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11월 뉴스레터                          

여러분께 드립니다

이번 달에도 계속하여 마태복음 24 29-39절을 공부하겠습니다.

마태복음 24 29-39: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저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나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지난달에, 큰 환난이 이제 절정에 도달할 것이며, 이 환난은 사람들의 육체가 어려움을 당하는 것이 아니고, 교회와 지도자들의 가르침이 성경말씀에 극도로 위배되었고, 사단이 광명의 천사, 거짓의 아버지로 나타나기 때문에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백성이 아니면 이것을 분간할 수 없이 유혹을 받게 된다고 배웠습니다. 이 현상은 세상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이번 달의 공부는 큰 환난이 그 끝을 맺는 때의 사건입니다.

29: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날"은 여호와의 날이며, 우주창조의 목적이 성취되고 하나님의 새 창조가 자기의 택하신 백성들에게 전개되는 날입니다( 21:1-2). 이 날을 "여호와의 날"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이 날은 하나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시기 전에 홀로 계획하셨고, 정하신 날에 이루어집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께 불순종한 인류가 형벌을 받는 날입니다.

"여호와의 큰 날이 가깝도다 가깝고도 심히 빠르도다 여호와의 날의 소리로다 용사가 거기서 심히 애곡하는도다 그 날은 분노의 날이요 환난과 고통의 날이요 황무와 패괴의 날이요 캄캄하고 어두운 날이요 구름과 흑암의 날이요 나팔을 불어 경고하며 견고한 성읍을 치며 높은 망대를 치는 날이로다 내가 사람들에게 고난을 내려 소경 같이 행하게 하리니 이는 그들이 나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이라 또 그들의 피는 흘리워서 티끌 같이 되며 그들의 살은 분토 같이 될찌라 그들의 은과 금이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할 것이며 이 온 땅이 여호와의 질투의 불에 삼키우리니 이는 여호와가 이 땅 모든 거민을 멸절하되 놀랍게 멸절할 것임이니라" ( 1:14-18)

2. 이 날은 또한 그리스도의 날입니다( 1:6, 고전 1:8). 그리스도의 피로 된 언약이 성취되는 날이며, 창세 직후부터 이날까지 하나님의 예정하심에 따라 구원받은 그리스도의 백성들이 드디어 그리스도와 대면하면서 기쁨과 감사의 눈물을 흘리게되는 날입니다. 창세 후 택하심을 입은 자들은 하나같이 이 날을 손꼽아 기다려왔습니다( 4:30).

3. 지옥의 멸망을 받을 인간들에게만 이 날이 도적과 같이 돌연히 닥쳐옵니다.

4. 이 날은 마지막 날입니다.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는" 날입니다. 마태복음 24 29절에서 해와 별과 달을 영적으로 해석해서, 해는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별은 믿는자들이며, 달은 사단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지만, 굳이 그러한 방향으로 노력할 필요 없이 이 구절은 실재적으로 천체(天體)의 흔들림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성경의 수많은 구절들이 마지막날 세상은 불에 의하여 멸망당할 것을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 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벧후 3:10)

인간은 해가 없으면 한시도 살 수 없으며, 땅의 만물이 해에서 에너지를 받아 생존하고 있습니다. 식물과 동물이 살고, 자라고 번성하는 근원이 이 해에 달려 있으며, 인간의 문화문명의 근원이 해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이 해는 창조 후 지금까지 우주공간의 한자리에 떠 있으면서 날짜와 시간을 정하는 근원이 되었습니다. 해를 중심으로 공전하고 또 자전하는 지구와 달에 의하여 인류는 역사적인 사건의 정확한 연대와 날자와 시간을 기록할 수 있었고, 또 앞으로 다가올 달력을 계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해가 어두워지며"라고 하신 것은 지구가 더 이상 해의 위성이 아니라는 뜻이 될 수 있고, 최소한 어떤 다른 천체가 해를 가려서 생기는 현상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든 간에 인간이 살고 있는 지구가 인력을 잃고, 균형된 압력과, 온도를 잃는다는 것은, 지구상에 생물이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는 뜻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과학자들이 우주의 크기를 알아내고, 또 지구상의 물질이 생겼던 날을 알기 위해 방사성탄소 연대 측정법(carbon dating14)을 사용하는 가설이 생겼습니다. 그 가설은 우주는 우연하게 몇 억년전에 생겼고, 생물은 진화하여 그 종류는 지금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원숭이와 같은 짐승이 진화하여 현대의 인간이 되었다는 가설입니다. 이러한 가설은 인간의 영적인 눈을 멀게 하여 하나님의 7일 창조를 부인하는 원동력이 되었고, 하나님께서 어른인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신 사실과, 또 그의 모든 피조물이 이미 어떤 연대를 가지고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부인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이 기독교인들을 포함한 모든 인간은 그들의 소망을 지구에 두고 있습니다. 지구는 앞으로도 최소한 100만년은 더 존재할 것이며, 인간의 문명과 문화를 개선하는 일이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참 믿는자들은 하나님의 7일 창조를 믿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지구와 지구 위에 사는 인간을 멸망시키신다는 말씀을 믿게 됩니다. 지구가 멸망을 당하는 날은 믿는자들이 공중에 들리움을 받아(살전 4:17, 11:12) 그리스도와 만나는 날이며, 이 날은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생이 시작되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이 날은 하나님께서 인류를 심판하시는 날인 동시에 하나님과 그의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최고의 영광의 날입니다. 창조의 하나님께서 낡은 것은 폐하시고 새로운 신천지가 시작되는 날입니다( 21:1-2).

