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거는 언제 일어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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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유례없이 요즈음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하여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스라엘이 자기의 영토로 귀환한 사실, 지식의 폭발, 핵무기로 인한 전세계의 파괴 가능성, 정보 기술의 급속한 성장(온 세계에 복음 전파를 가능케 하는) 등의 사건들은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세상의 마지막 때가 매우 가깝다고 생각하게 한다.

성경만이 미래의 답을 줄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마지막 때에 일어날 일들을 알기 위하여 자연히 성경을 볼 것이다.

성경에 기록된 두 가지 사건은 세상의 종말을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하여 공부하기 이전에 이 두 가지 사건을 잘 살펴보고자 한다. 그 중 하나는 "대환난"으로 세상 마지막 직전에 있을 사건이다. 우리는 다음 장에서 대환난에 대하여 자세히 공부할 것이다. 다른 하나는 "교회의 휴거"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는 큰 위로 중의 하나가 믿는 자들의 휴거이다. 휴거는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육체적으로 죽음을 당하기 전에 영광된 몸으로 변화되는 것을 말한다. 그 때 그들은 공중으로 올라가 그리스도를 만날 것이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7절을 보자.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교회의 휴거는 여러 가지 이유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 중 하나는 역사의 연대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이루어 가는 것임을 기억하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교회는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모이는 여러 교단과 회중을 말하며, 그 교회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있어서 근본적이며 광범위한 부분을 차지한다. 휴거는 믿는 자들이 공중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만나기 위하여 들림 받는 것이므로 믿는 자들에게는 휴거가 이 세상 삶의 마지막 결실을 의미한다. 즉 그 후 교회는 더 이상 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휴거가 역사와 관련해서 언제 일어날 것인지 배워야 한다.

이제 한 가지 어려운 문제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휴거의 시기에 관해서 어려운 일들이 생겼다. 그것은 휴거의 시기가 과연 언제인가 하는 문제이다. 어떤 사람은 세상의 마지막이 되기 1,007년 전에 휴거가 일어날 것이라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은 1,003년 반 전으로 휴거의 때를 성경이 가르친다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1000년 전이라고 믿는다. 그런가 하면 이 사건이 마지막 날과 동시에 일어나리라고 가르치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사람은 논리적으로 볼 때 마지막 때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이 모호하다고도 보며 또는 성경에 나오는 언어가 매우 어렵다고도 한다. 물론 사람들은 이 질문에 대한 성경의 답을 분명히 알고 싶어하며 그렇게 되면 그들은 성경이 가르치는 대환난이 우리와 어떻게 관련되는지를 발견할 수 있다. 휴거의 시기에 대한 분명한 이해는 마지막 때와 관련되는 많은 사실을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을 줄 것이다.

다행히도 성경은 휴거에 대하여 많은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가끔 언급되는 정도가 아니다. 심판날, 마지막 날과 관련되어 휴거의 시기는 성경에 너무도 많이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인간 역사의 어떤 시점에 틀림없이 일어날 것에 대하여 추호도 의심할 필요가 없다.

 

이 공부에서 우리는 휴거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는 일곱 경로의 성경 말씀을 잘 살펴보려고 한다. 이 서로 다른 일곱 경로의 성경 말씀을 연구하면서 우리는 피할 수 없는 하나의 결론을 찾아 낼 것인데 그것 은 믿는 자들의 휴거는 마지막 때에 일어난다는 것이다. 즉 예수님이 세상을 심판하러 오시는 그 때와 같은 때이다. 이 세상은 붕괴되기 시작하고 하나님은 이 세상을 불로 심판하실 준비를 하실 때이다. 세상 역사의 마지막 때이다.

성경 안에서 이토록 중요한 휴거와 마지막 때에 관한 많은 정보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자.

이제 그 일곱 경로 중 첫 번째를 살펴보자.

마지막 나팔과 휴거

고린도전서 15장 51-53절을 읽어보자.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 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구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다 죽을 것이 아님을 말씀하신다(성경 말씀에서 잔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어떤 사람들은 죽지 않고 순간적으로 부활된 몸을 받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휴거이다. 53절에는 믿는 자들이 죽지 아니할 몸을 입을 것을 말씀하신다.

그 다음에 하나님은 언제 이 일이 일어날 것인가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마지막 나팔"에 주목하라. 이것이 바로 그 시기를 알게 하는 실마리이다. 하나님께서 그 마지막 나팔에 휴거가 일어날 것이라고 설명하고 계신다.

성경이 성경을 해석해 준다는 원칙에 따라 우리는 마지막 나팔과 관련되는 모든 구절들을 찾아봄으로써 그 마지막 나팔이 언제인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요한계시록 11장 15-18절을 보자.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하나님 앞에 자기 보좌에 앉은 이십 사 장로들이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노릇 하시도다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임하여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무론대소하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

이 구절에서 하나님은 일곱째 또는 마지막 나팔과 함께 일어날 일들의 대략을 설명하신다. 그 때 다음과 같은 일들이 발생한다.

첫째, 죽은 자들이 심판을 받게 되고

둘째, 주를 경외하는 자들이 상을 받게 되며

셋째,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일곱째 나팔은 심판날이 왔음을 알리는 신호이다. 그것은 믿는 자들에게는 상을 받는 때이다. 마귀의 세력은 지옥으로 던져지는 때이다. 그러므로 그 마지막 나팔은 반드시 이 세상의 마지막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마지막 때에 심판날은 시작되고 사탄은 불 못으로 던짐을 당하기 때문이다.

이제 다시 고린도전서 15장 51-53절 말씀으로 돌아가자. 우리는 이 구절에서, 믿는 자들의 휴거가 마지막 나팔소리와 함께 일어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계시록 11장 말씀을 통하여 그 마지막 나팔은 심판날과 동시에 일어남을 알았다.

소돔의 멸망과 휴거

고린도전서 15장 51-53절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휴거가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심판하러 오시는 그 때에 있을 일임을 공부하였다. 이제 두 번째 성경 말씀을 찾아보고 휴거가 일어날 때가 언제인지 좀 더 찾아 보기로 하자.

누가복음 17장 28-37절 말씀을 보자.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 오듯 하여 저희를 멸하였느니라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그 날에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 세간이 집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 오지 말 것이요 밭에 있는 자도 이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말 것이니라 롯의 처를 생각하라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두 남자가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 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함께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어디오니이까 가라사대 주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이 구절에서 소돔의 멸망을 마지막 날에 있을 심판의 모형으로 사용하셨다. 우리는 롯과 그 가족이 구원을 받은 것은 휴거의 모형임을 곧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롯과 그 가족의 구원을 34절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두 남자가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 둠을 당할 것이요"의 말씀과 연결시키신다.

소돔의 멸망 바로 직전에 하나님께서는 하늘로부터 사자를 보내어 그 가족을 구원하셨다(창세기 19장). 이 구출 작업에 곧 이어 하나님께서는 불과 유황을 소돔에 쏟아 부으시고 그 온 도시를 멸망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누가복음 17장 30절에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고 하심으로써 그리스도의 심판날과 소돔의 멸망과 연결시키신다.

