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20장, 천년왕국(千年王國)

 

세 가지의 천년왕국: 아마도 성경학자들이 성경 중에 요한계시록 20장보다 더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또 이 한 장에 기록된 내용을 확장하여 책으로 엮어 내는 유명한 얘기는 없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천년왕국의 얘기입니다. 학자들의 의견이 세 갈래로 갈라져 있으며, 전(前)천년설, 후(後)천년설, 그리고 무(無)천년설로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설이 나오게 된 이유는 요한계시록 20장에 그리스도께서 "1000년 동안 왕노릇하시리라"는 기록이 여섯 번이나 나와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위에서 말한 세 가지 설(說)의 차이를 말하면, 전천년설은 교회의 휴거가 있은 후 마지막 환난이 오며, 곧 이어 그리스도께서 다스리는 황금시대, 천년왕국이 올 것이라는 학설이며, 후천년설은 그와 같은 황금시대, 천년왕국이 온 후에 마지막 환난과 교회의 휴거가 있을 것이라는 학설입니다. 반면에 무천년설은 이상 두 학설에서 주장하는 지상의 황금시대는 없을 것이며,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천년왕국은 영적인 상징의 뜻을 가지고 있으며, 천년이 실제적인 천년이 아니라 때가 완전히 찼다든가, 오랫동안이라는 뜻이라고 믿는 학설입니다. 어떤 분은 말하기를 "그런 학설을 믿을 것이 아니라, 성경말씀만 믿으면 되지 않는가? 라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천년왕국을 말하며, 칠년(七年) 대환난(大患亂)을 말하고 있으니 그러한 분들은 교회에서 듣는 설교가 다 성경말씀에서 오는 것으로 믿는 사람들입니다. 사실상 어떠한 방법으로 통계를 해 보더라도 전천년설을 믿는 교역자들과 교인들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 한 예로 기독교 서점에 가서 소위 종말론(終末論)에 대한 책을 열람(閱覽)하면 태반이 전천년설을 말하고 있습니다.

후천년설을 믿는 교역자 몇 명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소의 극(極) 보수파(保守派) 개혁주의(改革主義) 교역자들이며, 그리스도의 계획과 성령의 역사로 이 지상에 평화를 누릴 천년이 온다고 믿고 있습니다. 또 그러한 믿음은 세계의 단일정부를 기대하는 동시에, 그 단일정부 정치인들이 다 그리스도께서 인정할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합니다.

무천년설은, 지상의 천년왕국을 부인하며, 특히 요한계시록의 대부분의 기록이 상징적임을 믿으며, 숫자 1000도 상징적인 숫자임을 믿습니다. 굳이 학설을 가지고 옳고 그른 것을 말해야 한다면, 무천년설이 성경을 바르게 깨닫는 것이라고 저는 믿고, 주장합니다.

성경말씀을 이해하는 것이 결코 학설에서 오지 않는 것을 저는 믿기 때문에 어떠한 것이 옳으냐 하는 결론은, 기도 중에 요한계시록 20장의 말씀을 다른 성경말씀과 비교하여 그 뜻을 찾는 공부를 하고자 합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전천년설: 이렇게 흔한 전천년설의 천년왕국을 거의 모든 기독교인이 믿는 것이 무엇인가 살펴 보는 것으로 공부를 시작하겠습니다.

천년왕국이 시작되기 이전에 교회가 구름 위로 휴거를 당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재림(再臨)으로 이루어지며, 세상의 종말에는 예수님의 세번째 강림(降臨)을 기다리게 됩니다. 교회가 휴거된 후 7년 대환난이 시작되며, 휴거를 당한 진짜 교인들은 7년 대환난을 공중에서 예수님과 함께 피하게 됩니다. 이 환난이 지난 직후 1000년 왕국이 시작되며, 그 때에 예루살렘에 새로운 성전을 짓게 될 것이며, 예수님께서 만왕의 왕으로 군림하신다는 학설입니다. 이 천년왕국에서는 예수님께서 권위와 철장으로 다스리시기 때문에 천년동안 만국은 평화를 누릴 것이며, 이사야서 11장에서 읽는 사자(獅子)가 풀을 먹으며, 염소와 사자가 함께 살며, 아이가 독사 굴에 손을 넣어도 상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적으로 만물을 평화롭게 하시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천년이 지나는 마지막날이 천지가 개벽되는 세상의 마지막이며, 이 때에 예수님께서 세번째 오시여 세상을 심판하신다고 합니다.

