한 사건은 다음에 올 사건을 지적한다. 그러나 세대주의는 이러한 사건들을 연결하여 조화시키지 못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할 때는 신령한 것을 신령한 것으로 해석하는 원리가 적용되어야 하나, 세대주의는 말씀을 별 생각 없이 멋대로 대처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성경이 직역을 보장하는 것처럼 주장하는 세대주의는 이 일에 대하여 확고한 기준이 없다. 특히 예언을 직역할 수는 없다.

제 7장 신학, 가짜 칼빈주의

교회역사에는 단지 3가지 신학이 있다.

1. 첫째는 어거스틴(Augustinian)신학, 칼빈신학, 혹은 개혁주의라 하며,

2. 둘째는 준 페라지안(Pelagian)신학, 알미니안(Arminian)신학, 혹은 복음주 의(Evangelical)이며,

3. 셋째는 페라지안, 쏘시니안(Socinian),혹은 자유주의(현대주의)이다.

세 번째로 열거한 자유주의 신학은 고려할 여지가 없다. 그들은 전혀 비성경적이기 때문에 기독교의 교리라고 부를 수 없다.














진리의 말씀을 잘못 나누는 교리 5

세대주의는 종말론 밖에 말하지 않는 것처럼 인상을 준다. 그러나 칼빈주의를 주장하고 있다. 어떤 세대주의자는 칼빈의 5대 교리 중 "제한된 구속"만은 믿지 않는다고 말하나 결과적으로 5개 교리를 하나도 믿지 않는다. 영국의 침례교 목사였던 스퍼어젼(C.H. Spurgeon)은 말하기를, 칼빈주의란 기독교의 딴 이름이라고 하였다. 칼빈주의를 부인하고 기독교인이 될 수는 결코 없다.

세대주의는 알미니안 신학과 구별할 수 없게 성경을 믿는다. 알미니안 신학은 "사람이 도덕적으로 어느 정도의 선을 행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회개하고 복음을 받아 들일 수 있다"고 가르치며, 복음이란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기 보다는 죄인인 인간이 어느 정도 하나님 앞에 올바를 때에 하나님의 응답으로 오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칼빈주의는 인간이 완전히 타락했기 때문에 선을 택하고 행할 능력이 없다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세대주의는 인간이 선을 행할 마음의 여유가 있음을 믿고 인간의 완전 타락을 믿지 않는다.

조건이 붙지 않는 선택을 믿는 듯 하나 하나님의 선택은 "우리의 신앙을 미리 알고 계셨기" 때문에 선택하셨다고 한다. 세대주의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는 동시에 인간의 자유의지도 믿는다. 세대주의는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께서 하는 부분이 있고 인간이 가져야 할 믿음이 또 있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세대주의는 그리스도의 희생은 모든 인간이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만들고, 성령이 선택된 사람만 구원한다고 믿는다.

개혁주의가 보는 속죄는 "아버지께서 내게 준 자"를 속죄하려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다고 믿는다. 그리스도께서 온 세상 사람을 속죄하신다는 교리는 개혁주의 신앙으로는 받아 들일 수 없다. 알미니안 신앙은 세대주의와 동일하게 하나님께서 세상의 모든 죄인을 사랑하심으로 그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달리게 하였다고 믿는다.

슬픈 사실은 개혁신앙을 가르치는 웨스트민스터 신학의 많은 교수가 개혁주의를 잘못 알고 있고 세대주의에 접근하며 장로교회가 이미 1920 A.D.부터 "부활한 그리스도는 온 세상 사람을 구원한다"고 말하기 시작하였다.

복음주의적 알미니안 신앙은 "사람은 신의 도움이 없이는 믿음을 가질 수 없지만, 믿음이 없이는 거듭날 수 없다"고 한다. 순서적으로 보면, (1). 하나님께서 도우시고, (2). 인간의 신앙이 오고, (3). 다음에 거듭난다. 이상은 세대주의의 가르침과 동일하다. 결국은 죽어 있던 영혼이 자기 힘으로 살아나는 것을 믿는 것이다. 개혁주의 교리는 거듭나기 때문에 신앙이 있다고 하며, 세대주의는 신앙으로 거듭난다고 믿는다.