소돔의 멸망과 세상의 종말이 매우 유사하다는 데에 명백한 증거가 있다. 소돔, 가증한 도시, 멸망 받기에 너무도 무르익은 이 도시는 두 종류의 사람으로 구성되었었는데 하나는 가증한 자들로 멸망 받을 자들이요, 다른 하나는 롯과 그 가족으로 된 교회, 즉 상징되는 믿는 자들이다. 그들은 그 가증한 도시에 살았던 지극히 적은 수의 남은(remnant) 자들이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이 세상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람들로 꽉 차 있다. 그 압도적으로 많은 인구 가운데 교회가 있는데, 이것은 세상의 인구 비례로 보면 너무도 적은 수의 사람들이다.

다음에 심판날이 소돔에 닥쳐온다. 그들의 부정은 절정에 이른다. 그들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은 단호하게 그들을 멸망하신다. 그러나 그 심판 바로 직전에 롯을 구출하신다. 다가오는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구원되기 직전에 롯의 부인은 심판을 받고 만다. 나라들이 심판 받을 만큼 무르익게 되면, 하나님은 천사들을 보내시어 그 믿지 않는 자들로부터 믿는 자들을 구출하실 것이다. 두 남자가 한 자리에 누워 있는데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 둠을 당할 것이다. 데려감을 당한 자는 데살로니가전서 4장 17절 말씀 같이 하늘로 올라가 그리스도를 만날 것이고 버려 둠을 당한 자는 소돔의 가증한 자들처럼 심판을 받기 위하여 남겨 둠을 당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휴거가 심판날과 동시에 일어날 것임을 가르치고 계신다. 이 소돔의 멸망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치심과 고린도전서 15장의 휴거가 마지막 나팔에 일어날 것이라는 말씀이 완전한 일치가 된다.

노아 때의 홍수와 휴거

세 번째 성경에 있는 휴거와 관련된 기사는 노아 때의 홍수 사건이며 휴거가 심판날과 동시에 일어날 것에 대한 확실성을 말한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노아의 홍수 사건과 심판날과 비교하여 말씀하신 성경 구절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마태복음 24장 37-41절을 보자.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 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 둠을 당할 것이니라"

이 구절에 하나님께서 노아의 때에 홍수로 인한 멸망과 예수님의 재림을 유사한 언어로 말씀하신다. 즉 노아 때의 홍수로 인한 세상의 멸망은 심판날의 모형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베드로후서 3장 3-7절에서도 설명되고 있는데 읽어보기로 하자.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이로 말미암아 그 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창세기 7장 홍수의 기사를 볼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홍수가 나기 7일 전에 노아에게 홍수가 7일 후 있을 것이라고 예고해 주심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노아와 그 가족은 방주로 들어가게 된다.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네가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창 7:1).

"지금부터 칠일이면 내가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나의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 버리리라"(창 7:4)

홍수는 4절에 있듯이 예고가 있은 후 7일째에 온다. 이것은 창세기 7장 10절에 "7일 후에 홍수가 땅에 덮이니"에서도 알 수 있다. 성경은 홍수의 정확한 날짜를 기록하고 있다. 모든 내용을 종합해 보면 노아가 실제로 방주에 들어간 것은 홍수가 난 바로 그 날임을 알 수 있다.

창세기 7장 11-13절을 읽어보자.

"노아 육 백세 되던 해 이월 곧 그 달 십 칠일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곧 그 날에 노아와 그의 아들 셈, 함, 야벳과 노아의 처와 세 자부가 다 방주로 들어갔고"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노아 때 사람들이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그 날까지 먹고 마시며 할 일을 다하였고, 홍수는 그들을 모두 멸해버렸다고 가르치신다. 누가복음 17장 27절을 읽어보자.

"노아가 방주에 들러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

분명히 우리는 홍수와 심판날 사이에 유사점이 있음을 볼 수 있다. 노아와 그 가족은 죄악으로 가득한 세상에 살고 있었다. 마지막 심판날에 믿는 자들도 이 죄로 물든 세상에서 아주 적은 수의 남은 자로 존재할 것이다. 심판날에 구원 받지 못한 자들이 심판을 받고 지옥으로 옮겨질 때 믿는 자들은 휴거 되어 구출될 것이다.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 둠을 당할 것이요"(마 24:40). 데려감을 당한 자는 노아와 같다. 노아가 방주로 들어갔음으로 구원을 받았듯이 믿는 자들은 그리스도를 하늘에서 만남으로 안전한 곳으로 구출을 받는 것이다. 버림을 받은 자는 심판을 받기 위해 남김을 당했고 이것은 마치 노아의 방주 밖에 있던 자들이 심판을 받기 위해 남김을 당한 것과 일치한다.

다시 한 번 우리는 분명하게 휴거가 심판날과 동시에 일어남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무덤에서 부활하셨을 때 그의 부활이 사실이었음을 많은 증거를 통하여 보여 주신다(행 1:3). 마찬가지로 휴거시기에 대한 가르침은 성경의 많은 부분에서 전개되고 있다. 우리는 이제 이러한 사실을 가르치는 성경의 네 번째 경로를 찾고자 한다.

죽은 자의 부활과 휴거

데살로니가전서 4장 14-17절에 우리는 휴거에 대하여 가장 자주 인용되는 내용을 발견할 수 있다. 이 구절들을 통하여 네 번째 휴거의 때를 알려 주는 내용을 공부하기로 하자.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이 구절에서 제일 먼저 찾을 수 있는 진리는 휴거는 우리 몸의 부활과 동시에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이미 잠든 자들을 같이 데리고 올 것을 말씀하신다. 다른 곳(고후 5:8)에서 우리의 영혼이 몸을 떠나 하나님과 함께 거한다고 가르치신다. 믿는 자들이 구원을 받는 순간 부활된 영혼을 받았기 때문에, 그들이 죽으면 그 영혼이 그리스도와 함께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그들은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며 세상을 통치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이미 죽은 자들, 이미 잠든 자들, 즉 하늘나라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 온 자들이 그와 함께 올 것이라고 데살로니가전서 4장 14절에서 가르치신다. 그 다음에 무덤이 열리고 이미 죽은 자들의 육체가 부활할 것이다. 동시에 믿는 자 중에 죽지 않은 자들은 부활한 몸을 입을 것이다. 바로 이것에 이어서 무덤에서 부활한 자들은 죽지 않고 홀연히 새 몸을 입은 믿는 자들과 함께 주님과 영원히 거하기 위하여 공중으로 들림을 받을 것이다. 오직 구원 받지 못한 자들만 남아서 하나님의 진노를 당할 것인데 그것은 그들의 죄 때문이다.

모든 믿는 자들은 주님과 함께 하기 위하여 부활된다

이제 우리는 이 육체의 부활에 대한 사실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성경은 육체의 부활이 있을 시기에 대하여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다. 지금까지 본 바와 같이 휴거는 육체의 부활과 거의 동시에 일어나므로 믿는 자의 몸의 부활이 언제인가를 알면 휴거의 시기가 언제임을 알게 된다.

