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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현저한 말세의 징조, 기사와 이적, 여러분께 드립니다.

앞으로 여러분과 같이 은혜의 복음(Grace doctrine)에 대하여 성경말씀을 공부할 계획으로 이리저리 참고 자료를 찾던 중, 종교개혁 직후 쏟아져 나온 신앙고백들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웨스트민스터, Belgic 신앙고백과 Heidelberg 신앙문답을 구했습니다. 이러한 신앙고백은 천년이 훨씬 넘은 암혹시대를 헤치고 나온 기독교인들이 고백한 참된 소망에 대한 간증이었으며 또 그들이 걸어 온 길에 빛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신앙고백은 성경을 토대로 하여 되었습니다.

그 후 수 세기를 지나면서 이 신앙고백들은 천대를 받게 되었고, 새로운 교회와 교파들이 들고 나오는 신앙문답은 사람의 생각을 만족케 하는 질의응답으로 대치되었습니다. 이러한 과거의 신앙고백과 문답을 성경말씀에 대조할 때 우리의 신앙을 성경을 중심으로 하여 살펴 볼 수 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더 시급한 과제가 있는 것 같아, 위의 계획을 연기하고, "가장 현저한 말세의 징조, 기사와 이적"이라는 제목으로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려고 합니다.

I. 가장 현저한 말세의 징조, 기사와 이적

우리는 아직도 기사와 이적이 하늘로서(성령의 역사로) 온다고 믿는 사람들로 사면초가(四面楚歌)에 처해 있습니다. 방언은사를 받았다는 이웃사람들로 둘러 싸였고, 우리 처가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예언한다는 딸에게 큰 희망을 걸고 있고, 우리 형님댁은 꿈을 참으로 믿은 일이 있고, 존경을 받는 목사님은 신자들이 이마에 손만 대면 뒤로 넘어지는 기사를 행하며, 방언통역의 은사도 받고 장래를 말하는 예언의 은사까지 받았다는 사랑하는 친구들이 제 편지의 독자들 중에 있습니다.

이제 성경말씀을 좀 더 깊이 읽어가며 이러한 사건들이 하나님 말씀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알아 보겠습니다.

1. 성경에서 사용된 기사와 이적이라는 단어:

신약성경에는 희랍어 Semeion(sign[53], miracle[22], 기사, 기적)과, teras (wonder [16], 이적)과, dunamis(power[77], miracle[8], 권능, 기적)라는 세 단어들이 사용되었고, 구약성경에는 히브리어 oth(sign[60], miracle[2], 기사, 기적)과 Mopheth (wonder[23], miracle[2], 기사, 기적)가 사용되었습니다.

*( [ ]안의 숫자는 영어성경, King James Version에 번역된 회수입니다.)

위에서 말한 다섯가지 단어들이 기사, 이적, 표적등으로 번역이 되었으며,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운영하시는 삼라만상의 어느 법칙을 어기고 일어나는 현상을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능력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을 하나님 혹은 성령의 힘을 입은 특수한 사람이 행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2.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

사실상 4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3년 반 동안의 전도사역은 기사와 이적을 행하신 기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지 못할 때 성경은 한 권의 신화일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은 4복음서에서 약 40번 정도 읽을 수 있습니다.

그 종류를 분류한다면

A. 죽은 사람을 살리신 기록이 세번(마 9:18-25, 눅 7:11-17, 요 11:17-44),

B. 귀신을 내어 쫓으신 기록이 여섯번(마 9:33, 15:21-31, 17:14-18 막 1:26, 5:1-20 눅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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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병을 고치신 기록이 열 일곱번 (마 8:3,---, 요 9:1-7 등),

D. 창조주의 능력을 보이신 경우,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시고(요 2:1-11), 떡 다석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5000명을 먹이시고(마 14:13-21), 떡 일곱개와 작은 생선 두마리로 4000명을 먹이신 기록(마 15:32-39),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여 마르게 하신 기록(마 21:18-22), 바다의 풍랑을 잔잔케 하신 기록(마 8:23-27), 예수님께서 물 위로 걸으신 기록 등과,

E. 물고기 입에서 세금 낼 돈을 얻게 하신 기록(마 17:24-27), 153마리의 물고기를 그물로 잡게 하신 기록(요 21:1-14) 등이 있습니다.

3. 왜 예수님은 기적을 행하셨는가?