칼빈의 5개 교리를 비교하면:

1. 완전 타락(Total Depravity)















6 진리의 말씀을 잘못 나누는 교리

칼빈주의: 타락한 인간성은 그 생각과 느낌과 의지에 있어서 완전한 죄인이다.

세대주의: 인간이 타락은 했지만 복음을 받을 만한 양심은 있다.

2. 조건이 붙지 않는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칼빈주의: 온 인간은 완전히 하나님과의 교제가 불가능하게 되었지만 하나님께서 그 중의 몇몇을 선택하셨다.

세대주의: 모든 인간이 죄인이며, 하나님께서 믿음을 가질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알고 선택하셨다.

3. 제한된 구속(Limited Atonement)

칼빈주의: 하나님께서 선택한 사람들만을 위하여, 아무 조건이 없이 독생자이신 그리스도께서 대속하신다.

세대주의: 그리스도의 속죄는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을 위하여 계획하 셨다.

 

4. 거절할 수 없는 은혜(Irresistible Grace)

칼빈주의: 하나님께서 택하고 독생자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속죄 받은 사람은 성령의 역사로 거듭난다.

세대주의: 타락한 인간이 그리스도를 선택하고, 이어서 하나님은 거 듭나게 하신다.

5. 상실될 수 없는 구원(Perseverence of the Saints)

칼빈주의: 성령이 거듭난 사람의 신앙을 지키며, 선한 일을 하도록 인도하며, 원죄로 인한 범죄함과 싸우며 그 죄의 정도는 죽을 때까지 가면서 줄어 들게 된다.

세대주의: 새로 거듭난 본성은 결코 범죄하지 않으며 죽지 않는다. 원래의 낡은 본성은 거듭나기 전과 같이 악하며, 죽을 때 까지 간다.

제 8장 분명치 않는 복음주의: 세대주의의 세대에 대한 이해와 주장은 복음을 부정하는 것이다.

세대주의는 개혁신앙의 4개 조항만 믿는다고 하지만 사실상 알미니안의 5개 조항을 믿고 있다.

이 사실은 극히 슬픈 일이며, 세대주의는 흐리멍덩한 기독교의 교리임을 자처한다. 우리는 비통한 마음으로 세대주의의 가르침을 비난해야 하며, 이 비난을 은연중에 늘 해야 하지만 어떠한 때에는 노골적으로 해야 한다. 이것은 바로 두 가지의 구원을 믿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섬기는 주님이 곧 진리라면, 우리가 땀을 흘리며 여러 방향으로 진리를 찾아 보는 수고를 왜 해야 되는가?














진리의 말씀을 잘못 나누는 교리 7

구원에 대한 교리는 논쟁할 것이 못되고, 절대적이며, 또 타협할 수 없는 기독교의 근본이다.

세대주의는 우리의 구원이 한 길 밖에 없다는 기독교의 근본적인 가르침에서 떠나고 말았다. 숱하게 많은 다른 중요한 진리를 피력할지라도 이 기독교의 본질이 되는 메시지를 제외한다면, 우리는 기독교인이라고 부를 수가 없다. 우리는 이단을 정의할 때 이 기독교의 본질을 부인하는 기독교인을 이단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세대주의가 곧 이단이며, 기독교 교회에 속할 수가 없다. 이 사실은 매우 심각하며, 과장된 것이 아니다.

세대주의는 빈번히, 그리고 필사적으로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는다"고 하지만, 그들의 신학적인 교리에서는 이 사실을 찾을 수가 없다.

스코휠드는 말하기를 "우리가 받는 은혜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서 시작한다.---구원을 받은 상태를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느냐 않느냐 하는 것으로 시험할 필요가 없고, 그리스도를 받아 들이느냐 혹은 거절하느냐 하는 질문을 구원의 결실인 선한 일을 하느냐 안하느냐의 상태와 부합해서 말해야 한다"고 하였다. 만일 인간이 죄로 말미암아 죽었다면, 이 상태는 하나님과는 적이 되는 것이며, 빛의 세계를 미워하는 상태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결코 그 자신의 힘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 들일 능력이 없다.

