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10월 뉴스레터      

여러분께 드립니다.

이번 달에는 계속하여 마태복음 24 15-28절을 공부하겠습니다.

마가복음 13 14-23절에 같은 내용의 말씀을 읽을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4 15-28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찐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찌어다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안에 있는 물건을 가질러 내려 가지 말며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질러 뒤로 돌이키지 말찌어다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찌니라

마가복음 13 14-23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찐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찌어다 지붕 위에 있는 자는 내려가지도 말고 집에 있는 무엇을 가지러 들어가지도 말며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찌어다 그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이 일이 겨울에 나지 않도록 기도하라 이는 그날들은 환난의 날이 되겠음이라 하나님의 창조하신 창초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만일 주께서 그날들을 감하지 아니하셨더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어늘 자기의 택하신 백성을 위하여 그날들을 감하셨느니라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보라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백성을 미혹케 하려 하리라 너희는 삼가라 내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아주 어려운 과제가 이번 달 성경공부의 내용입니다.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며, 과거에 누가 어떻게 해석을 했었다는 기록에서 멀리 떠나 성경말씀을 서로 비교하여 그 뜻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15: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찐저)

이 구절에서 특히 유의할 점은 그리스도께서 다니엘서를 공부하도록 명령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4장에 말씀하신 내용을 다니엘서에 미리 말씀하셨다고 하신 것입니다. 순서로 보아서 다니엘서를 먼저 공부를 해야할 것입니다. "멸망의 가증한 것"에 대한 다니엘서의 기록을 살펴 모겠습니다.

"이는 깃딤의 배들이 이르러 그를 칠 것임이라 그가 낙심하고 돌아가며 거룩한 언약을 한하고 임의로 행하며 돌아가서는 거룩한 언약을 배반하는 자를 중히 여길 것이며 군대는 그의 편에 서서 성소 곧 견고한 곳을 더럽히며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케 하는 미운 물건을 세울 것이며" ( 11:30-31)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케 할 미운 물건을 세울 때부터 일천 이백 구십일을 지낼 것이요 기다려서 일천 삼백 삼십 오일까지 이르는 그 사람은 복이 있으리라"

( 12:11-12)

이상의 두 구절에서 "멸망케 할 미운 물건"을 지적하셨습니다. "멸망케 할 미운 물건""멸망의 가증한 것" 입니다. "멸망"은 지옥의 멸망을 말씀하신 것이며, 성경 전체를 통하여 멸망에 대한 말씀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성경에는 여러 번 이스라엘의 멸망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 예를 레위기 26장에서 읽으면,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살 때에 모세를 통하여 백성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레위기 26 7절과 8절에 "너희가 대적을 쫓으리니 그들이 너희 앞에서 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다섯이 백을 쫓고 너희 백이 만을 쫓으리니 너희 대적들이 너희 앞에서 칼에 엎드러질 것이며"( 26:7-8)라고 하셨고, 27절에 다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이같이 될찌라도 내게 청종치 아니하고 내게 대항할찐대"라고 하셨고, 31절에 "내가 너희 성읍으로 황폐케 하고 너희 성소들로 황량케 할것이요 너희의 향기로운 향을 흠향치 아니하고"라고 하셨습니다. 이상과 같은 말씀이 이스라엘이 가나안 복지에 들어 와서 사는 동안에도 계속되었습니다.

이사야 51 19-20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이 두가지 일이 네게 당하였으니 누가 너를 위하여 슬퍼하랴 곧 황폐와 멸망이요 기근과 칼이라 내가 어떻게 너를 위로하랴 네 아들들이 곤비하여 그물에 걸린 영양 같이 온 거리 모퉁이에 누웠으니 그들에게 여호와의 분노와 네 하나님의 견책이 가득하였도다"( 51:19-20)

신약 교회시대가 되면서 교회가 구약 이스라엘의 상태 보다 낳아진 것이 없습니다. 다만 그 상태를 하나님께서 다른 방법으로 설명하셨습니다. 그것은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 기록된 초대 일곱 교회의 상태를 읽음으로써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4 15절에서 지적하신 "멸망"은 하나님의 왕국을 대표하고 있는 현대교회를 지적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멸망을 이미 받은 사단(가증한 것)"거룩한 곳"을 점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과학적이고, 논리적임을 음미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천지와 인간을 창조하시고, 현재와 장래를 계획하시고, 운영하시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직접 성경을 쓰셨다는 것을 알게되기 때문입니다.