놀라운 것은 15절밖에 안되는 요한계시록 20장이 장편소설처럼 얘기가 엮어져 흘러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텍사스(Texas)에 있는 달라스(Dallas) 신학교(神學校)는 이 전천년설 천년왕국을 가르치는 고장이 되었습니다. 그 학교 학사과정을 겪은 한 교역자의 말에 의하면, 전천년설을 믿지 않고서는 석사와 박사 과정을 끝마칠 수 없다고 합니다. 이러한 학자들의 다른 이름은 세대주의(世代主義)자들이며, 세대주의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시대에 따라 그 방법이 다르다고 가르칩니다.

천년왕국을 가르치는 신학교의 수(數)를 통계적으로 본적이 없습니다마는, 출판되는 천년왕국에 대한 책들이 그 수를 상상하게 만듭니다. 인간의 심리는 절대 다수에 귀를 기울이게 마련입니다. 누구든 유명해지면 모두가 쳐다 보게 마련입니다. 카톨릭 교리가 그 잘못을 시정할 수 없는 이유는 유명한 교황이 신으로 군림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리는 유명해질 수가 없고, 숨어 있습니다. 특히 말세에 진리를 찾기가 힘든 것을 성경말씀이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미한 소리(a still small voice):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여러분은 엘리야에게 말씀하신 것 같은 "세미한 소리"를 들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가서 여호와의 앞에서 산에 섰으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의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있어 저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왕상 19:11-14)

위의 구절은 엘리야가 이스라엘의 왕후 이세벨에 쫓겨 광야에서 숨어 있을 때 여호와를 만난 이야기입니다. 종말을 당한 교회가 겪는 현상의 상징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깨닫고 순종할 때 우리는 엘리야와 같이 되는 것이며, 교회는 우리를 천대할 것이며, 회중에서 출회를 당할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엘리야와 같은 고독을 경험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7000인을 남기리니"라고 하시는 말씀을 우리도 듣게 됩니다.

이 구절에는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더 큰 교훈이 있습니다. 세상 종말에 사는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원합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의 음성이 강한 바람 가운데나, 지진 가운데나 혹 불꽃 가운데 있지 않고 "세미한 소리"로 나타나신다는 사실입니다. 강한 바람 같고, 불꽃 같은 교회 행사나 설교를 원하십니까? 거기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을 것을 암시하십니다. 조용히 앉아서 하나님의 말씀만을 가지고 묵상할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것을 암시하십니다. 이 엘리야에 대한 얘기는 수많은 군중이 모이는 집회를 조심할 것이며, 베스트 셀러가 된 유명한 책들이 우리의 영혼을 양육하는데 양식이 될 수 없다는 가르침이 아니겠습니까? 유명한 인사들의 이름을 줄줄 외우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마도 유명한 인사가 되기를 원하는 마음이 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세미한 소리"를 찾는 우리에게 유명인사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앞으로 몇 개월에 걸쳐 요한계시록 20장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세미한 소리"를 듣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공부를 시작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3절: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deceive)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우리는 우선 사단을 잡는 일에 대하여 성경 말씀을 찾아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사단을 잡아 묶는 이유인 "다시는 만국을 미혹(deceive)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알아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거기에 따라 오는 여러 가지 의문이 풀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질문은 누가 사단을 쇠사슬로 묶을 수 있으며, 언제 묶을 것이며, 얼마 동안 묶어 둘 것이며, 또 잠간 동안 놓아 주는 뜻이 무엇인지 알아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이 인간의 지성(知性)에서만 오는 교리로써 이루어질 때, 그 바른 답을 얻을 수 없음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의 눈을 열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 영의 눈으로 그리스도께서 지금 나를 다스리시며, 또한 만국을 다스리시는 것을 발견하기를 바랍니다.