세대주의의 두 가지 구원은 첫째로는 구약의 구원이 법을 지킴으로 왔고, 둘째로는 신약시대에 죄인이 필요로 하는 믿음을 가짐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다. 세대주의 신학의 근본적 차이가 이 두 가지의 구원론이며, 이것을 부인한다면, 그는 세대주의자가 아니다.

세대주의의 구원은 그리스도와 관계는 되지만 그리스도에게 달려 있지는 않다. 어떤 세대주의 학자들이 구약시대의 사람들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고 하지만 그들의 신학적인 제도를 보면 그렇지 못하다.

결론적으로 세대주의는 두 가지 길의 구원을 가르치는 잘못을 가지고 있다.

현대에 와서 세대주의가 이 잘못을 고치려 하나 그 상처는 너무나 커서 그 심한 상처를 밴데이드(Band-aid)를 바름으로 고칠 수 없는 것이나 같게 되었다.

제 10장 분명치 못한 복음주의: 세대주의가 보는 이스라 엘과 교회의 관계는 복음을 부인한다.

세대주의가 이스라엘과 교회를 은연중에 분리하는 것은 기독교의 구원의 교리를 부인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두 종류의 사람들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은 이 세상에서 사는 방식도 다르고, 장차 올 미래도 다르다고 한다.















8 진리의 말씀을 잘못 나누는 교리

세대주의가 생각하는 이 두 종류의 사람들은 같은 구원을 가지지 않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옛날과, 지금과, 장래에 영원히 동일하시다는 진리를 믿지 않는 결과이다. 같은 구세주로 같은 구원을 받는다면, 어떻게 두 종류의 사람들을 생각할 수 있겠는가? 세대주의자들은 구약의 구원을 받은 인물들은 성령으로 인도된 것이 아니며, 성령을 받지도 않았으므로 신약시대의 신자와 다르다고 믿는다.

세대주의자들이 열성을 가지고 이런 일을 믿는다는 것은 같은 열성을 가지고 하나님의 구원의 근본원리를 부인하는 것이다.

성경이 가르치는 사실은, 하나님의 백성은 모든 세대를 통하여 동일하다. 에베소서 2장 20절은 이 기본적으로 같은 기초를 "사도와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세웠다고 하였다.

구약의 선지자와 신약의 사도들은 다 함께 하나님의 교회의 기초가 된다. 선지자와 사도들이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이 수행한 역할이 좀 다른 것 뿐이다. 사도 바울과 사도 베드로는 이 사실을 시인하였고, 베드로전서 2장 9절은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고

출애굽기 19장 6절, 신명기 7장 6절, 10장 15절, 이사야 61장 6절은 이 사실을 잘 설명한다.

제12장 세대주의의 도덕률 폐기론과 진정한 은혜와의 대 조:성결화(Sanctification)의 교리

세대주의 저서를 보면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게 도덕률 폐기론(Anti- nomianism)을 유지하고 있다. 이것을 버리는 것은 세대주의를 버리는 것이다. 이 교리는 성결화를 잘못 믿는 이단이다. 세대주의의 성결화를 이해하는 일은 그들이 거듭나는 것을 어떻게 믿는가 하는 것을 이해하는 일이다.

개혁주의 신앙은 기독교인이 거듭남으로써 한 사람이 두 가지 인격과 싸우게 되며, 새로 난 인격(거듭난)은 낡은 인격과 싸워 이기게 된다. 이 새로운 인격은 성령이 우리 속에 오심으로 형성이 된다.

세대주의 교리는 인격이 성결화된다는 것보다는 인정을 받는 것이다. 그들은 성결화의 경험이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되는 것과 절대로 무관함을 주장한다. 세대주의자들은 기독교인들의 성결화의 경험이 신앙의 확신을 주는 것과 상관이 없다고 한다.
