첫째, 신약 교회시대의 역사는 구약시대에 일어났던 사건의 반복이며, 영적으로 볼 때에 구약의 역사는 신약시대를 상징했으며, 하나님 보시기에 교회시대의 모든 교회가 악을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에 다윗이나 요시야왕과 같이 선한 왕들이 있었지만 결국 멸망에 이른 것같이, 지금도 선한 교회가 몇 군대 존재할 지라도, 하나님께서 "멸망의 가증한 것"을 사용하여 교회를 멸망케 하십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역사를 하나님께서 기록하신 이유는, 말세에 살고 있는 우리가 그 역사를 참고로 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고, 큰 환난시기와 마지막 날에 있을 사건들을 그 역사 속에 지적하여 쓰신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21세기에 살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때를 쉽게 알 수 있도록 성경을 쓰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다니엘서를 공부하도록 명령하신 이유를 생각하게 됩니다. 다니엘서에 사단이 교회를 다스리게 내여 주실 것이라는 예언과 동시에, 인봉(印封)된 말씀이 때가 되어야 열리고 깨닫게 될 것이며, 또한 70이레, 1290, 1335일 등으로 날짜를 말씀하신 이유는 큰 환난 시기에 대한 확실한 정보를 기록해 두셨음을 암시하신 것입니다. "읽는 자는 깨달을 진져"라고 하신 것이 무슨 뜻이겠습니까?

성경에 "가증한 것(abomination)"에 대하여 여러 곳에 기록하셨습니다. 처음 기록이 창세기 43 32절에 있습니다. 애굽사람들이 히브리 사람과 같이 먹으면 "부정을 입음

(abomination)"이라고 하셨고, 그 이유는 출애굽기 8 26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는 것은 애굽사람의 미워하는 바(abomination)"라고 함으로써 "가증한 것""미운 물건"인 것을 설명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가증한 것"이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의 법을 알지 못하거나, 순종하지 못하는 자들을 지적합니다. 구약 레위기 11장에 여덟 번 가증한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비늘 없는 고기를 먹는 것이며( 11: 10, 11, 12,), 새들과 박쥐이며( 11:13-15), 곤충이며( 11:20), 땅에 기어다니는 모든 것( 11:41,42) 입니다. 성전에 제물로 쓰도록 명령하신 짐승과 비둘기만이 이스라엘이 먹을 수 있는 고기였습니다. 이러한 사실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일정하고 특별하며 택하신 백성만이 지킬 수 있는 율법을 새우신 것입니다. 윤리적인 법 중에도 가증한 것이 있고, 그 가증한 법을 어긴 자들은 돌에 맞아 처형(處刑)되었습니다. 이러한 것은 동성애자들이며( 18:22, 20:13), 우상을 만드는 자들이며( 7:25, 27:15),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이며,( 12:31), 흠 있는 짐승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며,( 17:1), 여자가 남장을 하거나 남자가 여장을 하는 것이며( 22:5), 이혼한 여자와 결혼하는 것이며( 24:4), 속이는 저울과 거짓말하는 것이며( 11:1, 12:22), 또 마음이 거만한 자( 16:5)라고 하셨습니다. 예레미야 시절에는 산당을 짓는 것이 또 가증하다고 하셨습니다( 32:35).

이러한 가증한 것에 대하여 성경말씀을 읽고 결론에 도달하는 것은 구원받지 못한 자들의 행동과 처지를 가증한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어떤 성경학자는 "멸망의 가증한 것"이 로마교회의 교황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강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고, 사람의 생각을 설교하는 개신(改新)교회 목사들과 얼마나 차이가 있겠습니까? 한가지 분명한 것은 돌로 쳐서 죽임을 받아야할 가증한 죄값을 근 2000년 동안 하나님께서 참아 오셨고, 또 마지막 날까지 얼마동안을 더 참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다음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에서 "거룩한 곳"은 하나님께서 계시는 성전입니다. 구약시대에 성전에 들어가는 법을 새우시고, 그 법을 어기는 자들이 급사(急死)를 당했습니다. 하나님은 또 거룩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산에서 만나고 내려오는 모세의 얼굴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쳐다보지도 못했던 기록을(34:34) 읽지 않았습니까?

