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9월 뉴스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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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mily Radio 사경회에서

- 교회시대의 끝장 (IX) -

해마다 8월초에 개최되는 Family Radio 사경회는 저희들에게 일년 중 가장 기다려지는 행사입니다. 약 10년 전에 알게된 성경학자 캠핑씨를 만나는 일은 우리들의 신앙 생활에 큰 즐거운 일입니다. 사실상 하나님 말씀의 오묘한 진리를 배우는 일 보다 더 귀중한 일이 세상에 어디에 있겠습니까? 더구나 금년에는 오래간만에 이장호씨 가족도 오셨고, 복음사역에 동역자가 된 Joanna Kim 의 식구와, Rye, New York에서 사업을 하시는 윤 장로님 내외분도 만날 수 있어 정말 반가웠습니다. 믿음의 형제들과 함께 며칠을 같이 지낼 수 있었던 일은 우리들의 신앙 생활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성경을 공부하는 일을 학문을 배우는 것과 비교할 수 없고, 예능적인 학습을 연수하는 것과도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모든 말씀이 내 영혼의 성장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가능한 한 내 마음을 말씀에 집중해야 합니다. 성경의 모든 단어의 뜻을 성경이 정의할 수 있을 때만 진정한 뜻이 있습니다. 지금은 신학의 교육이 이러한 원칙에 기준을 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 한국에서 우리 복음회를 도와주시는 박 양께서 보내주신 기독교 신문을 읽고, 최근에 신학생들이 교실에서 배우는 학문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 신문은 한국개혁 장로 교단의 기관지이며, 기사를 쓴 분들은 다 목사님들이며, 특히 신학교 교수님들의 소위 신학적 논설입니다. 그 중 어느 교수님의 논문 한 구절을 소개합니다.

 

"우리의 주의에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너무나 지나치게 강조하다가 사람에 대한 양심을 무시하거나, 사람에 대한 양심을 유별나게 강조하다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시들어 버린 사람들이 많이 있다". (개혁 신문) 디모데전서 1장 19절에 대한 해설입니다. 성경말씀에 대한 초점을 잃은, 사람의 생각입니다. 이러한 생각이 어떻게 구원에 이르는 신앙을 자라게 하겠습니까? 이런 점에서 생각할 때, 4일 동안에 얻은 성경 말씀의 지식은 진주같이 귀한 보배입니다.

금년 사경회의 성경 공부는 작년도 사경회에서 시작한 "교회 시대의 끝장"에 대한 공부의 계속이며, 지난 일년동안에 이 과제에 대하여 여러 가지 성경구절을 읽으면서 가지고 있었던 몇 가지 의문을 풀어 주었습니다.

성경이 진리임을 성경학자들과 교역자들이 한결같이 말합니다마는, 사실상 기독교 교인들이 진리를 성경에서 찾기보다는 유명한 인사들의 책이나 설교에서 찾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입니다. 수백 명, 수 천명의 인구를 가진 교회가 웅장한 예배당을 짓게 되는 것이 사람들의 눈에 찬란하게 보이게 하며, 사람들을 유인 합니다마는, 이 모든 교회가 당면한 시대는 "마지막 대환난"임을 한 눈으로 볼 수 있습니다.

교희 시대의 끝장은 "마지막 대환난"을 말합니다. "마지막 대환난"은 신학적 용어이며, 성경은 이 마지막 대환난을 "큰 환난: Great tribulation"(계 7:14, 마 24:21)으로 지적합니다. 마지막 환난이라고 한 신학자들의 견해가 정확하며, "큰 환난"기간은 한 계절이 끝나고 다음계절로 넘어가는 "끝"을 지적함이 분명합니다.

