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장 성경은 믿을 수 있는 책인가?

 

우리가 세상 종말의 시기와, 세상 역사의 시간표와, 인류가 시작한 연대를 이해하기 위하여 성경상의 자료를 분석하기 전에, 성경 말씀의 신빙성을 먼저 검토해 보아야 한다. 모든 크리스천들은 성경이 구원에 관한 문제를 말할 때는 믿을 수 있다고 동의하나, 과학이나, 역사적 사실을 성경 말씀으로 논의할 때는, 대개의 경우 회의를 나타낸다. 특별히 창세기 1장에?shy; 11장까지의 말씀에 대하여 그 역사적이고 과학적인 정확성에 대하여 많은 질문이 제기되어 왔다. 만일, 세상 역사의 시작에 대한 자료를 기록된 사건들이 믿을 수 없다면, 결코 마지막 때에 관련된 시간표를 성경이 우리에게 제시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1. 과학은 성경보다 ?shy;등하다
 

최근에 많은 지질학자들, 고생물학자들, 그리고 다른 과학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연구 결과, 현재 상태의 세상이 존재하게 된 것은 오랜 기간이 소요됐다는 가설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많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또 온 세상에 범람한 홍수가 있었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고 결론을 짓는다.

이러한 과학자들이 과연 정확한가? 우리가 과거에 가졌던 것과는 전혀 다른 관점에?shy; 성경을 읽어야 한다는 말일까? 문자 그대로 세상을 6일 동안에 창조하셨다는 성경 말씀을, 우리의 선조 들이 믿었던 것이 잘못 되었다는 말인가? 온 세상을 뒤덮은 홍수가 있었고, 가장 높은 산보다 15규빗 높게 물이 불었다고 한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믿는 것이 잘못 되었을까?

불행히도, 발견한 자료에 의해 결론을 내리는 대다수의 과학자들은, 성경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거나, 성경 말씀에 아무런 관심도 가지고 있지 않는,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다. 사실 과학자들을 포함한 이 세상의 대다수의 사람들이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며, 성경 말씀에 관심을 갖지 않는 현상은 기정 사실이다. 그러나 성경을 믿지 못하는데?shy; 오는 문제들은, 이러한 비 성경적인 결론을 받아들이는 소수의, 소위 거듭?shy; 크리스천 과학자들 때문에 일어?shy;다. 그들이 이러한 비 성경적인 결론, 즉 유신론적 진?shy;론 같은 이론을 허용하는 것은, 크리스천이 아닌 과학자들이나, 과학에 종사하는 크리스천들이 이러한 주장들을 받아들이도록 영향을 미쳤다. 필자 자신도 젊었을 때는 성경이 가르치는 창조는 여섯 단계의 오랜 창조 기간이라는 주장에 동의했었다.

그러나 많은 진지한 크리스천들은 결정적으로 무엇인가 잘못 되어 가고 있는 점을 느꼈다. 그들은 이러한 점에 대한 불안감을 적절히 표현할 수 없었으나, 그들의 마음은 불편한 상태에 있었다. 아마도 그들은 이러한 새로운 과학적 사고를 받아들이는 것이, 인간을 성경으로 가깝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멀어지게 한다는 점에?shy; 두려워했을지도 모른다.
 

지구의 기원에 대한 의견이 양극?shy;된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보자. 첫째로 목사, 신학자 그리고 평신도들 중에?shy; 과학분야에 고등교육과 훈련을 받은 물리학자, 지질학자 그리고 다른 과학자들과 동등한 수준으로 대?shy;할 수 있게 과학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따라?shy; 과학분야와 신학분야 사이의 대?shy;는 아주 미미했다.

더욱이 우리의 신학적인 현상은, 종교개혁을 필요로 하는 가혹한 시련을 겪고 있다. 종교개혁가들이 최근에 와?shy;, 극도로 심중하게 된 이러한 사실에 대한 논의에 대답할 필요가 없었다. 따라?shy; 목사와 교사들은 이러한 질문을 가르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교과 과정을 갖추지 못하였고, 그들에게 성경을 배우게 된 우리는 필요한 성경적인 훈련을 적절히 받지 못한 것이다. 우리는 죄, 구원, 그리고 봉사 등을 다루는 분야에?shy;는 훌륭한 교육을 받아 왔다. 그러나 창세기의 첫 11장을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체계 있게 가르치지 않았다. 그러므로 과학분야에?shy; 박사학위를 받은 크리스천이라 하더라도, 성경에 관한 훈련은 우리와 거의 마찬가지이고, 그들의 전공한 분야에?shy; 성경상의 진리를 추구하는데는 많은 제한을 받는다.
 

창세기 기사를 문자 그대로 읽지 않으면 성경에 위반한다고 믿는 사람들과, 과학적 발견과 조?shy;를 이루게 하기 위하여, 창세기 기사를 해석하는데 폭넓은 자유를 허락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간에, 대립이 존재한다. 양쪽 입장에 ?shy;있는 믿는자들은 그들이 진리를 추구하고자 하는 소원에는 모두 진지하다.

또 다른 질문을 제기하고자 한다. 베드로후?shy; 3장에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나와, 노아 시대에 세상이 물로 멸망한 성경의 가르침을 부인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들이 이러한 것을 인정치 않는 이유는, 의식적이던가 또는 무의식적이든 간에, 그리스도께?shy; 재림하시며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이 이 세상에?shy; 수 백 만년 동안 존재했었다는 생각은, 지구의 종말이 우리 평생에 온다는 개념을, 전혀 지지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만일 창세기 6-9장에 말씀하시는 노아 때에 세상에 임한 심판이 확실하지 않다면, 세상에 심판이 임한다는 성경 말씀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데 회의를 가질 수 밖에 없다.

이 문제는 필자가 최근에 저명한 목사의 설교를 들으면?shy; 생각하게 되었다. 목사의 말은 지금 우리가 보는 초목들을, 예수님이 재림하신 후에도 같은 모양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후에 필자는 그 목사님에게 베드로후?shy; 3장에?shy; 이 세상이 불로 태워지고 신천지가 창조된다고 말씀하신 것을 동의하느냐고 물었다. 이 질문에 대한 그의 답은 베드로후?shy; 3장이 상징적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느냐고 말하면?shy;, 그것을 꼭 문자 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느냐고 되묻는 것이었다. 그의 답변을 곰곰이 생각하면?shy;, 나는 그의 이론적 답변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만일 노아 시대에 온 세상을 뒤덮는 문자 그대로의 홍수가 참으로 있지 않았다면, 창세기 6장과 9장에 표현된 언어는 상징적일 수 밖에 없으며, 베드로후?shy; 3장에 기록된 말씀도 역시 상징적이며, 비유라는 주장이다. 그렇게 되면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계된 성경의 모든 말씀도 역시 상징적일 수 있다. 이러한 사고가 궁극적으로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하신다는 진리를 완전히 부인하는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필자의 경험을 인용하는 것은, 현재 논의하고 있는 것의 중요성을 지적하기 위한 것이며, 이에 관련된 분명하고도 올바른 이해가 필요함을 ?shy;조하는데 있다.

이러한 질문에 답변하면?shy;, 관찰한 몇 가지 일반적인 견해를 제시하고자 한다.
 