A. 구약예언의 성취,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믿게 하심.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마 1:23, 사 7:14)

"그 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사 35:5,6,)

"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 곧 나의 하는 그 역사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나를 위하여 증거하는 것이요"(요 5: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어늘---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치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신대"(요 10: 25, 37-38)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요 14:11)

"내가 아무도 못한 일을 저희 중에서 하지 아니하였더면 저희가 죄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저희가 나와 및 내 아버지를 보았고미워하였도다"(요 15:24)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0-31)

위에서 읽은 성경말씀은 구약에서 예언한대로 하나님 자신인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고(임마누엘), 우리 인간이 이 사실을 믿게 하기 위하여 기사와 이적을 행하셨음을 밝히 알려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예수님께서 엄청난 기사와 이적을 보이셨지만, 손꼽을 정도로 적은 수의 제자들만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사와 이적은 당시의 살던 인간들 뿐만 아니라, 역사상에 살던 모든 인간들과, 현세에 살고 있는 인간들이 성경의 기록을 통하여 예수님을 그리스도(구주)로 믿게 하기 위함입니다.

특히 이사야 35장의 말씀은 우리의 영혼이 구원을 받고 기뻐하는 것의 상징임을 알수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말하면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사와 이적은 우리에게 그리스도가 창조주시며 그 분이 우리를 구속하심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표적 보기를 원하던 바리새인들에게 하신 답변을 읽을 때 더 정확하게 알 수가 있습니다.

B. 요나의 기적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 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저희를 떠나 가시다"(마 16:1-4)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어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마 12:38-41)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께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 예수께서 마음 속에 깊이 탄식하시며 가라사대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게 표적을 주시지 아니하리라 하시고"(막 8:11-12)

이상의 구절은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기적이 우리 죄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신 후 사흘만에 부활하실 것을 지적하셨습니다. 분명하게, 그리고 누차 말씀하신 것은 요나의 표적 밖에 없다고 하셨으며,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모든 기사와 이적이 우리에게 요나의 기적을 가르치시기 위함이었음을 또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마음이 완악하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말씀을 부인하고 그 일부만을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표적을 주시지 않겠다"(막 8:12)고 하신 말씀을 믿는다면 지금 세상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모든 기사와 표적이 그리스도로부터 오지 않음을 믿어야 합니다.

또한 누가복음 2장 12절에 예수님의 탄생을 가리켜 "너희에게 표적이니라"고 한것은 예수님께서 "요나의 표적"이라고 하신 말씀과 일치합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구하는 표적에 대해서는 다음 편지에 자세히 살펴 보겠습니다.

4. 사도들이 행한 기사와 이적

기사와 이적을 사도들이 행한 첫째 이유는 그들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음을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 기사와 이적을 통하여 새로운 양상의 선교활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고후 12:12,막 3:14-15, 행 2:43, 4:33, 5:12,15, 19:12)

그러므로 사도행전에 기록된 기사와 이적은 유일하고 특수하며, 믿는 자들이 다 이러한 이적을 행할 수는 없습니다. 사도행전 후반의 기록에는 기사와 이적이 일어났던 수가 별로 많지 않으며, 점차로 그 수가 줄어가고 있었던 사실을 보게 됩니다.

사도시대 후로, 역사상 아무도 그러한 기사와 이적을 재연한 일은 없습니다.

 

5. 다섯 가지 은사

마가복음 16장 17-18절에는 예수님께서 다섯 가지 은사를 사도들(모든 믿는 자)에게 주신 기록이 있습니다. 우리가 거듭나는 순간 우리는 예언자가 되는 것이며(행 2:17), 우리의 삶 전체가 전도의 길을 걷는 것이 되며, 그 전도의 길에서 우리는 이 다섯 가지 은사를 다 사용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다섯 가지 은사를 상징으로 말씀하신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문제가 됩니다.

독사에게 물려도 그 독의 해를 받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독약을 마셔도 죽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이 다섯 가지 성령의 은사는 모든 믿는 자들이 거듭나는 순간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한결 같이 주시는 영적인 은사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단의 말은 복음이 아니므로 우리에게는 독이 됩니다.(약 3:8) 믿지 않는 자들이 받아 먹고 영원히 멸망에 이르는 독약이지만, 우리에게는 그 말을 들어도 해를 받지 않습니다. 독사는 사단입니다. 믿지 않는 자들은 사단의 지배 아래 있고, 우리는 세상에서 세상을 배우고 사단의 이웃에 산다 할지라도 우리가 받은 영생을 방해하지는 못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방언을 말한다는 것은 천국 방언인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는것이며, 우리가 고침을 받기 원하는 병은 멸망에 이르는 심령의 병이며, 마귀를 쫓아 내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순간 옛날 주인이었던 사단이 우리를 떠나고 만다는 뜻입니다.

이 다섯 가지 은사는 다 영적인 뜻이 있는 상징임이 분명합니다. 그 중의 몇 가지는 상징이 아니고 실제적라고 고집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깨닫지못한 증거입니다.

