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께 드립니다. -교회시대의 끝장 (VII) -

에녹의 믿음에 대하여 공부하면서 목사님의 편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이 하신 말씀을 이해하기를 원합니다.

목사님의 편지 중에서: 보통 현대를 말세라 합니다. 그러면서 앞서 양 목사님의 경우처럼 세계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복잡한 불화들을 실례로 제시합니다.

하지만 성경이 가르치는 말세의 의미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임한 종말론적인 구원의 시대와 관련하여 말세라는 말을 씁니다. 현상학적인 말세관이 아니라 신학적인 말세관을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신학적이란 말을 써서 죄송합니다. 제 경우 이 말은 '성경의 가르침을 종합한 데서 나오는 원칙'이라는 차원에서 사용합니다.)

어떤 이들은 요한계시록의 7교회를 교회사적으로 분류한 후, 현대를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라고 결론내려버립니다.

하지만 무엇으로 누가 장담하겠습니까? 하나의 가설 위에 성경을 풀어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앞으로 역사가 몇 천만 년 더 계속될 수도 있는 것이고, 지금 당장 끝날 수도 있겠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 안에서 이 세계의 역사 속으로 종말론적으로 임했다는 차원에서 말세를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목사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임함"이라고 하신 것을 '말씀을 기반으로 하여'라고 저는 이해합니다. 그러나 신학의 기초가 말씀에 있는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그것은 바로 위와 같이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말세에 대한 믿는 자들의 태도입니다. 목사님께서 "앞으로 역사가 몇 천만 년 더 계속될 수도 있는 것이고"라고 하신 말씀을 참으로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사도 베드로가 베드로후서 3장 3-5절에 한 말을 다시 읽지 않을 수 없습니다.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이 구절이 목사님의 생각을 지적한 다는 것은 아닙니다. 얼마나 흡사한가를 성경말씀에서 찾아보고 싶은 생각입니다.

첫째로 에녹은 아담의 7대 자손이라고 했으며 아담이 11,013BC에 창조되었고, 에녹이 승천한 해는 6741BC로 성경의 기록을 읽을 수 있습니다. 에녹이 말세에 대하여 예언한 것이 노아의 홍수 즉, 4990BC를 지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유다서의 내용은 에녹이 홍수로 세상에 끝장이 온 것을 말한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것을 예언한 것이 분명합니다. "보라 주께서 수만의 거룩한 자와 임하셨나니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에녹은 지금부터 8742년 전에 살던 그리스도인이며, 이 그리스도인 에녹은 예수님의 재림에 대하여 모든 내용을 배웠음이 분명합니다. 에녹 후에 노아, 아브라함, 모세와 같은 역대의 그리스도인들(구약에 택하심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이렇게 부르겠습니다)이 다 한결같이 그리스도의 재림을 고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성경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말 할 것도 없이,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의 구원은 예수님의 재림으로 완성되며, 땅에 묻힌 그들의 시체가 부활되어 새로운 몸으로 영혼과 결합하는 때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바 구약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말세를 가르친 사실을 성경에서 공부하는 일은 다음으로 미루고, 오늘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직후에 성도들의 생활을 생각하면서 성경말씀을 찾아보겠습니다.

사도들의 편지가 당대에 그리스도인들을 대상으로 씌어진 것을 아무도 부인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알고 보면 사도들이 다 그리스도의 재림이 그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 있을 것을 믿고 가르친 기록이 분명하게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사도들이 예수님의 재림이 천만 년이 더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살전 5:1-2)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며 그 날이 도둑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살전 5:4-6)

"주의 약속은 어떤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벧후 3:12)

