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20장, 천년 왕국 (VI,마지막)

요한계시록 20장 13-15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고 또 사망과 음부(陰府)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生命冊)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이 구절은 인간의 종말을 지옥에서 장식하는 인류역사의 마지막 시나리오입니다. 이 기록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분명한 사실이지만 대부분의 인간들은 지옥을 부정하며 듣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경에 기록하신 모든 내용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임을 믿고, 우리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면서 공부를 계속하겠습니다.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고"의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다가 세상을 가리킴을 배운 적이 있습니다. "죽은 자"는 영혼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지"(계 20:6) 못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죽은 자들"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을 제외한 모든 인류를 가리킵니다. "내어 주고"는 인간이 살고 있는 이 지상이 인간을 포기하는 것이며, 지옥의 형벌 받을 인간들을 위하여 감싸 주고, 숨겨 줄 능력이 더 이상 없어졌음을 말합니다.

"사망과 음부(death and hell)"는 역사상에 일어났던 모든 인간의 죽음을 가리키며, 여기에서 "음부(hell)"는 무덤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이 죽어 장사 지내고 땅 속에 파 묻혔다 할지라도 세상 종말에 다시 부활할 것을 이 구절은 가르칩니다. 장사(葬事)하는 방법이 여러가지 있습니다. 땅에 묻거나, 화장(火葬)을 하거나, 수장(水葬)을 하든 간에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의 상식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마는, 인간들이 마지막 심판(審判)을 받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 설 준비를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심판을 왜 받게 됩니까? 심판은 인간이 지은 죄에 대하여 마지막 선고(宣告)를 받는 과정입니다. 죄에 대하여 성경은 철저하게 가르칩니다. 지난달에 공부한 12절에서, 모든 인간이 자신들의 행한대로, 즉 책에 기록된대로 심판 받을 것을 배운 적이 있습니다.