2. 성경은 궁극적인 권위이다
 

(1). 성경 말씀은 정확하고 권위를 가지고 있다. 쉽게 말하면, 성경은 역사나 과학 그리고 심리학을 가르치려고 씌어진 책이 아니라, 타락한 인간을 위한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드러내려는 중요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러한 주장은, 성경이 과학이나 역사의 분야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는 정확하지 않다는 인상을 준다. 여기에 성경의 권위는 침해되고, 성경상의 중요한 진리가 경시된다.

 

그러나 성경이 과학이나 역사나 어떤 분야에 대하여 우리에게 가르칠 때 세심하고, 정확하게, 그리고 권위를 가지고 말씀하신다. 이에 대한 세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1). 성경의 한 주제는 구원 계획의 중심이 되어 있다.

(2). 성경은 하나님께?shy; 인간에게 주신 메시지의 일부분이다.

(3). 성경이 정확하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성경 전체가 그리고 또 성경의 세밀한 부분까지도 권위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신뢰할 수 있다는, 믿음을 방해하는 두 가지 중요한 사건이 역사상에 있었다. 그 첫째가 촬스 다윈(Charles Darwin)의 진?shy;론과, 라이엘(Lyell)의 균일 설(均一 說;지질의 변?shy;가 균일하게 부단히 작용한다는 설) 등, 과학적 이론의 전개였다. 다윈과 라이엘의 학설은, 과학적 연구에?shy; 얻어진 많은 증거에 의하여 뒷받침되는 것처럼 보이는 기원의 체계(Systems of Origins)를 제시하였다. 그런데 그들의 이론이 성경의 가르침과 역행하는 것들이었기 때문에, 성경이 과연 믿을 수 있는 책인가 하는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둘째 사건은 메소포타미아(Mesopo- tamia)와 애굽의 고대 유적의 발굴이었다. 첫 번째 고고학적 발굴은, 1798년 나폴레온의 원정에?shy; 시작되었지만, 이러한 유적의 본격적 발굴은 다윈과 라이엘의 이론이 제시될 때와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고대 도시의 면모가 밝혀졌을 뿐만 아니라, 그 당시 원시적인 도?shy;관들도 발굴되었다. 이러한 고대 문명의 언어들이 해독(解讀)할 수 있게 된 후, 진흙 ?shy;판(書板)에 기록된 내용들을 판독할 수 있었다. 그런데 대부분 신학자로?shy; 훈련을 받은 고고학자들은 이러한 ?shy;판에 기록된 내용들이 성경의 내용과 다른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그들은 성경의 내용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거의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고대 문헌과 성경이 같은 수준의 책으로 놓여지게 된 것이다. 성경은 이제 인간이 전개한 이야기의 하나로 간주되게 되었고, 다른 고대 문헌보다 더 높은 권위 있는 것을 인정하지 않게 되었다.

출애굽기를 전설로 간주하는, 국제적으로 저명한 고고학자, 알렌 가디너(Alan Gardiner)경은 매우 간결하게 그의 의견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출애굽기를 훌륭한 역사적 자료로 다루려는 사람들의 논리의 결여와, 사실에 대한 둔감성은, 나로 하여금 다른 쪽으로 기울게 한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실지로 발견되었을 때마다, 그것이 인정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정까지도 마지못하게 이루어졌다.

그 반면, 성경학자들의 고고학적 발견에 대한 그들의 결론은, 폭넓고 주의 깊게 읽혀졌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러한 과학적 결론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모순되는 것일 때, 감히 그 과학적 결론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심지어 보수적인 주석에?shy;도 성경 기록의 어떤 부분들의 신빙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예를 들면, 높이 평가되는 "설교 주석"(Pulpit Commentary)의 편집자들은 다음과 같은 글이 그 주석 책에 기록하게 허용하였다.
 

"비록 부분적 홍수의 아이디어를 성경이 명령적으로 금하고 있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과학은 부분적 홍수의 아이디어를 보여준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리고 세계 전면적 홍수가 있었다는 것에 과학적 반대의견이 아니라도, 노아의 대홍수 이전의 사람들을 휩쓴 "mabbul"은, 그들이 거주했던 지역에 국한되었다는 것을 믿게 만드는 적지 않은 이유가 확인되고 있다."
 

성경의 기록이 세속적 기록에 의하여 그 권위가 위협을 받게 되던 때에, 인류는 현대 과학시대로 들어가게 되었다. 지?shy; 수 십년간 과학자들은 의학, 물리학, ?shy;학 그리고 생물학 연구에?shy; 보여 준 그들의 업적에 많은 찬사를 받아 왔다. 이러한 과학자들의 발견 중에는, 지구를 구성하는 요소들의 연대를 유기 또는 무기적으로 측정하는 방법이 포함되어 있다.

그들이 내리는 결론은 지구가 적어도 수 십억 년 동안 존재했었다는 것이며, 이러한 결론은 다윈, 라이엘, 기타 다른 과학자들의 발견과 조?shy;되는 것처럼 보인다. 성경은 수 천년 전에 지구가 6일만에 창조되었다고 말하기 때문에, 대개의 현대 과학자들도, 수많은 고고학자들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되었다. 즉 과학분야에?shy;는 성경을 신뢰할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동시에 크리스천들은 성경의 기사를 과학적인 증거와 연관시켜 조?shy; 있게 설명하려고 시도하였다. 과학을 연구하는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이 역사나 과학분야에?shy;는 전혀 의미 있는 내용을 제시하지 못하며, 성경은 단지 신학자들을 위한 책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과학의 배경을 가지고 있는 많은 크리스천들이 갖은 입장을 반영하는 글들이 "기독교와 과학의 만남"(The Encounter Between Christianity and Science)이라는 잡지에 수록되어 있다. 크리스천으로?shy; 과학계를 이끌고 있는 자들이 집필하고 편집한 이 책에?shy;는 성경이 하나님, 예수님 그리고 구원의 문제를 말씀하실 때는 신뢰 할만하다는 가설로 시작하고 있다. 그들은 이런 주제들이 성경이 가르치는 중요한 내용이기 때문에, 이를 지원하는 역사적 또는 과학적 자료들은 반드시 정확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 결과로 진?shy;론이나 균일 설 등의 과학적 이론들은, 성경의 관점으로는 연구될 수가 없고, 하나님의 자연계시의 관점에?shy;만 이해될 수 있다고 말한다. 필자의 판단으로 말한다면, 그러한 가설들은 그들을 "신 정통주의"(Neo-ortho doxy)와 같은 철학을 유도하였고, 그것은 필자에게 바르트(Barth)와 부르너(Brunner)의 이론을 생각나게 한다. 바르트와 같은 학자들은 철학적 배경을 가지고 성경에 접근하였으며, 반면에 과학자들은, 과학이 그 스스로의 영역에?shy;는 최종 권위가 된다는 관점으로 성경에 접근하였다. 두 경우가 모두 성경이 가르치는 사실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성경의 역사 및 과학적 자료들이 반드시 정확하거나 사실일 필요가 없다고 믿는 것은, 믿는자들로 하여금 영적 진리에?shy; 멀어지게 한다. 즉 성경이 제시하는 하나님, 예수님, 또한 구원의 진리를 지원하는 역사 및 과학적 자료들이 반드시 정확할 필요가 없다고 믿을 때, 믿는자들은 성경이 가르치는 영적 진리 자체에 회의를 품게 되는 것이다.

"기독교와 과학의 만남"을 집필한 사람들의 결론에?shy;도 이러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

결론적으로 저자들은 다음과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

(1). 생물의 진?shy;는 과학적으로 인정될 수 있게 충분한 증거가 있음이 입증되어 왔다.