이 구절은 모든 인류에게 주시는 아주 무서운 하나님의 마지막 경고입니다.

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인자의 징조(sign of the Son)란 마태복음 16 1-4절을 살펴봄으로써 알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징조)이 보이기를 원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밖에는 없다"고 하셨습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요나의 표적"을 알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은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는 표적을(엘리야의 표적) 보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는 표적을 즉시 내리시고,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멸할 수 있었으나, 마지막 날 까지 참으신 것입니다. 당시의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이 마지막 날에 부활되어 불의 형벌을 받게될 것을 성경은 가르칩니다.

다른 한편 택하심을 받고 구원받은 모든 믿는자들은 요나의 표적을 이미 알고 있지만, 멸망을 받을 인류는 마지막날이 왔을 때 비로소 알게된다고 하신 것입니다. "인자의 징조", 하나님자신이신 그리스도께서 인간으로 오시어 우리가 받을 지옥의 형벌을 대신 받으셨다는 인간구원의 근본적인 사실을 세상이 비로소 알게되는 때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신 동안, 그가 지니고 있는 하나님 자신으로서의 영광을 본 사람은 손꼽을 정도밖에 없었습니다. 참 믿는자라 할지라도 예수님의 그 크신 영광을 다 볼 수 없습니다. 이 사실을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3 12절에 고백하여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4 30절에 하신 말씀은 바리세인들과 사두개인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또한 예수님의 관심은 그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 현세의 교회와 교인들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바리새인들과 같이 그들이 세운 교리에만 지대한 관심이 있어 그 믿는 바가 징조로서 나타나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지막날에는 그 바라는 것이 다 잘못되었음을 볼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31: 저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큰 나팔소리"에서 나팔은 승리의 선언이며, ""은 가장 큰 승리임과 동시에 마지막을 말합니다. "나팔"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정보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여호수아가 복지 가나안에 들어갔을 때 여리고를 하나님께서 함락하신 기록입니다. 여리고의 함락은 역사적인 사실이지만, 말세에 일어날 일들을 상징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호수아 6 1절에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가 없더라"라고 하신 것은 마지막 때의 세상의 상태입니다. 세상 63억 인구의 문화와 문명, 그리고 그들의 사고방식, 생활 방식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갈 여지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일곱 나팔을 불며 언약궤와 함께 여리고 성을 돌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처음 6일 동안 한번씩 나팔을 불며 성을 돌았으며, 7일에는 나팔을 불며 일곱번 돌았습니다( 6:15). 마지막 나팔을 불며 성을 돌았을 때 성은 무너지고, 함락되었습니다.

이 기록에는 마지막 때에 일어날 여러 가지 사건들을 상징으로 말씀하십니다. 첫째로 왜 여호수아에게 나팔을 불며 13번 돌도록 하셨습니까? 왜 기생 라합과 그녀의 가족만 구원을 받았습니까? 이러한 어려운 질문을 성경말씀에서 살펴보기 전에, 실질적이며 논리적인 전제(前提)를 생각해야합니다.