신약 교회시대에도 "너희와 함께 있으리니"라고 약속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교회를 새웠을 때에는 예수님께서 그 교회 예배당에 계실 것을 믿고 교회가 새워진 것이 아닙니까? 그렇기 때문에 예배당에 들어가는 것을 성전에 들어간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모든 기독교 교파들은 자기들 나름대로 건물과 예배형식을 거룩하게 한다고 해서 꾸미고 단장했지만,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뒷전에 두고 자신들의 만족을 얻기 위해 한 것이 아닙니까? 그리스도께서 이러한 예배당에 와 계실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거룩한 곳"이라고 부르신 이유는 그 이름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곳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내세우는 모든 집단입니다.

"선 것을 보거든"에서 "선 것"은 사람들 앞에 선 것이며, 지도자들을 말합니다. "보거든"은 듣는다던가 경험하기 이전에 있는 행동입니다. 위에서 공부한 가증한 것을 본 것은 근래에 있는 일이 아니고, 2000년을 보고 온 것이 아니겠습니까? 요한계시록 2 3장에 나오는 일곱 교회에 가증한 것이 있었음을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보고 있는 시기가 가증한 것을 깨닫도록 하시는 때이며, 또 그 가증한 것의 정도가 절정에 달했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16: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찌어다

"유대"가 교회가 아닌 다른 뜻으로는 해석할 수 가 없습니다. 실제적인 유대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든 순간 그 뜻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은 성경에서 근 200번 이상 읽을 수 있습니다. 산은 언덕이며 높은 곳입니다. 전쟁 때도 산을 점령하고 승리한 기록이 많이 있습니다. 많은 경우 산은 국경을 정하는 표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성경에서 바다를 세상으로 상징한데 비하여, 산은 하나님께서 계시는 높은 곳으로 상징하셨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만난 시내산이 그렇고,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4장을 말씀하신 감란산이 또한 그렇습니다. 솔로몬 왕은 시편 72장에서 "산들이 백성에게 평강을 주며"라고 하였고, 시편 121편은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121:1-2)라고 함으로써 산을 도움을 주시는 하나님으로 상징하였습니다. 산에 대한 이 해석이 바로 마태복음 24 16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산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할 것은, 도움을 주시는 하나님을 성경에서만 찾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16절의 해석은 큰 환난이 시작되면 택하심을 입은 사람들은 교회에서 떠나라고 명령하셨고, 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만을 의지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도망할찌어다"라고 하신 이유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교회가 성경적이 아니니 거기를 "떠나라"고 하신 것 이상의 뜻이 있습니다. 성경역사에서 도망하던 일을 기억하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까? 성경에서 도망하던 사건이 모두 생명과 관계가 되어있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당할 때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도시를 떠나서 산으로 도망했고 ( 19:),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하여 외삼촌 라반에 집으로 도망했고 ( 27:), 다윗 왕이 아들 압살롬을 피하여 예루살렘에서 도망해 나왔고 (삼하 15:), 아기 예수님께서 헤롯왕을 피하여 애굽에 피하신 ( 2:13-18) 것 등의 기록은 다 생명과 관계가 되어 있었습니다. "도망할찌어다"라고 하신 것도 "도망하지 않으면 죽으리라"고 하신 말씀이 아닙니까?

17: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안에 있는 물건을 가질러 내려 가지 말며

"지붕 위"에 대한 기록은 여호수아 2장에서 처음 읽을 수 있습니다. 모세가 죽은 후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을 거느리고 복지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두 사람의 정탐군을 보냈을 때, 기생 라합의 집에 머물렀습니다. 여리고왕이 그 정탐군을 찾을 때, 기생 라합은 그들을 지붕에 숨겨 구하고, 여리고 성이 함락되었을 때 라합이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집 구조는 지붕에 잡초가 자랄 수 있게 평지로 되어있는 듯 합니다( 129:6).

