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께 드립니다 ( 2)

목사님 교회와 목사님가정이 두루 평안하신 줄 믿습니다.

오늘은 지난번 목사님 편지 중에서 "여자의 입장"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을 성경 말씀에서 찾아 더 공부하고 목사님의 편지 중에 제가 믿는 것과 다른 점을 지적하여 몇 가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방언에 대한 성경공부는 또 다음달로 미루겠습니다.

성경을 공부하기 전에, 세상이 여자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인도여성: 인도인구는 약 10억으로 세계인구의 1/6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인도인구에서 여자의 인구는 남자보다 3000만이 적어졌다고 합니다. 인도 풍습에 여자는 시집갈 때 반드시 혼인 지참금(dowry)을 가져야만 시집을 가기 때문에, 모두가 남자만 낳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임신부가 밴 아이의 성을 미리 알기 원하며, 병원마다 sonoradio- graphy(태아의 성을 식별할 수 있는 x-ray장치)가 있고, 여자로 식별이 되면 낙태를 시키기 때문에 여자의 인구가 줄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뒤늦게나마 국법으로 낙태가 금지되어 있지만, 여아를 낙태시키는 풍습은 계속될 것이라고 합니다. 여자의 인권이 땅에 떨어져 있습니다.

아프리카여성: 여자의 인권이 아프리카에서는 더 비참하게 땅에 떨어져 있습니다. 아프리카 제국의 80%의 여자들은 할례를 받는다고 합니다. 이 할례는 종교적 행사이며, 여자가 아직 어렸을 때 성생활에서 쾌감을 주는 부분을 잘라버린다고 합니다. 그 결과 여자의 건강에는 지장이 있고, 여러 경우 생명의 위협을 받는다고 합니다. 아프리카에서 이러한 예식은 종교적이라기보다는 사회적인 관습이 되어, 여자가 할례를 받아야만 시집을 갈 수 있고, 아프리카에 이러한 풍습을 가진 나라들은 회교도 국이며, 회교도의 경()이 이러한 예식을 가르치지 않지만, 관습상의 법이라고 합니다.

기독교 국: 그런가하면 성경의 진리를 다 깨닫지 못한다 할지라도 성경을 종교의 기본으로 한 기독교나, 카톨릭교가 점령한 구라파나, 남 북미에서는 아프리카나 인도에서 일어나는 남존여비의 현상을 볼 수는 없습니다. 성경을 믿고 영생을 바라보는 그리스도 인들에게는 남존여비라는 단어가 낯선 외국어이며, 성경을 믿지 않더라도, 그 그림자 속에 자라나는 풍습에는 남존여비의 비참한 꼴을 볼 수 없습니다. 인도와 아프리카의 상태야말로 무질서한 사회이며, 특히 하나님께서 정하신 창조의 질서를 거역하고 불순종하는 상태입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질서만이 인류가 삶을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이며, 그 질서가 유지되지 못한다는 것은, 인류가 원치 않는 비참한 장래를 행하여 걸어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 장래는 멸망입니다.

창조의 질서: 질서에 대하여 생각해 봅니다. 모든 사회생활이나 기업이 질서가 서야만 그 생활과 기업이 존속됩니다. 예를 들어 어떤 회사가 100명의 종업원이 있다고 합시다. 100명이 다 사장이 될 수 없습니다. 100명의 군병이 있다고 합시다. 100명이 다 지휘관이라면 전쟁을 할 수 없습니다. 100명이 다 군졸이라면 전쟁에 이길 수 없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질서가 정연한 회사가 발전하고, 질서가 정연한 군대가 승리하고, 질서가 정연한 사회가 아름답게 발전할 것입니다.

우리가 늘 생각하고 배워야될 질서는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창조의 질서입니다. 창조의 질서는 우선 지구의 공전과 자전이 질서 정연한 것으로 시작하여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창조의 질서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있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기독교인들이나 교역자들이 성경은 지구의 공전과 자전과 같이 정확하고, 변화가 없다는 사실을 심중에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며, 믿지 않는다는 것은 모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한국인들은 외정 치하에서 일본 천황이 과시하던 주권을 경험했습니다. 천황이 쓴 조서를 읽을 때는 모두 허리를 굽히고 들어야 했고, 그 조서를 쓴 두루말이를 가지고 자나갈 때도, 사람들이 모두 허리를 굽히고 기다려야 했습니다. 세상의 어느 누가 그 천황의 조서의 내용을 고쳐볼 생각을 감히 했겠습니까?