6. 가짜 기사와 이적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계 13:11)

이 구절은 말세의 마지막 환난 기간에 일어날 교회의 상태의 한 면입니다. 사단이 새끼양, 그리스도로 가장되어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속고 있으며, 그 짐승의 말은 용, 즉 사단의 말입니다. 그 말이 복음처럼 들리지만 복음이 아닙니다. "양의 옷을 입고 나아오는 거짓 선지자"(마 7:15)라고 하신 말씀도 같은 뜻이며, 양의 탈을 쓰고 있는 한 많은 사람들이 속고 있습니다.

성경은 마지막 때에 가짜로 행하는 기사와 이적에 대하여 경고합니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마 24:24)

기사와 이적이 아직도 성령의 은사로 온다고 가르치는 목사님들은 이러한 징조가 성경의 예언을 이루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기 직전에 교회가 부흥할 것을 성경이 예언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가르침은 사실이 아니며, 오히려 성경은 이와는 정반대로 온 교회가 비진리에 물들고 배도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딤후 3:1-5,살후 2:3)

방언을 하고 신유 안수를 하는 행사들이 무당들이 굿을 하는 것과 조금도 다른 것이 없습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예수님, 그리스도, 혹은 하나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 말씀에 생명을 걸고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구원하시는 그 복음을 찾을 때 진상을 발견할 것입니다. 사단을 광명의 천사라고 하신 말씀이 요한계시록 13장에도 설명이 있습니다.

또 다음의 성경구절(마 24:24, 살후 2:7-10, 계 13:11-14)을 다시 읽어 보면, 부흥사들이 행하는 기사와 이적이 가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단에게 속지 않도록 경고하신 성경 말씀을 여러 곳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어떤 부흥사들은 그리스도께서 기사와 이적을 행하신 이유가 자기들의 본을 보이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위에서 읽는 성경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기사와 이적을 행하신 것은 자신께서 메시야이심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7. 구약시대의 기사와 이적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약속을 시행하시기 위하여 여러가지 기사와 이적을 행하신 기록이 구약성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세가 바로 앞에서 행한 열 가지 재앙이나, 광야에서 만나를 내리시고 반석에서 물을 내어 이스라엘로 마시게 한 기록은 바로 이러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극도로 하나

님을 배반하고 타락했을 때 엘리야를 통하여 행하신 기적 등은 엘리야가 참 하나님이 보 내신 선지자임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알게 하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달하기 위하여 기적을 행하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왕상 18:36-37)

그러나 주목할만한 사실은 모세가 애굽 왕 앞에서 이적을 행하였을 때 애굽의 박사들도 비슷한 이적을 행하였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참 기적이 행해질 때 거짓 기적도 나타날 것이라는 역사적인 상징입니다. 엘리야가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제단을 불사르게 하던 경우에도 바알을 섬기는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적을 요구했으나 그들은 성공할 수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참 기적은 하나님께서 일어나게 하시지만 거짓 기적은 사단의 역사이며, 사단의 역사는 극히 제한되어 있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한도에서 행할 수 있음을 성경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리고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다윗왕이 기적을 행한 기록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만일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한다면 기사와 이적이 필요 없을 것이며, 이 말세에도 요나의 기적 외에는 다른 기적이 없을 것을 제시합니다.

기사와 이적으로 광야에서 먹고 마시던 이스라엘 백성이 다 광야에서 멸망한 사실은 기사와 이적으로 믿음을 유지하려는 현대 기독교인들에게는 큰 경고입니다.

 

8. 말세에 세상을 휩쓰느 기사와 이적

성경에서 읽을 수 있는 것 같이, 인간들은 초자연적인 현상을 보고 절대자를 이해 하려고 합니다. 사사였던 기드온의 경우(삿 6:17,36-40)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기사와 이적을 구한 것도 이러한 예라고 봅니다. 이 사실은 또한 인간이 제한된 육감과 생각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가 없음을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인은 믿음으로 만 살리라"(롬 1:7),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고후 5:7)고 하신 말씀은 거듭난 사람이 아니고는 이해할 수 없는 말입니다.

A. 성경에 "기록하라"고 하신 명령

우리의 상식으로도 생각해 볼 수 있읍니다. 만일 아직도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기사와 이적을 우리에게 주신다면, 모든 믿는 자들이 이 기사와 이적을 받아야 하며, 가령 100만명의 신자들이 100만가지 다른 기사와 이적을 받는다면 하나님 말씀의 일괄성과 절대성을 어떻게 찾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자기가 받은 계시는 성경말씀과 일치하다고 변명합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하나님께서 누차에 걸쳐서 기록하라고 명령하신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출애굽기(17:14, 34:27)에는 모세에게 "기록하라"고 하셨고, 모세는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기록하라"고 했고(출 27:3),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기록하라"고 하셨고(사 30:8), 예레미야에게 "기록하라"고 하셨고(렘 30:2,36:2), 사도 요한은 자기가 성경을 기록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제시(요 20:31)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기록하라"고 하신 명령에 순종한 결실이라고 믿게 됩니다.

