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20장, 천년 왕국 (IV)

요한계시록 20장 7-10절: "천년이 차매 사단이 그 옥에서 놓여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 모래 같으리라 저희가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하고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오늘 저희들이 공부할 구절들은 "전무후무(前無後無)한 마지막 대환난"의 광경입니다. 이 마지막 대환난의 광경은 성경에 여러 차례 반복하여 나타나지만, 장마다 그 구사(構思) 방법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상 요한계시록 20장 7-10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마지막 대환난"의 성격을, 여러 가지 각도에서 볼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마련해 두셨다는 점입니다. 만일 우리가 성경의 마지막 대환난의 기록을 다 한 자리에 펴놓고 비교한다면 하나님께서 가르치시는 대환난을 쉽게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공부를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내용에서(마 24:,막 13:, 눅 17:)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시간이 허락하지 않음으로 다음 기회로 미루고, 오늘은 몇 가지 요점만 가지고 공부하겠습니다.

첫째로 떠오르는 생각은 이 "마지막 대환난"을 전쟁으로 상징(象徵)하셨다는 점입니다. 이 전쟁은 진리와 비진리의 대결입니다. 이것이 실제적인 전쟁이라고 믿는 성경학자들이 태반입니다. 이 전쟁을 요한계시록 16장에는 아마겟돈 전쟁으로 상징하셨습니다. 이 전쟁은 바로 여섯째 대접을 쏟을 때이며, 그 때가 바로 마지막 대환난 때이며, 일곱째 대접을 쏟는 마지막 심판의 직전(直前)입니다. 그러나 이 아마겟돈 전쟁은 위의 "곡과 마곡" 전쟁과 동일한 전쟁이며, 결코 실제적인 전쟁이 될 수 없고, 마지막 대환난의 비유임을 알게 됩니다. 사단과의 전쟁이 무기를 들고 싸우는 전쟁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이와 같은 결론에 도달하는 성경 구절을 공부하기 이전에 세상에 나도는 마지막 대환난의 얘기를 몇 가지 소개하겠습니다. 세상은 그리스도인들이나 불신자들이나 할 것 없이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날 것을 믿고 있습니다. 이 아마겟돈 전쟁을 상상한 영화가 쏟아져 나왔고, 또 얘기책들이 항상 베스트 셀라(best seller)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아마겟돈"을 요청했을 때 나타난 어떤 교회 복음회의 글을 소개하겠습니다.

"아마겟돈 전쟁을 맞이할 최후 준비를 어떻게 할 것인가!"(Countdown to Armageddon, How to Prepare)

지구상에 크나큰 변동이 생길 것을 기대하는 참으로 흥분된 때에 우리는 살고 있다. 무대의 커튼은 열렸고 지상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연극은 벌써 시작되었으며 아무 누구도 그것을 정지시킬 수는 없다. 좋고 싫든 간에 우리 각자의 삶은 이 크나큰 사건에 휘말려 들어가고 있다. 아마겟돈 전쟁을 맞이할 최후 점검(Countdown)을 시작한 것이다.

우리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아마겟돈에 대한 위와 같은 성경 해석이 유일하게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기독교인들과 카톨릭 신자들이 이것을 따르고 있다. 그런가 하면 회교도(回敎徒)들이 그들의 사전(事典)이나 또 다른 문헌들을 통하여 동일한 종말론을 믿고 있다. ---

종말에 대한 예언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한 가지 이유는 장래에 일어날 일을 당신들에게 알게 함으로써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을 때 놀라지 않고,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계획이 이루어지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다.

장래를 준비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예수님을 당신의 구주로 영접하는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예수님께서 그의 자녀가 된 당신을 보호하시며, 어려운 때를 잘 넘기도록 인도하신다. 예수님께서 당신에게 힘과 용기를 주실 것이며, 담대하게 세상 끝까지 어려움을 극복하고 견디어 나가도록 인도하실 것이다. 더 나가서 예수님은 당신의 큼직한 꿈이 이루어져 천국과 같은 세상(천년왕국)을 맞이하는 상을 받게 될 것이다.

