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2월 뉴스레터

이대우 가족, ALM Ministry

6694 Palo Verde Pl.

Rancho Cucamonga, CA 91739

Phone: 909-803-0491

여러분께 드립니다.


  지난해 성탄절과 금년 설날은 저희들 식구가 모여서 즐겁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Sweden에서 둘째 딸들의 식구도 다 함께 모이고, Temple City에 사는 딸의 식구가 다 와서 모이고 보니 갑자기 가장이 된 흐뭇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식구가 다 모여서 주일 예배를 드릴 수 있었던 것은 말 할 수 없이 기쁜 일이었습니다. 예배에 참석한 각자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었지만 성경말씀을 배우는 예배시간에 각기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모습들이 대견하게 생각되었습니다.

  둘째 사위는 고고학에 조회가 있어 노아의 홍수가 실제로 있었다는 긍정적인 대화의 친구가 되었고, 우리가 경영하는 복음회가 “성경을 연구하는 모임이다”라는 인식을 줄 수 있었던 것도 반가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상 종말의 날짜가 성경에 기록되었고, “그 날이 2011년 5월 21일이다” 라는 가르침에는 선뜻 긍정적인 답변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로서는 다만 전도자로써 할 일을 한 것임을 다시 기억합니다.

  

  성경에 숨겨 두셨던 세상종말에 대한 기록을 때가 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깨닫도록 인도하심을 우리는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동안 성경에 숨겨두신 것은 종말에 대한 날짜 뿐 아니라, 우리가 구원에 이르는 과정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진행하시는가 하는 가르침입니다.


내 믿음이 나를 구원하는가?:  교회에서 배운 구원의 과정은,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하시어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믿음을 주시고 그 믿음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는다! 는 가르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구원에 이르는 믿음”에 대하여 성경을 연구하고 교리를 세워 가르쳐 왔습니다. 말하자면 믿음 없이는 구원을 바랄 수 없다는 결론입니다. 그러나 그 믿음에 문제가 있습니다. 사람마다 각각 다른 믿음을 가지고 있으며, 내 믿음이 성경적이다 라는 주장을 각자가 하게 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히 11:1)라고 하신 뜻을 생각하게 됩니다. 기생 라합이 믿었던 실상은 여리고의 멸망 이였고, 니느웨 사람들의 믿음도 멸망이라는 실상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그들의 믿음을 성경말씀과 비교해서 공부할 기회도, 여유도 없었던 것입니다.

  사실상 지금도 인간의 구원은 같은 방법으로 이루어짐을 알게 됩니다.

믿음은 우리의 행위이며(살전 1:3), 행위로서는 우리가 구원을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엡 3:5). 인간 구원에 대해서는 100% 하나님께 맡겨야하며, 우리는 성경에서 발견한 진리를 서슴지 않고 선포 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H 목사님의 처지:  오늘은 H 목사임에게 쓴 편지를 여러분에게 보내드립니다.

  저희들이 California에 이사 온 후 여러 번 만나게 되었고, 세상 종말에 대한 성경말씀을 서로 살펴 본 적이 있습니다. 목사님께서 성경에 나타나 있는 세상종말에 대한 기록을 공부하고, 그 믿음의 결과를 교단에 보고해야하는 처지에 있습니다. 제 편지는 목사님께서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쓴 편지입니다.

  여러분께서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아 보내드립니다.

  세상 종말에 대한 성경을 공부하시고 저에게도 도움이 되는 내용을 가르쳐 주시면 반갑게 듣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이대우 가족 드림.

 

목사님께 드립니다.


  목사님의 처지야말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릴 수 있는 가장 큰 기회라고 믿어집니다.

  저는 유럽을 여행하면서 여러 번 생각했습니다. 참 말씀의 복음을 세상 누구에게 든 전하고 싶지만 하나님께서 아무에게나 그 기회를 주시는 것이 아니라고 깨닫게 됩니다. 더욱이 모든 믿는 자들의 일생을 그들이 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진행하신다고 믿게 되고, 특히 말씀의 복음이 전파되는 과정은 하나님자신의 계획 속에서 만 이루어진다고 알게 됩니다.


