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께 드립니다. - 교회시대의 끝장 (VIII)-

 

한번 보내주신 서신에 대하여 두고두고 비평을 한다고 하실 까봐 걱정을 하면서 편지를 씁니다. 사실은 목사님의 편지는 개혁교회 목사님들을 대표한다고 믿으며, 또한 "교회시대의 끝장"을 공부하는데 있어 기본적인 문제에 대하여 말씀하심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 자신이 이 문제에 대하여 충분한 이해가 있어야 된다고 믿고, 몇 가지 과제를 더 선택하여 공부를 계속하겠습니다. 오늘은 교회가 음녀가 되었음을 공부하겠습니다.

목사님 편지 중에서: "교회의 존재가 없어졌으니 나와라 하는 말보다는, 교회가 타락했으니 바른 교회를 이루라 하는 말이 더 어울릴 듯 합니다. 이런 전제하에 바른 교회를 이루기 위하여 나오는 일도 가능하겠고, 아니면 그 속에서 작은 개혁의 씨앗 노릇 하는 것도 가능하겠습니다."

성경은 말세에 대한 현상을 집중적으로 가르칩니다. 그러나 그 내용에 대한 이해에 있어 "하나님의 경고가 내게 대한 것이 아니고 남의 얘기다"라고 생각하는데서 문제가 생깁니다. "모든 교회가 잘못하고 있지만, 나는 아직도 진리대로 목회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번역될 때, 번역자의 감정이 개입되어 있음을 발견합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과격하게 말씀하신 데 대하여 그 표현을 훨씬 부드럽게 번역한 경우가 여러 번 있습니다. 히브리어 "Zamah"를 개역성경이 어떻게 번역했는지 몇 군데 찾아보겠습니다.

"그들은 기생이나 부정한 여인을 취하지 말 것이며, 이혼 당한 여인을 취하지 말지니 이는 그가 여호와께 거룩함이니라"(레 21:7)

"그 일이 참되어 그 처녀에게 처녀인 표적이 없거든 처녀를 그 아비 집 문에서 끌어내고 그 성읍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죽일지니 이는 그가 그 아비 집에서 창기의 행동을 하여 이스라엘 중에서 악을 행하였음이라 너는 이와 같이 하여 너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신 22:20-21)

레위기 21장 7절에서 "그들"은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을 말합니다. 아론은 레위 족속이며, 레위 족속은 구원받은 자들을 상징하기도 합니다(벧전 2:9). "기생이나 부정한 여인"은 영어로 "Harlot" 이며, 한글 번역은 '매춘부' 혹은 '갈보'로 번역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창기의 활동'도 '매춘부 노릇' 혹은 '갈보 노릇'이라고 번역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명기 22장에서 말한 처녀는 물론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이 모세의 지도하에 지낼 때 이스라엘의 처녀들에게 경고한 내용입니다만, 이것은 또한 하나님의 자녀가 된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와 약혼 중에 있음을 상징해서 말합니다.

구약의 법은 처녀가 행음 했을 때 반드시 돌에 맞아 죽게 되어있습니다. 만일 지금 온 세상이 한 나라가 되어 구약의 법을 적용한다면, 돌로 쳐 죽임을 당할 여인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미국 고등학교 학생들의 통계를 보면, 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태반이상이 성 경험을 한다고 합니다. 구약에서 읽는 하나님의 법과 전혀 관계가 없는 얘기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말세를 가리켜 '음란한 세대'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말세의 징조의 척도로서 '음란한 세상'을 예수님께서 지적하셨습니다(마 12:39, 16:4). 최근 신문 보도에 의하면, 카톨릭 교회 신부들에게 피해를 받은 수많은 남자들이 고소를 제기 했고, 카톨릭 교단은 수천만 불의 보상금을 지불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정말 남의 일같이 생각됩니까?---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세의 한 큰 징조를 보여주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뉴스보도에 의하면, 카톨릭 신부의 50%가 동성애자라고 합니다. 신부 중 둘의 하나가 교인들 중에 젊은 십대의 남성들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구약 법에 의하면 이들은 다 돌로 쳐 죽임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혼녀로 생각하시는 믿는 자들에게 경고하십니다. 교회가 음녀가 되었다고 하십니다. 물론 교회도 목사자신이 이혼도하고, 또 재혼의 주례를 시행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됩니다. 이것 역시 교회가 음녀가 되었다는 한 증거이며, 교회가 음녀가 되었다는 더 큰 증거로서는 "말씀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인 성경을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근본으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하여 현대교회를 음녀로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또 천사가 내게 말하되 네가 본바 음녀의 앉은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계 17:15)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의 손에 갚으셨도다 하고"(계 19:2)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음행을 회개하고자 아니하는 도다(계 2:21)

그리고 이와 같이 행음하는 음녀들을 "가증한 자"라고 했습니다(겔 16:25, 50, 58, 23:36). 이 가증한 음녀들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마 24:15) 산으로 도망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거룩한 곳"이 어디입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교회입니다. 이 교회가 음녀에 의하여 점령을 당한 것입니다. 이 사실에 대하여는 요한계시록에(계 11:8) 하나님께서 예루살렘(교회)을 소돔이나 애굽으로 지적하신 것이 증명됩니다.

예루살렘인 교회가 음녀에 의하여 점령을 당했기 때문에 교회는 더 이상 거룩할 수 없고, 소돔과 애굽 왕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사람이 행음을 하였다"라는 일이 남의 얘기일 때는 그렇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음행자가 내 딸이다"라고 한다면 문제는 더 심각해지고, 또한 어떤 남자에게서 '네 아내는 행음하는 자다'라고 들었을 때는 잠을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자신의 질투심을 참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현대 교회를 "음녀"라고 부르심을 누가 부정하겠습니까?