당신이 아직도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있으면 지금 주님을 영접하고 영생의 선물을 받으시라. 다음과 같은 간단한 기도를 함으로써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예수님 내 마음 속에 들어와 주십시오. 내가 과거에 잘못하고 범죄한 것을 용서하시고 영생하는 당신의 자유를 선물로 주십시오. 내가 당신을 사랑하도록 도와 주시며, 당신의 사랑과 당신의 진리를 다른 사람들과도 나눌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아멘"

지금 소개한 글은 아마겟돈 전쟁을 눈 앞에 곧 볼 것이라고 믿는 태반의 기독교인들이 듣는 설교입니다. 이 아마겟돈 전쟁(삿 5:19)이 이스라엘과 열국(列國) 간에 일어나는 전쟁이며, 칠(7)년 대환난이며, 위에 말한 "간단한 기도로써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자들"은 휴거를 당하여 아마겟돈 전쟁을 피하고, 예수님과 함께 공중에서 칠년을 보낸다고 합니다.

위의 글이 잘못된 점을 지적하기 전에 "곡과 마곡"에 대한 가르침을 찾아 보겠습니다.

곡과 마곡의 전쟁: 여섯 가지의 이유를 들어 마곡이 러시아를 가르침을 우리는 믿게 된다.

첫째 이유는 "마곡:Magog"이 히브리어로 Rosh라는 것은 러시아(Russia)의 어원이며, 수도 Moscow도 마곡에 근거를 두고 있다.

둘째는 러시아의 위치가 이스라엘 북방에 있음을 마곡을 설명하는 에스겔 38장 6, 15절과 39장 2절에서 "북방의 나라"라고 한 것과 일치하다.

셋째로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국가들이 동맹을 하고 있으며, 이것은 에스겔 38장 4-6절에서 말하는 동맹과 일치하다.

넷째로 군병의 크기라 에스겔 38장 4,9, 15절의 기록과 일치된다.

다섯째로 성경에서 말하는 병기가 러시아를 지적할 수 밖에 없다.

여섯째로 러시아가 유대민족과 이스라엘을 미워하는 것이 바로 이 "곡과 마곡" 전쟁의 원인이다.(성서 백과사전, 성서 침례교 출판)

위의 글을 가르치고 믿는 교회가 태반입니다. 그러나 성경 말씀을 비교할 때 잘못 되어 있는 것을 쉽게 찾아 낼 수 있습니다. 구약의 역사적 기록이 신약 성경에서 인용되었을 때 그것은 예외 없이 영적인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용된 내용의 뜻을 알기 위하여는 역사적 기록을 우리의 영적인 신앙과 일대일(一對一)로 비교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세례 요한을 가리켜 엘리야로 상징(눅 1:13-17)한 것의 참 뜻을 이해하기 위하여는 구약의 역사적인 기록을 공부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공부의 결과 세례 요한을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한 뜻을 알 수가 있습니다. 결론은 엘리야를 상징한 세례 요한은 엘리야가 행한 기사와 이적이나, 병거(兵車)를 타고 하늘에 올라간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을 거역한 거짓 선지자들을 무참하게 죽여 가며 담대하게 복음을 전한 것에 근거를 둔 것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아마겟돈 전쟁: 아마겟돈은 "므깃도 언덕"이라는 뜻이며, 아마겟돈 전쟁의 뜻은 구약 사사기(士師記)의 기록, 여선지(女先知)이며, 사사인 드보라와 그녀의 군대장관 바락이 가나안 왕 야빈을 므깃도 언덕에서 쳐서 전멸시킨 역사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삿 4:,5:)