대형 교회와 복음:  목사님께서 종말에 대한 성경연구의 결과를 지금 속해있는 그 대형교회 전원에게 발표 할 수 있다는 것은 목사님의 계획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믿습니다. 아마도 교단에서 목사님의 연구를 발표할 때 교인들에게 미치지 못하도록 노력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목사님께서 많은 사람들에게 미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 위하여 여러 해 동안 그 교회의 부목사의 직책을 하나님께서 마련하셨던 것이 아니겠습니까?

  언젠가 목사님께서 “아주 보수적인 목사가 종말에 대한 날짜를 발표한다면 많은 교인들에게 충격을 줄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 말씀에 어느 정도 긍정이 갑니다. 대개의 경우 세상종말에 대한 날짜를 찍어 온 것이 이단교파인 칠일안식교나 여호와증인 교단의 지도자들 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진실한 기독교인들을 생각할 때 기차가 도착하는 시간도 모르고 처량하게 Platform에 서 있는 승객을 생각하게 됩니다. 사실상 보수적이 아니고 성경적이 아닌 그리스도인은 모두가 다 시간표 없이 또 기차의 방향도 알지 못하고 기차를 기다리는 승객과 같을 것입니다. 잊어서는 안 되는 사실은 이단(異端) 종파 교리를 말씀과 비교해 볼 때 그들 신앙고백의 방향이 처음부터 잘못된 것을 쉽게 발견할 뿐 아니라, 성경말씀과는 관계없이 세상종말의 날짜를 예측했던 것입니다. 쉬운 예로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고 신유와 기사와 이적을 행한다는 기독교의 지도자들은 그 날짜도 계시를 통해서 받았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2011년 5월 21일이 종말이 된다는 선언은 세상종말에 날짜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음을 믿는 기독교인들, 즉 가장 보수적이고 개혁주의 적인 기독교인들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 첫째 이유는 성경 전체와 또 성경에 사용하신 단어 하나하나도 하나님께서 친히 선택하셨다는 것을 믿는 기독교인은 절대적으로  보수적이고 개혁주의 적인 그리스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보수적인 교단 OPC (Orthodox Presbyterian Church): 저희들이 1991년에 겪은 경험이 있습니다. 우리가 속해 있던 교회가 예정설을 믿지 않을 뿐 아니라 “내가 구원을 받는 것은 은혜로 되지만, 내 자유의지로 예수님을 영접하여야 구원을 밭는다는 것을 가르치기 때문에 그 교회에서 편지를 써서 선고하고 나왔습니다. 그 후 Yellow page를 보고 교회를 찾다가 OPC(미국의 전통 장로교단)의 교인이 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OPC가 장로교 교파 중에서 가장 보수적이라고 믿었습니다. 그 교단은 한국 고려신학파(高麗神學派) 장로교인들과 교우관계를 맺은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OPC 목사님, 한국에서 난 미국인 선교사 Bruce Hunt의 옥중 수기를 번역하고 Hunt 목사님이 고초를 당하던 얘기를 말 할 때마다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OPC의 교세(敎勢)는 아주 미약합니다. 대형교회가 OPC 일수는 없을 것입니다. 성경말씀 만을 가르치고서는 교인의 수를 크게 증가시킬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시대가 끝이 났다는 것은 OPC 고희도 예외가 되지 못하고 모든 교회가 사단의 통치아래 있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캠핑씨가 60년 이상을 보수적이고 개혁주의 적으로 성경을 가르쳐 왔고, 그리고 캠핑씨의 가르침을 존중하고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모두가 보수적이고 개혁주의의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만일 나에게 기회가 있어 수 천명 교인들에게 성경의 진리를 전할 수 있다면 무슨 얘기를 할 까?”하는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I.  성경의 저자는 하나님 자신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다”라는 확신을 교인들에게 먼저 가르쳐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창조주 자신이 쓰신 책이기 때문에 정밀하며, 정확하며, 또 오묘하다는 사실입니다. 또 성경은 시대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농사꾼이 씨를 뿌리는 때와 추수하는 시기를 분간하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성경의 태반의 기록이 추수 때에 대한 얘기임이 확실합니다. 세계의 인구 폭발과 또 전자문명의 폭발을 성경은 충분히 설명한다고 믿어집니다. 왜 그런가 하면 인류가 성경을 소유하고 읽을 기회가 없다가 인쇄기를 발명하고, 전자문명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성경말씀은 온 세계 어느 구석에도 도달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행 1:8). 그렇기 때문에 성경의 저자이신 하나님께서 대부분의 성경 독자가 21세기, 세상 종말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임을 아시고 성경을 쓰신 것입니다.