그런데 요즘의 교역자들은 성경이 절대 주권자의 계명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의 어떤 구절은 믿고, 어떤 구절은 구미에 맞지 않아 믿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현대의 많은 교역자들의 신앙입니다. 수다한 기독교들이 고린도전서 14 34절은 하나님의 계명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모든 성도의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저희의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임이라"(고전 14:34-35)

36절에는 이 기록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다짐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난 것이냐 또는 너희에게만 임한 것이냐"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무시하고, 여 교역자를 세우고 여 장로를 뽑는 교회들을 어떻게 판단을 해야겠습니까? 남녀동등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들이라고 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이 사람들이야말로 하나님의 지혜를 내 자신의 지혜보다도 못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라고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성경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딤후 3:16)라고 하신 말씀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아닙니까? 결국은 말씀의 존엄성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말씀을 읽을 때 순종하는 마음을 하나님께서 주시기를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왜 그런가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한가지만 부정을 하면, 말씀 전체를 부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부정하는 인간들의 최후는 천국을 바라 볼 수 없음을 성경은 분명하게, 그리고 단호하게 가르치지 않습니까?

성경에 여성을 남성보다 못하게 창조하셨다는 얘기를 찾을 수 없습니다. "교회에서 잠잠 하라"고 하신 명령이 여자가 남자보다 못하게 창조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창조의 본래의 뜻, 창조의 질서를 성경에서 찾아보지 못한 탓입니다.

성경이 남존여비의 책이라는 어처구니없는 견해를 부정하는 성경구절을 찾아가서 살펴보겠습니다.

1. 우선 하나님께서 여자를 보시는 눈을 살펴보겠습니다. 창세기 2 18절에 "그를 (남자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돕는 자이기 때문에 남자만 못하다"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것은 마치 전쟁에 승리를 하면 전쟁을 지휘한 장군 만이 전쟁을 하고 이겼다는 생각과 같습니다. 창조의 질서는 여자가 남자를 돕게되어 있으며, 창세기 3 16절에는 이것을 더 분명하게 하셨습니다.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구절에는 음미해야 할 몇 가지 어구가 있습니다. 첫째는 "자식을 낳을 것이며"라고 하신 것은 여자에게만 주신 특권입니다. 남자가 아무리 자식을 낳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 천륜이며 창조의 질서입니다. 요즈음 세상에는 여자는 자식만 낳고, 기르는 것은 남편인 경우가 허다하다는 얘기를 듣습니다마는, 그러한 상태가 잘되어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창세기의 말씀이 창조의 질서를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대부분의 인간이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창조의 질서에는 영적인 뜻이 있으며, 그 뜻을 영적인 세계에서 사는 사람만이 바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창조의 질서는 신약시대에 이르러 사도들을 통하여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5:22) 이 구절은 남편에게 복종하지 않는 아내가 하나님께 복종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 아닙니까? 이 말씀이 우주를 창조하시고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다면, 어떻게 이 구절의 뜻을 변경해서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감사한 것은 에베소서 5 21절에서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남편도 아내에게 복종하라"고 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이것은 오로지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이루어집니다. 세상에서는 피차의 복종을 보기가 힘들 것입니다.

그 다음에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라고 하신 것은 명령 계통을 말씀하셨으며, 이 명령 계통을 전복시키려고 하는 것이 여권신장이라고 하겠습니다. 회사를 운영하는데 있어 사장이 있고, 과장이 있고, 계장이 있고 말단 종업원이 있습니다. 때에 따라서는 계장이 부장이 되고, 부장이 사장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군대에서도 졸병이 장교가 되고, 장교가 장군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마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남녀와 그리스도 사이의 명령 계통을 세상에 무슨 일로도 변경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생각은 이 명령 계통에 대하여 불평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3:28-29)고 하신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영광스러운 유업을 얻게 하기 위하여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각각 다른 직분을 주시고, 그 직분에 충실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2. 교회 회원으로서의 여자들을 성경 말씀에서 찾아보겠습니다.

구약에서 교회는 가족단위로 구성되었으며, 여자들이 모든 행사에 참석한 기록이 있습니다.

