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2월 뉴스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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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에 이르는 믿음(II) - 아벨과 같이 의의 제사를 드리는 자들 -

성인으로 창조된 아담과 하와는 맏아들 가인 과 둘째아들 아벨을 낳고 길렀습니다. 창세기 4장의 간단한 기록을 보면 아벨은 형 가인에 의하여 살해당했습니다. 가인은 인류 역사상에 첫 번 째의 살인범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의인이라고 불리운 아벨은 더 이상 자손이 없었기 때문에, 아벨의 얘기는 한가지 역사적인 얘기로만 생각이 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11장 4절의 기록은 아벨이 우리의 믿음의 조상임을 가르칩니다. 아벨의 얘기가 성경에 반복되지 않습니다 마는, 아벨의 짧은 일생을 통하여 믿음의 후사인 우리들에게 절대적인 본을 보여준 것을 발견합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히 11:4)

 

이 구절에서 아벨이 드린 제사와 가인이 드린 제사를 비교하여 아벨의 진실한 제사를 우리가 배우도록 Ǜ 68;씀하십니다.

창세기 4장을 보면 가인과 아벨이 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물론 이 두 형제는 역사상에 제일 처음으로 제사를 하나님께 드린 자들입니다. 이 제사하는 방법을 부모인 아담과 하와에게서 배웠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었을 수도 있었습니다. 부모들의 어리석은 불순종으로 에덴동산을 쫓겨 나왔을 뿐 아니라, "정녕 죽으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충분히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가인과 아벨이 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는 사실만으로써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제사를 드렸다는 사실은 그들이 멸망에 이른다는 것을 믿고, 하나님께 구원을 애걸한 것으로 이해가 됩니다. 말하자면 그들은 다 구원을 갈망한 것입니다.

양치는 자: 아벨의 얘기에서 우리가 처음에 배우는 것은, 그가 "양치는 자"(3절)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언제나 구원 받은 자와 받지 못한 자의 얘기를 대조하여 가르칩니다. 반면에 가인은 농사하는 자 이었습니다. 양치는 자는 정처가 없고, 농사하는 자는 한 곳에 자리를 잡고 농기구들을 철에 따라 준비하여 쓸 수 있도록 한다거나, 계절에 따라 농작물을 돌보기 위하여 정착을 해야합니다. 창세기 4장 끝에 기록을 보면, 가인은 결국 "에덴 동편 놋"에 정착하고 성을 쌓게됩니다. 가인이 성을 쌓던 이유를 창세기 4장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가인은 동생 아벨을 살해한 살인범으로 "유리 하는 자: Fugitive and vagabond"가 되었습니다. 살인범이었기 때문에 체포되어 재판을 받지 않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무도 가인을 살해하지 못하도록 그의 생명을 보장하셨지만(15절) 가인은 말씀을 완전히 믿지 못했을 지도 모릅니다.

가인의 후예: 인간은 가인의 후예입니다. 그리고 또 살인자들입니다. 인간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이며, 살인한 역사입니다. 이 사실에 대하여 성경은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 라고 하셨을 뿐 아니라(요일 3:14), 유대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음으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요 8:44)

이상의 말씀을 생각할 때 아벨이 "양치는 자"가 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에덴의 동쪽: 가인과 아벨은 아담과 하와에게서 난 인류의 제 일대 후손으로서, 아담과 하와가 겪은 일을 자세히 듣고 살았을 것입니다. 그 얘기는 자기들의 부모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얘기이며, "정령 죽으리라"고 선언하신 하나님의 선고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에덴동산 동쪽에서(창 3:24) 서쪽에 있는 에덴동산을 바라보며 살았고, 하나님의 자비로 용서함을 받고 다시 에덴동산에 들어가 하나님과 동거하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제사를 드렸습니다.

가인과 아벨이 다 제사를 드렸다는 것은, 그들이 다 하나님의 구원을 갈망한 것이며, 단지 그 동기와 방법이 달랐었다는 사실을 가르쳐줍니다.

제사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과, 또 이스라엘이 제사를 드린 역사적 기록은 사실상 구약성경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제사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하나님께서 제사를 법으로 정하시고, 심지어 제단의 치수까지 하나님께서 정하시고, 이스라엘에게 그 법을 지키도록 명령하셨다는 점입니다. 가인과 아벨의 경우가 이스라엘의 경우와 다른 점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하신 말씀에서(창 4: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라고 하신 데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사 법을 가인과 아벨에게 주신 것이 분명합니다. 그것은 아벨은 가인과는 달리, "선을 행하였다"고 인정하신 것입니다. 부모인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불순종하였기 때문에, 인간은 절망적으로 타락하여 선을 결코 행할 수 없음을 아벨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땅의 소산: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열납하신 아벨의 제사가 무엇이냐?" 하는 수수께끼를 풀어야 할 것입니다. 곧 아벨의 제사에서 수수께끼의 실마리는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입니다. 그 반면에 가인의 제물은 '땅의 소산'이었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흠 없는 양의 첫 새끼'는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자기의 죄가 그리스도의 속죄함 없이는 죄 사함이 없다는 것을 아벨은 알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와 반면에 가인의 제사도 최선을 다한 것을 가르칩니다. 그 사실은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사가 잘못되었음을 지적하였을 때 가인의 '안색이 변한 것'(창 4:6)을 읽을 수 있습니다. 가인 자신이 기대한 것에 크게 어긋났다는 것을 고백한 것이 아닙니까? 인간의 기대에 어긋나는 일이 창세기 초, 가인에게 있었듯이, 세상 종말에도 있을 것을 마태복음 25장은 가르칩니다.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마 25:41-43)

"저희도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마 25:44)

말세에 가서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사람들 중에는 "예수님의 주리신 것과 목마르신 것과, 나그네 되신 것과, 벗은 것과 병든 것과, 또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했다"는 자들입니다.