요한계시록 20장은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사역(使役)을 다른 각도로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것이며, 지난번 요한계시록 12-14장에서 배우지 못한 새로운 진리를 가르쳐 주시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잘못된 번역, "천사": 1절에는 "사자(使者)"가 "천사(天使)"로 잘못 번역된 것을 우리는 다시 발견합니다. 무저갱을 열고 닫는 권세가 그리스도 외에는 없으며, 사단을 결박할 권능이 또한 그리스도 외에는 없는 것을 우리는 이미 상식으로 알고 있습니다.

바닥이 없는 "무저갱"은 지옥의 상징임을 요한계시록 11장에서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바닥이 없다 함은 나올 길이 없음을 말하며, 사단의 종말을 가르치는 한가지 상징입니다. 또한 사단이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의 구원을 방해하는 일이 절대로 없을 것에 대하여 2중 3중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쇠사슬로 결박"하는 것이며, "열쇠로 잠그는"것이며, 또한 "인봉(印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심은 사단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하나님의 형상을 입어 창조된 인간에게 있습니다. 사단을 따르는 인간의 말로가 그 사단과 같다는 것을 요한계시록은 거듭 가르칩니다.

쇠사슬: "사단이 쇠사슬에 묶여 무저갱에 갇힌 것이 언제냐" 하는 질문에 대하여 바른 해답을 찾기가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문제는 세대주의자들의 잘못된 가르침이 세상을 휩쓸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교회가 거기에 귀를 소곳하게 기울이고 있습니다. 기독교계에 잘 알려진 보수적이고, 복음적인 전도자 착크 스윈돌(Chuck Swindoll)에 대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분의 설교야말로 미국의 모든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이 애청하는 훌륭한 설교입니다. 수십년 전 언젠가는 이분의 설교 테이프(tape)를 사서 결혼기념으로 아내에게 선물한 적이 있습니다. 이분의 설교집도 여러 권 사서 읽은 적이 있으며, 1992년 저희들이 교회를 찾을 때 이 목사가 속해 있는 교파, (Manassas)에 있는 Evangelical Free교회를 여러 번 방문하면서 행여나 그 교파의 교인이 되어 볼까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그 교회가 여러 가지 자유의지를 가르치며, 젊은 아이들이 모여 세상 음악을 예배 전에 연기하는데 못 마땅하여 발을 끊었습니다.

달라스(Dallas) 신학대학: 스윈돌의 설교집은 아마도 20세기에 가장 현저한 베스트 셀러일 것이며, 그 책을 팔아 번 돈은 수천만불에 이를 것입니다. 이러한 유명한 분이 달라스 신학대학의 총장으로 있다고 합니다. 말할 것도 없이 그분은 천년왕국을 가르치는 교역자입니다. 달라스 신학대학은 세대주의의 고장이며, 그 신학의 역대 총장으로는 그 유명한 스코필드(Scofield)학습 성경의 저자이며 달라스 신학대학 창설자인 스코필드와 월보오드(Walvoord)가 총장으로 역임한 일이 있어, 명실공히 세상 종말에 있을 아마겟돈 전쟁의 가장 큰 보루(堡壘)가 되었다고 믿어집니다. 아마겟돈 전쟁은 속이는 전쟁입니다. 사단의 가장 잘 속이는 전략으로 자유의지를 가르치고, 천년왕국을 가르치는데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독약: 속이는 일을 생각해봅니다. 빨간 거짓말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아마도 속이지 못할 거짓말이라는 뜻이겠지요. 그런가하면 한국은 위조물을 가장 잘 만들어 파는 시장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 가짜 상품에 속는 사람이 있고, 속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속지 않는 사람의 지혜를 생각하면서 우리가 신앙으로 속지 않는 영적인 지혜를 하나님께서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옛날에 사기꾼에게 속아 금반지를 잃은 얘기를 여러번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사기꾼이 사라지고 난 다음에는 좀 원통할 따름이며, 그 금반지를 대처하면 그것 뿐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영적으로 속는다면 그것은 독약(毒藥)을 먹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에는 이미 늦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중에는 "천년왕국을 믿는 것이 성경을 해석하는데 따라 다른 것 뿐 아니냐?" 라고 반문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속이는 일은 작고 큰 일로 구분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가 우리의 영의 양식이 되기 때문입니다. 영적 양식이 되지 못하는 가르침은 다 독약이 됩니다(막 16:18).