B. 성경은 완성되었음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계 22:18-19)

저는 20세기에 살게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상 암혹시대가 1000년 이상을 계속한 이유는 백성들이 하나님 말씀에 직접 접할 수 없었기 때문이 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주 싼 값으로 성경을 살 수 있을 뿐 아니라, 성경의 원문을 희랍어/히브리어의 지식이 없이도 공부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진정한 의미로, 현대 믿는자들은 하나님의 계시와 예언하신 말씀을 흡족하게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사야에게 하신 모든 계시는 곳 우리에게 주시는 계시이며, 모든 선지자들에게 주신 계시가 바로 우리에게 주시는 계시입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 하는대 충분하고, 완전하고, 또 확실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에서 읽는 성경 구절에서 하나님은 엄중하게 명령하셨습니다.

성경말씀 외에 또 다른 하나님의 계시를 믿는다면 성경에 기록된 재앙, 즉 지옥에서 받을 형벌을 더 받을것이라고 하셨으며, 또 성경 말씀을 제하여 버리면, 즉 마음에 좋게 생각되는 성경 구절만 믿는다면, 천국에 들어갈 기회를 상실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얼마나 무서운 경고입니까?

그러나 참 믿는자들은 위에 말씀, 요한계시록 22장 18-19절에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계시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고 갈팡 질팡할 우리에게 유일하고 완성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찾을 수 있기때문입니다.

C. 아직도 일어나고 있는 기적

성경의 진리는, 초자연적인 기사와 이적이 복음과는 상관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기적이 있습니다. 이 기적은 예수님의 승천 후 근 2000년간 계속되고 있으며, 이 기적이 바로 요나의 기적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세상에 오시고 죽기까지 고난을 당하신 후 사흘만에 부활하신 기적입니다. 이 기적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기적입니다. 영원히 불붙는 지옥에 가도록 되어 있는 인간들 중에서 몇몇을 해방하시고, 죽었던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시는 기적은 세상에 유일한 기적입니다. 이 기적 말고도 또 다른 기적이 있다고 믿는 여러분은 하나님 말씀을 부정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히 "요나의 표적 밖에는 없으며" 또 "다른 표적은 주시지 않겠다"고 하셨는데 무슨 이유로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고 이상한 것을 바라 봅니까? 혹 어떤 초자연적인 기사와 이적을 행하므로써 명성을 바라보는 것이 아닙니까? 아마도, 일급 신자가 되었음을 과시하려는 것이 아닙니까? 또는, 교인수를 생각하며 수입을 계산하는 것이 아닙니까?

 

D. 신유, 우리의 병든 영혼을 낫게하심

인간을 창조하실때 하나님께서 병에 대하여 저항할 수 있는 체질을 주셨습니다. 많은 병이 약을 쓰지 않고도 스스로 나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위장병을 위하여 포도주를 쓰도록 권한 기록은, 우리가 병이 들었을때 약을 쓰는 것이 성경적임을 가르칩니다.(딤전 5:23)

병을 낫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도 잘못된 것이 없겠지만, 신유의 권능을 가졌다는 사람을 찾아가서 병을 낫기위하여 안수 기도를 받는 것은 성경적일 수가 없습니다. 자기의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제 3자에게 가서 절대자에게 기도 할 것을 요청하는 것은 이방종교나, 가톨릭종교가하는 일이며, 성경을 믿는 기독교인이 할 수 있는 행동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구약의 제사법은 폐하여 졌고, 우리는 직접 하나님앞에 나아갈 수 있게되었습니다.

 

우선, 구원의 본질을 바로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병을 고쳐야하는 일이 자신의 구원과 관계가 된다고 믿는다면 하나님께 직접 기도 함으로써 병의 고침을 받을것입니다. 그러나 병을 고치는 일과 구원을 받는 일은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인간은 늙고 결국은 병들어 죽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영생을 믿고 천국을 바라보는 사람이면 지상에서 장수하는 것은 고역(苦役)입니다. 일찍 죽어서 그리스도께로 돌아가는 것은 비할바 없는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사도 바울도 그것을 원했지만(빌 1:23) 하나님께서 그에게 전도하는 사명을 주셨기 때문에 그의 생명은 연장이 되었고, 건강하지못한 몸을 가지고 전도 생활을 했다고 짐작이 됩니다.

우리의 소망이 지상에 있을飁 건강은 가장 중요합니다. 사실상 몸이 건강하면 전도 사업을 하는데도 효과적이며 성경을 읽고 공부하는 일도 효과적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구원은 불가능 한 상태에서 오기때문에, 병들고 약한 사람들도 하나님께서 복음 전도를 위하여 효과적으로 쓰실 수 있는 것을 믿게됨니다.

