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9월 뉴스레터

제 4장 곡식과 가라지가 나눠지다.

이 장에서는 중요한 질문 한가지를 더 살펴보겠다. 곡식과 가라지가 어떻게 나눠지는가? 교회시대 동안에 이 일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성취하실 지 그 방법과 계획을 말씀하신 일이 없다. 그러나 이 일이 큰 환난기간에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성취하시는가?

1. 곡식과 가라지가 나누어지다.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하여는 복음이 세상에 전파되는 그 원칙을 생각해 보아야한다. 고린도후서 2장 14-16절에 다음과 같이 하나님께서 선언하신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
(고후 2:14-16)

이 구절에서 우리가 배우는 것은 복음이 전해질 때에 어떤 사람들은 영적으로 구원을 받고 살아나게 되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더욱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게된다. 히브리서 4장 12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양면으로 날이 선 검()이라고 하셨다. 이 검에 대하여 우리가 그려볼 수 있는 것은, 한 쪽 날로서 구원을 가지
고 오게 하지만, 다른 날로는 지옥에서 영원히 멸망당하도록 잘라 내신다.
교회시대를 통하여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 성전을 대표하는 외형적인 지방교회를 세우는데 하나님께서 초점()을 두셨다. 성경에서 우리가 배운 바에 의하면, 참 믿는자들은 금, 은, 그리고 소중한 보석으로 상징되었
다(고전 3:11). 곡식과 가라지의 비유에서 말씀
하신 바, 이것들은 곡식과 대등하다. 이 성전 안에
는 나무, 풀 그리고 짚이 있음(고전 3:11)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신다. 그들은 곡식과 가라지의 비유에서 가라지와 똑 같다.
고린도전서 3장에서도 나무, 풀, 집으로 비유된 사람들은 심판날이올 때까지 알려지지 않을 것을 가르친다. 우리가 교회시대의 끝남과 그 이후에서 배운 바에 의하면, 큰 환난 시기와 동시에 심판날이 임하게 된다.
교회시대가 끝남과 함께 큰 환난이 시작되는 것을 우리가 배웠다. 그러나 그 교회시대가 끝난 후에도 아직 추수가 계속된다.
교회시대를 통하여 참으로 구원을 받은 자들은, 영원하고 보이지 않는 천상교회의 시민이 된다. 사실상 교회시대(외형적인 눈에 보이는 교회)가 마지막에 이르렀지만, 지금 큰 환난 기간에, 아무도 셀 수 없이 많은 자들이 구원을 받게 되고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교회(천상)의 회원으로 그 수를 더하신다.
우리가 교회시대의 끝남과 그 이후에서 배운 바에 의하면, 큰 환난 시기의 두 번째 시기에 추수할 일군을 보내게 되나, 이들은 지방교회 회중에 의해 보내지는 것이 아니다. 교회 밖에 있는 구원받은 개인들을 통해, 아무도 셀 수 없는 큰 무리를 구원하시는 추수하는 일군으로 보냄을 받는다.(계 7:9)
그들이 전하는 복음은, 교회시대 동안에 교회가 전하던 복음과 본질상 동일하다. 굳이 그 차이를 말한다면, 그들이 전하는 복음은 교회가 전하던 복음보다도 성경에 더욱더 충실하다. 교회시대 동안의 복음은 지방교회의 회중을 세우는데 초점을 두고 왔었다. 교회시대 동안에는 가능한 한 믿는자들이 지방교회의 회원이 되었다. 그러나 이 마지막 추수 때에 전파되는 복음은, 이 교회시대가 그 마지막에 이르렀으며, 하나님의 심판이 모든 교회에 내려진 것에 초점을 둔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하여 더 이상 구원하시지 않으신다. 교회는 영적으로 바벨론이 된 것이다. 교회 목사가 아무리 충실하게 설교를 한다 하드라도, 성령께서 더 이상 교회에 역사 하시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들이 듣고 구원을 받도록 마음에 적용하는 역사를 하시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곡식과 가라지를 나누시는 사역을 성취하시는 방법이며, 지금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상황이다.

2. 추수하는 자들이 가라지를 거둔다.

마태복음 13장 30절에 곡식과 가라지에 대한 비유를 조심스럽게 살펴볼 때, 또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만 할 다른 말씀이 있다. 이 구절을 읽어보자.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군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어라 하리라 (마 13:30)

추수 때에 내가 추수군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라고 하신 말씀을 살펴 보아야한다. 지난 학습에서 배운 바와 같이 추수군들은 복음을 전하는 참 믿는자들이다.
그런데 가라지를 먼저 단으로 묶는다는 뜻이 무엇인가? 이일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 아닌가?
이와 같은 질문에 답변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복음을 전파하시고, 또 성령께서 모든 일을 하시는 것을 우리는 기억하여야한다. 사람들이 구원을 받도록 성령께서 인도하신다. 더욱이 복음이 구원받지 못한 자들에게는 심판을 가지고 온다. 또한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알게되는 것은, 참 믿는자들이 복음을 전한다는 언어를 가끔 하나님께서 사용하신다. 참 믿는자들이 하나님께 복종하여 복음을 전한다고 하는 사실을, 마치 그들이 구원을 누구에게 주는 것처럼 표현하실 때가 있다.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누구를 구원한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위하여 임명을 받았기 때문에, 순종하고 실행할 때, 복음 자체가 영적인 사역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추수군에 대하여 요한복음 4장 36절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요 4:36)

추수군들은 충실하게 복음을 전하는 참 믿는자들임을 우리는 이미 알고있다. 추수군들은 충실하게 다른 사람들과 복음을 나눔으로써 추수를 하는 것이며, 또한 사람들이 구원을 받게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영원한 생명으로 추수군들이 과실을 추수한다고 하셨다. 믿는자들의 추수가 곧 과실을 거두는 것이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 12장 30절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마 12:30)

이 구절이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바쁘게 사람들을 모으시는 사역을 통해 구원받는 쪽과 심판 받는 편으로 갈라놓으신다. 곧 구원을 받게 하시거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심판을 받게 하시는 것이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 대해 나와 함께 모으는 자라는 언어를 사용하셨다. 이와 같은 뜻으로 말한다면, 교회시대가 끝이 났다고 선포한 것은, 우리가 가라지를 하나님과 같이 거두고 있다는 것이다. 교회시대가 끝났다는 가르침은 복음 선교의 핵심부분이며, 또 이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추수를 시행하는 것이다.
우리가 온 세상에 교회시대의 끝장이 났음을 선포할 때, 지방교회의 회중도 이것을 듣게된다. 그들도 또한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시기에 대하여 이해하여야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그리스도께서 묶어 불태울 가라지를 거두시게된다. 이것이 바로 마태복음 13장 30절에서 가라지를 거두어 함께 묶고 태울 준비를 하신다는 뜻이다.
예레미야서는, 교회시대가 끝나고, 하나님의 심판이 교회 위에 내려 졌음에 초점을 두고있다. 바벨론에 의한 예루살렘의 멸망은, 하나님 심판의 예가 된다. (책 교회시대의 끝남과 그 이후를 보라) 이러한 관점에서 본 한 예가 예레미야서 5장 15-17절과 20절에 있다. 이 구절을 읽어보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보라 내가 한 나라를 원방에서 너희에게로 오게 하리니 곧 강하고 오랜 나라이라 그 방언을 네가 알지 못하며 그 말을 네가 깨닫지 못하느니라 그 전통은 열린 묘실이요 그 사람들은 다 용사라 그들이 네 자녀들의 먹을 추수 곡물과 양식을 먹으며 네 양떼와 소떼를 먹으며 네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열매를 먹으며 네가 의뢰하는 견고한 성들을 칼로 파멸하리라 --- 너는 이를 야곱 집에 선포하며 유다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렘 5:15-17, 20)

예레미야 4장 16-17절에서도 말씀하신다.
너희는 열방에 고하며 또 예루살렘에 알게 하기를 에워싸고 치는 자들이 먼 땅에서부터 와서 유다 성읍들을 향하여 소리를 지른다 하라 그들이 밭을 지키는 자 같이 예루살렘을 에워싸나니 이는 그가 나를 거역한 연고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렘 4:16-17)

이와 똑 같은 내용을 요한계시록 14장 6-7절에서도 읽을 수 있다. 이 구절을 읽어보자.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계 14:6-7)

하나님께서 심판을 지방교회에 내리시는 진리를 우리가 세상에 선포할 때, 지방교회도 역시 이것을 듣게 된다. 그들도 우리가 살고있는 절박한 시기에 대하여 깨닫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이 진리를 들음으로, 이것이 곧 불에 태우기 위하여 가라지를 거두는 사역이며,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역사 하심을 알게될 것이다. 이것이 마태복음 13장에서 추수군이 가라지를 거두어 묶어 불에 태울 준비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앞에서 공부한 바와 같이, 교회시대 동안에는 지방교회의 회원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었으며, 복음을 선포하는 사역의 중요한 부분이었음을 알았다. 이 때는 어떤 개인이 물로 세례를 받을 수 있었다. 또 그들은 성찬식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리고 회중을 영적으로 감독하는 지도자들의 인도를 받았다. 이렇게 하여 교회의 회원이 된 그들은, 참으로 구원을 받고 거듭난 사람들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또한 우리가 배운 것은 회원들 중에 누가 구원을 받은 자인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아무도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없고, 그 사람의 영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만 하실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늦은 비가 내리는 시기에 가서 마지막 추수를 거두어 드릴 때, 하나님께서 곡식과 가라지를 나누는 방법을 마련하셨다. 이것은 지방교회 회중 안에 큰 환난이 시작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교회에서 설교할 때, 성령께서 더 이상 말씀을 듣는 회원들의 마음속에 적용하시지 않는다는 정보를 우선 주시는 것으로 시작하신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7절을 다시 읽어보자.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길 때까지 하리라(살후 2:7)

교회시대 동안에는 성령께서 교회 회중 안에 계셔서,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사단을 제재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정하신 사람들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께서 적용하신다. 더욱이 큰 환난 기간에는 불법의 사람인 사단이 성전에서(지방 교회) 자리를 잡게(지배하게)된다.
이 같은 하나님의 엄숙한 선언이 온 세상과 교회에 선포하도록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을, 예레미야 5장과 요한계시록 14장에서 읽을 수 있다. 큰 환난 기간동안에 지방교회는 영적으로 바벨론이 되었고, 사단이 지방교회를 자기의 정부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는 바벨론의 왕으로 군림하여, 이 지방교회를 통치하게된다. 그는 광명의 천사(고후 11:14)로 나타나며, 거짓의 아버지(요 8:44)로 나타나기 때문에, 교회의 회중이 그리스도를 예배한다고 믿고 있으나, 사실상 그들은 사단을 예배하고 있는 것이다.

