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21장, 새 하늘과 새 땅(IV)

요한계시록 21장을 14절까지 공부한 때가 지난해였습니다. 오래간만에 성경과 성경사전을 펴놓고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의 후반에 나오는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나님께서 숫자를 사용하시어 말씀하셨고, 또한 열두 보석을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숫자 중에 12가 주로 씌어지고 있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숫자 12는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를 가리키며, 예수님의 12사도를 지칭하며, 그들은 택하심을 받은 하나님의 모든 백성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백성은 세계만방에 흩어져 있음을 지난번에 공부한 13절에서 알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10이 아니고 12라는 숫자를 써서 자기의 택하신 백성을 표시하셨는가 하는 이유를 요한계시록을 공부하므로써 발견하게 됩니다. 수 12는 세계 방방곡곡을 상징하는 4로 나눌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면서, 오늘은 15절부터 공부를 계속하겠습니다.

15절: "내게 말하는 자가 그 성과 그 문들과 성곽을 척량하려고 금갈대를 가졌더라"

"갈대"에 대하여는 요한계시록 11장 1-2절의 말씀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하나님께서 "척량하라"고 명하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성전인,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구원받을 마지막 잃은 양을 찾으시는 순간이 바로 세상의 종말입니다. 이 요한계시록 11장 1-2절에서 유의할 점은, 하나님의 관심이 성전 밖, 믿지 않는 자에게는 없고, 마당 안에 제단과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들에게만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 15절에는 척량의 대상이 성과, 문들과 그리고 성곽들이며, 이러한 대상은 11장에서 척량의 대상인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킴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금은 믿는 자들을 가리킵니다마는, 왜 "금으로 된 갈대"라야 하는가 하는 이유를 다른 성경 구절을 찾아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갈대는 성경에서 "연약한" 혹은 "속수무책"인 인간을 상징합니다.

열왕기상 14장 15절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쳐서 물에서 흔들리는 갈대같이 되게 하시고"라고 하셨고, 열왕기하 18장 20-21절에는 "---이제 누구를 의뢰하고 나를 반역하였느냐 이제 네가 저 상한 갈대 지팡이 애굽을 의뢰하도다"라고 읽을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지적하여 말할 때, 그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는 분(사 42:2, 마 12:20)이라고 표현함으로써, 이 갈대가 바로 연약한 인간, 애굽과 같이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는 인간을 지적함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금으로 된 갈대"입니다. 바람에 흔들리고(마 11:7), 불이 붙으면 타 없어질 미약한 존재를 하나님께서 은혜로 구원하시고, 성전의 건축자료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 문들과 성곽을 척량하려고 금갈대를 가졌더라"의 뜻은 새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는 자료가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이며, 그 백성의 마지막 구원받을 자가 구원을 받을 때에 예루살렘 성이 완성됨을 가르칩니다.

16절: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장광이 같은지라 그 갈대로 그 성을 척량하니 일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장과 광과 고가 같더라"

이 구절에서 성의 크기가 실제적으로 얼마나 넓고, 길고, 높으냐 하는 것은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기를 원하는 천국의 모양은, 숫자에 있으며, 그 숫자는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자 계획하신 백성을 모두, 한 사람도 빠짐없이 구원하신다는 뜻을 우리에게 보이십니다.

이 구절에서 1만 2천(12,000)은, 숫자 12와 1000이 곱하여 된 수이며, 12는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키며, 1000은 많은 수임을 가리킵니다. 이 많은 수에 대하여는 요한계시록 7장 9절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횐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이 구절은 1000 이라는 숫자가 "셀 수 없는 큰 무리"임을 설명합니다. 구원받은 자들을 가리켜, 적은 혹은 남은 자로 표시된 성경 구절과 상반되는 표시입니다마는, 구원받은 자들만을 두고 볼 때 큰 수임을 알게 됩니다. 가령 현재 세계 인구가 60억이라는 사실에서 시작한다면, 역사상에 태어나 살다 죽은 사람의 수를 60억으로 보면, 누계한 인구가 120억으로 추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중에서 몇몇을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숫자를 알 수 없습니다만, 10,000에 한 사람이 구원을 받았다고 가정을 할지라도 120만 명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숫자로써 자기의 백성을 표시하는 이유는, 자기의 백성을 일일이 살피시고 끝까지 구원의 길로 친히 인도하심을 알게 하며, 그 백성들이 하나님에게는 아주 귀한 보배가 됨을 가르칩니다.

