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21장, 새 하늘과 새 땅(II)

요한계시록 21장 2절: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城)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 대하여 히브리서 11장 15-16절이 잘 설명합니다.

"저희가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機會)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 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城)을 예비하셨느니라"

새 예루살렘: 이 구절에서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고 하신 그 성, 도시(city)가 즉 예루살렘입니다. 세상 종말에 예수님께서 오른편에 갈라 놓을 양들이 들어갈 곳으로 이 도시를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5장 34절에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고 하신 것은 새 예루살렘이 믿는 자들이 상속 받을 영원한 도시임을 가르칩니다. 이 성에 대하여 요한복음 14장에는 "내 아버지의 집"에 예비한 처소라고 하셨고, 또 예수님께서 이 처소를 가리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상의 성경 말씀 몇 구절을 종합하여 읽어 보면 "새 예루살렘"은 천국의 상징입니다 천국은 "아버지의 집"이며, 예수님께서 거처하시는 곳입니다. 요한복음 14장을 읽어 나가면,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18절)고 하셨고,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居處)를 저와 함께 하리라"(23절)고 하심으로 "새 예루살렘"은 우리가 하나님과 영원히 살 곳을 상징함을 가르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결론은 천국의 일면(一面)만을 설명한 것입니다. 또 다른 면(面)의 천국은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고 하신 면 입니다.

단장한 신부를 생각해 본적이 있습니까? 평생에 가장 정성을 드려 화장을 하며, 그 아름다움을 두고두고 기념하기 위하여 결혼사진을 찍지 않는 신혼부부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신부의 단장은 따로 정의되어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2장 9-15절은 여자들의 단장법을 설명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신부가 된 믿는 자들이 있을 곳임을 가르칩니다. 신랑되신 그리스도께서 그 신부를 무한히 사랑하심을 또한 가르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깊이와 크기를 인간의 제한된 사고로는 다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새 예루살렘"이 내려오는 날을 가리켜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 14:20)고 하심으로 택하심을 받은 자들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완전하게 다시 창조될 것을 암시합니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거룩한 성"이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에 거룩하다는 뜻은 구별되어 있다는 것이며, 거룩한 분은 하나님 밖에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성은 하나님의 성전이며, 예루살렘이 "거룩한 성"이 된 것은 하나님의 임재(臨在)를 상징하는 지성소(至聖所:Holy of Holy)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뿐 아니라 예루살렘은 택하신 백성이 모이는 곳이며, 또한 택하신 자들이 성전이라고 하셨습니다(고전 3:16). 그러한 의미에서 예루살렘은 믿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이 믿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기 위하여 그 날을 기다리며 준비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2절의 내용 중에서 유의해야 할 어구는 "하늘에서 내려오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실제적인 건물이 내려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특히 11절부터 예루살렘의 모양을 문(門)이라든가, 금과 은, 혹은 높이와 길이를 설명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생각하기를 실제적인 건물로 된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기적으로 생길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공상에 지나지 않으며, "하늘에서 내려오니"의 뜻은 우리의 구원을 하나님께서 완전히 마련하심을 말하며, 지상에 속한 아무 것도 우리의 구원을 돕지 못함을 가르칩니다.

 

3절: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의와 함께 계셔서"

4절: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哀痛)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하나님의 장막"이 물질적인 장막을 가리킬 수가 없습니다. 아무도 구원 받은 자들의 숫자를 알 수 없지만, 수 천만의 인간이 거처할 장막을 어떻게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자신을 가리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을 요한복음 2장 19절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백성과 영원히 살 곳임을 이 구절도 설명하며, 천국을 설명하는 여러 구절 중에서 가장 으뜸가는 정의임을 알 수 있습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피조물인 인간과 함께 사실 것의 선언입니다. 현재 우리는 보지 못하는 하나님을 믿음으로만 알고 믿고 기다립니다. 그 때에 가서 우리는 새로운 육안으로 하나님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성자이신 그리스도를 그 때에 그의 영광 속에 우리가 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눈물이 없는 곳: 4절은 세상이 고해(苦海)임을 가르칩니다. 인간의 눈물을 다 모으면 강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눈물을 흘리는 이유를 성경은 여러 곳에서 가르칩니다.

첫째로 믿는 자들의 눈물은 범죄하기 때문입니다. 다윗왕의 시를 우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여 주의 분으로 나를 견책(譴責)하지 마옵시며 주의 진노로 나를 징계(懲戒)하지 마옵소서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긍휼히 여기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 나의 영혼도 심히 떨리나이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주의 인자하심을 인하여 나를 구원하소서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함이 없사오니 음부(陰府)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困乏)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시 6:1-6).

다윗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왕으로 택하시고, 이스라엘 건국에 있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모든 전쟁에 승리하고, 죽는 날까지 하나님을 섬기던 택하신 백성의 상징이 아닙니까? 그러나 그는 죄를 지을 때마다 눈물로 통회한 기록이 있습니다. 이 죄에 대한 통회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애통(哀痛)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 5:4)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사도 바울의 눈물을 생각해 봅시다. 그는 "오호라 나는 곤고(困苦)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 7:24)라고 했습니다. 순결하게 살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이러한 눈물이 언제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다음으로 복음의 말씀을 전할 때 우리가 눈물을 흘립니다. 시편 126편 5-6절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께서 사랑하는 가족이 구원 받기를 원하며 눈물로 하

 

나님께 간구하던 기억을 하십니까? 그리고 또 사랑하는 가족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보고 감사의 눈물을 흘린 때를 기억하십니까?