3. 하나님께서 지방교회에서 나오라고 명령하신다.

그러므로 마지막 추수기에 복음을 선포하는데 있어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은, 만일 그들이 아직도 교회에서 출회를 당하지 않는다면, 바벨론이라고 불리게 된 교회에서 나오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다.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구절들을 읽을 수 있다.
마 24:15-16,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찐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찌어다
눅 21:20-21,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찌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찌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찌어다
계 18:4,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렘 12:7, 내가 내 집을 버리며 내 산업을 내어던져 내 마음의 사랑하는 것을 그 대적의 손에 붙였노니
렘 51:6, 바벨론 가운데서 도망하여 나와서 각기 생명을 구원하고 그의 죄악으로 인하여 끊침을 보지 말지어다 이는 여호와의 보수의 때니 그에게 보복하시리라

지방교회로부터 나와야 한다는 이 명령이 온 세상에 선포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곡식과 가라지를 나누시는 방법이다. 여러 믿는자들이 교회에서 출회를 당하는 것이 확실하다. 그들이 교회의 회중으로 있는 동안, 하나님 말씀에 충실해야 한다는 주장을 너무도 강조했기 때문에 당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요한계시록 11장에서 교회를 위해 죽임을 당한 두 증인으로 상징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교회에 남아있는 참 믿는자들은 교회에서 나오게 되어있다. 그들이 교회에서 나와야 되는 이유는, 하나님의 심판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교회에 내려졌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들이 나와야 되는 또 다른 이유는, 복음을 선포하는 임무를 그들에게 주셨기 때문이며, 이 참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함으로서 마지막 추수를 걷어드리는 것이다.
구원받은 각 개인들은, 늦은 비가 내리는 마지막 큰 환난시기에 구원받는 큰 무리와 함께, 전 세계에 교회시대가 끝나고, 하나님께서 마지막 추수를 걷어드리신다는 참 복음을 선포해야한다. 그리고 이 참 복음은 아주 심각한 내용의 선포이며, 믿는자들이 교회에서 나와야한다는 하나님의 명령을 포함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곡식과 가라지는 분리된다. 지방교회 안에서 참 믿는자들은, 그들이 구원받는 동안 부활된 영혼을 받은 것이다. 이 부활된 새 영은 다시는 범죄하지 않기를 원한다. 하나님의 음성인 성경을 그들이 사랑하게 되며, 그들의 삶은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하며 떠는 생활을 하게된다.(빌 2:13) 그러므로 그들이 교회가 영적으로 부패되었음을 볼 때에. 성경이 이 일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을 듣기 시작하며, 그들은 이일에 대하여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더 알아 보아야하겠다는 욕구가 생긴다. 아직도 교회의 목사를 크게 존경하지만, 그들은 성경을 보다 더 존중하며, 성경만이 그들에게 최상의 권위인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이 일에 대하여 불안을 느끼고, 성경을 더 조심 있게 읽으며, 기도할 것이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지혜를 달라고 기도할 것이다. 성경 속에 그들이 교회에서 나오라고 하신 명령을 발견할 것이다.
물론 교회를 떠난 사람들 중에 불신자도 있을 것이다. 아직 성령께서 지방교회에 계시고 사람들을 구원하시던 때에는, 그들이 구원을 경험한 일이 없이 교회시대의 끝났음을 듣고 교회를 나왔다고 해서, 그것을 구원 받았다는 이유로 사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교회에서 나옴으로써 각 개인을 통하여 세계에 선교하시는 새로운 시기에 처하게된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아직도 구원을 받을 가능성이 남아있다.

4. 우선 가라지를 묶는다.

우리가 곡식과 가라지의 비유를 공부하면서, 마태복음 13장 30절의 말씀을 이해하는데는 질문이 생긴다.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숫군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마 13:30)

가라지를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그 다음에 곡식을 곡간에 드린다는 말씀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더욱이, 이 구절에서 어떻게 가라지를 불사르게 단으로 묶는다는 말인가?

5. 심판이 지방교회에 제일 먼저 온다.

큰 환난시기에 하나님의 심판이, 곡식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던 지방교회에 내려진다는 사실을 기억함으로서, 사건의 순서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된다. 교회로부터 출회를 당했거나, 교회에서 나오라는 명령에 순종한 곡식(참으로 믿는자들)은 세상의 마지막 날까지 존재할 것이다.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교회이기 때문에 멸망당하지 않는다.
사실상 우리가 환난시기의 두 번째시기에 있기 때문에, 더 많은 곡식의 추수가 마지막으로 시행되고 있는 것이다. 추수한 곡식을 곡간에 넣는다는 뜻은, 세상 종말에 추수가 완성되었을 때를 말해야한다. 마지막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곡식은 곡간에 들어간다. 그것은 바로 모든 참 믿는자들이 들림을 받아 공중에서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며, 그때에 믿는자들은 영원히 부활한 새 몸을 받는다.
그러나 큰 환난기간에 지방 교회 안에서 어떤 활동이 전개될 것이며, 거기에서 가라지는 묶임을 당한다. 가라지는 교회회원으로서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임을 배운 바가 있다. 그러므로 교회시대가 끝났다는 실정을 볼 수 있는 그들의 영적인 눈이 아직도 열리지 않은 것이다. 그들은 교회를 떠나라고 하신 하나님 명령에 순종하기를 원치 않는 것이다. 그들은 이와 같은 명령이 내릴 시기가 아직도 되지 않았다고 논박하며, 이러한 명령이 적절하지 않다는 논쟁이 벌어질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심판 주로 다시 오시여 심판하실 때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을 단으로 묶어 준비하신다.

6.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미혹을 보내신다.

성경은 가라지를 묶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음을 가르친다. 첫 번째 방법은 아주 강한 미혹을 보내신다. 두 번째 방법은 그들에게 진리를 듣지 못하는 귀를 주신다.
강한 미혹에 대하여는 데살로니가후서 2장 11절에 말씀하셨다. 이 구절의 문맥은 불법의 사람(사단)이 나타나 성전에 자리를 잡는(통치하는) 시기에 우리가 처해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9절에는 사단이 표적과 거짓 기사를 가지고 옴을 말한다. 또 10절을 읽어보자.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살후 2:10)

데살로니가후서 2장 11절과 12절을 또 읽어보자.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살후 2:11-12)

회중은 사단의 왕국에 속해있기 때문에 쉽게 현혹되며, 거짓말을 믿게된다. 예를 들면, 그들이 현혹되었기 때문에 사단의 올무에 쉽게 빠지게된다. 그러한 올무는 기사와 이적을 행하는 것이며, 방언을 말하는 것 등이다.

7. 하나님께서 그들의 귀를 닫으시고, 그들을 장님이 되게 하신다.

예레미야 5장 21절이 주는 두 번째 경고를 읽어보자.
우준하여 지각이 없으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이여 이를 들을찌어다 (렘 5:21)

이 내용이 사도행전 28장 26-27절에 더 자세히 설명되었다.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을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와 나의 고침을 받을까 함이라 하였으니 (행 28:26-27)

위 구절의 문맥은, 교회시대의 끝에 가서 참 믿는자들이 지방교회에서 출회를 당하는 그림이다. 이 구절에서 유대인의 지도자들은, 교회시대의 끝에 가서 교회에 아직도 남아있는 자들과 같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지방교회를 성경말씀의 관리자로 쓰셨던 시대가 끝나고, 세계선교에 있어 하나님께서 개인을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들은 것이다.
유대의 지도자들이 바울의 설교를 듣기는 원했지만, 그들은 바울을 반대하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사도행전 28장 22절이 이에 대하여 보고하고있다.
이에 우리가 너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노니 이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줄 우리가 앎이라 하더라 (행 28:22)

그러나 그 당시의 가장 훌륭한 신학자였던 바울은 그가 배운 바를 열심히 가르쳤다. 이에 대하여 사도행전 28장 23절을 읽어보자.

