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님께 드립니다

40여년만에 목소리를 들으니 반갑고, 만나보고 싶은 생각이 갑자기 납니다. 보내주신 tape를 잘 듣고, 누님께서 비평을 해 달라고 하셨기에 부득이 몇 자 씁니다. 저의 비평은 동생이 누님의 성공적인 일생에 대한 찬사만을 보내야 하겠지만, 오늘은 부득불 전도자의 한 사람으로 성경말씀에 비추어 솔직한 비평을 드리겠습니다.

우선 누님께서 어려운 인생을 슬기롭고, 성실하게, 그리고 끝까지 목회를 하겠으며, 자녀들을 다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고, 그것을 성취한데 대하여 설교를 듣는 모든 청중들이 찬사를 보내 드릴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평가를 하더라도, 누님과 매형은 존경을 받는 원로 교역자이며, 누님의 자본 투자의 성공은 경제적으로 상류층 생활 수준에 도달한 것이며, 68세가 되셨으니 또 틀림없이 장수(長壽)도 하실 분임이, 세상에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줄 압니다. 사실상 모든 교인들과 세상 사람들의 선망(羨望)의 대상이 되신 것입니다.

한 시간이 넘도록 설교한 내용을 보더라도 설교학이나, 수사학(修辭學)으로 평가한다면 누님의 설교는 놀라운 것입니다. 청중을 감동시키고, 그 청중이 무엇인가 삶에 대한 엄청난 교훈을 받고, 또 장래를 꿈꾸게 한 것을 생각한다면 누님은 참으로 선망의 대상입니다. 또 누님이 신학교에서 배운 목회학을 실천에 옮기신 것이니 이 동생이 부정적으로 평가할 아무런 내용도 없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이 동생은 평신도로 살아오면서, 교역자인 누님의 경험과는 다른 것에 비추어, 누님의 설교를 평신도의 입장에서 평가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몇 가지 얘기를 해 보겠습니다.

누님의 설교를 듣는 청중이 부녀자(婦女子)와 아이들이기를 바랍니다. 교회에서 여자가 남자를 가르치는 것은 금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고전 14:34). 지금의 많은 교회가 '여자도 강단에 서서 설교할 수 있다'는 주장을 여러 가지 구실로 하며, 심지어는 성경구절을 인용하여 변명합니다마는, 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시대가 인본주의(人本主義)를 높이 찬양하며, 소위 기독교인들이 인간의 자유의지(自由意志)를 주장하는 민주주의시대가 되고 보니, 신학교도 민주화하고, 무엇인가 말씀보다는 사회와 동조해야한다는 숨겨진 저류(低流)가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누님께서 졸업하신 서울신학교도 그 경향과는 멀다고 주장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사실상 그 인본주의의 경향은 16세기 종교개혁(宗敎改革)과 동시에 교회로 스며든 독소(毒素)라고도 하겠습니다.

참 그리스도의 교회는 계급사회입니다. 왕국입니다. 약 2,000년 전에 세상에 왕으로 오셨고, 지금도 우리의 왕이신 그리스도의 왕국입니다. 성경말씀은 그 왕국의 헌법이며, 그 헌법은 인간이 개정할 수가 없습니다. 왕국은 계급사회이며, 그 계급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이시며(엡 5:23), 또 여자의 머리는 남자입니다(고전 11:3). 이 계급사회의 절대 헌법을 신학교가 가르치지 못하기 때문에 숱하게 많은 여(女) 교역자가 쏟아져 나오며, 그 교역자들을 통하여 은혜를 받는다고 합니다마는, "하나님 말씀을 거역한 선지자"들에게서 들을 수 있는 그 설교가 무엇이겠습니까?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하는 사람의 생각일 것입니다. 누님께서는 성결교 교단의 총회장의 사모이시며, 신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분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설 때 여자(女子)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그리스도의 왕국에 살고 있음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천년왕국이 지상에 다시 온다고 믿는 허다한 교역자나 신도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의 명령계통을 이해도 못하고, 순종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성경을 한 종교의 경(經)으로만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내용을 타협(妥協)할 수 없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성경은 명령에 불순종하는 자들의 종말이 불의 심판 외에는 없다고 가르칩니다. 성경은 우리의 구원을 말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심판을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을 "양면으로 날이 선 검(劒)"이라고 하셨으니, 그 뜻이야말로 '하나님의 심판을 알지 못하면, 하나님의 구원을 알 수 없다'는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우리에게 무슨 보장이 있다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할 수 있겠습니까?

인간의 자유의지를 믿는 사람들은 인간이 하나님의 마음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말씀을 좀 순종하지 못하더라도, 열심히 믿고 그 믿음을 행동으로 증명하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은혜를 베푸신다는 생각입니다. "제사보다는 순종을 원하시는 하나님"(삼상 15:22)을 늘 마음에 두고 사는 것이 참 그리스도의 백성입니다.

얼마 전에 저를 몹시 놀라게 한 일이 있습니다. 존경하는 성결교 원로(元老) 목사님께서 "우리 성결교는 '하나님의 예지 예정'을 믿지 않습니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 목사님이야말로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主權)과, 능력을 믿지 못한다는 고백입니다. 인간의 자유의지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성경말씀을 내 생각에 맞고 필요한 것만 믿는다는 고백이 아닙니까? 대개 그러한 분들은 성경이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만을 가르친다고 합니다.

