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21장, 새 하늘과 새 땅 (I)

요한계시록 20장 공부에서 지옥에 대한 공부를 했습니다. 사실상 지옥은 우리가 갈 곳이 아니고 보니, 우리의 관심은 천국에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1965년에 처음으로 미국에 오던 생각을 합니다. 아주 큰 기대를 하고 왔습니다. 미국에 이민 오는 사람들이 해마다 백만이 좀 넘는다고 합니다. 이 백만이 넘는 사람들이 제각기 큰 기대를 가지고 미국에 오기는 하지만, 그 기대가 바라던 것처럼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천국에 대한 기대는 실망과 좌절이 있을 수 없는, 실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소망이 아니겠습니까? 이 천국에 대한 공부를 그냥 넘길 수 없어, 얼마동안 공부하기로 작정했습니다.

특히 요한계시록의 말씀이 비유이며 상징이기 때문에, 천국의 설명도 모두가 비유이며 상징입니다. 미국은 어디가 어떻고, 민심이 어떻다는 식으로 천국을 생각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우리가 세상에서 얻은 적은 지식을 가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상상해 보는 것도 위험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우주는 너무도 신기하기 때문에, 인간의 지혜로 다 이해할 능력이 없습니다. 더욱이나 완전 무결하게 창조하실 새 하늘과 새 땅을 어떻게 우리가 짐작이라도 하겠습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성경 말씀이 가르치는 한도에서 비유의 뜻을 찾아 보고 공부하는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 인간들은 왜 새 하늘과 새 땅이 필요한가? 라는 질문을 합니다. 세상에 큰 정을 붙이고 살며, 성공한 사람들은 세상에 소망을 두게 됩니다. 누구나 할 것 없이 사람들은 한 조각 땅을 사기 원하며, 그 땅 위에 집을 짓고 살 꿈을 꿉니다. 자녀를 가장 좋은 학교에 보내고, 자녀들의 성공을 보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하게 됩니다.

나그네: 어떠한 독자가 질문하기를, 왜 완벽하신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가 불순종할 것을 미리 방지하시지 않으셨는가?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답변을 "완벽한 새 하늘과 새 땅을 택하신 백성에게 주시기 위함이다"라고 답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불순종하기 전에 하나님의 권능과 그 크신 사랑을 미쳐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만이 하나님의 권능을 알게 되며, 또 독생자를 십자가에 달려 죽게까지 하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알게 됩니다. 우리 마음 속에서 자연적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또 즐거움으로 그를 예배하게 되는 때가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사는 것이 나그네의 생활임을 성경은 거듭 가르칩니다. 출장을 자주 다니는 저로서는 나그네 생활의 불편한 점을 잘 압니다. 세상에서 사는 생활이 너무도 편하게 되면, 내 본향이 천국인 것을 쉽게 망각하고, 세상에다 뿌리를 박으려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내가 참으로 천국에 속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하나님께서 시험하시는 과정입니다. 우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이삭, 그리고 야곱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들은 다 나그네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 가나안에 살면서, 또 재물과 능력이 있으면서도, 그 가나안에 정착(定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다 이 세상에서의 삶이 나그네의 생활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약속하신 땅 가나안이 상징적인 천국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1절: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말할 것도 없이 사도 요한이 본 천국은 상징적인 천국입니다. 그러나 실제적인 사실은 "처음 땅이 없어 졌고"라고 한 점입니다. 어떤 면으로 보면 처음 세상은 다 낡아진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한 가지 옷을 입고 또 입으면 낡아지는 것과 같다(시 102:26)고 하겠습니다. 지구도 낡아지는 것입니다. 세상이 걱정하는 공해(公害)와, 또 공해에서 오는 기후의 변동이 그러한 것의 하나가 아니겠습니까?

인공위성: 재미있는 신문 기사를 한 가지 소개합니다. 1999년 6월 24일자 USA Today의 기사입니다.

"신예(新銳) 기술로 장식된 지구는, 태양의 주기적 에너지 방사로 치명적인 영향을 받을 것이다 (Sun's season of rage could darken high-tech earth)"라는 기사입니다. 기사 내용은, 태양 표면에 충전된 가스(gas)의 집합이 서로 충돌하고 또 방사를 하며, 이 충전된 에너지는 그 크기가 11 억톤(11 billion tons) 가량이며, 이것이 우주 공간에 발사된다고 합니다. 이 가스 집단은 약 3일이 걸려서 지구에 도달하며, 인공위성과 지상에 있는 전자장치를 파괴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가스 집합의 주기적인 방사가 1959년에 있었으나, 그 당시에 피해를 걱정할 위성은, 미국과 소련이 시험적으로 떠올린 몇 개의 인공위성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수천의 인공위성이 지구 표면을 돌고 있으며, 여러 가지 현대 과학기술은 인공위성을 의존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예로 1989년도 5월에 소량의 이 태양의 가스 방사가 있었고, 그 때 Galaxy라는 PanAmSat회사 인공위성이 85%의 기능을 상실하였다고 합니다. 그 결과로 상당한 지역에 전화 단절과, 라디오 및 비디오 통신이 오랫동안 좌절되었었다고 합니다.