인류 역사는 인간의 죽음을 지금까지 감싸 주었습니다. 그 죄가 크던 작던 간에 사람이 일단 죽은 후에는 그 일이 지나간 일로만 알아 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죽은 구원 받지 못한 영혼들이 잠시동안 가 있을 곳을 성경은 "적막(寂寞)한 곳"(시 115:17)이라 하였고, 그 "적막한 곳"은 무서운 심판을 받기 이전이라는 뜻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 마지막 심판을 받고 불못에 던지우는 것을 "둘째 사망"이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첫째 사망은 인간의 육신이 죽는 것이며, 에녹과 엘리야를 제외한 모든 인간이 당하는 죽음입니다. 죽는다는 것은 인간의 육신이 영혼과 분리되는 것이며, 둘째 사망은 인간이 영원토록 인간을 지으신 창조주와 분리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데살로니가후서 1장 7-9절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公義)시니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이렇게 무서운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을 인간의 생각으로는 이해할 길이 없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오묘하신 창조의 능력이, 지금 구원을 받는 자들이나 받지 못한 자들에게 동일한 사랑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것은, 매일 같이 아침이 되면 돋는 해며, 때를 따라 곡식을 자라게 내리시는 비며, 어려울 때 위로를 받게 하는 부모와 형제들의 사랑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마지막 심판은 이러한 하나님의 일반적인 창조의 사랑을 더 이상 받을 수 없는 무서운 때인 것입니다.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고 하신 말씀을 깊이 새겨야 할 것입니다. 단순히 내 이름이 생명책에 없기 때문에 지옥에 가는 것이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인간은 극도로 하나님을 거역하였고,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집행하시는 구원을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자기 욕심대로 하나님을 정의하고, 계속하여 죄의 길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온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찾고 복음에 순종하는 사람은 바로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이며, 하나님께서 그의 공의(公義)를 나타내시기 위하여 친히 역사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주 놀라운 인간의 구원 계획을 가지고 친히 세상에 오셨습니다. 또한 놀라운 약속을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그를 찾는 자는 만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하나님께로 오는 사람이 없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생명책에 기록된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사람들입니까? 인간은 누구도 이 질문에 답변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만 답변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일입니다. 지옥의 무서움을 깨닫고, 또 내가 죄인임을 깨닫는 일입니다. 그리고 나서 주님 앞에 회개해야 할 것이며, 하나님의 자비를 구할 따름입니다. 내가 참으로 구원을 받고 지옥의 형벌을 면하게 될 것을 하나님께 간청(懇請)해야 할 때입니다. 내 생명을 그리스도 앞에 내어 놓을 수 있는 신앙을 하나님께서 주시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렘 29:13)고 하신 말씀을 우리는 늘 기억하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악한 자들의 영원한 거처(居處)가 될 지옥에 대하여 어떻게 성경이 가르치는지를 살펴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인류를 두 가지로 분별하셨습니다. 그 중 한편은 양이며, 다른 편은 염소입니다(마 25:31-46). 양은 천국에 들어갈 자들이며, 염소는 "영원한 형벌(지옥), 불못에 들어갈" 자들입니다. 특히 그들 중에는 "주의 주린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供養)하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6장 46절에는 이들이 예수님을 "주여 주여"라고 부르는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자들은 소위 말하는 기독교인들이며, 또 기독교의 지도자들입니다. 이들과 같이 지옥에 갈 사람의 종류를 요한계시록 21장 8절에 나열하셨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무서운 지옥이 어떠한 곳인가를 성경에서 더 찾아보기 이전에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무서운 얘기를 성경에 기록하셨는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의 경고입니다. 예수님께서 처음 오셨을 때는 구주로 오셨고, 기쁜 소식인 복음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오실 때는 자신이 건립한 복음을 인간들이 받아 들이고 말씀에 순종했는지, 안했는지를 판결하러 오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세상 종말에 대하여 수없이 경고를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7장 13절에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라고 하셨습니다. 좁은 문의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리스도 자신이신 문입니다. 천지의 창조주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신앙입니다. 또 이 문은 목자이신 그리스도께서 인도하시는대로 따라감을 말합니다. 그리고 또한 이 멸망을 홍수로 비유하셨고, 우리가 세상에 사는 동안 반석이신 그리스도만을 의지할 때, 홍수가 나도 우리의 신앙이 무너지지 않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인간에게 다가올 멸망"에 대하여 여러 곳에서 얘기의 주제(主題)로 삼고 있습니다. 인간이 죽기 전에 하나님을 찾을 것을 요구하셨고, 인간이 죽은 후에는 더 이상 기회가 없을 것을 빈번히 말씀하셨습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은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또 찾아 보겠습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 10:28)고 하셨습니다. 마지막 심판을 두려워할 것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무서운 지옥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6장에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로써 말씀하셨습니다. 이 비유에서 "저가 음부(陰府)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라고 함으로써, 죽기 전에 하나님을 찾을 것을 경고하십니다.

성경을 공부하면서 놀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천국에 대한 많은 비유가, 지옥에 대한 경고의 말씀과 동시에 있다는 점입니다. 지옥에 대한 무서움을 성경 여러 곳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마는, 마가복음 9장 42-50절이 한 현저한 구절입니다.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 치듯함을 받으리라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막 9:47-50)

마가복음 9장 42-50절에는 예수님께서 우리 몸의 어떤 지체라도(손, 발, 눈을 지적하셨음) 범죄하면 찍어, 또는 빼어 버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육신으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음을 가르칩니다. 우리는 죄에서 떠나야 지옥을 면할 것을 이 구절은 또한 가르칩니다.