요한복음 6장 39절: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raise it up) 이것이니라"

요한복음 6장 40절: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raise him up) 하시니라"

 

요한복음 6장 44절: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raise him up)"

요한복음6장 54절: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raise him up)"

마지막 날(the last day)이란 문구는 깊은 뜻이 있다. 성경 전체에서 이 문구가 모두 8번 발견된다. 하나님께서는 단어를 선택하시는데 매우 신중하시며, 이 문구도 중요한 진리를 암시하기 위하여 선택되었다.

이 문구를 잠시 살펴보자. 우리가 읽어본 봐와 같이, "마지막 날"이 요한복음 6장에서 4번 씌어졌다. 다른 네번 쓰인 구절들은 다음과 같다.

요한복음 11장 24절:

"마르다가 가로되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

요한복음 12장 48절: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

요한복음 7장 37절:

"명절 끝 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느헤미야 8장 18절:

"에스라는 첫날부터 끝 날까지 날마다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무리가 칠일 동안 절기를 지키고 제 팔일에 규례를 따라 성회를 열었느니라"

 

요한복음 11장 24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마르다가 요한복음 6장의 네 구절에서 말하는 진리를 명백하게 이해하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믿는 자들의 부활은 마지막 날에 있다.

위에 있는 요한복음 12장 48절에서 우리는 마지막 날이 곧 심판날임을 발견한다. 하나님께서 구원 받지 못한 모든 사람들을 그들의 죄값을 치르기 위하여 지옥으로 보내시는 일이 그 다음에 있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의 부활 역시 마지막 날에 일어날 일이며(요 6:40) 이것이 심판날과 같은 때에 일어날 것임을 우리는 알 수 있다.

"마지막 날"이 씌어진 다른 두 구절을 공부하기 전에 요한복음 12장 48절에 대하여 좀 더 생각해 보자. 만약 심판날이 마지막 날이라면 구원 받지 못한 자들의 부활도 마지막 날이다. 요한계시록 20장 13절을 보면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리라고 한다. 만일 그렇다면 구원 받지 못한 자들의 부활이 마지막 날에 일어날 것이고 구원 받은 자나 받지 않은 자의 부활이 동시에 마지막 날에 있어야 한다. 어느 상황에서라도 우리는 믿는 자의 부활과 믿지 않는 자의 부활이 서로 다른 때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이것을 성경이 우리에게 확실히 가르치는 것이다. 요한복음 5장 28-29절을 읽어보자.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때에 순간적으로 부활할 것이다. 아무도 무덤 속에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7절을 보면 믿는 자들이 호령하는 소리를 들으리라고 하였다. 요한복음 5장 28-29절에서는 믿지 않는 자들도 그 소리를 들을 것이라고 한다.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이 구절이 천년을 사이에 두고 서로 분리된 두 부활을 가리킨다고 어떤 이들은 가르치지만 그럴 수가 없다. 한 시각에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때가 올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요한복음 5장 29절에 이 무덤에서 나온 자들이 다른 두 곳으로 갈라짐을 더 밝히 말하고 있다. 선한 일을 행한 자들, 즉 그들의 죄가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아 사함을 받은 자들은 생명의 부활로 나아올 것이다. 악한 일을 행한 자들 즉 그들의 죄가 예수님의 의로 옷 입혀지지 않은 자들은 심판의 부활로 나아오는 것이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4-17절 말씀과 요한복음 5장 28-29절의 말씀을 비교해 가면서 마지막 날에 대하여 공부해 왔다. 그러므로 성경은 명백하게 휴거, 믿는 자들의 부활, 믿지 않는 자들의 부활, 그리고 심판날이 마지막 날, 즉 이 날은 세상이 끝나는 때이며 이 때 동시에 일어날 일임을 발견해 왔다. 이 모든 구절들이 완전히 맞아 들어가는 것은 너무도 놀라운 일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여덟개 가운데 여섯개의 마지막 날이란 문구가 들어 있는 성경 구절을 보았다. 나머지 두 성경 구절은 다음과 같다.

요한복음 7장 37절:

"명절 끝 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느헤미야 8장 18절:

"에스라는 첫 날부터 끝 날까지 날마다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무리가 칠 일 동안 절기를 지키고 제 팔일에 규레를 따라 성회를 열었느니라"

우리는 마지막 날의 문구와 관계되는 모든 것을 확실히 하기 위하여 이 두 성경 구절도 공부하려고 한다.

명절날이 휴거와 관련됨

이 나머지 두 성경 구절은 모두 초막절과 관련된다. 실제로 둘 다 초막절의 마지막 날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초막절의 마지막 날이 휴거나 심판날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우리는 초막이 다루는 주제와 깊이 관계됨을 알아야 한다.

먼저 초막절의 성질에 대하여 알아보자. 그것은 두 사건을 기념하는 명절이었다. 첫째로 그것은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을 기념하는 것이었고 둘째로는 추수를 끝마치는 때이었다. 레위기 23장 42-43절을 읽어보자.

 

"너희는 칠 일 동안 초막에 거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할지니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이 성경 말씀은 초막절이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 안식의 땅으로 들어가기 전 광야 생활을 뒤돌아보는 명절이었음을 가르쳐 주고 있다. 현 세대의 마찬가지로 믿는 자들도 광야인 세상에서 살고 있다. 예수님이 오셨을 때에 안식이 완전히 성취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외인이요 순례자이다. 그러나 우리가 부활된 몸을 받을 때는 그리스도와 영원히 함께 할 것이다(살전 4:17).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이 명절과 그리스도의 재림이 동일시되는지 알 수 있다. 그때에 우리는 부활된 몸을 받는 것이다.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고 광야 생활도 끝이 나는 것이다.

초막절을 기념하는 두 번째 이유는 초막절이 추수를 끝내는 축제였다는 점이다.

출애굽기 23장 16절을 읽어보자.

"---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이것은 놀라운 구절이다. 왜냐 하면 수장절에 대하여 말씀하시는데, 이것은 초막절과 같으며, 마치 한 해의 마지막처럼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초막절은 일곱째 달에 지켜 왔다(레 23:39). 그런데 사실 일곱째 달은 연말로부터 멀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마지막 또는 한 해가 지나가는 것처럼 말씀하신다.

이 명절이 마지막 때와 얼마나 밀접한 관계가 있는지 살펴 볼 때에 비로소 왜 하나님께서 이것을 연말로 말씀하고 계신지 알 수 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3장에서 추수 때에 그가 다시 오시는 것에 대하여 말씀하신다(마 13:30,39).

마태복음 13장 30절;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숫군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마태복음 13장 39절;

"---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숫군은 천사들이니"

초막절이 추수를 기념하는 축하잔치였고, 또한 그 해의 마지막 때이며,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끝을 추수 때와 비교하시는 것을 보아, 우리는 초막절과 세상의 마지막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마지막 날이란 말이 믿는 자의 부활, 심판 그리고 초막절과 서로 연관되어 있는 것이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아래와 같은 도표가 이러한 관계를 설명하여 준다.