신약성경 기록에서 생각할 수 있는 사건은 마가의 다락방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직후에 처음으로 믿는자들이 모이고 성령께서 강림하신 곳입니다. 지붕은 아닐지라도, 집 위에 있음으로 그 뜻이 같습니다.

다음으로 생각하는 것은 사도행전 10장에 사도 베드로가 지붕에 올라가 기도하는 중 이방인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기사입니다.

이와 같이 성경이 지붕에 대한 기록을 비교할 때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에서 할 일 보다 그 차원이 높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지적하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복음사역을 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교회가 임명한 특정한 사람들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정하신 모든 믿는자들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다 복음을 전하는 목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물건"은 집안에서 씌어지는 것이며, 지붕 위에서 씌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17절의 말씀은 참 믿는자들이 복음을 전하는 사역이 급하고 귀한 것을 알고, 계속하여 복음을 선교할 것을 명령하신 것입니다.

18: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질러 뒤로 돌이키지 말찌어다

17절과 같은 뜻이 있으며, 믿는자들은 다 농부입니다(고전 9:9-10, 딤후 2:6). "걷 옷"은 정복이며, 옷에 따라서 입은 자들의 신분을 나타냅니다. 특히 제사장이 입는 의장(衣裝)에 대하여 구약성경에 많은 기록이 있습니다. 우리 생활에도 여러 가지 겉옷이 있습니다. 그러나 18절에서 말씀하는 것은 "뒤로 돌이키지 말찌어다"라고 하신 것으로 농부는 농사에 집중하여 마지막 노력을 하도록 명령하신 것입니다. 쟁기로 밭을 갈거나 추수하는 농부는 뒤를 돌아볼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마지막 때에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며, 우리는 농부의 옷을 입고 밭에 나아가 있습니다.

19: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은 거짓 복음을 어머니 배속에서 나기 전에 들었고, 또 거짓복음을 자식들에게 가르치는 자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성경을 살펴보면, 이 구절에서 "그 날"은 세상의 종말을 말하며, 이 시기에는 두 가지 종류의 사람 밖에 없습니다. 구원을 받은 사람들과,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젖먹이는 자" "아이밴 자들", 말세에 가서 무엇인가 잘못을 행하고 있는 자들을 말한다고 생각하기 이전에, 성경에 구원받지 못한 자들을 어떻게 정의하시는 가를 찾아야 합니다. 따라서 "젖먹이지 못한 자", "아이를 배지 못한 자"에 대한 성경말씀은 이 뜻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올바른 주석이 될 것입니다.

로마서 9장에 "약속의 자녀"에 대한 기록은 이 마태복음 24 19절의 주석이 됩니다. 약속의 자녀는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을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3:7). 로마서 9장과 갈라디아서 3장이 "아이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의 뜻을 이해하는데 기본이 되는 내용입니다. 말할 것도 없이, 아브라함에 대한 공부는 창세기 11장에서 시작해야 하며, 또 이 공부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우리가 어떻게 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가 하는 기본원리를 배우게 됩니다.

창세기 11장에서 아브라함을 소개할 때, 동시에 그의 아내 사라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습니다.

"사래는 잉태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 11:30). 여기에서 "잉태하지 못함"이 한 단어 Barren(agar:히브리어)으로 기록되어있습니다. 유의할 점은 사래를 잉태하지 못하는 여인으로 소개했다는 점입니다. 사래는 하나님께서 "열국의 어미"( 17:16) 말씀하심으로 하나님께서 택하신 모든 자들이 사라(사래)에게서 태어났음을 선언하셨습니다. 또 놀라운 사실은, "잉태하지 못하는 여인" 3대에 걸쳐 성경에다 명시함으로써, 택하심을 입은 백성들은 이 잉태하지 못한 여인들의 후손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3대는 사라와, 사라의 자부이며 이삭의 아내인 리브가가 또한 잉태하지 못한 여인으로 기록되었고( 25:21), 야곱이 가장 사랑하던 아내였고 요셉의 어머니였던 라헬이 또한 잉태하지 못한 여인이었습니다( 29:31). 그러므로 잉태하지 못한 자를 성경은 "Barren"이라고 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약속의 자녀를 설명하는 한가지 방법"으로 사용하셨습니다.