"구더기도 죽지 않고"라고 하신 말씀은 이사야 66장 24절에 "그들이 나가서 내게 패역(悖逆)한 자들의 시체들을 볼 것이라 그 벌레가 죽지 아니하며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여 모든 혈육에게 가증함이 되리라"고 하신 말씀에서 인용(引用)하신 것이며, 그들의 죽은 영혼이 영원히 죽어 살아나지 못함을 가르칩니다. "소금 치듯함"은 두 가지의 뜻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구약 제사법에서 화제(火祭)를 드릴 때 반드시 제물(祭物)에 소금을 치도록 명령하신 것을(레 2:13) 인용하셨습니다. "소금의 맛"은 썩지 않게 본래의 상태를 보전하는데 사용합니다. 동시에 화제에 사용하도록 명령하신 소금은 하나님의 심판을 가리킵니다. 골로새서 4장 6절에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seasoned with salt))함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고 함으로써,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그리스도께서 영광의 심판주로 오시어 죄인을 심판하실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 롯의 아내가 소금기둥이 된 성경 얘기를 전하는 것은 믿는 자들의 의무입니다. 다른 한편 "소금"의 뜻은 하나님의 공의로서 정하신 지옥의 형벌이 영원히 보존(preserve)될 것을 가르칩니다.

지옥 불못에 가야 할 인류의 운명은 오로지 죗값이며(롬 6:23), 그 죄는 내 죄이며, 다른 사람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요한계시록 22장 10-11절에 인류의 마지막 날의 상태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또 내게 말하되 이 책의 예언의 맘씀을 인봉(印封)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이 무서운 지옥의 형벌을 면하기 위하여 우리는 하나님께 간청할 따름입니다.

지옥과, 지옥에 갈 사람들에 대하여 성경 몇 구절을 찾아 보겠습니다.

1, 지옥은 어두운 곳입니다(마 22:13). 왜 어둡습니까? 빛이신 그리스도께서 계시지 않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2, "삼키는 불"(사 33:14) 속에서 살며, 예수님께서 그 불에는 구더기도 죽지 않는 "영영히 타는 불"이라고 하셨습니다.

3,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에서, 지옥은 고통을 받는 곳이라고 하셨습니다(눅 16:19-31).

4, 지옥에서는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계 14:11)

5, 지옥은 죄인들이 가는 곳이며, 로마서 1장에는 이 죄인들의 종류를 일일이 지적하였고, 이들은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심으로써, 인간이 받을 지옥의 형벌은 영원한 것임을 가르치십니다.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喪失)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誹謗)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背約)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저희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롬 1:28-32)

그러나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에게 기회를 주셨습니다. 우리의 죄가 주홍(朱紅) 같을지라도 그리스도께 나아와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의지할 때 하나님께서 용서하시고 우리를 영접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성경에서 지옥행을 자처(自處)한 몇 인물들을 찾아 보겠습니다.

발람과 거짓 선지자들: 민수기 22-24장에 발람의 얘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 유다는 발람을 "삯을 위하여 어그러진 길로 몰려간 자"(유 1:11)라고 했으며, 사도 베드로는 발람을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자기의 불법을 인하여 책망을 받되 말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것을 금지하였느니라"(벧후 2:15-16)고 하였습니다. 복음을 반대하는 것은 미친 짓입니다. 또한 요한계시록 2장에는 버가모 교회에 경계하시기를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계 2:14)고 함으로써 돈을 벌기 위하여 예수님의 이름을 파는 수다한 거짓 선지자들을 경고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며 세상과 짝할 때 그것은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며 또한 행음하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와 거짓 선지자들: 사도행전 1장 17절에, 가룟 유다에 대한 사도 베드로의 설교 내용이 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이 사람이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여하여 이 직무(職務)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고 함으로써 3년 반 동안 침식을 같이하며,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팔게 된 유다와 같은 자들을 경고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 에스겔에게 하신 말씀을 생각합니다. "내 백성처럼 네 앞에 앉아서 네 말을 들으나 그대로 행치 아니하니 이는 그 입으로는 사랑을 나타내어도 마음은 이욕(利慾)을 좇음이라"(겔 33:31)고 하셨습니다. 어찌 이 말씀이 가룟 유다에게만 하신 말씀이겠습니까? 교회를 한 기업체로 생각하는 많은 한국 교회에게 내리시는 경고가 아니겠습니까?

