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1월 뉴스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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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시대의 끝장(III) - 예루살렘의 멸망 -

추수할 때: 가을이 되면 농부들은 겨울이 오기 전에 부지런히 추수를 해야 합니다. 겨울이 되면 그 곡식들이 창고에 저장되어 있기 마련입니다. 지금이 추수할 때냐? 라고 묻는 농부들은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내가 추수할 준비가 되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성경은 세상의 마지막 기간을 추수할 때라고 하였고, 이 기간을 "마지막 대 환난"이라고 했습니다. 이 마지막 대 환난이 지난 순간에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게 됩니다.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마 24:21)

마태복음 24장 29절에 또 말씀하시기를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다시 말하면 "교회 시대의 끝장"이라는 제목은 곧"말세가 왔다"라는 뜻으로 표현됩니다.

말세의 징조를 세상에서 찾고, 마지막 대환난의 징조도 세상에서 일어날 엄청난 사건을 말하고 있습니다. 뉴욕 Trade Center를 자살 폭격한 9월 11일의 엄청난 사건이 "마지막 대환난"의 징조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미국이 이제 시작한 Afghan 전쟁과, Anthrax의 바이오 전쟁이 또한 "마지막 대환난"의 징조라고 합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산당(山堂)과 하나님의 심판: 그러나 농부가 추수할 때를 자연적으로 알 듯이, 믿는 자들은 교회의 사정을 관찰함으로써 "말세의 징조"를 알게됩니다. 이 말세의 징조에 대하여 성경 여러 곳에 기록되어있으며, 특히 마태복음 24장, 마가복음 13장, 요한계시록 13장, 다니엘 7-8장에는 대 환난 기간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대환난은 교회가 심판을 받는 기간이며, 그 심판을 받는 이유를 "산당(山堂)"을 지었기 때문이라고 하습니다.

"내가 너희의 산당을 헐며 너희의 태양 주상을 찍어 넘기며 너희 시체를 파상한 우상 위에 던지고 내 마음이 너희를 싫어 할 것이며"(레 26:30)

"이르시기를 이스라엘 산들아 주 여호와의 말씀을 들어라 주 여호와께서 산과 작은 산과 시내와 골짜기를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나 곧 내가 칼로 너희에게 임하게 하여 너희 산당을 멸하리니 너희 제단이 황무하고 태양상이 훼파될 것이며 내가 또 너희 중에서 살육을 당하여 너희 우상 앞에 엎드러지게 할 것이라"(겔 6:3-4)

 

인간의 역사나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을 거역한 기록이며, 인간의 죄악으로 인하여 그 시대의 종말을 보게됩니다. 노아의 시대와, 아브라함의 시대와, 이스라엘의 광야의 역사와 그리고 유대와 이스라엘 왕국의 역사는, 세상의 종말이 어떻게 올 것인가에 대하여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세상 종말에는 같은 사항이 반복될 것을 가르칩니다.

그 중에 이스라엘 왕국의 멸망에 대한 기록은 우리에게 특별히 중요한 교훈이며, 현대교회가 걸어가고 있는 과정을 일대일로 비교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예레미야의 예언서가 바로 그것입니다.

다니엘에게 말한 바: 그런데 근 2,000년 신약 시대에 있어 이 마지막 대 환난에 대하여 교회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천년 왕국 등 해괴망측한 소설 같은 얘기를 말하는 교역자들이 수다합니다 마는---. 성경학자들이 수없이 많은 글을 쓰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이 마지막 대 환난을 이해하고 발표한 일이 없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분명하게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데도 말입니다.

성경의 이해는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직접 듣는 일이며, 성경을 이해하는 능력을 하나님께서 주시기 전에는 가질 수 없음을 또한 가르칩니다. 이 사실을 선지자 다니엘을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다니엘에게 말한 바를 찾아보아라"고 하신 말씀이 마태복음 24장 15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은 보거든"이라고 하심으로, 이 마지막 대 환난을 이해하는 단서가 다니엘 서에 있음을 지적하셨습니다. 바로 이 구절이 다니엘 12장 11절이며 다음과 같이 읽을 수 있습니다.