진리의 말씀을 잘못 나누는 교리 9

개혁주의 신앙은 기독교인의 성결화는 믿음의 확신이라고 믿는다. 내가 구원을 받았는지 아닌지를 아는 것은 내가 성결화되었는가를 아는 것과 같다.

세대주의 교리는 신앙을 얻는 일이 지성적인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구원을 얻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신뢰한다. 그들은 죄인임을 시인하고 누구에게나 주어진 구세주를 믿는 일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믿음이 인정되는 것이다.

다음은 세대주의 신학자 피터슨(Peterson)의 인간성에 대한 설명이다.

"기독교인은 그들의 생활을 열어 놓아야 한다"

"기독교인은 그 자신의 능력으로 싸움을 해결하기 위하여 성령에게로 간다" "기독교인은 육신을 기쁘게 하는 것들을 없애야 한다.

세대주의 교리에 의하면 기독교인에게 성결화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세대주의는 성결화를 "기독교인을 기독교화하는 과정"이라고 한다.

개혁신앙은 말하기를 "거듭난 인간성은 성령의 도움을 받아, 그의 기적적인 은혜로 우리의 영혼이 성장한다"고 한다.

한편 세대주의는 스코휠드의 말을 빌린다면 "새로운 인격(Nature)이 내 속에 살게 되며 그 인격은 나 자신은 아니며 또 거듭나는 과정은 물론 아니다"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신기한 제 3자가 나타난다. 이 제 3자는 신성(神性)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일종의 도덕률 폐기론(Antinomi- anism)이다. 세대주의는 믿음만이 구원에 필요한 조건이므로 도덕률에 매여서 살 필요가 더 이상 없다고 주장한다. 도덕률 폐기론에 의하면 "거듭나면 새로운 신격이 탄생되며 이 신격은 낡은 인격의 영향을 받지 않으며 우리가 구원의 인정을 받는 것은 바로 이 성결화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낡은 인격은 새로 난 신격의 구원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라고 한다.

개혁주의 신앙은 인간이 성령의 역사로 거듭나며 그 후로 낡은 인격이 새로운 삶의 원칙을 따라서 노력하며, 이렇게 하지 않고는 그리스도를 보지 못한다(히 12:14)고 가르친다. 이러한 노력이 없는 사람은 아직도 거듭나지 못하였음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선택이 그의 행함에 있지 않고, 그러나 행함을 가지고 그가 선택된 사실을 확인한다. 루터나 칼빈이나 그리고 건전한 성경교사들은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지만 그 믿음이 단순히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또한 가르친다.

제 13장 그리스도의 주권에 대한 논쟁과 세대주의의

마지막 말

도덕률 폐기론자들은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할 수는 있지만 그를 자기 생활의 주권자로 받아 들이지는 못한다고 한다. 이러한 논쟁을 "주권과 구원의 논쟁"이라고 불리어 왔다.















10 진리의 말씀을 잘못 나누는 교리

세대주의는 20세기에 와서 기독교인의 인구를 가장 많이 차지했지만 왜곡된 복음을 지니고 있다. 세대주의는 20세기 전반을 휩쓴 현대주의 혹은 자유주의 신학을 잘 대처할 수 있다. 세대주의는 복음주의자라고 말하지만 사실상 성경적인 지혜가 없는 것이 분명하다. 미국의 세대주의는 한 말로 스코휠드 추종자들이며 이 세대주의는 모든 교파와 교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도덕률 폐기론자는 말하기를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라가면서도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없을 때 그리스도는 그를 버릴 것이며 그는 심판날에 저주를 받는다"고 말한다. 도덕률 폐기론은 미국의 많은 복음주의 교회에 침투하였고 선교사들을 통하여 외국에 널리 퍼졌다.

달라스 신학생의 신앙고백을 들으면 다음과 같다.

1.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나 내 생활의 주권자는 아니다.

2.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과 구원을 받는 것은 같은 뜻이 아니다.