초막절 세상의 끝

해의 마지막 때 세상의 마지막 때

곡식을 추수하는 때 인류를 추수할 때

이스라엘 족속의 광야 생활의 믿는 자들의 광야 생활의

마지막 마지막

마지막 날(출 23:16) 마지막 날(요 6:39-40,

12:48)

느헤미야 8장 18절과 요한복음 7장 37절에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을 초막절과 연관시켜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초막절에 대한 공부를 마치기 전에, 초막절을 마지막 때 또는 세상의 마지막과 연결하는 또 다른 하나의 사실이 있음을 주목하여야 한다. 출애굽기 23장 14-17절을 보면, 구약 시대에 모든 남자는 일년에 세번씩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되어 있다.

"너는 매년 삼 차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한 대로 아빕(Abib)월의 정한 때에 칠일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이는 그 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 빈 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지니라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너의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께 보일지니라"

첫 번째 절기는 무교병의 절기로서 유월절로부터 시작되었다. 이 절기는 일월 십 사일 저녁에 시작하였고(레 23:5) 십 오일부터 7일간 계속되었다(레 23:6,신 16:1-3). 이 날은 이 세상의 죄를 사하여 줄 유월절 양으로 오신 예수님의 피가 뿌려질 것을 상징하는 절기였다.

두 번째 절기는 맥추절, 첫 열매절 또는 칠칠절(Feast of Weeks)이다. 이 절기는 유월절 주간에 있는 안식일 다음날로부터 일곱 주간 동안을 지켜졌다(레 23:15-16, 신 16:9). 이 절기는 안식일 후 오십일간 지켜졌기 때문에 오순절이라고 불리우기도 한다. 이 날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시작한 영적인 추수를 상징하는 절기였다.

세 번째로 남자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하는 절기는 초막절이다. 이 날은 속죄일(Day of Atonement)로부터 시작한다. 속죄일은 칠월 십일이다. 이 초막절은 칠월 십 오일부터 팔일간 계속되었다(레 23:27, 34, 39). 이 절기는 우리가 공부한대로 하나님께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실 구원 즉 영적인 추수를 완성하시는 것을 바라다보는 절기이다.

이제 우리를 두렵게 하는 사실이 있다. 이러한 절기가 속죄 사역의 역사적 성취를 기대하고 가리키며, 이스라엘 나라가 그 절기를 지켰던 똑 같은 날에, 하나님께서 절기가 가리키는 영적인 실제 사건을 일어나게 하셨다. 서기 33년 유월절에 유대인들이 유월절을 지킬 때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양으로서 십자가에 달리셨다.

유대인들의 오순절 날(구약의 첫 열매를 바치는 절기)에 성령이 임하였고 영혼의 추수가 시작되었다. 바로 그 날에 18개국으로부터 온 3천명이 구원 받음으로 추수의 첫 열매를 보였다(행 2:).

우리는 온 유대인 남자가 예루살렘에 가도록 특별히 강조된 세 명절 중 두 절기가 하나님의 구속 사업이 이루어지는 때였음을 보았다. 유대인의 유월절이 그리스도께서 유월절 양으로 죽임을 당하시던 같은 날에 행하여졌었다. 유대인의 첫 열매를 바치는 절기도, 하나님의 성령을 부으시고 영적인 추수의 첫 열매를 보여 주신 같은 날인 오순절에 지켜졌다.

이제 하나의 절기가 남았다. 즉 초막절 또는 수장절이다. 분명히 성경은 다른 두 중요한 절기에 문자 그대로 절기를 지키는 사건이 일어났던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이 절기가 문자 그대로 이루어지는 때에 재림하시리라고 암시한다. 우리는 그 날이 가을, 구약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켜 온 초막절과 같은 날임을 믿을 수 있으며 그 때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초막절과 마지막 날을 연결시켜 말씀하시는 것은 당연하다. 초막절은 마지막 날에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것과 동일시된다. 마찬가지로 우리 몸의 부활과 심판날도 마지막 날에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것과 동일시된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성경의 여덟 곳에서 씌어진 마지막 날이 모두 마지막 때를 가르침을 알았다. 그것은 지구 존재의 마지막이고 그리스도께서 심판주로 오시는 때이다.

대환난과 휴거

우리는 지금까지 서로 공부한 독특한 네 개의 성경 구절을 통하여 휴거가 이 세상 존속의 마지막 때에 있어야함을 알았다. 모든 인간의 육체의 부활과 심판날은 함께 일어날 사건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성경은 이것에 대하여 더 자세히 말하고 있다. 이제 다른 방향에서 이 문제를 다루어 보자. 마태복음 24장에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의 마지막 바로 직전에 일어나야 할 징조와 사건의 대략을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24장 21-31절에서 말씀하신 것을 보자.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지니라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이 구절들을 살펴 본 바와 같이 휴거는 믿는 자들이 반드시 당할 대환난 바로 직후에 일어날 뿐 아니라 이 세상의 마지막과 동시에 일어날 것 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것은 심판날과 같이 일어나야 한다.

21절과 22절에서 하나님은 이 지구상에 반드시 일어날 대환난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택한 자들을 위하여 이 날들이 감하여질 것이다. 이 대환난이 내포하는 뜻을 여기서는 다루지 않겠지만,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와야만 함을 안다. 성경의 어느 다른 구절에도 이 구절보다 더 쉽게 말하고 있는 구절은 없다.

우리는 22절에서 말하고 있는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확실히 해야 한다. 하나님은 희랍어로 "eklektos"인 택함이란 단어를 신약에서 약 23번 사용하신다.

어떤 사람들은 마태복음 24장이 오직 이스라엘 국가만에 관계되고 이방인에게는 관계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이 "택함"이 오직 믿는 유대인에게만 해당된다고 가르친다. 이런 가르침에 따른다면 마태복음 24장은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제자들에게 국한된 유대인에게만 해당된다. 같은 논리로 요한복음 3장도 그리스도께서 유대인이었던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이방인과는 관계없는 것이라고 논쟁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오직 유대인만 거듭날 수 있고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마찬가지로 로마서는 로마의 교회에게 씌어진 것이므로 오늘날 우리에게는 아무런 중요성이 없다. 이사야서나 예레미야서도 이 선지자들이 이스라엘에 보내신 자들이므로 이방인에게는 아무런 관련이 없게 된다.

이러한 근거로는 성경의 몇 책만이 신약 시대의 믿는 자들에게 적절하고 권위 있는 말씀이 된다.

우리는 즉시 이렇게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에 잘못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성경은 모든 말씀이 교훈과 책망과 가르치기에 유익하다고 말씀하신다(딤후 3:16). 모든 성경은 연구되어야 하고, 지켜져야 한다. 마태복음 24장은 유대인 뿐 아니라 이방인에 의해서도 읽혀지고 연구되어야 한다. 요한복음 3장도 성경의 어느 다른 부분과 마찬가지로 주의 깊게 읽혀지고, 연구되어야 한다.