여 사사 드보라는 "에브라임 산지 라마와 벧엘 사이 드보라의 종려나무 아래 거하였고 이스라엘 자손은 그에게 나아가 재판을 받더라"(삿 4:5)고 함으로써 드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그 "말씀" 치하(治下)에 있었던 것은,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 치하에 있는 것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이 이스라엘이 20년 동안을 가나안 왕 야빈에게 학대를 받았습니다(삿 4:3). 드보라는 바락을 (바락은 한 믿음의 용사로 히브리서 11장에 소개되어 있음) 군대장관으로 세우고 군사 10,000명을 거느리고 므깃도 언덕에서 싸워 가나안을 전멸시킵니다. 가나안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이스라엘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습니다. 이 치열한 전쟁을 요한계시록 16장 16절은 비유로 인용하였고, 하나님께서 이 역사적 사건을 말세의 대환난으로 비유하신 이유는, 첫째 사단을 상징한 가나안 왕 야빈에게 학대를 받았다는 것과, 둘째 사단의 전 병력과 바락의 전 병력이 대결한 사실이며, 셋째로는 사단의 병력으로 상징된 가나안이 완전히 소멸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아마겟돈 전쟁에서 승리한 드보라와 바락의 노래에서 이 전쟁이 마지막 대환난의 상징임을 잘 음미 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용사를 치시려고 강림하셨도다"(삿 5:13), "별들이 하늘에서부터 싸우되 그 다니는 길에서 시스라와 싸웠도다"(삿 5:20) 등 여러 가지로 우리가 당할 마지막 대환난을 비유로써 예언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전쟁을 하나님께서 친히 싸우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겪어야 할 아마겟돈 전쟁도, 첫째 하나님의 이름을 내 걸고 있는 세상 교회가 거의 예외 없이 거짓 선지자들에 의하여 지배되어 있으며, 마지막 대환난은 거짓 선지자들의 거짓을 하나님께서 더 이상 참으실 수 없는 단계에 도달한 것을 말합니다. 그 마지막은 주님께서 사단과 교회를 심판하시며 다 지옥의 멸망을 받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곡과 마곡의 전쟁: 곡과 마곡의 비유도 아마겟돈 전쟁과 대등합니다.

곡과 마곡 전쟁의 기록은 에스겔 38-39장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이 전쟁은 유다 왕국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전쟁이었습니다. 실제적으로 치열했던 전쟁을 비유로 들어, 마지막 대환난이 얼마나 치열한 가를 에스겔 38-39장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곡과 마곡의 전쟁은 북방 이스라엘이 BC 709년 앗스루 왕 살만에셀에게 패하여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 호세아는 사로잡히고, 이스라엘 국은 완전히 패망했습니다. 그후 유일하게 남아 있던 하나님의 선민, 유대 국이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멸망당한 역사적인 사실을 "곡과 마곡"의 전쟁으로 상징했고, 이와 같이 유대 국의 종말은 말세를 상징하는데 거듭 인용되고 있습니다.

곡과 마곡 전쟁이 가르치는 요점은 첫째, 이 치열한 싸움이 전세계적(全世界的)이라는 점이지만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이것이 실제로 일어나는 세계 대전쟁(大戰爭)을 말한다고는 성경이 뒷받침할 수 없습니다. "전무후무한 행음(行淫)"이라든가(겔 16:16),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deceive)하게 하리라"(마 24:24)고 하신 말씀은 인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극도로 배반하며, 교회가 더 이상 말씀의 진리를 가르치지 않음을 말합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3-4절은 이 상태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저는 대적(對敵)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바로 이 구절이 마지막 대환난을 설명하는 구절입니다. "곡과 마곡"의 전쟁과 일치되는 사건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20장 7절에 "1,000년이 차매"는 인간의 복음시대, 즉 택하신 백성의 마지막 사람이 구원을 받는 때가 되었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사단이 옥에서 놓여"는 3절에서 공부한 적이 있으며, "땅의 사방 백성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속이고:deceive)"는 곡과 마곡의 전쟁이 전 세계적임을 우선 가르칩니다. 이 구절 자체에서 전쟁이 속이는 것이며, 하나님의 진리를 인간이 더 이상 하나님의 진리로 알지 못하게 됨을 가르칩니다. 사단과 인류가 하나님을 향한 전쟁입니다.

인간의 역사가 시작되면서 하나님의 진리를 거역한 것이 인간의 역사(歷史)입니다마는, 하나님의 진리를 알만한 하나님의 백성이 진리를 거역하는 것이 마지막 한란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의 이름을 내걸고도 진리를 따르지 못하는 때이며, 교회의 지도자들이 진리를 가르친다고 하지만, 사실은 거짓을 가르치는 때입니다. 이 때를 가리켜 "네가 네 의복을 취하여 색스러운 산당을 너를 위하여 만들고 거기서 행음하였나니 이런 일은 전무후무(前無後無)하니라"(겔 16:16)고 하신 것은 에스겔 16장 8절에 "내 옷으로 너를 덮어 벌거벗은 것을 가리우고 네게 맹세하고 언약하여 너로 내게 속하게 하였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신 것과 비교함으로써, 말세에 하나님을 멀리 떠난 인류의 진상을 짐작하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와의) 옷으로" "너의 (자기 백성의) 벌거벗은 것"을 "덮어 가리운 것"을 분명히 하셨는데, 그 백성이 "네가(하나님의 백성이) 네 의복을 취하여" 벌거벗은 것을 가릴 수 있다고 믿는 때가 마지막 때입니다. 이사야 4장 1절이 그 뜻을 좀 더 설명합니다.