말세에 살고 있는 여러분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교회가 늘어가는 것을 보며 한탄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심판날이 가까이 옴을 알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의 눈물을 여러분도 흘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그렇게 되면 살육(殺戮) 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곡읍(哭泣)하리로다"(렘 9:1) 예레미야가 이스라엘이 바벨론에게 멸망당하는 것을 보고 주야로 애통한 것이 아닙니까? 우리 한국인들은 비참한 전쟁을 경험하고 많이 울었습니다.

세상에는 우리 인간들이 울게 되는 일들이 또 많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슬퍼하는 일은 아마도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일 것입니다. 또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질 때에도 몹시 슬퍼합니다.

그러나 믿는 자들의 슬픔은 세상이 하나님을 극도로 배반하는 것을 볼 때입니다. 시편의 저자는 말하기를 "저희가 주의 법을 지키지 아니하므로 내 눈물이 시냇물같이 흐르나이다"(시 119:136)라고 했습니다. 여러분께서 세상을 볼 때에 눈물을 시냇물 같이 흘리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법도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아도 됩니다. 모든 것이 기쁜 일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처음 것들이(첫 번째 창조) 다 지나갔음이러라"(4절)고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라고 한 것은 실제적으로 눈에 눈물을 씻기시는 것이 아니라, 지나간 슬픈 일들이 다시는 오지 않게 하실 것을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슬픈 일들은 세상의 종말과 함께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이사야서 65장은 이 일에 대하여 분명한 주석이 될 것입니다.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당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너희는 나의 창조하는 것을 인하여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으로 즐거움을 창조(創造)하며 그 백성으로 기쁨을 삼고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사 65:17-19)

여러분께서 천국에 갈 때 지상에서 사랑하던 사람들을 다 만날 것으로 기대하고 사는 줄 압니다. 그러나 이사야서 65장은 여러분의 기대를 어긋나게 할지도 모릅니다.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제자들(요한과 야고보와 베드로)이 높은 산에서 모세와 엘리야를 본 것을(마 17:) 어떻게 이해하는가? 라고 반문(反問)할 것입니다. 사실입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변화산에서 그들이 지상에서 살 때에 가졌던 인격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비교한다면 지상에서 사랑하던 사람들을 알아 볼 것이 분명합니다 마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실은 새 하늘과 새 땅에는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들과 지상에서 가졌던 관계는 전혀 기억하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몸은 새로 창조된 새로운 피조물이며, 우리의 모든 사랑이 그리스도를 향하여 있기 때문입니다.

말할 것도 없이 우리는 서로 사랑할 것이며, 이전에 경험해 본 일이 없는 더 큰 사랑을 경험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완전한 사랑의 반영(反影)일 것입니다. 과거의 슬픔을 도무지 기억하지 못하고 사랑과 기쁨만을 누리며 영원히 살 곳, 그리스도께서 만 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가 되시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여러분과 함께 바라봅니다.


5절: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信實)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6절: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5절의 말씀은 앞 절에서 말씀하신 내용을 다짐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심을 이 구절에서 다시 강조하시며, "참되니 기록하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성경에 기록해 놓으신 모든 말씀이 참 진리임을 또한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이루었도다"라고 하셨는데, 하나님께서 무엇을 완성하셨겠습니까? 우리를 구원하시는 놀라운 계획이 완성된 것입니다. 그 완성된 구원 계획을 "알파와 오메가"이신 하나님께서 완성 하셨다는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알파와 오메가"는 "처음과 나중"이라고 하신 것과 같은 뜻인데 왜 반복하여 말씀하셨습니까? 히브리서 12장 2절에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 ["우리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KKJV)]라고 하신 말씀도 "알파와 오메가"라고 하신 것과 동일합니다. 시작과 끝이 없으시며, 영원 전에 계셨고, 또 영원히 우주를 다스리실 그리스도를 왜 "알파와 오메가"라고 하셨겠습니까? 그 뜻은 바로 우리의 구원 계획을 창세 전에 홀로 계획하시고, 또 홀로 완성하실 것을 가르칩니다.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라고 하심으로 "알파와 오메가"이신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다시 설명하며, 인간의 아무런 노력도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 계획의 일부가 될 수 없음을 가르칩니다. 자유의지의 신앙이 근본적으로 잘못 되었음을 가르칩니다.

"값없이 주리니"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의 뜻을 설명하는 어구입니다.

 

7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이기는 자" 혹은 "우리가 이기는 자들보다 더 나으니라:(롬 8:37,KKJV)고 하신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구원을 받는 순간 "이기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 순간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을 다스릴 기업을 받을 후사가 됨을,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롬 8:17)라고 설명하셨습니다. 또한 로마서 8장 31절에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라고 하심으로 7절에서 말씀하신 "이기는 자"는 바로 택하심을 입은 하나님의 백성임을 가리킵니다. 이 구절이 애쓰고 노력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 같은 인상을 주고, 또 목사님들의 설교에서 "유업을 얻을 사람은 끝까지 노력하여 이기는 자"라고 합니다 마는, 로마서 8장 32절을 읽어 보면, 이기는 것도 내가 잘해서 이기는 것이 아님을 가르칩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 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모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사람들은 유업을 말할 때 재산과 토지를 말합니다마는, 그러한 것은 마지막 날에 타서 녹아 없어질 것이 아닙니까? 위의 구절에서 말하는 "모든 것"은 지상의 생산품이 될 수가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은 "아들과 함께" 받을 은사라고 하신 것을 생각하면, 지상에 속한 아무 것도 은사로 주실 것이 없음을 알게 됩니다. 말할 것도 없이 가장 큰 은사는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고 하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전능하시고, 완벽하시고, 또 무한량(無限量)한 사랑의 근원이신 그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고요? 우리는 하나님의 그 깊은 은사의 뜻을 다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 마음 속에 감사와 찬송 밖에 있을 수 없습니다.

이대우 가족 드림, 10/3/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