이와 반면에 사라의 여종이며, 이스마엘의 어미 하갈은 이스마엘을 잉태한 후에 바로 자기의 주인인 사라를 멸시한 기록이 있습니다( 16:4). 이것이 바로 마태복음 24 19절에 아이밴 자와 젖먹이는 자에 대한 주석입니다. 세상에서 구원받지 못한 자들을 하갈이 대표합니다. 사라가 잉태하지 못하여 번민하고 살던 생활은, 믿는자들의 신앙생활을 대표합니다. 자식을 잉태하지 못할 것이 분명한 사라에게 자식을 약속하신 것은, 구원받을 가망이 전혀 없는 우리에게 구원을 약속하신 것과 같습니다.

20: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성경에서 "겨울"을 말할 때는 추수가 이미 끝난 때를 말합니다. 실제적으로 겨울은 식물과 동물들의 활동이 끊어지는 때이며, 또 농부들은 곡식을 곡간에 쌓아두는 때입니다. 성경에는 계절을 말 할 때 봄과 가을은 말하지 않고 여름과 겨울을 말하며, 영적으로 말하면 여름은 복음이 전파되는 때이며, 겨울은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완성된 후 입니다. 이것은 마치 신랑을 맞이할 열 처녀 중에서 다섯 처녀가 신랑을 만날 시기를 놓친 것과 같습니다.

안식일도 겨울과 같은 뜻이 있습니다. 6일 동안에 일하고 그 다음에는 쉬는 날입니다. 겨울은 구원받지 못할 자들이 여름 후에 들어갈 계절이며, 안식일은 택하신 백성들이 세상에서 모든 일이 끝난 후 영원히 안식할 것을 상징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지키도록 명령하신 세 가지 계절들 오순절, 유월절, 그리고 장막절의 기간을 안식일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계절들은 이스라엘만이 지켰든 것을 잊어서는 안되며, 상징으로 존재했던 오순절과 유월절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실제적으로 이루어졌고, 장막절은 추수가 끝난 후 모든 구원받은 자들이 주님과 함께 지나게 될 절기입니다.

그러므로 20절의 뜻은 결론적으로 마지막날이 되기 전에 교회에서 나와, 장막절의 안식일을 맞도록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마치 슬기로운 다섯 처녀가 등잔의 기름을 받고 신랑을 기다리는 것과 같습니다.

21: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이와 같은 큰 환난이 이제까지 인류역사상에 없었다고 하신 것은 지금 사단의 반역(叛逆)이 그 절정에 도달했음을 말하며, "후에도 없으리라"고 하신 것은, 이 일이 세상 종말 직전에 있을 것을 지적합니다. 이 환난은 하나님께서 사단을 잠깐 놓으신 때이며, 사단의 속임수가 그 절정에 달하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아모스 8장에 이 환난이 세계적인 것을 말씀 하셨고, 곧 모든 교회가 성경을 믿는다고 하면서 제나름대로 열심을 내고있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의 귀를 막으신 때입니다.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찌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 ( 8:11-12)

22: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인간이 다 사단에게 속기 때문에 사람의 지혜를 가지고는 큰 환난을 이기고 구원의 진리를 찾지 못하게 되어있으나"라고 할 수 있으며,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교회시대의 끝이 오게 하시고, 큰 환난기간을 주려, 주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을 몇 년으로 짧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23: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는 기독교의 수많은 종파를 말하며 그 중 하나도 말씀에 충실하지 못함을 지적합니다. 성경에서만 그리스도를 찾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큰 환난은 거짓선지자들이 판을 치는 시기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뒤를 따르고 있는 것을 봅니다. "할 수만 있으면"은 구원받은 자들은 거짓선지자들을 결코 따라가지 말아야 할 것을 다짐하신 것이며, 큰 환난기간을 감하신 이유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25: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세상이 거짓선지자들로 사면초가가 되었고, 또 이 광명(光明)의 천사로 나타나는 사단의 속임수의 전쟁이 견디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지만, 예수님께서 그 기간을 짧게 했으며 너희는 견딜 수 있게 하겠다"라고 다짐하여 약속하신 것입니다.