3. 회개한다는 것은 예수님에 대한 내 마음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며 죄를 회개하는 것은 아니다.

4. 기독교인이 타락하고 되돌아 오지 못하고 죽는다 하더라도 그가 천 국에 가는데는 상관이 없다.

결론적으로 지금까지 수집한 과거와 현재 세대주의의 역사는 세대주의가 다른 복음을 전파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론

역사적으로 보아서 세대주의의 변화가 좀 있었으나 어제와 오늘날의 세대주의는 근본적으로 동일하다.

세대주의는 칼빈의 4개 교리만을 믿는다고 하지만 세대주의는 근본적으로 도덕률 폐기론이다. 사실상 칼빈의 5개 교리 중 한 가지도 믿는 것이 없다.

세대주의는 모호한 복음주의이다. 구원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찾을 수 있다고 하나, 구원은 은혜로만 이루어진다는 성경의 근본교리와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세대주의는 두 가지의 구원을 주장하며, 이스라엘과 교회가 다른 구원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세대주의는 알미니안 신앙을 믿으며, 기독교인이 예수를 구주로 영접할 수 있으나 인생의 주권자는 아님을 가르친다. 선행을 하는 것은 기독교인이 되는 방법 중에 하나라고 가르친다.

역사상의 모든 이단자들이 참으로 진지하였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의 기준은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에 항상 의지하여야 한다.

바울은 디모데후서 4장 2-4절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진리의 말씀을 잘못 나누는 교리 11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내가 세대주의 신봉자들에게 간청하는 것은 내가 가르치는 내용에 오류가 있으면 지적하고 그렇지 않으면 세대주의 오류를 발견하기를 바란다. 개혁주의와 세대주의가 다 옳을 수는 없다. 어느 한 쪽이 심각한 오류를 가지고 있다. 그럴 때 우리는 거짓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그리고 진지한 회개를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그리스도 앞에서 해야 한다.

진리의 말씀을 잘못 나누는 교리 -요약 끝-

책을 읽고 난 다음의 느낌은 고역을 치른 느낌이다. 왜 그렇게 "주의"도 많고 "설"도 많은지? 개혁주의(칼빈신앙)가 성경적이라면 그냥 성경만 가르치면 될 것이지, 누가 무엇을 주장했고 가르친 역사가 신학자들에게 그렇게 중요할 수가 없다. 특히 신학자들의 책 "1994?"에 대한 거부감이 그들의 학설과 결부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는 것임을 발견하였다.

그들의 불평을 들으면 "과거에 누구는 어떻게 했는데"라는 전제에서 시작한다. 세상 지식(신학)이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는데 방해가 되고 있다. 바른 신학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데 도움이 되겠지만, 하나님의 위대하고, 무한하고 정확한 말씀(성경)을 접근할 때 사람의 콩알만한 지식에서 나온 신학으로 해결하려는 태도를 볼 때 가련한 생각 밖에 나지 않는다.

이러한 점에서 좋은 선생을 가진 우리는 행복하다. 캠핑씨의 가르침은 어떠한 신학자의 가르침과 비교할 수 없이 고상하다(빌 3:8). 우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생명수의 원천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 얻은 또 다른 느낌은 시한 폭탄이 터질 것이라는 선언을 들은 것 같다. 전세계 기독교인 중 90% 이상이 세대주의자며, 알미니안이며, 전천년설을 믿는 사람들인데 이 사람들은 "성경이 정의한 기독교인이 아니다"라고 선언한 이 책을 나도 믿으며, 그들은 "다른 복음"을 믿는다는데 동의한다.

얼마 전에 성결교 원로 목사님과 대화를 했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그는 말하기를 "우리 성결교는 예정론을 믿지 않습니다"고 했다. "우리는 예수님의 구원을 믿지 않습니다"와 동일한 고백이다.

"내가 다시 올 때에 믿는 자를 보겠느냐"고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인가? 말씀의 흉년 중에 하나님께서 내게 양식을 주시는 그 크신 은혜에 감사할 따름이다.

이대우

5월 25일 199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