이상 몇 구절만을 보더라도 사도들이 "깨어 근신하라" "간절히 사모하라"고 한 것은 "예수님의 재림이 천만 년 후에 있을테니 선한 그리스도인으로 살다가 죽도록 노력하라"고한 말이 아닐 것입니다. "간절히 사모하라"의 원어의 뜻을 찾아보면 번역이 미약한 듯 합니다. 영문에는 "Looking for"로 번역이 되었고 행간 성경(Interlinear 직역 성경)에는 "expecting"으로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희랍어는 "Prosdokao"이며, 영문 번역은 "사모하다" 보다는 "기대하다, 기다린다"라고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이 공부에서 분명한 것은 사도 시대의 교회가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린 것이 분명하며,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후서 3장에서 교회에서 믿지 않는 자들을 지적한 것도 분명합니다. 어느 모로 보든지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은 구약의 그리스도인들과, 신약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의 한가지 중요한 속성입니다. 이것은 마치 아비 없이 살던 고아가 부모를 만나기로 고대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예수님의 재림을 두고 "천만 년"을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목사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으며, 어떤 뜻인지 다시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둘째로 생각하는 것은 목사님께서 "가설 위에 성경을 풀어나간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신학적인 말세관"이라고 함으로써, 마치 "신학은 가설이 아니다"라고 주장하시는 것같이 들립니다. 그러한 뜻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저는 목사님과 정 반대의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Calvin과 Knox가 말했으니 나도 그것을 믿는다고 한다거나, 여러 가지 학설이 있지만 그 중에 A 학설을 믿는다거나, 내가 교단의 교리를 믿기 때문에 '배우자가 간음을 했을 때 이혼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모두가 가설입니다. 말하자면 신학은 그 10중 8,9가 가설에서 시작하고 있지 않습니까? 현대교회가 그 신학을 토대로 해서 세워진 것이 아닙니까? 기사와 이적을 믿는 것이 가설이 아니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까? 성경적으로 말한다면 지금 말세에 와서 교회는 가설을 믿기 때문에, 다 모래 위에 세워졌고, 어느 한 교회도 반석 위에 세워지지 못했다고 믿게 됩니다. 엄청난 회원과 조직의 힘을 가진 현대 교회에 대한 굉장한 도전이라고 하실 것입니다. 제가 모르는 바가 아닙니다. 또한 들을 사람이 몇 사람 없을 것도 압니다. 그러나 제가 하는 말이 진리일 때 하나님께서 그것을 전도사역에 쓰신다는 것도(사 55:11) 알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교회가 비 진리를 따르고 있는 것은 역사의 반복입니다. 예레미야 서를 읽음으로써 유다가 멸망 당하던 때를 알 수 있으며, 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예레미야의 말을 믿지 못했고,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만 해도, 그때에 유일한 하나님의 교회가 예수님을 고발한 것이 아닙니까?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 중에는 니고데모나, 아리마대 요셉과 같은 신학자도 있었습니다마는, 예수님 제자들이 다 어부였고 세리였었다는 점은, 지금의 교회 상태와 다른 점이 없을 것입니다. 가설을 믿지 않고, 말씀만을 바라보고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교회의 교리나, 목사님들의 신학학설이 진리가 아님을 알게됩니다.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를 구원으로 이끌 수 있음을 저는 믿고 있습니다.

성경은 사람을 두 가지의 분류로 구별해서 말씀하십니다.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와 사단에게 속한 자, 말씀에 순종하는 자와 자신의 생각을 따르는 자들입니다. 신학이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까? 만일 그렇지 못할 때 신학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두려운 일입니다. 말세에 가서 그리스도의 대적이 되는 것은 사회 제도도 아니고, 사회 도덕도 아닙니다. 말세에 가서 그리스도를 대적이 하는 일은 곧 명성이 높은 기독교 지도자들과 또 교회가 하고 있습니다. 개혁 교회는 거기서 제외되기를 바랍니다마는, 신학을 저버리고, 가정(假定)을 저버리고 또 잘못된 교리를 전부 버리기 전에는 그리스도의 편이 된다는 보장이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의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니라"(계 11:8)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성이 어디입니까? 예루살렘이 아닙니까? 그 예루살렘을 애굽이며 소돔과 고모라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말세에는 참 믿는 자들의 시체가 그 예루살렘 거리에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목사님의 교회가 애굽이 아니며, 소돔도 아니고, 고모라도 아니라는 보장을 교회의 교리를 가지고 변명하실 수 있으십니까? 그렇지 않으면 늘 높이 평가하시는 신학 학설로 하시겠습니까? 참으로 답답한 일입니다. 잘못 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바른 길로 믿고 있는 것이 지금의 모든 교회입니다. 그 책임을 신학교가 져야하며, 또 목자들이 져야 할 것입니다. 옳다고 생각하고 있는 그 길이 잘못된 길이며, 사단의 길임을 알 때가 곧 올 것입니다.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마25:44)

다음 번에는 계시록에 나오는 사단의 병력이 교회를 중심으로 해서 이루어졌음을 공부하겠습니다.

이대우 드림, 3/9/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