그것은 이 여호수아의 기록을 전능하시고 정확하신 하나님 자신이 쓰셨다는 것을 믿고 공부를 시작해야 되겠습니다. 인공위성을 띄울 수 있고, 우주 비행기가 지구를 떠나 지구 둘레를 얼마동안 돌다가 다시 지구에 내려와 무난히 착륙할 수 있도록 물리, 공학의 방정식을 창조하신 바로 그 하나님이 여호수아를 쓰신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의 기록도 우주공학의 방정식과 동일하게 정확하며, 쓰신 이유가 있으며, 때가 되었을 때 그 뜻을 알도록 인도하십니다.

저에게는 여호수아에 대한 말씀이 아직도 신비한 하나님의 예언으로 남아 있습니다마는, 최소한 여리고 성을 13번 돌았다는 것에서, 성경의 기록 중 13을 말하는 경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숫자 13은 숫자 12와 관계되어 있으며 12 다음의 숫자라던가 12 1을 더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유의할 점은 구원받은 믿는자들을 이스라엘의 지파들로 상징했을 때 실제로 이스라엘의 지파는 13지파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성경에 엄연히 요셉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지파의 족장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또 예수님의 사도는 사도바울을 합치면 12사도가 아니고 13사도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숫자 12를 지적하실 때 13이라는 숫자를 살펴보도록 지시하시는 것입니다. 창세기 6 3절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 6:3)

120년은 노아가 방주를 준비한 기간이며, 동시에 모든 인류가 지구상에 충만해지는 기간을 말씀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우주 창조의 연대를 성경 구절을 종합하여 계산한 13,000년은,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을 13번 돌도록 하신 것과 관계가 됩니다.

창조가 11,013BC에 이뤄졌고, 1988AD가 우주 창조의 13,000년을 기념하는 해입니다.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는 이사야 55 11절에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라고 하신 말씀과 일치됩니다. 여기서 "천사들" "사자들"이며 이 사자들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 모두를 말합니다. 특히 이 구절은 큰 환난 시기를 말하고, 그 사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나갈 때 항상 승리할 것을 말하며, 여리고성을 마지막 돌 때 성이 무너진 것과 같은 시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선택하신 자들 중 마지막 사람이 구원을 받을 때 세상의 종말이옵니다.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모으리라"고 하신 말씀은 요한계시록 7장에 144,000 12지파가 그 이마에 하나님의 인 침을 받은 후에,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보좌 앞에 서서"라고 하신 말씀이 주석이 됩니다.

이렇게 온 세계에서 성도들을 모으는 사역을 아마겟돈 전쟁으로도( 16:16) 상징하셨습니다.

이상과 같이 비유와 상징으로 말씀하신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첩경은,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을 이해하는데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0장에 "나는 선한 목자라"( 10:14)고 하셨고, 마태복음 18장에 "사람이 양 100마리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라고( 18:12) 하신 것에서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자신이신 예수님께서 인신(人身)이 되어 세상에 오신 이유도 이 목적에 있고, 66권의 성경을 직접 쓰신 이유도 이 목적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초점이 이 궁극적인 목적에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비로소 성경말씀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공부하는 마태복음 24장도 그리스도의 궁극적인 목적이 달성되는 과정이며, 31절은 그 잃은 양을 찾으시는 사역이 절정에 도달했고, 구원받을 자의 마지막 사람이 구원을 받게될 시기를 말씀하십니다.

32: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고 하신 말씀은 명령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무화과나무에 대하여 기록한 성경구절을 다 살펴보라"고 하신 것입니다. 특히 한국 사람들에게 무화과나무는 별로 관심을 끌지 못하는 과실나무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무화과나무 혹은 무화과에 대하여 58번을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서 제일 처음에 읽을 수 있는 기록은 창세기 3 7절입니다.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뭇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고 하였고,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먹고 난 다음, 그들이 벌거벗은 수치를 알고 자진하여 인류최초의 의상(衣裳)을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의상 대신에 하나님께서 직접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3:21). 이 구절에서 배워야할 사실은, 인간이 입어야 할 영적인 옷은 하나님께서 직접 지어 주셔야하며, 또 그 옷은 가죽이어야 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원이시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죽으셨음을 가죽옷으로 가르칩니다.