위대한 기술 GPS: 현재 모든 항해용(航海用) 전자 기구들이 예외 없이 GPS[세계적 위치(位置) 지적(指摘) 장치: 지구를 둘러 싼 16개의 인공위성이 지상에 신호를 보냄으로써, 그 신호를 받는 수신기는 자체의 위치를 정확하게 나타낼 수 있는 장치]를 사용합니다. 항공, 해상, 그리고 지상의 항로를 예외 없이 GPS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2005년경에 있을 태양의 가스 방사는 GPS의 효력이 상실되게 하는 등 21세기 문명사회의 수족을 묶어 버리는 사건이 될 것이라는 기사입니다.

이것은 마치 컴퓨터의 발명과 발전이 인간 문화문명의 개혁을 가져 왔지만 2000년에 일어날 Y2K 버그(bug)의 참상을 예기하지 못한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지혜가 놀랄만한 발명과 발전을 가져오지만, 그 지혜는 인간 자체를 올무에 빠지게 하는 것 밖에 되지 않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문화문명의 발전은 인간과 지구의 파멸을 준비하고 말세를 준비하는 도구로 밖에 볼 수가 없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새 사람들"만이 갈 수 있도록 정하셨습니다. 인간의 육신이 되는 혈(血)과 육(肉)은 천국을 상속할 수 없다(고전 15:50)고 하신 말씀은 우리가 거듭날 때 "새롭게 난다"는 말씀과 일치됩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환경을 창조하실 것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 3:12-13)

이 구절은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지는 광경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하여 이사야서 65장과 66장은 그 자세한 내용을 가르칩니다. 그 내용의 몇 구절만 읽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노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너희는 나의 창조 하는 것을 인하여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 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으로 즐거움을 창조하며 그 백성으로 기쁨을 삼고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 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사 65:17-19)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을 것 같이 너희 자손과 너의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사 66:22)

이상의 구절들은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되며, 그것은 영원한 곳이며 더 이상 낡아지는 일이 없음을 가르칩니다. 이 사실을 이사야서 65장 20절에는 "날 수가 많지 못하여 죽는 유아와 향한(享限)이 차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바다는 고해 (苦海):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고 하신 요한계시록 21장의 말씀을 이사야서 65장은 잘 설명합니다. 바다는 세상을 상징함을 배운 적이 있으며, 세상은 고해(苦海)입니다. 바다는 항상 풍랑이 있게 마련입니다. 바다는 계절을 따라 태풍도 있게 마련입니다. 이러한 바다의 곡절을 인간의 삶과 비교하신 성경 말씀을 여러 곳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다윗왕은 시편 69편에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내가 설 곳이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지며 깊은 물에 들어가니 큰 물이 내게 넘치나이다 내가 부르짖음으로 피곤하여 내 목이 마르며 내 하나님을 바람으로 내 눈이 쇠하였나이다"(시 69:2-3)

이 기도야말로 풍랑 많은 바다에서 부르짖는 하나님 백성의 호소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에는 기쁨과 즐거움 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구절들은 또한 새 땅에서는 기쁨과 즐거움 밖에 없는 이유를 잘 설명하셨습니다.

이사야서에는 "나의 창조하는 것을 인하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 새로운 "창조"가 무엇인지 다 알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인간은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사랑과 능력을 알게 되는 것도 새 창조의 일부임을 "내가 예루살렘으로 즐거움을 창조하며"라고 하신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우리의 성전이신 그리스도의 상징이며, 택하신 백성이 창조주를 예배할 수 있는 곳입니다. 새로 창조된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영원한 기쁨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이 새로 창조된 인간들은 더 이상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를 내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모든 것이 충족하기 때문입니다. 이 풍성함을 이사야 65장 24절은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라고 하셨습니다.

이 놀라운 천국을 여러분과 함께 사모하면서 오늘의 공부를 마치겠습니다.

이대우 드림, 여행증 집으로 오는 길에서, 7/30/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