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1월 뉴스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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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mily Radio 사경회,

교회시대의 끝장(終章)(X)

오늘은 Family Radio 사경회에서 공부한 성경말씀을 계속하여 소개하겠습니다.

지난달 공부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세 가지 절기를 예루살렘에 올라가 지킬 것을 명령하셨고, 이 절기 중에 유월절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상징하였으며, 오순절은 신약시대에 교회가 하나님의 사명을 받고 전도하여,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을 찾으시고 그들이 구원을 받는 일은 처음 열매를 하나님께 바치는 것임을 배웠습니다.

초막절(草幕節): 오늘 공부할 절기는 초막절 혹은 수장절(收藏節)입니다. 이 초막절에 대하여는 레위기 23장 33-44절과 민수기 29장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레위기 23장은 3절기인, 유월절, 오순절 그리고 초막절에 대하여 모두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이 절기들을 찾아보면;

1. 유대인 달력에 정월 14일 저녁이 유월절이며 다음날 정월 15일은 누룩 없는 떡을 먹는 무교절(無餃節)이며, 7일 동안 성회가 이루어집니다(레 23:4-14)

2. 77절은 유월절, 첫 이삭 한 단을 여호와께 드린 날부터 계수 하여 50일이 되는 날이 며 일곱 안식일을 보낸 다음날, 일요일입니다(레 23:15-22)

3. 장막절은 7월 14일에 시작하여 7일간의 절기 입니다마는 7월 1일도 안식일이며, 7월 10일은 속죄일이 됩니다(레 23:23-36).

 

이상의 세 절기를 비교하면, 세 절기간에는 현저하게 나타나는 서로 같은 점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는 절기의 축제 행사가 7일 동안 이루어 졌고, 77절(오순절)은 제 7일인 안식일을 일곱 번 지난 다음날이라는 점입니다. 숫자 7에 대한 하나님의 깊은 뜻이 성경에 있음을 저희들에게 암시합니다.

다음 유의할 점은 속죄일이 수장절, 초막절이 오기 몇 일 전을 성일(聖日)로 정해졌다는 점입니다. 속죄일은 말할 것도 없이 그리스도의 희생 즉 우리를 영원한 멸망으로 인도하는 죄를 대속하신 일에 대한 상징입니다. 그러므로 실제적인 유월절(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일)과, 실제적인 77절(사도들이 성령을 받고 전도사역을 시작한 일)이 바로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그 날에 이루어졌음을 볼 때에, 수장절의 절기도 유대인의 달력 7월 14일에 있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숫자 7을 거듭거듭 사용하신 일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숫자 7은 안식일을 지적하며, 그리스도께서 안식일의 주인이심을 선언하셨습니다(마 12:8). 말하자면 우리의 구원계획이 철두철미 그리스도의 계획에 의하여 이루어졌으며, 또한 끝까지 그리스도께서 홀로 이 계획을 진행하시고 완성하실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수장절이 7월 14일에 시작됩니다마는 7월 1일과, 7월 10일도 안식일이라고 하신 것은 다른 두 절기와 다른 점입니다. 그 뜻에 대한 성경공부는 다음으로 미루고, 지난달에 공부한 "이른 비, 늦은 비"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요약해 보겠습니다.

늦은 비: 늦은 비는 초막절 이전 짧은 기간에 내리시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입니다. 한가지 놀라운 사실은 곡식을 결실(結實)하는 "비"는 "인간의 구원이 말씀과 성령으로 이루어짐"을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인간역사에 절기가 있는 이유는 그 절기마다 하나님께 드리는 "첫 익은 열매"를 얻기 위한 것이며, 이 열매를 땅에서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늘에서 비가 내려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비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본적이 있는 줄 압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비가 오지 않을 때 그 안타까움을 하늘에 호소합니다. 성경에도 비가 오지 않아 하나님께 호소한 기록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악한 이스라엘 왕 아합(왕상 16:)과 그의 아내 이세벨의 이야기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아합 왕 때에 선지자 엘리야를 통하여 비를 내리지 않으시고, 여호와를 거역한 이스라엘을 벌하신 역사의 기록은(약 5:17) 멸망을 받을 21세기의 이스라엘(교회)의 상징입니다. 반면에 계절을 따라 택하신 백성들에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너희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신 11:14)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약 5:7)