무화과를 이스라엘이 음식으로 사용한 기록이 여러 곳에(삼상 25:18, 대상 12:40) 있습니다. 이 기록은 무화과가 이스라엘 사람들이 즐기던 과일 중의 하나였음을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을 끄는 기록은 무화과나무가 그리스도를 상징했고( 9:10-11), 또 이스라엘을 상징했다는( 9:10, 요엘 1:7, 13:6-9)점입니다. 이 사실을 염두에 두고 무화과나무에 대한 신약성경을 공부할 때 경아(驚訝)한 구절들을 발견합니다. 마태복음 21 19-20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얻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겨 가로되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 ( 21:19-20)

예수님께서 과실은 없고 잎사귀만 있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고 마르게 하신 기록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민(選民)으로 정하시고,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실 때까지, 극진히 사랑해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의 모든 징조를 보고도 그를 믿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를 사형에 처하지 않았습니까? 이 구절에서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이 국가로 존재하는 한 거기에서 구원받을 사람이 없음을 지적하셨습니다. 저주하신 이 무화과나무가 말라버린 것을 제자들이 보고 예수님께 말 한 기록이 마가복음 11 21절에 있습니다.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 11:21)

그러나 그 이스라엘에서 나온 한 사람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그 그리스도께서 자기 택하신 백성을 위하여 모든 저주를 받으신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저주를 받아 말라버린 무화과나무에서 새 잎이 나올 것이라고 마태복음 24 32절에 말씀하셨습니다. 이 무화과나무는 실질적인 이스라엘 국가를 지적하신 것이 틀림이 없으며, 또 분명한 것은 잎이 났을 뿐 과실을 맺지 않을 것입니다. 즉 과실을 맺는다는 것은 이스라엘 국가가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또 이 사실을 더 분명하게 하시기 위하여 누가복음 21 24-30절에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 싹이 나면 너희가 보고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에서 "나무"는 나라를 지적합니다. 1945년에 50국으로 시작한 UN 60년 안에 그 회원국이 192로 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현상을 배우라"고 지적하신 것이 아닙니까? "배우라"고 하신 것도 명령입니다. 해와 절기를 창조하시고 운영하시는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시기를 깨달으라"고하신 말씀이 아닙니까?

역사적으로 볼 때 이스라엘나라는 70AD에 로마 왕 Titus에 의하여 나라를 잃고, 국민은 온 세계에 흩어져 있다가, 1948년에 국가로 형성될 것을 하나님께서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국가가 형성되고 망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계획하십니다.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는 추수 때를 지적하며, 다음절에서 이 추수는 마지막 추수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33: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지금까지 공부한 내용이 마지막 날 직전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현상이었습니다. 32절에서 예수님은 세상 끝이 언제 오겠는가에 대하여 계산 할 수 있는 시점을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33절에서는 "문 앞에 이른 줄 알라"고 하심으로 그 시기가 매우 가까워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사건의 시기를 계산할 수 있는 것은 달력이며, 이 달력에 대하여 구약 성경엔 많은 분량의 명령과 기록을 남겨 주셨습니다. 그 중에 이스라엘에게 지키도록 명령하신 세 절기가 곧 유월절과, 오순절과 장막절입니다. 그 중 유월절과 오순절이 예수님께서 처음 오심으로 실제화 되었고, 장막절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를 상징한 절기이기 때문에 앞으로 공부를 해야 되겠습니다.

또 중요한 명령은 레위기 25 1-12절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지키도록 명령하신 희년(jubilee)입니다. 우선 1407BC에 처음으로 희년을 맞이했고,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해 7BC가 희년이며, 그 후 1994년에 40번째의 희년이였습니다. 이 희년은 그리스도의 해 임을 성경이 가르칩니다. 자세한 내용을 공부할 기회가 있기를 바랍니다.

3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나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

이 세대에 대하여는 예수님께서 여러번 지적 하신바 있습니다. 이 세대를 음란한 세대라고 하셨고( 13:29, 16:4), 악한 세대( 12:45, 11:29), 또는 죄 많은 세대( 8:38)라고 하셨습니다. 인류 창조 후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멸망을 받을 지구의 세대를 말씀하신 것으로서, 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다짐하신 것입니다.

35: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예수님 자신이 천지의 창조주이심을 참 믿는 자들은 알고 있습니다.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 성경의 모든 예언이 이루어 질것입니다.