(2). 생물의 진?shy;를 받아들인다고 하여, 창조나 초자연적인 것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생물의 진?shy;는 초자연적 목적을 완성해 가는 당연한 과정이다.

 

필자는 이러한 결론이 성경이 씌어진 전체적인 목적을 사실상 파괴한다고 생각한다. 아담과 사단 사이의 역사적 대면이 없었다면, 그리스도께?shy; 오신 전체 목적이 의문에 잠기게 된다. 더구나 부베(Bube)박사의 결론을 뒷받침할만한 성경 구절을 누가 제시할 수 있는가? 필자의 판단으로는, 이러한 결론이 최대한 과학자들이 과학적 증거를 제공할는지는 몰라도, 어떤 의미에?shy;도 이러한 결론은 사실일 수가 없다. 예를 들면, 성경은 진?shy;론의 영역에 대하여도 말하는 것이 있다고 믿는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류의 연대를 이해하도록 도우실 것을 믿는다. 성경이 제시하는 연대는, 세속적인 증거로 유도된 결론과 정면으로 대립한다.

너무나 오랜 기간 동안 진실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여러 학문 분야에?shy; 성경이 적절한 지혜를 제공해 줌을 부인하는 유혹에 무?shy;을 꿇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의 모든 말씀이 전체적으로 정확하고 권위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3.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하라
 

(2). "우리가 이해하려고 하는 어떤 성경 구절에 대하여, 성경이 말하는 바가 무엇인가?"라든가 "성경이 허용하는 바가 무엇이냐?"하는 질문을, 우리의 아이디어에 부합시키려고 애를 쓸 때, 매우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성경을 해석하는 가장 기본적인 원리 중의 하나는, 성경 스스로가 주석이 되는 것이다.

어떤 주제는 성경에 여러 번 언급되어 있기 때문에, 문맥에 따라?shy; 여러 방법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성경이 해석할 수 있는 다른 길이 없을 때는, 다른 어떠한 해석 방법을 택해?shy;는 안 된다. 즉 성경이 그 해석의 한계를 세워야만 한다. 해석하려 하는 구절과 유사한 성경 내용을 통해?shy; 해석하도록 명확하게 허용하지 않는 한, 어떠한 구절도 자유로이 해석하려고 해?shy;는 안 된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믿음으로 받아 들여야 한다. 우리가 살아 있는 훗날, 또는 죽은 후에라도 성령께?shy; 그 구절을 분명히 해석해 주실 것이다.

예를 들어 저명한 고고학자, 레오나드 울리(Leonard Wooly)경의 노아의 홍수에 대한 발견을 생각하여 보자. 갈대아 우르(Ur of the Chaldees)의 옛 지역을 12년에 걸쳐 발굴해 낸 자료들을 검토한 후에, 레오나드경은 노아시대의 홍수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한정되어 있었다는 설을 발표하였다.

이 고고학자는 굉장한 홍수가 있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증거를 찾아냈다. 최대의 깊이가 11피트나 되는 침전물(silt)이, 그 침의선(沈毅線) 아래쪽에 인간이 살았었다는 증거와 함께 발견되었다. 레오나드경은 그의 연구에?shy; 창세기에 기록된 홍수는 평평하고 낮게 위치한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25피트 깊이와 3백마일 폭과 백마일 넓이 지역에 일어났을 것이라는 의견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shy; 말씀하신 것을 보면, 노아 시대의 홍수는 온 세상에 걸친 것일 수 밖에 없다. 이 사실은 성경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홍수에 관련된 성경 말씀을 살펴 볼 때 하나님께?shy; 이 홍수가 온 세상에 걸쳐 일어났었음을 말하는 분명한 표현을 반복하여 ?shy;조하심에 놀라게된다.

홍수를 말하는 성경 몇 군데를 살펴보자.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shy;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창 6:7)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shy;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창 6:13)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식 있는 육체를 천하에?shy;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자가 다 죽으리라"(창 6:17)

"지금부터 칠일이면 내가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나의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shy; 쓸어버리리라"(창 7:4)

"물이 땅에 더욱 창일하매 천하에 높은 산이 다 덮혔더니"

"물이 불어?shy; 십 오 규빗이 오르매 산들이 덮인지라"(창 7:19-20)

"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육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창 7:21)

"육지에 있어 코로 생물의 기식을 호흡하는 것이 다 죽었더라"(창 7:22)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shy;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홀로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만 남았더라"(창 7:23)

"물이 점점 감하여 시월 곧 그 달 일 일에 산들의 봉우리가 보였더라"(창 8:5)

"그가 또 비둘기를 내어놓아 지면에 물이 감한 여부를 알고자 하매 온 지면에 물이 있으므로 비둘기가 접촉할 곳을 찾지 못하고 방주로 돌아와 그에게로 오는지라 그가 손을 내밀어 방주 속 자기에게로 받아들이고"(창 8:8-9)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니"(창 8:21)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침몰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창 9:11)

"---다시는 물이 모든 혈기 있는 자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창 9:15)

 

지면의 모든 생물을 멸하셨다는 말씀을 볼 때, 노아의 홍수가 온 세상에 걸쳐 일어났었다는 것을 창세기에 씌어진 말씀보다 더 뚜렷하고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렇게 단호하고 분명한 말씀을 의심하는 것은 하나님 말씀의 권위에 반박하는 것이다. 역사상 온 세상에 범람했던, 노아 시대의 홍수를 성경에?shy; 묘사하신 것 같이, 분명하게 기록된 사건은 드물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이 문자 그대로 일어났었다는 것과 다른 결론을 가정하여?shy;는 안 된다. 더욱이, 성경 다른 곳의 유사한 구절들도 창세기에 기록된 구절들을 다른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구절들은 실제로 홍수의 성격과 범위에 대하여 창세기의 설명을 보?shy;해 주고 있다

(벧후 3:5-7, 시 104:6-9).

이러한 지구 지각(地殼)의 대 변동을 초래한 홍수에 대한 성경상의 기록에?shy; 오늘날 지질학자, 인류학자, 그리고 고생물학자들이 가지는 결론을 주의 깊게 재평가하여야 한다. 이러한 과학자들이 내리는 결론은, 태초로부터 이 세상의 변?shy;는 균일하고, 급격한 지각 변동이 없었다는 가정에 근거하고 있다.

그런데 크리스천은 이러한 과학의 가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 왜냐 하면, 모든 고고학적 발견은 역사상 한 기간에 온 세상이 홍수로 멸해졌었다는, 하나님의 분명한 말씀에 의하여 검토되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베드로후?shy; 3장 3-6절에?shy; 한결 같은 진리를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보여 준다.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shy;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shy;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shy;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이로 말미암아 그 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4. 창조
 

