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20장, 천년왕국(II)

요한계시록 20장 4절: "또 내가 보좌(寶座)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하니"

아버지의 보좌: 이 구절이 예루살렘에 수도를 두고 지상에 천년왕국을 이룬다는 바로 그 교리의 근본이 되며, 또한 천년왕국의 교리가 사용하는 유일한 성경 구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천년 동안 왕노릇" 하실 것을 이 구절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렇지만 요한계시록 20장에는 예루살렘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이 천년왕국의 수도를 찾아 보면, 그 곳은 바로 아버지의 보좌가 있는 곳이며, 이 보좌에 대하여 요한계시록 3장 21절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이 구절은 아버지의 보좌, 그리스도의 보좌, 그리고 승리한 믿는 자들의 보좌가 다 한 곳에 있으며, 그 보좌는 바로 아버지 하나님께서 계시는 천국입니다. 요한계시록 4장은 이 보좌에 대하여 더 상세하게 설명을 합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4장 1절에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고 하심으로 요한계시록 4장의 기록이 다 장래의 일 즉, 말세 후에 일어날 사건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5장을 계속하여 읽어 나가면 이에 대한 의문이 풀리게 되며, 이 보좌야말로 예수님께서 지상에 처음 오실 때에 잠시동안 떠나야 했던 보좌이며, 무덤에서 부활하신 후 다시 돌아가신 보좌이며, 구원 받은 자들이 죽는 순간 그리스도께서 마련하신 천국에서 앉게 될 바로 그 보좌입니다.

요한계시록 6장 9-11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大主宰)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伸寃)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

각각 저희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쉬되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죽임을 당한 영혼들: 이 구절은 요한계시록 20장 4절을 읽고 생기는 의문들을 많이 풀어 줍니다.

첫째로 이 장면이 요한계시록 20장 4절의 장면과 일치하며,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있는 하나님의 보좌 앞이라는 점입니다.

둘째로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는 "천년이 다 차기까지"의 뜻임을 알게 됩니다. 이 구절이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임을 설명합니다.

셋째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라고 하심으로 이 보좌가 지상이 아니며 천상임을 분명히 해 주십니다. 요한계시록에 보좌에 대한 기록이 37번이 나옵니다마는 이 보좌가 지상에 있을 것이라는 암시를 주는 구절은 찾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요 17:4)라고 하심으로 지상에서의 임무가 완성되었음을 우리에게 가르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죄로 물든 이 세상에 다시 오시어 왕노릇 할 것이라는 신앙은 우선 그리스도께서 세상에서 이룩하신 사역을 알지 못한다는 고백임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은 다음과 같은 성경 구절에서도 발견합니다.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히 10:12-13)