저희가 일자를 정하고 그의 우거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의 일로 권하더라 (행 28:23)

바울이 이 진리를 유대 지도자들에게 설교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듣고 흥미를 가지고, 또 그들 마음에 갈등이 있었을 것이라고 기대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기대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들과의 집회의 결과를 사도바울은 사도행전 28장 29절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가 이 말을 마치니 유대인들이 자리를 뜨더라. 그리고 그들 사이에 상당한 쟁론이 있더라."(행 28:29 KKJV)

그러므로 성경이 가르치는 바는, 유대인들이 그들에게 가지고온 사도바울의 복음이 진리에 적합한가를 그들 자신의 생각에 적용했던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이 진리를 받아 드리고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받아드릴 의사가 없다는 것에 대하여 사도행전 28장 25-28절에 다음과 같이 읽는다.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일러 가로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로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을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와 나의 고침을 받을까 함이라 하였으니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을 이방인에게로 보내신줄 알라 저희는 또한 들으리라 하더라"
(행 28:25-28)

이 구절들은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함을 가르친다.
사실상 사도행전 28장의 말씀은 또 하나의 무서운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친다. 역사적으로 볼 때에 로마에 살던 유대인들의 얘기이지만, 실제 하나님께서 회당과 성전을 사용하시고,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관리하는 일에 임무를 받았었지만, 시대가 전환되어 그러한 사역을 지방교회에 넘겨주신 시기에 그들이 당면했던 것이다. 영적으로 비교하여 볼 때, 유대인들은 큰 환난 기간에 지방교회 회원들을 상징하며 지적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 시대의 끝에 지방교회의 영적인 상태와, 복음전파의 사역자로 임명을 받았던 이스라엘 국의 종말이 영적으로 동일한 상태였음을, 병행하여 보게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복음사역을 이스라엘 국에서 교회시대로 전환하시고 오늘날까지 이르게된 것에서,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를 더 조심 있게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마태복음 13장에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왜 비유로 말씀하셨는가를 기록하셨다. 마태복음 13장 15절에 다음과 같이 선포하셨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마 13:15)

위의 구절은 사도행전 28장 25-28절과 기본적으로 동일한 것에 유의하기 바란다. 이 두 구절이 같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이 분명하다. 마태복음 13장 15절은 이스라엘 나라를 직접 말하고, 사도행전 28장 25-28절은 교회시대의 마지막에 가서 지방교회 회중에게 나타날 상태를 지적한 것이다. 그러므로 특별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복음의 관리자로 더 이상 쓰시지 않게 된 것과 관련하여, 이스라엘에게 하시고자하는 말씀이 무엇인지 우리는 판단하여야한다.
로마서 11장은 지금 우리가 질문하고 살펴 보고있는 것을 성경과 연결하여 살펴보는데 특별히 도움을 준다. 로마서 11장 전체가 이스라엘 나라가 교회시대로 전환된 후 수 십 년() 동안의 영적 상태를 말한다. 이 장은 질문으로 시작한다. 하나님께서 그의 택하신 백성을 저버리신 것인가? 이 장의 문맥은 이스라엘 나라에 초점을 두고있다. 5절에 그 답이 명백히 기록되었다.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롬 11:5)

이 구절에는 남은 자를 말씀하시며, 이에 대하여 로마서 11장 7-8절에 엄중하게 선언하신 것을 읽는다.
"그런즉 어떠하뇨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완악하여졌느니라 기록된바 하나님이 오늘날까지 저희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롬 11:7-8)

이 구절은 구원을 받은 남은 자 몇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모든 이스라엘이 장님으로 남아 있음을 가르친다. 두 가지 매우 중요한 진리를 우리가 직각 적으로 볼 수 있다. 처음으로 보는 언어는, 우리가 얼마 전에 살펴본 마태복음 13장 14-15절에서와 같이, 나머지가 장님이 된다는 것을 선언하신다.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이 예언하여 경고하시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는도다라고 하셨다.
두 번째로 우리가 직각 적으로 알게되는 중요한 진리는, 단지 남은 자들(remnant)만이 말씀에 충실할 것이라는 것이다. 남은 자는 전체의 아주 적은 수이다. 하나님께서 로마서 11장 4절에 7,000을 사용하시어 엘리야 때에 남은 자들을 말씀하셨다. 그 때에 이스라엘의 인구는 수백만 명은 되었을 것이다. 7,000운 1,000,000의 1%도 되지 않는다. 남은 자가 전체 수에 비하여 아주 적은 숫자임을 이해하여야만 한다.
우리가 계속하여 이스라엘에 대하여 살펴볼 때, 로마서 11장 25절에서, 세상의 종말까지 장님인 이스라엘의 상태가 계속될 것이라고 하였다. 이 구절은 다음과 같이 선언하셨다.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롬 11:25)

두 가지 사실을 이 구절에서 볼 수 있다. 첫 번째 사실은 이방인의(모든 나라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라고 하신 것이며, 이것은 세상의 종말을 지적한다. 이 구절이 가르치는 것은, 온 세상에 한 사람이라도 구원받을 사람이 남아있는 한, 이스라엘 나라는 장님으로(그리스도께서 구주이심을 알지 못하는) 남아있을 것이라고 가르친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마지막 사람이 구원을 받을 때, 우리의 마지막 추수가 이루어지는 것을 우리는 안다. 이때가 세상의 종말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장님으로 남아 있게되는 것이, 세상 종말까지 계속될 것을 우리가 알게되었다.
두 번째 우리가 유의할 점은, 이스라엘의 더러는 장님이 된다고 하신 것이다. 이 구절은 이스라엘 중에 참 믿는자들이 있다는 점이다. 이 로마서 11장을 기록할 때에, 참 믿는자들은 남은 자(remnant)로서 불리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7,000명으로 예를 주셨고, 그 숫자는 엘리야 시절에 이스라엘 인구의 1%도 되지 못하는 숫자이다. 구원받을 마지막 사람이 구원을 받을 때에 남은 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성경은 이 질문에 대하여 분명한 해답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 마지막 날에 아주 가까이 살고 있기 때문에, 지금 이스라엘의 전체에서 아주 적은 수의 남은 자들이 있는 것을 알고있다. 오늘날 아주 신사적인 유대인 중에서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수는 극히 적은 비율을 가지고있다. 그리고 참 믿는자들은 유대인 회당의 회원이 아니다. 그들은 그 회당 밖에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우리에게 무섭고 달갑지 않는 결론을 가져온다. 눈이 멀어 진다는 언어를 이스라엘에게 쓰셨고, 또 동일한 언어로 큰 환난 기간에 교회에 남아 있는 자들은 눈이 멀어진다고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와 같이 눈이 멀어진다는 비유는 곡식과 가라지의 비유와 직접 관계가 된다. 가라지는 단으로 묶어 마지막 심판을 받도록 기다리게된다. 하나님께서 마치 이스라엘에게 하신 것처럼, 그들의 눈이 멀게 하심으로 그들을 묶는 것이다. 결박하는 것에 기여하는 또 다른 사실은, 강한 미혹을 보내시고, 그들이 성경에 의존하기보다는 교회를 의존하도록 만드신다.
이스라엘의 시대가 교회시대로 전환된 것처럼, 또 늦은 비가 내리는 교회시대에는 하나님께서 복음을 관리하는 직분을 교회 밖에 있는 개인들에게 주시고, 교회에 주시지 않았다. 이 사실은 교회가 눈이 멀어진 상태를, 이스라엘이 회당 시절에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던 때에서 시작하여 지금까지 계속되고있음을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만일 이 비교가 병행된다면, 세상 종말이 되었을 때, 지방교회의 상태는 지금의 상태에서 조금도 변하지 않고 있을 것이다. 거의 모든 교회가 회원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교회의 회원들은 하나님께서 교회에 더 이상 계시지 않음을 믿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교회 안에 아주 소수의 회원만이, 교회를 떠나야된다는 하나님의 명령이 진리임을 알 것이다. 내가 지금 말하는 가정하는 숫자가 잘못된 것이고, 더 많은 비율의 사람들이 교회에서 나올 것이라고 예측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겠는가? 그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이겠는가? 그러나 오늘날의 지방교회의 영적 상태는 사데교회(계 3:)의 상태와 동일할 것이다. 사데교회 안에는 몇 몇 참 믿는자들이 있었지만 죽은 교회였다.

8. 하나님께서 더 이상 구원하시지 않는다.

우리가 마태복음 13장 15절과 사도행전 28장 25절-28절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놀랍고 겁나는 기록이 있다. 마태복음 13장 15절을 다음과 같이 읽을 수 있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마 13:15)

위 구절은 이사야 6장 9-10절에서 인용되었고, 다음과 같이 자세한 설명을 읽을 수 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사 6:9-10)

이 구절이 가르치는 것은 하나님자신이 복음을 듣는 사람들 곧, 그들이 구원받은 자가 아닌 한 마음을 닫으시고, 귀를 닫으시고, 또 눈을 멀게 하신다.
이러한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는가? 복음의 목적은 사람들을 구원하는데 있다. 그러나 위의 구절이 가르치는 것은 어느 때가 오면 복음을 듣는 사람들의 귀와 눈을 하나님께서 일부러 닫으시고, 그들이 구원에 이르지 못하도록 하신다.
마침내 우리는 이 구절들의 뜻을 이해하게된다. 이와 같이 불길한 경고를, 세상의 두 가지 종류의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받게된다. 그 첫 번째는 유대인들의 회당이다. 예수님당시에 사도들이 그들에게 복음을 설교하였지만, 극소수의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고, 이러한 상태는 지금까지 계속되고있다. 유대인 회당의 지도자들은 그리스도가 그들의 구주가 되시기를 원치 않는다.
두 번째는 교회시대 마지막에 처해 있는 지방교회에 더욱 크게 반영이 된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강한 유혹을 보내신다. 하나님께서 고의적으로 그들로 하여금 구원을 받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교회 안에는 더 이상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없다. 얼마나 무섭고, 비참한가! 이것이야말로 복음이 가르치는 것과는 전적으로 반대가 되는 일이다. 우리가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사람들이 구원받기를 기대하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이 교회 안에 내렸기 때문에, 지방교회 회중의 구원은 없게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세상 온 전역에 내려졌기 때문에 극히 심각하다. 예수님께서 오실 때에 구원받지 못한 자들을 심판하시고, 그 때에 하나님의 자비가 없을 것이기 때문에 아주 심각한 일이다. 하나님의 자비는 결코 없을 것이다.
우리가 배운 바는 성령께서 지방교회 안에 더 이상 계시지 않기 때문에, 구원받을 사람들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더 이상 적용하시지 않으므로, 사람들의 구원이 교회 안에서는 없다. 이 사실은 에스겔 22장 30-31절을 생각나게 한다.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나로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서 찾다가 얻지 못한고로 내가 내 분으로 그 위에 쏟으며 내 진노의 불로 멸하여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보응하였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겔 22:30-31)