실제로 마태복음 24장을 잘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전세계에 대하여 말씀하심을 알 수 있다. 13절에서 우리는 세상의 마지막을 읽는다. 14절에서 하나님은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을 말씀하신다. 28-31절에서는 그가 권능과 큰 영광으로 재림하실 것을 말씀하신다. 유대인에게만 오시는 것이 아니다. 그는 온 세상에 다시 오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24장의 경고들도 온 세상에게 주시는 것이다. 마태복음 24장의 말씀은, 데살로니가전서 4장 14절이나 다른 구절과 마찬가지로, 이방인에게 중요하다.

이제 다시 마태복음 24장 22절의 단어 "택함:elect"로 돌아가자, 우리는 King James 번역판에서 이 단어가 "택함" 또는 "뽑힘"으로 번역되었음을 발견한다. 희랍어 "eklektos"가 씌어진 23곳의 성경 구절을 살펴보면 이 단어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믿는 자들을 가리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구절에서 씌어졌다.

마태복음 20장 16절;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되리라" for many are called, but few are chosen(많은 자를 부르셨으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한국 성경에는 영문 부분의 번역이 빠져 있음)

요한계시록 17장 14절;

"저희가 어린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로마서 8장 33절;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골로새서 3장 12절;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

디도서 1장 1절;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 곧 나의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믿는 자들은 택함을 받은 자들이며 마태복음 24장 22절에서 택하심을 받은 자들을 위하여 날들이 감해진다고 가르치는 것을 보아 믿는 자들이 이 환난 기간에 존재할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마태복음 24장 22절만 보더라도 휴거가 이 환난 전에 있는 것으로 주장하는데 모순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마태복음 24장을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환난과 그리스도의 재림의 관계를 포괄하는 매우 주의 깊은 연대를 주신 것을 알 수 있다.

 

마태복음 24장 29-30절에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이 구절은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 있을 마지막 사건이 마태복음 24장 21-22절에서 말하고 있는 환난임을 매우 강조해서 우리에게 말한다. 환난 후 즉시라는 말은 대환난과 29-31절에서 말하는 사건들 사이에 시간적 여유가 없음을 뜻한다.

환난 즉시 일어날 일들을 주의 깊게 보면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그 빛을 내지 않음을 본다. 이것은 시간의 마지막을 가리킨다. 해와 달이 시간의 흐름을 조절한다. 이제 더 이상 시간이 없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재림하셨기 때문이다.

세상이 존재하는 마지막 날이다. 다음에 우리는 별들이 하늘로부터 떨어지기 시작함을 본다. 이것은 심판날의 징조이며 우주의 멸망이다.

하나님께서 요한계시록 6장 12-17절에서 이 사건을 더욱 확대시켜 말씀하신다.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총담같이 검어지고 온 달이 피같이 되며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선 과실이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기우매"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 바위 틈에 숨어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이것은 심판날을 설명하는 문맥일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우주의 붕괴에 대하여 읽으면서 놀라지 않는다. 베드로후서 3장 10-13절에서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에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우리는 하나의 사실이 두드러지게 강조되는 것을 본다. 이 우주는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파괴될 것이다. 그것은 죄로 말미암아 저주 하에 있기 때문에 반드시 멸망되어야 한다. 바이러스 균, 지진, 태풍, 기근들은 인류가 하나님께 대항해왔기 때문에 경험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사람만 저주받은 것이 아니라 인간이 지배하는 우주도 역시 저주를 받았다. 로마서 8장 20-22절을 보자.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영광의 아들들(믿는 자들)이 나타나기를 피조물들이 고대하는 것은, 그 때에 우주가 저주로부터 해방되기 때문이다. 구원 받지 못한 사람들이 심판을 받고 지옥으로 가게 된 직후에 이 땅의 멸망이 있고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다시 창조되는 일이 일어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별들이 하늘로부터 떨어지고, 하늘이 말려 떠나간다는 것을 읽으면서 놀라지 않는다. 마태복음 24장 29절에서 우리는 이 일이 환난 후 즉시 있을 것임을 알았다. 환난 후 그리스도께서 이 죄로 물든 세상에 자기의 보좌를 마련하시기 위하여 오신다는 가르침은 불가능한 상황을 가르치는 것이다.

우리는 구원 받지 못한 자들이 환난 직후 우주가 붕괴되고 그리스도께서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실 때에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있다. 마태복음 24장 30절에서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한다고 읽었다. 우리는 요한계시록 6장 15-17절에 모든 사람들이 극심한 공포에 쌓여 산과 바위에게 자기들 위에 떨어져 자기들을 가리우라고 말하는 것을 본다. 이 날은 어린양의 진노의 큰 날이다. 그것은 바로 심판날이다. 심판대 앞에서 그들의 죄값으로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을 받아야만 하는 날이다.

이제 마태복음 24장 31절을 더 자세히 보자. 거기에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께서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실 때 제일 먼저 하실 일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7절과 그 사용하는 언어가 얼마나 흡사한가 보라. 그것은 휴거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먼저 마태복음에서 그리스도께서 그의 천사들을 큰 나팔소리와 함께 보내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절에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이라고 말하고 있다. 마태복음 24장에는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고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7절에 살아 남은 자는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그리스도를 영접하리라고 한다. 앞에서 본 것과 같이 택함을 받은 자는 세상 곳곳에서 휴거 될 믿는 자들이다. "Under heaven"은 "Under the sky"로 번역될 수 있다. 어쨌든, 이들은 온 세상에 흩어져 사는 믿는 자들로서 그들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빌 3:20).

이렇게 하여 우리는 마태복음 24장 31절과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7절 사이에 천사의 활동,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있을 나팔 소리, 믿는 자들의 휴거 등의 유사한 언어가 있는 것을 보았다.

이상 마태복음 24장을 공부하면서 우리는 믿는 자들의 휴거가 마지막 때에 있을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그것은 대환난 직후, 심판날과 동시에 일어날 것이다. 하나님께서 휴거 시기에 대하여 이렇게 많은 증거를 주시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가!

지금까지 우리는 휴거가 이 세상 마지막에 있을 것임을 나타내는 다섯 가지의 매우 분명하고 독특한 구절들을 찾아보았다. 이제 성경에 있는 여섯 번째 기록을 알아보자.

불법의 사람과 휴거

데살로니가후서 2장에서 우리는 휴거가 세상 끝에 있을 것을 가리키는 자료를 더 발견할 수 있다. 이 구절에서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을 위하여 오시기 전에, 두 사건이 꼭 일어나야 한다고 가르치신다. 첫째는 배도 하는 일이고, 둘째는 불법의 사람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 나타나며, 그 때 예수님께서 그 의 입 기운으로 그를 죽이실 것이다. 그 악한 자는 지옥으로 떨어질 것이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1-9절: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 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혹 영으로나 혹 말로나 혹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아니할 그것이라"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이 일을 너희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저로 하여금 저의 때에 나타나게 하려 하여 막는 것을 지금도 너희가 아나니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길 때까지 하리라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누가 불법의 사람인가? 만일 우리가 그는 거짓 선지자나 거짓 그리스도로 불리는 사람들과 같이 일하는 사단임을 안다면, 우리는 완전히 성경적인 근거를 찾아낸 것이다. 이 구절들에서 그가 하나님이라 경배함을 받는 것을 알 수 있다. 요한계시록 13장 4절에 경배함을 받는 사단, 용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가로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그러므로 데살로니가후서 2장의 불법의 사람이 경배 받는 다는 것은, 그가 불법의 사람으로서 사단을 가리킴을 알 수 있다. 어떻게 사단이 사람으로 불릴 수 있을까? 그는 타락한 천사가 아닌가? 우리는 그가 사람이었던 바벨론의 왕으로 상징되었기 때문에, 역시 사람으로 불리는 것을 알 수 있다(사 14:4).