  성경을 읽고 깨닫게 되는 몇 가지 과정이 생각납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되어야하며, 그 다음은 때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첫째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은 결코 어떤 교회의 교인이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더욱이나 자유의지를 믿는 교단의 교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인간의 생각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수적이고 개혁적인 교단의 수는 극소수입니다. 2008 년도 Time지 Almanac의 통계에 의하면 기독교인의 수가 세계인구의 약 1/3인 2,254,535,000 (33.4%)으로 나왔습니다. 그중 보수적인 교인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내가 다시 올 때에 믿는 자를 보겠느냐”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가 살펴보는 인구통계에서도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닙니까?


OPC 교인생활:  저의 OPC 교인생활의 경험을 말씀드린다면, 교인이 된다는 입교 선서를 할 때 Westminster교리 중 다섯 가지 오류를 지적하였고, 오류를 인정하고도 교인의 자격을 얻었습니다. 그 후 성찬과 세례에 대한 교리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음 깨달았고 (구원받은 교인은 성찬식과 세례예식을 거처야 한다는 가르침), 교역자나 교인들이 지나치게 교리 문답에 치중함으로 성경천체에 대한 공부와 또 성경 속에 숨어있는 오묘한 뜻을 알아보려고 하는 노력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OPC 도 “시한부(時限附) 종말론(終末論)”을 부인합니다. 그러나 다음 성경의 구절들은 참 믿는 자들이 종말의 시기를 알게 된다고 가르칩니다. 구원받지 못한 자들의 한결같은 구호가 “그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라고 한 구절을 인용하지만, 사실상 다음 구절들은 너희들에게 그 날짜를 알게 한다! 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 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계 3:3) 이 구절에서 깨어 있는 방법은 오로지 성경을 읽는 일입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살전 5:4) 빛의 아들들은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고 빛, 즉 말씀 속에서 살게 됩니다.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 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하리라” (눅 12:36-37) “깨어 있는 것”은 말씀을 공부하는 일입니다.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마 24:43) 이 구절도 택하심을 받은 백성들은 깨어있어 성경을 깨달음으로 도적이 오는 시점을 알 것이라는 암시를 주십니다.


  위의 구절들은 믿는 자들은 전적으로 말씀을 의존함으로 그 때와 날을 알게 될 것이라는 약속이며, 반면에 구원받지 못한 불신자들에게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밤에 도둑 같이 오실 것”을 분명하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만일 어떤 교인이 그리스도께서 밤에 도적같이 오신다는 것을 주장한다면 그는 구원을 받지 못했다는 뜻입니다(요 10:10).


성경에 나오는 숫자들:  성경에 기록된 날짜를 알기 위해서는 두 가지 중요한 사건이 발생하여야합니다. 첫째 사건은 성경말씀을 성경말씀으로 비교하면서 성경저자이신 하나님의 의도를 알아보려고 하는 노력이며, 다음사건은 성경에 기록된 숫자에 대한 관심입니다.

  이상 두 가지 일들이 저에게도 적용이 되면서 성경주석을 참고하는 일이 거의 없게 되었습니다. 물론 많은 주석이 참고할 여지가 없이 자유의지 적이고, 세대주의 적인 신앙에 근거한 주석이지만, Matthew Henry나, 박윤선 박사의 주석을 볼지라도 성경에 기록된 숫자에 대한 고려가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숫자는 우리 일상생활에 자연적으로 필수가 되는 것 같이, 성경말씀을 이해하는 일에 자연적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그 중 예를 든다면, 숫자 7을 완전수로 쓰셨고, 이 숫자는 성경전체에 391번을 사용하셨습니다. 성경에 제일 처음 기록은 창세기 2장 2-3절입니다.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창 2:2-3)


  제 7일은 안식일이며, 하나님의 창조하신 우주가 존재하는 동안에 인간이 숫자7을 기억하도록 주간(週間)을 주셨습니다.