결과적으로, 창세전에 나를 선택하셨고, 나를 거듬나게 하시고, 나의 일생을 친히 인도하심을 믿는 신앙이 있을때, 내가 안수 기도를 받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야고보서 5장 14-15절의 말씀도 우리의 영적인 병을 위하여 기도할 것을 가리켜 말씀 하셨음을 깨닫게됩니다. 이렇게 성경 말씀을 믿게되면, 부흥강사들의 신유가 다 예외없이 속임수이며, 속임수가 아닐때는 사단의 역사임을 알게됩니다.

E. 방언의 은사, 시험하시는 표적

1). 방언의 뜻 세가지

신약 성경에 나오는 방언(Tongues)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衁). 사도행전 2:4,11, 10:46에서 우리가 읽는 기록은 사도들이 외국어를 직접, 통역이 필요 없이, 말한 기록입니다. 사도들은 기적으로 외국말을 했습니다.

(遁). 요한계시록 5:9, 7:9, 10:11, 11:9, 13:7, 14:6, 17:15에 기록된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라는 표현은 복음이 세계적이며, 차별 없이 누구에게든지 전도됨을 지적합니다.

(鑁). 논제가 되는 방언은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시작하여 주로 14장에 기록된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2). 시험하시는 표적

"방언의 은사를 받은 표적이 없이는 성령을 받은 것이 이니다"라고 믿고 가르치는 교회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방언 은사는 하나님께서 말세에 교회를 시험하시는 한가지 방법임을 고린도전서 14장 21-22절을 읽고 공부 함으로서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다른 방언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저희가 오 히려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 (고전 14:21-22)

고린도 교인들이 말했던 방언이 분명히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였고 통역을 하는 은사까지 주셨던 것을(고전 12:10) 성경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은사를 주셨는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성경에 기록된 매사가 구원과 관계가 되는데 방언의 은사가 구원과 어떤 관계가 되는지 궁금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10)고 하셨는데 방언은 "구원을 입으로 시인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해 보았습니다. 그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시험하시는 과정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성경전체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시험하시는 과정을 기록하신 책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악과로 아담을 시험 하셨고(창 2:17), 아브라함을 시험하셨고(창 22:1),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시험하셨고(신 8:2),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에도 시험하셨고(삿 2:22), 사도 바울도 그러한 시험을 이겨야 된다는 간증을(고전 9:27) 누차 말한 일이 있습니다.

방언의 은사는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 말씀에 충실한가를 시험하시는 것입니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는 것은 유대인들이 표적을 구하던(고전 1:22) 것과 같으며, 방언은 신앙에서 오는 것이 아니며, 육신적이며 육감(六感)을 즐기는 현상입니다. 구원에 이르는 하나님의 은혜는, 예외 없이, 복음을 듣고 우리의 영혼이 죄를 깨닫고 통회할때에 만 오게 됩니다.

3). 이스라엘이 알지못하던 방언

 

신명기 28장 47-57절에는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섬기지 아니함을 인하여" "그 언어를 알지못하는 민족"에게 점령되어 비참한 심판을 받게될것을 모세를 통하여 미리 예언 하셨습니다.

이것과 동일한 예언을 이사야를 통하여 또 말씀 하셨습니다.

"생소한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인한 이스라엘의 심판과 멸망에대한 예언입니다. 고린도전서 14장에서 이사야 28장을 인용하신 이유는 방언이 구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멸망을 예언하는 메시지이기 때문입니다. 분명하게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믿는 자들은 구원에 대한 말씀을 깨달을때 그 말씀이 마음에 충족 함을 줍니다.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은 통역이 필요 없습니다. 이사야 36장은 역사적인 상징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앗수르가 북방 이스라엘을 멸망시킬때, 남방 유다는 아직도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유다왕 히스기야는 여호와를 경외했습니다. 앗수르 대왕 산헤림이 예루살렘 성 밖에 와서 히스기야 왕에게 항복할 것을 권유했을때, 앗수르 방언으로 말하지 않고, 유다 방언으로 말한 사실은(사 36:13),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기 백성에게는 "알지못하는 방언"으로 말씀하시지 않을 것의 약속입니다. 연약한 유다왕 히스기야는 앗수르 대왕 앞에 항복할 수 밖에 없는 처지였지만,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에 순종하고 어려움을 면했습니다.

그러므로 "알지못하는 방언"은 구약에서나 신약에서나 할것 없이 동일하게 멸망을 받을, 불순종하는, 믿지 않는 자들을 심판하시는 시험입니다.

 

여러분은 믿지않는자입니까? 방언이 심판과 멸망의 징조임을 알게 되었습니까?

여러분은 믿는자입니까? 방언은 선망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배웠습니다.