믿는 자들이 모일 때에 "말세가 되었다"는 얘기를 자주 하게되었지만, 그 말세가 내가 속한 교회에 왔다고 하면 긍정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세에 관하여는 교회에 초점을 두고 기록되었고,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듯이, 오리라고 한 큰 환난시기가 온 것을 외면할 수가 없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에게 사도바울은 편지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살후 2:1-2). 이것을 "예수님의 재림에 대하여는 언급할 여지가 없다"라고 가르쳐 왔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말씀하신 바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 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예언에 대한 성경말씀은 아예 제쳐놓고 성경공부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상습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마지막 계절이 올 것을 분명하게 가르치십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이 "이스라엘이 회복할 시기"를 물었습니다(행 1:6). 예수님의 답변이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라고(행 1:7) 하신 것을 기억하시는 줄 압니다. 이 구절이 "너희는 때와 기한에 대하여는 알기를 기대하지 말라"라고 하신 것 같이 들립니다마는, "하나님의 권한 "의 뜻을 이해하면 "기대하지 말라"는 뜻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가장 좋은 비유로서 예수님께서 처음 세상에 오시던 때를 생각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리스도의 오심은 메시아를 기다리고 기다리던 소망 이였지만, 그들의 절대 다수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구약시대 교회의 지도자들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는 주동역할을 하였고,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제사법이 폐지된 것을 알지 못하고, 아직도 회당에서 그들이 정의한 하나님을 계속하여 찾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권한"의 뜻을 바로 알지 못한 것은 구약 교회나 신약교회가 일반입니다. 구약교회의 지도자들, 바리세인들은 조상의 유례를 "하나님의 권한"으로 대처했고, 신약시대의 지도자들은 신학과 교단의 교리를 "하나님의 권한"으로 믿고 가르칩니다.

교회의 권위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카톨릭교단이 교회와 교황의 권위를 성경말씀과 동등하게 둠으로써, 교회는 우상을 섬기는 이교도와 조금도 다를 것이 없게 되었고, 교황과 교역자들은 다 "가증한 것"이 되었음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태반의 신교 교단이 카톨릭교회의 상태를 닮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딤전 3:15)

위의 구절은 교회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집으로 정의하였고, 이 교회가 "하나님의 권한"으로 운영되어야 함을 가르칩니다. 그러나 지금 교회는 전통과 교리를 "진리의 기둥과 터"로 삼고있습니다. 교회는 기업화되고, 잘된 전통을 자랑하지만, 잘못된 교리를 개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개혁신앙의 근본이 된 장로교 교리를 보더라도 여러 가지 오류가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큰 오류는 "배우자가 음행 한 연고가 있으면 이혼 할 수 있다"는 조항이며, 이 오류를 수정하지 못한 장로교의 지도자들은 이혼율이 높아지는 사회의 죄악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변명하기 위하여 이 잘못된 교리를 내세워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으로 정의한 교회에 대하여 하나님의 관심을 기록한 것이 성경입니다. 이 "하나님의 집"이라는 용어를 성경에서 제일 처음으로 사용한 것은 야곱입니다. 창세기 28장을 보면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하여 외삼촌 라반의 집을 향하여 가는 도중, 밤을 세웠을 때 여호와를 만났던 곳을 "하나님의 전: The house of God" 이라고 불렀습니다(창 28:17). 그 후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성막: Tabernacle"을 지었고, 그 성막 속에 언약궤(言約櫃)를 둠으로써,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심을 믿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온 후 언약궤를 간수하는 일을 소홀히 한 기록이 있습니다. 그후 다윗 왕은 부단한 노력으로 하나님께서 계실 성전을 예루살렘에 지을 계획을 했고, 솔로몬 왕 때에 마침내 그 성전이 완성된 것을 우리가 다 아는 바입니다. 이 성전은 교회의 참 뜻을 우리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구약 성경에는 "하나님의 집" 혹은 "여호와의 집"이라는 이름을 300번 이상 사용하였습니다. 이 여호와의 집은 말할 것도 없이 백성이 모여 여호와를 예배하는 곳이었습니다(시 42:4). 다윗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이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거하는 것임을 시편 23편에 고백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산다는 상징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렇게 귀중한 여호와의 전을 잘 관리를 못했습니다. 물론 유대 왕 중에 히스기야와 같이 성전을 관리하는 일을 왕정(王政)의 제일 우선(優先)으로 한 기록도 있습니다마는,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고, 여호와의 전이 파괴되고, 하나님의 보호를 상징하는 예루살렘 성전이 멸망 당한 것은 "하나님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지" 못한 결과였습니다(요 4:23).