위 구절의 문맥에서 이 땅은 하나님께서 지방교회를 지적하신다. 하나님께서 멸하시려는 것을 방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나 이 구절이 말하는 것은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서 찾다가 얻지 못한 고로라고 끔찍하게 선언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31절에는, 하나님의 진노가 그 머리에 보응하였느니라고 계속하여 말씀하신다.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께서 가라지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을 불에 사를 준비를 어떻게 하시는지 보게되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 참 믿는자들(곡식)을 지방교회에서 나오라고 명령하신다. 참 믿는자가 아닌 사람들(가라지)은, 이일에 논쟁을 할 것이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이 아니면, 그들 삶에 있어 이러한 무서운 현실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깨닫기를 전혀 불가능하게 하셨다. 그들이 들어도 듣지 못한다. 그들의 영적 눈은 장님이 되어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들은 지방교회가 모두다 잘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의 거짓말에 미혹되도록 하나님께서 만드신다.
교회와 교파의 역사를 살펴 볼 때, 신학자들과 성경학자들의 마음을 유혹하여 눈을 멀게 하던 무서운 한가지 상황에 대하여 우리는 알고있다. 이 상황이, 우리가 교회시대 마지막에 도달했으며, 지방교회에서 나오라고 명령하신 성경말씀과 어떻게 관련이 되는지 살펴보자.

9. 성경 해석법

모든 교파와, 모든 신학교가 각각 성경 해석법(Hermeneutics)이라는 과목을 가르친다. 성경 해석법은 성경을 해석하는 과학이다. 이것은 성경을 읽는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하시고자하시는 의도를 알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정하신 하나님의 법칙이다.
교회시대 역사의 신학자들을 살펴보면, 상당히 중요한 사건들을 발견한다. 교회시대 초기 신학자 중에 오리겐(Origen) 185AD에 출생했다. 그는 그의 출생지인 Alexandria(알렉산드리아)에서 성경을 가르치다가, 씨새리아(Caesarea)에다 성경학교를 설립했다. 어떤 교회역사가 1959년에 간행한 부리타니까(Britannica) 백화사전에 말하기를, 오리겐은 신약초기 성경학자들 중에서, 어거스틴(Augustine)을 제외한다면, 가장 훌륭한 신학자라고 하였다. 이 교회사가()는 성경해석법에 대하여 각별한 관심을 표시하면서 오리겐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10. 최선의 노력을 하여야한다.

오리겐과 Family Radio가 사용하고 있는 성경해석법은, 성경공부의 결론이 비 성경적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하는 것이다. 그 첫째 원리인 문법-역사적 해석에 대한 고려는, 그 뜻이 성경 본문을 읽을 때 명확하다. 두 번째 원리 도덕적 교훈에 대한 고려는, 때에 따라 성경이 가르치고자하는 결론에 분명하게 도달하지 못한다.
세 번째 영적인 해설은 심각하게 비 성경적인 결론에 이를 수 있다. 우리가 성경을 공부해 나가면서 몇 가지 중요한 법칙을 따라야하며, 그렇게 함으로써만이 성경이 제시하는 의도를 찾을 수 있게된다. 우리가 성경을 살펴볼 때 최소한 대단히 중요한 세 가지 원리를 마음에 두고 기록된 은유(:Metaphors), 우화(:allegories), 명유(:Similes), 그리고 비유(:Parables)의 뜻을 찾아야한다. 이 세 가지 원리는 다음과 같다.
1. 셋 째 원리인 영적인 해석은 반드시 복음과 연관이 되어야한다. 우리는 성경의 역사적인 기록이나, 어느 국가의 현재 사항과, 혹은 현재의 정치적인 기록에서, 성경의 영적인 가르침을 찾을 수 없다. 영적인 해석은 반드시 성경이 논의한 하나님의 복음계획과 연관이 되어야한다.
2. 성경이 어떠한 역사적인 상황을 제시할 때, 그 단어와 어구의 영적인 뜻이 성경에 의하면 분석되어야한다.
3. 성경에 기록된 역사적인 사건에서 영적인 결론을 내리는 때는,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의 구원계획과 절대적으로 합의가 되어야한다. 만일 어떤 결론이 하나님의 가르치는 구원계획에 위배될 때, 그 결론은 우리가 성경의 영적인 가르침을 잘못 이해하고 있음을 알아야한다. 우리가 배우는 것은, 성경의 모든 부분이 그리스도에 대한 얘기이며, 또 그의 놀라운 구원계획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전체가, 그리고 모든 부분이 영적인 책이다. 이것이 바로 고린도전서 2장 13절이 가르치는 바이다.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고전 2:13)

이전에 지적한 바가 있듯이, 우리가 어느 구절의 영적인 뜻이나 복음의 뜻을 찾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일에는 성경이 가르치는 몇 가지 사실을 이해하여야한다. 그리고 이러한 일을 위해서 아주 많은 시간을 성경과 씨름을 해야한다. 또 이일을 위하여 계속 기도해야하며, 그 때에 성령께서 우리에게 진리를 깨닫도록 도와주신다. 이 일에는 성경원문의 모든 구절들의 메시지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되었다는 것을 믿어야한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나타나는 매 단어와 매 어휘가 다 중요한 것을 고려해야한다.

11. 하나님께서 어떻게 성경을 쓰셨는지 우리에게 보이신다.

위에서 말한 바 성경해석법은 성경 자체가 가르친다. 예레미야 36장 2절이나, 사무엘하 23장 1-2절에는 성경말씀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셨다. 예레미야 36장 2절을 읽어보자.
너는 두루마리 책을 취하여 내가 네게 말하던 날 곧 요시야의 날부터 오늘까지 이스라엘과 유다와 열방에 대하여 나의 네게 이른 모든 말을 그것에 기록하라
(렘 36:2)

사무엘하 23장 1-2절에도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이는 다윗의 마지막 말이라 이새의 아들 다윗이 말함이여 높이 올리운 자, 야곱의 하나님에게 기름 부음 받은 자, 이스라엘의 노래 잘하는 자가 말하도다 여호와의 신이 나를 빙자하여 말씀하심이여 그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 (삼하 23:1-2)

마태복음 13장 34-35절에서 배우듯이, 예수님께서 가르치실 때 계속해서 비유를 사용하셨다.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선지자로 말씀하신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마13:34-35)

위 구절에서 단순하게 비유라고 하셨다. 이것은 은유일수도 있고, 우화일수도 있으며, 지상의 얘기로서 천국의 뜻이 있음을 가르치는 것이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되는 사실은 예수님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요 1:)이라고 하신 점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성경에 기록된 모든 내용이 그리스도의 말씀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비유가 아니고는 그들에게 말씀하시지 않았다고 하셨고, 이것은 성경전체가 절대적으로 믿을만한 역사적인 사실이다. 그러나 그 역사 속에 기록된 복음의 진리를 발견하기 전에는, 축복으로 물려받는 모든 영적인 풍성한 성경의 뜻을 알게된다고 할 수 없다. 이러한 이유로 오리겐 당시의 성경해석법이 옳은 방법이었음을 알 수 있다.

12. 성경해석법이 남용되었다.

그러나 교회역사의 기록을 보면, 교회는 성경해석의 방법을 일찍이 남용하기 시작했다. 오리겐 시기에서부터 약 200년 후 어거스틴 시절에, 로마 카톨릭교회 주교는 교회가 원하는 것을 따라 성경구절의 영적인 해석을 왜곡하기 시작했다. 그일 후로 교회는 더 이상 성경의 진리를 이해할 수 없게되었다.
그 때부터 1 천년동안, 종교개혁시기 까지, 성경해석법을 이해하는 일에 계속하여 퇴보하였다. 이와 같이 성경해석법에 대한 퇴보와 남용은 교회를 구성하는 요소가 되어, 필연적으로 종교개혁의 무대를 형성하였다.

13. 인쇄기

1455AD경에 구텐베르크(Gutenberg)가 인쇄기를 발명했고, 성경을 인쇄할 수 있게되었다. 그 이전에는 모든 성경은 손으로 복사한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극히 구하기 힘들었고, 값이 비쌌다. 더욱 거의 모든 사람들이 무식했다.
그 당시는 교회나 신학교만이 성경을 소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인쇄기의 발명은 이러한 상태를 모두 변화 시켰다. 점차로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소유하고, 그들 자신이 읽을 수 있게되었다. 교회지도자들이 가르치고싶은 대로 하나님에 대한 교리와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가르쳐온 교회지도자들에게 기만을 당할 필요가 없게되었다. 아마도 인쇄를 시작한 것이 종교개혁을 가지고 오게 한 가장 현저한 사건일 것이다. 점차로 더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을 수 있게되고, 이로 인하여 교회가 영적으로 말씀을 남용하고 있음을 알기 시작했다. 성경을 남용하고, 잘못된 교리를 적용하고 있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되었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하나님께서 칼빈, 루터, 추빙 글리, 낙스와 또 다른 사람들이, 잘못 설립된 교회를 용감하게 대항한 것이다. 점차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소유하고 읽을 수 있었기 때문에, 개혁지도자들의 가르침을 이해하였고, 또 많은 사람들이 성원하였다.
우리는 로마서 10장 17절에 말씀하신 성경진리를 기억하여야한다. 이 구절을 읽어보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 10:17)