"매일 드리는 제사를 페하며 멸망케 할 미운 물건을 세울 때부터 1,290일을 지낼 것이요"라고 하셨습니다. 이 구절을 이해한 성경학자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역대의 성경학자들은 구원에 대한 성경의 근본적 교리를 찾고 가르치는데 노력해 왔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되도록 인도하신 것입니다.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단12:4)

지식이 더하리라: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예언하신 이 내용은, 세상의 마지막 때까지는 종말에 일어날 사건에 대하여 아무도 이해할 필요가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 구절에 "지식이 더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께서 지금 세상에 지식이 얼마나 많이 발전되었는가를 생각하십니까? 전자시대를 생각해 보십시오. 1960년대에 처음으로 컴퓨터를 대학에서 사용했던 생각을 합니다. 그 때 사용했던 컴퓨터는 이제 박물관에 골동품으로 전시되고 있습니다. 50년 전에 사용하던 전자기구가 천년이 된 골동품처럼 설명이 됩니다. 3년 전에 나온 컴퓨터는 상업용으로는 더 이상 쓸 수 없다고 합니다. "지식이 더하리라"고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음을 눈으로 볼 수 있습니다.

모든 분야를 일일이 따져 보면 예외 없이 "지식이 더하리라"고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음을 알게됩니다.

그러나 다니엘에게 말씀하신 지식은 과학, 공학, 사회학 등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지식"도 말씀하심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누구 나가 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 중에서 그 내용을 알게 하시고, 택하심을 입은 자들이 하나님 명령에 순종하게 하십니다.

다니엘 12장 11절의 "멸망케 할 미운 물건"(abomination that maketh desolate)은 바로 마태복음 24장에 예수님께서 "멸망의 가증한 것"이라고 기록하신 것과 동일하며, 이 미운 물건이 숫자 1,290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이 연결은 마태복음 24장 21절에 "큰 환난"이라는 용어[great tribulation or affliction: thlipsis(희랍어)]가 성경에 네 번 씌어졌음을 찾아봄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 기록은 사도행전 7장 11절에서 발견하며, 야곱이 애굽에 내려간 사건을 지적합니다.

"그 때에 애굽과 가나안 온 땅에 흉년 들어 큰 환난이 있을 새 우리 조상들이 양식이 없는지라 야곱이 애굽에 곡식있다는 말을 듣고 먼저 우리 조상을 보내고"라고 읽을 수 있습니다.

말세와 흉년" 이 구절에서 중요한 내용은 "흉년 들어"라고 한 것이며, 말세의 대환난도 "말씀의 흉년"으로 지적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성경이 마지막 대환난을 "큰 환난"으로 지적하셨고, 이것은 아모스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한 바와 같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하나님 자신)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암 8:11-12)라고 하신 데서 단서를 얻을 수 있습니다.

1,877 BC에 야곱이 약속의 땅 가나안을 떠나 사단의 왕국을 상징하는 애굽에 간 기록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 성경 역사의 연대는 캠핑(Camping)씨의 성경 연구, "Adam when?"이라는 책에서 볼 수 있으며, 이 공부에서 세상의 창조가 11,013 BC에 이루어졌음을 밝혔습니다. 성경역사의 정확한 연대를 역대의 성경학자들이 연구한 바가 없으며, 캠핑씨의 성경연구는 결코 우연히 된 것이 아님을 믿게 됩니다. 다니엘 12장에 말씀하신 바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단 12:3)고 하신 말씀이 이루어진 것임을 믿습니다. 중요한 성경역사의 연대를 몇 가지 적어 보겠습니다.

11,013 BC : 세상의 창조와, 아담의 창조(창 5:1-2)

5,590 BC : 노아의 출생(창 5:28-29)

4,990 BC : 노아의 홍수(나이 600세) (창 7:6)

2,167 BC : 아브라함의 출생(창 11:26, 32, 12:4, 행 7:3-4)

1,877 BC : 야곱이 애굽에 들어감(나이 130세)(창 47:9)

1,447 BC : 출애굽(출 12:40)

1,007 BC : 다윗 왕이 왕위에 오름

931 BC : 왕국이 유대와 이스라엘로 분열(왕상 12: )

587 BC :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 당함. 성전이 파괴됨

7 BC : 그리스도의 탄생

큰 환난이 일어난 해: 위에 기록한 연대에서, 야곱이 애굽에 들어간 이유가 "흉년들어 큰 환난이 있을 새" 라고 되어 있고, 이 해부터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당하고 성전이 파괴된 해 587 BC 까지가 1,290년입니다. 물론 이스라엘 역사에서 이스라엘의 성전이 파괴되고 불살라진 사건보다 더 큰 환난은 없었습니다.