복음전도의 사역을 맡은 21세기의 교회가,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는지 아닌지를 어떻게 우리가 알 수 있습니까? 교회의 문제점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권위"를 얼마만큼 믿는가 하는 것입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것이 색다른 예복을 입고, 특별한 예식을 행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교파의 표시로 교역자가 입는 복장이나, 교회의 모양으로 구별합니다마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예배를 드리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떠나서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못하는 자유주의 신학 교회가 무엇을 한들 하나님께 인정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내리시는 계시는 성경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권위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성경전체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못할 때, 자유주의 신학을 믿는 자들과 다른 점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의 모든 교회가 가르치는 성경의 내용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대부분의 교회가 "사랑의 하나님"을 강조하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주로 말하는 예언서의 말씀에는 관심이 없을 뿐 아니라, 그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을 비난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은 종말에 있을 "큰 환난"에 대한 성경말씀을 필히 공부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어떤 사건을 가지고 "세상의 종말"을 운운합니다마는, 성경의 예언은 이스라엘, 유대, 예루살렘, 그리고 교회의 상태를 가지고 세상의 종말을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이 지상에 있는 이스라엘을 염두에 두고 예수님께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하여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 기록에서 우리에게 가르치는 영적 이스라엘은 우리가 영원히 그리스도와 함께 살 천국을 가르칩니다. 사도들과 같이, 참 이스라엘 백성은 "주의 날"을 기다립니다. 성경에 말세를 "주의 날" 이라고 여러 번 기록되어 있는 것은, 믿는 자들에게 이 날이 가장 중요하고 기다려지는 날 임을 가르칩니다. 그러나 이날을 또한 진노의 날이라고도 여러 번 기록했습니다. 예를 들어 예레미야 46장 10절에

"그 날은 만군의 주 하나님의 날이요 복수의 날이라. 그가 그의 대적들에게 원수를 갚으리라."(KKJV)고 하신 것이, 당시 이스라엘에게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이 구절은 현재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에서 일어난 어떤 일에도 해당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신약시대에 어떤 역사를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아닙니다.

앞으로 있을 세상의 종말을 지적합니다. 이 구절만 가지고도 성경이 말세에 사는 믿는 자들에게 초점을 두고 씌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3 계절, 즉 무교절, 77절, 초막절을 지키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이 명령이 그렇게 크고 중요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세상 종말에 사는 저희들에게는 아주 큰 뜻이 있습니다. 종말에 대한 성경 공부를 하는데 있어,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3 계절에 대하여 공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명령이 현재 우리들에게 어떻게 해당이 되는지 알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너희 중 모든 남자는 일 년 삼(3)차 곧 무교절과 칠칠(77)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지니라"(신 16:16-17)

여기에서 "여호와의 택하신 곳"은 예루살렘이었습니다. 사실상 위의 명령이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주어진 명령이라면, 역사적으로 이 명령에 복종할 수 있었던 시기(時期)와, 이 명령에 복종한 백성들의 소수를 계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교절에 대하여 공부할 때, 이 무교절이 유월절 다음 날에 시작되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레 23:). 우리가 또 기억해야 할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살던 동안에 이 명령이 주어졌다는 사실입니다. 레위기 23장 10절에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우선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라고 명령하신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위의 구절에서 우리는 몇 가지 사실을 배웁니다.