이상에서 공부한 성경 말씀, 고전 14:21-22, 신 28:, 사 28:을 종합하면;

(衁). 택한 백성이었던 이스라엘은 하나님 말씀에 불만했고, "알지못하는 방언"을 말하는 앗수르를 선망하고 따라가다가 시험에 빠져 멸망 당했고,

(遁). 고린도교회는 "알지못하는 방언"을 말하는 은사를 받았지만, 이사야 28장을 인용 하심으로, 방언은 시험하시는 것임을 배우도록 암시 하셨고,

(鑁). 말세에 처해있는 우리에게는, 방언이 사단의 역사가 아니면 거짓선지자의 농간임을 깨닫도록 경고하심을 배우게되었습니다.

(鱁). 방언 은사는 고린도 교회에 잠시 있다가 성경이 완성 되면서 없어졌음을 고린도전서 13장 8절에 "방언도 그치고"라고 한 것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ꁁ). 요한계시록 22장 18절 말씀의 경고는, 아무것도 더할 수 없게 되었는데 방언이 하나님께로 온다고 믿으며 또한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방언을 통역 한다는 것은 성경 말씀에 전면으로 위배되며 하나님 말씀의 경고를 무시하고 지옥의 재앙을 받겠다는 말이 됩니다.

4). 방언보다는 예언을

고린도 교회에 일어났던 현상을 더 자세히 살펴 보기 위하여 방언을 믿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모든 구절을 다음과 같이 적어볼 수 있습니다.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7)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고전 12:10)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고전 12:28)

"방언을 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고전 14:4)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전 14:18)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하기를 금하지 말라"(고전 14:39)

이상을 종합하면, 방언은 성령의 역사로, 개인에게 유익했으며, 사도 바울도 방언을 말했으며, 각종 방언과, 이를 통역하는 능력도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방언에 대한 부정적인 구절을 다음과 같이 열거할 수 있습니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방언을 말하는 자가 만일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통역하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고전 14:4-5)

"방언을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이나 말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리요---만일 나팔이 분명치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쟁을 예비하리요"(고전 14:6-8)

"그러므로 내가 그 소리의 뜻을 알지 못하면 내가 말하는 자에게 야만이 되고 말하는 자도 내게 야만이 되리니 그러면 너희도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 세우기를 위하여 풍성하기를 구하라"(고전 14:11-12)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고전 14:14)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고전 14:19)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무식한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무식한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그 마음의 숨은 일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시다 전파하리라"(고전 14:23-25)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임이라"(고전 14:34-35)

5). 남에게 덕을 주는가?

이상의 말씀을 종합하면 항상 방언은 예언과 대조가 되고 교회의 덕을 끼치지 못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바로 말세에 대하여 예언하신 사도행전 2장 17절의 구절을 지적합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라고 하셨고 또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고 명령하신 말씀과 잘 조화가 됩니다.

결론으로 말하면, 아직도 기사와 이적을 은사로 주시던 사도시대에도 방언을 말하던 일은 주님의 명령을 따라 복음을 전하는데 지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지상의 계명을 지키는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던 사실입니다.

하물며 성경이 완성되었고 예수님께서 사단의 무리가 기사와 이적을 행할 것이라고 예언하신(마 24:24) 마지막 대환난 시기에 와서 방언을 말한다는 것은 성령의 역사가 결코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둘째로 방언을 말하는 사람들은 (1). 신비한 것을 갈망하며 (2). 자신의 덕과 이익을 위한다는 사실입니다.

F.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는 기사

"큰 기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 오게하고 짐승 앞에서 받은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여---"(계 13:13-14)

위에서 읽는 성경 말씀은 말세 마지막 환난 기간에 사단이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게하는 이적을 행한다는 예언입니다. 이러한 일을 본일이 없음으로 말세는 아직도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말씀의 참 뜻을 알 수 있도록 설명해 줍니다.

1). 사단은 얼마만큼 기사를 행할 수 있는가?

하늘에서 불이내려온 사건을 성경에서 찾아 보면,

(衁). 하늘에서 불이 내려 왔던 처음 기사는 소돔과 고모라 사건이며, 하나님께서 유황불을 내려 죄의 도시 소돔, 고모라, 아드마, 그리고 스보임을 멸하셨습니다.(창 19:24, 신 29:23)

(遁). 두번째는, 모세를 거역하고 지도자가 되려했던 고라의 무리 250명을 하나님께서 불을 내려 멸망 하셨습니다.(민 16:35)

(鑁). 세번째는, 엘리야를 찾던 아함의 군사 50명이 두번 (도합 100명) 하늘에서 내리는 불로 소멸이 되었습니다.(왕하 1:9-12)

(鱁). 네번째로, 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자 450명과 대결하여 제단을 쌓고 번제를 드린 사건입니다.(왕상 18:20-40)

위의 사건에서 몇가지 진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의 표시입니다. 세상 마지막에 하나님께서 세상을 불로 멸하실 징조이며 또 상징입니다.