  창세기 4장에는 인류 중 처음 살인을 범한 가인에 대한 벌이 7배라고 하셨습니다.


숫자 7:  또  숫자 7일은 인간이 당하는 환난을 지적하셨고, 야곱과 요셉이 겪은 7년 대환난의 얘기가 창세기 4장에 기록되었고, 유대의 마지막 대환난이 70년임을 (렘 25: 11-12)기록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숫자 7을 통하여 인간이 받아야 할 벌을 말씀하실 때 연관하셨고, 또 우리의 구원을 말씀하실 때도 연관이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 베드로가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라고 한데 대하여도 왜 베드로가 “일곱 번”이라는 숫자를 써서 질문하였는지는 참으로 알아보고 싶은 구절입니다. 여하간 하나님께서 자기의  사랑하시는 백성이(벧후 3:8) 성경을 공부할 때 7이라는 숫자에 각별한 유의를 하도록 인도하심이 틀림없습니다.


  391곱 번 나오는 성경구절을 일일이 다 찾아보고 싶지만 시간이 없고, 그 중 여호수아 6장에 나오는 그 한 사건을 몇 번 읽어보았습니다.


여리고 성을 함락과 숫자 7:  여호수아 6장에 일곱이라는 숫자를 13번 쓰셨고, 이스라엘이 여호수아의 지도를 따라 가나안에 처음 들어가서 여리고 성을 함락시킨 역사적 기록입니다. 7일 동안 여리고 성곽을 돌며, 제 7일에는 일곱 번 돌며, 마지막 일곱 번째 성곽을 돌 때 일곱 제사장들이 일곱 나팔을 불면 여리고 성이 무너지리라고 지시하신 것입니다.

  여호수아 6장이 이스라엘역사의 일부이지만, 이 역사야말로 우리가 지켜야할 여러 가지 하나님의 명령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중 몇 가지 말씀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1.  매일 같이 처음 6일은 한번씩 성 윤곽을 돌고 제 7일에는 일곱 번 성 윤곽을 돌도록 지시하신 일입니다. 합하여 13번 성곽을 돌았다는 것은 우주의 창조가 13,000년이 되었을 것을 암시 하셨으며, 사실상 노아의 홍수 후 7000년 동안에 하나님의 인간 구원계획이 이루어졌음을 알게 하십니다. 노아 이전의 성경 역사는 단지 창세기 1-5장의 기록  뿐이고, 그 6000년 동안에 구원받은 사람들은 극소수입니다.


2.  다음으로 유의하게 되는 사건은 일곱 제사장들이 일곱 양각 나팔을 마지막으로 성곽을 돌 때 불었던 것이며, 이 일곱 나팔은 요한계시록 8장에서 말씀하신 일곱 나팔임이 틀림없습니다.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하늘이 반시 동안쯤 고요하더니 내가 보매 하나님 앞에 시위한 일곱 천사가 있어 일곱 나팔을 받았더라” (계 8:1-2)


  일곱 천사가 누구이겠습니까?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날의 경고를 선포하는 사자(使者)들의 총수가 아니겠습니까? 목사님께서 수천 명 교인들에게 성경에 기록하신 “시한부 종말론”에 대하여 말씀하신다면 목사님이 바로 그 일곱째 천사, 사자(使者)로 보내심을 받은 자(희랍어 aggelos)가 아니겠습니까?


3. 세 번째로 여호수아 6장에서 행한 모든 사건을 시종일관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진행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시행한 것뿐입니다. 이 사실이야말로 지금의 기성교회가 하나님의 말씀과는 거리가 먼 차원에서 각자가 정한, 교인들의 구미를 돋우는 교리대로 신자들을 인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개혁적이고 보수적인 교파가 결코 이와 같은 실정에서 제외되지 못했습니다.