이사야 14장에서 우리는 사단 계명성(Lucifer)의 타락에 대하여 알고 있다. 그 내용에서 우리는 루시퍼가 사단 그 자신이었음을 안다. 그러나 이사야 14장에서 루시퍼의 타락에 대하여 말하면서 하나님은 이 사단을 사람처럼 말씀하신다.

이사야 14장 16절을 읽어보자.

"너를 보는 자가 주목하여 너를 자세히 살펴 보며 말하기를 이 사람이 땅을 진동시키며 열국을 경동시키며"

요한계시록 18장이 가르치듯이, 바벨론은 성경에서 종종 사단의 왕국으로 묘사된다. 우리는 즉시 그 공통점을 알 수 있다. 바벨론 나라는 바벨론 왕에 의해 통치되었다. 사단의 왕국은 사탄에 의하여 통치된다.

이 불법의 사람은 사단으로서, 성전에서 그의 자리를 차지한다. 자리에 앉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예수님은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서 만물을 통치하신다(엡 1:20-22). 그렇게 자리에 앉는다는 것은 지배하며 또는 권세를 갖는다는 성경적인 표현이다. 불법의 사람 사단은 성전에 앉아 성전을 지배한다.

성전과 휴거

성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문자 그대로 성전의 재건이 있을 것인가? 성경 어느 곳에서도 미래에 있을 성전의 재건에 대하여 읽지 못한다. 사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에 성전의 장막이 찢어지므로 예루살렘 성전이 거룩한 장소로서 중요시되던 시대는 끝이 났다. 오히려 성경은 믿는 자들이 성전인 것으로 말한다.

에베소서 2장 19-21절을 읽어보자.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베드로전서 2장 5절: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고린도전서 3장 16절: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라고 하면서 믿는 자들이 성전인 것을 강조하신다.

 

성전은 교회이며 그것은 믿는 자들의 공동체임을 우리는 명백하게 본다. 여기에서 사단이 불법의 사람으로 활동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 불법의 사람(사단)이 성전(믿는 자들의 공동체, 교회)에서 통치(앉아)하고, 하나님처럼 숭배함을 받는 일이 일어날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는 영인 까닭에 믿는 자들의 무리 속에서 문자 그대로 통치하는 것처럼 보일 수는 없다. 그러나 그는 참 진리의 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을 가져오는 선지자나 거짓 그리스도를 통하여 통치할 수 있다. 고린도후서 11장 13-14절에 이러한 종류의 활동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마태복음 24장 24절도 비슷하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이 구절은 사단의 철저한 속임수에 대하여 강조한다. 그가 가져오는 복음은 너무도 참 복음과 비슷하기 때문에 택하신 자들도 미혹 당하게 된다.

마태복음 24장 24절에 이 거짓 선지자들이 표적과 기사를 가지고 오는 것에 주목하라. 사단은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케 하기 위하여 참 복음과 아주 흡사한 거짓 복음을 가져 올 뿐만 아니라 그는 또 표적과 기사를 통하여 활력과 생동감을 줄 것이다.

예수님이 2000년 전에 오셔서 진리의 복음을 전하실 때에 이적과 기사를 보이신 것처럼, 사단도 이적과 기사를 가지고 옴으로써 그의 복음이 하나님과 예수님께 관계되는 것처럼 보이게 할 것이다.

지금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데살로니가후서 2장 1-9절도 역시 이적과 기사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악한 자"라고 표현된 거짓 선지자들도 9절에서 가르치듯이 이적과 기사를 가지고 올 것이다.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사"라고 되어 있다.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이 거짓 선지자들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종인 것처럼 사람들에게 믿어져 왔다. 사단은 굉장한 속임수를 가진 자이며 거짓의 아비이다(요 8:44). 뿐만 아니라 데살로니가후서 2장 10-11절에 하나님께서 스스로 이러한 자들의 눈을 멀게 하여, 거짓을 믿게 하신다고 가르치신다.

하나님께서 데살로니가후서 2장에 사단의 종들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기 전에, 참 복음이 선포되어야 하는 교회가 이적과 기사의 권위를 가지고 통치하는 일들이 먼저 일어난다고 선언하셨다. 이 거짓 선지자들은 그리스도의 참 선지자로 믿어지게 될 것이다. 그들은 참 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을 가지고 오기 때문에 사실상 사람들로 하여금 사단을 숭배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재림 이전에 반드시 일어날 사건의 특징이다. 온 세상에 흩어져 있는 교인들과 교회는 다른 복음을 가져오는 자들에 의하여 침범되고 결국 다스려지게 될 것이다. 이러한 거짓 복음의 특징은 우리로 하여금 거짓 복음을 알아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것은 그들이 표적과 기사에 촛점을 두기 때문이다.

죄의 결박과 휴거

데살로니가후서 2장으로 다시 돌아가서, 7절을 읽어보자.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 막는(letteth)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길 때까지 하리라"

"letteth"는 영어의 고어로서 "restrain"(결박한다)이다. 위의 구절은 불법을 막는 자가 놓여진다는 것을 가르친다.

이 불법을 막는 자가 성령이라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다. 성령이 믿는 자들 가운데 거하시므로 그들은 이 구절이 교회의 휴거에 대하여 가르침이 틀림없다고 제안한다.

물론 불법을 막는 자가 하나님 그 자신을 가르치는 것은 맞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생애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는 기근을 면하려고 그랄(Gerar) 땅으로 가기 위해 가나안을 떠났다. 거기에 있는 동안 그의 생명이 두려워 왕에게 자기의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그랄 왕은 사라를 그의 궁전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사라는 아브라함의 아내이기 때문에 동침하지 말라고 경고하셨다. 그랄 왕은 사라와 동침하지 않음으로써 하나님의 경고에 응했다. 그 후에 하나님께서 창세기 20장 6절에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이 꿈에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나도 알았으므로 너를 막아 내게 범죄하지 않게 하였나니 여인에게 가까이 못하게 함이 이 까닭이니라"고 하셨다.