이상 구절에서 "이른 비"는 하나님의 첫 열매인 택하신 백성들이 구원받는 과정임을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사도들이 예루살렘 다락방에서 시작한 복음 선교가 근 2000년을 계속하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복음 선교의 첫 열매(구원받은 자들)가 제단에 바쳐질 수 있는 여건은, 농부가 계절을 따라 씨를 뿌리고, 싹이 나면 그 곡식을 기르는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마는, 농부들의 노고가 하늘에서 내리는 비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음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이른 비를 내리시는 계절이 AD 33년 오순절에서 시작하여, 마지막 장막절을 맞이할 얼마 전까지임을 가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늦은 비에 대하여 성경말씀을 찾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이 늦은 비는 이른 비와는 대조적으로 하나님께서 짧은 기간에 내리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이 짧은 기간은 "큰 환난"의 기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기간에 사단이 잠시 놓이는 기간(계 20:3)입니다. 이 기간에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 교회가 심판을 받게됩니다 마는, 이 기간에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을 것을 또한 성경은 가르칩니다(계 7:9). 세계의 인구와, 또한 우리가 복음전도에 사용할 수 있는 전자(電子) 기구(器具)를 생각할 때, 이 기구를 사용하여 하나님께서 마지막 큰 환난 기간에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옛날과 같이 말을 타고 다니면서 60억이 넘는 세계인구에게 복음 전한다면, 수 백년을 가도 이 많은 사람들에게 일일이 복음을 전할 기회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Radio, TV, 그리고 Internet을 통하여 순식간에 복음이 수없이 많은 인구에게 전달이 됩니다. 요한계시록 7장 2-4절에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印)을 가지고"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의 종들, 즉 이마에 인 침을 받은 자들이 144,000임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일 후에 요한이 본 환상은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사방에서(세계적으로) 구원받음(계 7:1-9)을 가르칩니다.

성경에서 인을 친다고 하신 말씀은, 하나님의 분명하고 확실한 약속을 가르치며, 이 인 치심이 이스라엘 자손의 12 지파(支派)에게 있다고 함은, 야곱의 혈통을 받은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구원을 받은 모든 무리를 지적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이 그 후에 본 환상이 사단을 잠시 놓아 준 때, 즉 큰 환난 기간에 이루어짐을 요한계시록 9장 14절을 읽음으로 알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계속하여 이 큰 환난 기간에 일어나는 사건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구원받은 1/3: 요한계시록 8, 9, 10장에 1/3에 대하여 기록하였고, 이 1/3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당할 사건을 가르치며, 특히 참 믿는 자들이(1/3) "죽임을 당하니라"(계 9:15, 18)고 읽을 수 있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바이며(막 13:9, 마 10:17, 요 16:2), 요한계시록 11장 9절에 두 증인이 죽임을 당하고 그 시체가 거리에 내어버림을 받는 때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죽임을 당한다는 것은 비유이며, 요한복음 16장 2절은 이 죽임을 당하는 것이, 회당에서 출회(黜會)를 당하는 것으로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을 해석하면 참 믿는 자들이 더 이상 교단과 교회에서 환영을 받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쉽게 말해서 모든 교단과 교회는 자신들이 정한 교리와 유전이 있어 그 교리와 유전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 그 소속에서 출회를 당할 것입니다. 이 사실이야말로 요한계시록 13장 16-17절에 짐승의 "이마에 짐승의 인침을 받지 못하고는 사고 팔지 못한다"는 예언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고 판다는 말의 주석은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제물을 사고 파는 무리들을 몰아 내신 기록(요 2:)을 읽음으로써 쉽게 이해합니다. 하나님의 계명 중에 도덕적인 계명과, 택하신 백성들로 하여금 규례를 지켜 장차 있을 하나님의 변함없는 계획을 택하신 백성들로 하여금 기억하도록 하는 것임을 배운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처음 세상에 오실 때 유대인들이 유전과 관례를 지키는 일 때문에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한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똑같은 현상이 지금 일어나고 있습니다. 교파마다 주장하는 특별한 교리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성문화된 교리의 문서가 없다 하더라도 암암리에 그들에게는 그들의 전통과 관례가 있어 새로운 가르침을 생각해 볼 여유가 없습니다. 미국에는 "교회시대의 끝장"이라는 가르침에 반대하는 Website와 책들이 많이 나와 있습니다. 직장에서 저의 믿는 바를 잘 알고 있는 한 친구가 "Dangerous Airwaves"라는 책을 주었습니다. 이 책은 캠핑씨의 교회시대의 끝장이 되었다는 가르침을 반대하는 내용이며, 잘 알려져 있는 성경학자 James White의 저서입니다. 내용을 간단히 소개한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믿는 바는 이러 이러한 것이니, 이것과 다른 가르침은 잘못된 것이다"라고 한 것밖에 없습니다. 교회시대가 끝장에 이르렀다고 제시한 성경구절을 공부해 볼 의도는 전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앞으로 이 책의 내용을 몇 군데 소개하면서 교회시대의 끝장에 대하여 다시 성경 말씀을 공부할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늦은 비: 늦은 비에 대하여 공부하는 것에서 곁길로 나갔나 봅니다. 또 한가지 사실은, 성경에서 "늦은 비"를 말 할 때는 "이른 비"와 같이 말씀하셨다는 점입니다.

