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들 복음회를 도와주시는 목사님과 "교회시대의 끝장"에 대하여 대화한 내용입니다. 여러분의 비평도 받기를 바라며, 계속하여 성경 말씀을 찾아 공부하겠습니다.

 

장로님,(목사님의 편지)

보내주신 레터를 통해서 양 목사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제가 알기로 평소 양 목사님은 쟉크 엘룰의 책도 번역한 분이시라 기대가 있었는데 내용이 너무 상황적이고 주관적이어서 제 입장에서 크게 주목할 것이 없습니다.

특히 그 분이 다락방 운동에 개입되어 있다 하시니 너무 뜻밖입니다. 다랑방 운동은 이미 한국 교단에서조차도 이단으로 규정된 바 있습니다. 김기동의 귀신론을 자기 나름대로 엮은 사이비 신학이지요.

장로님께서 너무도 잘 아시다시피 교회란 예수 그리스도의 몸 아니겠습니까? 몸이라는 표현이 갖는 신비하고 오묘한 신학적 이론은 뒤로 하고 시대가 제아무리 타락한다 한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없어지는 일은 없겠다 생각됩니다.

또한 칼빈이 말한 바대로 교회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복음의 기관이요 수단이며 목적이고요. 이런 까닭에 교회를 생각하는 우리의 사고는 항상 깊고 넓으며 명확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성경 전체가 가르치는 바에 일치되도록 주연된 사고로서 이해해야 할줄로 압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현대 교회란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의 몸다움에서 빗나가 있습니까? 그런 까닭에 교회가 타락한 현상에 초점을 맞추면, '그런 교회에서 속히 나와라' 하는 말이 가능하겠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란 교회를 이룰 수밖에 없는 존재란 점에 초점을 맞추면 '교회에서 나와라' 하는 말을 하기란 여간 조심스럽지 않겠나 생각해 봅니다.

교회의 존재가 없어졌으니 나와라 하는 말보다는, 교회가 타락했으니 바른 교회를 이루라 하는 말이 더 어울릴 듯 합니다. 이런 전제하에 바른 교회를 이루기 위하여 나오는 일도 가능하겠고, 아니면 그 속에서 작은 개혁의 씨앗 노릇하는 것도 가능하겠습니다.

복음의 원리상 누구든지 교회를 나왔을 때,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고, 그는 다시금 교회를 이루어야 할 당위성 앞에 서게 됩니다.

그러므로 저의 경우 장로님의 글 '교회 시대의 끝'이라는 주제도 제 나름대로 이중적으로 이해했습니다. 공감하고 동의하는 바가 많습니다. 현상적으로는 교회 시대가 끝난 것 같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이렇게 타락한 모습은 중세기 로마 카톨릭의 상황과 전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원리적으로는 여전히 교회는 존재하겠지요.

애굽과 같은 척박한 상황 속에서는 요셉의 인격을 통하여, 바벨론의 우상단지 속에서는 다니엘의 신앙 인격 안에서 하나님의 남은 자들이 구약 교회로서 존재한 것 처럼.

장로님.

보통 현대를 말세라 합니다. 그러면서 앞서 양 목사님의 경우처럼 세계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복잡한 불화들을 실례로 제시합니다.

하지만 성경이 가르치는 말세의 의미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임한 종말론적인 구원의 시대와 관련하여 말세라는 말을 씁니다. 현상학적인 말세관이 아니라 신학적인 말세관을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신학적이란 말을 써서 죄송합니다. 제 경우 이 말은 '성경의 가르침을 종합한 데서 나오는 원칙'이라는 차원에서 사용합니다.)

어떤 이들은 요한계시록의 7교회를 교회사적으로 분류한 후, 현대를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라고 결론내려버립니다.

하지만 무엇으로 누가 장담하겠습니까? 하나의 가설 위에 성경을 풀어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앞으로 역사가 몇 천만 년 더 계속될 수도 있는 것이고, 지금 당장 끝날 수도 있겠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 안에서 이 세계의 역사 속으로 종말론적으로 임했다는 차원에서 말세를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이미와 아직'의 적절한 긴장 속에서 하루 하루를 주님의 몸을 이루는 지체답게 사는데 최선을 다하는 것이 진정한 지혜라 생각합니다. 그래야 좌충우돌하지 않고 고요히 신앙의 경주에 전념할 수 있겠습니다. 바울께서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라고 말하면서.

교회를 걱정하시고, 위하여 노심초사하시는 모습이 제게는 항상 배움이 됩니다.

주님의 평강이 늘 함께 하시길 기원드립니다.

다음에 또 문안 올리겠습니다.

11/01/2002년

목사님,(목사님께드리는 회답)

지난 사 개월 동안 "교회시대의 끝장"을 공부하면서 쓴 편지에 대한 목사님의 의견을 말씀해 주신 것 감사합니다. 그러나 교회를 정의하고 이해하는데 대하여 차이점이 있는 것 같아 답장을 드립니다. 독자들과도 이 대화를 나누고자 합니다.

목사님이 출판하신 책 "교회를 이루는 구원"을 읽으면서 교회에 대한 생각을 가져본 적이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교회란 그리스도의 몸 아니겠습니까?" 라고 하셨고, "시대가 제 아무리 타락한다 한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없어지는 일이 없겠다 생각됩니다"라고 하신 점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선 목사님에게 하고 싶은 질문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3장에 기록된 일곱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었던가?" 하는 질문과, 이어서 그 일곱 교회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없어진 것이냐? 하는 질문입니다. 사도바울의 서신을 읽음으로써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일곱 교회가, 가상적인 교회가 아니고, 실제로 있던 교회로 판정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또 이러한 질문을 해 봅니다. 이차 대전 때를 중심으로 수많은 한국교회가 예수님과 천조대신(天照大神)과 천황을 동시에 섬겼는데, 그러한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었습니까?