이 사건은 하나님께서 죄를 제어하시는 것을 보여 주는데 도움이 된다. 우리는 또 하나님께서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말씀하시며 죄를 막고 계시는 것을 성경말씀을 통해서도 알고 있다. 사람의 마음은 심히 부패했다고 한다(렘 17:9). 사람의 마음으로부터 악한 생각, 살인과 간음들이 나온다고 한다(마 15:19). 단지 사람들이 제어 당하기 때문에 우리는 온당한 삶을 살 수 있고 부모 자녀간의 사랑, 친구간의 우정과 의리, 불우한 사람에 대한 동정 등, 어느 정도의 덕을 나타낼 수 있다.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은, 이 제어는 믿는 자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성령이신 하나님은 물론 믿는 자들 사이에 거하시지만 성령이 그들 안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성령은 이 세상에서, 믿는 자들이 있든지 없든지 간에 불법을 막는 일을 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데살로니가후서 2장에 불법을 막는 일을 옮기신다고 하는 것은, 믿는 자들이 휴거 될 것을 암시하시는 것이 아니다. 왜냐 하면 믿는 자들이 스스로 막을 힘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배도 하는 자들이 늘어나는 것을 허락하기 위하여 죄를 막는 일에서 하나님의 손을 떼신다는 것을 말씀하신다. 이 사실은 문맥을 통해서 나타난다. 왜냐 하면 이 구절에 하나님은 배도에 대하여 말씀을 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24장에 악한 자들이 점점 많아진다고 하며 요한계시록 20장에 사단이 놓였다고 하였다. 이 모든 구절이 한 가지 내용을 가르친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이 매우 사악해지도록 허락하실 때가 올 것이다. 그는 죄를 제어하던 손을 구원 받지 못한 자들, 사단 그리고 사단의 추종자들로부터 떼심으로써 이 일을 이루실 것이다. 그들은 예전보다 더욱 사악해질 것이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1-11절 말씀으로 돌아가자. 여기에서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위에 설명된 불법의 사람이 먼저 나타나야 함을 본다. 하나님은 또 이 구절에서 그 불법의 사람이 나타나면 예수님이 그 입의 기운으로 그를 폐하실 것을 외치신다. 그것은 사단을 따르던 악한 자(구원 받지 못한 자들)들이,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심판을 받고 지옥으로 갈 것을 의미한다. 악한 자들이 영원한 멸망의 벌을 받는 곳은 지옥이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1-3절에서 예수님을 영접하기 위해 믿는 자들을 모은다는 말씀에 주목하라.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맞이하기 위하여 믿는 자들을 한데 모으는 일이, 불법의 사람이 나타나기 전에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다. 8절에 이 불법의 사람이 나타날 때에 주의 강림하심으로 그 악한 자들이 멸해질 것이라고(심판을 받고 지옥으로 가게 되는 것) 말씀하시므로, 즉시 믿는 자들이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함께 모이는 시기(휴거)와, 사단과 악한 자들이 멸망 받는 시기(심판날)가 같은 때임을 알 수 있다.

다시 한번 우리는 지금까지 공부해온 구절들에서 휴거는 심판날과 이 세상 마지막과 동시에 일어난다는 완전히 일치하는 가르침을 발견한다.

이제 휴거가 세상 끝에 있다는 진리를 강조하는 다른 구절 하나를 더 찾아보기로 하자.

밤의 도둑과 휴거

휴거의 시기에 대한 말씀을 연구할 때, 성경에 휴거가 마지막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심판하러 오시는 때에 일어나리라는 아주 풍부한 자료를 이해하려고 한다. 성경에 있는 여섯 가지의 내용을 검토해 왔는데 각기 같은 가르침을 준다. 그러나 이 문제를 떠나기 전에 한가지 사실을 더 찾아보아야 한다. 그것 역시 그리스도의 재림과 밀접하게 관계된다. 이것 역시 그리스도께서 심판 주로 재림하실 때에 믿는 자들이 지상에 있을 것임을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이다.

성경은 반복해서 그리스도의 강림이 도둑같이 또는 밤의 도둑같이 오리라고 말한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4장 43절에 그의 재림에 대한 기사 중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베드로후서 3장 10절에 세상 마지막 때의 우주의 붕괴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가운데 다음과 같이 선포하신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이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요한계시록 3장 3절에 우리는 경고를 읽는다.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하나님은 이 세상의 종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요한계시록 16장 15절에 말씀하신다.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이러한 구절들에 근거하여 다양한 교리들이 나왔으며, 그 중에 일부는 그리스도께서 조용하게 오신다고 주장한다. 갑자기 그리고 조용히 크리스천들은 이 지상에서 옮겨지게 된다. 이러한 생각은 그리스도의 강림을 밤의 도둑처럼 말하는데 비추어 볼 때 분명히 타당하게 여겨진다.

그것이 사실인가?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절에는 믿는 자들의 휴거에 대하여 말하는데 거기에는 예수님이 도둑처럼 조용히 올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거기서는 호령과 하나님의 나팔소리를 말씀하신다. 그것이 조용하게 오시는 거라고 할 수는 없다.

놀랍게도 성경은 성경 자체의 주석이다. 만일 우리가 성경이 성경을 해석한다는 원칙을 따른다면 밤의 도적이란 문자에 대하여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 문구가 쓰여진 성경의 자료들이 그리스도의 조용한 강림을 암시하는 것이 아님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휴거의 사건이 심판날의 때와 동시에 일어나야 한다는 성경의 명백한 가르침을 뒷받침 해 주는 것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9절을 읽어보자.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피하지 못하리라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리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 할지라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

이 구절에서 우리는 밤의 도적과 마찬가지인 예수님의 오심에 대한 분명한 자료를 찾는다. 주의 날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권능과 큰 영광으로 구름을 타고 오실 그날이다. 그날은 주님께서 만 왕의 왕, 만주의 주로 오시는 날이다.

이 구절들에서 하나님은 그날이 밤에 도적같이 올 것임을 가르치신다. 그러면 그가 아무도 기대하고 있지 않을 때에 오실 것을 가르치시는가?

물론 구원받지 않은 자들에게는 그것이 맞는 말이다. 3절을 다시 보자.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

구원을 받지 못한 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심판 주로 오실 것을 기다리지 않는다. 그들은 아마도 예수님의 재림을 전혀 기다리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진화론으로 눈이 어두워져 삶의 문제에 대한 답을 이 세상에서 찾으리라고 믿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답은 인류가 이 지상에서 백만 년이나 혹은 오래 동안 존속할 것이라는 심중한 확신을 줄지도 모른다. 심판날에 대하여서도 그 날이 실제로 있다고 믿더라도 아마 백만 년 뒤에 있으리라고 그들은 믿고 있다. 그들 마음에는 하나님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결정지어져 있다. 그들은 자신의 썩어질 향락을 따르는데 평안하고 확고한 집념을 가지고있다.

만약 어떤 사람들 가운데 성경을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구원을 받지 못하였다면, 그들도 역시 심판날이 실질적이 아님을 믿을 것이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고 아무도 멸망당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하나님은 이 지구와, 또 여기서 사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최고의 사랑을 확신할 놀라운 계획이 있으시다고 생각한다.

매우 성경적이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것처럼 보인다. 그들의 무지하고 또 거짓 복음의 가르침은, 이 지구상에 아직도 이상적인 나라가 세워질 희망이 있는 것으로 믿는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을 전적으로 부인하는 자들과 동일하게, 모든 것이 안전하게 느껴질 것이다.