점차적으로 구라파에서 여러 가지 국어로 성경이 번역되고, 또 성경을 손에 넣을 수 있게됨으로써, 영적인 각성이 전 구라파에 퍼지게되었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고, 인쇄하게되어 성경을 얻게되었다. 그러므로 인쇄술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종교개혁에 쓰신 가장 큰 방법일 것이다.
이와 동시에 과도하게 성경 교리를 남용하고 있는 교회의 특성을 칼빈과 루터와 같은 사람들이 정력을 다하여 반대하기 시작했다. 인쇄가 가능했기 때문에 그들의 불평을 널리 선포할 수 있었고, 읽을 수 있었다. 더욱이 그들은 성경 진리의 정확한 가르침에 대하여 출판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많은 신교의 신앙고백이 그 당시에 씌어졌다. 예를 들면, 그때에 벨직신앙고백, 도오트의 정전(Canons of Dort), 하이델베르크 신앙문답, 그리고 침례교의 신앙고백이 씌어졌다. 이러한 신앙고백은 지방교회와 교단에게 큰 도움을 주었고, 그로 인하여 하나님 말씀의 진리를 더 성경적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아마 그 중에서 가장 현저하게 중요한 문서가 산출된 것은, 도오트의 정전(Cannons of Dort 1618-1619) 이다. 이 신앙고백이 내 놓은 것은 TULIP이며, 이름은 각 행의 처음 글자를 모은 약자이다. 이 TULIP 신앙고백이 가르치고자하는 성경 진리의 요점을, 가르치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TULIP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T: Total depravity: 인간의 완전타락
모든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완전히 죽어있기 때문에,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기여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U: Unconditional Election: 조건이 붙지 않는 선택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에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으로 그가 구원하시기로 작정한 자들을 그들의 특별한 가치와는 관계없이 선택하셨다.
L: Limited Atonement: 제한된 속죄
그리스도께서 구원받은 자들만의 죄를 대속 하신다. 선택을 받지 못한 자들은 심판을 받아야한다. 그들은 유죄의 판결을 받을 것이며, 하나님의 진노로 말미암아 영원한 형벌을 받을 것이다.
I: Irresistible Grace: 거절할 수 없는 은혜
구원의 선물은 하나님께서 선택한 자들에게만 주어진다. 그들이 이 구원을 원치 않는다 하더라도 이것을 거절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구원을 절대적으로 완성하신다.
P: Perseverance of the Saint, 상실 할 수 없는 구원
일단 구원받은 자들은 그 받은 구원이 상실될 수가 없다. 그들에게 새 생명이 주어진 것이며, 그들이 지은 과거, 현재, 또 장래에 짓는 모든 죄의 대가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지불하셨다.

위에서 말한 바 다섯 가지는 구원에 대하여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를 발표한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에 쓴 신앙고백 속에 성경진리와는 상반되는 교리가 나타났다. 예를 들면, 신약성경에 나타나는 의례적인 율법, 세례식과 성찬식에 관한 것이며, 이러한 법을 지키는 것이 영적으로 공덕()이 된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세례와 성찬의 법이 의례적인 법임을 가르치지 않았다. 반면에 세례는 이것을 받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약속을 인봉(Seal)하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또한 하나님께서 신앙을 구원을 받을 후보자에게 주시기 때문에, 그가 구원을 받게 된다고 가르쳤다. 이러한 모순은 오늘날까지 모든 교회에 끈질기게 존재하며, 거의 모든 교회가, 인간은 아무 것도 구원을 받는 일에 기여하지 못하며, 하나님께서만 하신다는 성경진리에 근거하지 않고, 구원을 받는 일에 무엇인가 사람이 기여()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친다.
우리는 다시 오리겐의 가르침으로 돌아가고 그의 성경해석법을 배우자. 그는 성경의 모든 말씀이 영적인 뜻을 가지고 있음을 가르쳤고, 이것이 참으로 성경적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줄 안다. 또한 지난 공부에서 교회가 극도로 부패하여 종교개혁에까지 이르렀고, 성경해석법에 대한 조심 있는 교정이 필요했음을 기억하는 줄 안다.

14. 죽음의 씨들이 뿌려지다.

놀랍게도, 교회가 남용하던 교리를 수정하는 사역에 있어, 개혁자들이 채택한 결론이 교회에 죽음의 씨가 되었다. 오리겐의 성경해석법을 배우고 주의 깊게 바른 성경해석법을 고수하는 대신에, 그들은 오리겐이 가르치던 것을 모두 버리고 완전히 비 성경적인 성경해석법을 가르쳤다.
교회의 신학자들은, 성경의 모든 페이지마다 새겨져 있는 복음의 중심이 되는 한가지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곧, 성경이 가르치는 복음의 중심이 되는 메시지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이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구원계획의 중심이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의 모든 페이지에서 그리스도를 볼 수 있어야한다. 그것은 성경에 나타나는 모든 역사적인 근거가 절대적으로 사실이며, 믿을만하며, 그 말씀 속에 복음이 숨어있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종교개혁을 칼빈과 루터가 시작하고, 그후 수년동안 종교개혁을 계속하는 대신에, 교회는 성경 직역()의 원리라는 교리를 가지고 왔다. 드와이트 펜타코스트(Dwight Pentecost) 박사가 저술한 앞으로 될 일: Things to Come"에서 성경의 직역에 대한 정의를 말했다. 그 정의는 다음과 같다.

성경이 평범하고 상식적으로 이해하게 될 때에는, 또 다른 어떤 이해를 찾지 말아야 한다. 모든 단어가 기초적이고, 평범하고, 일상적이며, 또 비유로서 직접적인 전후관계를 분명하게 말하지, 성경에 관계된 구절로서 자명()하고 기본적인 진리를 말하며, 이와 같이 명확하게 표시를 하고 있을 때에는 직역을 할 것이다.

이것이 성경 주석()자들의 자명한 원칙이 될 수 있다. 펜타코스트는 다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종교개혁의 원칙은 성경을 직역하는 것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종교개혁 시기에 성경 진리의 해설자로서 두 사람의 큰 이름이 나와있다. 그들은 루터와 칼빈이다. 두 사람이 다 성경의 직역을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펜타코스트는 또 다른 교회 역사가()를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칼빈의 공헌에 대하여 쇄후(Scheff)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칼빈은 문법-역사적인 성경주석의 창립자이다. 그는 건전한 성경해석의 원리를 긍정하고 실행하였다. 그는 사리를 아는 저술가이며, 독자들에게 한가지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절대적인 생각을 전달하는 성경적인 저술가였다. 어떤 구절은 문자 상 그대로, 혹은 비유적인 센스(Sense)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 번에 두 센스가 다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무한하며, 또 어떤 시기에도 적용이 되지만, 그것을 해설하는 것과 적용하는 때는 차이가 있고, 그 적용은 항상 해설과 함께 일치되어야한다.

직역하는 방법에 있어, 우리가 한가지 배우는 사실은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것이다. 이 기사는 요한복음 11장에서 읽을 수 있으며, 그리스도께서 죽은 시체를 살리시는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신다. 그리스도께서 영적으로 죽어 있는 자들을 구원하시는 사역을, 완전히 홀로 시행하신다. 이 직역을 하는 주석() 방법을 따르게 되면, 복음이 가지고 있고, 또 전하고자하는 뜻을 무색하게 만든다.

15. 성경은 그 내용이 명료한가?

성경의 문법-역사적 주석 법에서, 성경의 명료성을 역시 주장하고 있다.



루터 역시 성경의 내용이 명료함을 주장하였다.---그는 때때로 성경은 어떠한 책을 해석하는 것과 같아야된다는 현대적인 비평에 접근하고 있다.

단어 Prespicurity"의 뜻은 명료하게 표현한다, 혹은 알기 쉽다,(Lucid)이다. 불행하게도 성경이 이해하기에 명료하다는 개념을 오늘날 널리 가르치고있지만, 이것은 완전히 성경과는 상반이 된다. 예를 들면, 바울이 빌립보에서 감옥에 갇혔을 때 간수에게 한 말을 사도행전 16장 31절에 다음과 같이 읽는다.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행 16:31)

그리스도께서 내리신 이 명령은 이해하기가 쉬운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명령을 주의 깊게 살펴 볼 때, 오로지 이 구절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성경에 있는 어떤 다른 구절을 조사하고, 우리가 영적으로 죽어있기 때문에, 예수님을 우리자신이 스스로 믿을 수 없다는 성경의 구절들을 살펴보기 전에는 이해하지 못한다. 사실상 그리스도를 우리가 믿게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를 구원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명료한 성경진술이 결코 명료하지 않게 보인다.
아마도 성경진술이 명료하다는 가르침이, 구원을 받게된다는 아이디어에서 발전된 것이겠지만, 우리가 왜 구원이 필요하며, 어떻게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을 반드시 이해하여야만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성경은 성경을 읽는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하나님께서 쓰셨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로마서 10장 17절에 구원에 대한 경로를 말씀하실 때 그는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또 이해하는 데서 온다라고 하시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아주 어린 아이들이나, 그 정신 연령이 두 살 정도밖에 안 되는 저능아는 도저히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하셨는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에 대하여 강조하셨고, 이것을 로마서 10장 17절에서 다음과 같이 읽을 수 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 10:17)

구원을 받지 못한 자가 성경말씀을 들을 때, 신체적으로 장님이고 정신이 박약할 수 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선택한 자는, 적절한 때에 그에게 영적인 귀를 주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그 말씀을 마음에 적용하시고, 그에게 영원히 부활된 영혼을 주실 것이다. 그가 구원을 받기 이전에 그는 성경을 좀 이해하고 있었을 수도 있었고,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구원을 받은 후에 성령께서 그의 마음을 계속 열어 주시고, 그가 정신적으로 소화할 능력에 따라, 성경말씀을 더 이해할 수 있게 하실 것이다.

16. 교회의 교리는 아니다.