성경적인 판단으로는, 그 교회들은 이미 심판을 받고, 계시록에서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바, "금 촛대"는 옮겨진 것이지요. 역대로 그 교회를 목사님들이 계승하고 건물을 신축합니다만, "금 촛대"가 옮겨지고 없는 교회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되겠습니까?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할 때에는 영원한 교회를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이 사실에 대해서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쓴 공회의 의원들은 이해하고 있었던 것을 발견합니다.

신앙고백 제 25장 조항 1절을 보면;

"The chatholic or universal Church, which is invisible, consist of the whole member of the elect that have been, are, or shall be gathered into one, under Christ the head thereof; and is the spouse, the body, the fullness of him that filleth all in all.

"교회는 세계적이며, 눈에 보이지 않으며, 과거와 현재, 그리고 장래에 구원받는 택하심을 입은 전원이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에게로 모이는 곳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이며, 그리스도의 몸이며, 그리스도의 모든 섭리를 완전히 성취하는 곳이다."

목사님께서 눈으로 볼 수 있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한 것을 아무리 노력해도 이해하기가 어렵고, 그 원칙을 찾을 수 없습니다. 어떤 성경구절이 목사님의 관점을 뒷받침하는지요? 교회라는 이름만 붙이면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개혁"이라는 이름을 붙인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정의하십니까?

미국의 유명한 슐러 박사는 가주에 수정 성전을 짓고 수 천명이 모이는 개혁교회(CRC)를 운영합니다. 그 교회가 관광객들을 많이 끌어드린다고 합니다. 관광객들이 그리스도의 몸을 보려고 오는 것일까요? 제 판단으로는 슐러 박사의 설교가 성경적이 못된다고 봅니다. 목사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이 없어지는 일이 없겠다 생각됩니다"라고 하신 것을 다시 설명해 주셔야하겠습니다. 목사님께서 교파를 말하시는지? 그렇지 않으면, 교회가 좀 잘못한다 할지라도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용서해 두실 것이라는 것입니까?

저는 목사님의 신앙간증에 동의 할 수가 없습니다. 성경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실제적으로 그리고 교회를 관찰 하드라도 많은 교회가 그리스도께서 명하신 복음사역을 못할 때, 해체되고 없어진 것을 어떻게 그리스도의 몸이 없어 졌다고 하겠습니까? 목사님은 칼빈의 말을 인용하셨지만, 그 칼빈이 가르친바 교회가 어떠한 특수한 교파를 지적한 것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어떤 교회든 간에 "칼빈의 5대 교리"를 믿는 교회를 지적한 것입니까? 언제든지, 교역자들이 역사적인 인물들의 말을 인용할 때는 상황적이고 주관적인 입장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에는 "객관적"이라는 용어가 적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의 말씀은 마치 불이 난 집안에서 불을 끌 생각을 할 것이지, 거기에서 뛰어나올 생각을 말자"라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비유적으로 말한다면, 불이 난 것을 인정하지 못하거나, 불이 난 것에 관심이 없다거나, 극단적으로 불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는 고백인 듯 합니다. 성경에는 말세의 징조에 대하여 부단하게 강조하신 것을, 칼빈의 교리에 몰두하다보니, 칼빈의 가르침이 마치 성경의 전부인양 잘못 알고 있는 것이, 현대 신학교육의(개혁) 결과가 아니겠습니까?

진실한 개혁은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것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씨앗이 싹이 나고 자라서 결실을 맺는 과정을 성경말씀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성경이 무엇이냐"라는 답 중의 하나로서 "성경은 세상의 종말, 교회시대의 끝장을 말하는 책이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충분한 성경구절을 다시 제시할 수 있습니다.

목사님께서 "여전히 교회는 존재하겠지요"라고 하신 말씀을 성경으로 설명해 주시면 좋겠지만, 그러한 성경 말씀이 없을 것입니다. 세상에 종말이 다가왔다는 성경말씀이 너무도 많고, 그 모든 구절들이 우리가 보는 것을 1대 1로 설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목사님께서 요셉과 다니엘을 지적하여 구약 교회의 창시자로 말씀하셨습니다만, 성경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얘기입니다. 오히려 요셉은 하나님의 유일한 교회 "야곱의 집"에서 멀리 떨어져 하나님의 섭리를 성취한 사람이며, 다니엘은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통하여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가라"고 하신 명령에 순종하한 사람으로, 그때에 유일한 하나님의 교회, 유대 예루살렘을 떠난 사람이 아닙니까?

목사님은 "성경이 가르치는 말세"에 대하여 설명이 없으면서 '세상에 일어나는 일'이 성경이 가르치는 말세의 징조와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말씀하셨으나, 성경은 세상이 사단의 통치하에 있음을 가르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세상에 일어나는 일을 '말세에 나타날 사단의 역사와 어떻게 구분하겠습니까? 여기에서도 목사님이 보시는 견해는 단순한 신학적 견해로만 봅니다마는, "성경의 가르침을 종합한 데서 나오는 원칙"은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신학은 가설입니다. 이것은 마치 철학이 가설인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런데 현대 신학은 그 가설마저도 없는 것이 아닙니까? 말하자면 신학은 단순히 졸업장을 주기 위한 기관으로 존재하며, 이 기관을 통하여야만 안수 목사가 되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신 그리스도의 명령과는 이율배반적인 상태가 아닙니까? 복음을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농장을 비유로 하신 여러 가지 성경말씀을 함께 공부할 기회를 기대합니다. 추수에 대한 비유입니다.

주님께서 저와 목사님의 모든 것을 주님 홀로의 뜻에 합당하게 인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건강하십시오.

이대우 드림 1월 13일 200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