36: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이 구절이야말로 대개의 기독교인들이 그 뜻을 분간하지 못하는 구절입니다.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를 글자 그대로 받아 들여 말하기를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것은 믿지만, 언제 오실 것에 대하여는 아무도 알지 못할 것이다"라고 단언합니다. 더욱 마가복음 13 32절에 "아들도 모르고"라고 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자신도 모른다고 다시 주장합니다.

이러한 성경의 해석은 잘못되었다는 것을 지적할 수 있는 몇가지 근본 문제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세상의 종말을 원치도 않고, 바라지도 않는 인간성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사실은 베드로전서 3 3-7절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먼저 이것을 알찌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벧후 3:3-7)

물론 예수를 믿지 않는 불신자들이 마태복음 24장 말씀에 귀를 기울일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자칭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대개의 사람들이 교회와 세상을 심판하시는 말세를 믿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은 선하신 하나님의 사랑만을 믿기 때문에 마음에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할 지혜가 없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에 대한 지식과 신앙이 부족합니다. 예수님께서 창조주이시며, 우리의 구원을 계획하시고 진행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셋째로 자기의 신앙을 성경말씀에 그 토대를 두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아무도 모르나니"라고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이냐 하는 반문을 할 것입니다. 이 뜻을 알기 위하여는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이유를 분명히 깨달아야하며, 예수님께서 세상 종말에 인간들이 받아야할 형벌을 대신 당하려 오신 것입니다. 그 형벌이 상상할 수 없이 크고 무섭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그 형벌을 받으실 때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27:46) 라고 하셨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핏방울의 땀을 흘리신 기록을 읽을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4장을 말씀하시던 때는 그 형벌을 받으실 직전이었으며, 그 심판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제자들에게 설명하는 중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그 형벌이 얼마나 큰지 알고 계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구절에서 "그 날과 그 때"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결론은 예수님께서 인간으로 세상에 오셨지만, 창조주의 모든 본성과 권능을 가지고 계셨고, 인간의 구원계획을 일일이 계획하시고 진행하시는( 17:26)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시기를 정하시고 운영하시는(24:1) 분입니다.

37-39: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예수님께서 노아의 날을 계획하셨고, 형벌을 내리신 바로 그 하나님이심을 기억하고, "인자의 임함"의 뜻을 살펴보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의 종말""인자의 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도들도 세상의 종말을 "그리스도 강림 하실 때에"(고전 15:23, 살전 2:19 5: 23, 벧후 1:16)로 모두 지적했습니다. 이 때에 인류는 두 가지로 분명히 나누어지며, 이 두 가지 종류의 상태와 또 그리스도의 계획이 노아의 때와 같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위 구절의 주석은 바로 베드로후서 3 3-7절입니다.

"먹고 마시고"라고 하신 말씀이 "자기 정욕을 좇아"라고 하신 것과 일치합니다. 세상은 아주 살기 좋은 곳이 되었습니다. 잘먹고 잘 살기 때문에 "주의 강림하신 다는 약속"이 염두에 들어올 여유가 없습니다. 인류의 장래를 이 지상에서 잘 살게 하시는 하나님을 찾기 때문에, 진노의 하나님, 세상을 멸하시는 하나님에 대하여는 기독교와 상관이 없는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2 5절에는 노아를 "의를 전파하는 노아"라고 하심으로, 노아가 120년 간 방주를 짓는 동안 하나님께서 세상을 멸하실 홍수의 계획에 대하여 전도했음을 가르칩니다. 성경 기록에는 읽을 수 없지만 방주를 짓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인력(人力)을 샀어야 되고, 또 전도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과 접촉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가 120년 동안 마을 사람들에게서 "기롱하는" 말 밖에 들은 일이 없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이것이 바로 지금과 노아의 때와 같은 점입니다.

한편 노아를 생각할 때, 그는 하나님 말씀의 진실하심을 믿었고, 어려운 고비를 신앙으로 이기고 살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지금 믿는자들의 세상이 노아의 때와 같습니다.