"네모가 반듯하여"와 "장과 광과 고가 같더라"의 뜻을 다른 성경에서 몇 구절에서 찾아보겠습니다.

"네모가 반듯한"은 다섯 번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으며, 모든 경우가 예외없이 성전과 제단의 모양을 가리킵니다(출 27:1, 겔 40:47, 43:16, 45:2, 계21:16). 그리고 이 성전의 규격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규격입니다. 그러므로 반듯한 뜻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대로"의 뜻이 됩니다.

"같더라(equal)"는 희랍어 "isos"이며, 성경에 네 번 씌어졌습니다. 첫째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동등하심을 나타내셨고(요 5:18, 빌 2:6), 마태복음 20장에서 천국을 비유로 말씀하신 데서, 포도원의 품꾼들이 제 3시와 제 6시와 제 9시에 들어온 사람들과 제 11시에 들어 온 사람들이 "같은 품값", "한 데나리온"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20장의 품꾼들이 받는 품값의 비유는, 요한계시록 21장 16절에서 "같더라"고 하신 말씀의 주석이 됩니다.

 

17절: "그 성곽을 척량하매 일백 사십사(144) 규빗이니 사람의 척량 곧 천사의 척량이라

이 구절에서 144규빗이 성의 넓이인지, 길이인지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144규빗이 성곽의 높이는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것은 실제적인 성곽의 구조가 아니고, 그 성곽은 믿는 자를 상징하며,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대로 완성된 믿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숫자 144도 그 숫자를 그대로 생각하면 그 뜻을 알기가 어렵지만, 12 X 12가 144가 된다는 점을 생각할 때,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완전하게 성취되었음을 이 구절은 설명합니다.

"사람의 척량 곧 천사의 척량이라"의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우선 이 구절에서 "천사"는 "사자"라고 번역하는 것이 바른 번역입니다. "사람의 척량"은 그리스도의 척량, 혹은 택하신 백성들의 척량이며, 그리스도는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보내신 사자이시며, 우리 택하심을 입은 백성은 모두가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사자(使者)들입니다. 그러므로 성곽의 "척량"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지는 과정이며, 이 과정이 바로 성곽이 완성되는 과정입니다. 그리스도인인 여러분과 내 생활이 새 하늘과 새 땅에 성곽을 짓는 과정임을 가르칩니다. 우리 삶에 좀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낙심할 수가 없습니다. 그 어려움이 그리스도와 함께 살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을 짓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18절: "그 성곽은 벽옥(jasper)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벽옥에 대해서는 11절에서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벽옥이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을 나타내는 것은, 새 하늘과 새 땅이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함을 가리킵니다. 정금은 그리스도의 백성을 지칭하며, 영원함을 가리키며, 동시에 그리스도 자신을 상징합니다. "유리 같더라"는 정결함을 말하며, 천국에서는 죄가 인간을 다스릴 수 없음을 가리킵니다.

19-20절: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이요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 한째는 청옥이요 열둘째는 자정이라"

이 구절은 기초석(foundation)에 대한 얘기이며, 이 기초석은 또한 집을 짓는 터(foundation)를 말합니다. 이 구절에 대한 주석이 고린도전서 3장 10-15절에 있습니다. 11절에 말씀하시기를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 함으로 천국에 들어갈 우리 신앙의 기초가 그리스도에게 있음을 가르칩니다. 12절은 또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이와 같이 고린도전서 3장은 하나님의 백성이 금과, 은과, 또한 보석이며, 마지막 심판 때에 불의 심판을 면할 것을 가르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성곽이 그리스도이시며, 또한 이러한 보석으로 꾸며져 있다는 뜻은, 그리스도와 그의 백성들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가르칩니다. 열 두 가지 보석들에 대하여는 출애굽기 28장에, 제사장 직분을 맡은 아론과 그 아들들이 입을 에붓에 장식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그 중에 유의할 점은 물린 보석들의 순서가 같지 않으며,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는 벽옥(jasper)이 요한계시록 21장 19절에 처음으로 기록되었고, 출애굽기 28장 19절에는 마지막으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21절: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문마다 한 진주요 성의 길은 맑은 유리같은 정금 이더라"