또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속이는 사람입니다. 금반지를 얻기 위해 사기하는 사람은 자기가 사기꾼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속이는 사람은 자신이 속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천년왕국을 가르치는 스윈돌 목사에게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기하는 사람이요"라고 한다면 펄 적 뛰게 되지 않겠습니까?

사단의 결박: 사단을 천년 동안 결박한다는 것은 "은혜의 시대"가 존재한다는 뜻이며, 이 시대에 복음이 전파되며, 수많은 택하신 백성이 복음을 듣고 거듭나는 때임을 가르칩니다. 영(靈)인 사단을 어떻게 육신적인 방법의 쇠사슬로 묶겠습니까? 그 행동을 제한하는 것입니다. 사나운 짐승을 쇠사슬로 묶어 나무기둥에 매어 둔다면 그 나무기둥 주변에서는 짐승이 아직도 사나운 행동을 할 수 있지만 그 기둥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을 해하지는 못합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단의 지배하에서 그 나무기둥 가까이 살다가 자유함을 얻는 역사(歷史)가, 바로 은혜의 시대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것을 데살로니가후서 2장 6-7절이 잘 설명합니다.

"로 하여금 저의 때에 나타나게 하려 하여 막는 것을 지금도 너희가 아나니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길 때까지 하리라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라고 한 것은 "사단"이며, "지금 막는 자"는 하나님의 역사(役事)로 사단의 역사를 억제하심을 가르칩니다. "옮길 때까지"는 1000년이 차서 사단을 잠깐 동안 놓을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 후에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을 것을 이 구절은 가르칩니다.

다른 한편 우리가 사단의 지배하에서 자유함을 얻는 사실을 에베소서 2장 1-5절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이상의 구절들은 하나님께서 사단의 활동을 억제하시고, 제한하시는 사실을 가르칩니다. 그렇지만 이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궁금해집니다.

사단의 구속은 십자가에서 시작됩니다. 이 십자가야말로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창 3:15)라고 선언하신 하나님의 예언이 이루어진 때입니다. 그러나 이 십자가 사역이 우리의 육신적인 부요(富饒)함이나 성공하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속에서 믿음으로 역사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다른 한편 사단의 딴 이름은 아바돈(Abaddon)이며, 그 뜻은 파괴자입니다(계 9:11). 물론 파괴의 뜻이 인간의 악이 성하여 서로 전쟁함으로 파괴됨을 생각할 수 있으나, 그것에 앞서 더 중요한 뜻은,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이 알지 못하도록 방해하며, 인간을 하나님으로부터 격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이 구원을 받는 과정은 파괴된 진리를 되찾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요 8:32). 사단의 파괴하는 힘은 강합니다. 그것은 세상 몇 십억이 되는 인구가 거의 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하는 사역이며, 또한 말세에 기독교인들을 다 거짓복음에 속게 하는 사역입니다.

하나님의 능력: 그러나 더 큰 능력은 하나님의 능력이며, 복음의 능력이며, 그 능력은 많은 인간 중에서 여러분과 같이 몇 명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이며, 또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롬 1:16). 또한 하나님의 능력은 "십자가(十字架)의 도"(고전 1:18)라고 하였습니다. 이 "십자가의 도"는 멸망을 받을 자들에게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며, 사단이 지금도 거의 모든 인간들을 다스리고 있음을 가르칩니다. 사단은 이 십자가의 능력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귀신, 군대(軍隊)를 명하여 2000마리의 돼지에게 들어가도록 허락하셨을 때에, 귀신이 "무저갱으로 들어가라 하지 마시기를 간구하더니"라고(눅 8:31) 한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병든 자와 귀신들린 자들을 고치셨을 때의 얘기가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었다"고 했을 때,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늑탈하겠느냐"(마 12:29)라고 하심으로 사단이 무저갱에 같힌 것을 미리 예언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인 그리스도의 복음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그 복음을 누가 가지고 있습니까?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률법안에 있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라고 (골 2:14)함으로써, 우리를 사단의 통치에서 해방하시기 위하여 사단을 결박한 것을 가르칩니다.