지금 우리의 왕이신 그리스도: 그리스도께서 드리신 제사가 "영원한 제사"가 된 것은 그의 구원 계획이 완성되었음을 가르치며, 그 구원 계획이 지상에서 이루어졌으며, 이 저주 받은 지상은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리는(발등상이 되게 하실) 일 밖에 남아 있지 않음을 또한 가르칩니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이 창세기 3장 15절에 예언한 바 사단의 머리를 상하게 하신 것이며, 그것은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시고, 승리 하셨음을 거듭 가르칩니다(요 16:33, 마 26:53, 골 2:14-15, 히 2:14, 요일 3:8, 히 12:22-24).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심으로 하나님 우편에 앉아 다스리신다는 또 다른 뜻은,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심을 가르치며(엡 5:23), 우리는 그의 몸의 지체라고 하셨습니다(고전 6:15). 머리인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셨기 때문에, 몸이 된 우리도 이미 승리한 것은 당연합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위하여 애써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도 그리스도처럼 십자가의 승리를 가져 오기를 하나님께서 요구하십니다(엡 5:27, 계 19:7-8).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시는 동안 누차에 걸쳐 자기가 왕으로 오셨음을 말씀하셨습니다마는(마 2:2, 마 27:11, 눅 23:3, 요 1:49), 대개의 기독교인들이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또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실 때 유대인(믿는 자들의)의 왕으로 오신 것을 깨닫고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주라고 부르는 것은 지금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왕으로 군림하셨고, 우리의 모든 것을 다스리심을 고백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결국 지금 내가 섬기는 왕이 없기 때문에 천년왕국이 세상에 올 때 그리스도를 왕으로 섬겨 보겠다는 신앙은 성경적인 신앙이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20장 4절에는 더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1000년이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 다시 오실 때까지의 기간을 상징으로 말씀하신 것이며, 이 천년동안 세상에 살다 죽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리스도 앞으로 돌아갈 것을 배우게 됩니다마는, "보좌에 앉은 자들", "심판하는 권세를 받은 자들"이 무슨 뜻인지를 질문하실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2장 10-12절이 이 말씀의 주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택하신 자를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저희로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얻게 하려 함이로라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왕이 된 그리스도인들: 위의 구절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시인하는(거듭나는) 순간 왕으로 출생(出生)하는 것이며, 그리스도와 함께 왕권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왕이 된다는 것은 권력을 가진다는 뜻인데 우리가 갖는 권력이 무엇이겠습니까? 요한계시록 4장에는 24 장로들이 보좌에 앉아 있고 또 황금으로 된 면류관을 머리에 쓰고 있는 광경이 있습니다. 이들 24 장로들이 구약과 신약 시대에 구원 받은 모든 믿는 자들을 상징한다면 이들이 누리고 있는 권력이 무엇인지는 참으로 궁금해집니다. 시기를 보면 24 장로들이 왕노룻 하는 것은 현재에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한가지 우리가 얻는 해답은 24 장로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한다는 점입니다. 함께라는 뜻은 같은 때를 말하는 동시에 또 권력도 우리에게 주심을 가르칩니다. 그리스도의 권력은 우주를 다스리시는 권력일 뿐 아니라, 죄를 멸하시는 권력이며, 사단으로 하여금 발등상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신천지인 천국에서 우리가 왕노릇하는 것은, 아담이 창조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는 권력을 아담에게 주신 것으로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마는, 지금 우리가 왕이 된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죄가 우리를 다스리지 못하는 것입니다(골 2:14). 왕국에서 왕을 상소할 법이 없는 것 같이, 하나님의 백성을 사단은 정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 13절은 "우리를 흑암(黑暗)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라고 하셨으며, 요한일서 5장 4절에는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2)고 하신 말씀들이 우리를 죄를 다스리는 왕이 되었음을 설명합니다.

요한계시록 5장 10절이 위의 사실을 더 잘 설명합니다.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kings)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노릇 하리로다"

이 구절은 24 장로들이 천국에서 그리스도께 지상에 남아 있는 믿는 자들을 위하여 탄원하는 그 때에(우리에게는 현재임) 부르는 새 노래라고 하셨습니다. 24 장로들이 지상에 남아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왕과 제사장으로" 부르지 않았습니까? 이 구절에서 누구를 지적하여 "왕과 제사장"으로 불렀겠습니까? 어떠한 특수한 사람들을 가리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지금 세상에 살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인 여러분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하여 우리가 이 높은 자리에 있게 되었습니까? 이것은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의 능력"으로 말미암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천년왕국의 뜻: 요한계시록 5장에 "인봉을 떼시기에 합당하시도다"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창세 전에 계획하신 대로 진행하심을 가르치는 동시에, 또한 우리의 구원이 그리스도의 역사만으로 이루어짐을 가르칩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왕국을 설립하시는 광경입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8-20)

이것이 바로 천년왕국이 진행되는 광경입니다. 이 구절에서 유의할 점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입니다. 이 권세는 무제한의 권세입니다. 그리고 그 무제한의 권세를 여러분에게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얘기입니다마는 이 사실을 하나님의 백성은 자연히 믿게 됩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복음은, 기쁜 소식이며 이 기쁜 소식은 사단이 더 이상 우리의 생을 주관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복음을 히브리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 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히 2:14-15)