"진주"에 대하여는 예수님께서 천국을 비유로 말씀하신 마태복음 13장에서 그 뜻을 알 수 있습니다. 45-46절에,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비유에서 "진주를 구하는 장사"는 그리스도며, 그리스도는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셨습니다. 그 진주를 사기 위하여, 그는 하늘의 모든 영광을 버리고 사람으로 세상에 오셔야만 "값진 진주 하나"인, 그의 교회를 살 수 있었습니다. 이 구절에서 우리가 택하심을 입은 그의 백성으로 장식되었다는 상징의 의미, 그리스도와 그의 백성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재차 보여 주십니다.

열두 문은 모든 믿는 자들이 들어갈 문이며, 완벽하신 그리스도의 상징으로 볼 수 있으며, 그 문마다 택하신 백성인 진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 혹은 "도로"라고 할 때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함을 배운 적이 있습니다. 이 구절은 요한복음 14:6절에 "나는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게 됩니다.

"순금"은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또한 왕으로 상징하였고, 그리스도는 순결하심을 말씀하십니다.

"맑은 유리같은"은 투명함을 말하며, 그 뜻은 천국의 모든 것이 ""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서만 알 수 있음을 가르칩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시기를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거듭나는 순간, 우리는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구원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22절: "성 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께서 직접 성전이심은 예수님께서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 2:19)고 하셨던 일로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백성도 하나님의 성전이 됨을 성경의 가르침을 통해 배운 적이 있습니다.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대속 제물로 십자가상에 매달리신 것을 기억하도록 하십니다.

23절: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요한계시록의 모든 말씀이 상징임을 강조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23절의 "해나 달"을 실제적인 해나 달로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는 성경에서 해는 영적으로 그리스도를 상징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해로 상징한 구절은,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말 4:2), 또 "해는 그 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그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시 19:;5)라는 구절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 구절을 이해할 수 있는 요점은, ""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배웠기 때문에, "해나 달"을 그리스도라고 이해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리스도 없이 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적인 "해나 달"이 필요없다는 뜻이며, 필요없는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빛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이 구절이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치는 내용은, 신천지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다르다는 점이며, 세상의 모든 생물은 그 생존을 태양을 근원으로 하고 있는 데 비하여, 신천지에서는 그리스도만을 의지하게 됩니다. 이 빛에 대하여는 11절에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같고 백옥과 수정같이 맑더라"고 하신 말씀을 다시 기억하게 됩니다.

이 23절의 주석이 되는 성경 구절을 이사야 60장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다시는 낮에 해가 네 빛이 되지 아니하며 달도 네게 빛을 비취지 않을 것이요 오직 여호와가 네게 영영한 빛이 되며 네 하나님이 네 영광이 되리니"(사 60:19)라고 읽을 수 있습니다.

 

또 스가랴 14장 6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그 날에는 빛이 없겠고 광명한 자들이 떠날 것이라 여호와의 아시는 한 날이 있으리니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니라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으리로다"라고 하셨습니다.

24절: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

이 구절을 이해하기 위하여 이사야 60장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열방은 네 빛으로, 열왕은 비취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네 눈을 들어 사면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원방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워 올 것이라 그 때에 네가 보고 희색을 발하며 네 마음이 놀라고 또 화창하리니 이는 바다의 풍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열방의 재물이 네게로 옴이라"(사 60:3-5)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주가 되시는 그리스도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께로 나오는 사람들이 누구이겠습니까? 그의 택하신 백성들이며, 그리스도께로 나오는 자들이 그리스도의 재물이며, 이들은 또한 "바다의 풍부"라고 했습니다. 바다에 대하여서는, 인생은 고해라고 상징함을 배웠고, 바다는 인류를 상징하며, 이 인류가 다 멸망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 몇몇을 선택하여 그리스도 앞으로 나아오게 하셨습니다. 또한 그리스도께 나아오는 택하신 백성을 "왕"이라고 부르시는 점에 유의하게 됩니다. 만 왕의 왕은 그리스도이시며, 믿는 자들은 그 왕에게로 나아오는 "열왕"입니다. 성경에는 다윗 왕과 솔로몬 왕이 만 왕의 왕이신 그리스도로 상징하였고, 스바 여왕이 많은 향품과, 금과, 보석을 가지고 솔로몬 왕을 찾아온 것은(왕상 10), 택하신 백성이 그리스도 앞에 모여드는 것의 상징임을 알게 됩니다. 이 24절의 말씀은 또한 믿는 자들이 천하 만국에 흩어져 있음을 알게 됩니다.