야곱이 1,877 BC에 약속의 땅을 버리고 애굽으로 내려간 역사가 창세기 42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야곱이 열(10)아들을 애굽에 보낸 것은 "우리가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2절)고 하였으며, 애굽에 내려간 이 10형제가 동생 요셉을 만나게 됩니다. 요셉은 자기가 애굽에 팔려온 것이 하나님의 계획임을(창 45:8) 형들에게 알립니다. 창세기 46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말씀하시기를

"---야곱아 야곱아 하시는지라 야곱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비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창 46:2-3)고

하심으로 야곱이 애굽에 간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었음을 가르칩니다.

가나안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땅(창 17:8)이였습니다. 이 약속하신 땅에서 떠나도록 만든 것이 하나님이신 것을 배우게 됩니다. 이 사건과 동일한 사건이 1,290년 후 587 BC에 일어났습니다. 사실상 1,877 BC에 야곱과 함께 애굽에 내려간 전 가족이 70명(창 46:27)정도였기 때문에, 그들의 여정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587 BC에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 떠나야했던 일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나,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 포기하고 바벨론의 포로가 되는 것도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임을 알게됩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또 이 백성에게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신다 하라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두었노니 이 성에 거주하는 자는 칼과 기근과 염병에 죽으려니와 너희를 에운 갈대아인에게 나가서 항복하는 자는 살리니 그의 생명은 노략한 것같이 얻으리라"(렘 21:8-9)

바벨론에게 항복하라: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버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고 제사 드리는 성전도 포기하고, 바벨론(갈대아)에게 항복하고, 포로가 될 것을 명령하신 것입니다. 참으로 이해하기가 어려운 말씀입니다.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두었노니"라고 하신 것은, 포로가 되면 살고 예루살렘에 남아있으면 죽으리라고 하신 말씀을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하신 것입니다. 사실상 이러한 하나님의 명령은 이스라엘에게는 믿기 어려웠으며, 오히려 예레미야에게는 왕과, 방백들과, 백성들에게 거짓 선지자로 천대를 받은 것을 예레미야 서에서 누차 읽을 수 있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에는 예레미야와 반대되는 예언을 하던 선지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남아 있으면 하나님께서 구원하신다"고 가르치는 거짓 선지자들을 하나님께서 가리켜,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그들은 너희에게 헛된 것을 가르치나니 그들의 말한 묵시는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라"(렘 23:16)고 하셨습니다. 왕과 방백들이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가나안 땅은 아브라함 때부터 약속하신 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고, 다윗과 솔로몬 왕을 통하여 아름다운 성전을 예루살렘에 짓고 매일같이 번제를 드리든 데가 아니었을까요?

하나님의 선민인 이스라엘을 보호하시겠다고 하신 약속은 어떻게 되고, 예루살렘 성전등대에는 끊임없이 불을 켜 언제나 꺼지지 않도록 명령하신 그 명령은 어떻게 되고, "바벨론에 항복하고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가라"고 명령하셨을까요? 이 명령을 단 한번 말씀하신 것이 아니고,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유다 왕 시드기야와 그 방백들과 예루살렘의 남은 자로서 이 땅에 남아 있는 자와 애굽 땅에 거하는 자들을 이 악하여 먹을 수 없는 악한 무화과같이 버리되"(렘 24:8)라고 거듭 말씀하셨습니다.

예레미야는 현대의 선지자: 하나님께서 왜 이러한 기록을 성경에 두셨겠습니까? 이것이 이스라엘의 역사라고만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얘기가 역사만을 말하는 것이라면, 이 내용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일부를 만드실 필요가 있었겠습니까? 이 말씀을 깨닫고 우리가 적용하도록 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예레미야 25장 12절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70년이 마치면 내가 바벨론 왕과 그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인하여 벌하여 영영히 황무케 하되"라고 하셨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영영히" 라고 하신 말씀은 모두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고 구원받은 자들에 대한 구원 계획을 지적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에 올 마지막 대환난을 70년으로 상징하셨고, 그 70년이 지난 후에 인간이 영원한 지옥에 형벌을 받을 마지막 심판이 올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예레미야 27장 8-9절에서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섬기지 아니하는 국민이나 그 목으로 바벨론 왕의 멍에를 메지 아니하는 백성은 내가 그의 손으로 진멸시키기까지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벌하리라 너희는 너희 선지자나 너희 복술이나 너희 꿈꾸는 자나 너희 술사나 너희 요술객이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바벨론 왕을 섬기지 아니하리라 하여도 듣지 말라"