(3). 지구의 기원에 대한 과학적 결론은, 사실보다는 가설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많은 과학자들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여러 가지 자료를 제시하면?shy;, 세상의 기원이 오래 전에 있었다는 결론을 내리며, 많은 경우 그 결론은 타당하게 보여진다. 또 이러한 주제로 많은 인기 있는 논문들이, 같은 결론을 내리기 위하여 사용된 것이 틀림없으며, 그러한 결론만이 최선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과학자들이 American Journal of Science와 같은 과학 잡지에 의견을 기고한 것을 우리가 읽어 볼 때, 제시되는 자료들의 상당한 부분이 단편적인 내용임을 알 수 있다. 그들이 어떤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채택한 가설과 전제를 피력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의 결론을 흔들리게 할 수 있는 논문은, 아직 해결되지 못한 문제와, 예외적인 사항들을 진술하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과학자들은 그들이 내린 결론이 잠정적인 것이며, 또 이용할 수 있는 자료들의 희소성, 또는 때때로 그들의 기본 가설들의 불확실성 때문에, 필요할 경우, 그들이 내린 결론의 근본적 수정이 있어야함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불행히도, 일반 대중에게는 이러한 많은 결론의 초라한 모습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고 있다. 더욱이 창조에 관하여 연구되어야 할 근본적인 자료로써, 하나님께?shy; 주신 성경 말씀은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창조의 날자들을 기록한 성경은 지구의 기원에 관련된 과학적 증거를 평가하기 이전에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과연 6일보다 더 긴 어떤 기간에 창조되었다고 성경이 암시하거나, 또한 그러한 아이디어를 허용하고 있는가? 창조 첫날에 대하여 기록된 성경 말씀은 다음과 같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창 1:3-5)
 

첫째 날은 "하나님이 가라사대"라는 말씀으로 시작됨에 유의하자. 다음의 다른 다섯 날도 같은 말씀으로 시작한다. 그러면 잠시 이 첫째 날이 긴 기간, 예를 들어 백 만년을 의미한다고 가정해 보자. 이러한 가정은 성경에?shy; "날"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태양력의 하루보다도 긴 기간을 설명하는 구절들이 있으므로 타당해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면, 창세기 2장 4절에?shy;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에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 이러하니라"라고 하시는데, 이 곳의 "때"(히브리어로는"Yom"으로, 다른 곳의 "날"로 번역됨)는 창세기 1장에?shy; 말하는 모든 사건을 포함하거나, 최소한 둘째 날과 셋째 날을 포함함을 알 수 있다. 여기에?shy; 우리는 첫째 날이 하루 이상의 긴 기간일 수 있다는 가정이, 성경의 뒷받침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구절에?shy; 저녁과 아침을 말씀하시기 때문에, 첫째 날은 100만년의 반인, 50만년의 저녁과 아침의 두 기간으로 나뉘어져야 한다. 대개 하루를 밤과 낮으로 나?shy; 때는 50 대 50의 비율로 나뉘어진다. 계속하여 토론을 순조롭게 하기 위하여, 이 가상적인 백 만년은 어떠한 기준을 근거로 나뉘어질 수 있었음을 인정해야 하며, 그 때 비로써 우리는 논쟁을 계속해 나아갈 수 있다.

여기?shy; 고려된 첫째는 낮으로 불리는 빛의 기간이며, 둘째는 밤으로 불리는 어두움의 기간이다. 따라?shy; 저녁과 아침은 같은 구절에?shy; 표현된 낮, 그리고 밤과 반드시 직접 연관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점은 우리가 창세기 1장 5절을 이해하는데 있어 당연하고 논리적인 방법이다.
 

우리가 둘째 및 셋째 날을 검토할 때, 그 날이 의미하는 기간은 첫째 날과 같은 기간이라고 결론을 내려야 한다.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는 말씀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셋째 날이니라"는 말씀은 5절에 기록된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는 말씀과 동일한 표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첫째 날이 가졌던 기간이 둘째 날과 셋째 날에도 같이 적용된다고 가정하여야 한다. 둘째 날과 셋째 날도 역시 저녁과 아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두 날도 각각 약 50만년간 계속된 빛의 기간과 또 약 50만년간 계속된 어두움의 기간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곧 커다란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셋째 날에 창조된 초목들에게 50만년이 계속되는 긴 밤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아직 별이나 달이 없었기 때문에, 어두움은 절대적이었을 것이다. 분명히 이러한 긴 기간의 밤에?shy;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초목은 없다.

넷째 날 하나님께?shy;는 해와 달과 별들을 창조하셨다. 큰 광명(해)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셨고 작은 광명(달)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셨다. 이것 역시 저녁과 아침의 기간이기 때문에, 이 넷째 날도 우리가 처음 가정한대로 백 만년의 기간 동안 계속되었다면, 그 기간은 또한 50만년의 빛의 기간과, 50만년의 어두움의 기간으로 나뉘어졌어야 한다. 그러면 태양은 어떻게 운영되는가? 이러한 긴 기간의 밤 동안 태양이 어떻게 계속 비추고 있었을까?

이러한 것을 고려할 때 우리가 내릴 수 있는 분명한 결론은, 이 저녁과 아침은 태양력의 하루 동안의 기간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창세기 1장 5절을 다시 검토하면, 창조의 매일은 24시간이며, 창조의 각 "날"이 첫날에 창조된 "낮"의 빛이 비추인 기간이라는 것을 이해하면, 위에?shy; 제기되었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가 있다.

처음 세(3) 날들은 태양이 없이 24시간씩 계속되었다. 그런데 넷째 날은 태양과 함께 같은 리듬으로 계속되었다. 비록 첫째 날의 빛이, 넷째 날 태양 빛으로 대체 되었지만, 지구는 오늘과 마찬가지로 첫째 날에도 매 24시간마다 지축을 회전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24시간의 리듬은, 12시간씩 번갈아 일어나는 빛과 어두움의 기간에?shy;도 나타날 수 있었다. 이렇게 이해할 때에 우리는 창세기 1장에 있는 내용의 조?shy;를 찾을 수 있다. 히브리어의 "Yom"은 성경에?shy; 약 1,480번 사용되었는데 그 압도적인 용도는 위에?shy; 설명된 바와 같이 태양이 비취고 있는 기간이라든가, 24시간의 하루를 가리키는데 사용되었다. 이것은 또한 "날"이라는 단어를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창세기 1장을 태양력(太陽曆)의 하루의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은 창세기 1장에?shy; 사용된 "Yom"의 가장 분명한 이해일 뿐만 아니라, 전체 성경과 완전한 조?shy;를 이루는 것이다.

잠시 하나님께?shy; 안식하신 일곱째 날을 살펴보기로 하자. 흔히 말하기를 성경의 일곱째 날이 긴 기간이라는 개념을 돕고 있지 않는가?

만일 하나님이 창조 사역을 중지하신 것이, 창조의 여섯째 날의 끝에?shy; 시작하여, 시대의 마지막이 되는 때까지라면, 이것 역시 6일 동안이 긴 기간이라고 암시하는 것이 아닌가? 여섯째 날 마지막에 하나님께?shy; 그의 사역으로부터 쉬시고, 그의 처음 창조를 계속하지 않으셨다는 것이 과연 사실일까? 하나님께?shy; 참으로 더 이상의 창조를 하시지 않으셨는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예수님께?shy;는 요한복음 5장 17절에 "예수님께?shy;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shy;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라고 말씀하셨다. 이 구절은 분명히 하나님께?shy; 쉬고 계시지 않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곱째 날이 다른 6일 동안의 기간보다 긴 어떤 기간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없다. 또 출애굽기 20장 11절과, 출애굽기 31장 17절에?shy;와 같이 하나님께?shy;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다는 말씀이 성경에 표현될 때마다, 그 문맥은 태양력에 의한 하루를 말씀하시는데 유의하자. 비록 하나님께?shy; 그의 태초의 창조를 완료하셨지만(창 1:), 과연 하나님께?shy; 계속 창조 사역을 아니하신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예를 들면 하나님께?shy; 새 생명을 창조하지 아니하시는가? 시편 104편 30절에?shy; "주의 영을 보내어 저희를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라고 기록된 말씀을 읽을 수 있다. 또 시편 102편 18절에는 "이 일이 장래 세대를 위하여 기록되리니 창조함을 받을 백성이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이 구절에?shy; King James 번역은 창조하다 또는 창조되었음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bara"를 가장 정확히 번역했다). 이 두 경우에?shy;, 하나님께?shy; 새 생명을 창조하심으로 그의 사역이 계속되고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예수님께?shy;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을 베푸신 것도, 하나님의 극적인 창조 활동임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창조 사역은 가인의 출생과 함께 계속되었으며 첫 창조 후, 새로운 식물들이 수년에 걸쳐 성장하는 것과 더불어 계속되었고, 하나님께?shy; 제 7일에 안식하신 것은 매우 짧은 기간이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제 7일을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고, 조?shy;가 되는 기간은 태양력의 하루일 수 밖에 없다. 이것은 창조의 6일이 태양력의 6일이라고 해석을 또한 보?shy;해 준다.