사단의 무장, 거짓: 사단의 결박은 사단이 우리를 통치할 권리(의문)가 없어진 것이며, 또한 무조건 무장해제(武裝解除) 당했음을 가르칩니다. 사단의 무장은 "거짓"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10-12절은 이 사실에 대하여 우리에게 분명한 이해를 주십니다.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여러분께서는 다 그리스도의 용사들로서, 의의 흉배(胸背), 평안의 복음의 신, 믿음의 방패(防牌), 구원의 투구, 그리고 말씀의 검을 가진 용사들입니다(엡 6:14-17). 이 용사들은 사단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군병이 된 우리의 유일한 사명은 이 십자가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참 복음이 전해질 때 사단이 결박되어 있음을 발견합니다. 이러한 용사의 사명을 "권능을 받고"라고 사도행전 1장 8절은 가르칩니다.

그렇지만 이 사단이 잠깐 동안 놓인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세상 종말 직전에 있을 전무후무(前無後無)한 사단의 속임수를 말하며, 세상이 가르치는 기독교 교리가 거의 예외 없이 거짓임을 또한 가르칩니다. 아마겟돈 전쟁입니다.

사단의 전략이 속이는데 있기 때문에 지상(地上)에 중심을 두고 있는 사회는 전혀 하나님을 모르고, 인간의 능력만을 찬양하며, 그것에 만족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단의 최고 전략은 곧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을 거두시는 복음사업을 방해하는 것에 촛점을 두고 있음을 요한계시록 20장은 가르칩니다.

 

천년이 차도록: 한국말에 "천년만년 살고지고"라는 노래가 있으며, 이것은 "한번 영원히 살아 보았으면" 하는 인간의 소원입니다. 성경에도 같은 표현이 있습니다.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고(출 20:6) 하신 말씀이나, "그 언약 곧 천대에 명하신 말씀"(시 105:8) 등은 숫자 그대로의 1000년이 아니라, "영원히"라든가 "모든 세대"라는 뜻이 있음을 문장을 읽음으로 알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20장의 1000년도 숫자 그대로의 1000년이 될 수가 없음을 4절이 설명하며, 그 뜻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은혜의 해가 다 지나간 후에"라는 뜻이 됩니다.

또 사도 베드로는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1000)년 같고 천(1000)년이 하루 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벧후 3:8)고 했습니다. 이 구절을 어떤 성경학자들은 하나님의 창조가 수 백만년이 된 것을 설명한다고 주장합니다마는, 말씀의 참 뜻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그 날을 인내로 기다리심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루라도 속히 대적, 사단을 멸하시고 싶지만 우리의 구원을 계획하신 때를 기다려야 하시며, 생명책에 기록된 모든 인간이 구원 받는 것을 인내로 기다리십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신랑(新郞0이 되시고 택하신 백성이 신부(新婦)가 되어 영원히 사는 창조의 목적을 생각하신다면, 2000년이라는 기간은 참으로 짧은 기간인 것으로, 천년이 하루 같이 속히 오실 것을 약속하시지 않았습니까?(계 22:20)

사람들은 아직도 1000년 동안 지상에 황금시대가 올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20장 1-3절의 참 뜻은 "그리스도께서 계획하신대로 십자가에 고난을 받으신 사역은 사단에게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선고(宣告)하신 것이며, 택하심을 입은 모든 인간이 은혜로 구원을 받는 예수님의 시대가 다 지나가고, 사단은 마지막 환난 때에 이전에 없던 거짓말로 세상을 어지럽게 한다"는 것입니다. 사단의 거짓말은 인간의 지혜로는 상상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그 사단의 속임수를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deceive)하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택하신 뱅성은 속지 않습니다.

이대우 드림, 1999년, 정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