사람의 생각: 이러한 자들은 가인과 같이 자신의 생각에 따라 열심히 예수를 믿는 자들입니다. 사람의 생각과 사람의 판단은 땅의 소산입니다. 물론 세상사람들의 갈채를 받는 훌륭한 설교와, 간증과, 또 깊은 감명을 주는 글들이 많이 있습니다. 수 천명이 모이는 교회도 예외 없이 사람의 갈채를 받는 땅의 소산을 바치는 제사입니다. 기독교의 교리가 바로 그러한 것입니다. 교단이 주장하는 특수한 성경해석을 교리로 삼고 있습니다. 개혁교리도 예외가 되지 못합니다. 특히 "배우자가 간음을 한 경우 이혼할 수 있다"는 교리는 비 성경적인 교리이며, 이 잘못된 교리를 대부분의 교파가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잘못된 교리를 고치지 못할 때 '가인의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양의 첫 새끼: 우리가 어떻게 아벨의 제사를 드릴 수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순종의 제사입니다. 순종의 제사는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는 제사이며, 그리스도만을 바라본다는 것은, 교회의 가르침과 교리에 의존하지 않고, 모든 가르침이 성경적이냐 하는 것을 다짐하며 영생을 바라보는 신앙생활입니다. 아벨은 가인처럼 내가 노력해서 얻은 것에 의존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만이 나의 구주이시며, 또 말씀만이 우리를 구원으로 이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양의 첫 새끼'를 드리는 것이 구약 제사법의 명령임을(신 12:6, 14:23 ) 미리 예언한 것이며, 모든 구약의 제사 법은 믿는 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구원이 그리스도의 희생으로써만 이루어짐을 예언한 것입니다.

아벨은'양의 첫 새끼와 기름'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 모든 기름을 화목제 희생의 기름을 취한 것같이 취하여 단 위에 불살라 여호와께 향기롭게 할지니 제사장이 그를 위하여 속죄한 즉 그가 사함을 얻으리라"(레 4:31)

위의 명령은 화목제 제사법의 명령이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가 그리스도의 회생으로 "향기로운 제사"가 되었으며, 또 하나님께서 그 제사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렇지만 신약시대에 사는 우리가 어떻게 아벨과 같이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제사를 드릴 수 있는가? 라고 질문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벧전 2:5)

산 제사: 위의 두 구절이야말로 "너희는 아벨의 제사를 드리라"는 말씀을 새로운 방법으로 하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위의 구절에는 "산 제사", "산 돌"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교회는 위 구절의 뜻을 바로 가르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를 한가지 종교로써 사회복지를 위하여 봉사한다는 강령이 교리로서 제정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그리스도의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르치는 일이 희귀하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벧엘에 가서 범죄하며 길갈에 가서 죄를 더하며 아침마다 너희 희생을 삼 일마다 너희 십일조를 드리며 누룩 넣은 것을 불살라 수은제로 드리며 낙헌제를 소리내어 광포하려무나 이스라엘 자손들아 이것이 너희의 기뻐하는 바니라 이는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암4:4-5)

 

현대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자기 만족에 빠져 말씀은 저버린 교회의 상태입니다.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암 8:11)

말씀이 없기 때문에 기갈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더 이상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듣지 못하는 곳에서 어떻게 산 제사를 드리겠습니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 15:22)라고 하신 말씀을 현대 교회에게 외쳐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아벨의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약속의 자녀: 그러나 수수께끼가 아직 다 풀리지 않았습니다. 가인도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는 점입니다. 가인과 아벨이 드린 제물을 지적하여, 하나님께서 가인은 악하고, 아벨은 선하다고 하신 것은 아닙니다. 구약 제사 법에 곡식을 드리는 제사도 있기 때문입니다. 순종은 믿음이 있어야만 따르게됩니다. 다른 말로 한다면 가인은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 없었지만, 아벨은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아벨에게는 그 믿음을 주셨고, 가인에게는 그 믿음을 주시지 않았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이 결론이 자유의지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달갑게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인과 아벨의 제물의 차이만을 보고 자신의 신앙을 판단하기가 쉽습니다. 물론 인간의 지성으로도 그 잘,잘못을 판단할 수 있는 자료를 성경이 제시한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아벨의 제물과 행동은 하나님께서 아벨에게 믿음을 주셨다는 표징입니다.

아벨의 신앙은 로마서 9장에서 배울 수 있는 야곱의 신앙과 같은 신앙입니다.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라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는데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롬 9:8-13)

아벨의 구원이 이삭과 야곱의 경우와 다른 점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인과 아벨의 제사를 받으시기 훨씬 전에, 하나님께서 아벨은 사랑하시고, 가인은 미워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아벨과 같은 제사를 드릴 수 있습니까? 우리가 약속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습니까? 그렇다면, 아벨과 같은 의의 제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이 약속을 사도바울은 은혜라고 설명했습니다.

"그(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롬 1:5-6)

그러므로 의의 제사는 믿음으로 하는 제사이며, 믿음이 있으면 말씀에 순종하게 되고, 하나님께서 믿음을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인생은 나그네: 이상 공부에서 인생은 다 나그네길을 가고 있음을 배웁니다. 아벨은 양의 꼴을 찾아다니는 나그네였으며, 가인은 살인범으로 방랑하는 "유리 하는 자"였습니다. 이 두 형제가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를 대표합니다. 아벨은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는 나그네이며, 가인은 모든 것을 땅에 소망을 두고, 성을 쌓고 삽니다.

여러분께서 아벨의 후손임을 발견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대우가족, 2/2/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