"여호와께서 너희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신 11:14)

"그러므로 단 비가 그쳐졌고 늦은 비가 없어졌느니라 그럴지라도 네가 창녀의 낯을 가졌음으로 수치를 알지 못하느니라"(렘 3:3)

"또 너희 마음으로 우리에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때를 따라 주시며 우리를 위하여 추수 기한을 정하시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자 말하지도 아니하니(렘 5:24)

"우리가 계속해서 주를 알고자 하면 그 때에 우리가 알게되리라 그분의 나아오심은 아침 같이 예비되어 있나니 그분께서는 비같이 곧 땅에 내리는 늦은 비와 이른 비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킹 제임스 흠정역: 호 6:3, 개역성경에는 "이른 비"가 빠져있음)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전과 같을 것이라"(욜 2:23)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약 5:7)

신명기 11장 14절에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구원받는 백성을 지적합니다.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시기 때문에 구원을 받는 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예정되어 있음을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이른 비와 늦은 비는 세상의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축복입니다. 죽을 인간이 살게되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른 비 늦은 비"를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는 이유를 예레미야 3장 2-3절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광야에 있는 아라바(아라비아) 사람 같아서 음란과 행악으로 이 땅을 더렵혔도다 그러므로 단 비가 그쳐졌고 늦은 비가 없어졌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아라비아 사람은 무엇을 잘못한 사람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고 세상사람입니다.

"음란과 행악"을 밥먹듯 하는 것이 세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버릴 때 인간은 창녀가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에는 이 아라비아에 시내산이 있음을 지적하였고, 이 "시내산에서 나와 종이 되게 하는 자니 곧 하갈이라"고 하셨습니다. 하갈을 이삭을 낳은 사라와 구별하셨고, 그는 율법의 자녀들의 어미이며, 사라는 약속의 자녀의 어미로 구분하셨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예레미야 3장 3절에서 "단비가 그쳐졌고 늦은 비가 없어 졌느니라"고 하신 것은 교회를 통하여 구원의 단비가 내리지 않음을 말씀하십니다.

갈라디아서 4장의 말씀은 교회를 잘 설명합니다. 아브라함의 집은 교회이며, 그 교회에 약속의 자녀 이삭이 있었으며, 또한 율법의 자녀 이스마엘이 있었습니다. 25-26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이 하가는 아리비아에 있는 시내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노릇하고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어머니라"

이 말씀은 하가의 자손들이 시내산에 속해 있으며, 또한 그들이 교회에 속해 있다(지금 있는 예루살렘 과 같은 데) 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까?

율법의 자녀와 약속의 자녀: 지금까지 우리가 배워온 바는 "하갈은 이스마엘의 어미였으며, 그러므로 그는 또한 아랍인들의 어미다"라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갈라디아서 4장은 교회 안에 구원받지 못한 무리를 지적하여 하가의 자식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에게 "단 비가 그쳐졌고 늦은 비가 없어 졌느니라"(렘 3:3)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예레미야 5장 24절에도 같은 내용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때를 따라 주시며 우리를 위하여 추수기한을 정하시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자 말하지도 아니하니"(렘 5:24)라고 한 것은 ""를 더 이상 교회에 내리시지 않으시는 이유입니다.

성경말씀을 인류에게 주신 것이지만, 대개의 인류는 말씀에 관심이 없습니다. 이스라엘을 선민으로 택하셨을 때 이방인들의 형편이 그러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성경을 쓰신 이유가 선민이었던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시작하였고, 그 모든 내용이 현대 교회에게 하신 말씀이 성경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한 이스라엘을 심판하셨습니다. 심판을 받은 이스라엘은 더 이상 약속의 자녀들이 아닙니다. 말씀을 떠난 현대교회는 더 이상 그리스도의 몸이 된 교회가 아닙니다. 이 교회에 더 이상 "늦은 비"를 내리시지 않으시겠다고 선언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교회가 말씀을 떠났다고 해서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좌절된 것이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위에서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말하는 구절 중 호세아 6장과 요엘 2장은 이 미쁘신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우리에게 약속하십니다. 이 약속이 교회를 통하여 이루어지지 않음을 다음 달에 공부하겠습니다.

이대우 드림. 11/9/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