둘째로, 하늘에서 불이 떠러지게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표적이며, 사단은 이 표적을 할 수 없습니다. 바알의 선지자 450명이 하늘에서 불을 내리지 못한 사실은 사단의 능력은 제한되어 있음을 가르칩니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 13장 13-14절의 뜻이 무었인가?라고 반문 할 겄입니다.

성경은 비유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사단도 이 비유를 알고 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다니엘 8장 23절을 다음과 같이 읽을 수 있습니다.

"이 네 나라 마지막 때에 패역자들이 가득할 즈음에 한 왕이 일어나리니 그 얼굴은 엄장하며 궤휼에 능하며 그 권세가 강할 것이나 자기의 힘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며---"(단 8:23-24)

이 말씀은 말세에 나타날 적그리스도를 말하며, "궤휼에 능하며"(understanding dark sentences)의 뜻은 성경의 기록된 비유를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또한 사단의 권세가 자기의 힘이 아니며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한도 안에서만 행할 수 있음을 말합니다.

시편 78편 2절에 "내가 입을 열고 비유를 베풀어서 옛 비밀한 말을 발표하리니"라고 한것도 성경이 비유로 기록 되었음을 말합니다.

 

2). 뒤로 넘어지는 것, 하늘에서 불이 내리는 사단의 역사

그러면 "하늘에서 불이내리는 것"의 비유를 사단은 어떻게 알고있는가?라고 반문 할 것입니다. 그 답은 요한복음 18장을 읽음으로써 알 수 있습니다.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대답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가라사대 내로라(*I AM) 하시니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내로라 하실 때에 저희가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 지는지라"(요 18:4-6) *:I AM은 여호와 하나님의 한 이름이며, "내가 바로 하나님이다" 하신 것과 같음.

위의 말씀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기위하여 잡으러 왔을때의 사건입니다.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 자신인 예수님께서 자기를 잡으려 온 사람들을 하늘에서 불을 내려 멸하실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십자가에 달려야만 인간의 구원 계획이 이루워지기 때문이 었습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불이 덜어지는 것의 비유가 되는 "뒤로 넘어지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이적을 여러분은 생각하실 것입니다. 부흥 강사들이 사람들 이마에 손을 대면 뒤로 넘어지는 일입니다. 이 새로운 표적이 갑자기 온 세상에 퍼지고 있습니다. 이 표적을 행하는 부흥사들은 하나님으로부터 권능을 받았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쓸데없는 표적을 내리실 리가 없습니다.

그것은 성경의 예언을 이루기 위하여 사단에게 허락한 표적입니다. 신기한 것을 찾고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올무입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게 속하지 않은 여러분이기를 바랄뿐입니다.

9. 결론

A. 엘리야의 능력

성경이 세례요한을 가리켜 엘리야라고 한 이유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저희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니라 저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눅 1:16-17)

성경의 기적을 생각 할때 엘리야를 생각하게 되고, 하늘에서 불을 불러 내린 사건을 생각 하게 됩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이 능력있는 엘리야로 상징된 것은 기사와 이적을 말함이 아니고, 목숨을 바쳐서 까지 복음의 말씀을 전한데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요한을 가리켜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이가 없도다"(눅 7:28)라고 하신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리스도의 복음은 기사와 이적을 통하여 전해지지 않음을 가르칩니다. 구원의 권능은 오로지 말씀을 통해서만 오는 것을 배우게됩니다.

B. 카리스매딕 활동(Charismatic Movement)

역사적으로 카리스매딕 활동이 오래전에 시작 되었지만 지역적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 활동이 전 세계적입니다. 1990년도 신문 지상의 통계를 보면 세계에서 가장 큰 10개 교회가 다 카리스매딕(오순절 교파) 교회이며 그 중에서 제일 큰 교회가 서울 여의도에 있는 순 복음교회라고 합니다. 세계에서 해마다 늘어나고 있는 기독교 인구의 80%가 카리스매딕 교인이며, 모든 교파가 급속도로 카리스매딕 활동에 참여하고 있음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가톨릭교회가 개신교인 카리스매딕교파와 동맹을 맺고 전 기독교 혐회(Ecumenical Allience)를 조직 했습니다. 해마다 대회는 성황하며, 가톨릭 신부와 교인들의 인구가 그중 반을 차지한다고 합니다.

책 1994?가 발간 된후 New Jersey에 있는 템풀(Temple) 목사(Assembly of God교회)는 Family Radio의 선교 사업을 러시아에 까지 가서 방해를 했고, "Shock Wave 2000"라는 책을 발간하여 계속 Family Radio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이 탬풀목사와 몇분동안 얘기를 했지만, 캠핑씨가 카리스매딕 활동은 다른 복음(성경 이상의 하나님의 계시를 믿는)이라고 정의 한데 대한 반발로 쓴 책입니다. 이런 일들은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다른복음을 믿는 교파들이 서로 합작하여 또 잘못된 역사를 연출하는 것은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생겼습니다.