구약의 예언서에는 거듭거듭 이스라엘을 가리켜 행음하는 자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이스라엘을 아내로 삼은 여호와는 "질투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나 1:2)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에게 하신 말씀이 역사적으로 이스라엘만을 두고 하신 말씀이겠습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 말씀은 약속의 자녀, 이스라엘인인(롬 9:6) 우리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이 사실을 성경 말씀을 찾아 증명하기 전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분노하신 기록을 몇 군데만 찾아보겠습니다.

"하체가 큰 네 이웃 나라 애굽 사람과도 행음하되 심히 음란히 하여 내 노를 격동하였도다"(겔 16:26)

"네가 음욕이 차지 아니하여 또 앗수르 사람과 행음하고 그들과 행음하고도 오히려 부족히 여겨 장사하는 땅 갈대아에까지 심히 행음하되 오히려 족한 줄을 알지 못하였느니라"(겔 16:28-29)

"오홀라(이스라엘)가 내게 속하였을 때에 행음하여 그 연애하는 자 곧 그 이웃 앗수르 사람을 사모하였나니 그들은 다 자색 옷을 입은 방백과 감독이요 준수한 소년, 말 타는 자들이라 그가 앗수르 중에 잘 생긴 그 모든 자들과 행음하고 누구를 연애하든지 그들의 모든 우상으로 스스로 더럽혔으며"(겔 23:5-7)

위의 구절들이 역사적인 기록 외에는 다른 뜻이 없다고 한다면, 위의 기록은 남의 얘기가 됩니다. 이 얘기가 '그리스도를 탄생하게 한 이스라엘의 역사이니 여러 가지 교훈이 있고, 본을 받을 일과, 본을 받아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라고 한다면, 그 심중함이 친구나 친척의 일을 걱정하는 정도가 될 것입니다. 신학의 영역이 남의 일을 걱정하는 정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의 역사적 기록을 보고, 현대 교회를 잘 목회하자는 것이 신학의 공부라면 무엇인가 아직도 미흡한 점이 있다고 봅니다. 목사님이 원하시는 대로 잘못된 교회를 다시 세우는 경우, 그 교회가 무엇인가 나아질 점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근본적인 교회의 사명을 모르고서는 이스라엘과 똑 같은 길을 걸어가게 될 것입니다.

"교회가 타락했으니 바른 교회를 이루라"고 하신 말씀이 어떻게 적용이 되겠습니까?

오늘 출장 중에 번화한 시가에 자리잡은 큰 교회에 들렸습니다. 높이 세운 간판에는 십자가와 함께 교회의 이름이 뚜렷하게 보였고, 밤에도 그 번화가를 운전하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도록 교회의 간판이 잘 장치되어 있었습니다. 예상과 같이,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교인들이 교회 안에 있었습니다. 교인 한 사람과 간단한 대화를 나누고 교회의 신조 (Statements of Church)를 얻어 가지고 나왔습니다.

이교회의 이름은"The Rock Family Worship Center"이며 주일 예배에는 1,000명 정도가 출석을 한다고 합니다. 교회의 강령을 보면, 삼위일체를 믿으며, 성경만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으며, 중생을 믿으며, 등등 그럴듯한 교회의 강령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강령 중에 다음과 같은 구절을 발견합니다.

"관용과 균형"(빌 4:5): 우리는 모든 진리는 성경 구절들을 비교하여 그 균형을 이루어야함을 믿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극단적인 광신(fanaticism)을 피하며, 우리 일상 신앙생활에서 관용을 보여야 함을 믿는다.

이와 같은 교리는 사람의 생각으로 보면 가장 건실한 기독교인의 길이며 교인들에게 긍정이 가는 줄 알고 가르치지만, 성경적일 수는 없습니다. 성경적이 아닐 때 하나님 앞에서는 가증한 것이 됩니다. 교회의 교리는 늘 검토하며 잘못된 것을 시정해 나가기 전에는 또 다른 비 성경적인 교리가 꼬리를 물고 따라오게 됩니다. 제가 방문한 교회는 카리스마파의 교회였습니다. 말세에 가장 현저한 징조가 카리스마적 활동이 아닙니까?

세상의 교회가 교리를 세운 후 개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위엄을 알지 못하는 까닭입니다. 잘못된 교리를 발견할 때 시정해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그 중요함의 차이를 우리가 가려서는 안됩니다. 순종하는 신앙을 갖기에 노력할 따름입니다.

저희들이 아직도 속해 있는 전통장로 교회(OPC)도 잘못된 교리를 시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교파는 세상에 남아있는 교파 중에서 아직도 개혁적이며, 성경적이다 라고 주장합니다. 다른 교파의 교리에다 비교할 때 저도 그것을 시인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실 때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것은 가증한 일이며, 그 중요함에 차이가 있을 수 없습니다. 목사님들이 교역을 시작할 때, 교파교리에 충성할 것을 선서합니다. 만일 잘못된 교리에 충성할 것을 선서한다면 하나님께 거짓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것은 곧 가증한 일입니다.

장로교 교리가 수백 년을 가르쳐온 이혼에 대한 교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배우자가 행음 했을 때 이혼할 수 있다"는 교리로 말미암아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되게 배웠을 것입니다. 이 잘못된 교리를 교정하고 선포하기 전에는 개혁교회라 할지라도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부정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목사님께서 새로운 교회를 시작할 것이라는 짐작을 저희들은 하고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교리의 오류를 인정하고, 시정하고, 선포하고, 또한 그리스도의 참 뜻을 행하실 수 있는 용기를 하나님께서 주실 것을 믿습니다.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산으로 도망할 지어다"라고 하신 말씀에 순종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대우 드림, 4/13/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