26: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세상에는 "내가 그리스도라"라고 외치며 나타나는 얼빠진 사람을 혹 보게 되며, 그런 사람들은 거리에서 외칩니다. "광야"는 생명이 없는 황무지이며, 골방은 은밀한 곳입니다. 두 경우가 다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장소를 말합니다. 성경의 말씀과는 전혀 다른 설교를 듣고도 "은혜를 많이 받았다"고 하는 때입니다. 그것은 광야에서 그리스도를 찾는 것입니다. 강단에서 벌려놓는 설교가 참으로 윤리적이고 사회적이고 또 철학적이지마는, 생명(말씀)이 없는 설교를 듣지도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한국 기독교인들처럼 "골방"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그것은 수없이 지어 놓은 기도원들이 증명합니다. 은밀한 곳에서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고 말씀하신다고 수많은 목사들과 교인들이 믿고 있습니다. 태반의 한국교인들은 신비주의를 믿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열심히 기도를 했더니, 아들이 좋은 대학에 들어 갈 수 있었다"라고 합니다 마는, 복음과는 거리가 먼 얘기입니다. 예수님의 명령에는 생명이 있고, 그 명령은 성경에서만 찾을 수 있으니 성경만을 의지하라고 명하는 것입니다.

27: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동에서 번개가 나면 서에서도 동시에 그 번개를 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동서를 말할 때 전 세계를 말하며, 지금 복음은 전 세계적이며, 어떤 진리가 선포되었을 때 그 진리를 세계 어느 곳에서도 동시에 들을 수 있는 전자(電子)시대가 된 것을 지적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세계에 퍼져있는 모든 믿는자들이 예수님의 재림을 동시에 알게 될 것입니다.

28: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찌니라

"주검"은 잘못 번역이 되었으며, 바른 번역은 "송장, 죽은 시체(屍體)"(carcase)입니다. 구약 제사(祭祀)법에서 송장을 다루는 법을 엄중하게 정하셨으며, 짐승이나 사람의 죽은 시체를 만진 사람은 부정(不淨)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경에 죽은 시체와 독수리를 연결하여 말씀하신 곳이 몇 구절 있습니다.

"네 시체가 공중의 모든 새와 땅 짐승들의 밥이 될 것이나 그것들을 쫓아 줄 자가 없을 것이며" ( 28:26)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 30:17)

"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해에 서서 공중에 나는 모든 새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와서 하나님의 큰 잔치에 모여 왕들의 고기와 장군들의 고기와 장사들의 고기와 말들과 그 탄 자들의 고기와 자유한 자들이나 종들이나 무론대소하고 모든 자의 고기를 먹으라 하더라" ( 19:17-18)

위의 구절들이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4 28절에서 하신 말씀의 주석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도 못하고 알고자 노력도 하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죽은 시체와 같으며, 독수리(사단)가 그들을 찾고 있습니다. 독수리가 사단을 지적할 수 있다는 또 다른 성경 구절은 호세아 8 1절에 있습니다.

"나팔을 네 입에 댈찌어다 대적이 독수리처럼 여호와의 집에 덮치리니 이는 무리가 내 언약을 어기며 내 율법을 범함이로다" ( 8:1)

성경이 독수리를 말할 때, 신속한 것을 말하고(삼하 1:23, 4:13 ), 하나님의 보호를 말하며( 19:4, 32:11-12), 또 힘을( 40:31) 말합니다. 그러나 이 구절에서는 사단을 상징합니다.

복음회 소식: 윤장로님댁에서 우리 이웃에 이사오신 후 많이 안착되어 가고, 주일예배는 두 집에서 번갈아 봅니다. Gary가 참석 못할 때는 오랜만에 한국어 찬송을 부르며, 또 한글 성경을 읽고, McCann씨와 Tom Holt씨의 설교를 듣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06년 추석 절에

이대우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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