롯의 아내: 예수님께서 친히 "롯의 처를 생각하라"(눅 17:32)고 하셨습니다. 롯의 처가 소금기둥이 되기 직전의 사정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소돔이 멸망당하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의 마음은 소돔에 있었던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을 사랑하는 때가 되었습니다. 교회 운영이 세상을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특히 물질이 풍부한 교회의 교인이 될 때, 롯의 아내로 세상의 종말을 맞이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말세를 당한 우리는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요일 2:15)라고 하신 말씀을 귀담아 들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에서와 같이 장자의 직분을 파는 자: 에서의 얘기는 창세기 25-36장으로 돌아가 공부해야 할 내용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히브리서 12장 16절에 하신 경고를 읽어 보겠습니다.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려 주신 축복에 대하여 깨닫고 간직하는 신앙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17절에는 에서는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등한히 하는 자는 음행하는 자와 일반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은 이스라엘: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온 후 40년간을 광야에서 살면서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볼만큼 보았습니다. 홍해가 갈라져 마른땅이 된 것을 보았고, 홍해를 건너간 후 애굽 군대가 바다에 빠지는 것을 보았고, 반석을 쳐서 물이 나오는 것을 마셨고, 만나를 매일 같이 거두었고, 메추라기를 잡아 먹었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인도하는대로 여행하였습니다. 이 모든 경험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히 3:11).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실 것을 간절히 기도해야 할 따름입니다.

요한계시록 20장의 공부를 마감하면서 결론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로, 요한계시록은 장래에 대한 얘기만이 아니며, 과거, 현재 그리고 장래에 일어날 일을 상징적(象徵的)으로 기록하셨음을 우리는 기억해야할 것입니다.

1-3절의 말씀은, 우리 주님께서 사단을 묶어 무저갱(無底坑)에 가두시는 것은, 십자가상에 달리심으로 사단에게 승리하신 것의 상징이며,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때까지를 완성된 기간인 1000년으로 상징하셨습니다.

4-6절은, 현재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천상(天上)에서 다스리시는 광경이며, 그 왕권을 다윗의 보좌로 상징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공의로우심을 가르칩니다. 분명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어 예루살렘을 수도를 삼고 천년 동안 왕노릇하신다는 가르침이 성경 말씀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 기간에는 그리스도께서 예정하시고 택하신 백성이 온 세상 사방에서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는 기간입니다.

7-10절은 사단이 잠시 동안 옥에서 놓이는 마지막 대환난이며, 상징적인 완전한 기간, 1000년이 지나간 때이며, 이 때에 사단은 속이는 수단으로 인간을 유혹합니다. 모든 것을 현실로 비추어 볼 때, 지금이 바로 사단이 잠깐 놓인 때라고 믿어집니다.

11-15절은 그리스도께서 흰 보좌에 앉아 심판하시는 세상의 종말을 가르칩니다.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참으로 무서운 때입니다. 세상에 살던 모든 인간이 심판대 앞에 서서 그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영원히 불못에 던지움을 당할 것입니다. 그 불못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을 것이며, 불이 타도 어두운 곳입니다. 이 지옥의 표현은 장래에 다가올 일의 상징이며, 사람의 지혜로는 그 일들을 다 추측할 수 없습니다. 다만 이 무서운 일이 모든 인류에게 다가올 것을 하나님께서 경고하신 것을 믿을 뿐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은 일은 구세주이신 그리스도께 나아가 내가 구원을 받기 위해 간구(懇求)하는 것 뿐입니다.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2)

기회는 지나기지 않았습니다. 내가 구원 받고 영원히 살기 위하여 주님께 애걸(哀乞)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남아 있습니다.

이대우 드림, 6/6/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