"오늘날 너희 곧 ---모든 남자와 너희 유아들과 너의 아내와 및 네 진중에 있는 객과 무릇 너를 위하여 나무를 패는 자로부터 물긷는 자 까지 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선 것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에 참여하며 또 너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오늘날 네게 향하여 하시는 맹세에 참여하여 여호와께서 이왕에 네게 말씀하신 대로 또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대로 오늘날 너를 세워 자기 백성을 삼으시고 자기는 친히 네 하나님이 되시려 함이니라"( 29:10-13)

이 기록은 이스라엘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지낸 후 가나안에 들어가기 직전에 모세가 이스라엘 온 회중을 모아 놓고 그 앞에서 설교한 내용입니다. 이 구절은 역사적인 기록만이 아닙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약속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 특히 20세기 후반에 구원을 받을 사람들에게 큰 비중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20세기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쉽게, 또 정확하게 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 구절이 강조하는 점은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남녀노소와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동일하게 주어짐을 가르칩니다. 이 약속이 또 요엘 선지자에게 하신 약속 즉,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 할 것이요"( 2:18)라고 하신 것과 동일합니다. 사도바울도 이 약속을,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3:28)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구약이나, 신약을 막론하고 교회에서 여자를 차별하여 남자보다 못한 책임을 주셨다는 생각은 결코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러면 목사님께서 반문하실 것입니다.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하셨는가? 라고 하실 것입니다. 교회의 질서 유지는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그 질서는 바로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신 것에서 시작합니다. 교회들이 여자도 교역자가 될 수 있다고 하는 사람들은 내가 그리스도와 동일한 자리, 혹은 그리스도보다 높은 자리에 설 수 있다는 사단, 루시퍼의 생각과 다른 점이 무엇이겠습니까?

오늘은 사도바울의 서신 중에서 여자에 대한 가르침을 몇 가지 더 찾아보고 편지를 마감하겠습니다. 사도바울은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명령하면서 그 명령이 자기의 생각이 아니고, 하나님의 명령임을 분명하게 말했습니다(고전 14:37). 그리고 또 38절에서 사도바울은 아주 심각한 사실을 선언했습니다. "만일 누구든지 알지 못하면 그는 알지 못한 자니라"고 했습니다. "알지 못한"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한 명령에 "불순종하면"그는 바로 "구원의 진리"를 모르는 자라고 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3. 디모데전서가 목회의 기준을 가르치는 책임을 우리가 모두 알고 있습니다. 1 9절에는 여자가 단정해야 함을 말하였고, 11-15절에는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함을 명령했습니다. 한국의 합동, 통합 장로교가 이 구절들을 성경에서 삭제해 버릴 계획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교역자 자신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부정함으로써, 구원을 거절하게되는 결과를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까?

이 구절에서 물론 여자가 벙어리가 되라는 뜻이 결코 아닐 것입니다. 여자가 교회에서 유년, 소년 주일학교 교장이 될 수 있고, 또 장년 주일학교의 성인여자 반을 가르칠 수 있을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2장 마지막 절은 여자의 영광스러운 직분이 자녀를 배고 해산하는데 있음을 말하고, 2000년간 복음이 전파된 이유가 여자들이 해산하는 직분을 충실히 했기 때문에 이루어졌음을 설명합니다.

여자가 없었던들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시지 않았을 것을 갈라디아서 4 4절이 설명합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4:4)

이 구절에서도 하나님 자신이 창조의 질서를 지켜야만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었음을 가르칩니다.

4. 디모데전서 3장은 감독의 직분, 즉 목회자의 자격을 가르칩니다. 여기에서도 여자의 단정함과 순종함이 남자가 감독의 직분을 수행하는데 절대적으로 요구되어 있습니다. "감독은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지며"(2-4)라고 한 것에는 목회자의 사모의 중책이 숨겨져 있습니다. 12절에는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여자와 자기 집을 다스리는 자 일지니"라고 함으로써, 가정의 질서가 여권신장을 찾으면서 이루어질 수 없음을 가르칩니다. 11절은 교회에서 여 집사가 될 수 있는 자격을 가르칩니다.

5. 디모데전서 5장은 여자의 가장 고상한 직분, "아이를 낳고 집을 다스리는 직분"을 가르칩니다. 지금은 여자의 이 고귀한 직분을 세상에서 무시당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종말을 직면한 사회가 이 고귀한 여자의 직분을 찾아 볼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잘 사는 이웃에게 뒤 떨어지지지 않기 위하여, 가정 주부가 직장을 가지고, 자녀들은 베이비 씨터(baby sitter)에게 맡겨야 하는 때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는 이유는 베이비 씨터를 두는 것보다 경제적이고, 아이들에게 안전하기 때문이다"라고 합니다. 교회가 젊은 부부에게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가르치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은 세상이 하는 방법을 따라 갈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6. 사도바울은 디모데전서에서 하나님께서 정하신 감독의 직분, 집사의 직분, 그리고 여자의 직분을 가르치고 명령하면서, 이 명령이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지켜야할 지상명령임을 지적함으로써 그의 편지를 마감했습니다.(딤전 6:13-14)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나타나실 때까지 점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교회가 그리고 교역자가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기다린다면, 하나님의 지상명령을 어떻게 부정하겠습니까?