첫째 시기로 봐서 위의 명령은 가나안에 들어가는 즉시 드리는 유월절과 무교절에 드리는 제사에 대한 것이지만, 우리의 신앙생활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백성에게 내리신 법을 공부함으로써 이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이 두 가지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도덕적인 법입니다. 이 법은 하나님을 섬기는 법, 즉 십계명의 처음 3 계명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인간들 사이에 지켜야할 여섯 가지 도덕적 계명이 십계명 속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 법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리신 구약의 제사법과, 안식일과, 신약시대에 내리신 세례법과 성찬식입니다.

도덕을 지켜야할 법은 옛날과 지금도 변화 없이 적용이 됩니다.

그러나 구약의 제사 법은 그리스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이 법이 다 폐지된 것을 여러분께서 기억하는 줄 압니다. 신약교회는 토요일에 안식일을 지키는 법을 폐기하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주의 첫날이 새 안식일이 되었음을 여러분과 함께 배운 바 있습니다. 토요일을 안식일로 아직까지 주장하는 안식교인들은 하나님 명령에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사법과 안식일을 지키던 일은 우리를 죄로 인한 영원한 형벌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일은 우리의 안식, 즉 구원이 그리스도에게만 있음을 가르칩니다. 지금 우리가 일요 안식일을 지키는 것도 이 날이 그리스도의 날이며, 믿는 자들이 한결같이 그리스도를 예배하고, 또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날을 함께 기다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제사법과 같이, 세례는 우리의 구원을 상징할 따름입니다. 우리의 죄가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음을 받은 것을 기억하도록 제정한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을 때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다(요 1:33)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찾는 개혁교회 까지도 이 세례에 대하여 신비적이며, 미신적으로 생각합니다. 물세례를 받아야만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찬에 대하여도 이 예법을 교회마다 나름대로 방법을 제정하고 있습니다. 카톨릭교회가 믿는 내용이 잘못된 것은 논의의 여지가 없지만, 루터교회도 성찬을 받으면 그 떡과 포도주가 실제로 내 살이 되고 피가 된다고 믿습니다.

세례와 성찬은 신약교회가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예식이며, 대개의 경우 이 예식이 일요 안식일에 이루어집니다.

구약의 제사법을 모세에게 명령하셨을 때, 동시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지킬 예식에 대하여도 명령하셨습니다. 이 명령은 가나안에 들어가서 곧 "첫 이삭 한단"을 하나님께 바치는 일입니다(레 23:10). 놀라운 사실은 이 "첫 이삭 한 단"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간 즉시 일어날 사건(수 5:10) 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농사하여 얻은 "첫 이삭"이 아닙니다.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드릴 제물을 친히 마련해 두신 것의 상징이며,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구원받은 자들)을 위하여 바쳐질 것을 상징합니다. 구약 제사법에 "첫 열매"(출 23:19, 레 23:20등)를 드리도록 명령하신 것은 그리스도를 상징한 것이며, 이 사실은 신약 성경에서 그리스도를 "처음 익은 열매"(롬 8:23, 고전 15:20), 15:23)로 지적하셨고, 또 구원받은 자들을 "처음 익은 열매"(롬 16:5, 고전 16:15, 약 1:18, 계 14:4 등)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열매"는 농사의 결과를 말하지만, 그리스도는 그리스도께서 홀로 농사하신 결과이며, 우리가 "처음 익은 열매"가 된 것은, 사도들이 예루살렘에서 복음전도 사역을 시작하였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믿는 자들에게 명령하신 복음전도 사역의 결과로 이루어지는 열매입니다.