그러므로, 창세기에?shy; 읽는 구절들의 표현과, 성경 전체 문맥에?shy; 논리적이고도 조?shy;를 이루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그것은 창조 활동을 태양력의 6일과 같은 기간 동안 계속된 거임을 깨닫는 것이다. *오병이어: 다섯 덩이의 떡과 두 마리의 물고기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과학적 증거가 이러한 원칙에?shy; 관찰되어져야 함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shy; 우주를 처음 창조하셨을 때 우주는 마치 창조 된지 오래된 것처럼 완전히 운영되었다. 그러므로 예를 들면, 별이나 짐승과 같은 우주의 부분들은 창조된 순간 이미 어떤 나이가 들어 보이도록 된 것이다.

 

(4). 어떠한 잘못 가르치는 내용이 진리로 보여질 수도 있다. 교육자료 중에는, 가르침이 정당함을 지적하는 많은 증거들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에 공부를 많이 한 석학(碩學)들이, 이슬람교나 다른 거짓 종교들을 진리로 받아들이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이러한 종교에?shy; 진리와 같아 보이는 것을 얼마나 많이 발견했는가 에는 관계없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말도록 가르치시는 이유는, 그러한 종교가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공산주의는 그 아이디어가, 하나님은 무한하시며 또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가르침에 기초를 두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이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훌륭한 사상가들은 공산주의를 참되고 분명한 정치-종교 체계로 받아들이고 있다.
 

마찬가지로 창세기의 6일에 대한 기록에?shy;, 긴 기간의 개념을 주장하는 것은, 그 주장 자체에 풍부한 진리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면, 성경에는 연대를 결정하는데 조?shy;가 된다는 논설이 많이 있는데도, 그 기초가 분명히 성경에 의거하지 않는 한, 그러한 논설은 전체적으로 거부되어야 한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논설의 내용이 일관성을 갖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잘못된 것을 계속 추구해 나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궁극적 진리는 그 기초가 확실할 때에 비로소 믿어질 수 있다.
 

최근에 필자는 한 진지한 거듭?shy; 크리스천 과학자와 여러 시간 동안 의견을 나?shy; 기회를 가졌었다.

그는 연대를 측정하는 방법에 사용되는 방사성 동위원소 분야에 많은 교육과 경험을 가진 분이다. 그런데 그는 역시 창조의 긴 기간을 타당한 결론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으며, 노아 홍수에 대하여도 확실치 않아 보였다. 그와 대?shy;하는 동안 필자의 마음은 매우 편치 못했다. 왜냐 하면 그의 결론에는 엄청나게 중요한 요소들이 결여되었음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비록 거듭?shy; 크리스천으로?shy; 마땅히 같은 진리를 발견했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의견에 일치할 수 없었다.

이러한 자신의 생각을 곰곰이 분석하면?shy;, 이 느낌이 캘리포니아주의 산타크루즈에 있는 미스터리 스팥(Mystery Spot)을 방문했을 때와 흡사한 것을 발견하였다. 언덕에 위치한 이 장소는, 일반적인 중력의 방향을 갖지 않는 것처럼 보이며 적어도 그들은 그렇게 주장하였다. 물이 언덕을 거슬러 올라가는 등, 이 곳을 찾아온 방문객들은 많은 흥미로운 현상을 목격하며, 현기증(眩氣症)이 날 정도이다. 이것은 참조 평면(plane of reference)으로부터 방문객들을 이동시킴으로 그 목적을 이루게 한다.

방을 둘러싼 바깥벽이 있는 선실이 지어졌는데, 보통 수평면으로 있을 마루와 천장을 경사지게 지었으며, 벽, 문짝, 창문과 같이 수직을 이루는 것들을 그렇지 않게 보이도록 설계하여 지었다. 따라?shy; 이 선실에 들어선 방문객들은 이상하게 지어진 선실 내의 광경을 보고, 그것과 자신이 일반적으로 수직 또는 수평으로 생각하던 것과 다른 상황에?shy; 느껴지는 중력의 방향감각을 조절하려고 애쓰게 되며, 이러한 상태에?shy; 그들은 어지러움을 느끼는 것이다.

더욱이 물이 언덕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처럼 보인다. 다른 말로 하면 이 언덕에 여러 모양으로 그럴듯하게 보이도록 전개시킨 진리 체계는, 진짜 참조 평면과 연관지어 볼 때 완전히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으며 방문객들은 이곳을 떠나면?shy; 그것을 알게 된다. 진짜 참조 평면에?shy; 있어야 할 곳에 주요 요소들이 빠진 상태에?shy;, 그럴듯하게 보이는 진리가 진리로 나타?shy;다.
 

5. 믿음: 잃어버린 중요한 요소
 

그 과학자와 헤어진 후 나는 시편 104편과 다른 곳에 기록된 홍수에 관련된 성경 말씀을 다시 읽어보았으며, 히브리?shy; 11장 3절을 읽으면?shy; 안도의 숨을 쉬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shy;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과학자와 필자 사이의 대?shy;에?shy; 빠졌던 요소는 성경이 분명히 가르치는 믿음이었다. 이 믿음은 우리가 진리를 찾고자 할 때, 모든 과학 연구의 밑바탕에 깔릴 기초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shy; 아브라함에게 그의 아들 이삭을 희생 제물로 바치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 명령은 어리석은 것으로 보였다. 만일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을 죽였다면 그것은 하나님께?shy; 아브라함에게 주신 모든 약속, 즉 그가 ?shy;국의 아비가 될 것이며, 그의 후손으로 ?shy;국이 복을 받게 되리라는 약속들을 무효?shy;시키게 된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러한 모든 모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순종해야 한다고 믿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대한 맹목적인 신뢰를 가졌기 때문에 순종하였다. 이것이 믿음이다. 믿음은 성경 모든 분야에 걸친 내용에 골고루 퍼져 있는 기본 요소이다. 믿음은 사실처럼 보이는 인간이 만든 이론과,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진리 그 자체인 하나님의 말씀 사이에, 차이를 낳게 한다.
 

지금 논쟁의 요점은 필자의 친구인 과학자의 믿음의 질이나 양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일은, 필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멀리 해야 한다. 필자가 먼저 "주님 내가 믿습니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시옵소?shy;"라고 부르짖어야 한다. 지금 논쟁이 되는 요점은 성경 말씀의 진리가 우리가 볼 수 있는 우주의 모든 분야에 적용될 때, 믿음으로 일관성을 가지고 관찰하지 않으면, 그 중요성을 잃어버린다는데 있다. 믿음이 없이는 비 성경적인 증거를 이해하는데 있어 성경이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다. 이것은 구원에 관련된 진리뿐만 아니라, 성경이 가르치는 모든 다른 지식분야에도 적용된다.
 