여러분께서 사단으로부터 놓인 자들입니까? 육신의 죽음이 더 이상 두려움이 될 수 없는 사람들이 되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죽는 날이 가장 영광스러운 날입니다. 주님의 얼굴을 마침내 뵈올 수 있는 날이 아닙니까? 이렇게 큰 자유를 얻은 우리에게 세상이 주는 어려움이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간증하기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赤身)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 8:35)라고 했습니다. 이 간증이야말로 모든 거듭난 자들의 간증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나 지금도 사단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지"(벧전 5:8) 않는가? 라고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백성은 그것을 염려할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백성은 그들이 삼킬 자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여러 곳에 말씀하시기를 그리스도께서 친히 자기의 양을 보호하실 것을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요 10:27-30).

우리의 생명에 대한 더 큰 보장을 에베소서 2장 5-6절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라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감사의 말씀을 다 올릴 수 있겠습니까? "우리를 살리신" 것이 언제입니까? 천년왕국이 와서입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가 거듭나는 순간입니다. 그리스도의 구원이 얼마나 큰 것인지 다 알 수 없으나 이 구절은 우리가 받는 구원의 일면(一面)을 깨닫게 하십니다. 저는 어떤 대국(大國)이 군사들로 첩첩히 수비가 되어 있는 궁전(宮殿)을 상상합니다. 그렇지만 하늘에 있는 궁전을 생각해 보십시오. 수비하는 군사가 필요 없는 곳이 아닙니까? 사단과 그의 군졸(軍卒)들을 영원히 땅에 내어쫓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받는 은혜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보좌(寶座)에 앉히셨습니다. 이것이 앞으로 있을 얘기가 아닙니다. 영적으로 우리가 지금 그 보좌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세상이 눈 아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 8장 35절에 고백한 신앙이 바로 그러한 설명이 아니겠습니까?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困苦)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하루에 백번이라도 외치고 싶은 우리의 노래가 아니겠습니까? 오! 헤아릴 수 없는 그리스도의 그 크신 사랑! 창조주께서 자기의 양을 사랑하시는 그 크신 사랑!

영원한 승리: 이러한 능력의 주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 지상에서의 천년왕국이라는 가증한 생각이 우습기만 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이미 승리자입니다. 이것이 내가 무엇을 한 결과 얻은 것이라면, 마치 축구경기에서 얻은 우승기를 다음 경기에서 이긴 선수들이 내 승리를 빼앗아 갈 수 있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승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이루시고, 그 증거로 우리 이마에 "인 치심"(seal)을 하셨습니다(엡 1:13, 계 7:4). 이것은 창조주께서 우리의 구원을 절대 보장하신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 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롬 8:31-32)

지금까지 공부한 내용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천상(天上) 보좌에 앉아 세상을 다스린다는 영적인 사실을 배웠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행사하는 권력은 사단이 우리가 천국생활을 하는데 어떠한 방해도 할 수 없도록, 하나님께서 완전한 조처(措處)를 하신 것에 대하여 배웠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사는 동안 모든 처지에서 견디며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우리와 함께 계시는 증거이며, 우리가 사단을 다스리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20장 4절의 내용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상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보좌에 앉아 있는 자들은 지금까지 세상에 살다 죽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백성입니다. 에베소서 2장 5-6절은 우리의 영(靈)도 그 보좌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가르칩니다. 그러나 역사상의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안전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요한계시록 20장 4절과 일치되는 광경을 요한계시록 6장 10-11절이 설명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우리 피를 신원(伸寃)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라고 했을 때 그리스도께서 "아직 잠시 동안 쉬되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고 대답하신 것을 주석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목 베임을 받은 자: 요한계시록 20장 4절로 돌아와 그 구절을 다시 살펴 보겠습니다. 성경말씀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내가 공부하는 성경의 본문(本文)을 천천히 읽고 나에게 말씀하시는 뜻을 찾는 것입니다. 지상의 천년왕국을 믿는 자들이, 오늘 우리가 공부하는 이 구절을 천천히 읽어 보았던들 지상의 천년왕국이 있을 것이라고 오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중요한 구절은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입니다. 우리가 이 지상에서 죽임을 당하면 몸은 땅에 묻혀 흙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이 본 "보좌"는 땅에 있을 수 없는 것을 본문 자체가 의심할 여지가 없이 설명합니다. 그 보좌는 영혼들이 살고 있는 곳입니다. 영(靈)인 사단들이 지상에서 일을 하기 위하여 사람들 마음에 들어와 사람들을 통하여 그들의 사역을 합니다. 그러므로 지상에서의 소망은 사단의 소망입니다. 천년이라는 긴 동안 지상에서 아기자기하게 살아보자는 사단의 속임수입니다.