캠핑씨께서 성경의 놀라운 진리를 발견한 것은, "처음 익는 열매"가 히브리서에 두 가지 bikkur와 reshith에서 번역된 것이며, reshith는 농사한 일이 없이 얻은 곡식이며, 유월절에 드리는 제물을 지적함을 명시했습니다. 반면에 bikkur는 유월절 후 50일 동안에 얻은 곡물 중에서 "처음 익은 열매"를 지적합니다. 떡을 만드는 방법도 유월절에는 "누룩 없는 떡"을 만들도록 명령하셨고, 77절에는 "누룩을 넣어서" 만들도록 명령하셨습니다(레 23:17). 우리가 유의할 점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제사 법이 "영원한 규례니라"(레 23:14)고 하신 점입니다. 이 "영원한 규례"가 실제적으로 제사를 드리는 그 자체가 영원하다고 하신 것이 아니며, 이 영원한 규례를 지금도 우리가 지키고 있음을 성경은 가르칩니다.

그 다음, 이 영원한 제사 법에는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야 했다는 점입니다.

"너희 중 모든 남자는 일 년 삼(3)차 곧 무교절 칠칠(77)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지니라"(신 16:16-17)

 

위의 구절에서 "여호와의 택하신 곳"은 예루살렘이었고, 지금은 믿는 자들이 모이는 곳, 즉 교회입니다. "일년 3차"는 인류의 구원 계획을 일년으로 볼 때에 3 계절이 있음을 가르칩니다. 아담이 말씀에 불순종한 후 인간이 영원한 지옥의 멸망을 자처(自處)했으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영원한 소망을 주실 것의 약속이 바로 유월절, 무교절 이었습니다.

AD 33년에 유월절이 바로 인류역사를 일년으로 볼 때에 해당되는 유월절입니다. 이 행사는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졌고, 인류는 가장 복되고 귀한 선물인 그리스도를 "처음 익은 열매"로 즉 희생의 제물로 바치게된 것을 우리는 다 알고 있습니다.

그 다음 계절은 77절 혹은 오순절입니다. 유월절 후 일곱 이레가 지난 후 첫날에 즉 50일 만에 제자들이 예루살렘 다락방에서 모였고, "경건한 유대인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우거하더니"(행 2:5)라고 기록이 되었고, 이 날 3000명이 세례를 받았다는 기록은(행 2:41), 실제적인 77절이 이루어진 기록입니다. 인류역사를 일년으로 볼 때에,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실제적인 유월절 후 50일만에 일어난 일입니다. 구원을 받은 3000명은 "처음 익은 열매"들이며, 그 후 구원받은 모든 믿는 자들도 또한 "처음 익은 열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인류역사는 마지막 계절, 초막절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오순절에서 초막절을 기다리는 기간을 교회시대라고 하며, 이 때에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과정을 "이른 비"를 내리시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약 5:7). 여러분과 저는 이 "이른 비"를 받아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물론 이 이른 비는 "처음 익은 열매"를 제단에 드릴 수 있는 근본 원인이 아니겠습니까? ""는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합니다. "처음 익은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인 ""가 없이는 맺힐 수 없음을 가르칩니다. 또한 비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가르치며, 말세에 가서 "기근"이 있을 것을 예언했습니다(암 8:11).

이번 달에는 여기서 마치고 다음달에 공부를 계속하겠습니다.

지금까지 구약 시대 이스라엘에게 지키도록 명령하신 유월절, 77절과 초막절에 대한 그 뜻의 일부를 알아보고, 인류의 역사를 성경은 3 계절로 나누어서 가르침을 배웠습니다. 그 첫 계절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유월절까지가 한 계절이며, 다음 계절은 사도들이 권능을 얻고 복음전도 사역을 시작한 AD 33년부터 시작하여, 예수님의 재림 시까지가 교회시대가 되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예수님 재림 이전에 아주 짧은 계절이 있을 것을 가르치며 이 짧은 기간은 "큰 환난" 기간이며, 전무후무한 대 환난은 교회가 화를 입는 기간이지만, 하나님께서 "늦은 비"를 내리시는 인류에게 축복의 기간임을 다음달에 배우겠습니다.

이대우 가족 드림, 9/2/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