4.  번째 생각은 여리고의 멸망은 비참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종말의 실태입니다. 21절에 “성중에 있는 것을 다 멸하되 남녀노유와 우양과 나귀를 칼날로 멸하니라”고 읽습니다. “좌우에 날선 검”이 (히 4:12) 바로 말세에 사용하시는 무기임이 틀림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예리하여 그 말씀을 듣고도 자기 생각을 고집하는 모든 기독교인과 또 세상 사람들을 멸하십니다. 이 예리한 검의 다른 면(面)으로는 구원받은 자들을 기성교회로부터 격리하며, 또 세상으로부터 격리합니다.

  기생 라합이 구원을 받은 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 기생 라합은 믿음의 영웅들 중에 한 사람으로 기록되었고, 영웅이 된 이유를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하였도다”라고 함으로써 말씀만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일년 남직하게 남은 말세의 무서운 심판의 실상을 감지하도록 무서운 지진을 아이티(Haiti)에 내리셨습니다. 아이티 국민들은 어느 정도 구조를 받고 있습니다 마는 세상 종말에 있을 지진과 재난을 구조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5.  다섯 뻔 째, 또 기생 라합에 대해서는 저에게 다른 생각을 가져다줍니다. 나도 하나님 앞에서 기생이었으며, 구원받을 가망이 전혀 없었다는 점입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고 또 선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구원의 조건이 된 다는 믿음을 부인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한 치도 우리의 구원을 도울 수 없다는 말씀에서 옵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이 세상종말의 때와 시기를 성경에 기록하셨다는 사실의 서론이 되기를 바랍니다. 다시 말하면 성경에 기록된 그 날짜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성경을 하나님께서 쓰셨고, 쓰인 단어 하나하나를 하나님께서 선정하셨을 뿐 아니라 숫자의 뜻도 성경에서 찾아야한다는 서론입니다.


II.  세상종말의 날짜를 우리에게 주셨다.


  우주 창조가 11,013 BC 에 이루어졌다는 성경기록이 목사님의 발표에 주제가 될 것을 바랍니다. 역대의 신학자나 성경학자 중에서 성경에 기록된 연대를 알기 위하여 현저하게 노력한 분이 많지 않습니다. 부득불 캠핑씨를 소개하게 되겠지요. 그분의 저서 “Adam when?"을 소개해야 할 것 같습니다.

카라쉠: Qara shem:  특히 성경에 기록된 연대는 창세기 5장과 11장의 이해에서 시작하여, 역사 이전 족장들의 연대를 히브리어 “카라쉠: Qara shem(그의 이름을 부르다)”이라는 단어를 써서 바로 직계 아들을 가리키는데 사용하셨다는 발견에서 시작하게 됩니다. (보내드린 “성경 속의 이정표들”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창세기 11장은 성경의 연대를 아브라함 때 직전까지 기록하셨고 아브라함부터 모세까지의 연대표를 나머지 창세기에 기록하셨습니다.

  이스라엘(야곱)이 가나안 땅을 떠나 애급에 들어온 지 430년 만에 출애굽을 하게 된 것이 BC 1447년에 일어났다는 것은 유사(有史)시대의 사건임으로 이 연대는 역사학자들의 기록과 일치합니다.

  출애굽 이후 40년을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지낸 후 가나안 땅에 들어가고, 471년간을 사사시대로 보내게 됩니다. 사사시대는 하나님께서 사사들을 선택하여 세우시고, 사사들을 하나님의 단순한 대변인으로 세우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방인들의  삶을 부러워하여 사사대신에 왕을 세워주도록 호소했습니다.

  사울 왕이 초대 왕으로 임명되고 유대왕국은 3대를 통일 국으로 있다가, 이스라엘과 유대 국으로 갈라져 각기 20대의 왕들을 섬기다가 BC 587에 이스라엘 민족은 완전히 그 국가를 잃어 버리게 됩니다.