예루살렘을 떠나라: 이스라엘이 바벨론에게 멸망당한 때와 같이, 말세에는 진리와 비 진리를 분간하기가 참으로 어려운 때입니다. "진노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말을 듣는 것 보다, "하나님은 사랑이다"라는 구호가 가슴에 잘 와 닿습니다. "교회의 사명은 끝을 보았으니, 교회를 떠나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이해하기가 어려운 때가 되었습니다. 예레미야서의 기록을 보면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왕과, 방백들과, 백성들에게 전혀 인기가 없는 선지자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기 있는 설교를 찾아다녀서는, "교회시대의 끝장"이라는 성경의 진리를 들을 기회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거듭 경고하시기를 "내 백성을 미혹하는 자를 내가 치리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으며"(렘 14:14, 23:32)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난 후, 이스라엘은 두 가지 종류의 백성으로 나뉘어집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바벨론 국에 항복하고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잡혀간 군중과, "하나님께서 자기의 성전을 보호하시고 예루살렘을 보호하신다"라고 예언한 거짓 선지자들을 따라 예루살렘에 남게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하여 그 기록을 읽을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남아있던 군중에 대하여 계속 예레미야서를 공부해 보겠습니다. 특히 예레미야서는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백성들에 대한 기록이 상반을 차지합니다.

"여호와께서 다윗의 위에 앉은 왕과 이 성에 거하는 모든 백성 곧 너희와 함께 포로되어 가지 아니한 너의 형제에게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칼과 기근과 염병을 그들에게 보내어 그들로 악하여 먹을 수 없는 악한 무화과 같게 하겠고"(렘 29:16-17)라 하셨고,

19절에는 그 재앙의 이유가 "나 여호와의 말을 듣지 아니하여"라고 하셨습니다.

예레미야 30장 24절에 우리가 유의해야 할 말씀이 또 있습니다.

"나 여호와의 진노는 내 마음의 뜻한 바를 행하여 이루기까지는 쉬지 아니하나니 너희가(구원 받지 못한 자) 말일(末日)에 그것을 깨달으리라"(렘 30:24)

끝까지 숨겨질 종말에 대한 비밀: 이 구절에서 말일이 언제이겠습니까? 세상의 종말이 이르기까지 구원받지 못한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진리를 믿고 깨닫는 능력을 주시지 않을 것을 선언하셨습니다. 우리는 오로지 하나님께 나아가 말씀을 이해하는 능력을 주시도록 애걸할 수밖에 없습니다.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가지 않고 예루살렘에 남아있는 백성에게 다시 말씀하시기를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렘 31:32)고 읽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아내로 택하시고 사랑하셨음을 지적하며, 이스라엘은 아내의 구실을 전혀 하지 못했음을 말씀하십니다.

예레미야 32장에는 선지자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했기 때문에 유대 왕의 궁중(宮中)에 있는 시위대 뜰에 갇혔던 기록이 있습니다. 그 뿐입니까? 시드기야 왕은 예레미야를 거짓 선지자로 몰아 진흙 구덩이에 몰아 넣지 않았습니까?

예레미야 39장 10절은 예루살렘에 남아있는 빈민들이 잘 된 것으로 보이는 기록입니다.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아무 소유가 없는 빈민을 유다 땅에 남겨두고 그 날에 포도원과 밭을 그들에게 주었더라"고 한 12절의 기록은, 예루살렘을 점령한 바벨론이 이스라엘의 복지를 보장한 듯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41장에는 예루살렘에 남아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침내 예레미야를 하나님이 임명하신 선지자임을 인정하고 그에게 나옵니다.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아와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고 이 남아 있는 모든 자를 위하여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소서 당신이 목도하거니와 우리는 많은 중에서 조금만 남았아오니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의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보이시기를 원하나이다"(렘 42:1-3)

 