보이스(Boice)목사는 신학박사이며 필라델피아에서 목회하는 큰 개혁 장로교회의 목사입니다. 이분이 캠핑씨의 책은 전혀 읽은 일도 없이 탬풀목사에게 동조하는 서신을 보냈다는 사실입니다. 오랫동안 성경말씀을 고수해 오던 개혁 장로교회도 카리스매딕 활동에 눈을 뜨기 시작 했다는 점입니다.

C. 비 성경적인 카리스매딕 활동

1). 비 성경적인 가톨릭교회와 연맹하고 카리스매딕 활동을 하는 교파는 그 믿는 교리가 다른 복음임을 짐작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요이 1:10)고 성경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2). "방언을 해야 성령을 받은것이다"라고하는 주장은 전혀 성경의 근거가 없습니다. 사도행전에 세례를 받거나 성령이 충만하던 기록(행 4:8, 6:3,5, 7:55, 9:17-18, 11:24, 13:9등)을 읽을때 방언을 말한 기록은 한번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또한 성경에는 고린도교회 몇사람 외에 방언 은사를 받은 기록이 없습니다.(고전 12:7-11, 28-30)

3). 여자들은 방언도 못하게 되어 있었습니다.(고전 14:34) 물론 여자가 교회에서 장로나 집사로 일하는 것 역시 성경은 허락하지 않습니다.(딤전 2:11-15)

4). 디모데후서 3장과 여러 다른 구절이, 말세에 교회가 부흥할 것을 부인합니다.

5). 성경은 참 믿는자들이 거짓복음을 믿는 사람들과 교제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습니다.(행 13:8-10, 롬 16:17-18, 딤후 3:5, 요2 1:9-10)

6). 성경은 하나님께서 육신이 병든 자들을 언제나 고치실 것을 약속하시지 않습니다.(고후 12:7-10, 딤전 5:23, 딤후 4:20) 사도 바울은 자기의 질고와 약함을 기뻐했습니다.(고후 12:10)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위장병을 위하여 포도주를 쓰도록 권유 했습니다.

7). 부흥사가 안수 할때 뒤로 넘어지는 일은 사단이 하늘에서 불을 내리게하는 일의 상징이며, 복음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세상 종말에 세상을 불로 멸망하실 징조입니다. 하나님께서 참 믿는자들은 결코 혼돈치 않을것을 약속하십니다.(벧전 5:8-9, 고전 14:32-33)

10. 꼭 해야할 이야기, 안타가운 심정의 호소

지금까지 기사와 이적에대하여 상당한 수의 성경 구절을 공부했지마 아직도 성경에는 이 과제로 공부를 계속할 수 있는 자료가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사와 이적에 대하여 더 이상 공부를 계속할 생각은 없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성경 말씀을 어느모로 보든지 기사와 이적은 우리 신앙 생활에 백가지 해를 줄뿐이고 한가지의 이익도 주지를 못하기 때문입니다. 기사와 이적을 구하던 경우의 기록을 보면 그 사람들이 다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 속하고(마 12:38-39), 바리새인들이며(막 8:11), 예수님을 시험하는 자들이며(막 8:11), 외식하는 자들이며(요 6:30), 마귀들(눅 9:54)이었습니다.

지금 기사와 이적을 즐기는 자들이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이 아니라고 어떻게 변명을 하겠습니까?

저는 심정이 답답해지기만 합니다.

방언을 말해서 무슨 덕을 본다는 말입니까?

소심한 자들, 감정에 못이겨서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마음의 경험을 믿고, 그것을 보화인줄 알고, "얻었다고" 착각하는 여러분이 있습니까?

꿈에서 깨어나길 바랍니다.

땅의 소산에 현혹되지 말고, 하늘을 우러러 봅시다.

맑은 밤 하늘에 무수한 별들을 보십니까? 창조의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맑고 오묘한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경험을 저주 하십시요.

여러분의 방언의 경험, 병을 기적으로 고쳤다는 경험, 뒤로 자빠진 경험, 꿈의 경헙, 환상의 경험을 저주하십시요. 백해무익(百害無益)의 경험입니다.

광명의 천사, 거짓의 아버지로 나타나는 사단의 올무에 빠질 수는 없습니다. 내가 상한 심령으로 정직하게 은혜의 구원을 구할때 하나님께서는 숨겨있던 성경 말씀으로 응답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계명인 성경을 1,500년 동안에 기록하시고 2,000년 동안을 잘 간직해 두셨다가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를 받아 먹고도 광야에서 멸망한 이스라엘이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성경, 이 귀한 말씀,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이 말씀에 여러분의 생명을 걸기를 바랍니다.

이대우 드림, 12/12/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