"목 베임을 받은 자"가 누구인지 성경 구절을 찾아 보겠습니다. 성경구절을 찾아보기 전에, 많은 사람들이 "목 베임을 받은 자"들은 특수한 순교자들을 말하는 것이라고 쉽게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구원 받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을 지적합니다.

몇년 전 캠핑씨와 그 유명한 천년왕국의 권위자 월보드(Walvoord)박사 가 "전(前)천년설이 성경적이냐 그렇지 않으면 무(無)천년설이 성경적이냐?" 하는 토론에서 월보드 박사의 진술을 기억합니다. 그는 말하기를 "어떤 시기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집단으로 순교를 당할 것이며, 그때부터 1000년 동안을 그리스도와 함께 태평(太平) 왕국에서 살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긍정이 가지 않는 소설 같은 얘기지만, 수많은 교회가 이것을 가르치고 또 믿고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1000년은 완성된 때를 가르치는 상징적 숫자임을, "목 베임을 당한 자"를 생각해 봄으로써도 증명할 수 있습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서기 2000년에 세상에 다시 오신다고 가정을 해 본다면, 순교 당하는 사건이 전부 서기 1000년에 있을 것이라는 결론이 됩니다. 그렇다면, 제 일세기(一世紀)에, 로마 제국의 폭군(暴君) 네로(Nero)왕에게 죽임을 당한 순교자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왕국을 누리지 못한다는 얘기이며, 그후 역사상에 일어난 순교자들이 한 때에 죽은 것이 아니므로, 그들도 그리스도의 왕국을 누릴 기회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순교자들이 어느 때에 순교를 당했던간에, 그리스도께서 계획하신 그 구원 계획이 완성되어 재림하시는 그 때가 순교자들에게는 1000년이 차게 되는 때입니다.

순교자가 누구냐? 하는데 대한 공부는 요한계시록 13장을 공부할 때 찾아 본 일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3장 15절을 다음과 같이 읽을 수 있습니다.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계 13:15)

이 구절은 우리가 지금 공부하는 요한계시록 20장 4절과 일치된 내용입니다. 이 구절에서 사단에게 속하지 않은 자는 "" 죽임을 당하게 되어 있음을 가르칩니다. 사단에게 속하지 않은 자가 누구이겠습니까? 구원을 받은 자들입니다. 여러분께서는 거듭난 그리스도인이십니까? 여러분은 사단에게 죽임을 당하고 있습니다. 죽임을 당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짐승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 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순교자", "목 베임을 받은 자"가 다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을 지적하는 것임을 우리는 쉽게 알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 받은 여러분, 여러분에게 핍박(逼迫)이 있습니까?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하늘나라에 여러분의 보좌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눈물겨운 일이 있습니까? 즐거워 하시기를 바랍니다. 눈물을 씻어 주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왕위를 내리시기 위하여 금면류관(冕旒冠)을 예비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말했습니다.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롬 8:36).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기 위하여 종일토록 노력하는 여러분의 간증이 아니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계속하여 간증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7)고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산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있을 천국의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큰 소망을 세상에서 그렇게도 못생긴 나에게 어찌하여 주시는지 알 수 없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그리스도의 사랑, 우리가 어떻게 이것을 다 알 수 있으며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의 백성이 된 이 기쁨을 여러분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사도 바울의 심정, 그리스도를 사모하는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며 오늘의 공부를 마감합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롬 8:38-39)

이대우 드림, 2/6/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