성경은 이해하기 쉬운 책이 아니라는 진리를 조심 있게 살펴볼 때, 온 세상에 흩어져있는 구원받을 자들을 구원하시는 목적을 성공적으로 달성하시기 위하여, 왜 하나님께서 지방교회 기관을 사용하셨는지를 알게된다. 성경에 충실하지 못한 수 없이 많은 교단과 교리가 나와 있는데, 어떻게 그들이 이 세상에 선교사들을 보내고, 또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는다는 증거를 볼 수 있게되는가?
믿음은 들음에서 온다는 원리를 기억하기 바란다. 성경에 믿음은 이해함으로 온다고 하지 않았다. 많은 교회와 선교사들이 잘못된 교리를 가르쳐왔다. 그러나 그들이 선교한 후에 된 교회 회중 속의 각 개인이, 그들 본국의 언어로 성경을 소유하고 읽게되었다. 이것은 또한 기디온(Gideons)과 같은 기관이, 성경을 가능한 한 여러 곳에 배포하는 목표를 세웠기 때문에 하나님의 복음선교 프로그램에 월등한 역할을 했다. 이것은 또한 웨이크리후(Wycliffe) 성경번역자들이 성경을 많은 언어로 번역하여, 세계를 복음화 하는데 있어 주님께서 크게 쓰셨다. 이것은 또한 여러 가지 성경학회를 하나님께서 양성하시고,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하게 하셨다. 이것이 또한 Family Radio가 초점을 두는 것이다. 우리는 전 세계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성경을 읽도록 모든 노력을 드려, 장려하여야한다.
일단 하나님께서 어떤 개인을 구원하시면,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귀를 주시고 생명에 이르게 하심으로, 그의 구원은 영원히 안전하다. 이것은 비단 그가 성경말씀대로 가르치지 못하는 교회의 회원이 되어 있다하더라도, 그의 구원이 안전함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가 구원을 받는 순간 부활된 새로운 영을 받기 때문에, 그가 성경을 공부하면서 점차적으로 교회 안에서 잘못된 가르침을 듣기가 거북하게될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교회가 심상치 않는 잘못을 가르치고 있음을 발견하며, 그 잘못이 성경해석의 방법이 잘못된 결과에서 오는 것임을 알게된다.
그리고 또한 성경이 이해하기 쉽다고 가르치는 것 때문에, 참 믿는자들이 당황하는 것을 우리는 보았다. 성경의 진리를 발견하기 위하여서는 꾸준하게 열심히 성경을 공부해야한다는 것을 참 믿는자들이 점차적으로 깨닫게된다. 어떤 구절의 해석이 처음에는 진리 같이 보여도, 성경전체가 제시하는 진리에 비춰 볼 때, 그 해석이 틀릴 수 있을 것이다.

17. 누가 성경의 저자인가?

거의 모든 지방교회가, 잘못된 성경해석법에서 얻는 잘못된 특성을, 또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다. 드와이트 펜타코스트는 앞으로 될 일: Things to Come"에, 한 현저하고 존경을 받는 신학자 루이스 버끄호후(Louis Berkhof)를 소개하였다. 버끄호후박사는 여러 해 동안 아주 보수적인 개혁 칼빈신학교의 교수이며, 학장이었다. 그가 인용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기본적인 성경해석을 위한 가정
a. 하나님의 말씀은 한 역사적인 근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역사적인 견식으로서만 이해할 수 있다.
b. 한 단어의 뜻은, 이 단어가 산 언어로 감지 될 때까지 결코 그 뜻을 충분하게 이해되지 못한다. 이 단어는 저자의 영(Soul) 안에서 시작 되였기 때문이다.
c. 어떤 저자의 마음을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또 그 저자를 적절한 역사적 배경에서 보지 않는 한, 그의 말을 정확하게 해석할 수 없다.
d. 장소, 때, 환경, 그리고 또 일반적인 저자의 삶이, 저서를 주석하는 사역을 자연적으로 색칠하게된다.
2). 학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역사적 성경주석에는 다음과 같은 사항이 요구된다.
a. 저자의 작품이 설명하는 것에서 저자를 알도록 노력해야한다. 즉 그의 가문, 성품, 지혜, 도독, 종교적 성품 등, 그의 삶에 있어 영원한 성품 등을 알아야한다.
b. 저자에 관하여 가능한 한, 그의 모습을 제 구성해보기를 기대한다. 이 구성은 구할 수 있는 역사적 자료와, 고려중인 저서에 관한 역사적인 가정을 도울 수 있는, 말하자면, 저자의 세상을 제 구성해 보아야한다. c. d. 생략

위에서 읽는 바에 의하면, 버끄호후 박사는 성경의 유일한 저자가 주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또한 성경이 전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법전임을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또한 성경원문에 나오는 모든 단어는 하나님자신이 조심 있게 조각하신 것임을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또한 우리가 두려움과 떨림으로 성경을 배워야하며, 하나님께서 성경에 있는 모든 말씀에 큰 목적을 두고 쓰셨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신약성경에 그리스도께서 비유로 말씀하셨고, 또 구약성경에서도 비유로 말씀하신 것을 다 알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생각해 보라! 버끄호후 박사가 생각하고 있던 것을 오늘날 신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다. 목사들이 성경의 많은 부분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함을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성경에 있는 어느 구절이나 또 모든 것을, 영적인 진리가 나타날 때까지 열심히 공부하여야한다. 예를 들면, 우리가 만일 룻기를 읽으면서 역사적으로 기록된 사실 속에 숨어있는 복음의 메시지를 보지 못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성경의 목적하신 바와 또 그 내용을 완전히 저버리는 것이다.

18. 슬픈 영향

우리는 종교개혁 후에 교회가 성경해석법을 어떻게 알고 있었는가에 대하여 간단하게 살펴보았지만, 이 결과가 가지고 온 개혁자들의 영향을 살펴보자. 내가 추측하는 바에 의하면, 종교개혁 이전에는 교회에 있었던 잘못된 성경해석법을 구제하겠다는 열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극히 중요한 것을 필요 없는 것과 함께 버리게 된 것이다. 오리겐 시절에 존재했던 건전한 성경해석법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대신에, 그들은 아주 비 성경적인 문법-역사적이라는 성경의 직역 법을 가지고 온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말하자면, 바른 성경해석법은 골방 속에 집어넣고, 열쇠로 잠그고, 그 열쇠를 쓰레기통에 버린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은 펜타코스트 박사가 성경해석법에 대하여 가르치고, 또 버끄호후박사가 성경에 대하여 발표한 것이 크게 과장된 것을 우리가 알게되었으며, 많은 목사들이 이러한 것을 신학교에서 배웠던 것이다.

19.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13장에 암시하시는 비유의 주제를 우리는 더욱 더 이해할 수 있게되었다. 마태복음 13장에,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가, 그 결과에 있어 많은 사람들이 그 비유를 이해 할 수가 없게 되었지만, 믿는자들이 진리를 아는데 도움이 된다고 선언하신다.
마태복음 13장 10절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질문하기를 왜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라고 물었다.
마태복음 13장 34-35절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선지자로 말씀하신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마 13:34-35)

그러므로 예수님은 계속하여 비유의 뜻을 꾸준히 가르치신다. 신약 성경에서 이에 대하여 여러 곳에 예를 들어주신다.
마태복음 13장의 비유에 대한 질문을 제자들이 예수님께 했을 때 그 답을 11절과 14절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되었나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마 13:11. 14)

이러한 구절을 공부하면서 알게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영적 진리를 참 믿는자들에게 알게 하기 위하여 비유를 사용하셨다. 그러나 비유는 동시에, 참 믿는자가 아닌 자들의 눈을 멀게 한다.
이전에 배운 바와 같이, 성경 전체가 그리스도의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가르치시는 방법에 있어, 비유를 사용하시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예를 때때로 우리에게 주신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 13장 44절에 다음과 같이 선언하신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마 13:44)

갈라디아서 4장 22-31절에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아 준 하가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시내산은 아직도 영적으로 노예가 되어 있는, 예루살렘을 묘사한다고 하셨다.
성경 잠언에도, 하나님께서 잠언이라는 이름을 이 책의 이름으로 주셨다. 히브리어 잠언은, 때때로 비유라고 번역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의 잠언은 모든 구절이 비유나 은유로 되어있기 때문에, 잠언에 기록된 모든 구절이 영적이고, 복음의 뜻이 있다고 보아야한다.
시편 78편 1-2절을 다음과 같이 읽는다.
내 백성이여, 내 교훈을 들으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내가 입을 열고 비유를 베풀어서 옛 비밀한 말을 발표하리니 (시 78:1~2)

또한 피를 흘리는 제사나, 번제가, 제 7일 안식일과 또 다른 많은 의례적인 율법의 비유이며, 또 은유임을 우리는 이해하여야한다. 이 모든 경우에 있어, 실제적으로 있던 사건이 어떤 하나님의 복음의 프로그램을 지적한다.
위의 구절과 또 많은 성경의 다른 구절들이, 하나님께서 성경을 쓰신 그 방법을 보여주신다. 비유나 은유를 말하는 성경의 예에는, 하나님께서 천국의 뜻이나 영적인 뜻을 제시하시며, 또한 이러한 것은 하나님의 복음 프로그램의 뜻이 항상 동반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분명하게 말 할 수 있는 것은, 오리겐과 Family Radio가 가르치는 성경해석법은 전적으로 성경적이다.

20. 표적이 믿는자들을 따를 것이다.