세 가지 대환난:  하나님께서 말세에 인류가 멸망을 당할 사건의 비참함을 여러 가지 역사적 사건과 비교하도록 하셨습니다. 그 사건들은 노아의 홍수, 소돔과 고모라 등이며, 이 멸망직전에 있을 대환난 시기에 대하여는 야곱의 환난과, 이스라엘의 환난을 지적하셨으며, 이 기간은 7년= 84개월, 70년=840년과 우리가 당하는 마지막 환난기간 23년=8400일을 대조하도록 하셨습니다.

  이러한 모든 비유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심판 날이 2011년에 있다는 사실의 근거이며, 성경에 다타나는 알기 어려운 여러 가지 숫자들이 신기하게 엮어지고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목사님께 수차 보내드린 도표를 거듭 참고하시기 바라며, 또 다음과 같이 요약한 연대표와 비교하시기 바랍니다.

                                                        

        사건                                                      연대

    

아담의 창조                                                     BC 1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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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의 출생, 아담이 130세에 셋을 낳았다(창 5:3).                  BC 10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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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노스의 출생,  (창 5:6)                                         BC 10778 

에노스 세대(世代), 905년                                       BC 10778 - 8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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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난의 출생,  (창 5:9).                                         BC 9873

게난 세대,  910년                                              BC 9873 - 8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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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할랄렐의 출생 (창 5:14).                                      BC 8963

마할랄렐 세대, 895년                                           BC 8963 - 8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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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렛의 출생,(창 5:17).                                          BC 8068

야렛 세대, 962년                                               BC 8068 - 7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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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녹의 출생,(창 5:20).                                          BC 7106

에녹 세대, 365 년                                              BC 7106 - 6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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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두셀라의 출생,(창 5:23).                                      BC 6741

므두셀라 세대, 969년                                           BC 6741 - 5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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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멕의 출생 (창 5:27).                                          BC 5772          

라멕 세대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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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출생, 라멕이 182세 (창:28-29).                           BC 5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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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 노아가 600세 때(창 7:6).                                  BC 4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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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 후 502년에 셈이 죽었음(창 11:10-11).  그 해에

아르박삿이 출생                                                 BC 4488

아르박삿 세대 438 년                                           BC 4488 - 4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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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라의 출생 (창 11:12-13).                                     BC 4050

셀라 세대,   433년                                             BC 4050 - 3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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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벨의 출생 (창 11:16-17).                                     BC 3617

에벨 세대, 464년                                               BC 3617 - 3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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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렉의 출생 (창 11:18-19)                                     BC 2914

벨렉 시대,239년.                                                BC 2914 - 2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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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룩이 출생, (창 11:20-23).                                    BC 2675

스룩 세대, 230년                                               BC 2675 - 2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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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의 출생, (창 11:24-25).                                    BC 2445

나홀 세대, 148년                                               BC 2445 - 2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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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라의 출생   BC 2297

데라가 130세에 아브람을 낳음.                                  BC 2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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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이 99세에 할례를 받음(창 17:1, 23-24).                BC 2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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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의 출생, 아브라함이 백세에 이삭을 낳음(창 21:5)             BC 2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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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출생.  야곱이 출생할 때 이삭의 나이가 60세

  (창25:26).                                                    BC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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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이 130세 때에 그의 가족이 애굽에 도착함(창 47:9).          BC 1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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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0년 후에 출애굽 (출 12:40).                                  BC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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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후에 가나안에 들어감(출 16:35).                           BC 1407


   사실상 이상과 같이 연대표가 나오기까지는 누구인가 막대한 시간과 셀 수 없는 나날을 성경말씀과 씨름을 한 결과임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저로서는 캠핑씨가 노력한 결과의 큰  덕을 본 것이며, 그분을 선생으로 인정하지 않고서는 시한부 종말론을 믿는 성경학도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III. 왜 마지막 환난 기간이 23년인가?


  많은 성경학자나 신학자들이 세상종말의 대 환난시기를 7년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결론은 성경적이 아닙니다.