그러나 "노아의 때"를 말씀하실 때는 어떤 시기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이 확실합니다. 사도 베드로가 노아의 때는 하나님께서 물로 심판을 하셨으나, 세상의 종말은 불로서 심판하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노아의 때와 같이"고 하신 말씀은 우리에게 노아의 때를 살펴보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노아에 대한 창세기 6장에서 배우는 것은 3절에 "그들의 날이 120년이 되리라"고 하신 것과 8절에 "노아는 여호와의 은혜를 입었더라"고하신 것입니다. 120년은 사람이 지구에서 살 수 있는 기간을 말씀하신 것이며( 6:3), "죄악이 세상에 관영"하여 더 이상 인간의 죄악을 참으시지 못하겠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 모든 악한 인간들 중에서 노아는 은혜를 입어 하나님과 동행하였고, 방주를 짓도록 명령을 받았습니다. 방주의 구조도 노아가 설계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 규격을 일일이 알려주셨고, 또 방주를 짓는 기간을 120년으로 한 것도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창세기 7장에는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라"고 하신 명령을 비가 내리기 7일 전에 받았습니다. 말하자면 이 7일 동안에 모든 짐승들의 쌍을 방주에 드리는 사역을 했을 것이며, 얼마동안 방주에서 가족과 짐승들이 먹을 음식을 준비하는 일을 했을 것입니다. "의를 전파"하는 노아(벧후 2:5)는 이 7일 동안에 세상에 종말이 온다는 긴박한 설교를 수없이 했을 것이며, 세상 사람들은 듣고 비웃기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비가 내리기 직전을 생각해 보십시오. 먹구름이 해를 가려서 캄캄하게 된 하늘을 모든 사람들이 보았을 것입니다. 방주의 문이 아직도 열려 있는 그 기간에 노아가 전하던 설교를 생각하고 찾아와 방주에 들어 갈 수 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덟 식구 밖에 방주에 들어가지 못했고, 방주의 문은 하나님께서( 7:16) 직접 닫으셨습니다.

우리가 여러 가지 노아의 때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노아의 홍수를 증명하는 짐승들의 화석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화석은 왜 없는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2005 4 National Geographic의 발표에 의하면, 인도네시아에 있는 동굴에서 발굴된 한 인종의 화석의 연대가 노아의 홍수 때임을 발표) 인간은 동물에 비하여 그 두뇌가 더 발달되었기 때문에, 홍수가 났을 때 모두 살기 위하여 산으로 도망한 결과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러한 현상이 우리가 당할 세상의 종말에도 있을 것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해와 달이 어두워지고 별이 떨어지는 시기에 사람들이 받게될 공포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태도 "노아의 때와 같이"라고 하신 말씀이 적용될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예수님께서 지적하여 "노아의 때와 같이"라고 하신 것은 방주를 짓도록 노아에게 명령을 내리신 그 날짜입니다. 창세기 7장에 정확한 날자를 기록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명하신대로 암 수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더니 칠일 후에 홍수가 땅에 덮이니 노아 육백세 되던 해 이월 곧 그 달 십칠일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 7:9-12)

노아의 때를 공부하면서 여러분이 읽게 되는 숫자가 7입니다. "지금부터 7일이면"( 7:9)이라고 하셨고, "정결한 짐승을 일곱씩을 취하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7이라는 숫자는 모든 인류가 밤낮으로 기억할 수 있도록, 요일의 수로 정하시고 지키도록 하셨습니다. 우연하게 된 일이 결코 아닙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라고 말씀하신 내용 중에 7이라는 숫자를 공부하도록 지시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노아의 홍수가 4990BC에 일어났고 정확하게 7000년이 되는 해가 바로 2011AD 입니다. 앞에서 배운바와 같이 베드로후서 3 3-7절에 세상종말에 대하여 말씀하신 후에 8-10절에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 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벧후 3:8-10)

7 7000으로 계산할 수 있다고 하신 말씀이 아닙니까?

12절에도,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벧후 3:12) 라고 하셨고.

"임하기를 바라보고"는 그 번역이 미약하며 "찾으며"가 더 확실한 번역입니다 여러분께서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백성입니까?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을 "간절히 사모하게"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복음회소식: 저희 주일 예배에 참석하는 Gary Sutton이 부인과 함께 참석했습니다. 이 내외는 50년 이상을 카리스마적 교회에 속해 있었고, Gary는 자신의 교회를 가졌던 목사이기도 합니다. 그들이 사는 동리에 형제, 모친과 또 친척들도 다 그 카리스마적 교회의 교인들이며 목사입니다. 이 내외는 교회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있음을 믿고, 그곳에서 나온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E-Bible Fellowship에서 발간하는 새 전도지 "하나님이 당신을 위하여 죽으셨읍니까?"를 번역했습니다. 교정을 보고 있으며, 다음 달에는 여러분께도 보내드리겠습니다.

문서의 처음으로 가기