모든 성경구절에서 영적인 뜻과 복음을 의미하는 사실을 발견해야한다. 바로 이것은 성경이 요구하는 것을, 마가복음 16장 17-18절에 다음과 같이 읽을 수 있다.
믿는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막 16:17~18)

신학자들은 이 구절을 이해하기 위하여 문법-역사적인 성경직역의 방법을 써서 말하기를, 이 예언이 하나님께서 사도들에게 병을 고치고, 마귀를 쫓아내라고 하신 때에 능력을 주심으로써 이루어졌다고 한다.
고린도후서 12장 12절을 다음과 같이 읽을 수 있다.
사도의 표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 (고후 12:12)

더욱이, 사도바울이 파선을 당한 후 멜리데 섬에서, 나무를 불에 넣을 때 독사가 나와 바울의 손을 물었다. 바울은 그 독사를 불에 떨어트리고 해()를 입지 않았다. 이 기록이 마가복음 16장 18절에 뱀을 잡으며라고 하신 예수님의 예언이 이루어졌다 고한다.

신학자들의 이러한 결론은, 마가복음 16장 17절의 믿는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라고 하신 예언과 일치하지 않는다. 성경은 이런 표적이 사도들에게 따르리니라고 하지 않았다. 믿는자들에게 이런 표적이 따르리라고 하신 것은, 모든 믿는자들이 어디에 있거나 이런 표적이 따를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나 본 학습에서 원칙을 세운 것과 같이, 마가복음 4장이나 마태복음 13장에서 그리스도께서 비유로 말씀하셨고,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시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전에는 이 구절의 뜻을 이해할 수 없다. 사실상 많은 사람들이, 마가복음 16장이 거룩한 성경 정전()의 일부가 된다는 것을 의심하고 있다. 만일 우리가 17절 18절의 말씀을 직역할 수 있다면, 이런 사람들에게 동정이 간다. 그러나 이 구절들은 그들이 직역할 수 있다는 입장을 긍정할 근거가 전혀 없다.
믿는자들에게 따르는 다섯 가지 표적에 대한 영적인 뜻을 발견함으로써, 나머지 성경말씀에 조화가 되고, 또 하나님께서 직접 이 구절을 쓰셨다는 것을 알게된다. 의심할 바 없이 이 구절이 완전한 성경의 일부가 된다.
그리스도안에서 내 (그리스도)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비유로서, 믿는자들에 의하여 복음이 전파될 때 그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는 사람들을 지적한다.
구원받지 못한 모든 사람들은 사단의 통치하에 있다. 선택받은 자가 구원을 받을 때는 마치, 그가 가지고 있던 귀신을 쫓아내는 것과 같고, 그들은 더 이상 사단의 권력아래 있지 않게 된다. 그들은 그리스도 왕국으로 옮겨진 것이다. 참 믿는자들이 복음을 선포할 때마다 사단의 권력에서 놓이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표적은 믿는자들에게 항상 따르게된다.
두 번째의 표적은 믿는자들이 새로운 방언을 말하는 것이다. 이 비유의 영적인 뜻은, 모든 국가가 본국의 언어를 가지고 있다는 것에서 알 수 있다. 믿지 않는 자들이 말하는 방언 (정치적으로 어떤 나라임에는 상관없다.)은 사단의 통치하에 있다. 반면 믿는자들의 방언은 하나님 왕국의 통치아래 있음을 말한다. 비단 영어, 독일어, 혹은 불란서 어를 말한다 할지라도, 믿는자들이 말하는 방언은, 믿지 않는 자들의 방언과 구별이 된다. 같은 단어라 하더라도, 그 뜻과 적용이 말하는 자에 의하여 확실하게 다르다.
시편 40편 3절에서 구약성경의 예언을 기억하게 한다. 이 구절을 읽어보자.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시 40:3)

시편 98편 1절에서도 다음과 같이 읽는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시 98:1)

믿는자들을 어디서 만나든 간에, 우리는 그들이 새로운 방언을 말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믿는자들을 따르는 세 번째 표적은 그가 뱀을 잡는다. 성경에서 뱀은 사단(계 12:9)을 상징한다. 구원받기 전에는 우리가 사단의 권력아래 있고 사단이 우리를 통치하지만, 구원을 받은 후에는 우리가 사단을 통치하게된다. 마가복음 16장 18절에서 사용한 비유는, 마치 뱀꾼이 뱀을 마음대로 취급하는 것과 같다. 어디에서나 믿는자들을 만날 때, 우리는 그가 사단을 통치하고 있는 것을 볼 것이며, 이것은 마치 구원받은 사람의 집안에 사단이 가졌던 소유를 다 약탈을 당한 것 같다. 믿는자들을 따르는 네 번째 표적은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한다. 구원을 받으면 우리는 정결한 복음의 물을 마시는 것이다. 거짓 복음을 듣는 것은 독약을 마시는 것이다.
예를 들면, 신명기 32장 32-33절에서 이스라엘이 우상을 섬기는 일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비난하셨다.
그들의 포도나무는 소돔의 포도나무요 고모라의 밭의 소산이라 그들의 포도는 쓸개포도니 그 송이는 쓰며 그들의 포도주는 뱀의 독이요 독사의 악독이라
(신 32:32~33)

그러나 믿는자들이 구원을 상실 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만일 믿는자들이 거짓 복음의 독을 마신다할지라도 그들은 구원을 상실하지 못한다. 이 원칙은 참 믿는자들을 만날 때마다 볼 수 있다.
믿는자들을 따르는 다섯 번째 표적은,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 즉 나으리라고 하신 것이다. 영적으로 믿는자들이 복음을 다른 사람들과 나눌 때, 이것은 영적으로 병든 사람들을 돌보는 것이다. 믿는자들이 복음을 증거 할 때에 성령께서 그 말씀을 마음에 적용하시는 것은, 영적으로 병을 고치는 일이다. 하나님께서 베드로전서 2장 24-25절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벧전 2:24~25)
그러므로, 이와 같은 다섯 가지 표적이 모든 믿는자들에게 따른다는 것을 보았지만, 이것을 영적으로 보아야만 한다. 그리스도께서 비유로만 말씀하셨다는 성경의 원리를 적용한다면, 우리가 성경구절을 아름답게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성경이 역사적인 자료를 주지만, 그 자체가 복음의 메시지와 연관이 안될 때는, 영적으로 해석을 해야한다는 확실한 해명을 할 수 있게되었다.
이와 같은 두 구절은, 만일 우리가 성경에서 복음의 진리를 찾을 때에, 우리에게는 성경해석법을 바르게 이해해야 된다는 극적인 증거가 된다. 성경해석의 바른 방법을 쓰지 아니할 때, 성경의 많은 부분은 인봉 되고, 그 속에 있는 복음의 메시지는 결코 이해할 수가 없다.

21. 숨겨져 있는 많은 진리를 하나님께서 드러내시는 그 시기가 되었다.

우리는 다니엘 12장 9절에서 하나님께서 선언하신 그 시기에 와있다.
그가 가로되 다니엘아 갈찌어다 대저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할 것임이니라 (단 12:9)

이 구절은 성경에 숨겨졌던 많은 진리가 우리에게 드러났음을 확인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가르치시는 방법이 비유이기 때문에, 추가적인 진리는 비유를 통하여 가르치신다는, 성경해석법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계속하여 숨겨져 있다. 다른 한편, 하나님께서 비유를 사용하신다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지금 우리가 알기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 인봉 되었던 진리를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을 받게되었다.
이와 같은 실상이 오늘날까지 계속된다. 그러므로 성경의 어떤 부분이나 또 전체에서 영적인 가르침을 우리는 찾아야하며, 하나님의 자비로 성경에서 교회시대의 종말에 대한 진리를 우리가 볼 수 있게 하시며, 하나님께서 지방교회에 심판을 내리시며, 마지막 추수를 하시는 늦은 비에 대하여 알게 하시며, 하나님께서 지방교회를 버리고 거기에서 나오라고 명령하심을 볼 때, 우리는 영적인 가르침을 더 찾고 또 발견해야한다. 이와 같은 영적인 진리를 바로 이해할 때, 성경의 구절 구절이 크게 조화되어 있음을 우리는 발견한다.
그러나 문법-역사적, 직역의 성경해석법만을 배워온 사람들에게는 진리의 문이 닫아 진 것이다. 그들은 결코 교회시대가 끝났다는 가르침을 성경에서 찾지 못하게된다. 불행하게도 신학을 졸업한 거의 모든 목사들과 성경학자들이, 오리겐의 성경해석법은 천시()하고, 문법-역사적 성경직역 법만을 배웠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계속하여 교회시대가 끝난 것을 영적화(:Spiritualizing)한다고 불평을 한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그렇게 쓰신 이유가, 바로 그들로 하여금 불평할 것을 기대하신 것이다. 슬프게도, 이로 인하여 그들은 하나님께서 가르치시는 극히 중요한 과제를 완전히 무시하게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온전하신 가르침을 따라 가는 참 믿는자들을 사용하시어, 처음으로 가라지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 다음에 마지막 추수가 끝나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에 곡식은 곡간에 넣으신다.

22. 이것은 마지막 시험이다.