예수님께?shy;는 비유로 가르치는 이유를 ?shy;조하여 말씀하셨다. 마가복음 4장 2절에 "이에 예수께?shy; 여러 가지를 비유로 가르치시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즉 예수님께?shy; 가르치시는 복음의 말씀을 보다 쉽게 이해시키기 위하여 우리에게 비유로 가르치셨다고 추측할지도 모르나, 사실은 그 정반대이다. 마가복음 4장 11-12절에 기록된 말씀을 읽어보자.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이는 저희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시고"
 

유대인들이 가졌던 문제는 그들이 논리적인 메시아를 기다렸다는데 있었다. 메시아는 논리적으로 어떠해야 한다는 그들의 생각을 만족시키지 못하였고,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배척하였다. 그들이 참회하는 믿음으로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에, 복음이 제시하는 가장 미미한 진리조차도 그들이 깨닫지 못하도록 예수님께?shy; 비유로 가르치셨다. 반면에 베드로, 마리아, 마르다 및 몇몇 사람들은 믿음으로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 들였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 말씀의 놀라운 지혜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경의 진리는 성경을 절대 오류(誤謬)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먼저 겸손히 신뢰하지 않고?shy;, 진리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숨겨지게 된다.

인간과 지구의 기원에 관한 지식으로?shy;, 그럴듯하고 일관성이 있어 보이는 논리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을 걱정한다. 이러한 시스템의 많은 부분이 성경과 조?shy;되지 않고, 또 성경이 비논리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신뢰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과학을 탐구한 대다수의 학도들이, 믿음에 대하여는 전혀 아는 바 없는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들임을 우리가 잊고 있다. 우리는 성경 말씀에 잘못된 것이 없다는 믿음으로 시작할 때 에야만, 성경의 아름다운 논리가 우리들에게 드러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성경의 모든 자료를 가지고 과학적 탐구를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믿음으로, 세속적인 자료가 제시하는 증거를 이해하는데 성경 말씀을 근거로 사용되어야 한다.
 

(5). 과학에 대하여 말할 때, 우리가 성경 말씀을 믿을 수 있는가? 이전 크리스천들을, 지구가 평평하다는 잘못 된 결론을 믿게 함으로, 그들의 믿음을 이끌지 않았던가? 거의 천년 전에, 지구 일부의 평평한 작은 지역에?shy; 살면?shy;, 그들이 살고 있는 지역을 유일한 세상으로 생각했던 우리 조상들은, 태양이 하늘을 가로질러 땅 끝 이쪽에?shy; 저쪽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관찰하였고, 그렇게 알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들은 지구가 평평한 테이블과 같은 모양이라고 굳게 믿었다. 공과 같은 불덩어리인 태양은 평평한 지구 주위를 돌고 있다고 그들은 결론지었다.

이러한 결론을 검토한 오래 전 시대의 크리스천들은, 지구가 평평하고 태양이 공과 같은 불덩어리라는 아이디어를 성경이 뒷받침한다고 수긍했다. 사실 성경 말씀에 그러한 결론을 뒷받침하는 많은 구절들을 찾아볼 수도 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말씀은 "땅 끝"(시 59:13), "땅 사방"(사 11:12), 그리고 "해 돋는 데?shy;부터 지는 데까지"(시 50:1)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보다 폭넓게 성경을 공부해 보면, 그들이 내렸던 결론이 잘못 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전에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던 몇 가지의 진리가 있다. 성경 어느 곳에?shy;도 지구의 모양이 평평하다고 확실히 말씀하시는 곳은 없다. 이와 반대로, 지구가 오히려 둥근 모양이라는 것이 암시되는 말씀을 이사야?shy; 40장 22절의 "그는 땅 위 궁창(circle of the earth)에 앉으시나니"라고 한 것에?shy; 볼 수 있다. 욥기?shy; 에는 지구를 언급하는 비유적인 용어를 사용한다.
 

"수면에 경계를 그으셨으되 빛과 어두움의 지경까지 한정을 세우셨느니라"

(욥 26:10)
 

궁창이나 경계(circle)에?shy; 사용된 표현은 모두 원형(circle)을 묘사하며, 표면 위의 어떤 지점에?shy; 볼 때 원형으로 보임은, 지구가 둥근 모양임에 틀림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한다. 여러 곳에?shy; 찾아 볼 수 있는 다른 성경 구절은 불타는 공이 천천히 하늘을 가로질러, 네 모가 ?shy; 테이블 이쪽 끝으로부터 저쪽 끝으로 움직이는 평평한 지구라는 개념을 암시한다.

그러나, 분명하게 달리 말씀하시는 다음과 같은 구절에 유의하자.

"그가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으로 해면에 두르실 때에 내가 거기 있었고" (잠 8:27)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전 1:6)

"그는 북편 하늘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공간에 다시며"(욥 26:7)

 

그러므로 지구 모양에 대한 모든 성경 말씀을 고려해 볼 때, 지구의 형태가 결정적으로 어떠하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다. 성경은 분명히 평평한 지구의 모양을 ?shy;조하고 있지는 않으며, 오히려 지구의 모양이 둥글다는 점을 가리키는 많은 구절들을 보여주고 있다. 세상의 과학적인 자료들은 지구가 우주 공간에 구형으로 있다는 증거를 제시한다. 그런데 성경은 이와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이러한 개념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성령께?shy; 어떻게 인간을 인도하시어, 성경 안에 정확하고 믿을 만한 것을 기록하게 하셨는지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6). 성경을 어떻게 대하여야 하는가? 얼마 전에 필자는 크리스천 공동체가 하나님 말씀에?shy; 점점 멀어져 간다고 어떤 목사와 논의한 적이 있었다. 우리가 헤어질 때 나와 함께 있던 친구는, "결국 성경은 하나님이 아니지요"라는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그의 주장을 곰곰이 생각하면?shy; 필자는, 교회가 현재 처해 있는 심각한 문제를 보기 시작했다. 왜냐 하면 이러한 주장에?shy; 허약해진 교회의 영적 상태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왜 그런지 그 이유를 살펴보자.

최근에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 의심할 바 없다는 점에 대한 많은 글들이 씌어졌다. 저자들은 학문적 설득력을 가지고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성경이 말하는 것은 모두 진리이고, 믿을만하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또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으며, 최종 권위이며, 신빙성이 있고, 정확하다고 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으면?shy;도, 진정으로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씌어진 책으로 믿는 여부에 의심을 가질 수 있다. 구원에 대하여 하나님께?shy;, 행위가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와 같이 그는 그리스도 안에?shy; 가지고 있는 놀라운 믿음에 대한 행위를 끊임없이 표시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그의 행위가 믿음의 증거를 보이지 않는다면, 그의 믿음은 죽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성경이 오류가 없음을 받아들인다고 하면?shy;도, 성경을 해석할 때, 명확하게 해설하지 않는 한,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 13장 3-23절에 기록된 씨뿌리는 자의 비유가, 누가복음 8장 4-15절에 기록된 것과 다르다는 사실에 관심을 기울일 때가 있다. 이와 같이 그 내용이 다른 이유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 자체를 독자들을 위해, 성경 저자들이 다르게 해석하고 응용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러한 결론은 성경에 인용된 구절들이 반드시 축어영감(逐語靈感)으로 인용된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예를 들면 예수님께?shy; 십자가상에?shy; 하신 일곱 가지 말씀이, 반드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인가? 예수님께?shy; 실제로 하신 말씀이 무엇이든 간에, 성령이 인도하시는 해석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 축어영감: 성경의 단어 하나 하나가 하나님의 영감으로 씌어짐
 

성경은 그 자체가 주석이라고 하셨다. 이 근거가 어디 있는가? 성경에?shy; 인용된 말씀이 실제로 있던 사실이 아니라는 생각이, 어떻게 하여 있을 수 있는가? 이러한 생각을 어떻게 수긍할 수 있는가?