7. 많은 교단이 여자 교역자를 세우고 여 장로를 뽑을 수 있는 이유를, 성경에 나타나는 여 사사 드보라나, 여 선교사 브리스길라 같은 경우를 말합니다. 예외(例外)가 판을 치는 시대입니다. 예외만 찾아가면서 자신의 입장을 변명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예외로 여성 지도자도 허락하시고, 여 선지자도 허락하셨는가? 하는 질문이 생길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4장을 공부하면 분명한 답을 얻게됩니다. 이 것은 방언의 경우와 동일하게, 우리가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지를 시험하시는 것입니다.(고전 14:12) 신령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말씀입니다. 말씀은 우리의 구원이며, 이 구원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창조의 질서를 통해서만 전달이 됨을 배웠습니다.

이것을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그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28:14)이라고 함으로서, 우리가 따라가는 길이 하나님의 명령인가를 살펴보아야 함을 가르칩니다. 예수님께서도 이와 같은 명령을, 그리스도의 길인 곧고( 3:5), 좁고( 7:13), 협착한 길( 7:14)을 따라가도록 명령하셨습니다.

한국 교단이 택하는 길이 곧고, 좁고, 협착한 길입니까? 목사님께서 잘 지적하셨습니다. "앞으로 여권신장은 계속될 것입니다"라고 한 것은 사실이며, 성경은 말세에 이르러 좌우로 치우치는 일이 막심할 것을 여러 곳에서 예언하셨습니다. 여권신장을 주장하는 여성 성토대회(聲討大會)에서 말하기를, 2020년대에 가면 여자가 미국을 통치할 것이며, 또 세계를 통치할 것이라고 예상한다고 했습니다. 무엇인가 세상이 깊이 깊이 좌로 치우쳐 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목사님께서 마태복음 1장에 족보에서 다섯 명의 여자의 이름이 기록된 것이 마치 남녀동등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하신 것 같습니다. 남녀가 동등하지 않다는 기록을 성경에 어디에서 찾을 수 있습니까? 성경은 인간의 구원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하나님이 계획하신 대로 되어지는 것을 거듭 가르칩니다. 어떻게 우리가 '남녀동등의 주장'이 어느 누구의 구원을 한치라도 돕는 다고 믿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구원은 말씀을 순종하는데서 만 옵니다. 그런데 죽어 있는 인간이 어떻게 말씀에 순종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선 우리를 살리셔야한다고 믿습니다. 불순종은 거듭나지 못한 것의 증거입니다.

목사님은 고린도전서의 가르침이, 사도바울 당시 고린도 교회 사람들에게 주신 말씀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로마서는 로마서인들에게 한 말씀이고, 디모데전서는 디모데에게 한 말씀이고, 구약은 이스라엘에게 한 말씀이라면, 목사님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어디에 있다는 말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말씀이 없이도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배울 수 있다는 고백입니까?

결국, 저에게는 목사님과의 대화가 참으로 신중합니다. 저나, 목사님이 다 길을 가고 있는데, 그 길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성경에서 길을 말할 때는 그 길이 생사(生死)를 결정함을 말하며, 구원의 길은 한길 밖에 없으며, 아무리 사람의 눈에 바르게 보인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길이 아닐 때는 멸망으로 가는 길임을 성경은 강조합니다. 성경이 지적하는 잘못된 길이 내가 가는 길이 아님을 확인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특히 걸어가기 쉬운 길을 걸어 갈 때 그 길을 살펴봐야 할 때입니다.

말세의 교회를 사도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예언했습니다.

"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 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 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여럿이 저희 호색하는 것을 좇으리니 이로 인하여 진리의 도가 훼방을 받을 것이요"(벧후 2:1-2)

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을 음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기만 기도합니다.

다음 편지에는 방언에 대한 성경 공부를 하고, 발견한 내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대우 가족 드림, 7/1/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