참 믿는자들에게 교회에서 나오라고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마지막 명령이다. 참 믿는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의 뜻을 따르려는 간절한 욕망이 있으며, 결국 그들은 교회에서 나올 것이다. 그들이 바로 곡간에 넣어질 곡식들이다.
하나님의 영원한 왕국의 시민이기 때문에 그들의 안전은 완전히 보장되어 있다. 그들이 구원을 받았다는 증거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겠다는 간절한 욕구가 있다.
다른 한편, 가라지는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으며, 그리스도께서 심판 주로 마지막날에 오실 때, 그들의 진상이 드러날 것이다. 가라지는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며, 그들은 교회에 남아 있는 것이 안전하다는 자신이 점차로 더 생길 것이다. 그들은 부활된 영혼을 받지 못했으며, 하나님 말씀 앞에서 두려워하고 떨지 않는다. 그들은 오히려 자신의 구원을 받기 위하여, 자신과 교회가 모든 필요한 것을 했음을 계속하여 믿게된다. 사실에 있어 그들은 마지막날 심판을 받기 위하여 결박을 당하는 것이며, 그리스도께서 마태복음 7장 21-23절에서 말씀하신 것같이 주여 주여 라고 말 한자들이다. 마태복음 7장 21-23장을 읽어보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7:21~23)

23. 곡식의 마지막 추수

요한계시록 14장 14-16절에 곡식과 가라지가 갈라지는, 마지막 추수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이 구절을 읽어보자.
또 내가 보니 흰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사람의 아들과 같은 이가 앉았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이한 낫을 가졌더라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네 낫을 휘둘러 거두라 거둘 때가 이르러 땅에 곡식이 다 익었음이로다 하니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 곡식이 거두어지니라
(계 14:14~16)

추수라고 한 것은 구원받은 사람을 지적하는 것을 우리가 배웠다. 그들이 추수하는 순간 그들은 부활된 영혼을 받는다. 인자(그리스도)가 추수의 사역을 주관하시며, 참으로 믿는자들은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게된다. 그러므로 이 추수는 세상종말까지 계속될 것이다. 추수가 된 각 개인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교회인 하나님의 왕국에 가입이 된다. 우리가 배운 바와 같이, 추수하는 때에 가라지는 묶임을 받는다.
이 추수의 마지막에 가서 곡식은 곡간(구원이 완성됨)에 들어가며, 그들은 새로 부활한 영적 몸을 받는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마지막 심판날에 도달한다.
요한계시록 14장 18-20절에서 경고하신 것을 읽어보자.
또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이한 낫 가진 자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불러 가로되 네 이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느니라 하더라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굴레까지 닿았고 일천 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 (계14:18~20)

이 날이 바로 가라지가 불태움을 받는 날이다. 이 날은 바로 가라지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나라들이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마시는 날이며, 이에 대하여 예레미야 25장 15-16절에 다음과 같이 읽을 수 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손에서 이 진노의 잔을 받아가지고 내가 너를 보내는바 그 모든 나라로 마시게 하라 그들이 마시고 비틀거리며 미치리니 이는 내가 그들 중에 칼을 보냄을 인함이니라 하시기로 (렘 25:15~16)

지방 교회에 남아 있는 가라지들이 당할 환난이 얼마나 무서운가?
이와 같이 곡식과 가라지의 비유를 공부함으로써, 우리는 교회시대의 마지막에 지방교회가 지니고 있는 영적인 실정을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오래 전부터 많은 교파가, 교리의 권위를 성경만이 그리고 성경전체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에 두지 않고 있다. 이러한 교회는 방언을 믿거나, 환상, 표적, 기사를 혹은 하나님께서 그들 교단의 설립자를 통하여 말씀하셨다고 믿는다. 하나님께서 이에 대하여 요한계시록 22장 18-19절에 분명하게 선언하셨다.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계22:18~19)

말씀의 권위를 성경에 더하거나, 또는 감할 때, 하나님의 심판(재앙을 더하심)을 받는다고 하였다. 그들이 구원받지 못했기 때문에, 사단의 권한아래 있다. 본 학습에서 이미 배운바와 같이, 교회시대 동안에는 사단이 교회를 통치하고 있었지만, 어떤 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었다. 물론 구원받은 자가 그릇된 교회에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그 때에 그는 더 신실한 교회를 찾는 노력을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성경은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던 그 때에 교회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그들은 기사와 이적, 환상, 방언 등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을 것이다. 그들 교회는 참 믿는자들만으로 가득 찼을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되기를 바랐을 것이다. 우리가 배운 바와 같이 교회시대 동안에, 사실상 모두 그렇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시험을 받고있다. 하나님의 명령이 선포되었다. 참 믿는자들은 교회에서 나오라고 하신다. 곧, 바벨론에서 나와야한다고 하시는 것이다. 참 믿는자들은 하나님 말씀 앞에 설 때, 무서워 떨게된다. 그들이 구원을 받은 때에 새로운 부활된 영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간절한 욕망이 있다. 그들은 계속하여 큰 환난과 교회의 마지막에 대한 공부를 함으로써 더욱더 불안을 느낄 것이다. 마침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그들의 지방교회를 떠나게될 것이다.
불행하게도, 많은 보수적인 교회들이 교회시대의 끝장에 대하여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극히 적은 수의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 성경을 믿는 정통적이고 보수적인 교회들 속에는 믿지 않는 사람들로 아주 많이 차 있지 않는가? 이와 같이 믿지 않는 자들은, 물로 받는 세례를 경험하였고, 신앙고백을 했으며, 성찬식에 참석할 수 있는 아주 경건한 회원이며, 도덕적이고, 품위 있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아닌가? 그들이 성경을 믿는 대신에 교회와, 교회의 교리와 신앙고백을 믿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영적인 상태가 사실상 모든 교회를 지적하여 말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서운 일이 아닌가? 이전에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서 배운 바와 같이, 교회가 막 시작되던 때에, 사단은 자신의 사역을 성공시킨 것이다. 사단은 계속하여 성공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신학교들과 모든 교단들이 경건한 모양은 있으나 구원을 경험하지 못한, 구원받지 못한 자들의 감독을(지도를) 받고 있지 않는가? 이 얼마나 무섭고 흉악한 가능성을 말하고 있는가? 만일 그것이 성경말씀에 충실하다고 생각하던 교회들의 실상이라면,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언어를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언어는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과 또 성경
여러 곳에서 오늘날의 지방교회를 지적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이 일에 대하여 지극히 심각하게 말하시는 몇 군대 성경구절들을 찾아보겠다.

렘 5:23: 23, 그러나 너희 백성은 배반하며 패역하는 마음이 있어서 이미 배반하고 갔으며
렘 5:2627, 백성 너희 중에 악인이 있어서 새 사냥군의 매복함 같이 지키며 덫을 놓아 사람을 잡으며 조롱에 새들이 가득함 같이 너희 집들에 속임이 가득하도다 그러므로 너희가 창대하고 거부가 되어
렘 6:14-15,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하였느냐 아니라 조금도 부끄러워 아니할뿐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않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엎드러지는 자와 함께 엎드러질 것이라 내가 그들을 벌하리니 그 때에 그들이 거꾸러지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렘 7:24, 그들이 청종치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고 자기의 악한 마음의 꾀와 강퍅한 대로 행하여 그 등을 내게로 향하고 그 얼굴을 향치 아니하였으며

위의 본보기와 같은 내용을 성경에서 더 찾는다면, 백 배 이상의 예를 발견할 것이다. 성경구절들은 지방교회가 점차적으로, 사단에게 속한 더 극심한 의의 설교자들에 의하여 채워지고 있음을 하나님께서 보신다는 설명이다.
교회시대에 사단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어떻게 공격하는가 하는 가를 알게되면, 우리는 큰 충격을 받을 것이다. 만일 이 가능성을 생각한다면, 무서운 놀라움이 우리 마음 속속들이 다가 올 것이다. 사도시절에 성전과 회당 안에 존재하던 똑같은 현상을 우리가 보지 않는가! 제사장들과 바리세인들은 오늘날의 많은 교회지도자들과 같이 아주 도덕적이고, 품위가 있고, 경건하게 보이는 사람들이 아니었던가!
더욱이 지방교회 모든 교인들을 놀라게 하는 또 다른 사실은, 아무도 가라지를 분간하지 못한다는 것이며, 내가 그 가라지 중에 하나가 아님을 어떻게 다짐할 수 있다는 말인가? 교회 안에서 구원받지 못한 자들은, 세상에 있는 사악한자들과 동일하게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있다. 교회시대를 통하여 지방교회가 지니고 있는 상태를 성경은 분명하게 지적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질문은 반드시 있어야한다.
이상과 같은 질문은 극히 심각한 질문이다. 내 성경 교사와 목사가 참으로 구원받았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만일 그가 구원을 받지 못 했다면, 그는 사단의 통치아래 있으며, 고린도후서 11장에서 읽은 바와 같이, 그는 사단의 의의 일군이다. 교회 공동체에서는 어떤 사람이,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가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 것 같지 않다. 하나님께서 교회시대를 통하여 직접 가르치시기 때문에, 그들이 그것을 알 수 없고, 곡식과 가라지는 실제상 아무도 분간을 못하게 되어있다. 고린도후서 11장 15절에는 사단이 의의 일군이라고 하였고, 히브리서 6장 4-6절에는 그들을 가리켜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라고 하신 것은, 그들이 곡식인지 가라지인지를 우리가 분간할 수 없음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다.
분명하게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바는, 물로 주는 세례나, 신앙 고백이나, 교회의 회원이 되는 것 등이, 참 구원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교회에 속해 있다는 것이 성경적으로 보이나, 거기에는 구원의 보장이 없고, 교회에 열심히 참석하고, 교회 행사에 참가하는 것으로는, 구원의 보장이 없다. 내가 구원받았다고 교회의 목사나, 장로가 말하는 것으로는 보장이 없고 그들 자신이 가라지일 수도 있다.
이와 같은 진술은 우리를 참으로 놀라게 한다. 그러나 그들은 매우 가까이 와 있는 심판날에 직면해야되며, 아직도 내가 구원을 받지 못했다면, 나는 영원히 멸망을 받을 것을 알아야만 한다. 만일 내 교회가 성경에 충실하다면, 하나님의 진노가 구원받지 못한 자들에게 내릴 것이라는 성경진리를 강조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마침내,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고 하신 말씀의 뜻을 알게된다. 하나님께서 왜 고린도후서 13장 5절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는지를 알 수 있다. 이 구절을 읽어보자.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고후 13:5)

그렇다면, 어떻게 내가 참으로 구원을 받았는지 알 수 있을까? 내가 만일 의심을 갖는다면, 내가 아직도 구원을 받지 못한 것이다. 내가 구원을 받지 못했다면, 무엇을 내가 할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은 각 개인이 자문해야 할 극히 중요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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