성경에 기록된 인용이 실제로 말씀되지 않은 것이라는 암시가 어디에 기록되어 있는가? 어떻게 감히 우리가 이러한 방식의 생각을 할 수 있는가?

사실 성경의 저자들은, 성령의 감동으로 사용된 말씀의 낱말을 정확히 해석하거나 변경시킨 적도 있었다. 이것은 특별히 구약의 예언이 신약에?shy; 인용될 때 보여진다. 이러한 경우, 성경은 이런 일들이 확실하게 발생했었다는 암시를 주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shy; 구약을 쓰신 의도와 목적에 대하여 하나님의 계시를 추가하여 발견하는 것과 비교가 된다. 그러나 비슷한 말씀이, 네 복음?shy;에?shy; 약간 다르게 기록되었을 때, 성경은 한 복음?shy;의 기사가 다른 복음?shy;의 인용이라고 말씀하시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각 복음?shy;에 기록된 내용은 실제로 된 정확한 말씀이라고 판정해야 한다. 이것은 복음?shy;에 기록된 내용이, 전체의 말씀 중에?shy; 단편적인 한 부분임을 깨달을 때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다(요 21:25 참조). 예수님은 씨뿌리는 자의 비유를 여러 번 반복하여 말씀하셨고, 매번 말씀하실 때 다른 내용이 포함되었으며, 따라?shy; 각 복음?shy;에 기록된 말씀은, 다른 복음?shy;에 기록된 것과 다른 형태를 취한다. 하나님께?shy; 구원을 묘사하실 때, 이와 같이 여러 가지 방법을 써?shy; 설명하신다.

같은 예로?shy;, 예수님께?shy; 젊은 부자 관원과 나눈 대?shy;가(눅 10:25-37 마 19:16-22) 몇 분 동안 계속되었던 일일 것이다. 어떤 복음?shy; 저자는 그가 실제로 한 말의 일부를 기록하였고, 다른 복음?shy;의 저자도 그가 실제로 한 말의 다른 부분을 기록하였다. 이 두 기사를 합하면 우리는 보다 폭넓은 대?shy;의 내용을 알 수 있지만, 실제로 하신 모든 말씀을 생각한다면, 사건을 자세히 설명하는 데 있어, 아직도 다 설명이 안 되는 내용이다. 하나님께?shy; 우리가 알기 원하는 말씀은 깨달을 수 있도록 충실히 기록하여 주셨다.

 

이러한 예들은(이와 비슷한 많은 예들이 제시될 수 있다), 하나님 말씀의 완전함에 대하여 달갑지 않는 의견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인다. 인간과 세상의 기원에 대하여 세속적인 과학의 결론을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있는 것에 놀라지 않는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성경 말씀의 권위를 모른다. 하나님께?shy;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출 20:11)라고 말씀하실 때, 이것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손을 흔들면?shy; 부인하는 것이다. 창세기 1장에 자세히 기록된 진리의 말씀은 많은 과학자들에게 아무런 감명을 주는 것 같지 않다. 그들은 오히려 딴 과학자들이 내리는 결론이, 성경과 얼마나 모순되는가 상관하지 않고, 지체없이 받아들인다. 창세기 6-9장에 주의 깊게 설명된 노아 홍수의 기사를,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부인해 버리는 것을 우리가 놀랄 필요도 없다. 이것은 노아의 홍수가 온 세상에 있었던 것이었기보다는 메소포타미아 골짜기에 있었던 홍수였다고 말할 때, 사람들이 받아드리는 입장이다.

성경에는 그 뜻을 풀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구절들도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이며, 또 하나님은 무한하시다. 하나님은 영원에?shy; 영원까지 존재하신다. 우리의 유한한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에 속한 모든 진리를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나님께?shy; 그의 진리를 드러내시는 시간표를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말씀의 명확한 이해를 위하여 묵묵히 기다려야 할 때도 있다.

때때로 하나님께?shy;는 상징적으로 혹은 비유로 말씀하신다. 그러나 그 구절을 성경 전체의 문맥에?shy; 주의 깊게 분석해 보면,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 것인가를 틀림없이 보여 주신다. 우리는 결코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의심하거나 그 품위를 감해?shy;는 안 된다.

사실 성경이 주는 정보는, 모든 기록이 진리를 포괄하며, 성경이 하나님에 의해?shy;만 기록될 수 있음을 ?shy;조하고 있다. 우리가 성경에?shy; 발견한 정보는 통일성, 결합력, 일관성 등이 창조로부터 마지막 때까지 인간의 전체 역사를 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에 의해 저술된 어떤 책도 이 연구에?shy; 보여 주는 엄청?shy; 진리를 만들어 낼 수 없다.

"성경은 하나님이 아니지요"라고 필자의 친구가 말한 것을 기억해 보자. 사실 우리가 손에 들고 있는 성경은 하나님이 아니다. 이것은 단지 종이 위에 인쇄된 글인 것뿐이다.

그러나 성경을 읽을 때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하나님과 우리가 밀접한 연관을 가지게 된다. 성경은 하나님의 음성이며, 하나님의 완전한 뜻의 성명?shy;이다. 그것은 왕의 명령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음성이기 때문에, 그 정확성의 권위는 의심되거나 변경되어?shy;는 안 된다. 원본에 기록된 모든 단어는 비록 그것들이 인간 저자의 인격과 처한 환경에?shy; 기록되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shy; 선택하신 것이다. 어떤 단어도 우연히 또는 부수적으로 기록된 것은 없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육신의 눈으로는 그를 볼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창조와 구속사역을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 안에?shy; 하나님을 볼 수 있다. 그의 말씀은 하나님께?shy; 거룩하신 것처럼 거룩하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 자신을 대할 때와 같은 경외심, 존경심, 두려움을 갖고 대하여야 한다. 여기에 "거룩한 성경"이라고 불리는 훌륭한 이유가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완전 무결함을 의심하는 죄는 간단히 넘겨버릴 죄가 아니며 중대한 죄 중의 하나이다. 하나님께?shy; 출애굽기 20장 3-5절에 말씀하신 것을 읽어보자.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우리가 과학을 성경의 권위 위에 놓을 때, 우리는 과학을 경배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신학자의 권위를 성경 위에 놓을 때, 우리는 하나님보다 인간의 마음을 경배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러한 죄는 하나님의 진노를 가져오게 한다.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로 기록된 가혹한 말씀은, 본질적으로 심각한 영원한 것에 대한 암시이다. 우리의 자손이 끊어진다고 선언하시는 말씀에는 지옥의 멸망을 내포하고 있다. 이 말씀은 신명기 4장 25-26절에?shy;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게 한다.