따라서 구원 받지 못한 자들에게 그리스도께서 머지않아 심판 주로 오실 것이다. 사실상 그의 강림은 매우 무섭고 놀랄만한 일일 것이다. 왜냐 하면 구원 받지 못한 자들은 그들이 심판대 앞에서야 함을 발견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하나님과 그들 사이에 모든 일이 잘 된다고 생각했었겠지만 그들은 사실상 성경에 기록된 구원이 아닌 스스로가 좋아하는 식의 구원을 따르고 있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순간적으로 그들의 진리가 될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구주로 섬긴 일이 없었음을 인식할 것이다.

그들은 편리할 때만 성경 말씀을 순종해 왔다. 그들은 그리스도만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자로 믿은 적이 없다. 그들은 오히려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들의 노력한 훌륭한 행동이 합해짐으로 온다는 것을 추구해 왔다. 그들은 하나님과 화평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안전하다고 생각해 왔으나, 그것은 거짓된 화평과 거짓된 안도감이었다. 주의 강림 때에 그들은 전혀 위로부터 나지 않았었다는 엄청난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강림은 밤의 도적 같을 것이다. 주의 강림이 밤의 도적 같이 있게 될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주목하라. 갑작스러운 파멸이 그들에게 임할 것이고 아무 곳으로도 도망할 곳이 없을 것이다.

이것은 심판날의 어조이다. 노아의 때에 무슨 일이 사람들에게 일어났는가 기억하라. 갑자기 그들은 침수되었고 멸망되었다. 소돔을 기억하라. 그곳 역시 갑작스런 파멸을 당하였다. 예수님이 심판날에 대하여 마태복음 7장 13절에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마태복음 24장 37절에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경고를 상기해 보자.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데살로니가후서 1장 9절에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라고 하였다.

얼마나 두려운 순간인가! 얼마나 소름끼치는 장소인가! 우리는 요한계시록 6장 16절에 사람들이 자신들을 가리워 달라고 바위와 산을 부르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인류가 지금까지 겪지 못한 충격이 심판날의 완전한 공포가 될 것이다.

성경은 이 중대한 사건과 관련된 또 다른 소식들을 드러내기 위하여 계속 말씀하신다. 성경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리스도의 강림이 밤의 도적 같이 오지 않을 것을 알려준다. 이들은 진정한 믿는 자들이다. 그들의 죄가 예수님의 피로 씻음을 받음으로 그리스도의 오심에 준비된 자들이다. 이들은 흑암의 왕국의 지배하에 있지 않는 자들이다(예수님은 빛이시다). 그러므로 그들은 주님에게 속한 자들이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4-5절을 읽어보자.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우리는 위의 구절에서 주님의 날이 믿는 자들에게 도적 같이 오지 않을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을 기대하고 준비되어 있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은 미리 휴거 될 수가 없다. 우리는 심판날은 세상의 종말에 있고, 그 날이 믿는 자들이 휴거 될 때임을 안다. 믿는 자들은 어떤 경우에도 그들은 심판 받지 않는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9절에도 있듯이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고 하셨다.

이 구절에 있는 노하심은 대환난이 아니다. 어떤 이들은 대환난으로 생각한다. 휴거가 심판날에 동시에 일어난다는 것을 분명히 믿는 자들도 대환난을 만날 것이다. 그러나 그 기간이 믿지 않는 자들이 죄의 형벌을 받아야 하는 하나님의 노하심은 아니다. 하나님의 노하심은 구원 받지 못한 자들이 그들의 죄의 결과로 당해야 하는 영원한 형벌을 말한다. 참 믿는 자들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피로서 그들의 죄를 다 씻어 주셨기 때문에 영원한 형벌을 당하지 않는다.

요한계시록 6장 15-17절에 하나님의 노하심에 대하여 적절하게 말하고 있다.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 바위 틈에 숨어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구원 받은 자들은 진노의 면함을 받고 자유롭게 된 것이다. 그렇게 놀라운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자.

요약

데살로니가전서 4장 14-17절로부터 휴거가 믿는 자들의 부활과 동시에 일어남을 알았다. 요한복음 6장에서 믿는 자들의 부활이 마지막 날에 일어날 것임을 보았다. 요한복음 12장에서도 또 마지막 날이 초막절과 연관되며, 이것을 통하여 우리는 마지막 날이 심판날임을 배웠다. 더 나아가서 요한복음 5장 28-29절은 산 자와 죽은 자들의 부활인, 일반적인 부활이 그리스도의 재림 시에 일어날 것이라는 말씀과 전적으로 일치하는 것을 보았다.

이와 같이 데살로니가전서 4장은 요한복음 6장의 가르침과 믿는 자들의 부활이 언제 일어날 것인가에 대하여 설명해 주는 다른 구절들을 통하여 볼 때, 휴거, 심판날, 그리고 종말이 동시에 일어나는 일임을 가르쳐 주고 있다.

휴거와 심판날이 동시에 있을 것임을 안다면 데살로니가전서 5장은 아무 문제없이 이해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믿지 않는 자들에게 밤의 도적 같이 오셔서 심판을 내리실 때 믿는 자들은 주님의 강림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다. 그는 믿는 자들에게는 밤의 도적 같이 오시지 않는다. 그 때가 그들에게는 구원이 완성되는 놀라운 순간이요 그리스도와 영원히 함께 하기 위하여 휴거 되는 때이다.

우리는 휴거에 대하여 알려 주는 성경에 기록된 일곱 가지 경로를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모든 경로가 믿는 자들의 휴거가 심판날과 동시에 일어남을 보여 준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에 대하여 풍부한 증거를 주셨다.

이러한 진리가 성경에 명백히 기록되어 있으므로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다른 가르침들도 이 성서적 진리에 근거하여 연구되어야 한다. 사실은 우리가 성경에서 주님의 재림에 대한 진리를 찾고 연구할 때 성경은 끊임없는 합의가 있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이는 성경은 그 진리 안에서 완전하고 믿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의 연대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전개하는 것이라는 현저한 증거를 발견해왔다. 이렇게 하여 휴거로써 이 지상의 구원 계획은 완결될 것이다. 역사도 종결되고 세상의 종말이 올 것이다.

우리가 모두 직면해야 하는 중요한 질문은 우리가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준비가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가 죄인임을 알고 있는가?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예수님을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는 자로 믿는가? 우리의 죄로부터 돌아서서 진실로 그리스도께 순종하기를 원하고 있는가?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우리는 그의 재림에 대한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심판을 받을 사람들 가운데 있는 것이다. 우리의 처지가 매우 위험하다.

하나님의 사랑을 찬양하자. 왜냐 하면 아직 구원의 때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은 아직도 용서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구세주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라!

계속하여 연구하자. 우리는 이제 하나님께서 교회 마지막 때의 배도 하는 일로 인하여 교회에 내리실 심판에 대하여 주의 깊게 연구하여야 한다. 교회에 대한 이 심판은 지구 역사의 마지막 때에 올 것이며 대환난으로 불린다. 다음 장에서 이 환난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