이 구절에서 유의할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당신의 하나님"이라고 부른 점입니다. 그들이 이미 하나님 명령에 불순종한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잘못된 길을 행여나 하나님께서 묵과해 주실까 하는 기대를 가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말세를 당한 교회의 처사입니다. 하나님 명령에 대한 순종을 배우기 전에 무엇인가 내가 믿고 행하는 일이 하나님의 인정을 받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남은 백성들의 말로: 예루살렘에 남은 백성들이 여호와의 목소리가 그들에게 좋거나 좋지 아니하거나 청종하겠다고 하면서 예레미야에게 나옵니다(6절). 예레미야는 이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 후 10일 후에 여호와께서 남은 백성들의 간청을 들으심을 발표합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 가는 것을 금하셨습니다(16절). 그러나 결국 이스라엘은 다시 예레미야를 거짓 선지자로 부르고(렘 43:2) 그들이 애굽으로 가기를 결정합니다. 말할 것도 없이 애굽에서 그들의 종말을 당하고 멸망을 받았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지적하신 바 잘못된 길을 가면서, 계속하여 자기의 욕심을 구할 때,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는 것 같이 됩니다. 이것은 마치 민수기 22장에서 읽을 수 있는 선지자 발람의 경우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의 적이였던 모압국의 왕 발락이 발람에게 뇌물을 주고 이스라엘을 저주하기를 요청합니다. 발람은 하나님께 기도한 결과 발락의 요청을 몇 번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발락 왕의 끈덕진 요구 때문에 발람은 다시 하나님께 기도했고, 요압과 함께 전쟁에 나가는 허락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습니다. 그러나 결국 발람은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대신에 축복을 하게 됩니다.

예레미야 42장의 경우도 발람의 경우와 같습니다.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이스라엘은 이미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자기 자신들의 길을 가고 있으면서, 그들의 불순종을 변명하기 위하여 예레미야를 찾아왔었고, 결국은 그들은 자기들의 계획한대로 애굽으로 가서 전멸을 당합니다.

이 반면에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해서 바빌론으로 포로가 되어 간 이스라엘은, 바벨론 왕국의 보호를 받은 기록을 우리는 읽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포로가 되어, 그렇게도 아름다운 성전을 고향에 두고, 매일 같이 드리던 번제를 더 이상 드릴 수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호하셨습니다. 그 현저한 증거는 다니엘 서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다니엘이 사자 굴에서 살아 나온 얘기이며(단 6:), 또 풀무 불에서 타지 않고 살아 나온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얘기 등이 증명합니다(단 3:).

 

교회시대의 끝장: 이상과 같이, 예루살렘의 멸망을 중심으로 한 이스라엘의 마지막 역사가, 역사로서만 씌어진 것이 아니고, 말세를 당한 현재 그리스도의 이름을 내세우는 교회 시대의 끝장을 지적함을 우리는 배우게 됩니다.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우리는 이미 보았습니다. 이 교회를 떠나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떠나지 못할 때 교회와 함께 멸망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역사는 신약 교회가 걸어갈 사건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레미야를 처음 부르실 때에 말씀 하셨습니다. "내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여러분께서 그 열방에서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안에 있는 물건을 가질러 내려가지 말며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질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그날에는 아이 벤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마 24:16-19)

 

위의 구절은 마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예루살렘을 떠나 포로가 되어 바빌론으로 갈 것을 명령하신 것과 같이, 신약의 이스라엘인 여러분에게 교회 시대의 끝장을 알리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아닙니까?

다음 달에는 이 구절을 중심으로 한 말씀을 공부하고,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못하는 교회에 대한 성경의 예언을 공부할 것이며, 우리가 처할 바를 더 자세히 공부할 계획입니다.

3분의 1: 이 편지를 끝맺기 전에 성경에 나타나는 3분의 1에 대한 구절을 몇 군대 찾아보겠습니다.

1/3이 구원받은 백성을 상징하는 성경 구절이 몇 군대 있습니다(슥 13:8, 왕하 1:5~16) 이와 마찬가지로 성경 역사에서 사건의 연대를 공부할 때, 1/3의 관계를 볼 수 있게 됩니다. 이 관계는 다니엘 12장 11절을 이해하는데 단서가 됩니다.

예를 들면 1,877 BC에 야곱이 애굽에 내려갔고, 이스라엘이 430년을 애굽에서 살다가 출애굽 했습니다. 그 다음 860(430+430)년 후인 587 BC에 예루살렘이 멸망을 받았습니다.

이와 같이 1,877 BC에 야곱이 애굽에 내려간 해부터 1,290년 후인 587 BC에 예루살렘이 멸망당했습니다. 587 BC에서 2,580(1,290+1,290)년은 1,994 AD가 됩니다.

아무쪼록 여러분께서 성경 말씀을 깊이 묵상하시기를 원하면서 이 편지를 마감합니다.

이대우 가족 드림, 11/17/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