  23의 숫자를 창세기의 연대를 공부하면서 보게 됩니다. 즉 노아의 홍수가 BC 4990에 일어났고, 창조 후 6023년이 되든 해 입니다(11,013-4990 = 6023). 하나님께서 6000년을 계수 하시고 여분으로 23년을 큰 숫자에 붙여 큰 환난기간을 지적하셨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숫자는 우연하게 씌어진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선택하셨음을 발견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해, AD 33년은 노아의 홍수 BC 4990부터 5023년이 됩니다(4990+33 = 5023).

  지구가 창조되고 우주에 존재하는 기간을 13,000으로 정하신 것을 발견하며, 그 13,000에 23년을 더하여 23년을 마지막 환난기간으로 정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숫자 13을 감지하도록 숫자 12를 연장하여 13을 만드시고 또 12로 부르십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의 12지파는 사실상 13지파입니다. 요셉의 두 아들 무낫세와 에브라임이 아버지 요셉의 11형제와 동등하게 이스라엘의 족장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신약에서도 12사도라고 부르지만 실제적으로는 13사도이며, 예수님께서 처음 택하신 12사도에다 사도바울을 더하신 것입니다.

  숫자 23에 대한 성경의 기록을 보면 하나님의 심판을 지적하여 이 숫자가 씌어졌습니다. 다니엘서 8장 14절에 성전이 짓밟히는 기간을 2300일로 하셨고, 고린도전서 10장 10절에는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간음하다가 하루에 2300명이 멸망당한 기록이 있습니다. 또 다른 사건은 바울이 죄수가 되어 재판을 받기 위하여 로마로 항해하던 중 파선이 되었지만 승객들이 살아 남았고, 그 수가 276임을 성경에 기록하셨습니다. 숫자 276은 3 x 4 x 23입니다.

  숫자 276에서 23은 하나님의 심판을 지적하며, 3은 하나님의 뜻을 지적하며, 또한 4는 사건이 전 세계적임을 표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기록된 숫자 276은 하나님의 뜻으로 하나님의 심판이 23년간 온 세계적으로 이루어진다! 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숫자의 뜻이 세상의 종말을 이해하는데 절대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천상의 교회:  목사님께서 몇 번 말씀하신 실제적인 기성교회와 또 영적인 천상의 교회, 즉 그리스도와 영원히 함께 지나게 되는 교회를 혼돈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에 동의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구원받는 순간 영원한 교회의 회원이 되는 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1955년간 AD 33년부터 1988년까지 기성교회를 사용하여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하셨습니다. 교회시대가 끝났다는 것은 그 교회제도를 하나님께서 더 이상 쓰시지 않는다는 뜻이며, 교회가 아무리 충실하다 할지라도 사단의 통치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마태복음 24장 16절에 “산으로 도망하지어다”라고 하신 것은 “교리를 정리하라”고 하신 정도가 아니라고 믿어집니다. “근처에도 남아 있지 말라”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그 뜻을 하나님의 백성이 알기를 원하시며, 아이티(Haiti)의 지진도 보여주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무서운 대환난을 피할 수 있는 모든 생각과 행동이 구원받은 자들에게 있을 것을 하나님께서 기대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또 합니다.

  하나님께서 목사님께 지혜를 주시고 또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분명하게 주실 것을 확실히 믿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고초를 받을 것에 대하여는 누차에 걸쳐 성경에 기록하셨습니다. 제게는 저희들 뉴스레터를 거절하지 않고 받는 독자들이 여러 목사님을 포함하여 330명쯤 됩니다. 그것이 저희들 복음회가 복음을 세상에 전 할 수 있는 한계가 되었으며, 지금은 그 한계를 넘어 한 사람에게라도 더 이 놀라운 복음을 전 할 기회를 찾습니다.

  저희들의 뉴스레터를 기꺼이 받아 볼 독자를 찾는 것이 아니고, 노도와 같이 밀려오고 있는 인류의 멸망을 감지하고 외치고 싶어서입니다. 말씀을 공부할수록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직접 계획하시고 또 진행하시고 있음을 믿게 됩니다.

  하나님의 크신 능력이 목사님의 위로가 되시기를 믿습니다.


이대우 드림,  2010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