25-26절: "성문들은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

말할 것도 없이 "성문"은 그리스도를 가리키며, 성문이 열려 있다는 것은, 아직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상징이며, 또한 택하심을 입어 구원을 받게 된 모든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께 나아옴을 상징합니다. 이렇게 보면 25-26절의 장면은 우리가 천국에 들어갔을 바로 그 때의 장면이라기보다는, 인류역사를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구원하시는 백성들이 그에게로 나아오는 광경을 묘사한 영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받는 순간, 우리의 영혼이 밤 없는 천국에 들어가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밤이 없음이라"의 뜻은 우리 육신의 경험하는 어두운 밤이 영원한 천국에는 없다는 뜻이 분명합니다마는, 이 구절에는 영적인 뜻이 있다고 봅니다. 밤은 죄를 상징하므로, 우리가 구원받는 순간부터 우리의 영혼이 더 이상 죄를 경험하지 않을 것을 뜻합니다. 이 구절은 또한 우리가 한번 구원받으면, 그 구원이 영원함을 가리킵니다.

영적인 뜻에서 "밤이 없음이라"를 다른 각도에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현재의 세상은 죄로 가득 차 있습니다. 새 천지는 죄가 없는 세상입니다. 세상에 왜 죄가 있는가? 하나님께서 왜 죄를 세상에 두셨는가? 등의 질문은 대개의 기독교인들은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의 생각만 가지고 이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노력할 때 여러 가지 변론만 생깁니다.

몇 주 전 주일학교에서 이 일에 대하여 변론하는 신학용어를 배운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1) Amyraldian Schema, 2) Infralapsaranism, 3) Supralapsarianism입니다.

목사님들의 성경을 공부하는 방법이, 서재에 진열된 신학 서적을 이용하여 신학 변론을 공부하면서 내가 믿는 변론은 누구누구의 변론이며, 그와 상반되는 변론을 누구누구가 믿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 목사님이 Supralapsarianism을 믿는다고 했지만, 저는 그 단어들의 뜻을 집에 있는 대(大) 영한사전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신학변론의 문제도, 성경 말씀만은 정확한 답을 가지고 있음을 믿습니다.

위에 말한 신학용어는 하나님의 창조와 인간의 죄의 발생과,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대한 순서를 말합니다. 그 중 두 가지만을 비교하면,

Infralapsaranism [후 정론자(後定論者), 혹은 타죄 후설자(墮罪 後說者)]

1. 하나님께서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신 다음에

2. 인간은 타락하였고, 그 후

3. 타락한 인간 중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을 자를 결정하시고,

4.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시고

5. 그리스도의 구속하심으로 몇몇을 선택하신다.

Supralapsarianism [전 정론자(前 定論者)]

1. 창세 전에 인간 중에서 몇몇을 구원할 계획을 하시고, 나머지는 멸망하게 내버려두도록 계획하셨고,

2. 선택한 사람들만이 그리스도의 속죄하시는 은혜를 입도록 계획하셨다.

3. 그리스도께서 선택한 몇몇을 위하여 십자가에 매달리시기로 계획하시고

4. 인간이 타락할 것을 아셨고, 그 다음

5. 천지와 인간을 창조하셨다.