그 사랑의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물질의 축복도 주신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신앙을 지켜 나가는데 물질이 가장 큰 걸림돌이 됨을 가르치지 않습니까? 세상의 종말이 올 때 물질을 가진 자들은 다 '롯의 아내'가 되는 것이 아닙니까? 말하자면, 우리가 천국으로 가는 길에 가장 큰 화근이 되는 것이 재물(財物)이라고 단정할 수 있습니다. 재물을 가진 자들은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세상에서 아기자기하게 살고 있지만, 종말이 문 앞에 다가와 있지 않습니까?

누님 설교 중 몇 가지에 대하여 제 의견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라"는 설교가 사람의 심리를 잘 이용한 것이라고 봅니다. "죄를 바라볼 때 순간적으로 범죄하게 된다", 그러니 "온 인류의 죄를 속하시려고 세상에 오시어 십자가상에서 피투성이가 된 예수님을 바라보고 용기를 얻고 고난을 참아야 한다, 그리하면 축복이 온다"라고 누님은 설교했습니다. 지당한 말입니다. 그러나 만일 제가 같은 제목으로 설교를 한다면, "바라보라"고 하신 뜻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을 것입니다. "바라보다(Looking unto)"는 알아 보라, 배우라는 뜻이며, 말하자면 하나님의 백성이 된 믿는 자들이 본분(本分)을 아는 동시에,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약속에 대하여 찾아보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리고 원문의 뜻으로 보아, '찾고 배우는 일'을 지속(持續)하라는 뜻이 있습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본분이나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소식이 성경 밖에는 없으니, 결국은 말씀으로만 살라는 명령이 아니겠습니까? 교회가 성경에서 떠난지가 오래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바른 설교는 성경을 가르치며, 또 그 성경의 해설을 바르게 하는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성경말씀만 가지고 설교를 하면 듣는 자들이 없는 때가 되었습니다. 교인의 수를 늘리기 위하여서는 부득불 청중이 원하는 내용을 설교하게 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이 듣기를 원하지 않는 얘기들입니다. 청중이 듣기 싫어하는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하는 예레미야를 필요로 하는 때가 바로 종말입니다.

두번째로, 승리하는 비결에 대하여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라"고 하셨고, 히브리서 3장 1절을 말씀 하셨습니다. 여기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잘 설명하는 것이 설교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러나 누님은 이 대목에서 "고추장 꾸러간 아들", "도미(渡美) 영어시험에 합격한 아들", "아버지 몰래 신학교에 입학한 아들", 등의 얘기로 시작하여 "2,000만원 짜리 교회 건물을 산 일", "10억 짜리 교회의 건축", "2,000명의 신자를 만든 큰아들"등의 얘기들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라"고 한 제목을 설명한 것으로 들립니다. 저는 쉽게 긍정할 수가 없고, 자랑을 하는 것으로만 들립니다.

누님께서 두 아들 목사님들의 대화를 소개했습니다. 신자의 수가 적은 교회에 시무 하는 둘째아들 목사님이 말하기를 "형은 많은 신도들의 존경만 받는 목회를 하지만, 나는 나누어주는 목회를 계속하니 천국에 가서 받을 상(賞)이 클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물론 농담이었다고 생각합니다마는, 예수님의 "달란트"의 비유(마 25:14-30)로 저를 이끌어 갑니다. 한 달란트의 값이 보통 평민은 생각할 수 없는 엄청난 값($5,760,000=576만불)임을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성경공부; 천국과 정금에 대한 이야기를 동봉합니다) 우리가 달란트(복음)를 받았다는 사실이 엄청난 상금입니다. 이 달란트를 장사하는 사람만이 천국에 갈 것이며, 사람의 생각대로 복음을 전하는 자는 이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는 자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상이 무엇입니까? 누구에게나 동일한 상, 영생 즉 생명의 면류관이 아니겠습니까? 이 상(賞) 말고 또 무슨 상을 우리가 바라겠습니까?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주님의 종이 될 때, 그 일에 대한 상을 이미 우리가 받고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눅 18:28-30). 고생만 하고 세상을 떠난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 고생에 대한 상을 세상에서 이미 받았음을 거듭 간증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구원에 대한 확신", "받은 은혜에 대한 기쁨과 즐거움", "내게 주시는 말씀에 대한 부요(富饒)함"등으로 설명이 된다고 믿습니다.

 

누님 설교에 대하여 하고 싶은 내용이 많이 있습니다마는 버릇없는 놈이라고 책망을 듣기 전에 이만큼 하겠습니다.

만나본지 40년이 훨씬 넘은 지금에 와서 누님과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의 뜻을 살피면서, 누님과 매형께서 저를 도와 주실 수 있는 일에 대하여 얘기해 보겠습니다.

1. 제가 번역한 책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벨직 신앙고백과 성경이 뒷받침하는 해설"이며(약 350 페이지), 또 하나는 "옥중 수기, 나의 간증(약 65 페이지)"입니다. 벨직 신앙고백은 그리스도인으로 믿어야 할 성경내용을 체계적(體系的)으로 설명한 성경 공부입니다. 옥중 수기는 한국인을 위하여 선교사로 일하던 장로교 선교사, Bruce Hunt목사님의 눈물겨운 얘기입니다.

2. 이 책들을 출판하기를 원합니다. 제 공력(功力)을 쏟은 작품이며, 복음만을 생각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겠다는 결심의 결실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들을 제 편지의 독자들인 약 250명에게 보내 주었으니 복음사업 목적의 첫 단계는 달성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마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내기를 원합니다.

3. 누님과 매형께서 이 작품들을 읽어 보시고, 추천의 말씀도 써 주시고, 출판할 방법도 말씀해 주신다면, 얼마나 주님께 영광이 되겠습니까?

오늘은 이만 드리고 누님의 회답을 기다리겠습니다.

대우 드림, 2/22/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