"네가 그 땅에?shy; 아들을 낳고 손자를 얻으며 오래 살 때에 만일 스스로 부패하여 무슨 형상의 우상이든지 조각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악을 행함으로 그의 노를 격발(?shy;發)하면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 증거를 삼노니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shy; 얻는 땅에?shy; 속히 망할 것이라 너희가 거기?shy; 너희 날이 길지 못하고 전멸될 것이니라"

과학자들의 학설은 우리가 성경을 공부할 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발견한 증거는 성경 진리를 반박하는 것이어?shy;는 안 된다. 과학자들이 스스로 만든 가정에?shy; 증거를 검토한 결과 얻은 결론은, 성경 진리와 동의하지 않는 한, 결코 받아 들여져?shy;는 안 된다.

신학자들의 견해도 연구할 수 있고, 우리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학설이 성경 권위를 약?shy;시키는 것일 때는, 그것을 받아 들여?shy;는 안 된다. 우리는 성경에 절대적으로 진실한 신학을 세워야 한다. 성경이 절대적인 진리에 미치지 못한다고 암시하는 생각은, 비록 그러한 아이디어를 시사하는 신학자가 상당히 유명하다 하더라도, 그것은 배척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여야 하는가? 필자는 대부분의 교회가 위험한 상황에까지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진노가 교회에게 임할 것이다. 우리는 바람을 심었고 광풍을 거두려 하고 있다(호 8:7).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우리 자손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그들의 대다수는 우리 조상들의 믿음을 따르지 않고 있다.

우리는 큰 곤경에 처해 있다, 매우 중한 죄를 범한 것이다. 어떤 사람이든지 죄를 범했을 때는, 그 뒤에 취할 수 있는 행동은 하나 뿐이다. 우리가 범한 죄로부터 돌아?shy;며, 하나님의 자비를 간절히 부르짖는 것이다.

지금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변론하기 위하여 경건한 논쟁을 할 때가 아니라, 우리의 죄를 인정할 때다. 하나님의 말씀을 비?shy;했고, 과학을 숭배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바르트나 브르너의 이론에 너무나 많은 시간을 소비하였다. 우리는 레버(Lever)나 다른 비 성경적 이단을 용납하였다. 올바르게 성경을 이해하는 신학이, 오늘날 거의 정지 상태에 있는 것이 우연이 아니다.

우리는 굵은 베옷을 입고 재위에 앉아 하나님의 긍휼(矜恤)을 부르짖어야 한다. 하나님께?shy; 심판 주로 다시 오실때 우리 각자를 지켜 주실 것이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다른 신을 경배하도록 인도하는 교사들의 가르침을 거부하고 떠나야 한다.

하나님께?shy;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시옵소?shy;!
 

6. 성취된 예언

 

(7). 성경의 정확성은 성취된 예언이 입증한다.

성경의 놀라운 특징은, 예언된 말씀이 성취된 것을 반복하여 발견하는 사실에 있다. 예를 들면 창세기 6장 7절에?shy;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예언하셨다.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shy;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shy; 노아 시대에 세상을 완전히 멸하셨을 때 예언하신 대로 성취하신 기록이다.

창세기 18장에 하나님께?shy; 아브라함에게, 소돔과 고모라의 사악(邪惡)함이 극심하므로, 그 도시를 멸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것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하여 창세기 19장 24-25절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여호와께?shy; 하늘 곧 여호와에게로?shy; 유황과 불을 비같이 소돔과 고모라에 내리사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shy;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하나님께?shy; 여호수아 2장에, 옛 도시 여리고가 멸망할 것이라는 정보를 주시고, 여호수아 6장에?shy;는 여리고성의 멸망한 기사를 보여 주신다.

하나님께?shy; 여호수아 6장 26절에, 여리고 성을 다시 건축하는 자에 대한 저주를 선언하셨다.

여호수아 6장 26절에 기록된 말씀을 읽어보자.

"여호수아가 그 때에 맹세로 무리를 경계하여 가로되 이 여리고 성을 누구든지 일어나?shy;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shy;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장자를 잃을 것이요 문을 세울 때에 계자를 잃으리라 하였더라"
 

5백년 이상의 세월이 흐른 뒤, 어떤 사람이 여리고를 건축하였고, ?shy;왕기상 16장 34절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그 시대에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였는데 저가 그 터를 쌓을 때에 맏아들 아비람을 잃었고 그 문을 세울 때에 말째 아들 스굽을 잃었으니 여호와께?shy; 눈의 아들 여호수아로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하나님께?shy; 신명기 28장 47절에?shy; 옛 이스라엘 국가가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에, 하나님께 반역할 것이라고 예언하셨다. 그리고 그들이 언어를 알지 못하는 민족에 의하여 망하게 될 것이라고 하나님께?shy; 말씀하셨다. 수 백년 후 그들은 먼저 앗수르에 의하여 멸망당하고, 드디어 587BC에 바벨론에 의하여 참으로 멸망되었다.

오실 메시아에 관한 많은 예언이 주어졌다. 메시아가 다?shy;의 계통인 유다 지파에?shy; 나올 것이라고 예언되었고, 그가 베들레헴에?shy; 탄생할 것이라고 예언되었다. 가장 놀라운 예언은 다니엘 9장 24-27절에 기록된 것이며, 그 메시아가 7 BC에 오실 것으로 예언되어 있다. 다니엘 12장 12절에?shy; 하나님의 사역이 1335일에 이를 것이라고 예언하셨다. 이러한 모든 예언은 말씀대로 성취되었다.

약 2천년 전에 세워진 예언 중의 하나가, 이스라엘이 국가로?shy; 다시 세워진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스라엘 국가가 70 AD에 멸망되었으며, 그 후 약 2천년 동안을 온 세상에 흩어져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성경에 이스라엘 국가를 무?shy;과나무로 상징하셨고, 예수님은 무?shy;과나무가 마지막 때에 그 잎을 낼 것이라고 예언하셨다. 예수님은 또한 다시 새로 세워진 이스라엘 국가는 국가로?shy; 예수님을 그들의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을 예언하셨다.

 

이 예언은 이스라엘이 1948년에 국가로 다시 세워졌을 때, 성경의 예언이 어떻게 극적으로 성취되었나 하는 것을 살펴 볼 것이다.

우리는 반복하여 성경의 놀라운 결합성과 통일성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shy; 기록하신 책만이 그러한 진리를 담을 수 있다. 참으로 성경은 엄청?shy; 주의를 기울여?shy; 우리는 읽어야 한다.
 

7. 요약
 

1). 성경의 모든 말씀은 정확하고 권위가 있다. 성경에?shy; 배울 수 있는 내용이 무엇이든 간에, 말씀하시는 모든 내용이 진리이고 신뢰할 수 있다.

2). 성경은 그 스스로의 해석이 된다. 즉 성경은 성경에 의해?shy;만 설명할 수 있다. 우리는 억지로 성경 말씀을 해석하려고 시도함으로, 성경이 말하지 않은 것을 가지고 성경을 잘못 이해해?shy;는 안 된다.

3). 지구의 기원에 관한 과학적 결론은, 사실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가설에 근거를 두고 있다. 성경만이 지구의 기원에 관한 진리를 세울 수 있는 절대적으로 신뢰해야만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4). 만일 과학의 권위를 성경의 권위 위에 놓는다면 우리는 과학을 경배하는 것이다. 우리가 교회나 신학자의 권위를 성경의 권위 위에 놓는다면 하나님보다 인간의 마음을 경배하는 것이다.

5). 성경은 예언한 말씀이 성취된 사실로 그 권위와 진실성을 입증한다.
 

이제 우리는 세상 마지막의 시간표를 발견하고자 하는 목적을 향해 길을 재촉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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