신학적 변론이 성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신학자들이 주장을 합니다마는, 오히려 혼돈과 불신을 줄 뿐이며,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는 이야기를 가상하거나, 성경에 나와 있는 이야기를 확대하는 변론을 일삼게 됩니다. 위의 변론만 하더라도, 성경을 믿을 때 "후 정론자"의 성경 이해가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성경 구절에 "창세 전에 나를 선택하셨다"(엡 1:4)라고 하신 것은, 그리스도께서 창세 이전에 이미 십자가에 매달리실 것을 계획하셨음을 믿게 됩니다. 제가 이 신약용어를 소개하는 이유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을 때, 신학 논쟁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을 믿는 것은, 우선 하나님을 절대자로 믿고, 그의 말씀을 듣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자의 말씀을 두고 논쟁을 허락하시지는 않습니다.

"후 정론자"의 변론은 하나님의 천지 창조와 인간 창조가 실패로 돌아갔음을 믿는 것이며, 그러한 믿음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불순종한 것이 창조의 실패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 창조의 실패를 회복하시기 위한 대책이라고 믿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마는, 전지 전능하시고 피조물에게 절대 주권을 행사하시는 하나님에게 "실패"하는 사역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이 자기의 영광을 위하여 실패 없이 완전무결하게 시행하신 사역의 결과라고 믿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하나님의 창조의 중심이 만세 전에 구원하시기로 정해 놓으신 자기 백성에게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기의 백성을 금과 은으로 상징하셨고, 열두 보석으로 상징하셨습니다.

자유의지를 믿는 사람들은, 인간의 열심을 가지고 세상을 바로잡을 수도 있고, 내가 그리스도인으로 할 바를 다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시는 과정을 도울 수 있다고도 합니다. 그들은 또한, 세상이 차차 좋은 사람들로 구성되어, 아무 문제가 없는 좋은 세상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땅 속에 묻힌 광석을 파내고, 그 돌에서 금과 은, 그리고 보석을 깎아 만드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완전무결하심을 믿을 따름이며,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가 바로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달성하시는 때라고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제 27절: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이 구절은 앞 절에서 "밤이 없음이라"고 하신 말씀을 설명합니다. 밤은 사단이 다스리는 세상을 상징하며,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이 모두 사단의 역사이며, 사단의 통치 아래 있는 인간들을 가리킵니다. 전에 공부한 바와 같이, 사단의 전략은 "거짓말하는 일"입니다. 사단은 아담과 하와를 속이는 일로 시작하며, 시종일관 거짓말로 세상을 다스립니다. 말세에 전무후무한 전쟁,"아마겟돈 전쟁"은 사단이 거짓말로 "어떻게 하면 택하신 자도 속일 수 있을 까" 하고 힘쓰는 때가 바로 이 전쟁입니다.

이 구절은 두 종류의 사람 즉,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며, 생명책에 이름이 없는 사람들을 "거짓말하는 자들"로 구분을 했습니다.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라고 하신 것은 "생명책에 기록된"자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천국에 들어 갈 자가 없음을 가르칩니다. 사람들이 흔히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만일 내 이름이 생명책에 없으면, 내가 지옥에 가야 되는가?"라고 하는 질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생명책에 이름이 없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이 구절은 분명히 가르칩니다. "내가 믿으면 천국에 들어간다고 성경이 가르치지 않는가?"라고 다시 질문할 것입니다. 사실입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믿는 사람은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에는 기독교 교파도 많고, 훌륭하고 유창한 설교가 많습니다마는, 대개가 사람의 생각을 가르치는 것들이며, 사람의 생각을 가르치면 그것은 거짓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생명책에 있는 것을 믿습니까? 그것을 확인하는 유일한 방법은, 내가 믿는 말씀이 참으로 성경의 말씀인가를 애써 알아내는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기를 원하면서, 내 구미에 맞는, 내 인생철학에 맞는 믿음으로 구원을 찾고 있습니다. 저는 신학적 논쟁을 아주 위험한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을 서로 비교하며, 자기의 생각을 또 다른 사람의 생각과 비교하면서,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는 것이며,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 앞에 불손한 행위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애통하고 상한 심령으로 하나님께 나아오는 일입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기를 바랍니다. 만일 그 일의 확신이 없으면, 하나님께 나아가 내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 애걸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대우 드림, 6//6/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