"그 날에 일곱 여자가 한 남자를 붙잡고 말하기를 우리가 우리 떡을 먹으며 우리 옷을 입으리니 오직 당신의 이름으로 우리를 칭하게 하여 수치를 면케 하라 하리라"

위의 구절들을 이해하는데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혼인 잔치의 비유가 주석이 됩니다.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마 22:2)라고 하셨고, 그 혼인 잔치에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마 22:10)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혼인 잔치에 들어온 사람들 중에 "예복을 입지 않고 들어온 사람들"을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 22:13)고 하신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이 해석하는데 따라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숱하게 많은 교리가 나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가르칩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의롭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의의 옷과, 또 그의 생명의 떡 밖에 없습니다. 교회가 그 옷과 떡은 싫어하고 "내 떡과 내 옷"으로 만족하는 때입니다. 그 "내 떡과 내 옷"은 세상이 주는 것이며, 사단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떡과 내 옷"으로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한다고 믿는 모든 사람들이 사단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그 정도가 극단에 도달했기 때문에 그 상태를 전쟁으로 묘사를 했고, 사단은 거의 전 인류를 속일 수 있었기 때문에 의기양양(意氣揚揚)해지는 때입니다.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은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인간을 상징하며,"미혹하고"는 세상이 다 속고 있음을 가르칩니다.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는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고 말씀의 떡을 먹는 참 하나님의 백성의 수가 극히 적기 때문에 "사방의 백성 곧 곡과 마곡"에 의하여 사면초가(四面楚歌)가 된 것입니다. "곡과 마곡의 수가 바다 모래 같으리라"고 함으로써 사방의 백성의 수가 절대 다수임을 나타냈습니다. "모래알 같다"는 표현은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켜 성경에 여러번 씌어졌습니다마는, 이사야 10장 22절에는 이 모래알을 구원 받지 못한 온 이스라엘을 지적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 넘치는 공의로 파멸이 작정되었음이라"

이 구절에서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네 백성이라고 부르셨지만 "남은 자"만이 택하신 백성임을 분명하게 말씀하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구절을 사도 바울은 로마서 9장 27절에서 인용하여 말세에 이스라엘 국가가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허망한 생각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수가 모래알 같다는 표현을 교회와 그 교인의 수가 극히 많은 것을 또한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저희가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는 성을 두르매"는 역사상 교회가 점차로 말씀을 배반하게 되며, 말세에 가서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진리를 믿지 않는 교회와 교인의 수가 절대적으로 택하신 백성의 수를 능가할 것을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교회가 극도로 진리를 배반한 때가 세상의 종말이며, 이 때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교회를 소멸"한다고 하셨습니다. 이 때가 바로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입으시고 세상에 재림하시는 때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것은 천년왕국을 건설하기 위하여 오시는 것이 아니며 "불로 소멸"하시는 심판주로 오시는 것입니다.

이 인간을 거짓으로 인도한 사단이 마침내 "유황 못에 던지우며 거기서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와 세세토록 괴로움을 받게 됩니다. "짐승과 거짓 선지자"는 사단의 사역을 대표하는 상징이며, 사단의 사역은 인간을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격리시키는 일로 그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그 결과로 이 세상은 종말이 올 것이며, 지구상의 시간을 지키는 해와 달이 그 구실을 할 수 없는 때가 올 것을 성경은 가르칩니다. 이 구절에서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고 하신 것이 밤낮을 가릴 수 있는 해와 달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 같이 생각되기 쉽습니다마는, 이 때는 이미 해와 달이 없어진 후이므로 그 뜻은 "계속하여 영원한" 괴로움을 받을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이대우 드림, 4/5/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